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 루이즈 칼망

 

'''잔 칼망
Jeanne Louise Calment
'''
[image][1]
<color=#ffffff><colbgcolor=#00001b> '''출생'''
1875년 2월 21일
프랑스 제3공화국 부슈뒤론 주 아를
(現 프랑스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아를)
<color=#ffffff> '''사망'''
1997년 8월 4일 '''(122세)'''
프랑스 제5공화국 부슈뒤론 주 아를
(現 프랑스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아를)
<color=#ffffff> '''신장'''
150cm
<color=#ffffff> '''부모'''
부친 니콜라 칼망(Nicolas Calment)[생몰년도]
모친 마르그리트 질(Marguerite Gilles)[생몰년도1]
<color=#ffffff> '''형제자매'''
오빠 프랑수아 칼망(François Calment)[생몰년도2]
<color=#ffffff> '''배우자'''
페르낭 칼망(Fernand Calment)
[생몰년도3]
<color=#ffffff> '''자녀'''
딸 이본 칼망(Yvonne Calment)
[생몰년도4][2]
<color=#ffffff> '''친인척'''
손자 프레데리크 빌리오(Frédéric Billiot)
[생몰년도5]
1. 개요
2. 각종 에피소드
3. 연도별 사진
4. 기록

[clearfix]

1. 개요


'''Guiness World Records'''
[image]
''' ''Oldest person ever
(최장수 인물)'' '''

'''기록자'''
'''장소'''
'''무엇'''
'''시일'''
'''JEANNE LOUISE CALMENT
잔 루이즈 칼망'''#
프랑스
122년 164일
1997년 8월 4일
공식적으로[3] 출생 및 사망 시기가 입증된 인물 중 최장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이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잘 와닿지 않는다면 이승만대한민국 대통령(1875~1965),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1875~1965)와 '''동갑'''이며, 백범 김구알베르트 아인슈타인보다 누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두 인물도 장수한 경우이지만 잔 칼망은 1965년에 90살로 사망한 이승만, 슈바이처보다 무려 32년을 더 살았다. 한국사와 비교를 하자면, 잔 칼망은 강화도 조약(1876) 1년 전에 태어나서 임오군란(1882), 갑신정변(1884), 동학 농민 혁명, 갑오개혁(1894), 을사조약(1905), 일제강점기(1910~1945)와 광복(1945-08-15), 군정기한반도 분단(1945~1948), 대한민국 정부수립(1948-08-15), 한국전쟁(1950~1953), 군사정권(1961~1987)과 민주화운동, 88올림픽(1988),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1995-06-29)까지 직접 보고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1997-11-21)하기 불과 3달 전에 사망한 셈이다. 그리고 19세기 말 ~ 20세기 말 까지의 기간을 모두 경험한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며, 4년만 더 살았으면 21세기까지 무려 3세기에 걸쳐 살 수 있었다.[4] 세계사로 따지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모두 경험하였고 러시아 제국-소비에트 연방-소련 해체-러시아 연방, 그리고 독일의 분단과 통일까지 모두 경험했으며 냉전의 시작과 끝을 두 눈으로 본 사람이다. 즉 거의 모든 근대사는 두 눈으로 지켜본 몇 안되는 인물인 셈.
[image]
출생신고서[5]
프랑스 아를의 상당히 부유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딱히 돈을 벌기 위해서 직업을 가진 적이 없으며 테니스, 사이클링, 수영, 롤러스케이트 타기, 피아노, 오페라 같은 고급 취미 생활을 자주 즐겼다고 한다. 식사로는 찐 비둘기 요리쇠고기 요리를 즐겼고 초콜릿을 많이 먹었으며 식후 디저트를 즐겼다. 디저트로는 튀긴 음식과 맵고 짠 음식을 선호했다고 한다.

2. 각종 에피소드


120년을 경과해 살아온 인물이라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많다.
  • 1965년이 되어 이제는 죽음을 생각해야 될 90세가 넘은 고령의 나이가 된 잔 칼망은, 유일한 자녀이었던 딸 이본이 마흔도 안된 나이에 늑막염으로 요절하고 손자도 자손을 남기지 못한 채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해, 상속을 해줄 사람이 없자, 같은 동네의 48세 변호사 앙드레 라프레(Andre Raffray)에게 우발적으로 아파트를 매매하기로 계약했다. 단, 조건이 있었는데, 본인이 살아있는 동안에 매달 2,500프랑(한화로 50만원)씩 지급하고 사후에 아파트 소유권을 받는다는 것. 당시 변호사는 큰 불만 없이 받아들였고, 당시에는 양측 모두 만족스럽게 체결했었다. 법학 지식을 꺼낼 것 없이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칼망은 이미 90살이 넘어서 당장 내일 사망해도 이상하지 않으니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계약 조건이었다. 그러나...결과는 알다시피 잔 칼망 할머니는 그 후로도 32년을 더 살았다. 참고로 그 변호사는 1995년에 78세로 할머니보다 2년 먼저 타계하여, 장장 30년이나 매달 50만원 가량의 금액[6]를 지급하고도 결국 아파트는 넘겨받지도 못했다. 게다가 계약자가 사망하면 계약자의 가족, 자녀들이 계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법에 따라 변호사가 사망한 후에도 가족들이 매달 2,500프랑씩 지급했다고. 매매 대금만 부동산 값의 2배가 넘었다. 결과적으로 백세시대에 32년동안 안정적인 연금을 매달 받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에피소드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920회[7]에도 나왔다.
  • 빈센트 반 고흐를 직접 본 인물이며 동시에 고흐를 본 사람 중 가장 장수한 사람이다. 1888년, 그녀의 삼촌이 운영하는 가게에 캔버스를 사러갔을 때 그 곳에서 만났다고. 참고로 반고흐를 본 소감은 "지저분한 옷차림에 불쾌한 인상(Dirty, badly dressed and disagreeable)[8]"이었다고 한다. 또한 고흐에게 색연필도 판매한 적이 있었다. 이런 사실은 고흐의 아를 이주 100주년 때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런 인연으로 114세의 나이에 <빈센트와 나(Vincent et moi)>라는 영화에 특별 출연하여, 최고령 나이에 영화에 출연한 배우라는 타이틀도 가졌다.
  • 담배를 피운 기간이 1896년(21세)~1992년(117세)으로 무려 97년 동안 담배를 피웠다. 담배 1개피에 수명이 약 12분이 단축된다는 소문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이야기.
  •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군이 그녀의 방으로 들어와서 잠을 자고 갔지만, 아무 것도 가져가진 않아서 딱히 원망스럽진 않다고 한다.
  • 80세가 될때까지 곱게 늙었다.
  • 1996년에는 요양소의 재정 문제를 돕기 위해 랩 음악을 배경으로 잔 칼망의 목소리를 녹음한 라는 앨범을 발매하기도 하였다.
  • 110세 즈음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 치매 판정을 받았지만, 사실은 치매가 아니라 희귀한 프랑스 사투리(...)만을 쓰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 잔 칼망이 워낙 독보적으로 장수해서 그렇지 오빠인 프랑수아도 무려 97세까지 장수했고, 부친인 니콜라도 91세, 모친인 마크크리트도 86세까지 장수했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듯하다. 이쯤 되면 여든을 못 채우고 죽은 남편이 부족해 보일 지경.

3. 연도별 사진


[image]
1895년(20세)
[image]
1915년(40세)
[image]
1924년(49세)
오른쪽이 그녀이며
왼쪽은 그녀의 딸인 '''이본 칼망'''(Yvonne Calment)(1898년~1936년)
[image]
1935년(60세)[9]
[image]
1987년(112세)
[image]
1995년 2월 21일
'''120세 생일'''
[image]
1997년 2월 21일(122세)[10]

4. 기록


'''세계에서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만 120세를 넘긴 인물'''[11]
'''역사상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 (1875년 2월 21일 ~ 1997년 8월 4일)'''
'''역사상 가장 장수한 인물 (1875년 2월 21일 ~1997년 8월 4일)'''
소소한 트리비아가 많은데, 전화가 발명되기 전에 태어난 세대 중 마지막 생존자 등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1] 왼쪽은 20세때, 오른쪽은 121세에 찍은 사진이다.[생몰년도] 1838년 1월 28일 ~ 1931년 1월 22일(향년 92세)[생몰년도1] 1838년 2월 20일 ~ 1924년 9월 18일(향년 86세)[생몰년도2] 1865년 4월 25일 ~ 1962년 12월 1일(향년 97세)[생몰년도3] 1868년 ~ 1942년 (향년 74세)[생몰년도4] 1898년 1월 20일 ~ 1934년 1월 19일[2] 늑막염으로 35세에 요절했다.[생몰년도5] 1926년 12월 23일 ~ 1963년 8월 13일 (향년 37세) [3] 왜 공식적이라는 말이 붙는가 하면 이러한 장수한 인물들의 출생 연도가 19세기 말 내지 20세기 초까지 올라가는데 당시에는 아직 대부분의 나라에서 아직 행정 체계가 제대로 자리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도 사고나 전쟁 등으로 기록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 기록이 보존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현재도 여러나라에는 행정적으로 19세기 사람들이 호적상으로는 많이 존재하지만 실제로 생존해 있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음바 고토 할아버지 참조)나 나이지리아,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 이란, 에티오피아, 브라질, 필리핀 등 이런 나라에는 행정적으로 1870년도 아래로 기록되어 있는 인물들이 아직까지 많이 존재한다. 한국보다 50년 일찍 주민등록체계를 만든 일본에서도 2010년 고령자의 호적을 조사한 결과 100세 이상 고령자 중 수십만명이 '행방불명' 상태였으며 이 중 최고령자는 200세였다고 한다. 캐나다미국같이 주민행정체계를 19세기부터 해온 나라들경우에도 행정상 1880년대 이전 출생자들이 존재하고있다. 또한 역으로 그 시대가 행정 체계가 제대로 안 잡혀 있던 시대에 유럽이나 행정 선진국이 아니던 나라에서 19세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던 사람들 중 하나라서, 본인 혹은 그의 가족들이 120세 이상을 주장함에도 기네스북이나 국가행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사례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결국 19세기의 국가행정 처리능력 부족으로 '''출생 시기'''나 '''사망 시기''' 둘 중 하나는 공문서로 입증이 안 되는 사례가 매우 많다는 것. 한국의 경우, 1899년생으로 알려진 이화례 할머니는 121세까지 살다 가셨다.[4] 2000년은 20세기의 끝이라서 거기까지 살면 125세고, 그 다음 해인 21세기 시작년도인 2001년은 126세로 그 년도까지 살면 |21세기까지 사는 것이다.[5] 맨 첫 줄의 mil huit cent septante-cinq가 출생년도인 1875를 뜻한다.[6] 그것도 당시의 환율을 고려하면 현재보다 훨씬 가치가 큰 금액이다.[7] 2020년 6월 14일 방송분.[8] 추가로 very ugly (매우 못생긴), ungracious (불손한), impolite (무례한), sick (병든) 이런 말도 덧붙였다.[9] 환갑이다. [10] 별세하기 5개월 반 전의 사진이다. 그녀의 생전 마지막 생일이다.[11] 이전에는 일본의 이즈미 시게치요가 120세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으나, 현재는 당시의 기록에 오류가 있었고 사망 시의 실제 나이는 105세인 것으로 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