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윤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2. 생애
1957년 경상북도 대구시(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대구초등학교,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대륜고등학교, 영남대학교 법학과,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3. 정치 활동
대학원생이던 1986년, 유성환 국회의원의 "우리의 국시는 통일이어야 한다"라는 대정부 질의 원고를 대필했다가 국가보안법 혐의로 구속되면서 정치권과 인연을 맺었고, 1987년 석방된 뒤 1990년까지 박찬종 의원의 보좌관을 지냈다. 이후 꼬마민주당 창당에 참여했으며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대구직할시 동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자유당 김복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역시 자유민주연합 김복동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신한국당이 통합민주당을 흡수하여 한나라당이 되자 이에 합류하였다. 1998년 제2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현직 구청장인 자유민주연합 오기환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청장 선거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3년 말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구청장직을 사임했지만 경선을 놓고 당 지도부와의 마찰 끝에 한나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대구광역시 동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박창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듬해 하반기 재보궐선거에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하기 위해 한나라당 복당을 시도했지만 거부되자 출마를 고심한 끝에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를 지지하며 선대위원장을 맡았으나 석패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7년 8월에는 노무현의 부름을 받고 대통령비서실 사회조정1비서관을 지냈다. 2008년에는 민주당에 입당해 손학규 대표의 정무특별보좌역을 지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통합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누리당 류성걸 후보에 밀려 낙선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영남권 비례대표를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2016년 더불어민주당 대구시당위원장에 임명되었고, 2017년 2월~6월에 최인호에 이어 더불어민주당 영남권 최고위원을 역임했다.
3.1. 2018년 지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대구광역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4월 21일에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대구광역시장 후보로 확정되었다.
비록 한나라당에서 활동한 전력이 있지만 원래 출신 자체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꼬마민주당인 데다가, 무엇보다도 열린우리당 쪽에 발을 담근 2005년 이래로는 전국에서 암흑기였던 민주당계 정당을 그것도 대구에서 꿋꿋하게 지켜 온 점, 거기에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한나라당 시절 구청장을 2번 지낸 덕분에 결선 투표에서 56%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구청장 재임 기간 뚜렷한 성과를 보인 적은 없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현직 시장인 권영진 후보에게 '''10%p 이내'''로 밀리는 중이지만, '''대구'''라는 점에서 상당한 관심을 얻고 있는데 특히 40대 이하 유권자 사이에서는 권영진을 앞서고 있다. 때문에 젊은 층의 투표율이 매우 높을 경우 정말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전망이 있기도 하다. 이후 6월 6일에 실시한 여론조사[1] 에서는 불과 '''3.1%p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기간 전 마지막 조사였던 KBS의 여론조사에서는 아예 '''1.9%'''까지 격차가 줄어버렸다. 이 페이스로는 선거일까지 역전이 충분히 가능한 상황. 선거일까지 기간이 얼마 안 남은 상황이고 다른 지역보다 유난히 많은 부동층이 누구에게 투표할 것인지가 문제긴 하지만, 여권 측에는 선거 전에 북미정상회담이라는 최종 변수가 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정말 대구광역시장으로 당선될 지도 모른다고 보여졌다.[2]
하지만 박빙이 예상된 것과 달리, 김부겸이 6.4 지방선거 당시 결과 얻은 것과 비슷한 수치를 얻으며 권영진에 완패해 낙선했다.[3] 그러나 김부겸 후보가 대구에서 높은 인물 경쟁력을 지녔고 박근혜 마케팅을 하면서까지 해서 겨우 이 수치를 얻은 반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임대윤 후보가 이 정도의 지지율을 얻은 것은 대구광역시 내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약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기사 다만 임대윤 후보의 선전은 당에 의존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지역 일각에서는 임대윤의 차기 지선때 당선 가능성에 의구심을 가지기도 한다. 따라서 후보 개인의 능력을 기르는 것이 요구되어 보인다.
여담이지만 1998년 지방선거 때는 본인의 선거 공보물에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와 찍은 사진까지 넣어가면서 박근혜 마케팅을 시전한 이력이 있고, 그로부터 정확히 20년 후의 지방선거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찍은 사진에다가 우리는 한 팀이라며 문재인 마케팅을 시전한 것을 보면 영락없는 철새. 게다가 28년간 빨갱이 수모를 겪으면서 대구에서 민주당을 지켜냈다고 말했지만 엄밀히 따지자면 1997년 민주당과 신한국당이 합당할 때 따라갔고 2004년 초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출마 과정에서 공천 잡음으로 탈당할 때까지 약 6년 넘게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적이 있다.
물론 2005년 재보궐선거에서 대구 동구 을에 출마한 열린우리당 이강철 후보를 지지했고, 2008년 민주당에 입당한 뒤로는 계속해서 민주당을 지켜왔다는 점에서 참작할 여지는 충분한 편. 무엇보다도 대구 경북 지역에서 민주당의 지지도가 어떤지를 생각하면 10년 넘게 어쨌든 험지에 꾸준히 도전한게 맞는데다, 2010년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자체가 대구 경북은 물론 전국적으로 지지세가 꺾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지역도 아닌 대구에서 민주당 당적을 유지한건 그만큼 철새 논란에서 자유로운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