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훈(야구)
1. 소개
前 삼성 라이온즈, 넥센 히어로즈의 좌완 투수. 2010년에 장원삼과 트레이드되어 김상수와 같이 넥센 히어로즈에 이적하였다.
2. 프로 생활
2.1. 삼성 라이온즈 시절
강릉고 재학 시절에 2001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4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한양대학교에 진학해 2005년에 삼성에 입단했다.[1] 신인이었지만 줄곧 중간계투로 기용되어 쏠쏠한 활약을 했다.
그러던 6월 7일 두산전...
8회에 등판한 박성훈은 8회에만 3실점을 기록했다. 9회에 들어서는 2아웃까지 잘 잡고는 1사 1, 2루 상황에서 당시 두산 소속이었던 '''좌완투수 조현근에게 3루타를 맞는 등'''[2] 9회에만 7실점했다.
결국 그 경기 이후 자신감을 상실해 2군으로 내려갔고, 이후 팔꿈치 수술을 받아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2005 시즌이 끝나고 나서 일찌감치 공익근무요원으로 군 복무를 했다.
군 제대 후 시즌인 2008 시즌은 거의 2군에서 보내다가 2008 시즌 종료 뒤에 장원삼과의 트레이드 파문으로 인해 화제가 되었다.[3] 문제는 박성훈이 히어로즈 팀 훈련에 참가한 후 인터뷰에서 '여기서 기회를 잡고 싶다. '''삼성에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는데, '''트레이드가 무산되면서 삼성에 돌아가고 말았다.'''(...)
덕분에 찍혀서 다시는 1군으로 올라오지 못하고 트레이드 카드로도 안 쓴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투수가 부족한 탓인지 그냥 루머였는지 2009년 시즌 후반기부터 1군으로 승격, 채상병과의 트레이드로 두산으로 이적한 좌완 지승민과 부상으로 빠진 안지만과 오승환, 최악의 성적(1승 12패)를 기록한 배영수와 과부하가 걸린 정현욱과 권혁을 대신해서 중간계투의 한 축을 담당했다. '''하지만''' 삼성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방화범 유닛 '''조원수박차'''의 '박'을 맡으며 삼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4]
2.2. 넥센 히어로즈 시절
결국 2009 시즌 끝나고 장원삼의 트레이드가 성사되면서 이번에는 진짜로 투상수와 같이 넥센 히어로즈로 갔다. '주전 기회를 잡을 것 같냐'는 질문에 '뭐 있어봐야 알겠죠'라고 대답을 했지만 2012년까지는 1군에 거의 발을 들이지 못했다. 1군에서 가끔 모습을 보여줬지만 처참한 결과만을 남겼다. 퓨처스리그에서 2011년 다승왕을 기록할 정도로 구위 자체는 괜찮은데, 실전에서 전혀 발휘가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고 한다.
2.2.1. 2012 시즌
2012년 개막 엔트리에 들었다. 주로 추격조 위주로 기용되었는데 생각보다 향상된 모습을 보이면서 삼성 라이온즈에서 같이 건너 온 김상수와 함께 나쁘지 않은 활약으로 1군에 계속 남았다.
2012년의 426 대첩 와중에 팀이 스코어 5:7로 뒤진 8회말 2사 1, 2루 상황에서 구원 등판했는데, 대타 서동욱#s-1에게 몸에 맞는 볼을 내줘 2사 만루를 자초하였다. 그리고 오지환의 날카로운 타구를 김민우의 호수비로 아웃시키면서 불을 껐다. 그리고 9회초에 넥센이 LG 투수들의 자멸을 틈타 대거 4점을 뽑으면서 역전하였고, 손승락이 9회말에 등판하여 무실점으로 막고 세이브를 거두면서 팀이 9:7로 승리하면서 박성훈은 ⅓이닝 9투구수 1사구(死球) 무실점으로 행운의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이게 프로 통산 데뷔 첫 승이었다.'''
5월 10일 목동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팀이 스코어 1:2로 앞선 8회초에 팀의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선두 타자인 박용택에게는 볼넷을 내줬지만, 후속 세 타자를 깔끔하게 막으면서 1이닝 16투구수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고 팀도 이날 1:2로 승리했다. 2012년 들어 오재영과 함께 넥센의 좌완 계투진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오재영이 팔꿈치 수술로 이탈한 후에는 넥센 유일의 필승조로 활약하면서 5승을 거두면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다. 아래에 커리어를 보면 알겠지만 포텐이 제대로 폭발한 시즌. 또한 오재영이 팔꿈치 수술로 아웃되기 전부터 이미 빌빌거리고 있었기 때문에, 2012년에 넥센에서 제대로 된 좌완 불펜은 박성훈이 사실상 유일했다.
그 전후로 잘 했던 해가 이 2012년밖에 없기에 팬들은 박성훈의 2012년은 도대체 어떤 해였는지 의심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BABIP를 구해 봤는데... 이 해 박성훈의 BABIP는 '''0.227'''이다. 09 유동훈의 BABIP 0.181보단 못하지만 어쨌건 상당히 BABIP가 낮았던 시즌이며 상당히 운이 따라줬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유동훈은 플루크 시즌이 아니라도 1군 투수급이었는데 박성훈은 1군 투수급이 아니니까.
참고로 2012 시즌에 박성훈은 연속 12이닝 무안타 기록으로 최다 이닝 무안타 2위에 등극했다. 참고로 최다이닝 무안타 기록은 1987년 OB 소속이었던 김진욱[5] 이 세운 13이닝이다.
2.2.2. 2013 시즌
2013 시즌은 오재영이 수술 후 재활 중이며, 노환수, 하해웅 등이 2군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유일한 좌완 불펜으로 시즌을 시작하였다. 이전 시즌에 비해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족족 안타를 맞았지만 대체재도 없는 상황이였기 때문.
4월 16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1이닝을 책임지며 이번 시즌 들어 처음으로 승리 투수가 되었다. 다음 날에도 팀이 역전에 성공한 직후 마운드에 등판해 박종윤을 처리하여 원 포인트 릴리프로서의 임무를 충실히 하고, 손승락에게 마운드를 넘기며 홀드를 따냈다.
4월 19일 NC 다이노스전에서 9회 초에 등판해서 1이닝 동안 던지며 무실점 피칭을 했다. 다음 이닝에 박병호가 끝내기 홈런을 때리면서 승리 투수가 되었다.
4월 30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8회 말 2사 이후에 등판해서, 박석민, 이승엽, 최형우의 좌타 라인을 꽁꽁 틀어막으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여담으로 세이브는 한 타자만 상대한 손승락이 기록했다.
5월 1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7회 말 2사 1, 2루 상황에 등판했다. 앞서 등판했던 불펜진들의 분식회계와 수비진의 실책으로 삼성이 8대4까지 추격하던 상황이었는데, 박한이를 1루수 땅볼로 잡으며 위기를 막았다. 8회 말에도 올라와 채태인도 1루수 땅볼로 아웃시키고 한현희에게 마운드를 넘겨 자신이 맡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세이브 조작단의 불쇼 덕분에 홀드도 덤으로 먹었다.
5월 2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주중 3연전 마지막 경기에도 나왔다. 좌타자들이 많은 삼성 타선을 상대로 했기에 팀에서 유일한 좌완 불펜인 박성훈이 3일 연투로 노예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네 명의 타자를 상대해서 볼넷 두 개를 내줬으나 실점 없이 마운드에서 내려갔고, 박성훈이 남긴 주자는 다음 투수인 송신영이 병살로 깔끔하게 처리했다.
그러나 여름부터 급격하게 성적이 몰락하면서 왼손 셋업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해주지 못하면서 강진과 서울을 오가게 되었다. 결국 다시 원래의 '조원수박차' 클래스로 회귀, 팬들의 많은 비난을 산 선수 중 한 명이다. 특히 중반부 이후에는 등판하면 볼넷을 남기고 다시 교체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어 '원 포인트 릴리프'가 아니라 '''원 포인트 볼넷'''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고, 강윤구가 불펜으로 이동하기 전까지 거의 유일한 팀내 1군 좌완 불펜으로서 부진해도 잘 강등되지 않는다는 점에서[6] 염경엽 감독의 양아들 라인에 들기도 했다. 결국 감독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며 팀의 첫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진입하지 못하고 시즌 종료.
시즌이 끝난 후 결혼했다.
2.2.3. 2014 시즌
3월 29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서 6회에 구원 등판했으나, 올라오자마자 박정권에게 2점 홈런을 맞고 마정길로 교체되었다.
그 뒤로도 꾸준히 못 하는 중. 5월 28일 SK전에서는 8회 초 볼넷 세 개를 내주면서도 무실점으로 끝냈지만, 30일 LG전에서는 안타 네 개를 맞으며 3실점을 기록했다. 나왔다 하면 볼넷 아니면 홈런을 헌납하면서도 왼손타자를 상대할 계투가 마땅히 없는 팀 사정상 꾸준히 등판하고 있다. 감독도 이 사정을 알고 있는지 6월 1일 LG 트윈스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는 경기후반 좌타자가 줄줄이 나오는데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이 우타자 대비 두 배가 넘는, 게다가 과부하로 최근 성적이 썩 좋지 않은 한현희를 그대로 끌고 갔을 정도지만, 아무리 성적이 좋지 않아도 곧 박성훈을 다시 내보낼 수밖에 없는 것이 넥센 히어로즈 투수진의 가슴아픈 속사정이다.
6월 4일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서 3이닝 12실점(...)하고 내려간 헨리 소사의 뒤를 이어 등판해, 홈런포함 2이닝 3실점을 적립했고 넥센은 이날 경기에서 무실점 이닝이 고작 한 개일 정도로 총체적인 투수진 문제를 드러냈다.
6.28 잠실 두산전에서 8회초 선발 헨리 소사의 뒤를 이어 등판하였다. 그러나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만 잡고 강판당했다(...?)
그 이유에 관해서는 설이 분분한데, 박성훈에게는 0.1이닝도 사치라는 설과, 박성훈이 변한 게 없어서라는 설 등이 있으나, 실제 원인은 이 날 두산 송일수 감독의 투수 운용 때문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 날 송일수 감독은 니퍼트가 6회 4실점으로 강판된 이후 이현승-오현택-윤명준-함덕주-김강률-홍상삼으로 이어지는 유례없는 3이닝 6투수를 등판시켰고[7] , 넥센의 타선의 흐름이 끊어지게 된다. 이 때문에 박성훈을 단 0.1이닝만 등판시켰다고 한다.
시즌 중반부터는 1군에 전문 좌완 중간계투가 없다시피한 와중에도 거의 등판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필승조가 과부하로 인해 주기적으로 좌타자에 털리는 와중에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작년에 이어 포스트시즌 엔트리 탈락은 덤.
2.2.4. 2015 시즌
아예 1군에 올라오지 못했다. 좌완 영건들이 신나게 7~8점대 ERA를 찍으며 털리는 와중에도 전혀 부름을 받지 못했다. 5점, 8점대 ERA를 각각 찍은 지난 2년 간 성적과 30대 중반으로 달려가는 나이, 그리고 올시즌 퓨처스리그에서도 4승 6패 1세이브 4홀드 ERA '''6.91'''을 찍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결국 2015 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면서 방출당했다. 구단에서는 기회를 주기 위해 완전히 방출했다고 언급했다.
3. 기타
별명으로는 박성훈훈, 훈훈갑이 있지만 이건 잘했을때만 불리는 별명으로 주로 불리는 별명으로는 염성훈, 널빤지 등이 있다.
스톡킹 EP5-3에서 나온 이야기에 의하면 김상수와 같이 트레이드 될 당시 정민태 코치가 전화해서 투수 좀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박성훈 본인이 김상수를 추천했다고 한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5. 관련 문서
[1] 2001 드래프트 당시 삼성에서는 김덕윤, 이정호를 제외한 모든 고졸 지명선수들을 대학으로 보냈다.[2] 당시 두산은 지명타자가 소멸한 데다가, 이미 모든 타자를 다 기용한 상태라 조현근이 그대로 타석에 들어섰던 것. 김경문 감독은 그냥 서 있다가 들어오라고 지시했지만, 조현근은 상원고 때 1번 타자를 쳤다며 도리어 치고 싶다고 어필했다고.[3] 이 당시 박성훈에 대해 삼성 구단이 왼손 오승환 드립을 치면서 더 까였다.[4] 다만 나머지 4인의 기대치가 박성훈보다 훨씬 높아서 욕은 덜 먹은 편이다. 차우찬, 최원제는 2차 1라운드, 조현근, 김상수는 2차 2라운드로 박성훈보다 상위 픽이다. 실제로 2008 시즌 조현근과 차우찬은 1군에서 평타 이상은 쳤고 최원제, 김상수는 2군을 씹어먹었다.[5] KT 위즈 2대 감독으로 있는 그 분 맞다[6] 박종윤이 잠시 올라오긴 했으나 경험 그 이상으로 전력으로 활약해주지는 못했다.[7] 홍상삼 빼고는 모두 1이닝을 채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