넵튠 스피어 작전

 

Killing of Osama bin Laden
Operation Neptune Spear
1. 개요
2. 전개
2.1. 사망
3. 사후
4. 죽음에 대한 논란과 음모론


1. 개요


미국9.11 테러의 범인인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작전이다.

2. 전개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을 잡으려고 아프가니스탄까지 쳐들어가서 전쟁을 일으켰으나 정작 작전의 목표물인 빈 라덴은 잡지 못했다. 탈레반의 패배로 끝날 것처럼 보였던 전쟁은 핵심 목표인 오사마가 도주하면서 점차 늘어지기 시작했다. 탈레반은 이라크전으로 주춤해진 미군의 감시를 틈타 다시 세력을 키워나갔고 오사마는 간간이 자신의 성명을 담은 비디오를 세상 밖으로 내보내며 건재를 과시했다. 미국은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온갖 첨단장비와 5,000만 달러의 현상금까지 내걸었지만 오사마 빈 라덴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
그런데 실은 '''아프가니스탄 침공작전 초반에 빈 라덴을 거의 잡을 뻔했다'''. CIA의 아프가니스탄 파견대였던 조브레이커(Jawbreaker) 팀이 오사마 빈 라덴의 흔적을 확보하고 빈 라덴이 있는 건물을 확실히 파악하는데까지 성공한 것이다. CIA는 레인저 1개 중대 정도만 와도 확실하게 제압가능하다며 빨리 병력을 보내달라며 호출을 넣었으나 정보가 전달되던 와중에 무언가가 일이 대차게 꼬여버려서, 당시'''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무능''' 때문에 군에서 씹었다. 럼즈펠드가 무능하기야 했지만 CIA도 국방부에 제대로 된 정보 전달을 안 해서 의사소통이 안 됐던게 근본 원인이다. 럼즈펠드, 체니, 부시까지 이 사실을 알고 대노하여 CIA 국장을 경질했을 정도니 문제의 근원은 제대로 된 정보공유를 안 한 CIA.(...) 그리고 오사마 빈 라덴 일당은 악천후를 틈타 탈출, 결국 놓쳤다.
한술 더 떠서 아프간에서 무인기 '프레데터'에 무장을 추가해서 시험운용하다가 '''렌즈에 잡혔다'''. 문제는 그 당시 무인기 프로젝트는 아무도 관심을 안 가졌던 프로젝트라서 무장 발사명령을 내릴 만한 사람과 연락이 전혀 안 되었다는 것. 발사 버튼 하나만 눌렀어도 헬파이어 미사일에 맞아 글자 그대로 가루가 됐을 상황이었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럼즈펠드 장관은 노발대발했고[1], 이 사건은 미군이 무인 공격기를 대대적으로 운용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오사마를 잡을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1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아프간에서 사라진 뒤로 빈 라덴의 행방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2.1. 사망



영화 제로 다크 서티에서의 재현. 연기가 가미된 것이므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For God and country, I pass Geronimo. Geronimo E.K.I.A.[2]


신과 국가를 위하여, 작전코드 제로니모를 전송한다. 작전코드 제로니모. 적을 사살했다.[3]

특수부대 DEVGRU가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을 확인한 후 임무 성공 사실을 알리기 위해 보낸 암호 무전.

Justice has been done.
정의가 실현되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오사마 빈 라덴 사망에 관련한 백악관 연설에서.

미국은 장기간의 첩보로 오사마 빈 라덴의 위치를 확보했다. 이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DEVGRU[4] 아보타바드로 침투해 암호명 '잭팟'으로 명명된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넵튠 스피어 작전(Operation Neptune Spear)이 결정되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있던 곳은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의 북동쪽 50km 지점에 있는 아보타바드의 '''호화 주택가''' 속 안전가옥이었다. 오사마의 침실. 더군다나 지역 경찰서와는 불과 250m 거리인데다 인근에는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까지 있었다.아프가니스탄의 산골에 은둔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과는 영 동떨어진 곳이었다.[5]
처음에는 지상군 투입없이 폭격으로 사살하는 것도 고려되었지만 오사마가 은거한 아보타바드의 안전가옥이 이슬라마바드에서 불과 56Km 떨어진 곳이라 수도 방공권 내에 들어있어 무인기를 이용한 공습이 어려웠고[6] 2011년 3월에는 B-2 폭격기 2대를 이용해 2,000파운드 폭탄 수십 발을 투하한다는 계획안까지 나오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주변에 은퇴한 파키스탄군 장성이나 정치인, 기업가 등 엘리트들이 사는 호화주택이 많이 있어 민간인 피해가 우려되었고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을 확인할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반려되었다.[7]
파키스탄 현지시각으로 2011년 5월 1일 새벽 1시, 대원 25명[8] MH-60 페이브 호크 헬기 2대와 CH-47 치누크 헬기 2대에 분승하고 오사마 빈 라덴의 안전가옥을 기습공격했다.[9] 이 중 CH-47 2대는 예비대 및 중간급유용이었다. 이 헬리콥터들에 타고 있던 예비 병력은 안전가옥에 직접 진입하지 않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아보타바드 외곽에 대기하고 있었다. 작전 종료 후 퇴출 시 추락한 MH-60 페이브 호크 승무원들과 대원들 및 현장에서 노획한 각종 자료로 늘어난 짐을 실었고 중간에 착륙해 연료가 바닥난 페이브 호크에 급유작업도 수행했다.
오사마가 은신하고 있던 저택은 주위의 저택보다 거의 6배 가량 큰 데다가 반 요새화되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쓰레기 소각장이 앞마당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당연히 이 지점이 착륙 지점으로 선정되었고, 덕분에 DEVGRU 대원들을 태운 헬리콥터가 순식간에 착륙해 내부의 알 카에다 조직원들이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다만 벽을 교도소 수준의 높이로 세워놔서 헬리콥터가 오래 체공하기에는 위험한 곳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원들은 소총을 난사하며 저항했으나 모두 사살되었다. 빈 라덴은 자신의 침실에서 사살당하였고[10] 함께 있던 여성이 총격전 중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한다.[11] 작전 당시 같은 건물에 있던 빈 라덴의 27세 연하 아내는 DEVGRU 대원들에게 덤벼들었으나 다리에 총상을 입고 제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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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발견된 페이브 호크의 꼬리날개
작전 과정에서 DEVGRU 대원들을 태운 MH-60 페이브 호크[12] 1대가 와류 고리 현상이[13] 발생해 추락했지만 인명피해는 없었고 추락한 헬리콥터는 적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DEVGRU 대원들이 폭파했다.
당초 작전계획서에는 헬리콥터 2대만 동원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예비기가 전혀 없으면 작전이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문제가 될 수도 있다고 하여 결국에는 총 4대를 동원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덕분에 헬리콥터 1대를 잃었음에도 나머지 3대에 전원이 무사히 탑승해서 작전 지역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14]


3. 사후


2011년 5월 2일, 미국 시간으로 밤 11시 경에 진행된 긴급 기자회견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되었음이 공식 발표되었다.[15] 이 소식을 들은 미국인들은 '''악마가 드디어 지옥에 떨어졌다'''고 환호하며 백악관에 몰려들어서 USA를 연호하고 미국 국가를 부르는 등 하루종일 기쁨을 누리게 된다. 뉴스에서도 앵커가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소식이 들어오자 대놓고 "Happy days! Happy days!"라고 외칠 정도였다. 미국에서 오사마 빈 라덴은 '''아랍인 히틀러''' 취급을 받으니 그럴 만하다. 미국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 사살 기념품이 불티나게 팔렸고 그를 풍자하는 이미지도 쏟아졌다. 또한 그라운드 제로에서는 9.11 테러의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는 모임도 있었다.

WWE 경기장에서 존 시나가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을 알리자 전 관중이 USA를 외치고 있다. "compromised to a permanent end"[16]라는 시적인 표현을 썼다.
대다수의 이슬람 국가에서도 이를 반기는 입장을 표했지만 알 카에다의 보복 테러 위험이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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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에서 공개한 넵튠 스피어 작전 모니터링 사진.[17]
(왼쪽부터 보면 된다)
미합중국 부통령 조 바이든
미합중국 대통령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합중국 합동특수작전사령부 부사령관 공군준장 마셜 웹 장군[18]
데니스 맥도너 국가안보 부보좌관
미합중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미합중국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미합중국 합동참모의장 해군대장 마이크 멀린 제독[19]
참고로 오바마 대통령의 증언에 따르면 이 사진은 작전에 투입된 헬리콥터 1대에 문제가 생겨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순간, 일동 모두 긴장하는 찰나에 찍은 것이라고 한다. 이 사진은 타임지가 선정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100장의 사진'에 선정되었다. 또한 전직 백악관 비서의 증언에 따르면 임무 결행 직후 첫 헬기 2대가 임무를 위해 목표지점으로 떠나고, 도착하기까지의 1시간 30분동안 오바마는 지루하다고 중간에 나가서 카드 게임을 하다 다시 들어왔다고 한다. 카드 게임을 포함한 1시간 30분이 지난후, 헬기 2대가 예정대로 목표지점에 도착하고 대원들이 착륙하려고 하는데 그중 한대가 경미한 불시착으로 파괴되고 문제가 생길때 찍힌 사진.
미국 연방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좁은 방에 모여서 평소에 보여주지 않는 모습이 드러난 드라마틱한 명작품이다. 공개된 지 며칠 만에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사진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이 사진이 유명해진 것은 대통령, 부통령, 국방장관 등 서열상으로 훨씬 높은 사람들은 옆으로 빠져 있고, 겨우(?) 준장 계급인 작전 책임자가 중앙 상석에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서열이 아니라 작전 책임자를 훨씬 우대하는 미국 군대 문화를 살짝 엿볼 수 있다.
떠돌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은 '''가짜'''다. 2009년에 합성되어 올라온 것이라고 하며 파키스탄 방송에서 진위여부를 확인하지도 않고 방송을 내보냈고 이를 외신들이 앞다투어 올렸다가 가짜로 판명되면서 사진을 삭제하고 있다. 결국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 사진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살된 오사마 빈 라덴의 모습이 너무 끔찍한 탓에[20] 사진이 공개될 경우 나타날 파장을 염려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는 2017년 DEVGRU의 전쟁범죄 폭로로 이 사진의 어두운 이면이 드러났다. 원래 지휘부는 절대 오사마 빈 라덴의 머리에 쏘지 말 것을 강조했는데, 기어코 팀장급 대원 중 둘[21]이 원래 작전상의 위치를 벗어나 그 중 한 명(로버트 오닐로 밝혀졌다.)이 카누잉[22] 해버렸다.[23]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은 페르시아 만에 전개된 미 해군 항공모함 CVN-70 USS 칼 빈슨 함으로 옮겨져 9시간 만에 미 해군 이슬람 군종관이 간단히 의식을 치뤄준 후 추를 달아 아라비아만에 수장되었다. 미국은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시신을 처리하는 것이 이슬람교의 전통이며 오사마 빈 라덴의 시신을 받아줄 나라도 딱히 없어서 수장시켰다고 발표했지만 세간의 평은 어차피 무슬림이라 화장할 수는 없는 상황인데 그렇다고 시신을 땅에 묻을 수도 없다 보니 오사마의 무덤이 테러리스트들의 성지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서두른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24] 그리고 당사자인 이슬람권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수장시켜서는 안된다며 불쾌해하고 있다. 전통에 어긋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슬람 전문가들은 수장은 할 수 있지만, 이슬람식 전통 예법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시신 수장은 이슬람 전통에 어긋난다는 주장이다. 시신은 오사마 빈 라덴의 친척을 제외한 가족에게 인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알려진 것과 달리 사살 당시 오사마 빈 라덴이 무장하지 않았다고 5월 3일 밝혔다. 또한 여성을 인간방패로 사용했는지에 대해서도 불확실하다고 했다. 링크 이에 대해 영국 텔레그레프는 미국이 오사마 빈 라덴에게 비겁자 이미지를 씌우기 위해서 조작했다고 주장중이다. 그리고 사망한 여성은 오사마의 아내가 아닌 다른 남성의 아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링크 'No Easy Day'와 '제로 다크 서티'의 묘사에 따르면 이 여성은 오사마의 부하 아브라의 부인이었고 사살되는 남편을 도우려다 함께 총에 맞았다고 한다.
오사마의 은신처에 있던 노트북에서 대량의 정보를 얻었다고 알려졌다. 미국의 한 정보관계자에 의하면 노트북에 있는 정보의 10분의 1만 써먹을 수 있어도 거의 노다지 수준이라고 한다.
타임 지에 따르면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될 때 같이 있던 여성은 오사마의 세 번째 아내 아말이었다고 한다. 오사마의 방에는 무기가 있었으나 무장은 하지 않았으며 아내를 인간방패로 쓴 것이 아니라 아내가 남편인 오사마를 지키기 위해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DEVGRU 대원들은 아말이 자살폭탄으로 무장했을 것을 염려해 아말을 밀쳐내고 장딴지에 총을 쐈다고 한다. 아말은 부상을 입고 기절했고 오사마는 눈과 가슴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오사마 빈 라덴의 딸은 작전종료후 파키스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는데[25] 체포 후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비무장 상태에서 DEVGRU 대원들에게 생포되어 가족들 앞에서 사살당했다고 주장했다. 작전 직후 미국 정부에서 밝힌 공식입장은 '오사마 빈 라덴이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생포할 수도 있었다'였기 때문에 사실이라면 꽤나 논란이 될 듯 하다. 오사마의 27세 연하의 아내의 증언으로는 찬장에 있던 AKSU를 집으려다 사살당했다고 한다. 이러면 처음에는 비무장이었지만 최종적으로는 무장을 하려 한 것이니 사살당한 것이 당연하다. 결국 DEVGRU 대원들은 규정에 따라 처리한 셈이다. 하지만 이는 비소넷의 증언과는 확연히 달라 조금 애매한 부분.
에릭 홀더 미국 법무장관은 이번 작전은 암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번 작전은 사살 또는 생포 작전이었으며 오사마 빈 라덴이 항복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생포되었다고 해도 오사마의 운명은 10여 년 전에 최후를 맞은 티모시 맥베이처럼 약물주사형으로 처형되거나 이것 저것 증언하는 대가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받는 것이었겠지만. 그러나 해당 사건을 다룬 디스커버리 다큐멘터리에서는 실제 상황에서는 생포 확률이 매우 희박하기에 사실상 사살작전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해석하고 있다.
한편 오사마 빈 라덴의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혹은 포획 코드명 제로니모에 당연하게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격분했다. 미국 식민자들의 땅 도둑질에 맞섰던 선주민 영웅을 테러리스트와 동급으로 취급해버렸기 때문이다. 링크 오사마 빈 라덴의 코드명은 '잭팟'이였고, 제로니모는 작전 그 자체를 일컫는 코드명이이었지만, 작전 그 자체를 가리킨 것이라 해도 고야슬레(흔히 '제로니모'로 알려진 아메리카 원주민 영웅의 본명)를 오사마 빈 라덴으로 표현한 듯이 느껴질 수 있었기에 거기서 거기였지만.
그리고 이 사살 작전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은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도널드 트럼프. 당시 트럼프는 2012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경선 후보로 활동하고 있었다. 이 때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가 케냐에서 태어났다고 우기며 대통령 피선거권이 없다고 주장해 출생기록을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등의 네거티브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오바마는 자신의 출생기록을 공개하며 "이런 바보같은 놀음(silliness)에 더 이상 얽매이고 싶지 않다. 나는 신경써야 할 중요한 일들이 많다"라며 발언하였다. 그리고 이 사살 작전을 발표하면서 오바마는 자신의 말을 입증하게 되었다. 당연히 트럼프는 엄청난 정치적 타격을 입었고, 결국 경선을 포기해야 했다. 자세한 내용은 도널드 트럼프/역대 선거 문서에 있다.


4. 죽음에 대한 논란과 음모론


넵튠 스피어 작전에 참가했던 전직 DEVGRU 대원 맷 비소넷은 마크 오언이라는 가명으로 이 작전에 대한 회고록 No Easy Day를 출간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런데 이 책에 오사마 빈 라덴이 비무장 상태에서 사살당했다는 내용이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No Easy Day와 영화 《제로 다크 서티》의 묘사에 따르면 오사마 빈 라덴은 비무장 상태에서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다 총에 맞았고, 이후 방에 들어온 DEVGRU 대원들이 확인사살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의 상황은 DEVGRU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군기와 문란이 겹쳐졌었다. No Easy Day는 2013년 2월 <No Easy Day 빈 라덴 암살작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어판도 발매되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보를 지낸 폴 크레이그 로버츠는 넵튠 스피어 작전에 대해 자작극이라고 표방하고, 애초에 오사마 빈 라덴은 10년 전인 2001년 12월 신부전증으로 이미 죽은 몸이었다고 주장했다. 로버츠는 자신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인 정치경제연구소에 2014년 11월 7일에 올린 '또다른 빈 라덴 거짓 이야기'라는 글에서 "빈 라덴이 SEAL 팀에 의해 사망했다는 주장은 선전 조작이며, 그 목적은 오바마에게 영웅의 월계관을 씌우고 오바마의 재선을 위한 민주당의 지명 논의를 포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로버츠는 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미 연방수사국(FBI)이 스스로 오사마 빈 라덴은 9·11 테러에 책임이 있다는 증거가 없다, 오사마 빈 라덴 사살기사가 서방과 아랍 매체를 통해 많이 공개됐다, 아무도 신부전증으로 10년을 살 수 없다, 오사마 빈 라덴이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가옥에서 신장투석기가 발견되지 않았다, 오사마가 사살된 뒤 바다에 수장됐다는 백악관의 발표를 수장식이 이뤄진 선박의 선원들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백악관의 오사마 빈 라덴 사살 발표가 최소 24시간 안에 두 차례 바뀌었다 등을 근거로 들었다. 링크. 이는 2015년 1월 4일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다뤄지기도 했다.
그러나 로버츠의 말을 섣불리 믿어서는 안되는 것이, 로버츠는 원래부터 매우 극단적인 음모론 신봉자로 별다른 근거없이 이러한 주장들을 거의 매번 펼쳐온 인물이다. 쉬운 예를 들자면, 로버츠가 게시하였던 칼럼에서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샤를리 엡도 총격 테러 사건이 프랑스를 워싱턴의 손바닥에 올려두기 위한 미국 CIA와 이스라엘 모사드, 프랑스 정보부의 합동 자작극'''이라는 것. 당연히 대놓고 '미친 음모론'이라고 비판을 받았다.
거기다 애초에 로버츠의 주장들에는 일관성있게 논리적인 결함이 많아서 신빙성이 있다고 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샤를리 엡도 자작극'의 근거로 최근 프랑스가 팔레스타인 국가 승인 촉구 결의안을 통과시켜 이스라엘 모사드와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의 심기를 건드렸다고도 주장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프랑스가 얄밉다는 이유만으로 '''자국민 유대인들을 타깃으로 하는 팀킬 테러'''를 주도했다는 뜻인데 이는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사람이 봐도 불쏘시개 수준의 음모론이다.
이때까지 부시가 수십만명을 죽일때도 참았던 무슬림들이 고작 만화 하나에 이제와서 반발할 이유가 없다, 테러 단체들이 얻을게 없다를 음모론의 근거로 갖다댔는데 로버츠의 논리로 따지면 'IS가 공개처형한 무아트 알 카사스베 요르단 공군중위의 분살도 서방정부의 자작극'이라는 미친 주장까지도 나올 수 있다.[26] 거기다 수만명이 죽었다고 민간인 상대로 보복 테러를 하지 않은 정상적인 무슬림들과, 지금 만화 하나만으로 테러를 일으키는 극단주의자들은 완벽하게 다른 사람들이다. '똑같은 상식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부터가 어불성설. 애초에 일반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극단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으니 극단주의자들이라고 부르지 말이 통하고 상식적이라면 뭐하러 극단주의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로버츠는 10년 전부터 9.11 테러 음모론을 강력하게 밀어 붙이는 사람중 하나이며, 오사마 빈 라덴이 자기가 아니라 미국 정부 짓이라고 둘러댔던 것을 신빙성 있는 근거라고 인용하며 논란을 부른바 있다. [27]
그외에도 알 카에다 간부 안와르 알 아우라키[28]가 사살당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자 "미국이 죽은 날"이라고 하며 아우라키가 알 카에다 간부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거의 '히틀러나치가 아니다' 수준의 헛소리. 아우라키는 매우 활발하게 매체 활동을 했으며, 아우라키의 사후에 알 카에다가 대놓고 복수를 다짐하기도 했고 아우라키의 측근이었다가 다국적군에게 돌아서 아우라키의 사살에 일조한 전 알 카에다 대원이 자서전까지 내어 아우라키와의 일화를 상세 기술한바 있다.
거기다 주장 자체만 놓고봐도 무리수가 많은데, 오사마는 2004년과 2006년경에만 여러번 알자지라 방송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한바 있다. 만약 오사마 빈 라덴이 2001년에 이미 고인이 된 인물이었다면, 미국은 그렇다치고 알 카에다까지 짜고 치며 이미 죽은 사람을 두고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인양 방송매체와 측근을 통해 수만명의 극단주의 지지자들 상대로 10여년간 연극을 펼쳐왔다는 뜻이 되는데 이는 아무리 봐도 무리수다.
어쨌거나 까놓고 말해서 테러사건만 터지면 일단은 미국 정부가 주도했고 잘 알려진 1등급 테러리스트조차도 전부 다 일반 선량한 사람일 뿐인데 미국이 몰아가는 것이라고 우기고 들어가주는게 로버츠의 일상이다. 거의 기-승-전-미국 정부의 음모다! 수준. 로버츠의 음모론중 아우라키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오사마 빈 라덴은 10년전에 이미 죽었다, 샤를리 엡도 테러는 자작극이다 이 세가지는 특히, 근본 자체를 뒤집는 무리수라서 음모론자들조차도 로버츠의 전작인(?) 9.11 테러 음모론보다도 신빙성이 없다고 무시하는 주장이다. 계속되는 비난에 하원의원 출신 폴 라울이 팩트라고 기정사실화 하는게 아니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뿐이라고 대신 변호해줬을 정도.


[1] 정확히는 지랄발광 쪽에 가까웠다고 한다. 하기야 웬수 중의 웬수를 가루로 만들 기회였는데... [2] Enemy Killed In Action.[3] '제로니모'는 '오사마 빈 라덴의 사망 혹은 포획'에 대한 작전 코드였다. 빈 라덴 본인에게 붙여진 코드명은 '잭팟(Jackpot)'[4] 델타 포스 등 다른 특수부대들도 있지만 굳이 데브그루가 투입된 이유는 당시 JSOC 사령관이 해군 중장이었기 때문이다.[5] 당시 CIA와 대테러 전문가들은 오사마가 노출이 되기 쉬운 마을이나 문명 지대가 아닌 산 속의 동굴과 같은 외진 지역에 은둔해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현상금이 걸린 거물이 대놓고 '나 오사마요'라고 하고 다니진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사마도 초기에는 동굴의 입구 앞에서 '대미국 성전'을 촉구하는 방송을 일부러 흘려보내는 식으로 미국 첩보기관을 나름대로 농락하는 등 성과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역시 미국의 첩보기관이 집요하게 자신을 추적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을 테고 자신의 측근들이 미국의 공격으로 하나 둘씩 죽어가고 있다는 보고도 받았을 것이니 언제까지 도망만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오사마에게 있어서는 전혀 의심을 받지 않을 장소가 필요했고 그렇기에 아보타바드의 은신처가 최적이었을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더구나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까지 위치해 있고 또 군관 장성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고 하니 미국이 대놓고 미쳐서 '파키스탄과 전쟁을 하겠다'고 하지 않고서야 여기를 폭격할 수도 없을 거니까...[6] 무인기의 월경 작전은 종전부터 파키스탄 정부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있었으나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수도 이슬라마바드 방공권 내의 접근은 제 아무리 미국이라도 무리였다. 물론 사전통지 또는 허가를 받는다는 선택지 또한 고려하기 어려웠다. ISI 내부에 탈레반 세력이 침투해 있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이다. 설령 무인기가 파키스탄군 방공망에 격추되지 않고 공습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무인기의 제한적인 폭장량으로는 안전가옥에 대한 확실한 파괴를 장담하기 어려웠다.[7] 미국은 오사마가 하도 줄행랑을 잘 친 탓에, 그의 시체를 확실하게 확보하기를 원했다고 한다.[8] 전직 DEVGRU 대원인 맷 비소넷의 수기 "No Easy Day"에 따르면 작전에 참가한 인원은 SEAL 대원 22명, EOD 대원 1명, CIA 통역관 1명, 그리고 카이로라는 군견 1마리이며, 이들은 전쟁 상태가 아닌 파키스탄에 미군이 군사 작전을 할 명분이 없다시피 하니까 임시로 CIA 소속으로 이전되었다.[9] 맷 비소넷(필명 마크 오언)의 수기인 No Easy Day에 따른 것으로, 투입된 헬리콥터의 수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다.[10] 첫날 국방부 발표에서는 빈 라덴이 무기를 가지고 저항했다고 했으나 백악관에서 이 사실을 정면으로 부인하였다. 선두의 포인트맨이 머리를 먼저 쏘고 심장을 쏴 확인사살했다고 한다. 빈 라덴 암살 작전에 참여한 대원이 쓴 'No Easy Day'라는 책에서, 빈 라덴은 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가진 총의 탄창에는 총알이 없었다고 회고했다.[11] 역시 첫 날 발표에서는 이 여성이 오사마의 아내라고 발표했으나 백악관 측에서는 이것 역시도 부인했고 인간방패였다는 설 역시 확실하지 않다고 밝혔다. 'No Easy Day'와 《제로 다크 서티》의 묘사에 따르면 이 여성은 오사마 빈 라덴의 부하 아브라의 부인이었다고 한다.[12] UH-60 블랙호크를 특수작전용으로 개조한 기종인데 파키스탄이 공개한 헬리콥터 잔해가 기존 페이브 호크와 비교해 매우 독특해서 평범한 블랙호크 개조 수준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거의 새로 나온 기종 수준이라고 한다. 정확히 어떤 기체가 사용되었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13] 특정상황에서 공기가 헬리콥터 밑에서 돌아 조종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으로, V-22가 뻔질나게 추락하는 원인이었다.[14] 작전의 은밀성보다는 안전성 쪽에 무게를 두고 내린 결정이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듯 하다. 당시 민간 자문단으로 참가했던 인사 중에는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의 모티브가 된 모가디슈 전투 때 조종하던 UH-60 블랙호크가 추락해서 아이디드 민병대에게 붙잡혔다가 간신히 석방된 마이클 듀런트가 있었다. 듀런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헬리콥터를 통한 강습 작전은 너무 위험하다며 차라리 미사일이나 공중 폭격이 더 안전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후 듀런트는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는 했지만 오바마는 이를 통해 사태가 악화될 때 필요할 예비 전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이끌어냈고 예비기 투입하도록 지시한 것이다.[15] 이 와중에 스펠링을 "OBAMA BIN LADEN" 이라고 적어 띄우는 방송사고가 발생했다.[16] 정확히는 ""대통령께서, 조국이 오사마 빈 라덴에게 영원한 파괴를 안겨줬다고 발표했습니다. (The President has just announced that we have caught and compromised to a permanent end Osama bin Laden.")[17] 참고로 문쪽에서 훔쳐보듯이(...) 작전을 바라보고 있는 하늘색 셔츠를 입은 남자가 바로 현 국무장관인 토니 블링컨이다.[18] 사령관인 해군중장 윌리엄 H. 맥레이븐 제독은 현지에서 작전을 직접 감독했다. 준장을 자리에 앉혀놓고 합참의장인 대장을 뒤에 세워놓는 셈인데 그 이유는 웹 장군이 넵튠 스피어 작전의 실무를 맡고 있고 나머지 인물들은 해당 작전과 무관하게 그것을 참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작전실행을 맡은 웹 장군의 지휘권을 존중해주는 셈이다. 지통실 등에 암만 높으신 분이 와서 서 있는다 해도 오퍼레이터들이 자기 의자를 내주지는 않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오바마 대통령조차 작전 내내 그 어떤 말이나 간섭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19] 웹 장군 뒤에서 안경을 쓰고 검은색 넥타이에 대장 계급장 달린 카키 셔츠(미 해군 근무복)를 입고 뒷짐지고 있는 사람이다.[20] DEVGRU 대원이 쏜 총탄 2발에 후두부를 맞아 머리가 터져서 사망했다.[21] NO EASY DAY를 쓴 맷 비소넷과 로버트 오닐.[22] 카누를 모래밭 위에서 끌고가면 V자 모양으로 모래가 파지는데서 착안한 단어로, 총알을 쏴서 머리를 '예술적으로' V자 모양으로 쪼개는 악취미적 문화다. 두부 사격 금지 명령이 특히 강조된 것이 이런 카누잉이 DEVGRU 내에서 만연했기 때문이다.[23] 그러니까, 작전사령관과 대통령이 보고 있는데 무단 이탈을 해서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던 카누잉을 해버렸단 뜻이다...[24] 물론 실질적인 이유는 위에 적은 시체의 상태도 한 몫 했을 것이다.[25] DEVGRU 대원들이 오사마의 딸을 비롯한 가족과 측근을 데려가지 않은 이유는 헬리콥터 1대가 와류고리현상으로 추락하는 바람에 나머지 3대에 이들을 태울 정원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26] 같은 수니파 무슬림 청년을 참혹하게 살해하여 이슬람 중동국가들이 집단으로 등을 돌리게 만든 자충수로 IS가 얻을 것은 없고 잃을 것만 많은 셈이니.[27] 정작 오사마 빈 라덴은 2004년 알자지라 방송에서 9.11 테러를 성전이라 지칭하며 자신들의 짓이 맞다고 인정했다.[28] 예멘을 주 무대로 활동했으며 알카에다의 리더격으로 간주되었던 거물로, 훗날의 샤를리 엡도 테러리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줬으며 그들과 접촉했다는 설도 있었던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