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지

 



1. 가공 찌꺼기
2. 비계
3. 扉紙
4. 飛地
5. 신라의 인물 比智


1. 가공 찌꺼기


중국어: 豆渣 (또는 豆腐渣, 雪花菜)
일본어: おから
영어: okara (또는 soy pulp)
[image]
두부두유를 만들기 위해 을 갈아 콩물을 짜고난 뒤 남는 찌꺼기.
조제 과정에서 콩의 단백질지방은 대부분 빠져나가기 때문에, 비지에는 이들 영양 성분이 조금 남아 있을 뿐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섬유질과 수분으로 되어 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돼지의 여물통으로 직행하는 경우가 다반사였고, 보릿고개자연재해, 전쟁 같이 식량이 굉장히 부족한 상황이 아니면 좀처럼 식용으로 쓰지 않았다. 이범선의 소설 학마을 사람들 후반부에서 한국전쟁의 참화에 말려든 등장 인물들을 묘사할 때도 아이들이 비지만 먹다가 죽었다고 나온다. 허기만 채울 수 있지 영양분이 없기 때문이다.
튀김집의 텐카스처럼 부산물에 해당되기 때문에 직접 콩을 갈아 요리하는 콩국수집이나 두부 집에서는 이 진짜 '비지'를 가져갈 수 있게 놔두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다만 비지의 제공 여부로 공장제를 쓰는지 직접 만드는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직접 콩을 갈아서 만들어도 비지를 다른 요리에 쓰거나 해서 내놓지 않기도 하고, 공장제를 써도 따로 비지도 구비해서 내놓기도 하기 때문.
현대 사회에서는 식량 사정이 좋아졌기 때문에, 시중에서 파는 비지는 두부 만들고 남은 부산물보다는 콩에 물을 약간 붓고 되직하게 갈아낸 것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심지어 식감과 풍미를 위해 두부까지 재료로 넣어서 만드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 비지는 그냥 비지 자체를 먹기 위해 만들기 때문에 맛도 괜찮고, 빠져나가는 영양소도 거의 없기에 영양이 풍부한 콩을 원료로 사용한 좋은 음식이 된다. 예전에는 이것을 '되비지' 라고 따로 불렀지만, 20세기 이후로는 이것도 그냥 비지라고 부른다. 다만 오히려 두부 부산물 비지가 더욱 건강식으로 취급받기도 하는데, 대부분 섬유소라 칼로리가 적기 때문이다. 옛날 보릿고개처럼 쫄쫄 굶다가 비지만 먹어서 배를 채우면 영양실조나 걸리겠지만 오히려 비만의 위협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는 열량은 적고 포만감은 큰 훌륭한 다이어트 식품이 되기 때문이다.
찌개나 탕 등 국물 요리 외에 다른 곡식 가루를 섞어 을 빚어서 쪄먹거나[1] 을 지을 때 같이 넣어 비지밥을 만들 수도 있다. 또한 비지죽으로 먹기도 한다. 밀가루를 조금 섞어 튀긴후 설탕을 쳐서 도넛 형태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중동 지역에서는 비지로 반죽을 만든 뒤 동그랗게 빚어 식용유에 튀기는 팔라펠로 많이 먹으며, 서양에서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햄버거의 패티나 인조 고기 등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한다.
집에서 직접 두부나 두유를 만들면 비지가 꽤 많이 남게 된다. 홈베이킹을 하는 사람들은 바짝 말려서 곱게 간 뒤 쿠키식빵 등의 반죽에 넣어 먹는데, 은근히 고소하니 맛있다고 한다. 또 을 부칠 때 넣어 먹어도 꽤 잘 어울린다고 한다. 각자 다양하게 이것저것 시도해보자.
비지도 청국장처럼 발효시켜서 먹을 수 있다. '띄운 비지', 혹은 '비지장'라고 한다. 물기를 잘 짠 비지를 청국장 만드는 기계를 이용하거나 따뜻한 곳에서 2~3일 정도 보관하면 발효가 되는데 이걸로 비지찌개를 끓이면 굉장히 구수하고 깊은 맛이 난다. 냄새도 강해지지만 청국장만큼은 아니며 청국장과는 다른 풍미가 난다.

2. 비계


고기의 비계를 비지라고도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3. 扉紙


속표지를 달리 일컬는 말. 일본에서 자주 쓰는 표현이긴 하나 일단은 표준어이다.

4. 飛地


월경지. 본래 한국도 조선 시대까지는 월경지를 비지라고 했었다. 중국, 일본은 지금도 월경지를 이렇게 부른다.

5. 신라의 인물 比智


삼국시대 중반부, 고구려 장수왕의 남진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백제 동성왕나제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 신라와의 결혼 동맹을 추진했고 신라에서는 이벌찬[2] 비지의 딸을 백제에 보냈다. 당시 신라 국왕은 소지 마립간이었지만 그에게는 혼인 적령기인 공주가 없었는지 비지의 딸을 보냈는데, 이벌찬은 신라 골품제상 가장 높은 관등으로 아마 비지도 왕위에 아주 가까운 고위 왕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의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져있지 않으나, 신라 시대 인질은 대부분 국왕의 3~5촌 사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성왕비의 아버지인 비지는 소지 마립간과 2~4촌 정도 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1] 그래서 나온 속담이 바로 '''싼 게 비지떡이다'''이다. 영양가 없는 비지로 만든 떡은 제일 싸긴 하나 퍽퍽하고 맛도, 영양가도 없기 때문이다.[2] 백제 측 기록에는 이찬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