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근

 

'''대한민국 국회의원 (서울 도봉구 갑)'''
제18대
신지호

'''제19~21대
인재근'''

현직

'''대한민국 제19~21대 국회의원
인재근
印在謹 | In Jaekeun
'''
<colbgcolor=#004ea2> '''출생'''
1953년 11월 11일[1] (70세)
경기도 강화군 교동도
(現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도)
'''거주지'''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삼익빌라
'''본관'''
교동 인씨[2]
'''종교'''
천주교 (세례명: 엘리사벳[3])
'''학력'''
인일여자고등학교 (졸업)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 / 학사)
'''가족'''
배우자 김근태, 아들 김병준, 김병민
'''소속 정당'''

'''지역구'''
서울 도봉구 갑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9, 20, 21
'''소속 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재)김근태재단 이사장
더불어민주당 보육특별위원장
(사)사랑의친구들 운영위원장
(사)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 이사
(사)인권의학연구소 이사
(사)통일맞이 이사
'''경력'''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총무
이화여자대학교 민주동우회 회장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의장
한반도재단 이사장
사랑의연탄나눔운동 이사
사랑의 친구들 운영위원장
도봉희망봉사단 단장
녹색환경운동 지도위원
광주인권상 심사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장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SNS'''

1. 개요
2. 생애
2.1. 노동·민주화 운동
2.2. 정치 활동
3. 학력
4. 경력
5. 수상
6. 여담
7. 선거 이력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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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 민주화 운동가 출신 정치인. 김근태열린우리당 의장의 아내이다. 김근태 의장 사후 민평련계의 실질적인 수장으로, 당내 여성주의 의원들의 구심점 역할을 맡고 있다.

2. 생애



2.1. 노동·민주화 운동


[image]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한 날의 인재근. 옆의 어린이들은 인재근의 자녀인 아들 김병준, 딸 김병민이다. 김근태는 출소 전이었다.
[image]
1984년 8월 흥사단 안에서의 김근태 인재근 부부. 김근태 바로 뒤에 앉아 박수치고 있는, 머리묶은 여성이 인재근이다.
[image]
구속상태였던 김근태의 고문피해사실을 알게 된 뒤, 검찰청에서 고문진상규명 및 석방 요구시위를 하다가 실신하였던 인재근의 사진이다.
[image]
민청련 가족모임을 이끌고 민청련 전의장 김근태의 석방 및 고문반대 시위를 하던 인재근. 손으로 맨 앞 현수막의 "정권"이라는 글씨 부분을 잡고 있는 사람이 인재근이다. 나머지 시위자들도 민청련 간부들의 부인이다. 이때 김근태 불법고문 반대 시위가 세계언론에 알려져 김근태가 출소하기 전에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부부수상한다.
'유력 정치인의 아내'라는 것 하나만으로 남편의 지역구를 이어받고 국회의원이 된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둘 다 각자 민주화운동 지도자를 하다가 만나서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져 결혼한 거지[4], 결혼을 하고 나서 민주화운동을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5]인재근은 젊은 시절 군사정부에 맞서 노동운동 및 민주화운동을 했던 인물이며, 남편 김근태를 수배 중에 만났다. 그 때문에 첫 번째 결혼식은 제대로 치르지도 못했고, 10.26 사건 이후 수배가 풀리면서 정식으로 결혼식을 치렀다고 한다. #
서울대 민추위 사건이 알려지는 데 일조했다. 이 일로 아래 기재된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받은 것. 항목 참조.
여담으로, 김근태 의장과 같이 노동운동·민주화운동을 하다보니 가사를 분담해야 했다고 한다. 김 의장이 청소 등 집안정돈을 하면 인 의원이 요리를 하는 것으로 '평등부부'를 유지했다고 한다.

2.2. 정치 활동


김근태 전 의원이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준비했으나 안타깝게도 2011년 12월 투병생활 끝에 사망하면서, 그를 대신해 부인으로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다. 인재근은 남편 김근태와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며 1988년 공동으로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수상한 만큼, 남편이 아니라 인재근 본인의 이름으로 승부해도 충분한 인물이었기에 민주통합당에서 전략공천 제1호로 공천했다.[6] 선거 시기에 안철수 당시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인재근 후보에게 응원 메시지를 보내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결국 인재근은 새누리당 유경희 후보를 상대로 58.46%라는 득표율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되었다.
19대 국회의원 임기 동안 동부간선도로 창동 구간 지하화 계획 관철, 쌍문동 둘리 뮤지엄 건립 등의 공약을 이행하면서 무난하게 지역구 관리를 해왔다. 다만 창동 민자역사 재공사 공약에 대해서는 사실상 방치하기도 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현역인 인재근 의원이 단수추천으로 공천됐다. 새누리당이재범 새누리당 중앙위원회 외교통상분과 수석부위원장을 공천했다. 민주당 계열의 세가 워낙 강한 지역이다 보니, 지난 총선보다 더 높은 60.09%라는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후임자 역시 여성인 전혜숙 의원에게 돌아갔다.
이어서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단수공천을 받으면서 3선에 도전했다. 미래통합당 김재섭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으나, 득표율은 54.02%로 지난 선거보다 6% 정도 줄어들었다. 창동역 민자역사 문제의 장기화와 노점상으로 인한 갈등 때문에 해당 지역에서의 민주당 지지도가 하락했고, 지역구 관리가 사실상 방치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7]

3. 학력



4. 경력


  • 1985~1988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총무
  • 1987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상임집행위원
  • 1989 ~ 1991 이화여자대학교 민주동우회 회장
  • 1989 ~ 1999 서울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상임부의장·의장
  • 민주통합 시민행동 공동대표
  •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본부 이사
  • 사랑의친구들 운영위원회 위원장
  • 김근태재단 이사장
  • 한국수양부모협회 후원회장
  • 한국뇌성마비부모회 고문
  • 2012 ~ 2016 제19대 국회의원
    • 제19대 국회 전반기 외교통일위원회 위원
    • 제19대 국회 전반기 여성가족위원회 간사
    • 제19대 국회 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 2012 제18대 대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멘토단장
  • 2013 민주통합당 노동대책특별위원회 위원
  • 2013 광주인권상 심사위원
  • 2014 광주인권상 심사위원장
  • 2014 ~ 2015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
  • 2015 광주인권상 심사위원
  • 2015 새정치민주연합 윤리심판원 부위원장
  • 2015 ~ 2016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중앙위원회 부의장
  • 2015 ~ 2016 제20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 자격심사이의신청처리위원회 위원장
  • 2016 ~ 2020 제20대 국회의원
    • 제20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간사
  • 2016 광주인권상 심사위원
  • 2016 더불어민주당 인권위원회 위원장
  • 2017 제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인권신장정책위원회 위원장
  • 2018 제7회 지선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자 자격심사이의신청처리위원회 위원장
  • 2018 광주인권상 심사위원
  • 2018 ~ 2019 제20대 국회 후반기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
  • 2019 더불어민주당 여성정치참여확대위원회 위원
  • 2019 더불어민주당 맞춤형 장애인복지 추진TF 위원
  • 2019 ~ 2020 제20대 국회 후반기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
  • 2020 ~ 제21대 국회의원
    • 제21대 국회 전반기 보건복지위원회 위원

5. 수상


  • 1987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공동수상)[8]
  • 2013 대한민국 인물대상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대상
  • 2013 민주당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 2014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대상
  • 2014 대한민국우수국회의원대상 대상
  • 2015 제3회 국회의원 아름다운 말 선플상
  • 2015 새정치민주연합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 2015 한국유권자총연맹 국정감사 우수 국회의원 의정활동 대상
  • 2016 더불어민주당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 2017 법률소비자연맹 국회의원 헌정대상
  • 2017 유권자시민행동 대한민국 유권자 대상
  • 2017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최우수 의정활동상
  • 2017 더불어민주당 국정감사 우수의원상
  • 2018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사회복지의정대상
  • 2018 대한변호사협회 우수 국회의원상
  • 2018 대한국민운동본부 자랑스런 대한국민대상 입법정의부문
  • 2018 제18회 한국언론인연합회 자랑스런한국인대상
  • 2018 더불어민주당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18 국제 가이아봉사대상 정치환경부문
  • 2019 한국신문방송인클럽 대한민국 뉴리더대상 의정부문 대상
  • 2019 법률소비자연맹 제20대 국회 헌정대상
  • 2019 더불어민주당 국정감사 우수의원
  • 2020 제1회 아주경제 베스트의정대상

6. 여담


  • 망치부인과는 친한 사이다. 종종 방송에서 망치부인이 언급하며, 그의 남편을 지방의원의 길로 이끈 이가 바로 남편 김근태인 영향이 크다.

7.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도봉 갑

'''45,682 (58.46%)'''
'''당선 (1위)'''
'''초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49,780 (60.10%)'''
'''재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50,653 (54.02%)'''
'''3선'''

8. 둘러보기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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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제20대 후반기
전혜숙

'''제20대 후반기
인재근'''

제21대 전반기
정춘숙

'''대한민국 국회 행정안전위원장'''
제20대 전반기
유재중

'''제20대 후반기
인재근'''

제20대 후반기
전혜숙







[1] 교동 인씨 인터넷족보에는 10월 11일생으로 기재되어 있다.[2] 예공파 63세.[3]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사별한 남편인 김근태 전 의원의 세례명은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인 즈카리야 이다.[4] 비밀유지를 잘했는지, 당시 두 사람이 결혼을 발표하던 시점에 놀랐던 운동권 학생들이 많았다고 한다. "응? 결혼? 김근태 선배랑 인재근 선배가 연애를 했었다고?"라는 학생들도 있었을 정도. 물론 시위와 도망과 체포 및 구속이 반복되는 민주화 운동의 특성과 운동권 조직이 한두 개가 아니었던 상황상 같은 조직으로 그들의 바로옆에서 있던 선후배 동료가 아니라, 연계조직이나 투옥 후 출소자나 기타 그들을 자주 만나기 힘들던 운동가들은 지도자의 그런 사적인 정보까지 다 알기 힘들었고, 알아도 주변에 알려주고 다닐 여력이 없었기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운동권 지도자가 최근에 누구와 연애한다, 결혼한다 하는 정보들도 경찰 측에서는 그들을 추적하거나 감시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가 되기에, 최대한 아는 사람을 안 만드는 게 낫기도 했다.[5] 운동지도자 부부로서의 정치적 시너지는 있었지만, 혹 김근태와 연계되었던 운동경력을 빼고 인재근 개인의 민주화 운동 지도자경력만 봐도 엄청나기에, 만약 김근태와 결혼하지 않고 다른 민주화 운동 지도자와 결혼해서 정치계에 들어갔다 한들, 현재의 운동권 출신(민평련계) 정치인들의 지도자격인 위치에서 밀릴 이유가 없다. 민주화운동가가 아닌 사람과 결혼했다면, 오히려 직선제 시대 후에 본인이 정치계로 바로 들어갔었다해도 문제없는 커리어였다.[6] 하지만 반론으로는 1987년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 수상 이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정치 일선에서 활동하지 않다가 남편의 사망 이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남편의 지역구에 경선도 없이 전략공천을 받았다는 것은 과연 남편의 후광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지 의구심이 든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그녀가 20년 동안 남편을 돕기 위해 정치를 쉬지 않고, 90년대에 정치계에 들어갔다면, 최소 90년대말 김대중 정권하의 민주화운동계 여성정치인 성장기에 그 세력에서 앞장을 서고도 남았을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인재근 등장 전에 이름을 알린 여성정치인 중 인재근처럼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폭력에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의, 운동지도자로 민주화운동을 오래 했던 사람이 (있기는 있지만) 매우 적다.[7] 20대 국회 임기 동안 지역의 주요 현안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았고, 공약도 지난 총선 때와 달라진 것이 그다지 없었다.[8] 남편이자 민주화 운동의 동지였던 김근태 의장과 함께 수상했다. 그러나 상술된대로 당시 김근태는 출소 전이라 아내인 본인 혼자 시상식에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