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릉
'''九里 東九陵 (구리 동구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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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에 위치해 있는 조선 왕조 왕실의 왕릉. (서울을 기준으로)"동쪽에 있는 9개의 능(陵)"이라는 뜻이다. 사적 제19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오릉과 마찬가지로 2009년 2월 27일 유네스코의 세계 문화 유산으로 공식 등재되었다.[1]
조선시대를 통하여 총 9개의 능이 모여 족분을 이루는 곳이다.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부터 문조의 수릉(綏陵)까지 총 9개의 릉이 있는 곳이다.
대한민국 명당터 중에 상당한 네임드로, 명당만 쓴다는 왕릉 9개가 한곳에 모여있는 걸로 설명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자춘의 묏자리 야사처럼 이곳도 무학대사가 직접 터를 발견하고 정했다는 야사가 있다. 더불어서 이성계 입장으로도 아버지의 묏자리 → 한양 천도 → 자기 묏자리의 풍수지리 삼단 테크를 완성하고 서울로 돌아가면서 근처 고개를 넘다가 "이제 근심(憂)을 잊게(忘) 되었다"라고 하여 그 고개가 망우(忘憂) 고개가 되었다는 야사도 있다.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고개는 새로 낸 길이고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북부간선도로 신내동에서 구리시계로 넘어가는 길목이다.
다만 기록상으로는 이방원이 하륜[2] 을 시켜 묏자리를 알아보라고 하여 양주에 있는 명당을 찾아 그곳에 묻었다고 한다.
현재 문화재청이 관리 감독하고 있으며 24세이상부터 65세까지는 1,000원의 입장료를 받고있다. 구리시민은 인근에 살고 있으므로 지역 할인을 받아 5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으며, 주민등록상 만 24세 미만이면 신분증 제시하고 무료 입장 가능하다.
뱀발로, 동구릉 앞 버스 정류장 명칭은 "우리 나라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이다. 진짜로. BIS, 즉 경기도 시내버스 전산망에도 '''우리 나라 최대 왕릉군인 동구릉'''(22072/22078)으로 등록되어 있다. 원래는 그냥 동구릉 이었는데, 어느샌가 바뀌었다. 덕분에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정류장 안내 음성을 들으면 아스트랄함을 느낄 수 있다.
2. 역사
9개의 능(陵), 정확히는 7명의 왕(추존 왕 포함)과 10명의 왕후(추존 왕후 포함)가 안장되어 있으며, 봉분(능침)은 총 16기에 달한다. 그렇게 많은 능으로 이루어진 우리 나라 최대 규모의 왕릉군인 만큼, 조성 역사도 굉장히 길다. 1408년부터 시작되어 1904년까지 무려 496년동안 지속된 대역사인데, 조선왕조가 1392년에 창건되어 1910년에 멸망한 것을 생각해 보면 조선 왕조의 역사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대략적인 동구릉 조성역사는 아래와 같다.
- 1408년(태종 8년) 태조 안장, 건원릉(建元陵) 조성. 단릉(單陵)의 형태
- 1452년(단종 즉위년) 문종 안장, 현릉(顯陵) 조성
1513년(중종 8년) 현덕왕후의 능을 천장(이장)해와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으로 조성 - 1600년(선조 33년) 의인왕후 안장, 유릉(裕陵) 조성
1630년(인조 8년) 건원릉 서쪽 산줄기(지금 헌종의 경릉 자리)에 있던 선조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천장(이장)하고, 유릉(裕陵)과 합하여 목릉(穆陵)이라고 함
1632년(인조 10년) 선조의 계비 인목왕후를 지금의 자리에 안장하고 혜릉(惠陵)이라고 칭하였으나, 목릉과 합하여 능호를 붙이고, 지금과 같은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태가 됨 - 1674년(숙종 즉위년) 현종 안장, 숭릉(崇陵) 조성
1684년(숙종 10년) 명성왕후 안장, 쌍릉으로 조성 - 1688년(숙종 14년)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 안장, 휘릉(徽陵)을 조성. 단릉(單陵)의 형태
- 1718년(숙종 44년) 경종의 세자빈 심씨를 안장
1720년(경종 즉위년) 경종이 즉위후 단의왕후로 추숭하고 능호를 혜릉(惠陵)이라 함. 단릉(單陵)의 형태. - 1776년(정조 즉위년) 영조 안장, 원릉(元陵) 조성
1805년(순조 5년)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를 안장, 쌍릉(雙陵)으로 조성 - 1843년(헌종 9년) 헌종의 정비인 효현성황후 안장하고 경릉(景陵)으로 조성
1849년(철종 즉위년) 헌종을 안장하고 조성
1904년(광무 8년) 헌종의 계비인 효정성황후를 안장하고 삼연릉(三延陵)으로 조성 - 1855년(철종 6년) 용마산 아래에 있던 익종(효명세자, 문조)의 수릉(綏陵)을 지금의 자리로 천장(이장)
1890년(고종 27년) 신정익황후를 안장하고 합장릉(合葬陵)으로 조성
3. 왕릉(王陵)
3.1. 건원릉(健元陵)/단릉
조선 왕조의 창업자 태조 고황제[A] 의 능이다. 자세한 내용은 건원릉 해당 문서로.
3.2. 현릉(顯陵)/동원이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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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5대 임금인 문종과 현덕왕후가 안장되어 있는 능이다. 현덕 왕후는 단종이 폐위되고 추폐되었다가, 중종 때에 복위되었는데 이때 문종의 옆으로 이장되었다. 이 때 이장되면서 문종과 현덕 왕후의 무덤을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다른 언덕에 각각 자리잡게 하는 동원이강릉의 형태로 조성하였다. 여담으로 고려 태조의 현릉과 한자까지 능호가 같다.
3.3. 목릉(穆陵)/동원이강릉
조선 왕조 14대 임금인 선조와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 세 사람의 능이다.
자세한 내용은 목릉 해당 문서로.
3.4. 휘릉(徽陵)/단릉
조선 왕조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이다
3.5. 숭릉(崇陵)/쌍릉
조선 왕조 18대 현종과 정비 명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청나라의 11대 황제 덕종 광서제의 황릉과 능호가 같다. 이 숭릉만의 특징이라면 정자각이 특이하게도 맞배지붕이 아닌 팔작지붕이라는 것이 있다.
3.6. 혜릉(惠陵)/단릉
조선 왕조 20대 경종의 정비 단의왕후 심씨의 능이다. 청나라의 10대 황제 목종 동치제의 황릉과 능호가 같다.
3.7. 원릉(元陵)/쌍릉
조선 왕조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능이다. 참고로 이 곳은 '''조선 왕조 역사상 유일하게 파묘 자리를 다시 쓴 왕릉'''이다. 본래는 효종의 영릉이 이 곳에 있었는데 왕릉 석물에 금이 가고 파손되는 사태가 계속 발생하자 현종 14년인 1673년에 지금의 자리(경기도 여주시 능서면)로 천장했는데, 손자인 정조가 이 곳에 자신의 할아버지(영조)를 안장한 것이다. 참고로 일반 백성들조차도 자신의 조상들은 파묘(破墓) 자리에 모시는 일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정조의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영조의 정비였던 정성왕후 서씨는 서오릉에 있는 홍릉(弘陵)에 홀로 안장되어 있다.
그러나 정조실록 즉위년 4월 11일자의 기사에 이와 관련된 내용이 있는데 정존겸이 원릉의 자리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정조도 대략 마음에 헤아려지는 바가 있었다며 동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원릉의 자리에 대해 대신과 비변사 당상들에게도 두루 물어 이의가 없자 능을 결정하였다는 언급이 있는등 정조의 복수라고 보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듯하다.
3.8. 경릉(景陵)/삼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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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24대 헌종성황제[*A 대한제국때 추존황제로 되었다.]과 정비 효현성황후[*B 대한제국때 추존 황후 되었다] 김씨, 계비 효정성황후[*B 대한제국때 추존 황후 되었다] 홍씨의 능.
사진은 봉문 뒷편에서 바라본 모습이므로 제일 오른쪽이 헌종릉, 가운데가 효현왕후릉, 제일 왼쪽이 효정왕후릉이다.
경릉은 조선 시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삼연릉[3] 이다. 사람들은 흔히 가운데가 왕의 봉분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정자각에서 바라볼 때 제일 왼쪽부터 헌종, 효현 왕후, 효정 왕후의 능이다. 이는 유교식 장례 예법에서 서쪽을 높게 치기 때문이다. 무덤이 남향하므로, 아래에서 바라보기에 제일 왼쪽이 제일 서쪽이 되어 가장 높은 자리가 된다. 왕의 무덤이 가운데 있다면, 왕릉의 서쪽에 있는 왕비릉이 왕보다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비슷하게 종묘에서도 왕의 위패는 위계 순으로 서쪽부터 동쪽으로 배열한다.
현재는 접근을 통제하는 울타리가 상당히 아래쪽에 쳐져 있어서 어지간해서는 삼연릉을 식별하기가 쉽지 않다.
3.9. 수릉(綏陵)/합장릉
조선 왕조 23대 순조의 세자 추존 왕 문조익황제[*A 대한제국때 추존황제로 되었다.]와 비 신정익황후 조씨[*B 대한제국때 추존 황후 되었다]의 능이다.
4. 기타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타고 가려면 노원구[4] , 동대문구, 중랑구, 광진구 등지에서 경기 버스인 10-5, 88, 202, 1번, 1-1번, 1-2번, 92번 등을 타면 된다.[5] 도심지에서 보기 힘든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고, 소나무숲이 울창해서 그저 산책, 산림욕이 목적인 사람들도 많이 온다. 몇 년후엔 서울 지하철 8호선이 동구릉역으로 코앞에 개통한다. 사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많은 왕들의 릉이 있는 곳 치고는 지역주민들이나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았었는데 지하철역 개통으로 인지도는 물론이고 (원래도 접근성이 그렇게 나쁘진 않았지만) 더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5. 관련 문서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UNESCO World Culture Herit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