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
1. 개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중세 키예프 공국 시절부터 동슬라브라는 같은 뿌리, 혈통을 유지해 왔지만, 키예프 공국 멸망 이후에는 서서히 민족성이 갈리게 되었다. 민족집단의 분화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기 때문에 여전히 완전히 같은 민족은 아니라고 해도 일정 부분 동질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한민족의 정체성이 형성된 지 오래라서 민족의식이 확고한 한국인으로서는 상당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러시아 내에도 우크라이나인들이 거주하는데, 이들은 언어, 문화, 혈통에서는 러시아인들과 거의 비슷해서 러시아인으로 동화된 경우가 많다.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주민들도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 성향 주민들을 제외하면 우크라이나인으로 동화된 경우가 많다. 종교적인 면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기본적으로 정교회권이지만, 우크라이나 서쪽 지역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영향으로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면서도 정교회 형식을 유지하는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이 많으며, 러시아 또한 러시아 그리스 가톨릭 신자들이 소수나마 존재한다.
한편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2018년까지는 모스크바 총대주교 산하의 우크라이나 정교회, '키예프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 '독립 우크라이나 정교회'라는 세 분파로 갈렸다. 하지만 18년 12월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우크라이나 정교회를 독립교회로 인정한다고 발표하자, '키예프 총대주교청 우크라이나 정교회'와 '독립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서로 교단을 합쳐 '우크라이나 정교회'로 재탄생, 19년 1월에 정식으로 독립교회로서 발족했다. 그래서 19년부터는 우크라이나의 정교회는 독립교회인 '우크리이나 정교회'와 모스크바 산하의 자치교회인 '우크라이나 정교회', 둘만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18년 정교회 분열 항목 참조.
2. 역사적 관계
2.1. 20세기 이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키예프 공국의 일부였지만, 키예프 공국이 멸망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민족성이 갈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키예프 공국에 속했던 공국들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지배하에서 러시아와 달라지게 되고 종교, 언어도 폴란드의 영향을 받아 달라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크라이나 지역에서 카자크들의 반란이 일어나자 러시아는 개입을 했고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서쪽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동쪽은 러시아가 차지하기로 결정했다. 19세기이전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은 멸망한 뒤에 폴란드 지역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고 우크라이나 지역은 갈리치아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2. 20세기
20세기초에 러시아 제국이 멸망하자 우크라이나 지역은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이 잠시 생겨났지만, 곧바로 폴란드와 소비에트 연방에 편입되었다. 폴란드는 소련과 전쟁하면서 우크라이나 서쪽지역을 차지하고 소련은 영토를 잃어버렸다. 소련치하에서 우크라이나 지역에선 홀로도모르가 발생되었다. 그러다가 소련은 나치 독일과 협정을 맺어 폴란드를 분할하기로 합의했고, 폴란드를 침공했다. 하지만 폴란드를 점령한 뒤에 소련을 침공했다. 결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은 패하고 우크라이나는 갈리치아 지역을 포함한 전지역이 소련에 편입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시절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이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당시에는 크림 반도가 우크라이나에 속하기도 했다. 본래 러시아 소비에트 소속이였으나, 흐루쇼프 집권기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소속으로 행정구역이 변경되었다.
2.3. 21세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소련 해체 이후에 외교관계를 맺었다. 하지만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갈등을 겪고 있다.
러시아인들은 대체로 우크라이나를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라고 한다. 러시아어에서는 보통 나라이름 앞에 в를 붙이는데, 우크라이나 국명 앞에는 на를 붙여 말한다. 말하는 방법에서부터 '우크라이나는 나라가 아니다' 라는 인식이 담겨있다. 심지어 뉴스에서까지도.
러시아측 시각에서는 원래는 한 나라이고 같은 민족인데 우크라이나는 떨어져나간 탕아 혹은 나쁜 형제쯤으로 취급한다.[1] 현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적대적인 관계지만 러시아측 극우 정치인과 언론도 어느 정도 선은 지키는 느낌이어서 우크라이나 그 자체를 불구대천의 원수 취급은 하지 않고, 미국의 꼭두각시, 서방의 마리오네트 정도로 '서구에 조종받는 멍청이' 정도로 취급한다. 그 까닭은 대부분의 러시아 가정에 우크라이나 출신 친척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러시아 극우인사들도 “어떻게 하면 다시 우크라이나를 친러시아적인 국가로 돌려놓을 것인가에 주목한다.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와 관계 절연 및 러시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으로 러시아 방송의 송출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러시아 언론에서 이상하리만치 우크라이나 국내 뉴스를 자국 뉴스처럼 매우 진지하게, 자주, 자세하게 보도한다. 다른 구소련 지역 국가보다 훨씬. 물론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시각에서다.
우크라이나인들이 러시아를 싫어한다고 흔히 알려져 있는데, 우크라이나 안에서도 사람마다 다르고 생각보다 우호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꽤 섞여있었다. 대체로 동부 및 일부 남부 지역은 친러 성향, 서부와 중부는 반러 성향을 나타냈다. 과거에는 두 세력이 비등하게 맞서서 정권을 돌아가며 차지하기도 했지만 친러지역 인구 상당수가 러시아의 은밀한 지원 하에 우크라이나의 통치영역에서 빠져나갔고 남은 우크라이나 지역은 이에 분노하면서, 국가적으로 반러 성향이 이전보다 훨씬 강해지게 되었다.(빠져나간 대표적인 예가 크림반도)
소련 시절에 우크라이나에서 홀로도모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고[2] 우크라이나는 소련 해체 이후부터 정권 차원에서 탈러, 친서방노선을 유지하면서 러시아와 갈등을 빚었다. 그리고 2004년에 유셴코 정권이 들어섰을 때에 다시 러시아와 갈등이 있었고, 러시아의 의존을 벗어날려는 시도를 했지만, 러시아는 그때마다 잠가라 밸브를 실행했다. 그러다가 2010년에 야누코비치 정권이 들어섰고, 이때는 러시아와 잠시 우호적으로 변했지만, 2012년에 지역공식어 제정과 관련된 논쟁으로 지역당의원들과 야당의원들간의 집단몸싸움이 일어났다.# 그렇게 친러파와 반러파가 같은 나라 안에서 공존하던 와중에 2014년에 일어났던 유로마이단으로 야누코비치 정권이 붕괴되고 러시아와의 관계가 크게 악화되고 있다. 유로마이단 이후에는 소련 관련 상징물도 금지하고 공산당의 활동도 금지시켰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러시아에서 제작된 드라마, 영화 등도 수입을 규제하고 있고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측도 우크라이나를 제재했고 우크라이나에서 수입되는 농산물도 수입중단했다. 거기에다 러시아측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되는 무기도 수입을 중단해서 자체생산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8년 1월 1일부터 러시아인의 입국 통제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크림 반도가 러시아로 편입되기도 했다. 그리고 동부지역에선 러시아와 친러반군의 지원으로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이 탄생되기도 하는 등 러시아와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독립국가연합에도 탈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과거에는 친러와 반러가 반반이라 어느정도 균형을 맞췄다면 2018년 현재 동부가 실질적으로는 우크라이나에서 떨어져나간 상황이라[3] 우크라이나 정부가 통치하는 지역에는 거의 반러 측 목소리만 남은 상황이므로 더 여론이 반러에 치우쳐 보이는 것도 있다.
2.4. 2010년대
유로마이단, 돈바스 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동부 지역의 친러 성향 거주민들이 대거 러시아로 피난을 갔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총리의 통역사가 러시아 스파이로 밝혀지면서 유럽연합 및 캐나다와 연합해서 러시아에 강력 항의할 가능성이 높다.#
2.4.1. 2018년
우크라이나 의회가 우크라이나 동부를 러시아가 일시 강점하고 있다는 의회선언에 대해 러시아측에서는 2018년 1월 19일에 유감이라고 밝혔다.# 2018년 3월 16일에 아르센 아바코프 내무장관은 우크라이나내 러시아인들은 주말 대선 투표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8년 4월 23일에 푸틴 지지 서명운동을 벌인 이유로 크림 반도에 거주하는 한 여성이 체포되었다.# 2018년 5월 2일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추가 제재했다.# 2018년 7월 7일에 미군함 2척이 우크라이나군과 연합훈련을 위해 오데사로 향하자 러시아는 반발했다.# 2018년 7월 11일에 세르게이 쇼이구 장관은 이탈리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면전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8년 9월 17일에 우크라이나측은 러시아와의 우호조약을 파기하기로 결정했다.#
10월 22일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對러 제재에 대해서 對우크라이나 경제제재를 실시했고 푸틴 대통령도 서명했다.# 우크라이나측은 러시아측이 경제제재를 하자 러시아 관련 화물 억류로 맞대응했다.#
우크라이나는 7월에 스보보다라는 정당이 서부지역에 캠프를 차리면서 10대청소년들에게 무기훈련을 시켰고, 이 과정에서 친러 분리주의자들을 살인하는 훈련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거기에다 우크라이나 청소년스포츠부는 민족주의자들의 캠프도 지원했다.# 11월 25일에 우크라이나 군함 3척이 러시아 영해를 침범한 사건을 두고 외교갈등이 생겼다.# 25일 BBC 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쯤 케르치 해협에서 러시아 군함이 우크라이나 해군 군함 니코폴, 베르디안스크 2척과 예인선 예니카푸를 향해 포격을 가해 나포했다."고 전했으며, 우크라이나 해군은 이날 저녁 페이스북을 통해 성명을 발표하고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예인선과 함께 케르치해협을 통과하려던 우크라이나 함정들에 사격을 가했다”며 “이 과정에서 소형 함정 베르디안스크가 반파되고 군인 6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 # 그리고 이번 사태를 통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갈등도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게엄령까지 선포하자 러시아는 반발했다.# 그리고 러시아 법원은 11월 27일에 우크라이나 함정 승무원 20여명중 첫번째 승무원에게 2개월간의 구속을 결정하는 선고를 내렸다.#
러시아 지상군이 케르치 크림반도로 이동하고 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육군은 반군지역에 7차례 견인포와 박격포 등을 이용해 민간인 지역과 군시설에 포격을 실시했고, 우크라이나 해군은 정보장교를 대동해서 이동중이라고 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측은 미군주둔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러시아 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는 나토회원국에 도움을 요청하고 게엄령기간에는 러시아에 제한이 가해질 것이라고 밝혔지만, 러시아는 포로셴코가 지지율이 낮자 추가적 긴장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러시아는 크림 반도에 방공미사일을 추가 배치시켰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로 16세 ~ 60세의 러시아 남성들의 입국을 금지시키고 40여건의 조약도 취소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함정압류조치에 대해 우크라이나측도 러시아 선박을 압류조치해야 한다고 우크라이나의 볼로디미르 흐로이스만 총리가 발언했다.# 12월 2일에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함정의 수병들을 송환하는것에 대해 거부의사를 나타냈다.# 그리고 러시아 정부는 군함 나포 사건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에게 포상을 주는 방안을 추진할려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적대정책을 펼치면서 2018년 12월 6일(현지시간)에 러시아와의 우호조약을 파기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게다가 러시아에서 사이버공격이 발생되자 러시아측은 우크라이나를 비난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걸친 한 국경마을은 양국간의 긴장으로 인해 사실상 분단된 상태에 높여있다.#
2018년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항하기 위해 쿠릴 열도 분쟁에서 일본을 지지했다.
2.4.2. 2019년
우크라이나는 2019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지만, 러시아내 우크라이나인들의 안전을 위해 러시아에서는 투표소를 설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9년 2월 21일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체결한 아조프 해 협정을 파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에서 국경보안을 강화하겠다고 내무부가 밝히자 러시아측은 조롱섞인 반응을 내놨다.#
러시아가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우크라이나 화물 운송의 경유를 막은 조처와 관련해 WTO는 4월 5일(현지시간)에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었다.# 4월 24일에 러시아는 도네츠크 인민 공화국, 루간스크 인민 공화국내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시민권발급을 취득하는 시간을 단축시키자 우크라이나는 반발했다.## 그러자 젤린스키 당선인은 러시아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주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5월 1일에 푸틴 대통령은 특정 부류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러시아 국적을 취득허용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에 서명했다.# 러시아가 돈바스 주민들에게 러시아 여권을 발급하는 조치를 취하자 우크라이나 정부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5월 13일에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유럽이 대러제재를 해제하면 민스크 협정을 파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5월 20일에 볼로디미르 젤린스키가 대통령이 되었지만, 크렘린측은 축하 전문을 보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2019년 6월 17일에 볼로디미르 젤린스키 대통령은 크림 반도에서 나포된 함정승무원 24명의 석방을 촉구했다.#
크렘린은 7월 11일에 푸틴 대통령과 젤린스키 대통령이 전화통화로 우크라이나 동부분쟁 해결과 포로송환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7월 25일에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유조선을 억류한 사건이 발생되자 러시아측은 즉각적인 송환을 요구했다.# 러시아측은 우크라이나를 우회하는 가스송유관을 건설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경유하는 가스관의 계약을 10년에서 1년으로 바꿀려는 계획을 세우자 우크라이나는 반발했다.#
젤린스키 대통령은 7월 7일에 푸틴 대통령에게 동부 지역의 친러 분리주의자들을 억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9월 7일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포로 35명을 맞교환했다.#
1년만에 케르치 해협에서 나포되었던 우크라이나 선박 3척이 풀려나 우크라이나에 인계되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은 12월 9일에 '완전하고 포괄적인 휴전'에 합의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에도 불구하고 가스공급계약을 다시 체결했다.# 그리고 푸틴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은 12월 31일에 전화통화를 하고 2020년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자고 합의했다고 타스통신이 전했다.#
2.5. 2020년대
2.5.1. 2020년
6월 10일에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기념일에 우크라이나를 초대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승전 기념행사에 초청하지 않았다고 확인했다.#
10월 6일에 푸틴 대통령과 메드베추크 주러 우크라이나 대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의 제재, 백신과 양국간의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러시아어) 그리고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밝혔다.#(러시아어)
우크라이나는 현재 러시아와 갈등중이지만, 코로나19의 피해를 보고 있어서 러시아의 스푸트니크 V의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러시아어)
우크라이나의 TV채널에서 러시아 프로그램이 유명해지자 우크라이나 TV위원회에서 조사하기 시작했다.#(러시아어)
2.5.2. 2021년
러시아산 스푸트니크 V의 도입을 두고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고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
2.6. 정교회 갈등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 속에 정교회도 둘로 쪼개질 위기를 겪고 있다.#
2019년 10월 11일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가 우크라이나 정교회[4] 를 승인 및 파문 철회를 하여 독립 정교회로 인정하자 러시아 정교회측은 반발하면서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와 성사 교류 단절을 선언했다.# 12월 15일에 우크라이나 정교회측이 예피파니 대주교를 교회 수장으로 선출하자 러시아 정교회측과 모스크바 소속의 우크라이나 정교회측은 반발했다.##
11월 7일에 포로셴코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 정교회 대표에게 출국을 요구했다.# 하지만 독립 정교회로 인정받았다고 해도 우크라이나 정교회도 러시아 정교회로부터의 분리, 통합을 두고 내부에 갈등이 있었고 모스크바 총대주교 소속의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반대했다.# 하지만 공식독립절차를 강행할려고 하자 교회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다.# 2019년 1월 6일에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독립 절차를 마무리하며 공식적으로는 300여년에 걸친 예속기간을 벗어났지만, 러시아 정교회는 반발했다.#
3. 문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문화적으로도 매우 가깝다. 언어, 문화, 종교에선 매우 가깝지만, 2010년대부터 갈등이 격화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영화, 프로그램의 방영을 중지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반러정책을 실시하면서 러시아어의 사용을 줄이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3.1. 러시아어
러시아어도 우크라이나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언어이지만,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와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어 사용지역의 분리독립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우크라이나어만을 사용하려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소련시절에 있었던 일부 러시아식 지명들을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고 있다.[5] 게다가 2017년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어 교육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소수 민족 언어로 교육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러시아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유로마이단 이후에는 소련 관련 상징물도 금지하고 공산당의 활동도 금지시켰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갈등으로 러시아에서 제작된 드라마, 영화 등도 수입을 규제하고 있고 러시아를 제재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측도 우크라이나를 제재했고 우크라이나에서 수입되는 농산물도 수입중단했다. 거기에다 러시아측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되는 무기도 수입을 중단해서 자체생산하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2018년 1월 1일부터 러시아인의 입국 통제를 강화한다고 밝혔다.# 게다가 2017년에는 우크라이나 정부가 자국어 교육 강화 정책을 추진하고 소수 민족 언어로 교육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러시아와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8년 9월부터 리비우 주에서는 러시아어로 된 책이나 출판물, 프로그램 등이 금지되기까지 했다.# 또한, 우크라이나 정부는 푸틴의 동부 지역 주민들의 시민권 발급 간소화정책에 반발해서 포로셴코측에서 TV프로그램의 90%이상을 우크라이나어로 방영하고 공공문서에서 우크라이나어를 의무적으로 쓰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젤렌스키 당선인은 반발했고 러시아도 비판했다.## 2019년 5월 15일부터 우크라이나의 유일한 국어가 우크라이나어로 지정되면서 친러성향의 야당은 반발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인구의 소수는 러시아어의 지위와 EU의 관계에서 걱정하고 있는 것을 나타냈다.#(러시아어)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공용어법을 두고 2019년 7월 16일에 유엔안보리 회의에서 러시아 대표와 우크라이나 대표는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하리코프 주민의 절반 이상이 러시아어가 우크라이나의 공용어가 되길 원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러시아어)
우크라이나내 SNS사용자들이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러시아어)
4. 대사관
양국은 소련 해체 이후에 각각 대사관을 뒀다. 주 러시아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모스크바에 위치해 있고 주 우크라이나 러시아 대사관은 키예프에 위치해 있다.
5. 우크라이나에 거주하는 러시아 소수민족
제정 러시아, 소련 시기에 한 땅이었기에 러시아인들 뿐 아니라 러시아의 여러 소수민족들도 우크라이나에 이주해오기도 했었다. 경제적 이유로 멀리 온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스탈린 등 강압적 통치자들의 강제 이주로 끌려온 사람들이었다. 주로 캅카스와 중앙아시아, 우랄 지역, 볼가 강 유역에서 온 소수민족들이었으며, 멀리 러시아 극동에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고려인들이 대표적이며, 카자흐족, 체첸인과 인구시인, 러시아 극동 지역에서 온 소수의 퉁구스족(우데게족, 나나이족, 에벤키족과 에벤족)들과 케트족도 거주하고 있다. 단 퉁구스계 제족들과 케트족의 경우 워낙 적게 나왔기에 세월이 지나면서 우크라이나에 동화되거나 더 줄어들어 극소수 정도만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
6. 관련 문서
- 러시아/외교
- 우크라이나/외교
- 유로마이단
- 2014년 크림 위기
- 2018년 정교회 분열
- 돈바스 전쟁
- 노보로시야 -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 루간스크 인민공화국
- 크림 반도
- 키예프 공국[6]
- 러시아인 / 우크라이나인 /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
- 러시아어 / 우크라이나어
- 정교회
- 러시아/역사
- 우크라이나/역사
- 러시아/경제
- 우크라이나/경제
-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
- 러시아/민족
- 대국관계일람/유럽 국가/동유럽 국가
[1] 벨라루스의 경우 러시아측 시각에서는 한 나라이고 같은 민족이며 비록 떨어져나갔지만 그래도 좋은 형제로 여겨진다.[2] 현재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해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 사고에 대한 복구비용이 고정되어 있다.[3] 물론 세계 각국이 독립국으로 인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독자 정권이 나라의 구색을 갖추고 통치하고 있는 중인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4] 당시 우크라이나 정교회는 크게 세 교회로 나뉘는데, 러시아 정교회 산하에 있는 우크라이나 정교회 (모스크바 총대주교), 우크라이나 정교회 - 키예프 총대주교,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파문#s-2당한 우크라이나 독립정교회 등이 있다. 이 중 키예프 총대주교좌 교회와 독립정교회, 그리고 모스크바 소속 교회 일부가 하나로 통합한 것이 우크라이나 정교회이다.[5] 예를 들자면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를 드니프로로 바꿨다.[6]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뿌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