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1차 암살미수사건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9장
- 미치하라 카츠미 코믹스 은하영웅전설 70~72화
- 은하영웅전설 OVA 25~26화
- 은하영웅전설 Die Neue These 23화
- 시기 : 우주력 797년, 제국력 488년 표준력 9월 9일
2. 발단
SE 797년, RC 488년에 립슈타트 전역에서 승리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은, 립슈타트 내전의 전후처리로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의 식전용 홀에서[1] 립슈타트 전역의 주요 주모자들을 처벌함과 동시에 패장들을 처분하거나 등용하기 위해 간소한 군법회의를 열었다. 다만 립슈타트 귀족연합의 주요 인물 대부분이 내전 중 사망하거나 자살하여 남은 건 사후 처리뿐이었고, 이 과정에서 인재라고 평가한 장성에 대해서는 적군이었더라도 과감하게 등용했다. 귀족연합군의 주요 지휘관이었던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 중장이 그 예로, 라인하르트는 체포되어 수갑을 차고 홀에 출두한 그를 '''즉각 수갑을 풀어주고 휘하 제독들 반열에 서도록 지시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장성들을 다소 놀라게 했던 점은, 언제나 라인하르트 옆에 서 있던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자신들과 같은 곳에 서 있으며 또한 다른 장성들처럼 참가하기 전에 '''무장을 해제'''하고 빈 손으로 참가했다는 것이었다. 원래는 혼자 블래스터를 착용한 채 참석하도록 특별히 배려받았다.
베스터란트 학살사건으로 라인하르트와 카르히아이스 사이에 다툼이 있었고,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꾸준하게 제기하던 2인자 견제론을 라인하르트가 채용한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라인하르트 스스로도 이렇게 많은 인재가 모이니 '''굳이 키르히아이스 한 사람에게만 의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도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이 시점에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 상급대장을 놓친 것 빼고는 립슈타트 전역 관련 문제가 일소되었다는 점도 긴장의 끈을 늦추게 만들었다.
3. 전개
사후처리라고 해도 문벌귀족 주요 인물 대부분은 죽었고, 라인하르트가 눈독들일 만한 인재는 동맹으로 망명한 빌리바르트 요아힘 폰 메르카츠와 요새에 남아 있던 아달베르트 폰 파렌하이트정도밖에 없으니, 파렌하이트를 휘하 제독으로 영입하고 나자 남은 처리 사항이랄 만한 것도 없었다. '''립슈타트 귀족연합 맹주인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의 시신과 함깨 출두한 안스바흐 준장을 뺀다면 말이다.'''
한때 황제의 권력마저 탐내며 은하제국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던 대귀족의 시신이 특수 케이스에 넣어진 채로 식장에 나타나자 식장은 소란스러워졌다. 참석자들은 군인의 예장을 갖추고 케이스 속에 누워 있는, 한때 제국 최대의 귀족이었던 남자의 시신을 감개무량한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안스바흐 준장이 영구를 지키고 있었다.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의 심복으로 알려진 이 사나이는 메인홀 입구에서 무표정한 젊은 패자에게 거수경례를 해 보이곤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아주 희미한, 그러면서도 명백한 냉소가 참가자들 사이에서 새어나왔다. 그것은 주군의 시체를 공물로 삼아 항복을 신청하는 비열한 사나이에 대한 무인다운 직접적 반감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 냉소는 무형의 채찍이 되어 안스바흐의 온몸을 때렸지만, 아무 느낌 없이 안스바흐는 라인하르트 앞에 이르자 다시 한 번 거수경례를 올린 다음 버튼을 눌러 케이스 뚜껑을 열어 보였다. 패사한 주군의 유체를 승자에게 확인시키기 위한 동작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브라운슈바이크는 오로지 제국 최대의 대귀족이라는 지위와 황실과의 연줄로 인해 사람이 모여들었을 뿐이지 인망은 보잘 것 없어서, 수많은 브라운슈바이크의 부하들이 라인하르트 쪽으로 귀순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귀족연합군 측 지휘관이던 파렌하이트 제독은 방금 귀순했고, 립슈타트 전역 시작과 동시에 공작의 심복이었던 아르투르 폰 슈트라이트는 버림받아 오딘에 남았고, 안톤 페르너는 라인하르트에게 출두하여 귀순했다.
4. 반전
그러나 다음 순간, 안스바흐는 주군의 유체에 팔을 내미는가 싶더니 군복의 단추를 풀고는 그 속에서 원통과 입방체를 조립한 기괴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백병전에 사용하는 강력한 소형 화포인 핸드 캐논이었다. 안스바흐는 시체의 내장을 다 꺼내고 그 자리에 핸드 캐논을 넣어 두었던 것이다.
역전의 용장들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처음엔 모두 망연자실했다. 라인하르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음에 닥칠 일은 짐작하면서도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포구는 금발의 젊은 개선장군인 라인하르트를 겨누었다.
OVA에서는 옆에 서있던 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이 즉각 라인하르트 앞으로 달려나가서 방패를 자처했으나, 장갑차도 일격에 파괴할 수 있는 핸드 캐논 포탄이 발사된다면 시체만 늘어날 뿐이다.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기 직전, 지크프리트 키르히아이스가 안스바흐를 덮쳤고 조준이 어긋나 발사된 포탄은 홀의 한쪽 벽면을 파괴했으며 잔해들이 마구 떨어져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로엔그람 후작, 주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님의 원수를 갚겠노라."[2]
직후 안스바흐와 키르히아이스의 격투전에서는 키르히아이스가 우세했다. 젊음, 기민함, 체력에서 모두 상대보다 윗줄인데다가 안스바흐는 라인하르트를 암살하기 위해 모든 신경을 쏟고있던 통에 별안간 옆에서 기습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키르히아이스는 곧 안스바흐의 팔목을 붙잡고 바닥에 찍어 눌렀다. 이 시점에서 상황이 종료되는가 싶었다.[3]
그러나 안스바흐는 신중하고 치밀한 성격의 인물이었고, 당연히 이런 불상사에 대비하여 다른 무장을 은닉하고 있었다. 안스바흐는 몸싸움 중에 자유로웠던 한 손을 뻗어 그 손등을 키르히아이스의 가슴에 갖다댔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은백색의 빛이 키르히아이스의 등에서 내뿜어졌다. 안스바흐는 반지로 위장한 레이저 총도 준비했던 것이다. 가슴 한가운데에 살인 광선을 맞은 키르히아이스는 타버릴 것 같은 고통을 느꼈으나 암살자의 팔목을 끝내 놓지 않았다. 재차 반지가 불길하게 빛을 뿜으면서 키르히아이스의 경동맥을 관통했다. 하프의 현을 몇 가닥 묶어 자르는 듯한 이상한 소리와 함께 키르히아이스의 목으로부터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와 대리석 바닥을 적셨다. 이게 치명상이었다.
이렇게 키르히아이스가 치명상을 입으며 쓰러지자, 주위의 다른 장성들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움직여 안스바흐를 제압했다. 구속당한 안스바흐는 이렇게 외친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칼 구스타프 켐프가 욕설과 같이 안스바흐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러나 안스바흐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부족한 소관이 함께 가겠습니다..."라고 말한 안스바흐는 입 안에 숨겨둔 독약 캡슐을 깨물어 자살한다.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상황을 알아채고 안스바흐의 턱을 꽉 잡아 자결하지 못하게 막았으나, 이미 이로 캡슐을 씹은 다음이었고 식도로 넘어가지 않도록 목을 잡았으나 그것도 이미 늦어서 눈이 뒤집히며[6] 서서히 숨이 끊어지고 있었기에 필사적으로 자결하려는 안스바흐를 막지는 못했다."브라운슈바이크 공작님, 용서하십시오. 이 무능한 자는 맹세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금발 애송이가 지옥에 떨어지려면 아직도 몇 년은 더 있어야겠군요......"[4]
[5]
그리고 '''라인하르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
5. 결말
망연자실한 상태로, 라인하르트는 비틀거리듯이 키르히아이스에게 걸어갔다. 암살자도, 아우성거리는 부하들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던 벗이 피바다 속에 쓰러진 것만 보였을 뿐. 겨우 키르히아이스의 손을 잡은 라인하르트가 입을 열었다.[7]
친우의 죽음으로 정신줄을 놓은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의 시체를 감싸고 흐느끼자, 보다못한 미터마이어가 "그만하십시오.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이젠 편안하게 잠들도록......."이라고 말하지만, 라인하르트는 미터마이어를 노려보며 아래와 같이 대답했다."키르히아이스......."
"라인하르트 님...... 무사하셨군요."
예복이 피로 물드는 것도 아랑곳않은 채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잡은 금발 청년은 키르히아이스의 시야에서 이미 흐릿하게 보였다.
'이것이 죽는다는 것이구나.'
오감이 멀어지면서 세상이 급격히 좁게, 어둡게 변해간다. 보고 싶은 것이 보이지 않았으며, 듣고 싶은 것이 들리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공포는 없었다. 그의 두려움은 오히려 여생을 라인하르트와 함께 살아갈 수 없으리라는 그 가능성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도, 모든 생명력이 빠져나가기 전에 해야만 할 말이 있었다.
"이제 저는 라인하르트 님께 도움이 될 수 없겠군요....... 용서하십시오."
"멍청한 소리......."
라인하르트는 절규하려 했으나 겨우 새어 나온 소리는 작고도 약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젊은이가, 나면서부터 남을 압도할 정도로 강렬한 매력을 지닌 젊은이가 이 순간만큼은 벽에 기대지 않고서는 걸을 수도 없는 무력한 아기처럼 보였다.
"이제 곧 의사가 올 거야. 이 정도 부상은 금방 나아. 나으면 누님께 가서 승리 보고를 해야지. 응? 그러자."
"라인하르트 님......."
"의사가 올 때까지 말하지 마라."
"우주를 손에 넣으십시오."
"......그래."
"그리고 안네로제 님께 전해 주십시오. 지크는 옛 맹세를 지켰다고......."
"싫다."
금발 청년은 색을 잃은 입술을 떨었다.
"나는 그런 말은 전하지 않겠어. 네가 전하란 말이다. 네가 직접. 나는 전하지 않을 거다. 알았나? 함께 누님께 가는 거야."
키르히아이스는 어렴풋이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그 미소가 사라졌을 때, 금발 청년은 한 순간의 전율과 함께 자신의 반신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르히아이스...... 대답해라, 키르히아이스. 왜 아무 말도 않는 거냐?!"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338~340
이 대사를 통해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에게 얼마나 기대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구도 라인하르트에게 이만한 신임을 얻은 적이 없었다."거짓말하지 마라, 미터마이어. 경은 거짓말을 하고 있어. 키르히아이스가, 나를 놔두고 죽을 리가 없단 말이다."[8]
6. 사후 처리
사망한 키르히아이스의 유체는 즉각 특수 케이스에 저온 보존처리되었다. 회한으로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안게 된 라인하르트는 그 곁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라인하르트는 식사도 수면도 완전히 팽개치다시피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있었다.
전승 축하식에 발생한 참극에 대해 제독들은 엄중한 함구령을 내렸지만 이미 사흘이나 지난 상황. 언제까지고 침묵을 지킬 수 없는 노릇이었고 잘못하다 이 사실이 오딘에 알려지면 라인하르트의 뒤통수를 칠 기회를 노리는 제국재상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에 의해 라인하르트 원수부가 통째로 숙청당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제독들은 뾰족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고, 결국 참모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대장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 있던 장군들 모두 그 오베르슈타인에게 의지해야 하냐면서 무척 불쾌한 반응을 보였고 차마 손수 나서서 도와달라고 하지도 못하고 서로 머뭇거렸다. 그러던 중 오베르슈타인 대장이 왔다는 위병의 보고에 다들 참 알아서도 온다고 비아냥거렸다. 이렇게 때마침 회의장으로 들어온 오베르슈타인이 가장 먼저 한다는 소리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여태 아무것도 못하냐고 한심하다는듯이 일행들을 비아냥거리는 거였다. 다들 울컥했고 로이엔탈은 '''"흥, 지금 우린 중재할 2인자도 없으니 아무 것도 못 하는 거 아니오?"''' 라고 말하면서 네가 그리도 외치던 2인자 무용론 덕분에 키르히아이스 상급대장이 죽은 거 아니냐고 은근히 칼날같은 말로 오베르슈타인을 깠다. 이를 무표정하게 보던 메크링거 중장이 "그러는 오베르슈타인 대장께선 뭔가 비책이 있습니까?"라고 말하자 오베르슈타인은 즉시 안네로제 폰 그뤼네발트 백작부인에게 부탁을 드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다른 제독들도 한 것이었다. 다만 실행하지 못했던 것은 그저 키르히아이스의 죽음을 직접 안네로제에게 말하고자 나설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오베르슈타인은 그 일을 자신이 맡고 다른 제독들은 키르히아이스를 죽인 범인을 색출해달라고 요구했다.
난데없이 키르히아이스를 죽인 범인을 찾으라는 요구에 다른 제독들은 제대로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오베르슈타인은 로엔그람 후작은 키르히아이스가 '고작' 안스바흐 같은 자에게 허무하게 죽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마음속으로 거물 범인을 찾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제독들이 할 일은 그 거물 범인,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공작에게 라인하르트 암살교사 혐의를 덧씌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제서야 의미를 파악한 다른 제독들은 감탄 아닌 비아냥 섞인 반응을 보였다.
미터마이어는 그야말로 아니꼽다는 얼굴로 "역시 경을 적으로 돌리면 안되겠어. 도저히 당할 수 없으니까. 그야말로 무서운 걸."이란 말을 하는데 OVA 애니를 보면 그야말로 표정이 '그래 너 잘났다. 이 색햐'라는듯 대놓고 비아냥과 혐오감이 섞인 얼굴을 하며 말한다. 하지만 로이엔탈은 "그래, 경의 말이 맞다. 리히텐라데 그 능구렁이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우리야말로 교수대에 목이 매달릴 것이다. 당장 서둘러야 한다."면서 그 즉시 휘하 함대 출동명령을 내리며 다른 장군들도 지체할 것 없이 즉각 행동에 나섰다.
가이에스부르크 요새에는 에르네스트 메크링거 중장,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 대장, 코르넬리우스 루츠 중장만 남고, 나머지 제독들은 20,000척에 달하는 고속순항함대를 이끌고 제도 오딘으로 급행했다. 가이에스부르크에서 오딘으로 갈 때 통상 항행으로는 20일이 걸리지만, 언젠가 오딘에 도착만 하면 된다는 미터마이어의 말대로 탈락자는 버려두고 간 결과, 함대는 출발했을 때의 15%도 안 되는 3,000척까지 줄었지만 14일 만에 오딘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9]
오딘에 도착한 제국함대는 뮐러 함대가 800척으로 위성궤도를 장악하고, 나머지 함대는 대기권에 돌입했다. 워낙 많은 함선이 착륙한 나머지 우주항의 관제 능력을 초과하여 일부 함대는 호수에 착수해야 했다. 당시 황궁 노이에 상수시 일대는 한밤중이었는데, 미터마이어는 즉각 재상부로 달려갔고, 로이엔탈은 리히텐라데 공작 저택으로 향했다. <이상적인 정치>를 읽고 있던 리히텐라데 공작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로이엔탈에게 체포당했고, 그 일족 모두 구금되었다.
한편 재상부로 달려간 미터마이어는 즉각 국새실을 뒤지기 시작했다. 당직 근무를 서던 늙은 서기관 관료가 여긴 신성한 제국 국새실이라며 당장 물러날 것을 꾸짖엇으나 미터마이어는 무시하고 국새를 찾을 것을 명령한다. 처음에는 국새는 어디에 있냐고 그 관료에게 질문하지만 그는 죽어도 입을 열 얼굴이 아니라 부하들이 무력을 쓰고자 다가가려는 걸 막고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면서 부하들에게 명령해 제국군이 국새실을 마구 헤집기 시작한다. 그 늙은 관료가 "이러지 마시오! 제국의, 황실의 권위를 어떻게 알고 이러는 것이오? 신민,臣民,의 길을 벗어난 행위를 부끄러워하시오!"라고 나무라자 미터마이어는 "황실의 권위라. 옛날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은데. 하지만 결국 실력이 있어야 권위도 서는 법. 권위가 있다고 실력이 있는 것은 아니지. 이 모습을 보면 그것도 일목요연하지 않소?"라고 답했다. 결국 한 병사가 국새를 찾자 그 관료는 비명을 지르며 막고자 달려갔지만 다른 병사들에게 개머리판을 머리에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찾아온 국새를 들고 바라보던 미터마이어는 피흘리며 쓰러진 저 관료를 군의관을 불러와 치료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행성 오딘은 라인하르트 원수부 소속 제독들에게 점령당했다. 비슷한 시각 안네로제로부터 라인하르트를 향해 초광속통신이 도착했다. 키르히아이스의 시체 옆에서 멍때리고 앉아있으면서 옛 추억만 되새기던 라인하르트는 안네로제에게 온 통신이라고 보고하는 오베르슈타인에게 살기어린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오베르슈타인은 라인하르트의 살기어린 반응에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무표정하게 두렵지 않으면 누님을 만나 이야기하라면서 이대로 당신은 주저앉을 수 없다는 걸 굳건히 말한다.[10] 살기를 거둬들인 라인하르트는 통신화면에 나온 안네로제를 맞이한다.
안네로제는 라인하르트에게 의절을 선언했고, 이후 라인하르트와 안네로제는 라인하르트가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와 속도위반을 하고, 힐데가르트가 안네로제를 페잔으로 부를 때까지 만나지 않았다."누님......."
그렇게 말한 후 라인하르트의 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안네로제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빰이 창백할 정도로 새하얗다. 푸른 눈에 눈물은 없었다. 그곳에 맺힌 것은 그 이상의 것이었다.
『가엾은 라인하르트.......』
안네로제가 속삭였다. 그 낮은 목소리는 금발 청년의 가슴을 저몄다. 누이의 말에 담긴 의미를 그는 완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권력과 권위를 위해 자신의 반신을 일개 부하로 취급하려 했으며, 그 좁은 도량에 혹독한 벌을 받은 것이었다.
『네겐 이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구나, 라인하르트.』
"......아닙니다. 아직 제게는 누님이 있잖습니까. 그렇지요, 누님? 그렇지요?"
라인하르트는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그래. 우리 남매에게는 서로를 제외하면 이젠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
그 목소리가 라인하르트의 정신을 일깨웠다. 동생의 표정이 변한 것을 안네로제는 알아차렸을까.
『라인하르트, 나는 슈바르첸의 저택에서 나가고 싶구나. 아무 곳이든 좋으니 조그만 집을 얻어 줄 수 있을까?』
"누님......."
『그리고 당분간은 서로 만나지 말기로 하자꾸나.』
"누님!"
『나는 네 곁에 있지 않는 편이 좋겠어.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니....... 나에겐 과거가 있을 뿐. 하지만 네게는 미래가 있잖니.』
"......."
『지쳤을 때는 내게 오려무나. 하지만 아직은, 지쳐서는 안 돼.』
그렇다. 라인하르트는 과거를 그리워할 자격을 잃었으며, 지쳐 쉴 수도 없는 몸이 되었다. 키르히아이스가 맹세를 지킨 이상 그도 키르히아이스에게 한 맹세를 지켜야만 한다.
우주를 손에 넣는 것. 이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한다. 잃어버린 것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해본다면, 하다못해 그 정도는 손에 넣어야만 하지 않겠는가.
"알겠습니다. 누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분부대로 따르지요. 그리고 우주를 손에 넣은 후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작별하기 전에 한 가지만 가르쳐 주십시오."
라인하르트는 침을 꿀꺽 삼키고 숨을 골랐다.
"누님께서는 키르히아이스를...... 사랑하셨던 겁니까?"
그리고 조심스럽게 누이의 얼굴을 보았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라인하르트는, 그때만큼 투명한, 그때만큼 슬픈 누이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그 표정을 평생 잊을 수 없으리라.
......그리고 그의 생각은 옳은 것이었다.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2권 <야망편>, 김완, 이타카(2011), p.353
한편 라인하르트는, 자기 친구를 죽인 안스바흐의 유족들에게는 위해를 가하지 않았고, 오히려 안스바흐의 시신도 유족들에게 그대로 돌려줘 장례를 치루게 했다. 안스바흐는 어찌 되었건 최후까지 그의 주인에게 충성을 다 바쳤고, 그의 충성과 능력치를 높이 평가하여 전혀 미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11] 하지만, 안스바흐 같은 인재를 그렇게 죽게 한 브라운슈바이크에 대한 불쾌감은 지울 수 없었고, 패배와 자살로 죽은 그는 당연한 결과를 맞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만일 라인하르트가 패배하였다면 키르히아이스가 비슷한 행동이라도 했을 것이라는 역지사지의 생각도 있었고, 키르히아이스를 그 자리에서 무장해제시켜 놓은 '''라인하르트 자신의 실수'''가 이런 비극을 부른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을 라인하르트 스스로 뼈저리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자리에서 평소처럼 키르히아이스가 무장한 상태였다면, 사관학교 시절 사격 2등을[12] 놓친 적 없었을 정도로 명사수인 만큼 '''안스바흐가 핸드 캐논을 꺼내자마자 그 자리에서 한방에 사살'''하는 것으로 아주 깔끔하게 일이 종료될 수 있었다.[13]
원작에서도 키르하이이스가 죽어갈 때 멘붕상태인 라인하르트가 '''"키르히아이스의 무장을 해제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키르히아이스가 이렇게 죽어갈 리가 없는데"'''라고 후회막심하는 부분이 나왔다. 오베르슈타인조차도 "저에게 키르히아이스가 죽게 한 책임을 전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훌륭하십니다." 라고 할 정도였다.[14] 이를 볼 때 라인하르트는 오베르슈타인에게 "왜 그런 충고를 하여 키르히아이스 무장을 해제하여 그를 죽게했나!"라는 질책같은 건 아예 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15][16]
다만 문제는 이후 한동안 라인하르트에게 흑화할 기미가 살짝 보였다는 것이다. 때문에 힐데가르트 폰 마린도르프는 우려를 드러내며 키르히아이스의 무덤을 참배하면서 "당신이 살아있었더라면..."라고 생각하며 매우 아쉬워했다. 다행히 라인하르트는 옆에서 힐데가르트가 계속 챙겨준 만큼 그녀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스스로도 너무 욱한다 싶으면 키르히아이스의 말을 되새기면서 크게 문제가 될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7. 후일담
이 사건 이후로 라인하르트는 자기의 심리를 최대한 강화한다. 더는 이런 것을 겪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훗날 이 사건은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2차 암살미수사건으로 이어진다.
한편, 키르히아이스가 안스바흐에게 치명상을 입을 때까지 주변에 서 있는 장군들의 대처가 심하게 느렸고, 일단 개입한 후에도 사건을 마무리 지을 때까지 시간이 좀 소요되었다. 덤으로 군의관도 늦게 왔다.
참고로 원작 소설이나 애니에선 다들 멍 때리다가 너무나도 늦게 나서는데, 90년대에 나온 미치하라 카츠미판 코믹스에선 키르히아이스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남은 손으로 떨어진 핸드 캐논을 주워들려던 안스바흐의 왼손을 비텐펠트가 밟고 손에서 반지로 위장된 총을 빼앗으며 뒤늦게나마 활약을 하게 되는 장면이 추가되었다.
루빈스키는 이 사건에 대해 듣고 지구교에게 전략 수정의 가능성을 언급한적이 있다. 루빈스키는 시체를 그런 식으로 쓸 수도 있었다라는 투로 전혀 예측을 못했다며 감탄했고, 오베르슈타인이라는 머리 좋은 놈이 라인하르트 곁에 있어도 이렇게 암살 시도를 막지 못했다고 언급했다.
한편으로는 이 때의 경험 탓인지 라인하르트는 다시는 거슬리는 발언을 한다고 치졸하게 구는 짓은 안 했다. 좀 경고를 날리기는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