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1942)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며 종교는 개신교이다.
2. 생애
1942년 경상북도 달성군 동촌면(현 대구광역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해서초등학교, 영남중학교, 영남고등학교, 경북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경북대학교 재학 중이던 1964년 총학생회장으로 있으면서 한일국교정상화회담에 반대하며 6.3 항쟁에 참여하였다.
ROTC 장교로 군에 입대하여 육군대위로 전역하였고, 전역 후에는 영남지역 재야 민주화운동가로 활동하며,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팔공재건학교와 같은 야학을 오랫동안 운영하였다.
3. 정치계 입문
김영삼 대통령이 신민당 국회의원이던 시절, 보좌관으로 들어가 처음으로 정치에 입문하였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추진협의회 중앙운영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서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정호용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할 때 김영삼과 잠시 결별하였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일국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주자유당 박준규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박준규가 재산공개 파동으로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자 치러진 1993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여 노동일 민주자유당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1] 당시 대구직할시 내의 유일한 무소속 국회의원 당선자였고 자전거를 타고 국회로 출근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인데다가 정당에 기속된 다른 국회의원들이 질의하기 힘든 국정 사항까지 과감하게 질의하는 등 탈권위적이고 소신적인 행보를 보였다.
이러한 행보가 긍정적으로 보였는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재선하게되었다. 같은 해 신한국당에 입당하였고 신한국당 대구광역시 지부장(現 대구시당위원장) 등을 지냈다.
그러나 이회창 총재의 비토론자여서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공천에 강신성일에 밀려 탈락하였다. 그래서 같은 비이회창파인 김윤환 의원을 따라 민주국민당에 입당하여 대구광역시 동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강신성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국민통합21을 거쳐 한나라당에 복당하였으나 17대 총선과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계속해서 공천을 받지 못하며 정계를 은퇴하게 되었다.
이후 오랫동안 언론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016년 제20대 총선에서 공천파동으로 새누리당을 탈당,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을에 출마한 유승민 의원을 지지하고 유세를 돕는 등 오랜만에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1, #2 이 때 그는 “내 선거 외에는 선거판에 나타난 적이 없었는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에는 유 의원을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다”며, 새누리당 공천파동에 대해서 “정말 유권자들을 ‘호주머니의 사탕’처럼 취급한 공천”이라며, “유 의원이 압도적으로 당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