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폴리스 침몰사건
1. 개요
'''미합중국 해군 역사상 최악의 참사.''' 사건의 시작부터 끝까지 각종 부끄러움으로 도배된 사건이며, 한마디로 말하자면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 중 하나.(또다른 미국판 드레퓌스 사건은 사코와 반제티 사건이 있다.) 승리에 취해 기본적인 요소들마저 잊어버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건이다.I would not have hesitated to serve under him again. His treatment by the Navy was unforgivable and shameful.
저는 다시 그런 상황이 와도 그의 밑에서 일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것입니다. 해군이 그에게 내린 처사는 용서할 수 없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1999년 설립 추모비 앞에서, CA-35 인디애나폴리스의 생존자 플로리안 스탐
2. 사건 요약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의 승리가 확실시 되던 1945년 7월 포틀랜드급 중순양함 CA-35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이 오키나와 남부, 괌에서 레이테 섬으로 이동하던 중 일본 해군의 잠수함 I-58의 뇌격을 받고 침몰하였고, 이후 해군의 적절치 못한 대응으로 희생자 수가 늘어난 사건.
3. 사건 상세
[image]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은 1930년대에 취역한 포틀랜드급 중순양함으로 몇 번의 개장을 받아 화력과 대공지원능력을 향상시켜 5함대 사령관 레이먼드 스프루언스 제독의 기함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오키나와 공격에도 참여했으며 카미카제 공격으로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혁혁한 전과를 기록했었다. 하지만 이런 대형 전투함은 자체 스크류 소음이 크기 때문에 대잠작전 관련 장비는 탑재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었고, 따라서 구축함 등 대잠 능력이 있는 호위함 대동이 필수사항이었다.
1945년 7월 16일,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인디애나폴리스는 함장 찰스 B. 맥베이 3세 항해대령의 지휘 아래 1,196명의 승조원을 태우고, 미 육군 항공대의 B-29 폭격기가 출격 대기 중인 티니안 섬으로 향했다. 여기에는 역사를 뒤바꿀 물건인 원자폭탄, 리틀보이의 재료. 고농축 우라늄을 싣고 있었다. 당시 미 해군은 이 임무를 극비임무로 취급했으며 일본 해군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중순양함 인디애나폴리스가 단독으로 이동하도록 명령했다. 맥베이 대령은 구축함 등 대잠 호위함을 여러 번 요청했으나 지휘부는 이를 묵살했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다.
1945년 7월 28일, 무사히 화물을 실어나른 인디애나폴리스는 다음 작전을 위해 필리핀 레이테 섬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도 이미 비밀 준수가 필요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상부에서 호위함을 붙여주지 않아서 단독으로 항해했다. 그리고 7월 30일 새벽. 일본군 잠수함 I-58이 이를 발견하고 어뢰 6발을 발사, 2발을 명중시키며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시킨다. 침몰에 걸린 시간은 약 12분.
침몰 직후 함장은 즉시 구조신호를 보내고, 승조원들에게 퇴함 명령을 내려, 폭발 직후 사망한 300여명을 제외한 대부분의 승조원들이 모두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시점에서 생존자는 '''900명'''에 가까웠다. 거기서 빨리 구조가 이루어졌으면 모두가 생존했겠지만…
무려 4일이나 지난 1945년 8월 2일, 정기적으로 정찰을 하는 해군의 PBY 카탈리나 비행정이 처음으로 바다 위에 떠다니는 생존자들을 발견하여 구조하였고, 그 후 약 이틀간 구축함까지 동원되어 모든 생존자를 건져올렸다. 그래서 최종 생존자는 '''316명'''으로 줄었다.
약 5일간 생존자들은 바다 위에 떠 있었는데, 식수나 의약품이 매우 부족하였다. 바다 위에서 탈진한 승조원들은 서서히 죽어가거나 환각증세를 겪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변 해역은 상어떼의 출몰지라, 상어들은 시체, 그리고 주변의 부상자들의 냄새까지 맡고 말았다. 당시 생존자들은 맥베이 대령이 지휘하는 그룹과 군의관이 지휘하는 그룹, 또 다른 장교 한 명이 지휘하는 그룹으로 나뉘어 표류했는데, 군의관이 지휘하는 그룹에서는 군의관이 사망하는 승조원들의 인식표를 일일이 모으다가 자기 그룹에 속한 군종관이 사망하자 절망해 모아둔 인식표를 바다에 던져버리기도 했다.[1] 또 다른 그룹에선 몇몇 승조원들이 심각한 환각증세 때문에 서로를 죽이고 인육을 먹는 행위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맥베이 대령은 이 순간까지도 조명탄, 거울까지 동원해 구조신호를 계속 보내고 있었다.
침몰 직후의 구조신호는 근처의 미 해군 통신 중계소가 감지했다. 그런데 그 누구도 행동을 취하지 않았는데, 한 수신소는 '''당직사관이 술에 취해서 자고 있었고''' 다른 수신소는 '''당직사관이 노느라,''' 다른 수신소는 일본 해군의 계략이라고 판단해서 '''구조신호를 무시했다.'''
후에 맥베이 대령이 구조된 후 해군본부에 바다에 떠있는 '''5일간''' 왜 구조가 없었는지를 따졌으나, 해군본부의 대답은 '''그런 구조신호는 없었음'''이었다. 때는 일본의 패전이 짙어오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감히 미 해군의 함선을 가라앉히리라 의심하지 않았던 시기'''이긴 했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 피해가 발생하긴 했다. 인디애나폴리스가 침몰하기 6일 전 그 해역에서 미 구축함 한 척이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했을 정도였으니 확실히 안심하기는 이른 시기였다. 그러나 해군본부는 함장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도 않는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다. 설상가상으로 7월 31일에 레이테 섬에 도착해야 할 배가 제 때에 도착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관심 한줌 기울이지 않았다.
이 사건은 미 해군에게도 충격이었지만, 언론에서 특히 난리였다. 결국 해군은 책임 떠넘기기로 맥베이 대령을 군사재판에 회부한다. 해당 군사재판이 책임 떠넘기기가 된 것도 미 해군은 제 2차 세계대전 동안 군함 약 7백 척을 잃었지만 자기 함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재판에 회부된 함장은 맥베이 대령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책임 떠넘기기에 걸맞게 죄목도 "적의 공격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서 함을 침몰시킨 것"이었다. 자세히는 '''중순양함이 어뢰 회피를 위한 지그재그 기동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원칙상으로는 맞는 말 같지만, 지그재그 기동을 하면 속도와 항속거리가 크게 줄어드는 데다가 항해시간도 크게 길어지기 때문에 적 잠수함이 매복해있을 확률이 높은 수역에서나 주로 한다. 게다가 긴급사태시 배수량만 10,000 t에 가까운 인디애나폴리스가 갑자기 적 잠수함이 쏜 어뢰를 발견했을 경우 구축함 같은 작고 잽싼 함선처럼 즉시 지그재그 기동을 하기란 무리다.[2] 하지만 당시에는 충분한 해당분야 경험이 있어야 했으므로 재판정에서 책임 떠넘기기로 제출된 죄목이 먹혀 들어갔다. I-58의 함장 하시모토 모치츠라 중령도 종전 후 미국에 인디애나폴리스에 적재된 화물을 노리고 공격했는지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불려갔었다. 물론 I-58은 인디애나폴리스의 화물 같은 것은 전혀 모르고 그저 좋은 먹이감이 나타났기에 사냥한 것에 불과했다. 이 때에도 하시모토 중령은 인디애나폴리스가 어떤 기동을 해도 격침시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했지만, 이미 맥베이 대령 죽이기에 들어간 미 해군은 이 증언을 무시했다.
맥베이 대령은 이후 체스터 니미츠 제독이 사면하여 복직하였으나, 1949년 소장 계급을 끝으로 예편되었다. 전쟁 중 생존한 항해/항공병과 동기들이 대부분 중장이나 대장으로 예편했음을 생각하면 사실상의 불명예 전역이었다. 이 후 유족들의 비난을 뒤집어쓴 채 맥베이 제독은 1968년 70세 나이로 자택에서 권총으로 자살하였다.
4. 재평가
[image]
이렇게 사건이 넘어가는가 했으나... 사건이 터지고 거의 반세기가 지난 1997년에 전혀 다른 곳에서 이 사건은 재조명받게 된다. 헌터 스콧이란 한 11살 소년(1985년생)이 National History Day라는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 'Triumph & Tragedy'(승리와 비극)이라는 그 해의 테마에 어울리는 미국 역사 기념물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죠스 시리즈가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 흥미를 가지고 자료를 모아보았다. 그런데 실제 기록이 별로 없어서 생존자 150명 가량을 '''직접 인터뷰하여 자료를 모은다.''' 이 과정에서 맥베이 제독이 억울한 누명을 썼음을 알고는 숙제를 넘어서서 제독의 명예회복을 위한 탄원 운동을 벌인다. 이 소식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1999년 미국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의원을 통해 미의회 공식 결의안으로 올랐다. 그리고 엄청난 편지가 존 워너 의원 앞에 전달되었으니…
바로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시킨 I-58의 함장인 하시모토 모치츠라 중좌가 편지를 보낸 것.''' 이 편지에는 '''우리 잠수함은 인디애나폴리스가 무슨 기동을 하든 어뢰로 격침시키는 것이 가능했으며,''' 보낸 목적은 맥베이 제독의 명예회복임을 밝혔다. 이후 하시모토 중좌는 2000년 10월 25일에 91세로 사망한다. 조금이라도 결의안이 늦었다면 사건이 영원히 파묻힐 뻔했다. 그리고 시기 적절하게 보안문서들이 해금되어 맥베이 제독이 구조신호를 분명히 보냈지만, 해군 수신소가 의도적으로 구조신호를 무시했음이 밝혀졌다.[image]
미합중국 상원 군사위원장 존 워너 의원 귀하
저는 당시 USS 인디애나폴리스 함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던 일본제국 해군 잠수함 I-58의 함장이었던 전 제국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츠라입니다.
저는 귀하의 결의안이 1945년 7월 30일 격침된 미해군 중순양함 USS 인디애나폴리스의 함장 故 찰스 버틀러 맥베이 3세 대령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시 어뢰공격을 지시했던 장본인으로서 저는 맥베이 대령이 왜 군사법정에 세워졌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경계태세를 소홀히 했다는 유죄 이유도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전 인디애나폴리스가 어떤 상태라도 격침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인디애나폴리스의 승조원들은 끔찍했던 전쟁과 그 결과에 대해 서로를 용서했으며, 이제 귀하와 귀하의 나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맥베이 대령에게 씌우진 부당한 혐의를 벗겨 주실 것을 믿습니다.”
전 I-58 함장, 제국해군 중좌 하시모토 모치츠라(橋本以行)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맥베이 제독을 복권하고, 그를 포함하여 당시 생존자 316명에게 은성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살아남은 승조원들은 맥베이 함장[3] 의 무덤에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이 소식을 전했다. 당연히 미 해군은 반발했지만 복권을 받아들였고, 이후 미 해군은 충분한 조치를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함을 손실/대파시킨 함장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 않게 되었다.
5. 기타
함장의 복권 운동을 벌였던 헌터 스콧은 해군 ROTC 장학생으로 대학을 졸업 후 임관, 2012년 대위 계급으로 MH-60R 조종사로 복무하고 있다.
2001년, 미 해군 구축함 USS 콜 함이 아덴만에서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함이 크게 파손되었지만 당시 함장이었던 커크 립폴드 항해중령은 충분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막을 수 없었던 상황이 인정되어 책임 추궁을 받지 않았다.
천안함 피격사건 이후, 천안함의 함장이던 최원일 항해중령을 왜 처벌하지 않느냐는 의견에 대한 반박의 근거로 이 사건이 자주 언급됐다. 실제로 당시 군검찰에서는 처벌을 논의했으나, 해군의 어느 하사가 인트라넷에 이 사건을 근거로 처벌론을 비판하는 장문의 글을 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해군 내에서는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승무원들의 안이한 근무 태도가 원인이었다고 교육자료에 명시했고 생존 승무원들 또한 불이익을 받아왔다는 생존 장병의 인터뷰가 있다.[4] 최원일 중령은 다른 해군사관학교 동기들이 준장, 최소한 대령까지 진급한 현재까지도 여전히 중령으로 있으며, 일선부대에 배령되지도 못하고 후방부대에서만 근무중이다.
현재 인디애나폴리스의 함명은 로스앤젤레스급 원자력 잠수함에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일본 극우인사들 중에는 "우라늄을 티니안 섬에 내려놓기 전에 인디애나폴리스가 격침되었다면..."하고 안타까워하는 자들이 있으며, 실제 그런 내용으로 일본이 원폭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가공전기도 여러 건 존재한다. 물론 그랬다면 다른 함선이 인디애나폴리스가 했던 역할을 담당했거나 '''닥치고 몰락 작전'''으로 갔을 가능성이 높지만.
제 2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한 함선들을 의인화&모에화한 게임인 벽람항로에 등장하는 인디애나폴리스도 입수 대사에서 핵폭탄이 뭐냐고 시치미를 떼며, 자신은 반응이 느리다는 등 이 침몰사건에 대해 간접적인 묘사를 한다. 캐릭터 일러스트에서도 핵폭탄에 앉아있다. 핵에 노이로제가 강한 일본에서는 핵폭탄의 핵마크를 고양이 그림으로 변경. 인디애나폴리스를 격침한 이58을 모티브로 한 이58에게는 아예 중순양함 사냥꾼이라는 특성이 존재하며, 인디애나폴리스의 자매함이자 언니 포틀랜드를 이58이 만나기 꺼리는 것으로 이 사건을 고증했다.
아카데미 과학에서 1/350 스케일로 인디애나폴리스와 I-58을 세트로 내놓았다. 구경은 여기서. I-58함상의 가이텐도 포함. 실제로 타임-라이프 월드 워2에 실려있는 I-58함장 인터뷰에 따르면, 인디애나폴리스 격침 당시 I-58에는 가이텐 및 운영요원이 승함하고 있었지만 함장은 가이텐이 아닌 탑재 어뢰를 발사하도록 명령했고 인디애나폴리스 격침 확인 이후 환호하는 승조원 사이에서 가이텐 운영요원들은 저런 큰 목표에 가이텐을 쓰지 않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단다.[5] 그리고 귀환 과정에서 보급선단을 확인, 탑재 가이텐을 전량 발진시켰다고 적시하고 있다. 따라서 고증에 어긋나지 않다.
다만 디오라마로 내기엔 너무 끔찍한 사건이기에 아카데미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예전에 타미야에서도 비슷한 구성으로 발매된 적이 있다.
미국에서 이 사건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개봉하였다. # 2016년 5월 개봉을 목표로 했으나, 동년 10월 14일으로 연기되었다. 영화 이름은 USS indianapolis:Men of courage. 니콜라스 케이지가 맥베이 대령 역을 맡았다. 예고편. 넷플릭스에서 시청가능한데...CG도 구리고 고증도 영 안맞는 영화니 보지 말자.
'''그리고 2017년 8월, 인디애나폴리스가 침몰된지 72년만에 드디어 발견되었다.''' 기사 발견자는 폴 앨런.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인 그 사람 맞다. 다만 침몰한 위치의 정확한 좌표는 잔해의 보존을 위해 비공개 처리했다.
6. 관련 링크
7. 관련 문서
[1] 이 참상은 영화 죠스에서 생존자의 증언 형태로 나온다.[2] 중순양함급 정도 되면 속도가 아무리 높아봐야 30노트 초반이다. 하지만 일본군이 운용한 산소어뢰의 속도는 48노트에 달하는 수준인데다 잠수함용 산소어뢰는 400 kg 장약을 탑재하는 만큼 파괴력도 높아 중순양함정도는 간단히 격파할 수 있는 물건이었고 항적조차 적어 발견이 어렵기에 대잠 장비를 갖춘 구축함이나 경순양함이 호위하는 것도 아닌, 대잠 능력이 상당히 떨어지는 중순양함 단독 작전에서 주간도 아닌 야간(새벽)에 완벽한 기습에 성공한 잠수함에서 투사된 어뢰를 발견하고 피하라는 자체가 완벽한 억지주장이다. 저렇게 완벽한 기습일 경우 '''전함도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 공고급 순양전함과 비슷한 장갑을 가진 시나노가(명색이 야마토급 전함 함체를 베이스로 한 항공모함이다.) 미국 잠수함의 뇌격에 가라앉은 상황과 I-19에 의해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 '''자기를 노리고 직접 사격한 것도 아닌''' 눈먼 어뢰 한 대 맞고 중파된 사례를 생각해 볼 것. 이 사례에서는 와스프를 노린 어뢰가 흘러나가 맞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제대로 걸렸다 하면 전함도 큰 손상을 입는데 중순양함이라면 더 버티기 힘들다.[3] 생존한 승조원들은 자신들의 함장을 기리는 마음에서 그가 제독으로 전역했음에도 끝까지 '함장'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미 해군의 Captain은 대령/함장의 두 가지 뜻이 있음.[4] [人터뷰+] "넌 천안함이니까 싫어. 가까이 오지 마", 천안함 영웅? 뒤에선 "패잔병"…두 얼굴의 軍[5] 전쟁 말기에 징집된 카미카제 특공대원들은 일그러진 투쟁의식과 동료 장병에 대한 묘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