서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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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徐錫宰
1935년 2월 15일 ~ 2009년 12월 26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종교는 불교다.
2. 생애
1935년 2월 15일 일제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창원군 진전면[1] 에서 태어났다. 부산고등학교, 동아대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동아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1968년 당시 신민당 국회의원 김영삼의 비서관으로 정치계에 입문하였다. 상도동계의 좌장격인 최형우 전 의원과 함께 상도동계의 2인자로 불렸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서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곽정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주한국당을 탈당하여 신한민주당에 입당하였고, 해당 선거에서 신한민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서구-사하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역시 민주정의당 곽정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7년 김영삼이 신한민주당을 탈당하여 통일민주당을 창당하자 그를 따라 통일민주당으로 들어갔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부산직할시 사하구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통일민주당 사무총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89년 동해시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선거무효소송 인용판결로 인한 민주정의당 홍희표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에서 신민주공화당 이홍섭 후보 매수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참고로 이홍섭 후보가 통일민주당 이관형 후보와 묵호초등학교 동창생이었다. 이 여파로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의 공천을 받지 못하였고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 해의 제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전국의 불교조직과 사조직 '나라사랑실천본부'(나사본)를 관리하며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1993년에 1989년의 후보 매수사건에 대한 대법원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고 의원직을 박탈하였다.
1994년 12월 김영삼의 신뢰로 총무처 장관에 임명되었다. 1995년 총무처(현 행정안전부) 장관으로 있을 때 전직 대통령 4천억 비자금 설을 주장하여 노태우를 공격했다가 장관직에서 사퇴하였다. 그러나 노태우와 군사 정권쪽의 항의로 장관직을 사퇴했지만, 이후 박계동의 노태우 5천억 비자금, 전두환 5천억 비자금 설을 폭로하게 하여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 및 5.18 민주화운동, 12.12 군사반란 관련 재판을 이끌어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부산광역시 사하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당시 그와 경쟁한 다른 후보로 통합민주당 조경태가 있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영삼과 이회창 사이에 감정이 악화되자 그는 신한국당 민주계 리더로서 이회창 당시 대통령 후보를 지지를 거부하고 신한국당을 탈당해 이인제의 국민신당에 입당했다.[2] 이후 1998년 국민신당과 새정치국민회의의 통합으로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옮겨 부총재를 지냈다. 또한 대한민국 국회 산업자원위원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다. 새천년민주당 간판으로는 영남에서 당선이 어렵다는 판단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결국 한나라당 엄호성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국민통합21 소속이었다.
2009년 12월 26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3. 소속 정당
4.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그의 비서로 정치에 입문한 박재호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