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루오는 푸른 피를 잇고 있던 듯합니다
やる夫は青い血を引いていたようです
《'''블루 블러드 야루오'''》(ブルー・ブラッド・やる夫)라고도 한다.
2011년 6월 10일부터 야루오판 및 야루오Ⅱ판에서 연재되기 시작한 아스키 아트 작품. 작가는 무모(無謀). 상당한 혐한이지만 작품 본편에서는 그런 성향이 드러나는 부분이 거의 없고(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잡담소 등에서는 상당히 혐한 성향을 드러내서 작가의 성향을 알게 된 후 작품에 정이 떨어졌다는 한국 독자도 있는 편.
중세 유럽 12~13세기의 신성 로마 가미라스 제국[1] 의 한 구석 산골마을에서 촌장의 양자로 자란 소년 야루오. 갑작스레 자신이 사실 영주의 사생아로서 푸른 혈통[2] 을 잇고 있으며, 그걸 위해 영주가 되어야 한다는 소릴 듣고 그를 위한 교육을 하기 위해 강제로 공국 수도로 끌려간다. 장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음에도 다짜고짜 정략혼을 하게 되고, 이후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가며 조금씩 영주귀족으로서의 삶을 배워나간다는, 전체적으로 이런 영지물의 정석 같은 전개다.
그러나 스케일은 '마을 하나를 다스리는 소영주' 레벨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특징. 수십 명 징병에 마을이 휘청휘청하고, 한 명이 죽어나갈 때마다 거기에 따른 피해가 얼마나 심대한지가 꽤 자주 언급된다.
그런 의미에선 리얼계지만, 동시에 갑옷의 경우 플레이트 아머가 단순하게 메일의 상위 갑옷 취급받으며 무게가 100킬로그램 단위가 된다거나 하는 판타지적 인식/고증 오류도 남아있다.
2016년 4월 20일 부로 205화가 연재되었으며 본편보다 많은 외전이 있는 것도 특징. 매 본편마다 중세 유럽의 문물 및 세계관을 설명하는 앵커 단편을 하나씩, 그리고 번외 단편을 내키는대로 몇 개씩 올린다.
연재는 야루오판이라 자주 바뀌는 관계로 역대 스레를 다 찾기는 어렵다. 일단 205화 시점에서 본편 스레 159번째, 잡담 스레 165번째. 푸른 피 위키도 참고.
일반 독자는 마토메 사이트를 보는 것이 편하다. 정리 사이트 #1, [3] 에서 볼 수 있다. 국내에선 현재 타입문넷에서 번역되고 있다.
2017년 6월 말을 마지막으로 작가가 실생활이 바빠져서 업데이트가 되고 있지 않다. 올해 중으로는 복귀할 것이라는 언급만 있는 상황이다. 2018년 1월 초에 연재가 재개되었다.
중세 12~13세기 독일을 모티브로 하고 있고, 고증 면에서 꽤 훌륭한 편이다. 작가 발언에 따르면 국력적으로는 건국 당시의 작센·코부르크, 왕족의 기질적으로는 바이에른·비텔스바흐를 참고하고 있다고.
물론 신성 로마 제국의 제도를 완벽히 모사한 건 아니고, 대충 중세 유럽 전반의 일반적 사항을 적용한 것도 많다. 독일 내에서도 지역마다 풍습이 매우 다른 경우가 많고, 반대로 중세 유럽풍으로 알려진 풍습이 독일과 상이한 경우도 많아서, 앵커 단편에서도 딱 이렇다 단정짓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순수하게 유럽쪽 고증만 있다기 보다는, 중세 일본적 관념이나 풍습이 상당히 보인다. 작가가 일본인이니 생기는 어쩔수 없는 고증오류도 있겠지만, 작가의 해박함을 볼 때 주요 독자층이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이해의 편의를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들에게 익숙한 관념이나 풍습을 적용한것으로도 보인다. 직접 읽어보고 각자가 판단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양판소보다는 훨씬 나은 고증을 보여준다.
궁정 귀족들 역시 위계에 따른 기본 봉급(연금)에 더불어, 실제 직업이 있는 경우 그에 따른 봉급이 따로 들어 온다. 하급 기사들은 연금만으로는 입에 풀칠하기 빠듯하므로 안정적 일자리에 목을 맨다. 궁정 고위 귀족은 상인이나 하급 귀족 상대로 돈놀이를 해서 자금을 벌고, 재개발 정보를 미리 파악해서 땅을 사들이는 식 으로 돈을 번다.
중세 신성 로마 제국에 한없이 가까운 신성 로마-가미라스 제국[4] 내의 페이트 공국이 주무대. 인근 국가로는 전투민족인 쿠시로를 비롯해 지온, 네르프가 있다. 주변국과 계속해서 작은 교전은 발생중이며 10년 전쯤 쿠시로와 대규모 전쟁이 있었으며 그때 야루오의 아버지인 쿈이 전사했다.
원래 페이트 지역은 공국 없이 여러 백작, 자작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들 중 하나였던 후유키의 백작 웨스트가 말 그대로 '''현찰박치기'''[5] 를 시전하여 페이트 지역의 선제후가 되면서 페이트 공국의 역사가 시작된다.[6] 돈의 힘으로 선제후가 되었기 때문에 주변 공국들의 질투를 사게 되어 그들의 침략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모두 격퇴했다. 항목에 나와있다시피 선제후들은 (명예직이긴 하지만) 제국 궁정 직책들을 갖게 되는데, 페이트의 선제후는 그 중 제국 시종무관(마셜)의 직책을 갖고 있다. 무력이라면 쿠시로가 더 강할 거 같지만, 의외로 페이트도 침공 받으면 전부 물리치고 영토 손실이 없는 강국. 경제력이나 타고난 지력에서 뒤떨어지는 쿠시로가 그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정책을 밀고 있단 묘사가 암암리에 나오는 걸 보면[7] 종합적인 국력으론 쿠시로 이상가는 강국이다.
페이트 공국의 공도(수도)는 후유키시. 후유키시에 적을 올리고 있는 공식적인 인구는 2천, 이는 귀족, 상인, 여행자와 유랑민 등 유동인구를 뺀, 공적으로 후유키에 납세하는 정식 시민 자격을 얻은 자들의 숫자다. 시민은 아니지만 합법적으로 머무르고 있는 인구는 훨씬 더 많다.
공도를 4분할 했을때, 공국이 성립하던 시기부터 공도였던 북서부에 왕성이 있다. 그 다음으로 북동, 남서, 남동 순서로 도시가 확장. 일시 개발이 아니라 시대가 흐르며 서서히 확장해나간 사정 상, 대부분의 구역에 귀족과 서민이 섞여 산다. 하지만 직위를 받은 제대로 된 고위 귀족들은 전부 북서부에 거주지가 있고, 순위가 낮은 귀족들은 북동이나 남서에 집이 있다가 서열이 오르거나 직위를 받으면 북서로 이사가는 편이다. 남동은 유입 인구로 무분별하게 확장해 있는 슬럼가. 이 지역에는 일반인들도 잘 들어오지 않으며, 치안이 나쁘다. 소수의 가난하고 직위가 없는 기사들(예: 라 뉴속데 가)의 거주지가 이 슬럼 경계선에 있다.
현제 페이트 공국은 크게 왕세자파, 공녀파, 공작파로 나뉘어져 차대 공왕위를 노리고 있으며 그외에도 파벌, 가문 등 다양한 세력으로 정쟁중이다. 작위 소유 귀족은 27개 가문이 있다. 왕실과 왕가 계열인 레테 공작가는 빼고, 타카미네(재무 대신), 드라군(법무 대신), 죠스타(실제 후작가) 세 가문이 후작 급으로서 공국 내 최고 고위 귀족. 코이즈미 가는 준남작으로서 작위 귀족 중 말석이지만, 기사단 부단장에 공왕 친위대 출신, 실제 군사력과 영지 규모 등의 여러가지 위상이 겹쳐 실제로는 백작급 위상은 있다.
정치 체제는 공왕 휘하에 대신과 참의, 기사단장이 중앙 정부의 최고위 통치 수뇌부로 자리잡고 있다.[8] 국가 행사와 주요 의제는 이들이 참여한 궁정 회의로 이루어진다. 중세 봉건국 답게 왕의 위치는 절대자가 아니라 제후들을 중재하는 "제후들의 대표자"적인 역할. 각 지방에서의 실질 통치와 치안 유지 및 방어는 그 영역을 다스리는 제후의 일이다. 특히 변경백은 국경선 경계와 전투 역시 담당. 제후들은 자기 영역에서만큼은 왕 못지 않은 지배력을 발휘하나, 공국 정부에 직접적 영향력은 없다. 해당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로서 중앙의 협조 요청을 받거나, 지역을 대표하는 강자로서 조정에 임하는 정도. 지방 영주의 독립성이 강한 터라, 공국 전체가 참여해야 하는 전쟁이 벌어졌을때 부대 편성이 각 세력 별로 쪼개지며 지휘 체계에서도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쿠시로 전에서 자기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소집에 응하지 않거나 명령을 거부한 사례가 왕왕 있다.
공국 직할의 중앙 기사단 "녹림 기사단"이 존재한다. 종교 기사단인 성 요한 기사단 등과는 별개의 것이다. 가도 경비나 산적 퇴치, 전시 동원 등의 중앙 개입이 필요한 군사 업무를 담당한다. 또한 공도에는 경찰과 공국 직속군/파견 병력의 역할을 겸하는 "왕도군"이 있다. 왕도군은 군대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상비군이라기보단 여기저기 빌려주거나 동원하는 일용직 알바 같은 느낌으로 위상이 꽤 약하다.
페이트 공국의 변경, 서쪽 레테 공작령과 남쪽 네라 자작령 사이에 있는 초르란드 산괴 한가운데 위치한 유일한 마을. 공국 제일의 험지에 위치한 깡촌으로, 마을 인근에 곰, 늑대, 멧돼지가 나올 정도로 험지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걸어 이틀이면 아에 호수에 도착한다. 초르란드 산괴를 나오는데 걸어서 사흘, 여기서 다시 번화가라고 부를 수 있는 좀 큰 마을이나 도시가 있는 곳까지 사흘, 거기서 공도까지는 다시 그만한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바이퍼에서 공도까지 편도 거리는 약 2주 가량 걸리는 것 같다. 아미와 같은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공도에서 바이퍼까지 15일, 체력 좋은 하루히는 12일이 걸렸고, 뉴속데 사람 중 발 빠른 사람들이 중간 경로를 무시하고 최단 속도로 달리면 10일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광대한 초르란드 산맥 덕분에 적국과 직접 접촉은 없지만, 아에 호수 너머로는 쿠시로 사이야 자작령, 지온 오뎃사 자작령까지 접해 있으므로 동북부 최전선 국경 영지이긴 하다.
인구는 250명(+모래 50명) 가량, 영지 세입은 80인 부지(은화 320매) 정도.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어져 있고, 마을 중간을 흐르는 물길이 있다. [9] 대장장이와 목수(특히 건축을 담당하는 대목), 도공이 있고 관혼상제를 위한 교회도 있고 영지를 비호하는 어용 상인도 있는 등 의외로 영지로서 자생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구색은 맞추고 있다. 하루히의 말처럼, 영주가 겪게 될 것은 궁정 예법 외에 웬만한 것은 다 바이퍼에서 겪고 배울 수 있는 규모. 의사 역할을 하던 투스쿨이 빨리 죽고, 뒤를 이은 에루루는 실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는데, 중세 평균 수준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해도 보통은 될 것이고, 중세 이슬람 의학 수준은 되어 보이는 요시카가 이웃 마을에 있으므로 이쪽으로도 형편이 나아질 것이다.
초대 영주인 도야가오의 혈통은, 가문 초대 야루조(하급 세습 기사) → 아삼 → 초대 바이퍼경 도야가오(여기서 do오의 라 뉴속데와 결별) → 이쿠오 → 쿈 → 야루오(뉴속데가 6대째, 바이퍼경 4대째) 가 된다. 가문의 상징은 멧돼지. 도야가오 경이 초르란드 조사에서 조우했던 멧돼지에서 강한 인상을 받아서 정해졌다고.
국경선에 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 상 뉴속데 가는 전시에는 최전선 영주로 참전하게 되며, 실제로 2대 이쿠오와 3대 쿈이 쿠시로와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인근 영주들이나 국경 영지 영주들도 전쟁터에서 전사한 사례가 별로 묘사되지 않는 상황에, 2대가 모두 대-쿠시로 전에서 전사했을 정도면 '전쟁 영웅 가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쿈의 경우 현 공왕의 지시에 따르다가 전사했고, 이 전투는 인근 대영주의 영지를 찌르고 들어온 기습을 막는 전투였으므로, 공왕과 대귀족들도 뉴속데 가문에 빚을 진 것이나 다름 없다. 3대 쿈이 자식이 없는 젊은 나이에 전사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영지가 공국에 회수당하고 대관지로 전환되었으나, 숨겨진 서자 야루오가 나타나면서 가문이 부활한다.
뉴속데 가의 바이퍼 통치 기간은 도야가오 30년(천수를 누림), 이쿠오 15년(전사), 쿈 7년(전사), 합계 52년간이다. 이후 15년간 대관 통치, 야루오가 나타남에 따라 뉴속데 가가 부활.
영주인 뉴속데 가는 초르란드 산괴 전체에 대한 감독권, 조사권을 가지고 있다. 순수한 실제 지배 영지(데 팍토)는 마을 뿐이지만, 이 권역까지 다 따지면(데 유레) 백작이나 자작같은 상위 귀족령 급이다. 명목상 영지가 넓어서 좋은 점은 험난한 지형이 자연적 방벽이 되어준다는 것 하나 뿐이고, 실제론 험난한 지형이 지역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각종 사고와 맹수로 생활 자체가 위험할 때도 있고 이 영역의 조사 관할(산적이 나오는지 순찰 등)까지 맡아야 하므로 골치만 아프다.
현재의 바이퍼 경은 십기장 급에 해당한다.
총 영지 세입 은화 320닢 중에 가신과 고용인들의 인건비로 96닢이 소비되고, 식비를 포함한 영주 일가의 생활비는 영민들이 바치는 물납으로 충당하므로 사실상 없음. 나머지 56인 부지(은화 224닢 상당)이 전부 영주의 수입이다. 이것을 영지의 개척에 투자하거나, 저축하거나, 개인 용돈으로 소비하거나 등 어떻게 쓰는지는 영주의 자유.
원래는 바이퍼령 촌민들은 쿠시로 샤이아 자작령의 펭귄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 사람들이었으나, 당시 영주 프리더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주민들(+영주의 종사. 종사마저 배반할 정도로 개판이었다. 종사들은 탈주 과정에서 모두 사망)이 일제히 도망쳐서 페이트령의 초를란드 산괴 한가운데에 자리잡게 된다.
영주로부터 탈주했기 때문에 영주가 없었던 마을이었으나, 초르란드 산괴의 조사를 맡으러 와서 산적들과 산악수렵민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준 7위하 궁정기사 도야가오 라 뉴속데에게 영주가 되어달라 청하면서 페이트 공국에 정식으로 편입한다.
이 과정은 사실 바이퍼 백성들이 도야가오를 선택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도야가오가 영주가 되지 않는다면 일전을 결할 각오로 중무장 하고 상경해서, 살벌한 분위기로 시위를 벌여 승인 받는 상황을 유도해냈기 때문이다. 워낙 험한 삶을 살아갈 때[10] 나타난 도야가오의 도움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도야가오와 그 후손들인 영주와의 결속이 단단한 편이다. 뉴속데 가문 역시 단순한 장식용 윗대가리가 아니라, 대대로 영지를 위하는 유능한 영주이기도 했다. 현재까지 뉴속데 가문에서 나쁜 영주가 나온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나쁜 영주(펭귄 마을 시절의 프리저)의 폐해와 영주 부재(마을 성립 초기와 쿈 전사)시의 폐해를 모두 겪었다보니 뉴속데 가문처럼 말이 통하고 유능한 영주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뉴속데 가에 대한 충성심은 있지만, 원래 영주에게서 탈주했던 과거를 지녔기에 꽤나 독립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 마을 탈주의 역사를 구전하고 있고, 바이퍼 마을의 원 출신지와 탈주 방법은 뉴속데 가에도 비밀로 하고 있다. (야루오는 태생의 특수성으로 알고 있지만) 고로 영주가 다시 압제한다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
촌장급인 명주들이 실질적인 마을 관리 업무를 맡고 있으며, 푸른 피와 붉은 피의 구분을 통해 귀족이라도 서민의 세계의 규율에 함부로 간섭하지 않는 영역이 있음을 강조한다.
다만 영지 자체가 비경이나 다름없기에 외부에서 오는 이들을 극도로 꺼리며 하쿠오로나 오보로, 정체를 숨겼던 야루오 같이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사람들도 외지인이라는 낙인을 찍고 대하는 무의식적인 풍습도 있다. 나름 단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르나 옆 영지가 개척되는 지금, 문제가 될수도 있다.
(모래를 제외하고) 한 번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인구의 1/10인 25명 가량인데, 이는 같은 숫자의 남성 전력을 방위병력으로 마을에 남겨두는 것이 전제이므로, 농한기에 총동원을 벌인다면 최대 60명까지도 동원 가능. 여기에 여성 역시 궁술을 익히므로 마을 수비 시의 전력은 더 커진다. 영주 관저에는 200인 규모의 병력이 머무를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전대 영주가 왕태자 친위대를 주둔하게 했던 시설이다. 즉 기사 십인장 급 전력을 유치할 수 있는 시설과 규모를 갖추었다. 전시에 유용하게 쓰인 것으로 추정.
공국 제일의 험지에서 생활하던 만큼 평지 사람들과 체력 차이가 엄청나서, 평지 사람들에게는 산악 민족으로 불릴 정도. 평지의 병사나 사냥꾼들의 체력이 바이퍼 주민들에게는 아이들 수준이다.
초대 영주 때부터 농업 외에도 수렵을 장려해, (아이와 여성을 포함해) 마을사람 전체가 활 실력, 덫 실력이 꽤 좋다. 중세 유럽의 일반적인 영지에서는, 숲은 영주의 것이라 수렵이 금지되는 일이 많았다. 적어도 밀렵감시관 같은 직책을 두어서 함부로 사냥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바이퍼에서는 막기는 커녕 영주의 허가를 취할 필요도 없이 아무나 사냥해도 된다. 활과 산도(혹은 낫칼) 같은 무기로 쓰일 수 있는 도구의 휴대 역시 규제되지 않고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궁술을 배운다. 마을 목책만 벗어나도 들개나 곰 따위가 어슬렁거리는지라 활은 호신용으로 반드시 휴대한다고 한다. 대부분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기에 현 울리는 소리만 들려줘도 도망간다고.
이 요소가 결합해, 바이퍼 영지병은 산악엽병으로서 압도적 장거리 화력과 기동력을 보여준다. 라이토는 이 영상의 걸으면서 쏘는 것은 좀 어렵지만 이런 연사 속도는 구사할 수 있다고. 짙은 숲 속에서 쓰기 위한 반궁(소형 활)이 주무장이므로, 활의 사거리는 그렇게 월등하지는 않으나 기동성이 매우 우수하며, 전반적으로 조준 솜씨가 좋으므로 밀림 내의 게릴라전과 '''시가전, 근접 육박전'''에서 궁술을 사용할 수 있다. 장년층은 의외로 대 쿠시로 참전 경험자들이라 전술적 움직임에도 익숙하다. 육박전 능력만 제외하면 실력은 확실히 뛰어나다. 역으로 말해 육박전 상황은 바이퍼 병력에게 있어 사망 플래그. 하지만 신 뉴속데 가의 1차전이었던 메드로아 방위전에서 산적들을 물리친 것도 결국 육박전이었으므로, 상대 전력에 따라서는 못 싸울 정도는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육박전을 위한 중장비(갑옷, 방패, 장병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관련한 훈련을 한 적도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다들 힘 좋고 날렵하니 마찬가지로 경무장에 서투른 산적 정도라면 두들겨패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만 중장보병대와 근접전이 붙었다가는 박살난다는 것. 작중에서는 거의 무적처럼 묘사되지만 이는 작가도 말했듯이 유리한 전투만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강력한 정찰능력과 기동성을 보유하고 있기에 이니셔티브를 잡기 쉬워서 유리한 전투만 골라서 하기 좋은 점은 비교할 수 없는 강점. 실제로 대부분의 전투에서 선제 공격을 수행하였다.
이 사실은 뉴속데대와 동행한 기사들도 깨닫고 있어서 어디 사냥꾼 한 명 안 떨어져 있나(...) 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다. 그러나 현실은 이웃마을 사냥꾼도 사냥꾼 아가씨도 전부 산 속으로...
사실 육박전의 경우, 기사인 뉴속데 가문이 창시한 바이퍼류 전투법이 따로 있었다. 왼손에 방패를 들지 않고 활을 계속 쥔 채로, 오른손의 검을 놓지 않고 (아마도 역수쥐기인듯) 엄지 검지 중지로 화살을 잡아 활을 쏘면서 간격을 조절, 육박하면 그대로 쥔 검으로 대응하는 원근을 겸하는 전투 스타일. 초대 도야가오가 고안했지만 일반적인 장검을 든 상태로는 검이 시위를 자른다든지 걸리적거린다든지 애로점이 많아서, 아들 이쿠오가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자고 설득해서 정글도 타입의 짧은 검으로 바꿔서 스타일을 완성. 그리고 쿈은 전쟁터에서도 활약할 수준으로 실력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쿈이 전사하면서 기술이 단절되어, 현재의 야루오는 이 전투법을 모르며 궁술로만 싸운다.[11] 이 스타일을 견학한 아처도 따라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고 한다. 쿈에 의하면 만능 스타일 같지만 검이 짧아서 육박전 시에 퍽 불리하다고.
작가의 바이퍼의 부농층은 보통 농촌의 중농과 엇비슷하단 발언을 보아 마을의 경제적 수준은 가난한 수준인 듯 하다. 읽다 보면 알겠지만 땅은 척박하면 척박하지 절대로 비옥하진 못하고 주변엔 적대적인 야만족과 위험한 맹수가 떼거지로 발호하고 있고 가장 가까운 이웃 영지로 통하는 길은 외부인이 보기엔 길인 줄도 몰라서 마을 사람이 안내해주지 않으면 조난당할 정도로 비경에 위치해 있다. 세입이 1년에 320매 수준이다. 중간에 나온 포프의 메드로아는 마을의 규모도 절반에 불과하고 부유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강조되는 마을인데도 불구하고 세입은 200매다. 바이퍼의 빈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딱히 특산물이랄만한게 없어 경제 부흥을 일으키기 어려워 보이는 것이 경제적인 고민. 이때문에 하루히는 광맥을 개발하려 했으나 저위 광맥만 나와 소득은 없다. 직접 제련하는 것보다는 인근 대영지에서 철광석을 사 오는게 훨씬 경제적.[12] 마을로 접근하는 길이 외지인에게는 짐승길이나 밀림으로 보일 정도로 험한지라, 경제 부흥의 기초인 길 닦는 것부터 큰 난관이다. 고로 바이퍼 마을의 세입은 통행료나 물류 유통 등의 외부 경제와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농업과 가죽 판매에 의존한다.
물론 뭔가 광맥 같은 게 발견된다고 해도 개발할 자금도 인력도 없는 관계로 인근 대영주들의 자금원조를 통해 권리의 절반은 빼앗기는게 기본사양이다. 좋게 말하자면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지만... 양판소라면 미개척지에서 미스릴이 쏟아지고 금괴가 굴러다니며 순식간에 영지를 발전시켜 데 유레 권역을 전부 데 팍토 영지로 바꿔놓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광산 하나 개발하려 해도 긴 투자가 필요하고 막상 광맥을 발견해도 이윤이 나지 않는 저위 광맥인 등 현실적 실패가 수두룩한지라, 마을 하나 새로 개척하는 데도 뼈가 빠지는 과정이 유감없이 묘사된다.
다만 지역이 지역인 만큼 모피 같은 것은 타 지역에 비해 꽤 싸고 쉽게 입수할 수 있고, 마을 처녀들이 직접 만든 향수[13] 같은 잔잔한 묘사를 보면, 포텐셜은 은근히 있어 보인다. [14]
목축업을 하기에는 산세가 너무 험한데다가 맹수가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려서, 수 차례 실시했으나 맹수에게 물려가거나 가축을 노리는 맹수가 침입해오는 문제 때문에 채산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우유를 짜거나 버터를 만들기도 어렵다.
외딴 지역이라 설탕의 수입 비용도 굉장히 비싸다. 하지만 바이퍼는 유럽 메이플에서 수액을 뽑아 메이플 시럽을 만들수 있고, 벌꿀도 쉽게 딸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굳이 양봉을 하지 않아도 각 가정이 자가로 벌꿀을 딸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모양. 메이플 슈거를 만들어 팔기에는 연료 땔감이 너무 들어서 채산성이 안 나오지만[15] 일단 시럽과 꿀을 이용한 제과나 젤리 제작은 쉽게 할 수 있는 환경. 때문에 요리사 출신인 야라나이오는 평지에서는 부자나 먹는 설탕졸임 과자 계열을 바이퍼에서는 서민용/종군 병사용으로 제작을 시도해보고 있다.
야루오는 엘릭가를 끌어들이고 멀더와 룩스 개발이 진척되면서 인근 지역을 아우르는 최초의 시장을 열었다. 깡촌이니 이러쿵저러쿵 해도 일단 우메오카 상회-오푸나로 이어지는 어용 상인이 있고, 정주 예인도 있으며, 공도 출신의 상가 경험자 야라나이오가 바이퍼의 간부이며, 영주 야루오와 바이퍼 명주들이 마을 부흥을 위해 적극 투자하고 있는 덕분에, 시장 제 1회는 시장 다운 구색은 맞추는 정도로 개최 성공했다. 엘릭가에서도 시장 후발주자를 노리고 있으나 바이퍼만큼 투자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노하우를 가지지도 못한 관계로 당분간은 우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상업적으로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야루오가 굉장한 투자와 배후 조정을 거치고도 간신히 모양새만 내는 정도의 상황이다. 장사 참가자들도 인근 최초의 시장이니 관망을 위해 왔을 뿐, 시장으로서 독립할 정도의 거래가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주요 거래는 시장 부흥을 장려하기 위해 영주와 명주의 투자 거래 뿐... 이벤트로 아밍과 하루히가 도박이나 복권 등의 안건을 마련했으나 결국 미끼상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공도 출신자들의 냉정한 관점으로 봐서는 그저 시골 마을끼리 서로 물물교환하는 정도다. 공도로 머나먼 출장을 가기보다는 바이퍼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이익인 경우, 그리고 장차 멀더가 내놓을 의약품 같은 여기 아니면 구하기 힘든 확실한 특색 상품이 나와주어야 시장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문제로는, 일단 납치에 가까운 형태로 갑작스럽게 공도로 끌려가서 영주 자리에 앉혀진 야루오와 그런 야루오를 이해하는 젊은 청년 세대, 그리고 야루오에게서 쿈의 그림자를 보는 장년 세대와의 감정적 골이 패여 있다. 한편으로는 외부인과의 거리감을 갖는 깡촌의 폐쇄성도 심하다. 마을에서 거주한지 십수년이 지난 야루오나 오보로, 하쿠오로에 대해서도 은근한 차별의식이 드러나는 사례가 있다. 특히 외부와 접촉할 일이 적은 여성들의 폐쇄성은 심각한 수준. 그나마 외부로 나가서 세상을 보고 온 젊은 세대[16] 는 조금 더 개방적이다.
페이트 남쪽에 위치. 작품 초반에 800의 병력으로 그리드 아일랜드 자작령을 침공해, 메드로아를 구조할 여력이 없게 한 원인이다. 곤의 재빠른 대처와 슈드나이가 이끄는 지원이 빠르게 도착해 병력의 우위가 뒤집히자 협정을 맺고 철수한다.
페이트 북동쪽에 위치.
페이트 북쪽, 레테 대하 너머에 위치.
뇌근의 나라. 공국내에서도 분쟁이 있으면 결투나 주먹다짐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크며 건수만 있으면 주변국 국경을 침범해서 주변국들로 부터 야만인이라 취급을 받고있다. 국내 개척엔 한계가 있고 영민들은 늘어나 궁핍해지기 쉬운 환경이라 외국의 영지를 뺴앗아 영토를 늘려 국민을 부양하고 국내의 불만을 해외로 돌리려는 경향인 것 같다. 전쟁을 과잉인구의 조절책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듯. 덕분에 몇안되는 두뇌파들만 고생 중.
쿠시로의 침공은 작중 가장 굵직한 줄거리의 시작이 되는 신호탄으로 스토리 개시 15여년 전의 레테령 침공,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다시 침공을 계획 중이다. 유독 페이트와의 마찰이 심한지 로마제국 내에서도 정치적 공작과 마찰이 간혹 묘사되며, 페이트 측에서 경제 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쿠시로의 서쪽, 도르크의 북쪽에 위치. 페이트와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지는 않다. 원래는 아트림에 소속된 제후였으나 반란을 일으켜 독립했다.
페이트의 서쪽에 위치. 토르메키아와 마찬가지로 아트림에 소속된 제후였으나 반란을 일으켜 독립했다.
페이트 서쪽에 위치. 인구나 규모는 페이트로 치면 키타코 준남작령 정도에 해당한다. 기사 5명과 병사 합해 200을 동원할 정도의 규모. 물론 서방 가도 한가운데서 물류로 벌고 있는 키타코 쪽의 경제력이 월등히 위다. 대공 남매의 세비가 연간 은화 300닢 밖에 안 된다.
원래는 페이트의 마리네라, 쿠시로의 근肉, 토르메키아 후국과 도르크 제후연합공국을 다스리던 큰 나라였으나 작중 시점에서 2세기 전 페이트와 쿠시로의 침입, 토르메키아와 도르크의 독립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그 이후부터 쇠퇴하여 작중 시점에선 주변국들이 건드리면 불쌍하고, 설령 먹더라도 건너편 다른 강대국들과 국경을 직접 맞대게 돼서 그냥 완충지로서 냅두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국으로서의 전성기는 페이트 성립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역사만은 장대한데, 페이트가 선제후 공국으로 건국하면서 마리네라를 뺏을 정도로 빠르게 약체화한 듯.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황제의 종군 명령'''조차도, 주변국의 무시행위로 인해 '''아트림에 도착하기도 전에 명령서가 증발'''해버리기에 수년, 혹은 수십년간 '''황제의 종군 명령을 무시'''해버린 상황이기도 하다(...)
수도인 리모네시아는 원래는 대공국에 걸맞는 위용을 보였으나 2세기 전의 전쟁에서 자갈밭만 남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현재의 리모네시아는 왕가의 사냥용 별장 근처에 새로 지어진 수도이다.
문서 참조
1. 개요
《'''블루 블러드 야루오'''》(ブルー・ブラッド・やる夫)라고도 한다.
2011년 6월 10일부터 야루오판 및 야루오Ⅱ판에서 연재되기 시작한 아스키 아트 작품. 작가는 무모(無謀). 상당한 혐한이지만 작품 본편에서는 그런 성향이 드러나는 부분이 거의 없고(아예 없는 건 아니다), 잡담소 등에서는 상당히 혐한 성향을 드러내서 작가의 성향을 알게 된 후 작품에 정이 떨어졌다는 한국 독자도 있는 편.
중세 유럽 12~13세기의 신성 로마 가미라스 제국[1] 의 한 구석 산골마을에서 촌장의 양자로 자란 소년 야루오. 갑작스레 자신이 사실 영주의 사생아로서 푸른 혈통[2] 을 잇고 있으며, 그걸 위해 영주가 되어야 한다는 소릴 듣고 그를 위한 교육을 하기 위해 강제로 공국 수도로 끌려간다. 장래를 약속한 연인이 있음에도 다짜고짜 정략혼을 하게 되고, 이후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가며 조금씩 영주귀족으로서의 삶을 배워나간다는, 전체적으로 이런 영지물의 정석 같은 전개다.
그러나 스케일은 '마을 하나를 다스리는 소영주' 레벨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이 특징. 수십 명 징병에 마을이 휘청휘청하고, 한 명이 죽어나갈 때마다 거기에 따른 피해가 얼마나 심대한지가 꽤 자주 언급된다.
그런 의미에선 리얼계지만, 동시에 갑옷의 경우 플레이트 아머가 단순하게 메일의 상위 갑옷 취급받으며 무게가 100킬로그램 단위가 된다거나 하는 판타지적 인식/고증 오류도 남아있다.
2016년 4월 20일 부로 205화가 연재되었으며 본편보다 많은 외전이 있는 것도 특징. 매 본편마다 중세 유럽의 문물 및 세계관을 설명하는 앵커 단편을 하나씩, 그리고 번외 단편을 내키는대로 몇 개씩 올린다.
연재는 야루오판이라 자주 바뀌는 관계로 역대 스레를 다 찾기는 어렵다. 일단 205화 시점에서 본편 스레 159번째, 잡담 스레 165번째. 푸른 피 위키도 참고.
일반 독자는 마토메 사이트를 보는 것이 편하다. 정리 사이트 #1, [3] 에서 볼 수 있다. 국내에선 현재 타입문넷에서 번역되고 있다.
2017년 6월 말을 마지막으로 작가가 실생활이 바빠져서 업데이트가 되고 있지 않다. 올해 중으로는 복귀할 것이라는 언급만 있는 상황이다. 2018년 1월 초에 연재가 재개되었다.
2. 설정
2.1. 용어와 설정
중세 12~13세기 독일을 모티브로 하고 있고, 고증 면에서 꽤 훌륭한 편이다. 작가 발언에 따르면 국력적으로는 건국 당시의 작센·코부르크, 왕족의 기질적으로는 바이에른·비텔스바흐를 참고하고 있다고.
물론 신성 로마 제국의 제도를 완벽히 모사한 건 아니고, 대충 중세 유럽 전반의 일반적 사항을 적용한 것도 많다. 독일 내에서도 지역마다 풍습이 매우 다른 경우가 많고, 반대로 중세 유럽풍으로 알려진 풍습이 독일과 상이한 경우도 많아서, 앵커 단편에서도 딱 이렇다 단정짓기 어려운 사례가 많다고 언급하고 있다. 또한 순수하게 유럽쪽 고증만 있다기 보다는, 중세 일본적 관념이나 풍습이 상당히 보인다. 작가가 일본인이니 생기는 어쩔수 없는 고증오류도 있겠지만, 작가의 해박함을 볼 때 주요 독자층이 일본인이라는 점에서 이해의 편의를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들에게 익숙한 관념이나 풍습을 적용한것으로도 보인다. 직접 읽어보고 각자가 판단하자.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국의 양판소보다는 훨씬 나은 고증을 보여준다.
- 귀족 서열 - 작중에선 왕(1위), 왕자(2위), 왕비, 공작, 후작(3위), 백작, 자작, 남작, 준남작(4위), 중급 관료 및 기사 100인 대장(5위), 중하급 관료 및 기사 10인 대장(6위), 말단 관료나 평기사(7위), 1대 한정 귀족/기사(8위, 9위)로 나누고 있다. 각 위계 별로 상, 하급이 다시 붙는다. 공작이면 3위상, 후작이면 3위하가 되는 식. 이런 숫자 위계는 옛 일본의 제도를 갖다 붙인 것이다. 귀족 작위는 평범하게 알려진 중세식 공후백자남+준남작의 오등작 제도를 쓰고 있는데, 사실 중세 독일식은 칭호나 위상이 오등작하고는 좀 차이가 있다. 준남작 같은 건 사실 독일식이 아니라 아예 영국에서만 상설됐던 칭호이고, 독일식 백작(그라프)은 종류도 많아서 오등작에 치환하기가 골때린다.
귀족의 서열에 관계 없이 경제력이 차이나는 점도 꽤나 포인트를 잘 잡았는데, 월급쟁이 궁정귀족과 지방 영주의 비교에서 크게 드러난다. 위계에 관계 없이 서훈 시기와 일자리에 따라 귀족도 생활이 빠듯한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실 역사에서 남작과 백작, 자작도 실제 군사력이나 영지 규모를 비교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하급 귀족이 오히려 우세한 경우도 흔하다.
- 궁정귀족, 영주귀족 - 궁정의 관료 귀족은 공국 관료직을 받고 녹봉을 받는, 월급쟁이 생활을 한다. 그에 반해 영주귀족은 자신의 근거지가 되는 영지가 있고, 여기서 거두는 세금과 산물, 정병 등으로 실질 무력과 생산력을 쥐고 있다. 제후쯤 되면 양자를 겸할 때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우호적 지방 영주귀족을 가신으로 두기도 하지만… 양자는 도시 샌님 vs 시골 촌놈 정도로 서로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 편. 작중에선 지방 영주귀족을 융커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중세 때 융커는 젊은 소귀족을 가리키는 말이라서 좀 어폐가 있다.
- 귀족 칭호 전치사 - 귀족의 성 앞에 붙이는 von, de, la 등의 전치사. 독일은 원래 von이나 zu를 사용하는게 일반론이지만, 사실 지역에 따라서 프랑스식 호칭을 도입한 사례도 있고, 지역마다 호칭이 좀 다른 경우도 있으며 아주 전통이 깊은 옛 귀족인데도 귀족 칭호를 성 앞에 붙이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등 제각각이다. 때문에 작중에서는 공국 내에 한정해서 직계 왕족은 모라, 궁정 귀족은 라, 영주 귀족은 데 칭호를 사용하는 것으로 설정했다.
- 대관 - 영주가 없거나 공왕 직속 영지를 관리하는, 임시 부임 영주. 주로 일자리 없는 최하급 기사들의 임지. 마을에서 거둔 세금이 아니라, 공국으로부터 월급을 받는다. 몇 년마다 갈아치워버리므로 영지 발전에 관심이 없다. 실제로 중세 유럽에도 이와 비슷한 월급쟁이 임시 영주 직책이 있었다.
- 기사 - 작중에서 자기 봉토가 없는 하급 기사들은 공국에서 내려주는 일자리나 참전 기회에 목매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실제 중세때도 그러했다. 기사 출신 산적이 등장한 점 또한 실제 중세에 흔히 있던 사례이다.
반대로 영지를 가진 기사는 같은 기사라도 차원이 다른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중세 독일에서는 제대로 된 세습 기사는 귀족보다 하급인 기사 계급이 아니라 당당한 귀족 계급의 일원이었다.
다만 작중에서는 중세 독일 기사를 이야기할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가신기사(미니스테리알레) 개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작중에 가사(家士)로 칭하는 직위가 없지는 않지만, 미니스테리알레의 실제와는 차이가 있는 편.
다만 작중에서는 중세 독일 기사를 이야기할때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가신기사(미니스테리알레) 개념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작중에 가사(家士)로 칭하는 직위가 없지는 않지만, 미니스테리알레의 실제와는 차이가 있는 편.
- 직신, 배신 - 직신은 왕이 직접 임명한 직계 신하(귀족), 배신은 그런 신하가 임명한 방계 신하(귀족). 명목상 같은 직위라도, 아무래도 직신 쪽이 명분적으로는 우월하다. 하지만 중앙 궁정이 아닌 지방에서라면 봉토와 실질 영향력을 지닌 배신 쪽이 우월할 수도 있기 때문에 양자간에 미묘한 갈등이 있다.
- 기친, 기자 - 기친(寄り親, 요리오야)은 일본 가마쿠라, 무로마치 시대에 지방 소영주들의 우두머리가 되는 지방에서 힘 쓰는 우두머리 격 대영주, 대귀족을 가리킨다. 기자는 그런 기친 휘하의 신하, 즉 배신. 주종관계를 부자관계로 해석해서 나온 말로, 기친이 기자들을 대변해서 세력을 행사하고 이익을 챙겨주거나 불이익을 받지 않게 보호해준다.
중세 유럽도 대제후가 봉토를 나눠주고 임명한 하위 귀족들은 당연히 그 파벌에 들어가서 행동하는 비슷한 개념이 있었다. 하지만 왕이 임명한 직속 신하(직신)나, 계급과 세 자체는 작아도 옛부터 영주였던 오래된 귀족 가문들은 독립적 행보를 보이기도 했고, 실행능력을 지닌 하급 영주는 기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대귀족도 쩔쩔 맬 정도의 힘을 휘두르는 경우도 꽤 있으며, 여러 제후나 왕을 동시에 섬겨서 동시에 여러 작위를 받은 귀족도 있는 등 꽤 산만한 편이라 케바케.
- 명주 - 명주(名主)는 일본에만 존재했던 관직이다. 유럽에는 농민 출신의 귀족 측근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베일리프와 같은 유사 직종이 전혀 없는 건 아니고, 또한 작중의 묘사를 보자면 바이퍼령 명주들은 다들 영주의 측근이자 종사로서 군무를 수행하고 있기 때문에 젠트리 계급이나 에스콰이어 계급으로 볼 수도 있다. 바이퍼령 명주들의 성립 자체가 영주인 기사에게 성을 하사받고 종사(스콰이어)가 된 상황이므로, 직업상 농업과 마을 관리에 종사했을 뿐 종사, 젠트리, 맨앳암즈급이라고 본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 상급시민, 2급시민 - 일정 이상의 납세와 군역, 노역에 공헌하면 영주의 인가를 받아 상급시민이 되고, 영민 회합 등에서 발언권이 주어지고 공헌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다. 2급 시민은 납세, 군역 등을 못 해내서 발언권이 없다.
- 첩, 서자 - 기독교의 강력한 영향으로 일부일처제이던 실제 중세와는 달리, 작중에서는 첩의 존재가 용납되고 있다. 첩은 정실보다 계급 차이가 있기는 하나 정식 혼인을 거친 공인된 부인을 가리킨다. 첩의 자식인 서자의 존재 역시, 비록 계급적으로 천대받기는 하나 정식 아들이다. 허나 중세 유럽에는 첩을 인정 안하므로 혼외정사이고, 그 아이는 사생아라고 해야 옳다. 사생아는 아버지의 계급을 물려받지 못하며 사회적으로 나쁘게 봤었다. 다만 정식 부인이 아닌 애인이라면 허용되었다. 이 부분만은 꽤나 일본적 관념의 산물.
- 부지 - 아무래도 일본의 석 개념과 비슷한 게, 대충 일본식을 가져다 쓴 듯 하다. 하지만 중세 유럽에서도 농지 산출을 기준으로 한 세금/생산력 단위가 있었으니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작중에서 서민 1인의 1년 식비=1인 부지=은화 4닢.
다만 이것은 단순 식비 기준이며, 실제론 은화 4닢으로 1년 생활은 극도로 절약해야 한다. 실제 1년 생활비는 주거비, 광열비(땔감), 손님 접대나 사교 비용 등등으로 그 외에 여러가지 더 든다. 도시에서는 물도 돈 주고 사 쓰는 등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기사계급 정도 되면 장비 유지비가 꽤 들고, 계급이 높거나 가난하더라도 부하들을 두고 있으면 체면상 돈 쓸 일이 많아서 그만큼 지출이 커진다.
- 은화 1매=대동화 50매, 대동화 1매=소동화 200매. 이런 딱 떨어지는 환율도 작중 편의상 매긴 것으로, 실제 유럽의 화폐 환율은 지역마다, 조폐 시기마다 천차만별. 왕이란 놈이 전쟁 비용 맞춘다고 은 함유율이 엉망인 악화를 마구 찍어낸다든가 하는 사례가 흔히 있었다보니... 작중 은화는 탈러(Thaler) 은화 정도의 가치라고 한다. 실제 독일 탈러는 대략 15세기부터 만들어진 것이지만, 하여튼 이때의 탈러를 기준으로 하면 무게는 대략 1온스(28~29그램) 급에 순도도 .93 정도로 볼 수 있다. 상당히 품질 좋은 은화.
- 상인 - 작품 내 상인의 지위가 높아서 귀족들이 함부로 못건드는 것도 꽤나 일본적인 관념이다. 일본 중세에는 상인들의 유통능력 때문에 (상인이 아니면 수출입이 뚝 끊기고 귀중품 입수가 불가능해지니까) 쉽게 건드리기 어려웠던 시기가 있다. 허나 중세 유럽에는 귀족들이 매기는 높은 관세와 통행세 때문에 부유한 상인이 존재하기 힘들었다. 친인척으로 귀족이 있거나, 귀족 본인이 상단을 운영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물론 중세 독일에서 자유도시를 근거지로 하는 상인 집단 중에서는 기사단을 조직할 수 있을 정도로 나름대로 규모와 영향력이 있는 경우는 있었으며, 작중에서 힘을 쓰는 상인들도 대개 어용 상단이거나 공국의 고위 관료의 투자/후원을 받는 식으로 귀족 인맥을 끌어들여서 활동한다.
- 갑옷 - 작중 배경이 12~13세기 정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판금 갑옷이 사용된다. 중세 유럽이라면 넓게 잡고 트랜지셔널 아머라고 대충 넘길 수 있겠지만, 작중의 갑옷 묘사는 아무리 봐도 중세 말 르네상스 시대풍 플레이트 아머. 실은 갑옷 묘사로 크샤트리아 같은 메카닉 AA를 쓰려다보니 아무래도 대충 뭉개고 들어간 듯. 위에서도 언급했듯 판금 갑옷이 100 kg이라는 둥 하는 것도 흔한 오해.
판금 갑옷을 쓰지 못하는 가난한 기사나 종사급은 체인메일을 계속 사용중. 실제 역사상에서는 체인메일 가격과 양산형 판금 갑옷의 가격은 거의 동급이었는데, 이때문인지 작중 체인메일을 쓰는 기사들도 대개 새걸 산 게 아니라 물려받은 것들이다. 바스경 가웨인도 체인메일을 사용하는데, 영주 기사이기는 하나 판금 갑옷 맞추는데 돈이 꽤 들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또한 작중에서 나온 것처럼 중세에도 체인메일을 링을 엮는 패턴을 부위 별로 다르게 하여 보강하는 사례가 있다.
작중에서 판금 갑옷은 은화 80장이 시세. 야루오의 크샤트리아는 은화 130장으로 이보다 비싼 것은 왕가나 제후용 외에는 없는데 이는 시로가 쿈에게 하사한 베네치아제 명품이기 때문. 데키루오의 앗가이(중고 플레이트 아머)는 은화 15장이지만 이건 불량재고라서 가격이 생산가 이하로 떨어진 극한케이스.
작중에서 판금 갑옷은 은화 80장이 시세. 야루오의 크샤트리아는 은화 130장으로 이보다 비싼 것은 왕가나 제후용 외에는 없는데 이는 시로가 쿈에게 하사한 베네치아제 명품이기 때문. 데키루오의 앗가이(중고 플레이트 아머)는 은화 15장이지만 이건 불량재고라서 가격이 생산가 이하로 떨어진 극한케이스.
- 중세 검술 - 최신화에서는 매의 자세(포스타 디 팔코네) 같은 중세 검술의 묘사가 살짝 등장한다.
- 감자 - 작중의 세계에는 실제 역사보다 훨씬 빨리 감자가 등장하고 있다. 아르토리아가 바이킹 출신인 아시라드에 부탁해서 입수해 왔다는 설정. 헌데 처음엔 어딜 먹어야 하는지 몰라서 잘못 먹고 사람이 죽어서 '악마의 열매'로 불렀고, 기행종들이 인체실험을 자처해 서서히 먹는 방법을 연구했다고 한다. 바이퍼에서 이용은 하지만 대규모 재배는 되지 않는데, 멀쩡하게 농사 지을 수 있는 땅에 일부러 감자를 심을 이유는 없고, 원래부터 황무지라면 몰라도 옥토에 심으면 지력 소모가 크고, 재배법도 잘 몰라서 수 년간 헤매고, 막상 감자 자체도 품종개량이 이루어지지 않은 초창기 감자라 씨알이 시원찮은데다, 독이 있다는건 알지만 정확히 어느부위를 먹으면 유해한지는 모르니 껍질을 깎을 때 대량으로 파내니 건져 낼 수 있는 양은 적은 등, 취급이 까다로워서 크게 영향력이 없다는 설정. 애초에 왕비전하가 하사하신 작물이 아니었다면 앳저녁에 내팽개쳤을 애물단지취급이다.(...) 애초에 작가가 대체역사물에 흔히 나오는 감자만세로 시작하는 농업혁명에 빡쳐서 등장시킨거란 말을 한 적도 있다.
- 결혼 - 작중 세계는 조혼이 일상적이고 수명이 짧은 중세 배경이라, 10대 중반이 결혼 적령기로 여겨지고 있다. 20대에 접어들면 노처녀 취급, 30대면 반 악담으로 할머니 취급이다. 작가가 말하길 왜 이리 결혼에 목 매는지 모른다면 등장인물들의 연령에 1.5를 해보라고 권한다. 실제로 그렇게 재면 대부분이 결혼 적령기에 달하거나 이미 아슬아슬하다. 여성들은 10대 말부터 현대의 30을 앞둔 여성들처럼 혼활에 미친듯이 집착한다. 남성은 결혼 외에 다른 길이 없는 여자들보다는 조금 낫지만, 가정을 가져야 성인 취급하는 중세 답게 결혼 못 하는 것은 결혼 공물을 마련할 수 없는 가난함의 증거로 본다. 실제로 이 세계에서 직업이란 집안의 가업을 대를 잇는 것이고, 대부분의 공직조차도 세습직이므로 결혼을 못 한다는 것은 직업이 부실한 집안의 반증이다. 결혼하면 여자는 남자의 성을 따르지만, 귀족 가문에 남자 후계자가 없는 경우 데릴사위를 들인다. 주로 서열이 낮고 재산이 없는 남자가 여자 가문에 들어가고, 성도 그쪽 가문을 따르게 된다.
- 의술 - 방혈을 한다거나 붕대로 감고 기도하는 중세 유럽의 평균 의술 수준을 그대로 표현했다가는, 부상을 입는 것이 숙명인 기사 계급의 인물들은 아마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바이퍼 마을에서는 약초를 생약으로 다루는 법을 아는 집안이 있다. 자보에라 가문에서 인체 실험을 거듭해 독자적인 의학 정보를 파악하여, 외과 수술을 행하고 독주를 이용한 소독의 개념을 이해하고 있으므로 중세 이슬람 급 의술에 해당한다고 보인다. 전쟁을 겪으면서 야전 병원을 운용해본 레테에서는 그나마 위생 개념과 감염의 위험을 알아서 붕대를 갈아주거나 시트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푸른피 세계 내에서도 이것은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다. 임시 야전 병원에서 일하는 기사 가문 처자들은 감염 위험을 모르고 있었다. 요시카의 의료 역시 귀족 가문의 거래 카드가 될 정도로 큰 비전이며, 요시카가 없는 경우 부상자들은 그저 붕대로 감고 교회로 옮겨 낫기를 기도하는 걸로 끝났을 거라고 한다.
- 고양이 - 야루오는 고양이를 단순한 애완동물이 아니라 쥐를 잡아주는 유익한 가축으로 기른다. 하지만 도시민인 아미 등은 고양이의 이점을 모르고, 시끄럽게 군다고 싫어하거나, 쥐를 물고 다닌다고 꺼린다. 실제 중세 유럽에서도 고양이에 대한 태도는 비슷했다. 싫어하는 사람들은 싫어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했다. 하지만 사실 농가 뿐만 아니라 책을 많이 소장하는 수도원이나 귀족가에서도 고양이를 자주 길렀는데, 중세의 양피지나 벨룸지를 쥐가 쏠아먹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인텔리의 입장에서도 쥐 구제를 해주는 고양이는 고마운 존재였다.
- 말, 군마 - 말 자체의 몸값도 비쌀 뿐만 아니라 유지비도 장난이 아니게 들다보니 가난한 하급 기사는 개인 기마가 없는 경우가 많다.
- 소방 활동 - 불이 나면 물 퍼서 붓는게 아니라 불이 주변으로 옮겨 붙지 않도록 인근 건물을 부숴서 화재 통제를 한다. 실제로 근세까지만 해도 이렇게 소방활동을 했었다. 서양에서 소방관이 몸짱으로 여겨지는 것도 화재 진압이 사실상 고강도 육체노동이었기 때문.
- 식자(교육) 수준 - 레벨 0은 문맹. 레벨 1은 자기 이름자는 어떻게든 읽는 수준. 레벨 2는 간단한 문장을 읽고 간단한 계산까진 해낸다. 레벨 3은 제대로 어려운 책자도 독해할 수 있고 장부 부기가 가능.
레벨 0: 나나리(맹인이라서), 사모트, 키사쿠.
레벨 1 이하: 도야가오, 라이토&신쿠(1 미만. 종자이자 시녀로서 배우는 중), 오보로, 테토, 악셀러레이터(테이토쿠에게 배움), 코코로(아직 배우는 중), 노비타(귀족이지만 자신은 사인만 하고 가신에게 맡긴다는 스탠스)
레벨 2: 데키루오&랜서(스페어라서 대충 가르친 수준), 죠타로, 갸루오(부하가 올린 서류 감사를 위해 어느 정도 더 문자를 배움), 디아볼로(친위대장으로서 필요해서), 빌헬미나(취미로), 테이토쿠(교회에서 돈을 내고 자주적으로 학습), 류지&미노리(타이가와 어울리게 된 후 타이가에게 배움), 미역&키루오(젖형제로서 필요해서), 마미(시녀이므로 마토리프가 가르침), 야라나이코(상가 태생이라), 인덱스(교회 태생이라. 다만 성경 통째로 암기)
레벨 3: 를르슈, 버서커, 어쌔신(왕족이라), 스자크&샤나(세이버의 극성), 키요마로, 카이지, 타마키, 키리노, 쿈코, 아미, 타이가(재무계의 자녀이므로), 야루오, 죠스케, 스이세이세키, 시몬(명주의 자식이라), 야라나이오&헤이, 료코, 오프나, 야루미(상가 출신이라)
※ 표가 붙은 것은 영주 귀족이므로, 궁정의 녹봉을 받지 않는 대신 실제 재력은 영지의 크기와 세율에 따른다. 대개 궁정 귀족의 10~50배의 현물이나 현찰을 보유하고 있다. 뉴속데 가문의 영지 수입은 은화 320닢 상당. 코이즈미의 영지 수입은 야루오네의 30배 가량. 아우치는 직위에 따른 녹봉 40닢에, 징세관으로서의 공무를 수행하고 30닢의 수당을 받는다.레벨 1 이하: 도야가오, 라이토&신쿠(1 미만. 종자이자 시녀로서 배우는 중), 오보로, 테토, 악셀러레이터(테이토쿠에게 배움), 코코로(아직 배우는 중), 노비타(귀족이지만 자신은 사인만 하고 가신에게 맡긴다는 스탠스)
레벨 2: 데키루오&랜서(스페어라서 대충 가르친 수준), 죠타로, 갸루오(부하가 올린 서류 감사를 위해 어느 정도 더 문자를 배움), 디아볼로(친위대장으로서 필요해서), 빌헬미나(취미로), 테이토쿠(교회에서 돈을 내고 자주적으로 학습), 류지&미노리(타이가와 어울리게 된 후 타이가에게 배움), 미역&키루오(젖형제로서 필요해서), 마미(시녀이므로 마토리프가 가르침), 야라나이코(상가 태생이라), 인덱스(교회 태생이라. 다만 성경 통째로 암기)
레벨 3: 를르슈, 버서커, 어쌔신(왕족이라), 스자크&샤나(세이버의 극성), 키요마로, 카이지, 타마키, 키리노, 쿈코, 아미, 타이가(재무계의 자녀이므로), 야루오, 죠스케, 스이세이세키, 시몬(명주의 자식이라), 야라나이오&헤이, 료코, 오프나, 야루미(상가 출신이라)
궁정 귀족들 역시 위계에 따른 기본 봉급(연금)에 더불어, 실제 직업이 있는 경우 그에 따른 봉급이 따로 들어 온다. 하급 기사들은 연금만으로는 입에 풀칠하기 빠듯하므로 안정적 일자리에 목을 맨다. 궁정 고위 귀족은 상인이나 하급 귀족 상대로 돈놀이를 해서 자금을 벌고, 재개발 정보를 미리 파악해서 땅을 사들이는 식 으로 돈을 번다.
3. 세력
중세 신성 로마 제국에 한없이 가까운 신성 로마-가미라스 제국[4] 내의 페이트 공국이 주무대. 인근 국가로는 전투민족인 쿠시로를 비롯해 지온, 네르프가 있다. 주변국과 계속해서 작은 교전은 발생중이며 10년 전쯤 쿠시로와 대규모 전쟁이 있었으며 그때 야루오의 아버지인 쿈이 전사했다.
3.1. 페이트 공국
원래 페이트 지역은 공국 없이 여러 백작, 자작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그들 중 하나였던 후유키의 백작 웨스트가 말 그대로 '''현찰박치기'''[5] 를 시전하여 페이트 지역의 선제후가 되면서 페이트 공국의 역사가 시작된다.[6] 돈의 힘으로 선제후가 되었기 때문에 주변 공국들의 질투를 사게 되어 그들의 침략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모두 격퇴했다. 항목에 나와있다시피 선제후들은 (명예직이긴 하지만) 제국 궁정 직책들을 갖게 되는데, 페이트의 선제후는 그 중 제국 시종무관(마셜)의 직책을 갖고 있다. 무력이라면 쿠시로가 더 강할 거 같지만, 의외로 페이트도 침공 받으면 전부 물리치고 영토 손실이 없는 강국. 경제력이나 타고난 지력에서 뒤떨어지는 쿠시로가 그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정책을 밀고 있단 묘사가 암암리에 나오는 걸 보면[7] 종합적인 국력으론 쿠시로 이상가는 강국이다.
페이트 공국의 공도(수도)는 후유키시. 후유키시에 적을 올리고 있는 공식적인 인구는 2천, 이는 귀족, 상인, 여행자와 유랑민 등 유동인구를 뺀, 공적으로 후유키에 납세하는 정식 시민 자격을 얻은 자들의 숫자다. 시민은 아니지만 합법적으로 머무르고 있는 인구는 훨씬 더 많다.
공도를 4분할 했을때, 공국이 성립하던 시기부터 공도였던 북서부에 왕성이 있다. 그 다음으로 북동, 남서, 남동 순서로 도시가 확장. 일시 개발이 아니라 시대가 흐르며 서서히 확장해나간 사정 상, 대부분의 구역에 귀족과 서민이 섞여 산다. 하지만 직위를 받은 제대로 된 고위 귀족들은 전부 북서부에 거주지가 있고, 순위가 낮은 귀족들은 북동이나 남서에 집이 있다가 서열이 오르거나 직위를 받으면 북서로 이사가는 편이다. 남동은 유입 인구로 무분별하게 확장해 있는 슬럼가. 이 지역에는 일반인들도 잘 들어오지 않으며, 치안이 나쁘다. 소수의 가난하고 직위가 없는 기사들(예: 라 뉴속데 가)의 거주지가 이 슬럼 경계선에 있다.
현제 페이트 공국은 크게 왕세자파, 공녀파, 공작파로 나뉘어져 차대 공왕위를 노리고 있으며 그외에도 파벌, 가문 등 다양한 세력으로 정쟁중이다. 작위 소유 귀족은 27개 가문이 있다. 왕실과 왕가 계열인 레테 공작가는 빼고, 타카미네(재무 대신), 드라군(법무 대신), 죠스타(실제 후작가) 세 가문이 후작 급으로서 공국 내 최고 고위 귀족. 코이즈미 가는 준남작으로서 작위 귀족 중 말석이지만, 기사단 부단장에 공왕 친위대 출신, 실제 군사력과 영지 규모 등의 여러가지 위상이 겹쳐 실제로는 백작급 위상은 있다.
정치 체제는 공왕 휘하에 대신과 참의, 기사단장이 중앙 정부의 최고위 통치 수뇌부로 자리잡고 있다.[8] 국가 행사와 주요 의제는 이들이 참여한 궁정 회의로 이루어진다. 중세 봉건국 답게 왕의 위치는 절대자가 아니라 제후들을 중재하는 "제후들의 대표자"적인 역할. 각 지방에서의 실질 통치와 치안 유지 및 방어는 그 영역을 다스리는 제후의 일이다. 특히 변경백은 국경선 경계와 전투 역시 담당. 제후들은 자기 영역에서만큼은 왕 못지 않은 지배력을 발휘하나, 공국 정부에 직접적 영향력은 없다. 해당 지방을 다스리는 영주로서 중앙의 협조 요청을 받거나, 지역을 대표하는 강자로서 조정에 임하는 정도. 지방 영주의 독립성이 강한 터라, 공국 전체가 참여해야 하는 전쟁이 벌어졌을때 부대 편성이 각 세력 별로 쪼개지며 지휘 체계에서도 여러모로 어려움이 있다. 실제로 쿠시로 전에서 자기 영토를 방어하기 위해 소집에 응하지 않거나 명령을 거부한 사례가 왕왕 있다.
공국 직할의 중앙 기사단 "녹림 기사단"이 존재한다. 종교 기사단인 성 요한 기사단 등과는 별개의 것이다. 가도 경비나 산적 퇴치, 전시 동원 등의 중앙 개입이 필요한 군사 업무를 담당한다. 또한 공도에는 경찰과 공국 직속군/파견 병력의 역할을 겸하는 "왕도군"이 있다. 왕도군은 군대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상비군이라기보단 여기저기 빌려주거나 동원하는 일용직 알바 같은 느낌으로 위상이 꽤 약하다.
3.1.1. 바이퍼령
페이트 공국의 변경, 서쪽 레테 공작령과 남쪽 네라 자작령 사이에 있는 초르란드 산괴 한가운데 위치한 유일한 마을. 공국 제일의 험지에 위치한 깡촌으로, 마을 인근에 곰, 늑대, 멧돼지가 나올 정도로 험지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걸어 이틀이면 아에 호수에 도착한다. 초르란드 산괴를 나오는데 걸어서 사흘, 여기서 다시 번화가라고 부를 수 있는 좀 큰 마을이나 도시가 있는 곳까지 사흘, 거기서 공도까지는 다시 그만한 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바이퍼에서 공도까지 편도 거리는 약 2주 가량 걸리는 것 같다. 아미와 같은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공도에서 바이퍼까지 15일, 체력 좋은 하루히는 12일이 걸렸고, 뉴속데 사람 중 발 빠른 사람들이 중간 경로를 무시하고 최단 속도로 달리면 10일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광대한 초르란드 산맥 덕분에 적국과 직접 접촉은 없지만, 아에 호수 너머로는 쿠시로 사이야 자작령, 지온 오뎃사 자작령까지 접해 있으므로 동북부 최전선 국경 영지이긴 하다.
인구는 250명(+모래 50명) 가량, 영지 세입은 80인 부지(은화 320매) 정도.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어져 있고, 마을 중간을 흐르는 물길이 있다. [9] 대장장이와 목수(특히 건축을 담당하는 대목), 도공이 있고 관혼상제를 위한 교회도 있고 영지를 비호하는 어용 상인도 있는 등 의외로 영지로서 자생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구색은 맞추고 있다. 하루히의 말처럼, 영주가 겪게 될 것은 궁정 예법 외에 웬만한 것은 다 바이퍼에서 겪고 배울 수 있는 규모. 의사 역할을 하던 투스쿨이 빨리 죽고, 뒤를 이은 에루루는 실력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는데, 중세 평균 수준을 감안하면 이 정도만 해도 보통은 될 것이고, 중세 이슬람 의학 수준은 되어 보이는 요시카가 이웃 마을에 있으므로 이쪽으로도 형편이 나아질 것이다.
3.1.1.1. 영주, 뉴속데 가
초대 영주인 도야가오의 혈통은, 가문 초대 야루조(하급 세습 기사) → 아삼 → 초대 바이퍼경 도야가오(여기서 do오의 라 뉴속데와 결별) → 이쿠오 → 쿈 → 야루오(뉴속데가 6대째, 바이퍼경 4대째) 가 된다. 가문의 상징은 멧돼지. 도야가오 경이 초르란드 조사에서 조우했던 멧돼지에서 강한 인상을 받아서 정해졌다고.
국경선에 접해 있는 지리적 특성 상 뉴속데 가는 전시에는 최전선 영주로 참전하게 되며, 실제로 2대 이쿠오와 3대 쿈이 쿠시로와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인근 영주들이나 국경 영지 영주들도 전쟁터에서 전사한 사례가 별로 묘사되지 않는 상황에, 2대가 모두 대-쿠시로 전에서 전사했을 정도면 '전쟁 영웅 가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쿈의 경우 현 공왕의 지시에 따르다가 전사했고, 이 전투는 인근 대영주의 영지를 찌르고 들어온 기습을 막는 전투였으므로, 공왕과 대귀족들도 뉴속데 가문에 빚을 진 것이나 다름 없다. 3대 쿈이 자식이 없는 젊은 나이에 전사하는 바람에 일시적으로 영지가 공국에 회수당하고 대관지로 전환되었으나, 숨겨진 서자 야루오가 나타나면서 가문이 부활한다.
뉴속데 가의 바이퍼 통치 기간은 도야가오 30년(천수를 누림), 이쿠오 15년(전사), 쿈 7년(전사), 합계 52년간이다. 이후 15년간 대관 통치, 야루오가 나타남에 따라 뉴속데 가가 부활.
영주인 뉴속데 가는 초르란드 산괴 전체에 대한 감독권, 조사권을 가지고 있다. 순수한 실제 지배 영지(데 팍토)는 마을 뿐이지만, 이 권역까지 다 따지면(데 유레) 백작이나 자작같은 상위 귀족령 급이다. 명목상 영지가 넓어서 좋은 점은 험난한 지형이 자연적 방벽이 되어준다는 것 하나 뿐이고, 실제론 험난한 지형이 지역 발전의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각종 사고와 맹수로 생활 자체가 위험할 때도 있고 이 영역의 조사 관할(산적이 나오는지 순찰 등)까지 맡아야 하므로 골치만 아프다.
현재의 바이퍼 경은 십기장 급에 해당한다.
총 영지 세입 은화 320닢 중에 가신과 고용인들의 인건비로 96닢이 소비되고, 식비를 포함한 영주 일가의 생활비는 영민들이 바치는 물납으로 충당하므로 사실상 없음. 나머지 56인 부지(은화 224닢 상당)이 전부 영주의 수입이다. 이것을 영지의 개척에 투자하거나, 저축하거나, 개인 용돈으로 소비하거나 등 어떻게 쓰는지는 영주의 자유.
3.1.1.2. 영민
원래는 바이퍼령 촌민들은 쿠시로 샤이아 자작령의 펭귄이란 이름을 가진 마을 사람들이었으나, 당시 영주 프리더의 학정을 견디다 못해 주민들(+영주의 종사. 종사마저 배반할 정도로 개판이었다. 종사들은 탈주 과정에서 모두 사망)이 일제히 도망쳐서 페이트령의 초를란드 산괴 한가운데에 자리잡게 된다.
영주로부터 탈주했기 때문에 영주가 없었던 마을이었으나, 초르란드 산괴의 조사를 맡으러 와서 산적들과 산악수렵민들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준 7위하 궁정기사 도야가오 라 뉴속데에게 영주가 되어달라 청하면서 페이트 공국에 정식으로 편입한다.
이 과정은 사실 바이퍼 백성들이 도야가오를 선택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데, 도야가오가 영주가 되지 않는다면 일전을 결할 각오로 중무장 하고 상경해서, 살벌한 분위기로 시위를 벌여 승인 받는 상황을 유도해냈기 때문이다. 워낙 험한 삶을 살아갈 때[10] 나타난 도야가오의 도움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도야가오와 그 후손들인 영주와의 결속이 단단한 편이다. 뉴속데 가문 역시 단순한 장식용 윗대가리가 아니라, 대대로 영지를 위하는 유능한 영주이기도 했다. 현재까지 뉴속데 가문에서 나쁜 영주가 나온 사례는 단 한 번도 없다. 나쁜 영주(펭귄 마을 시절의 프리저)의 폐해와 영주 부재(마을 성립 초기와 쿈 전사)시의 폐해를 모두 겪었다보니 뉴속데 가문처럼 말이 통하고 유능한 영주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뉴속데 가에 대한 충성심은 있지만, 원래 영주에게서 탈주했던 과거를 지녔기에 꽤나 독립적인 자세를 갖고 있다. 마을 탈주의 역사를 구전하고 있고, 바이퍼 마을의 원 출신지와 탈주 방법은 뉴속데 가에도 비밀로 하고 있다. (야루오는 태생의 특수성으로 알고 있지만) 고로 영주가 다시 압제한다면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를 보유하고 있다.
촌장급인 명주들이 실질적인 마을 관리 업무를 맡고 있으며, 푸른 피와 붉은 피의 구분을 통해 귀족이라도 서민의 세계의 규율에 함부로 간섭하지 않는 영역이 있음을 강조한다.
다만 영지 자체가 비경이나 다름없기에 외부에서 오는 이들을 극도로 꺼리며 하쿠오로나 오보로, 정체를 숨겼던 야루오 같이 오랜 기간 함께 했던 사람들도 외지인이라는 낙인을 찍고 대하는 무의식적인 풍습도 있다. 나름 단결하기 위한 수단이었을지도 모르나 옆 영지가 개척되는 지금, 문제가 될수도 있다.
3.1.1.3. 군사력
(모래를 제외하고) 한 번에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은 인구의 1/10인 25명 가량인데, 이는 같은 숫자의 남성 전력을 방위병력으로 마을에 남겨두는 것이 전제이므로, 농한기에 총동원을 벌인다면 최대 60명까지도 동원 가능. 여기에 여성 역시 궁술을 익히므로 마을 수비 시의 전력은 더 커진다. 영주 관저에는 200인 규모의 병력이 머무를 수 있는 시설이 있는데, 전대 영주가 왕태자 친위대를 주둔하게 했던 시설이다. 즉 기사 십인장 급 전력을 유치할 수 있는 시설과 규모를 갖추었다. 전시에 유용하게 쓰인 것으로 추정.
공국 제일의 험지에서 생활하던 만큼 평지 사람들과 체력 차이가 엄청나서, 평지 사람들에게는 산악 민족으로 불릴 정도. 평지의 병사나 사냥꾼들의 체력이 바이퍼 주민들에게는 아이들 수준이다.
초대 영주 때부터 농업 외에도 수렵을 장려해, (아이와 여성을 포함해) 마을사람 전체가 활 실력, 덫 실력이 꽤 좋다. 중세 유럽의 일반적인 영지에서는, 숲은 영주의 것이라 수렵이 금지되는 일이 많았다. 적어도 밀렵감시관 같은 직책을 두어서 함부로 사냥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바이퍼에서는 막기는 커녕 영주의 허가를 취할 필요도 없이 아무나 사냥해도 된다. 활과 산도(혹은 낫칼) 같은 무기로 쓰일 수 있는 도구의 휴대 역시 규제되지 않고 있으며, 어린 시절부터 궁술을 배운다. 마을 목책만 벗어나도 들개나 곰 따위가 어슬렁거리는지라 활은 호신용으로 반드시 휴대한다고 한다. 대부분 뜨거운 맛을 보여주었기에 현 울리는 소리만 들려줘도 도망간다고.
이 요소가 결합해, 바이퍼 영지병은 산악엽병으로서 압도적 장거리 화력과 기동력을 보여준다. 라이토는 이 영상의 걸으면서 쏘는 것은 좀 어렵지만 이런 연사 속도는 구사할 수 있다고. 짙은 숲 속에서 쓰기 위한 반궁(소형 활)이 주무장이므로, 활의 사거리는 그렇게 월등하지는 않으나 기동성이 매우 우수하며, 전반적으로 조준 솜씨가 좋으므로 밀림 내의 게릴라전과 '''시가전, 근접 육박전'''에서 궁술을 사용할 수 있다. 장년층은 의외로 대 쿠시로 참전 경험자들이라 전술적 움직임에도 익숙하다. 육박전 능력만 제외하면 실력은 확실히 뛰어나다. 역으로 말해 육박전 상황은 바이퍼 병력에게 있어 사망 플래그. 하지만 신 뉴속데 가의 1차전이었던 메드로아 방위전에서 산적들을 물리친 것도 결국 육박전이었으므로, 상대 전력에 따라서는 못 싸울 정도는 아니다.
구체적으로는 육박전을 위한 중장비(갑옷, 방패, 장병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관련한 훈련을 한 적도 없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다들 힘 좋고 날렵하니 마찬가지로 경무장에 서투른 산적 정도라면 두들겨패는 것도 어렵지 않겠지만 중장보병대와 근접전이 붙었다가는 박살난다는 것. 작중에서는 거의 무적처럼 묘사되지만 이는 작가도 말했듯이 유리한 전투만 겪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강력한 정찰능력과 기동성을 보유하고 있기에 이니셔티브를 잡기 쉬워서 유리한 전투만 골라서 하기 좋은 점은 비교할 수 없는 강점. 실제로 대부분의 전투에서 선제 공격을 수행하였다.
이 사실은 뉴속데대와 동행한 기사들도 깨닫고 있어서 어디 사냥꾼 한 명 안 떨어져 있나(...) 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다. 그러나 현실은 이웃마을 사냥꾼도 사냥꾼 아가씨도 전부 산 속으로...
사실 육박전의 경우, 기사인 뉴속데 가문이 창시한 바이퍼류 전투법이 따로 있었다. 왼손에 방패를 들지 않고 활을 계속 쥔 채로, 오른손의 검을 놓지 않고 (아마도 역수쥐기인듯) 엄지 검지 중지로 화살을 잡아 활을 쏘면서 간격을 조절, 육박하면 그대로 쥔 검으로 대응하는 원근을 겸하는 전투 스타일. 초대 도야가오가 고안했지만 일반적인 장검을 든 상태로는 검이 시위를 자른다든지 걸리적거린다든지 애로점이 많아서, 아들 이쿠오가 포기할 부분은 포기하자고 설득해서 정글도 타입의 짧은 검으로 바꿔서 스타일을 완성. 그리고 쿈은 전쟁터에서도 활약할 수준으로 실력을 갈고 닦았다. 하지만 쿈이 전사하면서 기술이 단절되어, 현재의 야루오는 이 전투법을 모르며 궁술로만 싸운다.[11] 이 스타일을 견학한 아처도 따라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고 한다. 쿈에 의하면 만능 스타일 같지만 검이 짧아서 육박전 시에 퍽 불리하다고.
3.1.1.4. 경제, 문화적 요소
작가의 바이퍼의 부농층은 보통 농촌의 중농과 엇비슷하단 발언을 보아 마을의 경제적 수준은 가난한 수준인 듯 하다. 읽다 보면 알겠지만 땅은 척박하면 척박하지 절대로 비옥하진 못하고 주변엔 적대적인 야만족과 위험한 맹수가 떼거지로 발호하고 있고 가장 가까운 이웃 영지로 통하는 길은 외부인이 보기엔 길인 줄도 몰라서 마을 사람이 안내해주지 않으면 조난당할 정도로 비경에 위치해 있다. 세입이 1년에 320매 수준이다. 중간에 나온 포프의 메드로아는 마을의 규모도 절반에 불과하고 부유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강조되는 마을인데도 불구하고 세입은 200매다. 바이퍼의 빈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
딱히 특산물이랄만한게 없어 경제 부흥을 일으키기 어려워 보이는 것이 경제적인 고민. 이때문에 하루히는 광맥을 개발하려 했으나 저위 광맥만 나와 소득은 없다. 직접 제련하는 것보다는 인근 대영지에서 철광석을 사 오는게 훨씬 경제적.[12] 마을로 접근하는 길이 외지인에게는 짐승길이나 밀림으로 보일 정도로 험한지라, 경제 부흥의 기초인 길 닦는 것부터 큰 난관이다. 고로 바이퍼 마을의 세입은 통행료나 물류 유통 등의 외부 경제와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농업과 가죽 판매에 의존한다.
물론 뭔가 광맥 같은 게 발견된다고 해도 개발할 자금도 인력도 없는 관계로 인근 대영주들의 자금원조를 통해 권리의 절반은 빼앗기는게 기본사양이다. 좋게 말하자면 발전 가능성이 있다고 하겠지만... 양판소라면 미개척지에서 미스릴이 쏟아지고 금괴가 굴러다니며 순식간에 영지를 발전시켜 데 유레 권역을 전부 데 팍토 영지로 바꿔놓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광산 하나 개발하려 해도 긴 투자가 필요하고 막상 광맥을 발견해도 이윤이 나지 않는 저위 광맥인 등 현실적 실패가 수두룩한지라, 마을 하나 새로 개척하는 데도 뼈가 빠지는 과정이 유감없이 묘사된다.
다만 지역이 지역인 만큼 모피 같은 것은 타 지역에 비해 꽤 싸고 쉽게 입수할 수 있고, 마을 처녀들이 직접 만든 향수[13] 같은 잔잔한 묘사를 보면, 포텐셜은 은근히 있어 보인다. [14]
목축업을 하기에는 산세가 너무 험한데다가 맹수가 마을 주변을 어슬렁거려서, 수 차례 실시했으나 맹수에게 물려가거나 가축을 노리는 맹수가 침입해오는 문제 때문에 채산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때문에 우유를 짜거나 버터를 만들기도 어렵다.
외딴 지역이라 설탕의 수입 비용도 굉장히 비싸다. 하지만 바이퍼는 유럽 메이플에서 수액을 뽑아 메이플 시럽을 만들수 있고, 벌꿀도 쉽게 딸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굳이 양봉을 하지 않아도 각 가정이 자가로 벌꿀을 딸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모양. 메이플 슈거를 만들어 팔기에는 연료 땔감이 너무 들어서 채산성이 안 나오지만[15] 일단 시럽과 꿀을 이용한 제과나 젤리 제작은 쉽게 할 수 있는 환경. 때문에 요리사 출신인 야라나이오는 평지에서는 부자나 먹는 설탕졸임 과자 계열을 바이퍼에서는 서민용/종군 병사용으로 제작을 시도해보고 있다.
야루오는 엘릭가를 끌어들이고 멀더와 룩스 개발이 진척되면서 인근 지역을 아우르는 최초의 시장을 열었다. 깡촌이니 이러쿵저러쿵 해도 일단 우메오카 상회-오푸나로 이어지는 어용 상인이 있고, 정주 예인도 있으며, 공도 출신의 상가 경험자 야라나이오가 바이퍼의 간부이며, 영주 야루오와 바이퍼 명주들이 마을 부흥을 위해 적극 투자하고 있는 덕분에, 시장 제 1회는 시장 다운 구색은 맞추는 정도로 개최 성공했다. 엘릭가에서도 시장 후발주자를 노리고 있으나 바이퍼만큼 투자하고 손해를 감수하며 노하우를 가지지도 못한 관계로 당분간은 우위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다만 상업적으로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지켜봐야 한다. 야루오가 굉장한 투자와 배후 조정을 거치고도 간신히 모양새만 내는 정도의 상황이다. 장사 참가자들도 인근 최초의 시장이니 관망을 위해 왔을 뿐, 시장으로서 독립할 정도의 거래가 이루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주요 거래는 시장 부흥을 장려하기 위해 영주와 명주의 투자 거래 뿐... 이벤트로 아밍과 하루히가 도박이나 복권 등의 안건을 마련했으나 결국 미끼상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고, 공도 출신자들의 냉정한 관점으로 봐서는 그저 시골 마을끼리 서로 물물교환하는 정도다. 공도로 머나먼 출장을 가기보다는 바이퍼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것이 이익인 경우, 그리고 장차 멀더가 내놓을 의약품 같은 여기 아니면 구하기 힘든 확실한 특색 상품이 나와주어야 시장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적 문제로는, 일단 납치에 가까운 형태로 갑작스럽게 공도로 끌려가서 영주 자리에 앉혀진 야루오와 그런 야루오를 이해하는 젊은 청년 세대, 그리고 야루오에게서 쿈의 그림자를 보는 장년 세대와의 감정적 골이 패여 있다. 한편으로는 외부인과의 거리감을 갖는 깡촌의 폐쇄성도 심하다. 마을에서 거주한지 십수년이 지난 야루오나 오보로, 하쿠오로에 대해서도 은근한 차별의식이 드러나는 사례가 있다. 특히 외부와 접촉할 일이 적은 여성들의 폐쇄성은 심각한 수준. 그나마 외부로 나가서 세상을 보고 온 젊은 세대[16] 는 조금 더 개방적이다.
3.1.1.5. 세력권 내 하위 마을
- 산악수렵민 부족 - 공국에 복속하지 않은, 세금도 내지 않고 바깥과 교류도 거의 하지 않는 산속의 만족. 바이퍼 마을을 흙, 혹은 지렁이라고 부른다. 모티브가 《나루토》의 닌자 마을이다. 초대 바이퍼경 도야가오와 싸워오기도 했고, 그 후로도 바이퍼 마을과 서로 진지하게 죽고 죽이는 전쟁을 벌인 적도 있다. 그 후로는 충돌을 삼가고 있으나, 사냥감 없는 겨울이 되면 보리를 약탈 내지 교환하기 위해 다툼이 빈번했다. 부족들과 전면적으로 싸웠던 마을의 나이든 세대와는 다르게 영주가 된 야루오 세대에는 크나큰 반발감이 없는지라 교류도 하고 용병으로 고용하면서, 평지와 산의 문화와 무력 차이를 체감시켜주며, 서서히 복속시켜간다.
불 피우는 도구나 초, 텐트 같은 중세 수준의 야영 도구조차 문명의 이기로 여길 정도로, 외부와의 문물 차이가 난다. 바이퍼와 교류하기 전에는 돈의 사용법도 모를 정도.
- 모래 마을 - 바이퍼와 중립[17] . 장은 가아라. 연락사 겸 가도 경비 때에는 테마리와 칸크로우를 참가시켰고, 그 경험에서 세상의 넓음을, 그리고 바이퍼 영주의 영향력을 직접 본 후로 적극적으로 바이퍼에 복속을 청하여, 적어도 야루오 치세 동안에는 최대 우호 세력이 되기로 결정한다. 심지어 바이퍼 영주 최측근인 라이토와 결혼을 통한 인맥 형성도 노리고 있을 정도. 그에 따라 산악수렵민 부족 중 문화적, 물질적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리게 된다.
- 나뭇잎 마을 - 바이퍼와 적대[18] . 수렵으로만 먹고 산다. 스스로 산의 주인을 자처하면서도 상황파악이 안되는 머리 나쁜 놈들이 많고, 과격파도 꽤 있어서 애어른 할 거 없이 바이퍼와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나루토가 그 과격파의 대표. 현임 장은 카카시. 카카시와 산맥 바깥을 견학한 일부는 그나마 현실을 보고 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바이퍼의 현실을 쫓아갈 정도로 태세변환이 빠르질 못하고, 내부에서도 소수파이다보니 과격파를 찍어누를 정도의 여력이 없다.
- 안개 마을 - 아예 호수를 근간으로 어업을 주로 하는 마을. 바이퍼민들이 초르란드 산괴에 이주할때 도와준 관계이고, 그 후로도 쭉 우호관계를 가지고 있다. 어업 생산물과 바이퍼가 생산/수입하는 식량이나 도구를 거래한다. 현임 장은 키사메. 이들 역시 가도 경비 때 견학을 했으나, 모래 마을 만큼 적극적으로 복속을 청하지는 않았다. 현재 잘 나가는 바이퍼측도 영주 사망으로 급속히 위세가 쪼그라들었던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너무 가까워졌다가 한 배를 타는 위험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 멀더 - 과거 레테측과의 합의로 개발하던 바이퍼와 레테 접경지의 개척촌이었으나, 레테를 중점적으로 치고 들어온 쿠시로 전쟁에서 바이퍼 영주 쿈이 자식 없이 사망하는 바람에 바이퍼가 대관지가 되고, 레테 역시 회복에 전념해야 할 상황이라 개척을 중지하고 방폐했다. 신 바이퍼 경 야루오가 서훈 받은 후 레테-바이퍼의 협력이 재개되어, 데키루오가 신임 영주로서 개발에 임하게 된다. 과거에는 대관부터 영민까지 전부 레테 측이 주도적으로 개척했으나, 현재의 영주 데키루오는 레테 출신이기는 하지만 야루오의 휘하로 들어간 상황이며 개척 노하우 면에서 바이퍼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바이퍼 주도의 개척으로 비중이 기울었다. 물론 개척에 필요한 인적 물적 지원 자체는 레테에서 내지만 레테가 데키루오에게 저지른 실수에 대한 보상 격이다. 산악수렵민 부족은 이를 '바위 마을'로 칭하기로 한다.
멀더(Murder)라는 흉악한 마을 이름이 붙은 이유는 과거 이 지역에 어마어마한 전투력의 살인자가 자리 잡고 접근하는 족족 살해한 역사가 있어서. 과거에는 그 멀더를 정체불명의 괴물 같은 존재로 생각한 모양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산악수렵민 부족들과 영주 야루오가 판단하기로는 아마 용병기사나 떠돌이 기사 같은 베테랑 기사 급의 전투력을 지닌 존재가 아니었나 추측하고 있다. 이런 흉흉한 이름이 마음에 안 든 데키루오는 발음이 그런대로 비슷한 Marder[19] 을 가문 문장으로 삼는 등의 방식으로 명칭세탁을 노리고 있다.
개발 시작 단계에서 인구는 영주 일가와 가신 9명에 이주민 약 20인 내외. 개발 초기 자금은 은화 200닢.(이후 데키루오가 보상금 받은 것이 플러스 알파) 이주민 20인의 1년 식비에 80닢을 소모, 초기에 세울 거주용 오두막 자재 8닢×5채로 40닢, 농기구와 식기, 공구함 등에 40닢, 나머지 은화 40닢은 영주 가신의 기본적 무장과, 어용 상인의 수익 등에 소모된다.
이 인원으로 연간 개간 면적은 6인 부지 분량. 데키루오 가신단 9+이주민 20명을 모두 먹일 수 있는 30인 부지를 개척하는데 최소 5년. 게다가 이 수치는 농업에 익숙한 야루오와 라이토의 개간 속도를 기준한 것이고, 야루오 영지의 봉신인 관계로 해야 할 가도 정비, 영역 조사, 순찰 등의 업무를 포함하면 빠듯한 기간이다. 때문에 2년째부터는 바이퍼나 어용상인에게 빌리거나 혹은 레테의 추가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 대여의 이자까지 갚는 기간까지 고려하면, 실질적 순이익이 나는 기한은 10년 가까이 될 것이다. 산적이나 맹수 습격, 부상자 발생, 전쟁 등의 불의의 사태를 고려하면 더욱 힘들어진다.
바이퍼에서 멀더까지는 야루오가 전속력을 냈을때 왕복 4~5일 정도 거리라고 한다. 편도 3일 가량으로 보면 될 듯.
개발 시작 단계에서 인구는 영주 일가와 가신 9명에 이주민 약 20인 내외. 개발 초기 자금은 은화 200닢.(이후 데키루오가 보상금 받은 것이 플러스 알파) 이주민 20인의 1년 식비에 80닢을 소모, 초기에 세울 거주용 오두막 자재 8닢×5채로 40닢, 농기구와 식기, 공구함 등에 40닢, 나머지 은화 40닢은 영주 가신의 기본적 무장과, 어용 상인의 수익 등에 소모된다.
이 인원으로 연간 개간 면적은 6인 부지 분량. 데키루오 가신단 9+이주민 20명을 모두 먹일 수 있는 30인 부지를 개척하는데 최소 5년. 게다가 이 수치는 농업에 익숙한 야루오와 라이토의 개간 속도를 기준한 것이고, 야루오 영지의 봉신인 관계로 해야 할 가도 정비, 영역 조사, 순찰 등의 업무를 포함하면 빠듯한 기간이다. 때문에 2년째부터는 바이퍼나 어용상인에게 빌리거나 혹은 레테의 추가 지원을 받아야 한다. 그 대여의 이자까지 갚는 기간까지 고려하면, 실질적 순이익이 나는 기한은 10년 가까이 될 것이다. 산적이나 맹수 습격, 부상자 발생, 전쟁 등의 불의의 사태를 고려하면 더욱 힘들어진다.
바이퍼에서 멀더까지는 야루오가 전속력을 냈을때 왕복 4~5일 정도 거리라고 한다. 편도 3일 가량으로 보면 될 듯.
- 룩스 - 랜서가 개발하게 될 마을. 아직 개발 시작까지는 2년 가량 시기가 남았다. 살쾡이라는 의미의 지명으로, 데키루오와는 달리 랜서는 자기 마을 이름을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3.1.2. 그 외의 지역들
- 레테 공작령
초를란드 산괴 서쪽에 있다. 본성은 그로스부르그.
원래 레테는 백작령이었는데, 왕세자였던 키레이가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공작령으로 격상했다. 오버드라이브 후작령과의 경계에서 발견된 암염을 놓고 분쟁 중이다.
북쪽의 레테 대하 맞은 편에 쿠시로 공국 사이야 자작령과 마주하고 있다. 때문에 대 쿠시로 최전선이며 수시로 잦은 충돌이 일어난다. 쿠시로에 침공을 받은 적이 있으며(이 때 쿈이 전사), 반대로 사이야 령에 침공한 적도 있다. (이 때 이쿠오 전사)
원래 레테는 백작령이었는데, 왕세자였던 키레이가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공작령으로 격상했다. 오버드라이브 후작령과의 경계에서 발견된 암염을 놓고 분쟁 중이다.
북쪽의 레테 대하 맞은 편에 쿠시로 공국 사이야 자작령과 마주하고 있다. 때문에 대 쿠시로 최전선이며 수시로 잦은 충돌이 일어난다. 쿠시로에 침공을 받은 적이 있으며(이 때 쿈이 전사), 반대로 사이야 령에 침공한 적도 있다. (이 때 이쿠오 전사)
- 오버드라이브 후작령
레테 공작령의 남쪽에 있다. 레테 공작령과의 경계에서 발견된 암염을 놓고 분쟁 중이다.
- 로엔그람 백작령
레테 공작령의 서쪽에 있다. 본성은 오딘.
- 하이네센 남작령
로엔그람 백작령의 서쪽에 있다.
- 마리네라 백작령
하이네센 남작령 서쪽에 있다. 쿠시로, 아트림, 도르크와 국경이 닿아있다. 아트림 측의 입국 관문.
- 네라 자작령
초를란드 산괴 남쪽에 있다. 본성은 블리츠부르그.
남쪽의 타임 백작령과의 경계에서 이탄이 발견되어 그들과 분쟁을 치뤘으나, 왕세자의 중재를 통해 그 지역의 소유권을 확보하게 된다.
남쪽의 타임 백작령과의 경계에서 이탄이 발견되어 그들과 분쟁을 치뤘으나, 왕세자의 중재를 통해 그 지역의 소유권을 확보하게 된다.
- 타임 백작령
네라 자작령의 남쪽에 있다. 본성은 네리마.
북쪽의 타임 백작령과의 경계에서 이탄이 발견되어 그들과 분쟁을 치뤘으나, 왕세자의 중재를 통해 그 지역의 소유권을 포기하게 된다.
북쪽의 타임 백작령과의 경계에서 이탄이 발견되어 그들과 분쟁을 치뤘으나, 왕세자의 중재를 통해 그 지역의 소유권을 포기하게 된다.
- 그리드아일랜드 자작령
타임 백작령 남서쪽에 있다. 본성은 베이진. 네르프와 국경이 닿아있다. 메드로아가 있는 곳이다.
- 키타코 준남작령
3.2. 네르프 공국
페이트 남쪽에 위치. 작품 초반에 800의 병력으로 그리드 아일랜드 자작령을 침공해, 메드로아를 구조할 여력이 없게 한 원인이다. 곤의 재빠른 대처와 슈드나이가 이끄는 지원이 빠르게 도착해 병력의 우위가 뒤집히자 협정을 맺고 철수한다.
3.3. 지온 공국
페이트 북동쪽에 위치.
3.4. 쿠시로 공국
페이트 북쪽, 레테 대하 너머에 위치.
뇌근의 나라. 공국내에서도 분쟁이 있으면 결투나 주먹다짐으로 해결하는 경향이 크며 건수만 있으면 주변국 국경을 침범해서 주변국들로 부터 야만인이라 취급을 받고있다. 국내 개척엔 한계가 있고 영민들은 늘어나 궁핍해지기 쉬운 환경이라 외국의 영지를 뺴앗아 영토를 늘려 국민을 부양하고 국내의 불만을 해외로 돌리려는 경향인 것 같다. 전쟁을 과잉인구의 조절책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듯. 덕분에 몇안되는 두뇌파들만 고생 중.
쿠시로의 침공은 작중 가장 굵직한 줄거리의 시작이 되는 신호탄으로 스토리 개시 15여년 전의 레테령 침공,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도 다시 침공을 계획 중이다. 유독 페이트와의 마찰이 심한지 로마제국 내에서도 정치적 공작과 마찰이 간혹 묘사되며, 페이트 측에서 경제 공세를 펼치기도 한다.
3.5. 토르메키아 후국
쿠시로의 서쪽, 도르크의 북쪽에 위치. 페이트와 국경을 직접 맞대고 있지는 않다. 원래는 아트림에 소속된 제후였으나 반란을 일으켜 독립했다.
3.6. 도르크 제후연합공국
페이트의 서쪽에 위치. 토르메키아와 마찬가지로 아트림에 소속된 제후였으나 반란을 일으켜 독립했다.
3.7. 아트림 대공국
페이트 서쪽에 위치. 인구나 규모는 페이트로 치면 키타코 준남작령 정도에 해당한다. 기사 5명과 병사 합해 200을 동원할 정도의 규모. 물론 서방 가도 한가운데서 물류로 벌고 있는 키타코 쪽의 경제력이 월등히 위다. 대공 남매의 세비가 연간 은화 300닢 밖에 안 된다.
원래는 페이트의 마리네라, 쿠시로의 근肉, 토르메키아 후국과 도르크 제후연합공국을 다스리던 큰 나라였으나 작중 시점에서 2세기 전 페이트와 쿠시로의 침입, 토르메키아와 도르크의 독립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그 이후부터 쇠퇴하여 작중 시점에선 주변국들이 건드리면 불쌍하고, 설령 먹더라도 건너편 다른 강대국들과 국경을 직접 맞대게 돼서 그냥 완충지로서 냅두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대국으로서의 전성기는 페이트 성립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역사만은 장대한데, 페이트가 선제후 공국으로 건국하면서 마리네라를 뺏을 정도로 빠르게 약체화한 듯.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황제의 종군 명령'''조차도, 주변국의 무시행위로 인해 '''아트림에 도착하기도 전에 명령서가 증발'''해버리기에 수년, 혹은 수십년간 '''황제의 종군 명령을 무시'''해버린 상황이기도 하다(...)
수도인 리모네시아는 원래는 대공국에 걸맞는 위용을 보였으나 2세기 전의 전쟁에서 자갈밭만 남을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현재의 리모네시아는 왕가의 사냥용 별장 근처에 새로 지어진 수도이다.
4. 등장인물
5. IF 스토리
6. 야루오 종군록
문서 참조
7. 관련 문서
8. 바깥고리
[1] 중간의 가미라스는 '''우주전함 야마토의 가밀라스'''에서 차용.[2] 중세 귀족들의 인식중에 '자신들은 푸른 피를 지녔다'며 아예 평민들과 피 자체가 틀리다는 인식이 있었다. 귀족들은 피부가 하얘서 창백한 피부를 통해 푸른 정맥이 비쳐 보였기에 블루 블러드가 귀족을 뜻하는 말이 된 것.[3] 이쪽은 한달이상 갱신이 되지 않았다며 광고가 뜨는 걸로 보아 운영이 중단 된걸로 보인다. 성인 광고라 여러모로 보기 불편하므로 정리 사이트 1쪽을 이용하는 것을 추천.[4] 현재 황제가 가미라스라서 신성 로마-가미라스 제국[5] 진짜로 황제에게 20년간 엄청난 뇌물을 바쳐왔었다.[6] 사실 웨스트는 공작위 정도는 바랬지만 선제후까지 바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선제후위를 떠안기는 바람에 쿠시로 침공 같은 골치아픈 상황만 생겼다.[7] 페이트에 본부를 둔 페이트 상인길드는 쿠시로 남부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이를 볼 때 어쩌면 쿠시로에는 상인길드가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신죠가 스파이를 잠입시키기 위해 고용한 아키즈키 상단은 상인길드의 기반을 이용하기 위해서 맘에 들지 않아도 페이트의 상인길드에 가입해 머리를 숙이고 있다고 한다. 그 외에도 잦은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물자에 골머리를 썩히거나 페이트에서 쿠시로엔 암염광산이 없으니 그걸로 경제전쟁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바꿔 말하자면 쿠시로에선 페이트에게 그런 식의 수작으로 맞대응 할 수 없단 이야기.[8] 타 국의 경우 왕 아래에 재상 같은 직위도 존재하지만, 페이트는 대신들에게 임무가 분할돼 있다.[9] 여담으로 이런 구조가 된 이유는 바이퍼 초기, 도망농민시절에 '''방어의 편리함'''을 위해 강을 끼고 산을 등지는 지형에 자리잡았다가, 인구가 늘면서 추가 확장을 하려니 강 거너편 외엔 확장지가 없더라∼라는 상황이 돼서 라고 한다. 일단 강이 바로 코앞이라 물 긷기가 편하다는 장점도 있기는 하지만, 큰 비로 물이 불기라도 하면 강 주변 바닥은 진창이 되고 마을이 분단된다는 폐해도 있다.[10] 늑대에게 아기를 던지고 도망간 사례도 있다.[11] 궁술 기반으로 원거리전 위주로 싸우다 육박전시 몸싸움을 하는 방식으로 나름대로 원근 겸용 전투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으므로, 검을 기반으로 궁술을 구사하는 구 뉴속데류와는 방향이 다르지만 근본 목적 자체는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12] 마을이 고립되는 만약의 경우에 쓰기로 하고 덮어놨다.[13] 공도에서도 좀 사는 빵집 아가씨가 세안용 맥주 같은 걸 쓰는 수준에 불과한데, 바이퍼 처녀들은 향수를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14] 실제로 벌이가 시원찮던 중세 독일과 스위스에서는 마을 단위로 용병대를 결성해서 사람을 특산물 삼기도 했다. 바이퍼 병력은 궁병/정찰병으로서 상당한 강병이기도 하고.[15] 각자가 즐길 만큼 만들려면 만들 수 있지만, 내다 팔 규모로 생산하려 들면 땔감 모으고 졸이는 노동력이 나지 않는다.[16] 종군한 젊은 남자들, 땜빵 시녀로 일한 루리 등[17] 과거엔 나뭇잎과 마찬가지로 적대 관계였다가 이쿠오 때 벌어진 전쟁에서 관광당하면서 현재는 중립으로 방침을 바꿨다.[18] 바이퍼 마을 영역인 산의 세 마을 모두와 겹치는 경계지역 중 가장 많이 차지한 부분이 나뭇잎의 영역이었던 탓에 바이퍼 탄생 시점부터 나뭇잎 잎장에선 자기 영역을 빼앗겼다는 의식이 다른 마을보다도 강했다.[19] 담비. 족제비과 대형 포유류라고 잡담에서 언급되었으며, 실제로도 3마리 정도가 모여서 고라니 성체나 멧돼지 새끼를 사냥할 정도로 강한 포식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