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티 파이선

 

''' 몬티 파이선의 주요 수상 이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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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줄: (왼쪽부터) 그레이엄 채프먼, 존 클리스, 테리 길리엄
앞줄: 에릭 아이들, 마이클 페일린, 테리 존스

'''Monty Python'''
'''''몬티 파이선'''[1]''
'''출신지'''
영국 [image]
'''멤버'''
존 클리스 (1939-)
테리 길리엄 (1940-)
그레이엄 채프먼 (1941-1989)
테리 존스 (1942-2020)
에릭 아이들 (1943-)
마이클 페일린 경 (1943-)
'''장르'''
풍자, 부조리 코미디, 블랙 코미디
'''활동기간'''
1969년1983년
재결성: 1989년, 1998년1999년, 2002년, 2013년2014년
'''데뷔'''
몬티 파이선의 날아다니는 서커스(1969년/BBC)
'''링크'''
공식 사이트

1. 개요
2. 멤버
2.1. 그레이엄 채프먼
2.2. 존 클리즈
2.3. 에릭 아이들
2.5. 테리 존스
2.6. 마이클 페일린
3. 몬티 파이선의 날아다니는 서커스
4. 주요 작품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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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코미디 그룹''', 대표작은 몬티 파이선의 날아다니는 서커스[2]이며, 1969년부터 1974년까지 총 45편이 방영되었다. 당시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조리 코미디를 중심으로 하지만 몸개그(슬랩스틱), 말장난, 저질개그 등도 사리지 않고 그야말로 온갖 종류의 개그를 섭렵했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웃으며 볼 수 있다. 잔인하거나 난잡한 개그도 서슴지 않아 사우스 파크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3] 그런 데다가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 봐도 웃기다는 점 또한 굉장하다.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한 개그.
이들의 엄청난 인기와 성공으로 쇼, 영화, 음반, 책 등으로까지 각종 미디어로 영향력이 커져나갔다. 이 그룹이 영미권 코미디에 끼친 어마어마한 영향은 비틀즈가 음악에 미친 영향과 비유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들을 부르는 호칭이 바로 코미디의 비틀즈다. 현재까지도 이들의 전성기 시절 활동은 영국뿐 아니라 영미권 전반에 걸쳐 레전드 오브 레전드로 인정받고 있으며 특히 스케치 코미디쇼나 풍자개그, 콩트 부분에 있어선 일대 혁명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2. 멤버


핵심 멤버(클리스, 채프먼)는 작가 출신이며 나머지 멤버도 연극인, 애니메이터 등 능력자들이다. 게다가 로완 앳킨슨과 마찬가지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출신의 고학력자들이다. 그 때문인지 주로 현장에서 몸으로 코미디 감각을 길렀던 선대의 찰리 채플린, 버스터 키튼 등의 코미디와는 색이 매우 다르며, 스탠드업 코미디의 스킷을 스케치로 확장시킨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와도 웃음의 포인트가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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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다니는 서커스" '''42#s-7화'''에서 정말 잠깐 얼굴을 내민 더글러스 애덤스.[4]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작가인 더글러스 애덤스도 몬티 파이선의 각본가로 활동했다.

2.1. 그레이엄 채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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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1989. "몬티 파이선의 성배" 에서 아더왕 역으로 유명한 사람. 키 193cm에 암벽등반과 럭비를 즐기던 건장한 스포츠맨이었다. 의과대학을 졸업했지만,[5] 존 클리스와 함께 BBC라디오에서 작가일을 하다가 몬티 파이선 팀을 짜게 된다.
TV 시리즈에서는 겉으로 보기엔 고지식하고 올곧을 것 같으면서도 한꺼풀 벗겨보면 완전 싸이코인 캐릭터들, 혹은 군대나 경찰의 높으신 분들을 주로 연기했다. 반면 영화에서는 주연 캐릭터를 맡아서 한지라, 그나마 가장 상식인에 가까운(어디까지나 비교적) 모습을 연기했다. 대표적인 예가 '아더 왕'이나 '브라이언'.[6]
실제로는 TV 시리즈의 모습처럼 예측 불허의 인물이었다고 하는데, 몬티 파이선을 촬영할때도 항상 지각을 하거나 심지어 만취 상태로 나타나 동료들을 당황하게 했다고 한다. 술집에서 바텐더가 주문을 받지 않자 바지 지퍼를 내리고 검열삭제를 꺼내 그것으로 바를 툭툭 두들기며 바텐더를 불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편으로는 영국에서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던 1967년에 이미 커밍아웃동성애자였다. 아예 날아다니는 서커스 스케치(보험설계사 스케치 - 주교 스케치로 이어지는)에서 개그로 써먹기도.[7]
몬티 파이선 해체 후에는 "노란수염"이라는 해적 영화를 만들었다가 완전히 말아먹고, 이후 눈에 띄는 활동은 하지 않다가 1989년에 편도선암으로 사망. 평소 즐기던 파이프 담배가 원인이었다고 한다.[8] 위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술을 좋아하다 알코올 의존증에 걸려 극복하는 데 고생하는 등 건강은 좋지 않았다.
채프먼의 자서전으로 "A Liar's Autobiography" 라는 책이 있다. 채프먼 외에도 동반자였던 데이비드 셜록, 그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9] 등이 함께 집필한 책인데, 동명의 애니메이션도 있다. 제1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상영작.

2.2. 존 클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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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생. 키 '''197cm'''의 엄청난 장신으로, 이 사람 때문에 나머지 몬티 파이선 멤버들이 작아 보인다. BBC 라디오에서 작가로 일하다가 1969년에 몬티 파이선 팀을 짜서 활동 개시.
코미디언으로서는 팀 내에서 가장 위상과 평가가 높다.[10] 코미디 작가로서 클리스의 특기는 블랙 코미디로, 그레이엄 채프먼과 함께 "논쟁 교습", "죽은 앵무새" 등 몬티 파이선의 유명한 블랙 코미디 스케치들을 집필하였다.
코미디언으로서 주로 맡은 캐릭터는 포커 페이스의 독설가나 멀쩡하게 생긴 바보 또는 싸이코 역할. 전자의 경우 특유의 시니컬한 톤의 목소리가 두드러지고, 후자의 경우 그의 큰 덩치가 한몫을 했다. 그의 신경질적이고 시니컬한 고성이 두드러지는 개그는 '죽은 앵무새' 스케치에서 확인해 볼 수 있고, 그의 큰 덩치를 활용한 대표적인 슬랩스틱 개그 스케치로 'Ministry of Silly Walks'를 꼽을 수 있다.
시즌 4에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본인은 시즌 2가 끝날 무렵부터 의욕을 잃기 시작했다고 말한다.[11] 파이선 탈퇴 후에도 활발하게 활동하여, 당시 아내인 코니 부스와 함께 시트콤파울티 타워즈를 제작, 출연해 날아다니는 서커스에 버금가는 수준의 성공을 거두었다. 그 이후에는 대성공한 "완다라는 물고기"[12]를 비롯해 할리우드 영화도 여러 편 찍었으며 자기 TV 프로그램도 인기를 끌었다. 007 시리즈에서는 데스몬드 르웰린의 뒤를 잇는 Q 역을 맡기도 했다.[13] 그 외에도 슈렉 시리즈에서 헤롤드 왕 역, 해리 포터시리즈의 목이 달랑달랑한 닉 역, 샬롯의 거미줄에서 늙은 양[14] 역 등 깨알같이 꾸준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이 들어 수염을 길렀는데 젊은 시절의 그 이미지와는 많이 달라졌다. 노화가 심하게 온 다른 멤버들에 비하면 특유의 중후한 멋이 살아있는 편이다. 2015년에 출동! 도토리 구조대에 미스터 벨우드 역 (더빙)을 맡았다.
몬티 파이선 멤버 중에서 가장 정치 활동을 많이 하는 인물로 노동당을 지지하다 분당 당시 자유민주당을 지지하고 이후 당원으로 가입했다. 이 당시 그가 출연한 정당 지지 방송의 영상들이 있는데 여기서도 개그를 빵빵 터트리는 위엄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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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에릭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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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생. 대학때부터 활발한 연기자였으며 (연극부), 어린이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다가 몬티 파이선 팀에 합류하였다. 특유의 구수한 발성으로 노래도 잘 하고 작곡에도 능숙. 몬티 파이선의 명곡들 중에서 그가 부른 곡들의 비중이 상당한데, 그중에서도 2012년 런던 올림픽 폐회식을 장식한 'Always Look on the Bright Side of Life'은 영국 장례식 애창곡(…)이기도 할 정도로 유명한 사실상 국민가요급의 노래이다.
다만 코미디 작가로서의 내공은 클리스나 채프먼보다 약간 딸렸다는 것이 몬티 파이선 팀 내의 평판이다. 주로 2인 1조로 작업을 했던 채프먼-클리스나 존스-페일린과 달리, 에릭 아이들은 거의 모든 작업을 혼자 했으며 그가 집필한 코미디 스케치는 그 방향성이 다른 멤버들과 약간 다르다. 어느 쪽인가하면 몬티 파이선 특유의 서리얼(슈르라고 칭하기도 하는 그런 유의 개그)함이 좀 덜하고, 전통적인 코미디 감각이 강한 편. 때문에 병맛이 덜하고 알기 쉬운 웃음을 주지만, 그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집필한 개그와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코미디언으로서는 능청스런 코크니 캐릭터(런던 토박이를 가리킨다) 연기가 최고 장기이며, 코믹 타이밍 (펀치라인을 날리기 직전에 약간 뜸들이는 것) 에 있어서는 그를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클리스만큼이나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여, 미국 코미디쇼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SNL)" 에도 종종 출연했고[16] 영화도 몇번 찍었다. 근년에는 "몬티 파이선의 성배" 를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각색한 "스팸어랏" 을 제작하여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목소리 음색이 한국성우 배한성과 꽤 비슷하다.
몬티 파이선 이후에는 뮤지션 Neil Innes와 함께 코미디 쇼 Rutland Weekend Television를 기획, 비틀즈 패러디 밴드인 The Rutles로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17] 밴드는 지금도 활동하지만 아이들은 현재 참여하지 않는 듯.[18]
참고로 아이들의 키는 185cm. 절대 작은 키가 아닌데 클리스와 채프먼 때문에…

2.4. 테리 길리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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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생. 파이선 팀에서 코미디언으로도 활동했지만 비중있는 출연 자체는 드문 편이다. 간간이 조연급으로 얼굴을 보이기는 하지만, 대사가 있거나 비중있는 대사를 하는 경우는 그리 없는 편이다.
파이선 팀에서 그의 역할은 연기보다는 파이선 프로그램 중간중간에 삽입한 기묘한 분위기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것으로 더 유명하다. 사실 그가 프로그램 중간에 삽입한 애니메이션은 어쩌면 전체 프로그램 중에서 가장 병맛이 강한 슈르개그일지도 모른다. 빅토리안 시대의 흑백사진을 가지고 온갖 짓을 하는 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정신이 멍해진다. 이러한 애니메이션은 다른 멤버들의 스케치 사이를 잇는 브리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19], 별개의 스케치처럼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팀 해체 후에는 영화감독, 극작가 등으로도 활약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영화감독으로서의 그의 행보가 유명하다. 길리엄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해당 항목 참조.
키는 175cm. 시대를 감안해도 작은 키는 아닌데...

2.5. 테리 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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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생. 마이클 페일린과 함께 옥스퍼드 학극단에서 활동하다 파이선 팀에 합류하였다.
우스꽝스런 목소리의 중년 여성 연기가 주특기이며, 푸근한 인상 덕분에 중년 여인으로 분장하고 있을 때는 정말로 영국 아주머니같아 보일 정도이다. 그레이엄 채프먼과 함께 중년 여성 2인조로 등장한 스케치가 많다. 그 외에는 스케치에서 주인공 역할보다는 주인공의 바보짓을 옆에서 보조하거나, 주인공의 바보짓에 농락당하는 점잖은 신사 등의 감초 연기를 해 왔다. 연기의 폭이 꽤나 넓은 편이라서 마이클 페일린 못지않게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보통은 당하는 역이거나 주조연급이라서…
날아다니는 서커스에서 가장 탈의씬을 많이 찍은 사람. 아예 "전라 오르간 연주자" 라는 테리 존스 전용 캐릭터가 있을 정도다.[20]
또한 그는 테리 길리엄과 더불어 몬티 파이선의 영화 작품들의 감독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팀 해체 후에도 테리 길리엄처럼 여러 영화에서 감독겸 각본가로 활약했다. 다만, 여러 명작을 남긴 길리엄에 비해 이쪽은 잘알려진 작품이 별로 없는편.
2016년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 인터뷰 조차도 불가능할 정도라고.....
2020년 1월 21일,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영국 런던의 자택에서 친구들과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여담으로 마이클 페일린의 키는 179cm, 테리 존스는 173cm이다.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키는 아니다만.

2.6. 마이클 페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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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년생. 테리 존스와 친하여 대부분의 작업을 그와 함께 하였다. 주 특기는 소심한 겁쟁이 역할 및 조증 환자처럼 푸덕거리는 캐릭터지만 그 외에도 매우 다양한 부류의 연기를 소화하여, 목소리만 큰 멍청이(Mr. Gumby)에서 죽은 앵무새를 파는 사기꾼 점원에 새 일자리를 꿈꾸는 고지식한 답답이에 남의 사생활을 까발리겠다 협박하며 돈을 뜯어내는 뻔뻔한 악당 진행자까지, 담당한 캐릭터의 폭이 매우 넓다. 그의 연기력이 몬티 파이선의 개그가 풍부해진 한 원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상당한 호인인 듯. 다소 괴짜들인 파이선 팀 멤버들이 모두 입을 모아 페일린을 "좋은 사람" 이라고 칭찬하는 것을 보면, 아마 정말 성격이 좋은 모양이다.
모두와 긍정적인 관계인 호인답게 파이선 이후에도 각 멤버의 프로젝트를 돌며 출연했다. 코미디 외에는 세계를 돌며 찍은 십수개의 여행 다큐로 유명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유명해서, 페일린을 주로 다큐 진행자로 아는 사람도 있는 듯.[21] 2018년에 북한도 다녀왔고, 그의 여행 다큐가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통해 방영되었다. 방영 제목은 '할리우드 배우, 북한을 가다'이다.
아버지가 생전 말더듬이었기에 페일린이 그 경험을 살려서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에서 말더듬는 캐릭터 연기를 하기도 했다. 그후 페일린이 말더듬는 아이들을 위한 치료센터 설립에 지원했고 그 센터는 보답으로 기관명에 페일린의 이름을 따왔다.

리즈 시절 당시에는 미소년 갤러해드를 맡을 정도로 곱상한 동안 막내 이미지였는데(실제로도 최연소자였지만)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급격히 노화가 오는 바람에 놀라움을 주었다.
2017년, 영화 스탈린이 죽었다!바쳬슬라프 몰로토프 외무상 역할을 맡았다.
2019년 신년서훈명단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 대상자로 올랐다. 이름 앞에 'Sir'가 붙게 되며 기사 작위를 얻게 되었다. 파이선 멤버 중 유일하게 기사 작위 수훈자다.[22] 참고로 영화 몬티 파이선의 성배에서 니라고 말하는 기사 역을 맡았었다.
여담으로 마이클 페일린의 키는 179cm, 테리 존스는 173cm이다. 당시 시대상을 생각하면 결코 적은 키는 아니다만.

3. 몬티 파이선의 날아다니는 서커스


Monty python's Flying Circus
몬티 파이선이 최초로 나왔던 방송이자 가장 유명한 방송으로, BBC에서 총 4기 45회로 1969년에서 1974년까지 방송됐다.


시즌 1~4 오프닝 영상.
It's-man이 나오는 여러 상황들. 중간에 오프닝도 섞여 있다.
보다시피 오프닝 영상이 무척 독특하다.[23]
1기에선 모든 에피소드에 로빈슨 크루소 비슷한 인상의 사나이가[24] 온갖 상황과 장소에서 힘들게 달려와서 '''"It's…"'''라 힘겹게 외치는 장면이 들어 있다. 그리고 본격적인 오프닝 영상이 나오는데, 테리 길리엄이 작업한 기괴한 애니메이션 영상이 존 필립 수자의 〈자유의 종(Liberty Bell)〉행진곡에 맞춰서 흘러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은 방송의 타이틀 제목을 짓밟는 거대한 발로 장식.
그리고 2기에선 존 클리스가 온갖 뜬금없는 장소에서 아나운서로 나와서[25] "And Now for Something Completely Different" 라는 대사를 외친 다음 잇츠맨이 "It's..."를 외치고 시작한다.[26]
그러나 3기로 가선 위의 잇츠맨과 존 클리즈의 오프닝에서의 비중이 줄어서 존 클리스가 "And Now.." 하면 잇츠맨이 "It's..!" 라고 하는 식으로 바뀌었고, 인기 최하위인 4기에선 아예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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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명한 "몬티 파이선 발". 이 발로 모든 에피소드 오프닝 마지막에 타이틀 제목을 "뿌직"하는 효과음과 함께 짓밟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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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누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 16세기 플로렌스 화가인 아뇰로 브론치노의 작품.
강사 역의 클리스가 바나나, 산딸기를 무기로 든 적을 상대하는 방법 등을 막무가내로 가르친다. 실습에서 보여주는 것은 권총으로 쏘아버리거나 16톤 추로 깔아뭉개거나 짐승을 부르거나[27] 등등. 자세한 내용은 신선한 과일을 대상으로 한 호신술 문서를 참고하자.
미술관에 간 마지와 자넷이라는 두 주부가[28] 미술관에서 말썽 피우는 자식들 뒷담화를 하면서 도중마다 자식들을 때리는(..) 스케치. 참고로 이 자식들 하는 짓이 아주 막장인데 라파엘로 산치오의 아기 예수에게 케첩을 뿌리질 않나(...) 요하네스 베르네르의 창가의 여인에게 검은색 락커를 뿌리질 않나(...) 반 고흐의 작품에 30야드(약 27.4m) 거리에서 침을 뱉질 않나(..) 그것도 모자라 19세기 초의 영국 풍경화가들의 작품을 씹어먹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주부들은 나중엔 자기들도 똑같이 그림[29]을 먹는다(...). 스케치 마지막에 나오는 미술 비평가까지 그림을 씹어먹으면서 비평을 한다(...).
개별 항목이 존재하는 스케치는 하단 주요작품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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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스케치들을 모아서 만든 극장용 영화인 'And Now for Something Completely Different'[30]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단 이것은 이미 TV에서 선보인 스케치의 재구성과 재촬영의 성격이 강하므로 아래의 순수한 오리지널 극장판 영화들과는 다르다.
몬티 파이선 팀의 이름은 이 프로그램의 제목에서 유래한 것이다. 다시 말해 몬티 파이선 팀이 나오는 프로그램이라서 몬티 파이선의 날아다니는 서커스라는 제목이 붙은 것이 아니라, 몬티 파이선의 날아다니는 서커스 프로그램에 출연했기 때문에 그들을 몬티 파이선 팀이라 부르는 것이다.
또한 이 프로그램에 관여한 사람들 중에 "몬티 파이선" 이라는 인물은 없으며, 이는 에릭 아이들이 생각해내 붙인 이름이다. 프로그램 제목이 "~서커스" 이니만큼, 뭔가 속물스럽고 사기꾼같은 느낌의, 서커스 흥행사같은 이름을 붙여준 것.
그럼 애당초 왜 프로그램 제목이 "날아다니는 서커스" 인가? - 날아다니는 서커스는 원래 제1차 세계대전의 유명한 독일 에이스인 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의 부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알록달록한 천막 막사와 화려하게 채색된 비행기들, 그리고 그 비행기들이 공중에서 보여주는 현란한 편대비행 때문에 "리히토펜 남작의 날아다니는 서커스" 라는 이름이 붙은 것. 당시 몬티 파이선 팀을 발굴한 BBC 프로듀서인 배리 투크를 BBC 내에서 부르는 별명이 "배리 폰 투크 남작" 이었고, 때문에 제목을 "배리 폰 투크 남작의 날아다니는 서커스" 라 하려 했던 것.

4. 주요 작품



몬티 파이튼의 성배몬티 파이톤의 삶의 의미는 일본어 더빙이 존재하는데, 작품의 재미를 배가하는 열연을 담고 있어 과거 하이텔 온앤오프에서 몬티 파이톤과 성배의 일본 더빙판에 자막을 붙여 상영한 적이 있다.
일본어 더빙이 있는 이유는, 1976년부터 77년까지 국내 방송이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이런것을 방송한 일본도 나름 용자.[31]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거의 없다가 2000년대 이후 인터넷을 통해 많이 알려졌다. 가장 유명했던 몬티 파이튼의 성배는 DVD로도 발매되었다. 이후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TV판 전편과 성배 및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극장판이 서비스되고 있다.

5. 기타


현재 그들의 모든 작품은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1분 30초부터 유언 관련 얘기가 나온다.
현재까지 여섯 멤버 중 그레이엄 채프먼이 1989년에 가장 먼저 사망하였다. 그러나 뼛속까지 개그맨인 그는 유언으로 동료 존 클리스에게 "자네는 영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Shit을 말한 인물이니, 영국 장례식 사상 처음으로 Fuck을 말한 사람이 되어주었으면 한다."[32]라는 당부를 남겨, 자신의 장례식에서 "Fuck, fuck, fuck"을 외치는 존 클리스와 추모객들이 울면서 웃는 장면을 연출하게 하였다 그렇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웃음을 놓지 않았다.
사실 처음부터 클리스가 사망한 채프먼에게 고인드립과 개그를 친다. 앞부분에는 채프먼이 뒈졌다고 하고[33], 또한 그가 더 많을 걸 이룰 수 있었으나 이른 나이에 요절한 것에 대해서도 '밥 숟갈만 놓는 놈 잘 뒤졌다'[34] (...)라고 한다.

처음에 오른쪽 끝자리 의자에 얹혀 있다가 이내 멤버들 손에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조그만 항아리가 채프먼의 유골함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랐는지 그는 사망한 후에 1998년에 아스펜쇼에서 다른 생존 멤버의 옆자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유골함으로''' 출연하는 개그를 쳐서, 진정한 의미에서 '뼈그맨'을 일찌감치 실현하여 죽어서도 개그를 한 진정한 뼈그맨이 되었다(…). 유족과 동료 모두 그라면 이 개그를 칠 사람이라는 데 동의해서 해당 연출이 이루어졌다고. 죽은 뒤에도 개그를 친, 몹시 보기 드문 경우가 되었다. 게다가 유골함을 실수로 번번이 엎질러서 쏟고는 그때마다 진공청소기로 치워 버리는 개그까지 쳤다(…)[35] 고인은 그에 대한 답례인지, 프로그램 말미에 유골함을 두드리는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낸다(…).[36]
대충 40년쯤 지나서, 인터넷 시대가 당도하여 유튜브에 자신들의 영상을 녹화한 자료들이 올라오자 모두 삭제시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무시무시한 기술로 여러분을 추적해 모두 고소미를 먹일 수도 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우리가 직접 유튜브에 고화질로 올려놓을 테니''' 즐겁게 보시고, 혹시 괜찮거든 우리 DVD 전집이 판매 중이니 관심 좀 가져주세요." 였다. 이 대인배 인증으로 아마존에서 몬티 파이선 DVD 판매량이 '''23000%(!)'''나 치솟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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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기의 모습. 좌측부터 마이클 페일린, 에릭 아이들, 테리 존스, 테리 길리엄, 존 클리스다.
가운데의 여성은 몬티 파이선 시리즈에서 멤버들만큼이나 오랫동안 활동했던 캐럴 클리블랜드.[37]
프로그래밍 언어 Python의 이름은 이 그룹에서 딴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 살았던 고대 비단구렁이 중에는 명명한 학자가 몬티 파이선의 열렬한 팬이라 몬티피토노이데스 리버슬레이엔시스(''Montypythonoides riversleighensis'')라는 학명을 부여받은 종이 있었으나 차후 연구결과 모렐리아속(''Morelia spp.'')에 속하는 종으로 밝혀져 결국 속명이 없어졌다(…).

[1] Python의 발음표기가 각양각색인데, 영화명은 주로 '파이튼'으로 번역되었으나, 현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파이선'이 맞다.[2] Monty Python's Flying Circus[3] 실제로 사우스 파크는 몬티 파이선의 영향을 받았다.[4] 마찬가지로 장신(196cm)인데다 눈매가 비슷한 존 클리스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애덤스이다. 하필 42#s-7화인 것은 당연히 노린 것. 허나 몬티 파이선이 히치하이커보다 4년 먼저다.[5] 케임브리지 대학교 엠마누엘 칼리지에서 의학을 전공하다가 연극 활동으로 인해 학업을 미루고,나중에 세인트 바톨로뮤 의대에 들어가서 학업을 마친다.[6] 영화화 된 Life of Brian (1979)에서는 전라연기까지 감행했다.[7] 그리고 20년 뒤 1988년 마거릿 대처 정부가 ‘섹션 28’ 입법으로 동성애의 공론화를 범죄로 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그동안 가만히 있던 네임드급 퀴어들이 단체로 들고 일어난다. 대표적으로 간달프로 유명한 이안 맥켈런. 1988년 1월 27일 BBC 라디오를 통해서 커밍아웃했다.[8] 위 사진엔 안 나왔지만 찾아보면 대부분 파이프 담배를 물고 찍은 사진을 찾을 수 있다. 맨 위의 테리 길리엄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모인 사진이나 아래 장례식 영상 끝부분에서도 볼 수 있다.[9] 날아다니는 서커스 제4시리즈에서 잠깐 각본을 맡기도 했다. [10] 최고의 파이선 멤버를 뽑으라 하면 제각각의 대답이 나오지만 보통 클리스와 페일린이 가장 인기가 많다.[11] 실제로 시즌 3 말미부터는 초창기의 재기가 퇴색되기 시작해서 시즌 4는 이전 시즌의 절반에 못 미치는 6화로 끝나고 말았다.[12] 이걸로 BAFTA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다만 수상 당시에는 LA에서 마사지를 받고 있던 터라 남우조연상 수상자였던 페일린이 대신 상을 받았다.)[13] 하지만 하필이면 정식으로 Q 활동을 한 게 어나더데이어서… 안습. 게다가 리부트되면서 벤 위쇼가 새로 Q가 되었다. 다시 안습.[14] 참고로 이 캐릭터, 원작에서는 암컷이다.(...) 영화판에서 TS된 것.[15] 자민당의 전신인 사회민주당/자유당 연대 지지 방송으로 출연.[16] 노래를 잘한다는 명성을 역이용, 오히려 엄청난 음치로 등장한다.[17] 이 그룹에 기타리스트로 참여했던 리키 파타르는 비치 보이스 출신 이기도 했다.[18] 그런데 실제 비틀즈의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은 몬티 파이선과 브라이언의 삶 제작 당시 사비를 털어 지원해 준 적이 있다(카메오로도 출연).이로 인해서 조지 해리슨과 몬티 파이선 멤버들은 친했다.특히 이 문단의 에릭 아이들과 가장 친해서,에릭은 조지 해리슨이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입성할 때 폴 매카트니,다니 해리슨 등과 같이 있었다. 그리고 구글에 검색해 보면 사진이 많이 나온다.출처[19] 예를 들어 비너스의 탄생에 나오는 비너스가 춤을 추다(...) 바다에 풍덩 빠지는 장면이 죽은 앵무새 첫 장면에서 어항 속에 비너스 그림과 은박지(가리비 껍데기 대신)가 빠지는 장면으로 이어진다던지...[20] 가끔 이 배역은 테리 길리엄이 수행하기도 했다.[21] 실제로 왕립지리학회의 회장을 맡기도 했었다.[22] 클리스는 페일린보다 먼저 CBE를 받게 되어 있었고 아마 이후 기사작위도 받게 되었을 것이나, 본인이 거절하였다.[23] 영상을 보면 시리악의 영상도 떠오를 법도 한데 아닌게 아니라 그 시리악의 처음 쓴 예명도 '뮤테이티드 몬티(Mutated Monty)'이다.[24] 통칭 잇츠맨. 마이클 페일린이 분장하였다. 1기에서는 오프닝을 기묘하게 장식하는 것이었던 이 캐릭터가 나중에는 본 방송에도 나온다. 한 스케치에서는 링고 스타를 모셔놓고 토크쇼를 진행할 뻔도 했다. 하지만…[25] 해변가에서 등장한다든지 해적들이 보물 숨기는 곳에서 등장한다든지 등등.[26] 잇츠맨이 멀리서 뛰어나오는 장면은 삭제.[27] 산딸기 한줌을 쥐어주고 나머지 훈련생들에게 자기를 공격하라고 하는데, 가까이 오려고하자 미리 가둬놓은 호랑이를 풀어놓는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호랑이는 복숭아를 싫어하므로 괴한이 복숭아를 들고 공격한다면 악어를 이용하라고 한다(...).[28] 마지는 그레이엄 채프먼, 자넷은 존 클리스가 맡았다.[29] <<전함 테메레르의 최후(The Fighting Temeraire, 1839)>>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 作. [30] 이 대사는 시즌 2부터 온갖 뜬금없는 장소에서 데스크 앞에 앉은 아나운서 역의 존 클리스가 내뱉는 대사이며, "몬티 파이선의 날아다니는 서커스" 프로그램의 제목이 될 뻔한 문장이기도 하다. 여태까지의 코미디와는 확연히 다른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자는 파이선 팀의 결의가 담긴 제목인데, 결국 의미불명의 날아다니는 서커스라는 제목에게 밀리고 말았다.[31] 여담이지만 그때 방송한 방송국은 '''그 용자 TV 도쿄.'''(방영 당시엔 도쿄12채널) 70년대부터 용자 끼가 있었다니(..) 참고로 1990년대에 NHK에서 재방영되기도 했다. [32] 참고로 영국 방송 사상 처음으로 Fuck을 말한 사람은 따로 있다.[33] Kicked the bucket, snuffed it 등은 누군가의 죽음을 비하하는 표현인데, 죽마고우인데다가 이런 류의 개그를 치는게 몬티 파이선이어서 문제가 없다.[34] good riddance to that free-loading bastard[35] 참고로 이건 배경이 있다. 영국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의 유명한 멤버 시드 비셔스는 파리에서 사망했는데, 유골함의 형태로 히드로 공항으로 돌아오던 도중에 유골함이 떨어졌고, 에어컨 바람으로 그 재가 사방으로 흩어진 적이 있다. 그런데 섹스 피스톨즈가 1996년 재결성하면서 '''존 라이든이 청소기 드립을 쳤다'''. 이 때 섹스 피스톨즈의 재결성은 대놓고 돈 때문이라고 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이 엄청났다.[36] 참고로 이 개그는 날아다니는 서커스 시즌1 에피소드3에서 나온 적 있다. 이때는 에서 두드렸다는게 다르지만(..) 해당 영상[37] 이분은 날아다니는 서커스에서 유일하게 등장했던 여성이며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 등장했다 주로 색기담당(...) 역할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