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먼 파이어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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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턴 전차 박물관의 셔먼 파이어플라이.
1. 제원
The Sherman Firefly
2. 개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영국군과 캐나다군이 운용한 전차. 미국이 개발한 M4 셔먼을 개조하여 당시 영국 육군의 최강 대전차포인 17파운더포를 장착한 모델이다. 정식명칭은 셔먼 IC(M4개조), IC 하이브리드/컴포지트 헐[1] , 셔먼 VC(M4A4개조) 파이어플라이.[2]
사실 명칭에 대해 짚고 넘어가자면 스티븐 잘로가의 조사에 따르면 종전까지 공식명칭으로 '파이어플라이'를 사용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Firefly(반딧불이)'라는 별명은 17파운더 주포의 크고 아름다운 포구 섬광 때문에 일선 병사들이 붙인 일종의 별명이라고 하며, 이 섬광의 막장성 때문에 종종 조롱의 의미로 'Mayfly(하루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2차대전 중 미국식 대전차자주포 운용 이론을 실현시키기에는 미국 대전차주포들의 대전차 화력이 M36 잭슨 이전에는 너무나도 부족했기에 엉뚱하게도 가장 대전차자주포이론에 들어 맞는 '''전차'''로 볼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게 쓰였다.[3]
3. 개발 동기
영국군은 자국산 전차 대신 미제 전차가 주력을 이루는 사태를 거북하게 여겨, 자국산 전차인 크롬웰과 처칠 위주로 부대를 재편할 계획을 세우고, 크롬웰과 처칠 부대의 화력 지원용으로 각각 챌린저와 블랙프린스 등의 17파운더 장착형 전차를 개발하고, 두 전차의 실패에 대한 보험 겸 자국산 전차의 부족을 매울 셔먼 부대 지원 목적으로 파이어플라이를 개발, 1944년 1월부터 생산했다.
그러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직전까지도 크롬웰과 처칠을 다 합친 것보다 셔먼의 수가 여전히 더 많은 데다가, 챌린저는 갖은 고장과 트러블을 일으켜 소량 생산(200여대)만 하고 중지했고 블랙프린스는 종전 후에나 완성되어 결국 17파운더 전차의 주력은 파이어플라이가 차지하게 되었다.
미국 또한 이 계획에 흥미를 느껴 17파운더 몇 문을 받아가 테스트 하였으나 지나친 섬광등의 문제가 있었고 이미 스스로 76mm와 90mm 포의 개발 계획이 진행중이었기에 굳이 채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계획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아르덴 대공세 이후 이 계획은 다시 부활하여 1945년 3월에 75mm 셔먼의 업건이 시작되었다. 대상은 M4와 M4A3였으며 영국의 파이어플라이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계획이 중단되기 전까지 160에서 200대의 셔먼이 개수되었지만 실전에 투입되는 일은 없었다. 종전 이후 이 파이어플라이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유일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현재 생존한 미국 파이어플라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파이어플라이 외에 17파운더를 장착하는데 성공하여 실전까지 널리 쓰인 것으로는 아처, M10 아킬레스가 있다.
4. 이것이 다르다
기존의 셔먼과는 17파운더 특유의 기다란 포신과 동그랗게 생긴 특이한 모양의 머즐 브레이크로 한눈에 구분된다.
안쪽은 17파운더 대전차포의 포미가 포탑 뒷쪽 내벽에 거의 맞닿을 정도로 덩치가 컸던 관계로 포수가 포탑 상부의 전차장 해치를 이용하기 곤란해졌기 때문에, 기본형 셔먼에는 없던 포수용 해치를 추가하고 포탄 탑재량을 늘리기 위해 차체 전방 기관총 사수석이 있던 자리에 추가 포탄 랙이 설치되었고, 쓸모가 없어진 차체 전면의 기관총 마운트는 철판으로 덮어놓았다. 무전기는 내부 공간 부족으로 포탑 후방의 공구함이 있던 자리로 옮겼다. 영국제 연막탄 발사기[4] 와 차외에서 차내로 연락하기 위한 전화기가 추가 설치되는 등 외형상 눈에 잘 띄이지 않는 자잘한 변화도 많다.
이렇게 써놓으면 셔먼의 포탑 내부가 좁아터져서 문제가 생긴 것 같아보이기 쉽겠지만, M4 셔먼 항목에도 나와있듯 셔먼의 포탑링 넓이와 크기는 중형전차치고는 오히려 넓은 편에 속한다. 오히려 동급의 전차들 중 내부공간이 상당히 여유로운 셔먼조차도 17파운더 포를 때려박기 위해선 이 정도는 해줘야했다는 편이 옳다. 17파운더 포는 당장 무게만 봐도 비슷한 구경의 7,5cm PaK 40 대전차포의 2배(...), 76.2mm ZiS-3 대전차포의 3배(!!!)에 달하는 커다란 포다.[5] 이렇게 만들어진 파이어플라이는 포탑 내부가 좁긴 했지만, 챌린저와 달리 기계적 신뢰성은 높은 관계로, 챌린저를 제치고 주력 전차로 자리잡는다.
5. 실전
편제는 중형전차(셔먼 or 크롬웰) 3대에 1대의 파이어플라이 or 챌린저[6] 였으며, 처칠 전차의 경우 파이어플라이가 아닌 M10, 아킬레스와 같이 편제 했다고 한다.
미군이 76mm 전차 셔먼, 90mm 대전차자주포 잭슨이 노르망디 상륙작전 시행 전까지 상륙부대에 전달하지 못한 것과 반대로 파이어플라이는 계획한 모든 수량이 생산, 전달되어 적절한 순간에 사용될 수 있었는데 병기의 단점이니 성능이니 해도 필요한 순간에 곁에 있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7]
저저항피모철갑탄으로도 약 1500미터 거리에서 티거의 정면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강력한 17파운더 선회 포탑을 올린 파이어플라이는 등장과 거의 동시에 서부전선에서 독일 전차병들이 가장 껄끄럽게 생각하는 연합군 전차가 되어 최우선 격파목표가 되었다. 문제는 파이어플라이의 방어력은 일반 셔먼 전차의 방어력에서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독일 전차들은 긴 장포신 전차를 먼저 공격했기 때문에, 긴 포신을 숨기기 위해 위장망, 위장 도색, 가짜 머즐 브레이크, 다른 전차에 가짜포 달기 등 전차병들은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위장술을 총동원하여 이에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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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신에 위장색을 칠하여 단포신 셔먼인 척 하는 근위 전차여단의 Irish Guard 2중대 소속 파이어플라이.
독일의 티거 에이스 미하엘 비트만을 전사시킨 것도 영국군 제1노샘프턴셔 요먼(1st Northamptonshire Yeomanry) 기병연대 A대대 3중대의 조 에킨스의 파이어플라이라는 추측이 정설이다.[8] 비트만은 토털라이즈(Totalize) 작전을 저지하기 위해 기동하던 도중 파이어플라이의 매복에 걸려 우측방을 피격당했고 그 직후 차내의 포탄이 발화되어 유폭했다. 이 폭발로 비트만의 007호 티거는 포탑이 수 미터 바깥으로 튕겨나갈 정도의 처참한 피해를 입었고 비트만을 포함한 전차 승무원 전원이 즉사.
비트만의 죽음은 영국군 호커 타이푼 전폭기의 로켓 공격에 의한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파괴된 사진[9] 과 영국군의 작전계획서가 공개되면서 타이푼 공격설은 수십년 전에 이미 완벽한 낭설로 일축되었다. 자세한 사항은 위키피디아 비트만의 죽음 항목을 참고. 또한 전선에 자유 폴란드 기갑부대와 캐나다군 기갑부대도 있었기 때문에 이들에 의해 전사했다는 설도 있다.
17파운더의 위력은 판터의 주포보다 더 관통력이 높다고 한다. 다만 어디까지나 파이어플라이는 보다 작고 약한 포를 쓰도록 만든 초기형 셔먼을 개조한 것이기 때문에[10] 위력이 강해진 만큼 늘어난 반동을 완전히 흡수하기 힘들었고, 이에 더불어 17파운더 특유의 무식한 장약량에서 비롯한 크고 아름다운 포구 섬광으로 탄착 오차 수정이 어려워 초탄에 상대방을 거꾸러트리지 못하면 역으로 당할 위험이 높았다. 17파운더는 분리철갑탄을 써야 제대로 된 관통력이 나오고, 분리철갑탄은 명중률이 시궁창이라 별 위협이 아니였다는 주장도 있지만, 17파운더는 분리철갑탄이 아닌 피모철갑탄을 사용할 경우의 명중률은 준수한 편이고 관통력도 1500야드 거리에서 130mm의 균질 압연 장갑을 관통이 가능하다는 점만 봐도 틀린 말이다. 이게 감이 안 잡힌다면 1500야드(=1300m)내에서는 티거조차도 포탑과 포방패가 겹치는 부분(200mm)만 빼고 포탑과 차체 전 부분은 안전한 곳이 없다고 보면 된다. 애초에 파이어플라이가 명중률 시궁창인 분리철갑탄 하나만 믿고 튀어나온 '핵주먹 가진 장님'이였다면 독일군 전차병들에게 위협적인 대상으로 취급되지도, 최우선 제거대상으로 지목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명중률이 기존의 셔먼과 비교해서 많이 떨어지는 것 만큼은 사실이다. 독일군이 노획해서 실험한 결과 1000m 정지목표를 향해 발사한 포탄 10발 중 단 3,4발만이 목표에 명중했으며 그나마도 완전히 중앙에 맞은 경우는 단 1발이었다.[11] 알다시피 반동이 워낙 크고 발사할 때마다 주포와 조준장치에 워낙 무리가 가서 그렇기 때문.
게다가 안 그래도 궤도폭이 좁아 덩치와 무게에 비해 접지압이 높은 편이였던 셔먼이 17파운더의 장착으로 무게가 늘어나는 바람에 무려 56톤의 덩치를 자랑하는 티거를 접지압에서 이겨버리는 위업(...)을 달성해 버린 것. 셔먼조차 좁은 궤도 때문에 무게에 비해 높은 접지압으로 야지 기동시 빌빌거리며 경우에 따라선 훨씬 무거운 판터나 티거와 기동성이 비슷하다며 욕을 쳐먹던 판국이였으니...원판보다 무게가 더 늘어난 파이어플라이는 좁은 궤도덕에 고생한 셔먼보다 더한 개고생을 해야 했다.
생산된 파이어플라이들은 거의 모든 수량이 유럽 서부전선에 투입하였으며, 태평양 전선에는 사실상 배치되지 않았다. 97식 전차 등 일본군의 빈약한 전차들에게는 기존의 2파운더나 75mm 주포로도 충분하였기 때문. 사실 대전차 능력이 30년대 수준에서 멎었던 일본군 상대로는 '''M3 리의 37mm 부포로도 무쌍을 찍을 수 있었다. ''' 호주군이 영국으로부터 받은 비교적 단단한 마틸다나 발렌타인으로도 일본군을 상대 하기 충분했을 정도.
여담으로 75mm와 3인치 포면 독일군 전차를 계속 문제없이 때려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던 미군의 경우 판터와 티거들이 예상보다 강력하게 등장하자 17파운더 포를 영국에서 협찬받아 연구를 좀 해보긴 했으나, 떨어지는 명중율과 포구화염이 심하다는 등의 단점 때문에 사용하지 않았다. 애초에 셔먼에 76mm를 장착한 뒤 고속철갑탄을 사용할 경우 17파운더보다 약간 떨어지는 관통력 대신 17파운드보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명중률을 낼 수 있었다. 문제는 미리 대량 생산되어 실전에 투입된 17파운더와 달리 76mm용 고속철갑탄은 나중에 급히 생산하다보니 생산량이 너무 적어 실제 전장에서는 별로 유용하게 쓰이지 못했다는 것. 결국 미군은 75mm 포와 76mm 일반 철갑탄으로 계속 싸워야 했다. 정작 76mm를 보편화할 때 쯤엔 판터나 티거는 씨가 마르고 대보병전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원래 야포인 75mm가 더 쓸모가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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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먼은 유럽 전선에서 장갑이 비교적 얇은 편이라 저런 식으로 추가장갑을 달아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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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두 장은 독일군이 노획해서 쓰다가 버리고 간 것을 영국군이 조사하는 과정에서 찍힌 사진이고 마지막 사진은 독일 병기국이 노획한 파이어플라이의 성능 시험을 수행 중인 모습으로 추정된다.
기묘하게도 독일군에게 노획된 상태로 촬영된 사진이 많은데, 이는 이 '셔먼같지만 셔먼같지 않은' 기묘한 전차를 노획한 독일군이 이리저리 굴려보며 분석하는 과정에서 남긴 기록 사진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다 파이어플라이를 노획하더라도 포탄이나 예비부품 등을 구할 수단이 없던 독일군이 잠깐 굴리다 내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독일군에 의해 사용된 파이어플라이들 중 영국군 장갑차량 3대와 처칠 1대를 격파하고 보병 1개 소대를 패퇴시킨 경우도 있다고 한다.[12]
6. 문제점
마니아나 각종 매체에서의 인식은 원래의 셔먼에서 비록 방어력은 나아지지 않았지만 17파운더의 절륜한 관통력을 이용하여 독일 중전차들도 원거리에서 때려 눕히는 저격수 내지는 카운터 펀치의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 파이어플라이 운용병들의 증언을 모아보면 그나마 현실적인 전투 거리는 700m 이내였으며 원거리 포격용으로는 운용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한다.[13]
이는 극단적인 장약량으로 관통력을 늘인 17파운더 주포의 문제에 기인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알려진 명중률보다도 포구 화염 때문에, 승무원들은 주포 발사 시 눈을 감지 않으면 섬광에 의해 수초 간 시력을 잃었다고 하며 야맹증으로 고생해야 했다고 한다.[14] 또한 17파운더의 포구 화염은 종종 매복에 사용된 건초나 수풀에 화재를 일으키기에 매복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미군은 1000야드 거리에 24인치의 십자가를 그리고 주포 발사 후 십자가를 또렷하게 확인할 때까지의 시간을 측정하였다. 실험은 마른 땅과 젖은 땅에서 각각 이루어졌으며 평균치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 || 셔먼 파이어플라이 || 76mm셔먼 || 90mm[15]
|||| 전차장 || 3.4초 || 영향없음 || 2.2초||
|| 포수 || 3.5초 || 0.8초 || 3초 ||
장약량에 따른 또 다른 문제는 포연인데 장약량이 너무 많다 보니 불완전 연소하는 화약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일부는 차내로 유입되어 승무원들을 고문했다. 건조한 지형에서는 엄청난 흙먼지가 일어나 승무원들의 시야를 막았으며 반대로 자신의 위치는 즉시 노출시켰다. 따라서 파이어플라이는 한자리에서 서서 2탄 이상의 주포 발사가 어려웠고 계속 움직이며 사격해야 했다.미군 실험에서 머즐 블래스트는 6미터 거리까지 뿜어져 나왔다고 하며 그 안에서는 면화 보호구와 귀마개 없이는 반복 시험을 견딜 수 없다고 기록했다.
승무원의 눈을 멀게 하는 17파운더의 포구섬광과 화염, 먼지, 포연의 문제는 전차로써는 매우 치명적인 약점인데 일단 한발 쏘면 은엄폐는 강제로 풀리는데다[16] 장거리 전차전의 기본인 '''초탄 조준 발사 - 탄착점 확인&차탄 선택 및 장전 - 오차 수정 사격'''의 과정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매복-2,3탄 가량 사격-이동'''을 반복하는 이동 포대식으로 운용하게 되었다. 애시당초에 주포발사 후에는 목표 관측이 안 되니 미하일 비트만을 누가 죽였는지도 당당하게 주장 못하고 이러쿵 저러쿵 말이 오가는 것일 수도 있다.
초창기 Mk. IV 17파운터는 발사 직후 폐쇄기가 지나치게 빨리 열리면서 화염과 포연이 포탑 내부로 쏟아지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파이어플라이 승무원은 베레모 바깥으로 삐져나온 머리칼과 눈썹이 전부 타서 없어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이 때문에 2번이나 개량을 거쳐서 Mk. VII에 가서야 이 문제점이 해결된다.
기본형 포탑을 사용해서 포탑 용적이 너무나도 좁은 것도 문제였다. 17파운더가 사용한 76.2×583mm R 포탄은 길이가 미군의 90mm 포탄과 맞먹고 현용 APFSDS 탄보다 조금 짧은, 구경에 비해서 상당히 큰 탄이었는데, 이 때문에 폐쇄기를 측면으로 돌린 개량을 했음에도 장전이 상당히 어려워서 발사 속도가 떨어졌고, 포미가 너무나도 거대했던 탓에 포수는 부앙각 조절 핸들을 잡으면서 포수 조준경을 보려면 거의 아크로바트에 가까운 자세로 몸을 비비 꼬아야 했다. 당연히 속사 능력은 75mm/76mm급 셔먼에 비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미군이 파이어플라이를 채택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밖에 76mm 주포와 마찬가지로 고폭탄의 위력이 너무 떨어져 보병이나 토치카에 대한 제압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물론 전차는 적의 전차를 상대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지만 실전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당연히 보병과 토치카였는데, 고폭탄의 작약량이 75mm 고폭탄의 2/3에 불과해서[18] 보병과 토치카를 제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구축전차로서는 쓸만했지만 당시 교리대로 고폭탄을 통한 보병 지원도 해야 하는 일반적인 전차를 기준으로는 범용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위에 열거한 다양한 이유로 일선의 많은 전차병들은 파이어플라이가 지급되면 수령을 거부하고 75mm 주포의 오리지널 셔먼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19] 무엇보다도 파이어플라이에 배속된 경우 티거나 판터 등 적 중전차들과의 전투에 우선적으로 투입되었기 타 전차보다 더 위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선호 받았던 전차가 다름아닌 방어력이 가장 후달리는 경전차들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놈들의 경우엔 전투에 투입되는 일도 적고 정찰이나 적 보병들 정도만 상대하는 비교적 가벼운 임무에만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일단 맞추기만 하면 어떠한 전차든 고철로 만들 수 있는 펀치력과 순발력, 포탑 선회속도 차이를 활용하여 '''어떻게든 가까이 붙기만 하면''' 독일 중전차와도 나름 꿀리지 않고 싸울 수도 있었다고 한다.
7. 대전 종전 이후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차였지만, 파이어플라이는 압도적 생산력과 화력을 바탕으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군과 영연방군[20] 그리고 영국과 영연방의 지원을 받은 자유 체코슬로바키아군[21] 과 자유 폴란드군의 주력 전차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종전 이후 5년만에 일어난 6.25 전쟁 시점에서 이미 파이어플라이는 주력에서 밀려나 퇴역한 상황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미 2차 세계대전 중반부부터 시작된 Universal Tank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거뒀기 때문이었다.
당시 운영되던 순항전차/보병전차의 이원 체제의 문제점과 파이어플라이와 17파운더 주포의 태생적 한계를 느끼던 영국군은 순항전차와 보병전차를 통합한 새로운 플랫폼 체계와, 더욱더 강력하지만 뛰어난 안정성을 지닌 주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대전이 끝나기 직전, 보병전차의 뛰어난 장갑과 순항전차의 준수한 기동성, 셔먼 시리즈의 뛰어난 확장성을 두루 갖춘 새로운 전차 플랫폼이 완성되는데, 이것이 최초의 MBT라고 불리는 센추리온 전차이다.
센추리온 전차는 최초에는 17파운더를 장착했으나, 이후 개량을 통해 강력하고 안정적인 20파운더(83.4mm)를 탑재하게 됐다. 17파운더에서도 사용됐으나 강력한 화력을 상회하는 단점이 즐비하던 APDS 탄종이 20파운더 주포에서는 크게 개랑돼 상당히 안정적인 탄종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이는 20파운더 주포의 화력과 안정성을 동시에 획기적으로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센추리온 전차에 장착된 20파운더는 6.25 전쟁 당시 관통력과 명중률에서 M26 퍼싱이나 M47 패튼의 90mm 주포보다 탁월함을 입증했다.
이 20파운더와 센추리온 전차는 6.25 전쟁을 전후한 시기에 영국과 영연방 각국에 판매되었고, 네덜란드나 스웨덴 같은 다른 서구권 국가들에서도 구매해가며 파이어플라이를 완벽히 밀어냈다. 참전 영국군에 의해 6.25에 투입도 되었다.
더불어 파이어플라이를 오래 사용할 수도 있었을[22] 영국 내 본토방위 부대나, 경제적으로 곤란한 국가들을 위해 20파운더 주포 장착 채리어티어 전차가 개발돼 보급되는 바람에 파이어플라이의 가치는 1950년대 시점에선 완전히 소멸된다.[23]
이후 파이어플라이는 박물관으로 가거나, 사격 표적으로 소모되거나, 프랑스로 넘어가 90mm 혹은 105mm 저압포 장착 후 이스라엘에 판매되는 기묘한 운명을 겪게 된다.
다만 20파운더의 시대도 오래 가지는 못했는데, 종전 직후 등장한 소련의 IS-3와, 헝가리 혁명 당시 입수하게 된 소련의 새 전차인 T-54/T-55를 본 영국군과 로열 오드넌스 사는 20파운더의 한계를 느끼며 더욱 강력하고 더욱 안정적인 새로운 전차포 개발에 착수하게 됐다. 그리고 그 결과 1959년에 냉전기는 물론 2017년 현재까지도 서구권 국가들에게 널리 쓰이고 있는 베스트 셀러 105mm 로열 오드넌스 L7이 등장하게 됐다.
이탈리아는 2차대전중 연합군이 되어 받은것과 전후에 남겨진 일부 파이어플라이를 수습하여 운용했었다.
8. 매체에서의 셔먼 파이어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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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패치부터 추가된 영국 중형전차 영국 2차 구축전차 트리로 이어지는 6티어 전차로 나왔다.모델은 IC 하이브리드 헐 이다. 프리미엄 전차로 셔먼 VC 파이어 플라이가 나온다. 동티어 대비 강력한 위력의 포를 지녔으나 체력과 장갑은 매우 미묘하며 속도가 중형전차 중 느린 편이다.하지만 6티어 최고급 주포인 17파운더를 달아서 평관 171mm이라는 동티어 중형전차 중에서 최고의 관통력과 준수한 명중률을[24] 가지고 있으며 고증에 맞게 기존 셔먼의 전면 기관총구 위치에 탄약고가 있지만 시스템상 구현하지못한 전차 포에따른 자욱한 포연이 없다.
9.5패치부터 추가된 영국 중형전차 영국 2차 구축전차 트리로 이어지는 6티어 전차로 나왔다.모델은 IC 하이브리드 헐 이다. 프리미엄 전차로 셔먼 VC 파이어 플라이가 나온다. 동티어 대비 강력한 위력의 포를 지녔으나 체력과 장갑은 매우 미묘하며 속도가 중형전차 중 느린 편이다.하지만 6티어 최고급 주포인 17파운더를 달아서 평관 171mm이라는 동티어 중형전차 중에서 최고의 관통력과 준수한 명중률을[24] 가지고 있으며 고증에 맞게 기존 셔먼의 전면 기관총구 위치에 탄약고가 있지만 시스템상 구현하지못한 전차 포에따른 자욱한 포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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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와 IC파이어플라이가 3랭크의 전차로 나온다. 한발 쏘면 위치 다들키는 섬광과 포연, 셔먼 특유의 수직 안정기의 부재와 17파운더의 무게가 맞물려 기동사격은 포기해야하며 맨날 만나는 티거와 판터는 나를 한방에 죽이는데 난 못죽인다는 불공평이 있다. B.R이 낮아지는 패치로 티거를 잘안보게 되었으며 행여나 보더라도 관통력 상향으로 191mm에 달해 티타임을 주던 말던 뚫어 재낄수 있지만, 모듈제 게임의 특성상 뚫린다고 꼭 죽는건 아니어서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여전히 APDS는 부재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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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C와 IC파이어플라이가 3랭크의 전차로 나온다. 한발 쏘면 위치 다들키는 섬광과 포연, 셔먼 특유의 수직 안정기의 부재와 17파운더의 무게가 맞물려 기동사격은 포기해야하며 맨날 만나는 티거와 판터는 나를 한방에 죽이는데 난 못죽인다는 불공평이 있다. B.R이 낮아지는 패치로 티거를 잘안보게 되었으며 행여나 보더라도 관통력 상향으로 191mm에 달해 티타임을 주던 말던 뚫어 재낄수 있지만, 모듈제 게임의 특성상 뚫린다고 꼭 죽는건 아니어서 여전히 불안하다. 하지만 여전히 APDS는 부재상태
- Men of War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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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마찬가지로 영국군 유닛이다. 주포의 사정거리가 매우 길고 데미지도 높으며 튤립 로켓 두발을 발사해 적 전차를 상태이상에 빠뜨릴수 있다. 하지만 재장전과 포탑의 회전속도가 절망적으로 느려 실용성이 그닥 높진 않다. 다만 영국군의 몇몇 지휘관은 전차 하나를 지휘 전차로 만들어 주변 유닛에게 버프를 주는 스킬이 있는데 이 지휘 전차의 버프를 받는 파이어플라이는 꽤 쓸만해지게 된다.
1과 마찬가지로 영국군 유닛이다. 주포의 사정거리가 매우 길고 데미지도 높으며 튤립 로켓 두발을 발사해 적 전차를 상태이상에 빠뜨릴수 있다. 하지만 재장전과 포탑의 회전속도가 절망적으로 느려 실용성이 그닥 높진 않다. 다만 영국군의 몇몇 지휘관은 전차 하나를 지휘 전차로 만들어 주변 유닛에게 버프를 주는 스킬이 있는데 이 지휘 전차의 버프를 받는 파이어플라이는 꽤 쓸만해지게 된다.
헬즈 하이웨이에서 제101공수사단을 지원하는 영국군 기갑부대로 등장한다. 중간중간에 타고 플레이할 수 있는 미션이 나온다.
1성 카드인 파이어플라이와 5성 카드인 강철의 파이어플라이로 등장. 다만 해석 전후가 설정상 다른 모델인 셔먼과 달리 파이어플라이와 강철의 파이어플라이는 짬밥 차이를 빼면 동일인, 아니 동일 전차이다. 파이어플라이의 스킬은 격노 I, 강철의 파이어플라이의 스킬은 억압 IV이다.
간간히 카메오 격으로 출연한다. 주로 티거 전차가 무서워하는 상대 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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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더스 대학 부속 고교 소속으로 등장한다. 니시즈미 미호는 1차전에서는 선더스가 파이어플라이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나오미가 탑승하는 1량이 출전한다. 영국에서 운영했던 전차라 세인트 글로리아나 여학원이 운영해야 정상일 것 같지만 일단 차체로 쓰인 셔먼이 미국제라 미국을 모티브로 한 선더스에서 운영하는 모양.
선더스 대학 부속 고교 소속으로 등장한다. 니시즈미 미호는 1차전에서는 선더스가 파이어플라이는 쓰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나오미가 탑승하는 1량이 출전한다. 영국에서 운영했던 전차라 세인트 글로리아나 여학원이 운영해야 정상일 것 같지만 일단 차체로 쓰인 셔먼이 미국제라 미국을 모티브로 한 선더스에서 운영하는 모양.
9. 둘러보기
[1] 각진 용접 차체를 기본으로 주물 제작된 차체 전면부를 이어 붙인 특이한 형태의 차량.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차체 전부를 제작할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규모는 가지고 있는' 주물 공장들에게 차체 전면부만을 주물로 제작하게끔 하고 다른 공장에서 만들에낸 차체와 결합하는 방식으로 생산이 이뤄졌다고 한다.[2] 영국군의 셔먼 분류는 M4->셔먼 I, M4A1-> 셔먼 II 식으로 가고, 여기에 무장에 따라 알파벳기호가 추가 된다. 75mm 단포신 포는 기호가 없고, 76mm장포신 포는 A, 105mm포는 B, 그리고 17파운드 포는 '''C'''를 붙인다.[3] 정확히는 17파운더의 문제점으로 그렇게 밖에 쓸 수 없었다.[4] 파이어플라이뿐만이 아닌 영연방 국가가 사용하는 모든 셔먼의 특징이다.[5] 17파운더는 7,5cm KwK 42와 8,8cm KwK 36급의 위력이 나오는 물건이다. 더 무거운게 당연하다. 말이 같은 구경이지 관통력만 따져도 철갑탄 기준으로 PaK 40의 1.5배, ZiS-3의 2배 가까이 나오는 흉악한 물건이다.[6] 챌린저는 크롬웰 부대에만 배치되었다고 하며,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배제되고, 항구건설 후 투입되었다.[7] 여담으로 퍼니전차를 필두로 한 상륙작전 준비도 영국이 더욱 철저했다.[8] 일부 역사가들은 래들리-월터스 소령의 파이어플라이가 잡았다는 가설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도 조 에킨스설보다 현실적이고 피탄 위치도 더 정확하다. 조 에킨스는 약 1km에서 공격했으나 레들리 월터스는 500m에서 아예 매복까지 했기 때문. 후술할 명중률을 생각하면 레들리 월터스가 더욱 신빙성이 높다.[9] 당시 프랑스인 농부가 찍어두고 홀로 간직하던 사진이 시간이 한참 지난 70년대에 공개되었다.[10] 미군도 티거가 출현하기 전인 1941년에 이미 76mm M1 대전차포를 같은 포탑에 장비하여 M4A1(76)W라는 제식명으로 채용한 바 있지만, 자신들의 기준으로는 포탑 용적이 너무 비좁아서 전투 지속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소량 생산에 그쳤다. 하지만 당장 티거를 잡아야 살아남는 영국의 입장에서는 전투 지속 능력이니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였고 새로 대형 포탑을 생산할 여유도 적었으므로 기존 포탑에 장착하는 계획안이 강행되었다.[11] 출처 Tank Firefly. [12] 출처 Tank Firefly.[13] 포구 화염 문제 뿐 아니라 초탄 사격 이후로는 동급 대전차포 대비 괴랄한 반동 때문에 포구 진동에 의한 분산을 해결하기 어려웠기 때문으로 추정.[14] 당시 독일군만이 관측 장비에 눈부심 방지 필터를 채용했었다.[15] 당시 M26 퍼싱은 개발되지 않아서 대전차포 형태로 측정하였다. 지면과 가깝고 충격이 그대로 전달되어 불리했다는 이야기.[16] 오죽하면 별명이 반딧불이다.[17] 같은 76mm지만 셔먼과 울버린의 주포는 다르다.[18] 큰 차이는 아니지만 미군의 76mm 셔먼, 울버린[17] 과 비교시 작약량은 오히려 약간 더 많았다.[19] 오히려 파이어플라이를 타면 4호 전차나 3호 돌격포 등 75mm나 미제 76mm로도 격파 가능한 전차들을 상대하기가 기존의 셔먼이나 크롬웰보다도 더 어려워졌다고 한다. 실제로 4호를 발견하고 먼저 쐈는데 평범한 셔먼이라면 맞출 수 있었는데 파이어플라이라 포탄이 빗나가 반격 당한 경우도 심심찮게 있었다.[20] 당시 호주군, 캐나다군, 뉴질랜드군, 남아프리카군 등 영연방 각국의 군대도 파이어플라이를 이용했다.[21] 체코슬로바키아 제 1기갑여단이 셔먼 파이어플라이를 받아서 썼다.[22] 원래 노후 군무기는 퇴역 직후에는 치장물자로 전환해 차고에서 예비군용으로 묵혀두는 경우도 많고, 혹은 해외, 특히 자신들과 밀접한 관계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국가들로 수출하는 경우도 많다. 영국 같은 경우는 굳이 비싸고 좋은 장비가 필요 없는 본토 방위 부대들에 돌리거나 영연방이나 유럽 국가들에 떨이로 넘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23] 사실 그만큼 소련 기갑 세력에 대한 공포가 엄청났다는 것이란 얘기도 된다. 즉, 파이어플라이가 빠르게 완전히 밀려난 것은 성능 문제 뿐만 아니라, 강력한 소련의 중형전차들과 중전차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20파운더가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인한 것도 있다는 것이다.[24] 일반적인 편견과 달리 APCBC의 명중률은 그리 나쁘지 않다. 17파운더의 악명높은 명중률은 어디까지나 APDS를 사용할 경우의 이야기이며 저 관통력은 APCBC의 관통력이므로 고증오류는 아니다. 만약 APDS로 나왔으면 관통력이 250mm가 넘어야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