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철(배구)

 



'''신영철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신영철의 감독 경력'''
[ 펼치기 · 접기 ]












'''서울 우리카드 위비 감독'''
'''Seoul Woori Card Wibee'''
<colbgcolor=#151e4d> '''이름'''
'''신영철
申英哲'''
'''출생'''
1964년 3월 14일 (60세)
경상북도 울진군
'''국적'''
[image] 대한민국
'''신체'''
178cm|체중 75kg
'''직업'''
배구선수(세터 / 은퇴)
배구감독
'''학력'''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졸업)
경기대학교 (학사)
'''프로입단'''
1988년 한국전력 배구단
'''소속'''
<colbgcolor=#151e4d> '''선수'''
한국전력 배구단 (1990~1996)
삼성화재 배구단 (1996~1999)
'''감독'''
[image] 구미 LG화재-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2004~2007)
[image]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2009~2010/대행)
[image]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2010~2013)
[image]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2013~2017)
[image] 서울 우리카드 위비 (2018~)
'''코치'''
삼성화재 배구단 (1999~2004)
[image] 대한민국 배구 국가대표팀 (2007)
[image]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2009)
'''군복무'''
상무 배구단 (1990~1992)
1. 개요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생활
4. 논문
5. 비판
6.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배구인.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세터였으머, 별명은 '''컴퓨터 세터'''. 선수 시절에는 김호철과 더불어 명 세터(배번: 6)로 잘 알려졌다. 월드 리그 및 월드컵에서 베스트 세터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선수 폭행 사건'''을 일으킨 두 명의 감독 중 한 명이다. LG화재 감독 시절 선수들의 목을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을 가했다. 이로 인해 붙은 멸칭이 '''싸커'''.

2. 선수 시절


대한민국 남자 배구의 리즈 시절김호철, 강만수 다음 세대인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대한민국 남자 배구의 지휘봉을 잡았던 세터다. 플레이 스타일은 극한의 지략 싸움과 변칙, 기교를 중시하는 타입으로 장신 공격수의 호쾌한 오픈 공격보다 손동작을 이용해 블로킹을 따돌리는 짧고 낮고 빠른 토스로 스피드와 맞춰잡기에 능한 변칙 공격수의 활용을 극대화해 게임을 운영했다. 현역 시절에 상무슈퍼리그 우승으로 이끌 때 이재필, 노진수, 오욱환, 김동천, 유병종 등 평균 신장 190cm가 안 되는 단신 군단을 이 테크닉과 조직력으로 이끌었고, 한국전력 복귀 후에는 소속 팀에서는 김성용, 김기회, 차승훈, 심연섭, 국가대표팀에서는 박희상과 이재필 등 단신 공격수의 활용에 매우 능했다.[1] 그래서 신장이 작은 팀이라도 그의 스타일에서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현재 감독으로서 현역 세터 선수들에게 시범을 보여주는데 현역들이 기가 죽는다는 말이 있다.
1994년 세계 배구 선수권 대회 8강[2], 1995년 월드리그 6강 진출 때 주전 세터로 활약할 정도로 국제대회에서도 경쟁력이 있었던 세터였다. 선수 시절 영상(배번: 6)이 일부 남아있다. 게다가 자신의 이름(Shin Young Chul)으로 베스트 세터(Best Setter) 상을 세 번이나 받았다: 1991년 월드리그, 1991년 월드컵, 1994년 월드리그
경기대 졸업반 때 터진 스카우트 파동 때문에 럭키금성, 현대자동차서비스, 고려증권 다 못 가고 만년 하위 팀인 한국전력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신영철의 입단으로 한국전력은 만년 하위 팀에서 조금 더 좋은 팀이 되었으며, 그가 군 복무를 위해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한 1992년에는 상무 배구단 역사상 유일한 슈퍼리그 우승을 했을 때 그 핵심 멤버였다. 그러나 그 때를 제외한 커리어 내내 국내에서 신영철은 그야말로 안습의 꼴찌 팀을 홀로 이끄는 존재였다.
한국전력의 코치로 일했을 때부터 신영철과 인연을 맺었던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부임하면서 그를 플레잉 코치로 영입하여 한국전력에서 신영철을 빼오고[3] 1997-98 슈퍼리그 우승을 차지하지만, 이미 그 때 30대 중반의 나이에 무릎 상태가 말이 아니었던 신영철은 팀의 우승에 그다지 기여하지 못했고[4] 1998-1999 시즌이 끝난 후 공식적으로 코치가 되어 신치용 감독을 보좌하게 된다.
발리볼 레전드 컴퓨터 세터 신영철 편에서 선수 시절의 모습을 조금 엿볼 수 있다.

3. 지도자 생활


<color=#373a3c> ­
우승
­
준우승
<color=#373a3c>­
포스트시즌 진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연도'''
'''정규 시즌 순위'''
'''최종 순위'''
'''경기'''
''''''
''''''
'''승률'''
'''승점'''
'''구미 LG화재 그레이터스 '''
2005
3위/6팀
<color=#373a3c><colbgcolor=#e29144> 3위
20
9
11
0.450
29
2005-06
3위/6팀
<color=#373a3c> 3위
35
16
19
0.457
16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
2006-07
4위/6팀
4위
30
14
16
0.467
14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 '''
2010-11
1위/7팀
준우승
30
25
5
0.833
-
2011-12
2위/7팀
준우승
36
28
8
0.778
80
2012-13
3위/6팀
준우승
30
17
13
0.567
52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 '''
2013-14
7위/7팀
7위
30
7
23
0.233
24
2014-15
3위/7팀
<color=#373a3c> 3위
36
23
13
0.639
65
2015-16
5위/7팀
5위
36
14
22
0.389
47
2016-17
3위/7팀
<color=#373a3c> 3위
36
22
14
0.611
62
'''서울 우리카드 위비 '''
2018-19
3위/7팀
<color=#373a3c> 3위
36
20
16
0.556
62
2019-20
'''1위'''/7팀
<color=#373a3c> 1위
32
25
7
0.781
69
2020-21
0위/7팀
<color=#373a3c> 0위
0
0
0
0.000
0
  • 맡은 팀도 많아서 웬만한 팀의 시즌 기록이 나오는 감독. LG화재, 대한항공, 한국전력에 이어 우리카드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키며 봄을 부르는 남자라는 별명을 다시 증명했다.
  • 자신이 거쳐간 팀을 순위권, 즉 봄배구에 보냈다는 점 때문에 배구계의 히딩크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히딩크도 상대적으로 약한 팀을, 우승을 못 할 지언정 순위권으로 여러 번이나 끌어올렸다.
  •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를 맡는 동안 2007 코보컵에서 준우승했다.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를 맡는 동안 2010년 코보컵에서 준우승, 이듬해 2011년 코보컵에서 우승했다.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을 맡는 동안 2016 청주 코보컵에서 우승했다.

3.1. LG화재/LIG손해보험 시절


5년 간 수석코치에서 머물렀지만 신치용 감독이 삼성화재 감독으로 건재한 이상 감독 기회는 오지 않았고, 2004 시즌 중 노진수 감독이 사임한 LG화재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감독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도 LG화재의 성적은 크게 오르지 않았고, 당시 지역 순회 대회였던 2005년에는 하현용선수를 폭행한 사실이 드러나[5] 6개월 간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 때 선수를 걷어찬 것 때문에, 배갤에서는 신영철을 '''싸커'''로 부른다.[6] 그럼에도 당시 어수선했던 대한항공을 밀어내고 자력으로 3강 PO에 진출했지만, 이듬해 다시 성적이 좋지 않아 결국 계약 기간을 1년 남긴 상태에서 3강 PO 탈락을 이유로 2007년 3월 22일 LIG손해보험에서 해임됐다.

3.2. 대한항공 시절


이후 월드리그를 대비하여 남자배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를 맡은 것 외에는 2년 간 현장을 떠나 야인으로 지냈다. 2009년대한항공의 세터 전담 인스트럭터로 현장에 복귀했고, 이후 대한항공의 정식 코치가 되었다. 2009-2010 시즌 2라운드에 진준택 감독이 건강상의 이유로 사임하자 감독대행을 맡았고 분위기를 전환시키는데 성공하여 5라운드에 정식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2010-2011 시즌에는 팀의 창단 첫 정규 시즌 우승을 차지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삼성화재에 스윕을 당해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1-2012 시즌 역시 정규 리그 2위를 기록한 뒤 플레이오프에서 현대캐피탈을 꺾고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지만, 역시 패배.
그리고 맞은 2012-2013 시즌. 사실상 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지만, 그 부담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시즌의 절반이 지난 시점에서 4위로 내려가자 총감독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해임됐다. 구단의 이와 같은 결정에 수석코치였던 서남원 코치도 함께 사퇴를 했고, 보조코치였던 김종민 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정규시즌 3위, 챔피언 결정전 준우승으로 시즌을 마무리한 후, 대한항공의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3.3. 한국전력 시절


2013년 4월 2일, 친정 팀인 수원 한국전력 빅스톰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7년 만의 친정 팀 복귀. 이로써 2012-2013 시즌 대한항공에서 해임된 지 3개월 만에 다시 프로 무대에 선다. LIG손해보험대한항공을 거쳐 3번째로 감독직을 맡게 됐다.
그러나 2014년 12월 말 단행한 서재덕 - 권영민, 박주형 임대 트레이드를 규정 위반으로 주도하였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됨에 따라 소속 팀의 최근 부진과 맞물려 시즌 중 경질이 유력해졌다. 이전부터 폭행 추문으로 사임했던 전과가 있었던지라 문제시됐었는데, 한국전력의 부진과 함께 규정위반 사태가 터짐으로써 구단은 물론 KOVO 등에 엄벌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어서, 길어도 2014-2015 시즌 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트레이드 철회 사건 후 한국전력 배구단의 단장이 경질되었고, 팀은 오히려 창단 후 최다연승인 '''9연승'''을 하는 등 잘 나가면서 '''3위까지''' 찍었다. 그리고 2015년 2월 26일 대한항공과의 홈 경기에서 3:1로 승리하여 '''첫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에서는 로베르틀란디 시몬 아티스를 보유한 OK저축은행에게 스윕[7]을 당해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다.
시즌 후 한국전력을 플레이오프까지 올린 공로를 인정받아,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
2015-2016 시즌에는 전광인, 서재덕 혹사 논란과 후인정, 방신봉의 의존도가 높은 센터진에 대한 대안 부재를 이유로 남자부에서 거하게 까이고 있다. 그제서야 리빌딩해야 할 타이밍이라고 느꼈는지, 결국 대한항공과 트레이드를 단행해 지명권을 양도하는 조건으로 최석기전진용을 맞바꿨다. 동시에 이 트레이드 때 답이 없었던 세터진도 보강하기 위해 강민웅도 영입하면서 로스터에 자리가 없게 된 후인정을 현역 은퇴 공시하고 트레이너로 전환시켰다. 조만간 권준형이 군에 입대해야 하니.....
2016년 2월 13일 수원 OK전에서 2세트 도중 송명근의 공격 인/아웃 판정 항의+시몬의 포지션 폴트 재심요청 두번 모두 기각되어 리그 두번째이자 남자부 최초의 완전 퇴장 처분[8]을 받았다. 왜냐하면 '''FIVB(국제배구연맹) 규정상 재심요청이 플레잉 동작에 관한 판정이거나 정당하게 적용된 규칙에 관한 것은 부당한 것으로, 심판은 감독에게 구두로 1차 경고를 주며 부당한 재심요청을 반복 제기하면 감독에게 자격상실(완전퇴장)의 제재를 가한다'''고 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때 신영철 감독은 규정을 착각해 세트퇴장만 당할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동시에 KOVO에서 벌금 50만원과 2경기 출장 정지 징계가 나왔으나, 재확인 결과 벌금과 출장 정지는 없는 걸로 정정 보도되었고 후속 징계가 없다고 정정해 다음 경기 출전은 가능해졌다. KOVO가 잘못을 인정한 셈. 이게 왜 논란이었는지는 2세트, 20대 22 시점 포지션 폴트를 참고하자. 이후 경기는 김철수[9] 수석코치가 이끌었다. 다행히도 경기는 3:1로 이겼다. 이후 여러 기사에서 이날 심판 판정과 감독관의 대응에 대해 대놓고 깠다. 한전 측 작전타임(2분 51초)에서 어느 선수가 "저쪽도 인정하는데..."라고 발언했다. 즉, 상대방도 자신들의 실책을 인정했는데, 심판진은 오심을 저지른 셈이다.
2015-2016 시즌 후 우동예 배구 12편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선수 출신 멤버인 양학진을 이용한 속공 토스를 보고 왜 권준형강민웅을 야무지게 조지는지 알 수 있었다는 평.
2016 청주 코보컵에서 한국전력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비록 컵대회지만, 준 프로화 선언 이후 한전의 첫 대회 우승. 개인적으로는 코보컵에서 대한항공의 우승을 맛본 이후 2번째 코보컵 우승이다.
2016-17시즌 종료 후 재계약에 실패하며 팀을 떠나게 되었다.
야인시절 경인일보에서 배구 칼럼을 18회까지 연재했다. # ~ #

3.4. 우리카드 시절


2018년 4월 13일 계약이 만료된 김상우 감독의 후임으로 우리카드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대한항공에서 본인과 함께 했던 네맥 마틴을 코치로 선임했다.[10] 2018년 5월 11일 외국인선수 트라이아웃에서 1순위를 차지해 과거 현대캐피탈에서 뛴 적이 있는 라이트 용병인 리버맨 아가메즈를 지명했다. 신으뜸조근호를 한국전력에 내주면서 윤봉우를 데려왔다.
10월 29일 현대캐피탈 천안 원정에서 무려 셧아웃 승리를 하면서 시즌 첫 승은 빠른 단계에서 신고했다(개막 후 5번째 경기). 11월 4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8~2019 도드람 V-리그 한국전력과 경기에서 3-0으로 승리해 2연승으로 1라운드를 마감했다.
11월 9일 현대캐피탈 전에서는 풀세트 끝에 패배했다.
이후 11월 10일, 최홍석을 주고 노재욱을 데려왔다. 이 과정에서 신영철의 움직임은 놀라움 그 자체였는데, 연봉만 4억에 이름값은 높지만 이제 기량이 하락세였던 최홍석으로, 우승 경험이 있는 데다가 팀을 살릴 수 있는 노재욱을 데려온 것. 가히 우리카드 역사상 최고의 성공 트레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트레이드를 제안한 쪽은 오히려 한국전력이었으니, 서로 이해관계가 잘 맞았던 셈.
11월 12일엔 다시 한국전력을 만나 3-0 승리를 거두었다.
11월 17일 OK저축은행전에서 노재욱의 활약에 힘입어 3:1 역전승을 거두면서 팀이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11]
노재욱으로부터 "세세하게 알려주신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재욱은 공교롭게도 현대캐피탈과 우리카드에서 모두 명세터 출신의 감독을 만났다. 노재욱은 “신 감독님은 세세하게 알려주시고, 최 감독님은 경기 운영을 많이 아신다. 아무래도 두 분 다 세터 출신이라 내겐 많은 도움이 된다. 보고 많은 걸 배운다”라고 흡족해했다.

레프트에서 나경복 - 한성정 - 황경민 - 최홍석(트레이드) - 김정환 등을 시험해보고 센터에서 김시훈 - 구도현 등을 시험해보는 등 (윤봉우는 주전기용) 1라운드는 선수파악의 단계였던 듯 하다. 리베로는 이상욱에게 맡기고 있고 세터는 유광우에 이어 노재욱까지 얻으면서 기용의 폭이 넓게 되었다. 감독 본인은 3~5라운드를 승부처로 생각하고 있는 듯.
그렇게 2라운드를 승점 13점 4승 2패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거두며 1라운드 승점의 2배치를 뛰어넘으며 3위 OK저축은행과의 승점 2점차 4위로 마감. 3라운드에도 이렇게만 해주면 창단 첫 봄배구도 무리는 아니다.[12]
류한준 기자의 배구 라디오에 따르면, 김상우 감독도 우리카드의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인해, 선수단을 물갈이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후임 감독 신영철은 앞뒤 안 가리고 우리카드를 개편해버렸다. 구 드림식스 선수들을 숙청한 셈이다.
이어진 3라운드도 4승 2패 승점 11점, 4라운드 시작부터 포스트시즌 경쟁 팀들(삼성화재, OK저축은행)과의 맞대결에서 모두 승리를 챙기며 4연승과 동시에 3위로 올라섰다.
4라운드에서도 좋은 성적으로 승점 14점을 쓸어모아 2위 대한항공마저 승점 3점 차로 추격하는 등 이대로면 드림식스/러시앤캐시/우리카드 역사를 모두 통틀어 최고의 시즌이 될 수 있다.
1월 중순에 전역한 박진우를 의도적으로 출전시키지 않아 논란거리를 만들고 있다.

'''5라운드에 재밌는 경기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다.'''

1라운드 종료 당시 인터뷰

5라운드 현대캐피탈전에서 아가메즈를 쉬게하면서도 국내선수들만으로 현캐를 때려잡으며 2위로 올라섰다. 봄을 부르는 남자라는 별명이 결코 허풍이 아니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선수단에게 겸손을 강조하는 등 방심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kb손해보험전도 승리하면서 우리카드 역사상 처음으로 5경기연속 무실세트승리와 팀창단 처음으로 5연승을 기록하면서 2위를 탈환함과 동시에 선두 현대캐피탈을 승점1점차로 추격하면서 봄배구를 넘어서 선두도 바라보고있다.
그러면서 2월 12일 끝내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이 주춤한 틈을 타 삼성화재를 잡으며 승점 59점, 리그 '''단독 선두'''로 올라섰다.
2월 16일 승점 60점을 돌파하면서 모든 팀들 중 가장 먼저 봄배구 진출을 확정지으면서 우리카드를 9년만에 플레이오프로 보내는 감독이 되었다.
하지만 6라운드 아가메즈의 부상으로 정규리그 1위는 사실상 어렵고 플레이오프를 대비하는 운영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국 3위.
그러나 플레이오프에서는 또 다시 지도력 부족을 드러내며 2연패로 광탈. 특히 2차전은 남자배구 역사에 남을 졸전이었다. 플레이오프 7연패를 기록. 봄까지는 보낼 수 있으나 딱 거기까지인 남자(…).
2018-19 시즌 후, FA 시장에서 노재욱 및 윤봉우와 재계약을 맺음으로써 집단속에 성공했다. 노재욱, 유광우, 김광국을 어떻게 기용하는가가 관건이다. 그리고 유광우가 대한항공으로 이적하며 주전 노재욱-백업 김광국 체제를 구축했다.[13]
1라운드 5경기 동안 4승 1패를 기록하며 지난 시즌보다도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난 시즌 전력의 반 이상이었던 아가메즈 없이 거둔 성과라는 걸 감안하면 더 놀랍다.
4라운드 들어서는 아예 라운드 전승+창단 첫 10연승으로 우리카드를 선두로 달리게 하고 있다.
그렇게 아예 팀 창단 첫 정규시즌 우승까지 노릴 기세였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잔여 경기들 진행에 지장이 생기게 되었고, 3월 23일에 연맹이 남녀부 모두 시즌 종료를 선언하면서 우카는 25승 7패에 1위로 얼떨결에 정규시즌 우승을 하게 되었다. 이 시즌에 감독상도 수상했다.
국내 배구 잡지 더 스파이크 2020년 5월호 50~57쪽에 인터뷰가 있다.
우리카드와 삼성화재의 대형 트레이드 이전에, 신영철 감독은 고희진 감독더러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이호건을 선택할 것을 요청했다. 신영철 감독은 처음부터 이호건을 기용할 계획이 있었던 것. 고희진 감독은 신영철 감독의 요청에 따라, 이호건을 트레이드 자원으로 사용했다. (제목: 우리카드 신영철 감독, '트레이드의 정석' 집필 성공할까)
신영철 감독의 행보는, 우리카드 전임 감독들의 흔적을 지워버렸다는 점이 눈에 띈다. 팀을 극단적으로 개편하여, 과거의 주전들은 우리카드에 없다. 또한 쟁쟁한 주전에 밀려 벤치나 지키던 하승우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있는 주전으로 키웠다. 전임 감독 김상우(배구)가 무릎을 꿇은 건, 신영철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18-19 시즌과 19-20 시즌 모두 원 포인트 서버로 김정환, 최현규, 한성정 등의 강서버를 기용하면서 '''드디어''' 그도 원 포인트 서버로 강서버를 기용하게 되나 했는데.. 20-21시즌 들어 자꾸 이호건을 원 포인트 서버로 기용하고 있다. 이미 철이 지나도 한참 지난 "범실 없는 서브"를 넣겠다는 전략인데 이게 타이트한 상황에서는 통하겠으나 점수차가 큰 상황에서도 벤치의 한정훈이나 임승규에게 기회를 주기는 커녕 이호건에게 조공 서브나 넣게 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4. 논문


현재 현역 배구 감독들 중 보기 드물게 박사 학위를 갖고 있다. 경기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를, 일반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명이인의 前 SK 와이번스 야구단 사장도 박사 학위가 있다.)

5. 비판


위의 커리어를 봤듯이 그는 분명히 능력 있는 감독인 것은 맞다. 만년 3위였던 항공을 정규리그 시즌 우승을 시킨 것이나, 승부조작 사태로 인해 승점자판기 신세로 전락한 한국전력을 중상위권으로 끌어올린 것은 그의 지도력이 한몫을 했다.[14]
그러나 그 반대 급부로 있는 전력에서 최상을 뽑지만 미래에 대한 준비는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는데, 한 예로 괜찮은 자원이 나오던 드래프트에는 지명을 않거나 지명권을 팔았고 2016-2017 드래프트처럼 대어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은 해에는 지명을 많이 했다. 특히 신영철 감독의 가장 큰 과는.. 남들이 한계가 있어서 버린 카드를 경쟁도 시키지 않고 주전으로 주야장천 밀어줬다는 것이다.[15] 또한 백업을 하나도 못 키웠는데. 심지어 한전에서 버리다시피 한 김진만도 KB에선 간간히 백업으로 등장하고 경기대의 간판이었던 안우재는 원포인트 서버로도 구경하기 힘들어졌다.거기다가 센터에 대해서는 더욱 더 할 말이 없는 것이 2016~2017시즌 센터진에서 주축인 방신봉이 43세, 윤봉우가 36세이며,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하는 전진용이 30줄에 다다랐다. 이런 육성전략의 부재로 로테이션을 거의 돌리지 않고 쓸 놈만 쓰는 방식을 고수한 결과 주전 선수들의 피로와 더불어 풀 세트 접전이 많아졌고 이는 결국 포스트 시즌에서 번번히 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신영철이 가는 팀은 풀 한 포기도 남지 않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을까.
또한 항상 거론되는 것이 큰 경기에 대한 전략 부재이다. 대한항공 감독시절 2010-11정규시즌 우승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빈을 앞세운 삼성화재에 맥없이 스윕을 당하며 무너졌으며, 한국전력 감독이었던 2016-2017 시즌에는 정규시즌에서 현대캐피탈 상대로 5승1패 압도적 우위를 점했지만 포스트시즌에서는 현대캐피탈의 분석과 외국인 선수가 제대로 나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송준호를 레프트로 냈는데 별다른 대책을 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2018-19 우리카드도 한국전력과 다를 바 없이 전력차 지도력차를 여실히 드러내면서 허수봉에게 20점을 먹으면서 참담하게 무너졌다. 이번에도 상대는 현대캐피탈이었다.
과거 선수폭행을 저질렀던 감독들 중 하나로, 심지어 당시 피해자였던 하현용은 신영철이 감독으로 있는 우리카드에서 주장으로 뛰고있다. 21년 연초부터 배구계 학교폭력 폭로 사건이 터지며 이러한 과거 전적 역시 재조명 되고 있는 상황. 그러다보니 이상렬과 같이 현재의 호성적을 두고 당장 나가라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편. 하지만 우리카드 구단이 이러한 여론에 인스타 댓글 닫음으로 대응하면서 우리카드 구단을 성토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6. 기타


2018년에 '신영철 세터상'을 시작하여, ‘2018 제52회 대통령배 전국남녀중고배구대회(이하 대통령배)’의 남고부 결승전에서 우승한 경북사대부고 2학년 세터 허명 학생에게 상을 수여했다. 공교롭게도 이 학생은 신영철 감독의 고등학교 후배로서 첫 수상자의 영광을 안았다. 기사 1, 기사 2
신태용 감독(축구)과 20년지기 관계이다.
[1] 반대로 신진식은 신영철과 잘 맞지 않는 타입의 공격수였고, 성균관대학교 입학 전후까지만 해도 테크닉이 아니라 운동능력으로 배구하던 선수였다. 때문에 국대에서도 신영철이 주전세터이던 시기에는 박희상에 밀려서 교체, 반주전 정도의 위치였다. 이후 최태웅이 국대 세터로 올라오면서부터 국대 주전으로 등극했다.[2] 연도를 보면 알겠지만 원래 축구의 FIFA 월드컵과 비교할 수 있는 최고 권위의 국제대회지만, 대한민국은 줄곧 경기 날짜가 아시안 게임과 겹치는 경우가 많아 병역 특례와 함께 종합대회 우선인 정책에 밀려 세계선수권에 제대로 팀을 구성해 나간 적이 별로 없다. 그것 때문에 국제배구연맹(FIVB)에서 1년간 국제대회 출전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다가 간신히 철회한 적도 있다. 그런 팀으로 이끌어 낸 8강이기 때문에 상당히 의미있는 성적임에도 이 성과는 배구계에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참고로 1978년 4강 이후 세계선수권 최고의 성적이다.[3] 창단 직후 한국전력의 이적 동의를 얻어 신영철을 데려왔지만 다른 팀들의 반발이 일자 1996-97 슈퍼리그에는 경기에 내보내지 않았다.[4] 1998년의 삼성화재는 나쁘게 말하면 용병급 실력자 김세진, 신진식 2명의 뻥배구로 우승하다시피 했다. 위에 서술하듯 신영철의 강점은 낮고 빠른 토스를 앞세운 스피드와 변칙형 배구지만 이는 삼성화재에 맞는 스타일이 아니었고, 하필 상대 팀 현대자동차가 그 해만큼은 장신 블로커들 천지여서 수도 없이 김세진, 신진식이 낮은 토스 때문에 블로킹의 제물이 되었다. 김상우, 김규선이라는 좋은 센터진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활용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승했으니 두 선수가 얼마나 압도적인 실력이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5] 문용관 당시 대한항공 감독도 똑같은 시기에 폭행 사실이 드러나 3개월 간 지도자 자격정지 처분을 당한 일이 있다.[6] 이 때 내부 고발을 했던 이동훈, 황원식, 김종일은 얼마 안 지나 팀에서 쫓겨나다시피하며 상무에 입대했다.[7] 진짜 서러운건 시리즈 0-2 스윕이긴 했지만, 모두 2:3패라는 것. 1차전 1세트(포스트 시즌 한정 한 세트 최다 득점 기록 경신), 2차전 3세트(16:10으로 앞서다가 역전을 당했다.)의 패전이 정말 곱씹을수록 한스러울 정도.[8] 리그+여자부 최초로는 2007-2008 시즌 챔결 4차전에서 황현주 감독이 기록했다.[9] 한일합섬-KT&G에서 뛰었던 김남순 선수의 남편이다.[10] 최근 남자 배구는 서브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현역시절 서브가 훌륭했던 마틴을 코치로 선임한 것으로 보인다.[11] 1세트까지만 해도 팬들이나 선수들이나 또 지겠구나라는게 눈에 보였을 정도. 이에 노재욱을 투입하자 현대캐피탈에서 배워온 다양하고 빠른 토스를 우리카드에 적용시켰고, 그 결과 원래부터 사기였던 아가메즈는 그냥 먼치킨이 되고, 나경복을 제 2의 주포로 활용, 김시훈-윤봉우 센터 콤비의 속공까지 살아났다. 라이트 백토스는 허리로 인해 잘 사용하지 못하지만 사기적인 레프트 토스와 파이프, 속공 등을 이용한 다양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우리카드를 살아나게 하였다.[12] 특히 상기할 점은 6경기 모두 승점 1점 이상을 가져갔으며, 풀세트 패배도 각각 현대캐피탈과 삼성화재 등 상위권에 있는 팀들이었다. 거기에 덤으로 2라운드 마지막 경기 선두 대한항공을 리버스 스윕으로 역전승을 이루어 2라운드를 마친 분위기는 우리카드 창단 이래 최고조라고 볼 수 있다.[13] 하승우는 출전시간이 없는데다 최근에는 제2리베로로 엔트리에 등록되는 등 세터로서의 감각을 지키기 힘든 상황이다.[14] 물론 한전에는 전광인, 서재덕 같은 좋은 선수가 있었고, 대한항공의 전력은 이미 좋지 않았냐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그 전력을 가지고도 만년 3위에 그쳤고, 우리카드의 경우는 신인팀 시절 이보다 더 좋은 선수들을 수급받았는데도 신영철이 오기까지 포스트 시즌에 진출을 못했다. [15] 가령 강민웅의 경우를 들자면 강민웅은 토스시 볼끝이 기복이 너무 심해서 어느 팀에서도 주전자리를 얻기 힘들었고 반짝 잘해도 공격수가 캐리했지 공격수가 삽 들어도 세터 역량으로 풀어나가는 경우를 단 한 경기도 보여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