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포드 아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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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 (Metta Sandiford-Artest)[1]
'''본명'''
(개명 전 이름)
로널드 윌리엄 아테스트 주니어
(Ronald William Artest Jr.)
'''생년월일'''
1979년 11월 13일
'''키'''
201cm (6' 7")
'''체중'''
118kg (260 lbs)
'''출신학교'''
세인트 존스 대학교
'''포지션'''
스몰 포워드
'''드래프트'''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16순위
시카고 불스에 지명
'''선수 경력'''
시카고 불스 (1999~2002)
인디애나 페이서스 (2002~2006)
새크라멘토 킹스 (2006~2008)
휴스턴 로켓츠 (2008~2009)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09~2013)
뉴욕 닉스 (2013~2014.2.25)
쓰촨 블루 웨일즈 (2014)[2]
팔라카네스트로 칸투 (2015)[3]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 (2015~2017)
'''지도자 경력'''
사우스베이 레이커스 선수 개발 코치 (2017~)
'''등번호'''
15번(시카고, 인디애나, 레이커스)
23번(인디애나)
91번(인디애나)
93번(새크라멘토)
96번(휴스턴)
37번(레이커스)
51번(뉴욕)
'''수상내역'''
NBA Defensive Player of the Year (2004)
NBA All-Star (2004)
All-NBA Third Team (2004)
NBA All-Defensive First Team 2회 (2004,2006)
NBA All-Defensive Second Team 2회 (2003,2009)
NBA All-Rookie Second Team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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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004년 NBA 올해의 수비수상'''
벤 월러스

'''론 아테스트'''

벤 월러스
1. 개요
2. 플레이 스타일
3. 돌아이 열전
3.1. 사건 사고 일람
3.2. 대형 사고
3.3. 사소한 기행


1. 개요


미국의 농구선수로, NBA에서 데니스 로드맨을 잇는 21세기 대표 악동으로 손꼽힌다.
La Salle Academy 고등학교와 세인트 존스 대학을 거쳐 NBA에 입단했다. 시카고 불스에서 NBA 커리어를 시작, 인디애나 페이서스, 새크라멘토 킹스, 휴스턴 로케츠, LA 레이커스, 뉴욕 닉스를 거치고 2014년에 중국리그로 떠났다. 레이커스에서는 우승도 경험했다.
메타 월드 피스로 개명한 이후 맞이한 11-12 시즌은 처참했다. 리그에 대한 대비가 되지 않은 몸상태로 리그를 맞이 하였고 전혀 경기를 뛸 상태가 되지 않았던 MWP의 경기력은 최악이었다. 살이 잔뜩 쪄서 몸은 굼뜨고 대놓고 레이커스팬들조차 데릭 피셔와 함께 당장 쫓아내야 된다고 열을 올렸을 정도. 그래도 클래스가 있는 선수라 점점 컨디션을 끌어올리면서 리그 후반이 될수록 자기 폼을 어느정도 찾기 시작했다. 득점력은 기대하기 힘들지만 스피드가 올라오고 수비력을 거의 되찾은 상태다.
2012-13 시즌이 끝나고 레이커스가 사치세를 줄이기 위해 월피를 사면시켰고, 이후 중국리그에서 뛸거라고 언플을 하다 뉴욕 닉스와 계약합의를 봤다는 뉴스가 떴다. 하지만 출전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결국 이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가 2014년 2월 25일 팀 동료 비노 우드리와 함께 웨이버 공시당하면서 방출되었다. 본인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이면 어디든 달려가겠다고는 하지만 기행이 많았던 데다가 닉스에서 보여준 모습이 별로 좋지 않아서 그를 불러준 팀은 일주일 넘게 없다.
이후 CBA의 쓰촨 블루 웨일즈와 계약했다.
2015년 3월 25일 이탈리아 리그 구단 팔라카네스트로 칸투(Pallacanestro Cantù)와 계약하는 등 타 리그를 전전하고 있었는데...7월에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와 계약했다. 기량면에선 큰 기대는 할 수 없고 플레잉 코치같은 역할을 맡게 될 듯.
2017년 10월 23일 레이커스 산하 G리그 팀 사우스베이 레이커스와 선수 개발 코치 계약을 맺었다.

2. 플레이 스타일



카멜로 앤서니를 쩔쩔매게 만드는 영상.
전성기 시절에는 NBA 역사를 통틀어봐도 손꼽히는 수비력을 보유했던 에이스스토퍼였으며, 전 포지션 수비를 모두 할 수 있는 전천후 수비수였다. 게리 페이튼 이후 빅맨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던 올해의 수비수상을 수상한 것이 그 증거. 특히, 2000년대부터 급격히 진행된 '''스몰포워드포지션의 피지컬 깡패화 선두주자에 있었던 선수로''', 아테스트와 르브론 제임스이후 스몰포워드 평균체중이 상승하면서 엄청나게 이쪽 싸움이 피지컬해졌다. 전성기 201cm에 118kg이라는 굉장히 무거운 몸무게에도 불구하고, 빅벤(벤 월러스)과 피지컬 싸움을 해보겠다는... 아득한 정신세계에서 비롯된 훌륭한 근육에서 나오는 파워와 부지런한 스텝으로 스피드가 좋은 상대도 잘 따라다녔다. 빠른 손놀림을 이용한 스틸이나 오펜스 파울 유도에도 능한데다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으면서 상대의 짜증을 유발하는데도 능숙했다. 나이를 먹고 발이 느려진 레이커스 시절에도 수비력은 인정받았을 정도.
받아먹기 3점이 주무기였던 브루스 보웬이나 셰인 배티에 등 다른 스윙맨 수비수들하고는 달리 공격에서도 묵직한 몸을 이용한 돌파 및 포스트업, 점퍼로 경기당 20득점 정도는 심심치않게 올려줄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있었으나 신중하지 않은 슛셀렉션과 심한 기복 때문에 에이스로 내세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3. 돌아이 열전


위에서 언급한대로 그는 리그에서 알아주는 돌아이다. 거의 데니스 로드먼과 필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로드먼은 기행은 있었으나 주로 샌안토니오때 많이 몰려있었고, 그것도 그나마 많은 편은 아니었다. 또 로드먼은 패션센스가 남달라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편이고, 로드먼 본인 역시 사람들의 시선 끌기를 매우 좋아한다. 대체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허탈하게 웃기는 경우도 있지만) 정도이고, 로드먼은 기본적으로 탕아 아니면 악동 이미지가 강한 편.
반면 아테스트는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돌아이짓을 많이 해, 상식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이 많은 편이다... 만 로드먼이 라이벌 의식을 느꼈는지, 질 수 없다는 듯 평양 가서 김정은이랑 사진 찍는 기행을 보여주며 다시 역전했다(...)
그동안 아테스트가 보여준 사건사고는 아래에 정리. 물론 경기중의 말다툼이나 가벼운 몸싸움은 제외.

3.1. 사건 사고 일람


  • 시카고 불스에서 맞이하는 NBA 첫 시즌 전. 아테스트가 시카고 시내에 있는 대형 가전제품 매장인 서킷시티[4]알바 이력서를 제출했다. 다행히 누군가가 이걸 구단에 제보를 했는지, 구단에서 아테스트의 투잡을 막긴 했는데 아테스트 왈 "직원DC가 되고 재미있을것 같아서 지원했다."라고 말했다. 이유가 이거였다.
  • 신인 오리엔테이션에 불참해서 5천 달러의 벌금을 물었는데, 표면적 이유는 늦잠을 자서였는데, 실제로는 구단 관계자 외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는 오리엔테이션이 열리는 호텔에 아테스트가 친구들을 데리고 온 것. 아마도 친구들의 출입이 안되자 삐진 아테스트가 그냥 집으로 가버린 듯. 신인 시절부터 남다른 떡잎이었다.
  • 2001년 1월에 마이클 조던과 픽업게임을 하는 도중, 그의 갈비뼈를 부러트려 조던 팬들을 식겁 & 분노하게 했다. 근데 여기서 이 인간의 대답이 참 걸작이다. 왜 갈비뼈가 부러지나염? 'ㅅ'?(...)
  • 2002년에는 여자친구의 목을 졸랐다는 이유로 고소를 당했지만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 여자친구는 자신의 곁에 의무적으로 경호원을 두어야 했다.
  • 2004-2005년 시즌을 앞두고 랩 음반을 발매했던 아테스트는 구단에게 음반 홍보를 위한 프로모션 기간중 휴가를 달라고 요청했다가 2경기 출장정지 크리를 먹었다. 상식적으로 시즌 개막이 코앞인데 자기 랩 음반 홍보한다고 시즌을 빼먹겠다는 말과 같은 것. 이걸 어느 구단이 들어준단 말인가. 근데 아테스트는 ESP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뮤지션이 되길 원한다. 내 이름을 건 레이블도 가지고 싶고, NBA우승과 MVP의 영광도 차지하고 싶다. 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올해는 두가지 목표가 있다. 하나는 내 음반이 플래티넘을 기록하는 것이고, 하나는 NBA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이게 그의 대답이었다. 팬들이 어이없어 하는건 당연한 이치. 여담으로 그의 랩 음반은 엄청난 3류 음반이었다. 이 앨범을 평가한 리뷰가 '오! 신이시여. 아테스트를 제발 훌륭한 래퍼로 만들어주소서.'였다.(...) 한마디로 망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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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예술가선생의 음반자켓이다.
  • 2005-06시즌이 한창 진행되었을 때, 아테스트는 기어이 페이서스 팬들에게 대못을 박았다. 지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감독인 릭 칼라일의 지도력을 맹렬히 비난하며, 트레이드되고 싶다고 서슴없이 얘기했다. 이 때 당시 규정에 선수는 언론에 공개적으로 트레이드 요청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테스트는 다시 벌금크리. 이 발언을 하고 나서 1주일 후 오해에염'ㅅ' 이라고 뻔뻔하게 마음을 바꿨다. 허나 이미 때는 늦었다. 구단도 참을만큼 참았는지 그를 새크라멘토로 트레이드해버린 것. 당시 인디애나의 사장이었던 도니 월시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정상적인 그룹에 넣으면 곧 그룹 전체가 고장난다는 것을 배웠다.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이제는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정상적인 그룹이 한 명을 도와줄 수 있을거라 생각하겠지만 그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라고 했다. 얼마나 아테스트에게 학을 땠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구단 사장이라는 사람이 자기 선수가 다른 팀으로 간다는데 대놓고 저렇게 기뻐하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 아테스트가 고분고분 트레이드에 응해도 시원찮을 판에, 트레이드를 거부했다(...). 뭐하자는 거야... 다행히 새크라멘토 구단의 설득으로 결국 트레이드에 동의했다. 2000년대 후반까지 경쟁력을 유지해왔던 인디애나 페이서스는 레지 밀러의 은퇴 후 주축 선수들의 이탈 도미노와 도니 월시의 뉴욕 닉스 행 이후로 완전히 약체팀으로 전락해 리그 최악의 관중동원을 기록하며 구단주의 입에서 연고 이전을 시도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 경기 중에 폴 피어스의 바지를 일부러 벗겼다(...). 그런데 곧바로 폴 피어스는 바지가 벗겨진 채로 3점슛을 성공시켰다.
  •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오래 선수생활을 하고 싶다고 해놓고, 바로 다음날 은퇴 발표를 준비하는 등 정말 이해가 안 되는 행동도 했다. 정말 여러 사람 똥줄 태웠다.
  • 휴스턴 로케츠로 트레이드 되고 난 후에는 기행없이 잘 지냈다. 휴스턴 로케츠를 지긋지긋한 1라운드 탈락 징크스를 깨트리고 2라운드에 진출시켜 레이커스와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시즌이 끝난 후 오프시즌 동안 휴스턴은 아테스트에게 아무런 계약도 제시하지 않았다. 팬들은 의아해했는데, 여기에 그 이유가 있었다.
    • 2009년 플레이오프 2라운드 7차전이 열리던 날. 아테스트가 선수를 위한 버스와 코치들을 위한 버스를 놓치는 바람에 경기장에 갈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 다행히 그는 선수 가족과 구단 관계자가 탄 버스에 간신히 올라탔는데, 버스에 타고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아테스트가 팬티만 입고 있었던 것(...) 문제는 그 버스에 휴스턴 로켓츠의 구단주가 타고 있었다.(...) 이게 재계약 제안을 하지 않은 이유.
  • 레이커스와 계약했을때도 트위터에 거짓정보를 올려 팬들을 잘 낚았다. 레이커스 시절에는 휴스턴과 경기 중, 휴스턴 선수인 트레버 아리자가 그를 막으려 하던 도중 신발이 벗겨졌다. 아테스트는 그 신발을 관중들 있는 쪽으로 던진 후 3점슛을 성공시켰다. 아리자의 어이없어 하는 얼굴이 포인트. 이 일로 팬들도 그를 비판했다. 또 '시카고 시절 술먹고 경기한적도 있음'이라고 스스로 인정해, 또 화제거리가 되었다.
  •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와의 경기 전반 종료전 덩크를 성공시킨뒤 돌아가다가 썬더의 가드인 제임스 하든에게 UFC에서나 볼 법한 초강력 엘보 어택을 정통으로 날린 적이 있다. [5] 물론 플래그런트 2를 먹고 즉시 퇴장당했지만, 하든은 그 자리에서 쓰러진 뒤 실려나갔고 뇌진탕 증세까지 보였다. 세레모니 도중에 자기도 모르게 그랬다면서 억울하다고 했으나 그 장면을 본 시청자들은 레이커스 팬들조차 한 목소리로 중징계를 넘어 영구 퇴출시키라는 반응도 나왔다.
실질적으로는 2010~2011시즌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플레이오프 마지막 경기에서 앤드류 바이넘이 후안 호세 바레아에게 범한 악질적인 엘보우 어택과 동급인 5경기 징계를 예상했으나, 그때보다 더 악질적인(한마디로 플레이와는 아무 상관없이 가다가 사람때린거다. 그것도 급소를.) 폭행을 가한 것이라 이것도 부족하다는 주장이 대세. 최종 징계는 7경기 출장정지이다.

3.2. 대형 사고



이 중 가장 큰 사건은 2004-2005시즌에 '''관중을 폭행한 사건'''이었다. 2004년 11월 19일, 더 팰리스 오브 어번 힐스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와의 경기에서 경기 종료까지 45.9초가 남았고, 스코어는 97 대 82로 인디애나가 이기고 있었다. 이때쯤이라면 원래 승리 팀조차도 예의상 타임아웃을 부르지 않거나 파울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의 센터 벤 월러스가 레이업 슛을 시도하다가 아테스트가 좀 거친파울을 범했다. 그러자 화가 난 벤 월러스는 아테스트의 가슴을 강하게 밀쳤다. 이때 아테스트는 전혀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 03-04시즌을 앞두고 어린 딸이 "아빠가 싸우는 것 보기 싫다"고 한 것에 자극받아 04시즌 내내 싸움으로 인한 징계를 한번도 받지 않았다. 실제로 이 당시에도 하드 파울을 하긴 했지만 월러스나 다른 선수들과 몸싸움을 하진 않았다. 오히려 스티븐 잭슨 등 다른 인디애나의 선수들과 피스톤즈 선수들이 단체로 실랑이를 벌였다. 그럼에도 악동으로 유명했던 라쉬드 월러스는 제일 열심히 말렸다.[6]이때까지만 해도 빌 월튼을 포함한 당시 해설진은 아테스트가 의외로 침착하게 대응한 것을 칭찬하며 벤 월러스의 과잉반응을 비판했다. 아테스트가 다소 더티한 플레이를 했지만 월러스가 한 건 대놓고 싸우자는 것이었기에.
이후 아테스트는 다른 선수들이 벤 월라스를 말리는 와중에 중계석에 누워 있었고 옆에서 코치가 그를 달래고 있었는데, 디트로이트 관중 중 존 그린이라는 사람이 들고있던 컵[7]을 그에게 던졌고 갑자기 봉변을 당하자 화가 나 관중석으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엉뚱하게 진범인 존 그린[8]이 아닌 마이클 라이언[9]이 던졌다고 착각해 그에게 달려든 뒤 멱살을 잡고 "네가 그랬어?(Did you do it?)"이라고 묻자 라이언은 "아니야, 아니라고!(No, man. No!)"라고 항변했다. 이후 아테스트는 진범을 찾기 위해 나섰으나 갑자기 윌리엄 폴슨이란 관중이 그에게 음료수를 집어던졌다가 직후 난입한 동료 스티븐 잭슨에게 죽빵을 제대로 맞았다. 웃긴 건 이 난리가 일어나는 동안 진범인 존 그린은 아테스트를 뒤에서 붙잡고 가격하려고 하고 있었다. 마이클 라이언이 맞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라이언은 아테스트가 자신을 두들겨 팼다(pummel)고 주장했으나, 지역지 인디애나 스타의 기자 마크 몬티스(Mark Montieth)는 라이언이 맞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때 아테스트가 라이언을 쓰려뜨리고 그 위에 있었기 때문에 중계화면상으론 실제로 맞았는지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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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러스트레이트 표지에 실린 당시 사건. 저기 놀라는 관중은 아테스트에게 콜라가 든 컵을 던진 존 그린이 아니고 존 그린 옆에 옆에 있던 관중이다. 아테스트가 컵에 맞자 빡쳐서 컵이 날라온 쪽으로 달려가서 무쌍을 펼친것이다... 저 관중은 가만히 서있다가 아테스트가 자신에게 달려들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근데 여기서 또 끝난게 아니었다. 코트로 난입했던 다른 관중인 Alvin "A.J." Shackleford 와 Charlie Haddad라는 사람과 또 다시 주먹다짐을 한것. 여기에 저메인 오닐까지 나서서 Charlie Haddad에게 강펀치를 날렸다. 경기는 더 이상 속개될수 없을 정도로 난장판이 되었고[10], 인디애나 선수들은 각종 오물을 맞으며,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론 아테스트의 행동은 프로선수로서는 물론, 한 사람으로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짓이었다. 그의 행동은 모든 프로스포츠계에 대단한 위협이 되었다. 관중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경기는 외면받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 중징계를 내렸다.

- 데이비드 스턴 당시 NBA 총재의 발표

여파는 컸다. 경기가 끝난 바로 다음날에 징계가 내려졌다. 아테스트에게는 '''시즌 잔여경기 출전정지가 내려졌고, 덤으로 플레이오프 경기 13경기 출전정지'''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저 기간동안 아테스트는 자신의 급료를 지급받지 못했다. 그 돈이 무려 5백만 달러였다. 팀 동료인 스티븐 잭슨은 30경기 출전정지에 170만달러의 급료를 받지 못했고, 저메인 오닐도 15경기 출전정지를 먹었다.[11] 거기에 디트로이트 선수 일부도 징계를 먹었다. 벤 월라스는 6경기 출전정지. 천시 빌럽스와 앨든 캠벨, 데릭 콜맨등은 한경기 출전정지를 당했는데, 여기에 레지 밀러도 1경기 출전정지를 당했다.(...) 어처구니없이 밀러는 폭력에 전혀 가담하지 않고 싸움을 열심히 말렸음에도 "분쟁 도중 벤치에 앉아있던 선수는 벤치를 뜨면 안된다"는 규정을 어겨 징계를 당했다. 이때 격분한 디트로이트 관중은 인디애나 선수들에게 맥주를 포함한 음료수, 음식을 던졌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밀러와 코치진 역시 이걸 그대로 맞았다. 물론 밀러가 엄연히 존재하는 규정을 어긴건 사실이지만 이 때는 팀의 리더로서 도저히 벤치에 얌전히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실제로 양 팀 선수중 벤치를 뜨지 않은 선수는 피스톤즈의 테이션 프린스 뿐이었다. 그 외 벤치를 뜬 디트로이트 측 선수들도 3만 5천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더군다나 04-05시즌은 레지 밀러의 은퇴전 마지막 시즌으로, 은퇴 전에 밀러에게 챔피언 반지를 안기기 위해 의욕적으로 라인업을 꾸렸던 시즌이었다.
당시 페이서스는 정말 좋은 팀이었다. 2004시즌 당시 에이스 저메인 오닐은 넘사벽이었던 팀 던컨과 케빈 가넷에 이은 올NBA 세컨팀 포워드 자리에 올랐으며 MVP 투표에서도 3위에 올랐다. 1위 가넷이 워낙 압도적이라 큰 의미는 없었지만...[12] 게다가 인디애나는 04시즌 양 컨퍼런스를 통틀어 유일하게 60승을 넘겼고(61승), 우승팀 피스톤즈와도 치열한 승부 끝에 패했다. 또한 아테스트는 당시 처음으로 올NBA 써드팀/올스타/올해의 수비수에 선정되면서 성장을 쭉쭉 하고 있었고 2004-05시즌 초반엔 득점력까지 한 층 오르며 "퍼스트팀에 오르는게 아니냐"는 설레발섞인 예상까지 일부지만 나올 정도였다. 물론 폭행 사건 이전에 이미 상승세가 좀 꺾여서 퍼스트팀은 무리였다. 이대로 가면 05시즌 역시 가장 강한 우승후보 중 하나가 될 게 유력했다. 근데 이 모든게 물거품이 된 것. 정규시즌을 말아먹은 것도 크지만, 팀 내 주축 중 하나이자 최고의 수비수였던 아테스트 없이 우승 도전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런 마당에 이 사건으로 레지 밀러의 마지막 시즌이 초라해질 위기에 처한 것.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불사른 밀러의 활약 덕택에 인디애나는 동부 6위로 플옵에는 나갈 수 있었지만, 결국 2라운드에서 디트로이트에게 패배, 레지 밀러의 챔피언 반지의 꿈은 미완으로 종료된다.
이 사태의 원인 제공자, 음료수 투척범 존 그린은 법원으로부터 2년간 보호관찰을 선고받았고, 30일간의 구치소 행.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의 홈경기 및 피스톤즈 구단의 관련행사에 영구적 참가금지'''가 내려졌다. 당연하게 본보기를 보여준 셈.
관중 폭행이라는 대형사고를 쳤지만 아테스트만 까일거리는 아니다. 음료수 투척이야 말할 필요도 없고, 월러스에게도 엄연히 잘못이 있다. 아테스트가 비매너 플레이를 하긴 했지만, 그는 대놓고 싸우자는 듯 아테스트 밀쳤으며 나중에 덤벼든 스티븐 잭슨과도 붙으려고 했다. 적극적으로 말린 라쉬드 월러스가 아니었다면 선수들끼리 크게 한판 했을 것이다.
사실 주범이 아테스트이고 가장 큰 잘못을 저지르긴 했지만, 전대미문의 대사건이 일어난 데는 일을 키운 페이서스 선수들과 일부 디트로이트 관중들에게 골고루 잘못이 있다. 선수의 관객석 난입은 이때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지 1년 좀 더 지난 2006년 1월에 뉴욕 닉스시카고 불스의 경기에선 닉스 선수인 안토니오 데이비스가 자신의 아내와 한 팬이 시비가 붙은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이를 만류하기 위해 관중석에 난입했으며[13], 1995년에는 휴스턴 로키츠의 버논 맥스웰이란 똘끼로 유명한 선수가 관중석에 난입해 팬의 죽빵을 갈긴 적도 있다.
그러나 맥스웰의 사건에서는 동료의 돌발행위에 휴스턴 동료들과 관계자들이 바로 달려들어 말린반면, 아테스트 사건에서는 (말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스티븐 잭슨과 저메인 오닐이 오히려 같이 폭발해 사람들을 패고 다녔으며, 거기에 성질이 불같은 디트로이트의 관중들도 같이 대응해 사건이 점점 커진 것이다. 맥스웰의 경우처럼 주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대응했으면 또라이 한 명의 돌발행위로 끝날 수도 있었던 사건을[14] 주변 사람들이 덩달아 흥분해 엄청난 사건으로 키운 것. 이런 면에서 동료가 미친 짓을 하고 있는데 말리긴 커녕 같이 난입해 펀치를 날린 잭슨, 사태가 간신히 진정되어 가는데 또 주먹을 쓴 오닐의 잘못도 엄청나게 크다. 개념없는 행동을 한 팬들도 마찬가지.
발단이 어찌되었든 간에 프로스포츠 입장에서 최대의 고객은 관중일 수밖에 없다. 스턴 총재가 분노한 것도 당연지사. 이에 빌리 헌터와 알론조 모닝이 이끌던 선수노조는 "사무국의 결정이 너무 가혹하다. 팬들에게도 잘못이 크다."며 반발했지만 리그 사무국은 이번만큼은 인정사정 봐 주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보였고, 언론 역시 사무국의 편을 들어주었다.
스턴 총재가 분노한 것은 이 때문만이 아니었다. 사고가 터지는 동안 장내 보안까지도 허술했다. 당시 그 어떤 경호원들도 적극적으로 이들을 말리지 못했고 이에 대한 책임 또한 피스톤즈 역시 피할 수 없었다. 결국 2001년 9.11 테러로 강화되었던 경기장 보안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로 인해 피스톤즈 구단은 매 경기를 플옵 수준의 보안상태를 유지하며 치러야 했고, 장내에는 무장 경관이 두 배로 늘었다.
시즌 중에는 자숙하는가 싶더니 2005년 12월에 펜트하우스와 인터뷰에서 '''"벤 월라스와 링에서 붙고 싶다."'''며 맞짱을 신청(...). 물론 월라스가 이걸 들을 리가 없었다.

3.3. 사소한 기행


  • 그래도 LA 레이커스에 와서는 기행은 없는편이다. 레이커스에 입단했을때도 "난 돈은 필요없다. 코비랑 같이 뛰고 싶을 뿐."이라고 하면서 거의 염가계약으로 왔던 것. 레이커스의 트라이앵글 오펜스에 좀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지역사회에 열심히 봉사를 했는지 J. Walter Kennedy Citizenship Award를 수상했다.
  • 자신의 이름을 개명하겠다고 신청, 신청이름은 Metta World Peace 이다(...) 결국 메타 월드 피스로의 개명이 확정되면서 이 문서도 대대적인 수정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 중국 이적 후 또 다시 개명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는데 이름을 무려 Panda Friend라고 언급했다.[15]
  • 2014년 12월에는 메타 미나즈(Metta Minaj)라는 이름으로 또 바꿨다. 여성 섹시 랩퍼 니키 미나즈(Nicki Minaj)의 곡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가사를 보면 메타 월드 피스의 이름이 잠깐 언급된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이틀 동안만 잠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 2013년 6월 NBA 파이널에서 레이 앨런의 빅샷을 보고 감동을 받아, 앨런이 영화에서 맡았던 배역의 이름인 지저스 셔틀워스(jesus shuttlesworth)로 개명하겠다는 트윗을 올렸다.
  • 2020년 5월 이름을 또 개명해 메타포드 아테스트(Metta Ford-Artest)가 되었다. 포드는 아내의 이름인 마야 포드에서 땄다고 한다.
[1] 2011-2012 시즌을 앞두고 '''론 아테스트'''에서 '''메타 월드 피스'''로 개명했고 2020년 5월 '''메타 샌디포드-아테스트'''로 다시 개명했다. [2] CBA(중국 프로농구) 소속 구단.[3] 이탈리아 리그 소속 구단.[4] 미국의 전자제품 종합 체인점으로 2008년 이후 같은 전자제품 종합 체인점인 베스트바이와의 경쟁에서 경영악화로 미국 전역 대다수의 점포가 문을 닫았다.[5] 마치 존 존스 vs 스테판 보너전에서 나온 백스핀 엘보와 동급 수준이다.[6] 월러스는 큰 키와 엄청난 운동능력, 기술을 겸비했음에도 불성실한 태도와 다혈질인 성격(한시즌 41개 테크니컬 파울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갖고 있다.)으로 대성하지 못했던 대표적인 선수였는데, 04시즌에 디트로이트로 이적해 끈끈한 팀워크를 자랑하는 피스톤즈의 일원으로 우승을 맛 본 이후 사고치는 빈도수가 거의 없어지다시피했다. 원래 성격좋기로 유명한 선수라 셀틱스 시절에도 베테랑으로 사고 안 치고 라커룸 리더 역할을 했다. 당연히 갱생(?)을 하게 만들어준 피스톤즈 멤버들과 사이가 좋았고 골밑 콤비였던 벤 월러스와 동료시절 팔꿈치를 교차시키는 세러모니가 있었는데, 적이 된 시카고 시절에도 두 팀이 붙으면 경기 전에 자연스럽게 이 세러모니를 했다. 두 월러스가 고작 2시즌 반같이 뛰었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유대관계.[7] 플라스틱 컵이었다. 당시 맥주가 들려있었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위키백과에 따르면 다이어트 코카콜라였다고 한다.[8] 당시 화면에서 파란 셔츠를 입고 흰 모자를 쓰고 있던 흑인[9] 마르고 안경을 낀 백인. 영사을 보면 라이언은 당시 하필 아테스트의 '''정면에서''' 뭔가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때 분위기를 생각하면 당연히 호의적인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고, 이미 흥분한 아테스트가 도발이라고 착각하기 충분했다. 물론 진짜 아테스트가 관중석으로 넘어오자 라이언의 표정은 경악으로 바뀐다.[10] 어느 정도였냐면 '''종료 버저가 울리지 못했다'''.[11] 원래 25경기였으나 나중에 여차여차해서 감면[12] 1위표 중 단 세표를 제외하고 싹쓸이했다. 나머지 세표 중 두장은 오닐, 한장은 페자가 가져갔는데 워낙 가넷의 점수가 압도적이라 MVP 2위는 1위표를 단 하나도 못 받은 팀 던컨이었다. 어차피 1위표는 가넷이 거의 다 가져가서 2,3위표를 많이 받은 던컨이 2위였던 것. 참고로 이때 파워포워드 위상을 보면 가넷과 던컨이 동급 (커리어로 치면 차이가 나지만 이때 전성기때 실력이나 위상은 용호상박이었다), 그 다음에 오닐과 막 떠오르던 디르크 노비츠키가 비슷했다. 한때 던컨/가넷을 위협하던 웨버가 부상으로 기량저하가 시작되어 기량이 한층 죽었으며, 3년 뒤 MVP를 수상하는 노비츠키는 가넷과 던컨보다 아직 전성기가 아니었다. 어쨌든 리그를 호령하는 파워포워드 중 한명이었던 것. 전성기가 갑자기 끝난 선수라 의외로 많이 간과되는 부분이다. 게다가 오닐은 고졸로 데뷔해 벤치를 달구다 인디애나로 이적한 이후 포텐이 폭발해 노비츠키와 비슷하게 한창 치고 올라가던 시점이었다. (오닐은 노비츠키급 득점력은 없었지만 수비가 더 좋았다) 오닐은 드래프트 직후인 포틀랜드 시절 출장시간을 거의 못 받을때 성장을 거의 못했다는 점에서 보듯이 주변환경의 영향을 좀 크게 받는 편인데, 이때 본인 잘못으로 장기결장하고 이루 계속 기량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된다. 결국 그는 나이상 아직 전성기도 아닐(만 25세) 04시즌의 위상이나 기량을 다시 회복하지 못한다.[13] 데이비스는 이때 전혀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싸움을 말렸고, 관계자들이 말리자 얌전히 퇴장했기 때문에 여론이 우호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NBA는 그에게 5경기 징계를 내렸다.[14] 맥스웰은 10경기 징계와 2만달러 벌금을 받았다. 중징계지만 이 사건에 비할 바는 아니다.[15] 정확히는 Panda Friend가 아니라 The Panda's Friend라고 트위터에 올렸다...... 한국 팬들은 팬다 친구가 아니라 친구 팬다(...) 라며 드립을 날려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