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사회성
1. 개요
'언어의 사회성'은 의사소통으로 말미암아 언중들 간에 만들어진 사회적 약속임을 뜻한다. 이는 '''규범상 어떤 개인이 임의로 언어를 바꿀 수 없다'''는 뜻이고, 어떤 개인이나 집단의 사회적 영향력이 셀수록 언어에 미치는 영향력도 세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1] 잊히는 억지 밈은 개인이 바란다고 항상 모든 이들이 사용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언제나 똑같은 책상, 언제나 똑같은 의자들, 똑같은 침대, 똑같은 사진이야. 그리고 나는 책상을 책상이라고 부르고, 사진을 사진이라고 부르고, 침대를 침대라고 부르지. 또, 의자는 의자라고 부른단 말이야.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 하는 거지?”
페터 빅셀, 책상은 책상이다 중
2. 상세
좋은 예 가운데 하나는 '부탄'으로서 대한화학회에선 영어 발음에 가까운 '뷰테인'으로 공식 표기를 바꿨지만, 일상생활에선 여전히 독일어식인 '부탄(Butan)'으로 통하며, 정작 마트에 가서 "뷰테인 가스 주세요"라고 하면 대부분 "뷰테인이 뭐꼬?"라고 반문하며 못 알아듣는다. 결국 '부탄'과 '뷰테인' 둘 다 표준어가 되었다.
또한 개인이 사회적으로 정의된 단어의 의미를 바꿀 수 없다. 예를 들어 '인디 게임'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소형 개발사가 대형 회사의 지원 없이 제작한 게임'라고 정해져 있는데, 어떤 개인이 나타나 '인디 게임은 1인 개발자가 만든 게임이다'라고 의미를 바꾸거나 '상업적 목표를 두고 만든 게임은 인디 게임이 아니다[2] '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사실상 한 언어의 화자들이 같은 곳에서 대화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언어권 내에서 더 작은 규모의 커뮤니티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예가 바로 사투리와 은어, 민간어원이다. 그리고 그 단계에서 새로 만들어지는 무수히 많은 낱말들은 제 나름의 사회성 검증을 거치고, 그 가운데의 몇몇은 다른 언중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위키에 등록된 각종 문체를 보면 한국어 화자 전체를 아우르는 사회성을 충족하지는 못했어도 특정 집단의 사회성 차원에는 부합하는 언어를 볼 수 있다. 이는 거짓짝과도 관련 있다. 또, 규범상은 옳은 번역이지만 사람들은 오역으로 오해할 수도 있고, 그 반대도 있다.
형용사 '없다'와 '있다'의 관형사형이 '없는', '있는'인 것처럼 어떤 말이 불규칙으로 활용되거나 'ㅄ' 받침처럼 어떤 구조의 낱말 수가 적거나 '관하여', '불구하고', '위한'처럼 불완전하게 활용돼도 그런 말들이 자주 쓰이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어 문서에도 적혀 있듯이 국어를 배우는 사람은 복잡하고 어려워도 해당 국어 화자들은 거의 자연히 숙달해서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는 '비효울의 숙달화'의 예로 볼 수도 있다('경로의존성' 문서 참고).
3. 언어의 역사성과의 관계
언어/낱말이 탄생하고, 변화하고, 사어가 되는 것도 언중들의 약속에 기반하므로 '언어의 역사성'과 연계된다. 단어가 새로 만들어지거나 단어의 뜻이 달라지거나 단어에 다른 뜻이 더해져 사용되는 때에 사회성을 얻었는지 여부를 가리게 되고, 반대로 자주 쓰이던 단어가 다른 단어에 밀려 잊어진 때에는 사회성을 잃었는지 여부를 가리게 된다. 이는 어떻게 보면 어떤 개인이 임의로 언어의 변화를 막을 수도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 표준어가 아니던 '짜장면'은 나중에 그 사회성이 인정되어 표준어의 지위를 얻었고, '너무'는 부정의 의미를 나타낼 때만 쓸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나중엔 긍정과 부정을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말이 되었다.
- '오타쿠'가 처음에는 '전문가'나 '마니아'와 같은 뜻이었어도 그것이 부정적인 이미지로 바뀌어 통용되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고, '인민'처럼 특정 집단이 썼다고 금지어로 찍히기도 한다.
- 이름과 실제가 다르게 통용되기도 한다.
- 어떤 말이 무의식적으로 자주 쓰이다 보면 규칙 의식이나 어원 의식이 옅어지면서 규칙대로이지만 불완전하게 활용되거나 어느 규칙에서 어긋나게 자주 쓰이게 되어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규칙 의식이나 어원 의식이 더더욱 옅어지기도 하고, 그렇게 불규칙 활용이 생기기도 하고, 외래어도 귀화어가 되기도 한다. 또한, 불규칙 활용형으로 많이 쓰이다 보면 그런 활용형에서 기본형이 거꾸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 고유 명사가 보통 명사로 바뀌기도 한다.
- '외딸다'는 동사였으나 불완전하게 활용되면서(외딴) 품사 의식이 옅어졌기 때문인지 형용사로 바뀌었다.
- 잘못된 대응이지만 '오염시키다-오염되다'와 '잊다-잊혀지다'처럼 불규칙으로 대응되기도 한다.
- 콩글리시가 생긴 까닭도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 동음이의어에 밀린 등으로 말미암아 '강낭콩'의 옛말인 '강남콩'처럼 비표준어가 되었거나 '구축(驅逐)'처럼 여전히 표준어이지만 그다지 쓰이지 않는 낱말도 있고, 비표준어가 되었어도 다시 표준어가 되는 경우도 있으며, 옛말 또는 사어가 되었어도 다시 부활하는 경우도 있다.
- 어떤 낱말이 다른 언어에는 외래어로 남기도 하지만, 자국어에서는 사라질 수도 있다.
- 이런 변화로 말미암아 언어유희도 새로 만들어지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이것도 참고하면 좋다.
이것과 참조해도 되겠다("언어는 인간의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생멸(生滅)을 거듭한다. 이 같은 언어의 역사성으로 인해 완벽한 번역은 불가능한 것이 된다. 그러나 벤야민은 ‘번역불가능성’보다는 ‘번역가능성’에 주목한 철학자이다.").
4. 관련 문서 및 링크
언론사는 사회적 영향력이 센 기관인데, 특히 언론에서 국어 규정을 무시하고 잘못 쓰고는 한다. 해당 문서의 <관련 문서 및 외부 링크> 문단의 외부 링크 참고.
- 규범주의와 기술주의
- 금지어
- 맞춤법
- 명복을 비는 글은 마침표를 쓰면 안 된다
- 문법 나치
- 민간어원
- 부바키키 효과
- 상표의 보통명사화
- 사실상 표준
- 사투리
- 사회성
- 언어 관련 정보
- 언어 사대주의
- 언어적 상대성
- 역형성
- 은어
- 의미변화
-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
- #1, 2
[1] 방송 프로그램으로써 뜻을 바꾼 사례는 있다. 그 사례는 '옥동자'.[2] 실제로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트위터에 있었는데, 대부분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질책받았다. '인디 게임'이라는 단어가 가진 사회적인 정의를 무시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본인의 해석(제작 목적와 인디게임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만 밀어붙이다가 봉변을 당한셈. 이미 보편적인 뜻이 있는 단어를 마음대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나는 돈만 보고 인디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싫다.'라고 표현했으면 논리적 오류 없이 본인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