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츠마타 토모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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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연출 특징
3. 대표작
3.1. 감독
3.2. 참여작
4. 연출 샘플


1. 개요


勝間田具治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및 연출가. 1938년 2월 4일 생. (86세) 시즈오카현 시모다시 출신. 니혼대학교 예술학부 학사를 졸업했다. 토에이 애니메이션 소속이며, 오랫동안 토에이산 애니메이션을 연출해온 거물급 연출가이다. 대표작은 UFO로보 그렌다이저,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카츠마타 토모하루 삼국지 등등.
숙부인 배우 키시이 아키라(岸井 明)의 소개로 1960년 토에이에 입사했다. 특이하게도 커리어를 토에이 교토 촬영소에 들어가 시대극 실사영화 조감독 연출부터 시작했는데, 이는 당시 TV 보급률이 낮았던 시절인지라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영화 제작만이 유일하게 영상물을 만들 수 있는 등용문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TV 보급이 시작되면서 영화 산업이 쇠퇴함과 동시에[1] 1964년에 토에이의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완공되어 애니메이션 분야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자 예전부터 들어오던 애니 연출 오퍼를 수락,[2] 이 때부터 애니메이션 연출가로 전향하여 활동하게 된다.[3]
연출가로서 경험을 쌓다가 타이거 마스크데빌맨으로 좋은 반응을 얻어 자리를 잡고 마징가 Z, 겟타로보, 그레이트 마징가, UFO로보 그렌다이저, 대공마룡 가이킹, 마그네로보 가킨, 혹성로보 단가드A 등 토에이제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액션과 드라마가 뛰어난 에피소드를 다수 연출했다. 우주전함 야마토우주해적 캡틴 하록 같은 우주전함 애니메이션 연출에도 상당한 역량을 보였다.
토미노 요시유키, 타카하타 이사오, 미야자키 하야오 등 다른 거장들에 비해 부각되지는 않으나 일본 애니메이션, 그 중에서도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모든 역사를 실시간으로 체험했던 거장이다. 2016년까지 타이거 마스크 W의 콘티를 직접 작성하고 후임 육성을 위해 토에이에 왕래했었고, 2017년 전후로 업계 활동은 은퇴했으나 2019년까지 인터뷰와 토크 이벤트를 진행한 기록이 있다.
전쟁 체험 세대로서 전쟁을 반대하는 에피소드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로 UFO로보 그렌다이저의 나이다 등. 정치적으론 공명당을 지지하고 후원하고 있다.
같이 일하는 애니메이터로는 코마츠바라 카즈오, 츠노다 코이치, 아라키 신고가 있다. 제자로는 모리시타 코조가 있다.
시대극 조감독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실사영화를 한편이라도 좋으니 찍어보고 싶었다는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2. 연출 특징


실사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용되는 카메라 구도와 관련된 촬영 기법을 애니메이션에 많이 도입했다. 그 중에서도 당시 애니에선 잘 안 쓰이던 롱 쇼트를 많이 사용한 감독이다. [4] 투과광 연출도 많이 쓰는데 이건 제자인 모리시타 코조와 제자의 제자인 야마우치 시게야스에게도 이어진다.
무술 액션 연출에도 일가견이 있다. 초창기 토에이의 감독 중에선 니시자와 노부타카와 함께 액션으로 유명한 감독이었다. 카츠마타 본인은 마법소녀 애니메이션을 더 하고 싶었으나 토에이는 액션을 잘 한다며 액션만 시켰다고 한다. # 활동 초기엔 표정이나 액션 구도 연출은 프로급이었으나 움직임이 상당히 어색했는데 실사에서 넘어와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프레임 개념 차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 노력으로 점점 개선해 그렌다이저 쯤에는 큰 문제를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액션 연출을 잘하지만 본인이 별로 액션엔 욕심이 없어 드라마 전개만 하고 액션은 짧게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표정 연출도 잘한다. 여러 표정으로 애절한 드라마성을 부각하는 연출이 특징이며 본인도 이를 자신이 고집하는 연출 스타일이라 인정한 바 있다. 요즘 애니메이션은 연출과 영상이 확실히 발전했으나 드라마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5] 그가 직접 연출한 에피소드나 감독작은 신나는 분위기보단 애절하고 비극적인 분위기가 깔리는 경우가 많다.

3. 대표작



3.1. 감독



3.2. 참여작


토에이는 특별히 콘티라 표기되지 않으면 연출로 참여한 사람이 콘티도 작성한다.

4. 연출 샘플



마징가 Z 대 데빌맨

그렌다이저 25화 하늘에 핀 사랑의 꽃

그렌다이저 72화 머나먼 고향 별

내 청춘의 아르카디아

카츠마타 토모하루 삼국지

[1] TV가 보급되자 다들 집에서 TV만 시청했기 때문에 극장가의 발길이 끊어져 영화사들 대다수가 망할 위기에 처했었다고 한다. 실제로 이 현상으로 영화사들의 채용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실사영화계의 뜻을 접고 애니메이션 업계로 눈을 돌린 인물들도 있었는데 이 중 한 명이 바로 토미노 요시유키다.[2] 자신은 그림을 그리지 못하기에 몇 번 거절했으나, 상술한 영화산업의 쇠퇴에 대한 불안감이 있었고, 계속되는 권유에 지치기도 했으며 자신도 조감독을 벗어나 감독을 해보고 싶은 욕심에 결국 수락했다고 한다.(실제로 토에이 동화 인원들도 '너 정도면 금방 감독할 수 있다'는 식으로 꾀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그림 실력으로도 애니메이터는 못해도 콘티는 충분히 될 정도였다고 한다. 1960년대 당시에는 애니메이션과 실사 장르 및 업계 구분이 확연해진 오늘날과는 달리 막 진입할 무렵이었던지라 이런 식으로 영화 연출가 중 일부를 애니메이션계로 영입했다.[3] 다만 오퍼를 받고 들어와보니 애니메이션 제작 체계는 실사영화와 다르게 회사처럼 연출팀이 로테이션 식으로 돌아가는 식이었고, 특히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TV 애니메이션에서 감독 표기를 쓰지 않고 대부분 연출, 시리즈 디렉터 등으로 표기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고 한다.[4] 피사체를 멀리서 잡아 배경을 많이 보여주는 연출[5] 다만 후배 감독들 중에서도 본인만의 드라마성을 보여주는 신카이 마코토에 대해서는 대단하다고 칭찬을 한 적이 있다. # (9분 39초)[6]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감독을 감독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치프 디렉터나 시리즈 디렉터라고 부른다.[7] suite. 호텔 스위트 룸의 그 스위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