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에이 애니메이션

 



[image]
'''토에이 애니메이션'''
'''東映アニメーション
TOEI ANIMATION'''

}}}
'''기업명'''
'''한글''': 주식회사 토에이 애니메이션[1]
'''일어''': 東映アニメーション株式会社
'''영어''': TOEI ANIMATION CO., LTD.
'''국가'''
일본
'''설립일'''
1948년 10월 23일(일본 동화 주식회사)
1956년 7월 1일(도에이 동화 주식회사)
'''본사'''
도쿄도 나카노구 나카노 4쵸메 10-1
'''설립자'''
마사오카 겐조(政岡憲三)[A]
야마모토 젠지로(山本善次郎)[A]
오카와 히로시(大川 博)[2]
'''대표자'''
타카기 카츠히로(高木勝裕) (CEO)
'''모기업'''
토에이
'''기업규모'''
대기업
'''시가총액'''
3조 1,729억원 (2020년 10월 9일 기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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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
'''상장여부''': 상장기업
'''상장시장''': 자스닥 (2013년 7월 16일 ~ )
'''사업 내용'''
애니메이션의 기획 · 제작, 판권 사업
'''종목코드'''
JQ: 4816
'''총매출'''
6,244억 9,176만원 (2019)
'''자본금'''
3억 2,143만원 (2019)
'''직원 수'''
755명 (2019)

1. 개요
2. 역사
3. 특징
3.1. 규모
3.2. 제작 특징
3.3. 개인 개성 강조
3.4. 3D
3.5. 저작권
4. 평가
4.2. 호평
5. 작품 일람
6. 관련 인물
6.1. 시리즈 디렉터
6.2. 애니메이터
7. 관련 문서
8. 출신자가 세운 관련 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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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식회사 토에이 산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마스코트는 '장화신은 고양이', '장화 삼총사', '장화신은 고양이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인 '페로'이다.[3]
1958년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을 제작한 바 있었고, 이후부터 장편 애니 시장을 주도했다. 1998년에 토에이 애니메이션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애니메이션 산업부분은 디즈니와 많이 닮은 편이다.[4] 그러나 제작비에 비해 수익률이 저조하게 된 나머지 결국 '''리미티드''' 방식으로 사업을 전향한다.

2. 역사


원래 1948년에 설립된 회사는 일본 동화 주식회사(日本動画株式会社)이었으나 1952년에 일동영화주식회사(日動映画株式会社)로 상호가 변경되었으며, 이를 당시 토에이의 사장(CEO)이었던 오카와 히로시(大川 博)가 1956년 7월 사원체로 흡수하여 만든 것이 도에이 동화 주식회사이다.
1955년 일동영화의 야부시타 타이지(藪下泰司)와 야마모토 젠지로가 당시 토에이의 영업과장이었던 이마다 치아키(今田智憲)를 찾아가 "저희들은 니치도라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24, 5명이서 하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어렵습니다. 협력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5]라고 상담했다고 한다. 이에 큰 가능성을 느낀 이마다가 오카와 사장에 "동양의 디즈니가 되자"며 인수를 설득했다. 오카와 사장은 전후 미국의 월트 디즈니나 프랑스, 소련의 만화영화가 일본에서 극장 개봉하며 큰 인기를 얻는 것을 보고,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전을 내다봤다. 그는 1년에 1편 극장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제작사를 설립하기로 결심했다.
1956년 1월 토에이 동화의 설립을 준비하는 만화영화 제작 연구위원회를 출범했다.[6] 장래의 사업 계획안을 회의하는 중 아카가 코이치와 이마다 치아키의 방안이 대립하기도 했는데, 이마다 치아키는 컬러 장편 제작 및 미국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제휴 & 제작 기술 도입, 관련 상품 판매와 테마파크 운영 등등의 방안을 제안했으나 채택되지 못하고 각하 처리되었다. 같은 해 1956년 7월에 니치도(日動)를 인수했고 모리 야스지, 야부시타 타이지 등을 신규로 영입해서 "토에이 동화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당시 일본 내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무척 적었던 가운데, 도쿄도 네리마구의 토에이 토쿄 촬영소에 스튜디오를 완성해 이듬해 1957년 1월 9일부로 이전하였으며, 새롭게 채용된 토에이 동화 1기생 중에는 오오츠카 야스오, 쿠스베 다이키치로 등이 있었다. 이윽고 직원 규모 증가, CM 필름의 수요 증가 대응 방안 마련을 시작했으며, 1957년 말 스튜디오 1차 증설 공사에 들어가 1959년 6월에는 2차 증설 공사를, 1964년 6월엔 3차 증설 공사를 준공하면서 구 스튜디오를 완성해냈다.
증축 과정들을 거치며 장편 애니 제작 체제를 완성시킨 토에이 동화는 1958년 10월 백사전을 발표하였다. 그후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몇몇 애니메이터들이 참여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장화 신은 고양이' 등과 경쟁사 토호의 애니메이션 극장판 공개로, 토에이 동화는 1960년대의 일본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주요 제작사로 자리매김했다.[7] 도에이 동화는 작화가뿐만 아니라 연출가, 미술가, 사진작가, 프로듀서를 비롯한 다양한 인력을 양성하던 상황이었고, 테즈카 오사무는 당시 토에이 동화의 작업 현장을 경험함으로써 애니메이션 제작 의지를 길렀을 정도였다. 1963년 철완 아톰 방송 이후 낮은 방영권료 소모로 매주 TV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기획들이 활발해지며, 만화 잡지에 연재된 만화를 바탕으로 하면 지명도에서 인기가 잡히는 것으로 나타나 토에이 동화는 지금까지의 목표와는 다른 시장을 구축하고 확대해나가기로 했다.
애니메이션 사업에 애정을 가지고 투자했던 오카와 히로시는 간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다 1971년 8월 17일에 사망했다. 후임으로 1971년 토에이의 사장 겸 도에이 동화 회장으로 취임한 오카다 시게루(岡田 茂)는 수많은 적자에 시달린 토에이 동화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8] 강경한 구조 조정을 명령해 제작 인원 수를 줄이고 320명의 절반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는데, 이에 노조원들이 크게 반발해 노사 간 단체교섭을 여러 번 이어나갔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5개월간 약 120명이 퇴직하게 된다. 당시 토에이의 주요 적자 부문들은 토에이 플라이어스[9], 전단지, 도쿄타워 교통, 볼링, 토에이 동화의 다섯 부문이었지만 이중 토에이 동화 이외의 네 부문를 철회했다. 이후 누적되어있던 적자는 서서히 소멸되었고, 1970년대엔 이전 대와 비교해 애니메이션 제작 편수가 증가했으며, TV 애니메이션보다 고비용이 소모되는 극장판 제작은 축소시킨다. 이후 토에이 동화의 주요 애니메이션 제작은 TV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졌고 극장판 장편 영화는 '토에이 만화 축제'로 대체됨으로써 토에이 동화의 장편 영화 시대는 막을 내린다. 초기부터 일하던 애니메이터들 중 일부는 이러한 흐름에 반발하거나 희망퇴직(을 가장한 구조조정)의 영향으로 타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이직하거나[10] 별도의 제작사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마다 치아키는 1993년까지 사장직에 임하며 토에이 동화에 많은 영향을 남겼는데 먼저 구조조정 시 해고당해 재판을 밟고 있던 18명의 해고를 취소해 노사 합의를 이뤄냈고, 애니메이션 제작의 적자 구조를 개선하는 경영 방침으로 저작권 비즈니스 캐릭터 상품화 영업 강화, 해외 판로 확대, 제작 하청화 및 하청 전문 관리, 해외 하청 확대[11], 혁신 생력화 도모 등을 실행했다. 이마다는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영상 산업이 세계에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제품이란 사상을 지녀, 이러한 그의 영향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토에이 동화는 일본 애니메이션 해외 진출 추진을 진두 지휘하는 기업으로 활약하면서 세계 각국의 TV, 영화 박람회에 매년 작품을 출전하기도 했다. 또한 이마다 본인이 전세계 각지의 영화제와 배급사들을 방문해 일본 애니메이션 수출 촉진을 장려하는 동시에 자사 애니메이션의 필름 해외 수출을 추진했으며, 컴퓨터에 능통한 촬영감독 요시무라 지로를 불러 1977년부터 애니메이션 제작의 컴퓨터 작업 도입과 사내 프로젝트 팀을 발족해 일본 내 대형 가전 업체들과 연계한 연구 개발을 진행하였다.[12] 1990년대 들어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되어 가격이 하락하자 1992년 '북두의 권' 게임 데이터 작성을 시작으로, 1997년 게게게의 키타로부터 셀시스가 개발한 레타스프로를 도입해 디지털 제작으로 완전히 전환시켰다.
10여년이 지난 1992년 필리핀 현지 기업 EEI와의 합작으로 EEI-TOEI ANIMATION CORPORATION(1999년부터 TOEI ANIMATION PHILS, INC. 약칭 : TAP, Toei Phils)를 설립하였다. 이로써 80년대 중반 이후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전반적으로 일본과 질적으로 크게 비슷해진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에게 하청을 맡기지 않는 대신 필리핀 등지의 해외 국가에서 하청 제작하는 위탁 체제를 마련하였다. 1996년 토에이 그룹의 대규모 인사 개혁으로 TV 애니메이션 작품 전체를 일시적으로 중지했으며, 1998년 토에이 애니메이션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했다.[13]
2000년부턴 디지털화 시스템 도입과 더불어 도에이 애니메이션 제작 네트워크 시스템의 운용을 시작해 소재 수송 시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2002년에 태블릿 시스템 '스타이로스'를 도입하고 2003년, 오이즈미 스튜디오에 토에이 애니메이션 갤러리를 개관했으며, 이 스튜디오엔 역대 애니메이션이 패널로 전시되어 있고 시기에 따라 특정 작품에 초점을 맞춰 클로즈업한 기획전이 진행되기도 한다.[14] 2014년 9월부터 노후화된 오이즈미 스튜디오 재건축을 포함한 부지의 전면 리뉴얼을 실행해 스튜디오를 2017년까지 약 3년간 네리마구의 스튜디오로 임시 이전하였다.
2013년 7월 16일 오사카증권거래소 산하 자스닥 시장에 기업공개를 완료하고 상장했다. 그 이후 오사카증권거래소가 도쿄증권거래소에 합병당하면서 도쿄증권거래소 산하로 변경. 상장 이후 계속해서 주가가 올라가다가 디지몬 어드벤처 tri. 5장 개봉 이후 혹평이 쏟아지며 상승세가 멈추고 대폭락했다. 영화관련주는 원래 런칭한 후 폭락하였다 다시 올라온다. 2018년 1월에는 이미 2017년10월 당시수준까지 올라왔다. 이 당시 상승폭이 가파르게 올랐기에 반동으로 떨어진 듯.
과거에는 여성 직원을 꽤나 차별했던 것 같으며 이때 애니메이터 오쿠야마 레이코가 토에이와 싸워서 여성 애니메이터의 대우를 개선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오랜 시간 묻혀져 있었으나 2019년 드라마 나츠조라가 이 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 졸지에 악덕 회사라는 이미지가 생겼다. 단 지금은 오히려 근무조건이 좋은 회사로 꼽힌다. 애니메이션 업계가 3D다보니 힘든 건 다 마찬가지지만 썩어도 대기업이라고 블랙 회사로는 웬만해선 거론되지 않는다.
2020년에 토에이에서 제작하는 장편 애니인 원피스, 힐링굿♡ 프리큐어, 디지몬 어드벤처: 등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악화에 따른 비상사태 선포에 영향을 받아 방영이 무기한 연기되었다. 특히 디지몬 어드벤처:는 이제 막 리부트되어 4월에 방영한지 고작 '''3화'''만에 연기되었기 때문에 초반부터 좋은 평가를 받은 게 무색해지게 되자 디지몬 팬들의 탄식이 커지고 있다. 6월 들어 스케줄 미정 애니 리스트에서 원피스가 빠지고 원피스 성우들이 녹음을 재개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힐링굿 프리큐어는 6월 21일에 12화가 재방송을 한다는 편성 정보가 나왔으며 디지몬 어드벤처도 6월 7일부터 재방송을 시작, 그 후 원피스와 디지몬, 프리큐어 모두 막주인 6월 28일부터 본방이 재개되었다. 딱 2개월간 연기한 것.

3. 특징



3.1. 규모


'''일본 애니메이션계의 디즈니.''' 이 회사가 없으면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무너진다.
일본에서 TV의 대중적인 보급이 완료된 1960년대 중반부터 주로 저연령층-청소년 대상의 TV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하고 있다. 지금이야 수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매니아 계층에 어필하고 있어서 덕후들한텐 평가절하 당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상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가장 큰 손.'''
지금은 업계 탑을 달리는 선라이즈도 설립초기에는 토에이 하청으로 먹고 살았다. 기동전사 건담 제작 비록을 다룬 만화인 '기동전사 건담씨'의 코너 건담 창세를 보면, 당시 토에이 쪽에서 선라이즈를 '''구멍가게'''라면서 무시하는 에피소드가 실려있을 정도. 링크 그리고 일본 애니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업계에 투신한 곳'''도 이곳이다.
그리고 토에이에서 제작된 작품들은 너무나 유명하다. 대표작만 해도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 은하철도 999, 프리큐어, 세일러문, 북두의 권, 세인트 세이야, 근육맨, 디지몬 어드벤처, 소년탐정 김전일 등등... 이 작품들의 개별적인 인지도만 생각해봐도 무시무시하다.

3.2. 제작 특징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의 특징으로는 유명 원작들의 판권을 사서(원피스, 드래곤볼) 작품을 만드는 편이다. 참고로 이게 와전되어 판권만 잡고 있어도 돈을 번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잘못된 말이다. 작품을 만들기 전에 판권을 '일부' 사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권리를 차지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되팔거나 일부만 가지고 있는다. 오리지널 애니의 판권은 우선 팔고 시작한다. 제작비는 방송사와 원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스폰서에서 주는 걸로 만든다.[15]
1970년대까지 일본의 만화 출판사는 원작의 애니메이션화를 주저했다. TV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보고나면 원작인 만화는 안 볼거라는 생각(오해)를 했기 때문이다. 특히나 애니메이션화에 소극적이었던 슈에이샤주간 소년 점프에 연재된 토리야마 아키라닥터 슬럼프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지고 TV방영을 시작하자 인기가 폭발하고 단행본이 불티나게 팔리자, 이후 만화 출판사는 애니메이션 영상화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가장 잘 만들어 줄만한 회사는 역시나 대기업 토에이였기에, 인기 원작 만화는 일단 토에이한테 애니메이션화 의뢰를 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유명 원작이 아니거나(금색의 갓슈) 또는 새롭게 원작을 만들기도 한다(프리큐어, 꼬마마법사 레미).[16] 그리고 우로부치 겐미즈시마 세이지 조합으로 '낙원추방'이라는 극장판을 기획하거나 TV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같이 실험적으로 성인 취향의 애니를 시도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교토 애니메이션 제작 애니판에 밀려 인지도가 낮지만 AIRKanon, CLANNAD 애니판을 제작하기도 했었다.
과거에는 주로 아오니 프로덕션의 성우를 독점적으로 많이 기했지만 최근들어 그 정도는 아닌듯.
80~90년대에 자사 애니메이션이 전성기를 맞이하자, 업계에 온갖 횡포를 부렸고 이러한 일로 인해 현재까지 토에이의 작품들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잡지에서 표지는 물론, 잡지 본문 내용에서도 수록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근부터 그나마 좀 나아진 듯하며 프리큐어 시리즈아니메쥬 등에 표지로 나온 적이 있다. 또 세일러문이 표지를 장식한적은 있으니 이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듯.[17]
이 회사에서 제작한 작품의 음반은 대부분 일본 콜롬비아가 발매하고 있다.[18]
또한 본사의 특징은 컷수에 제한을 두는 사내 방침이다. 보통 일반 20분 TV 애니메이션은 그림을 3000~5000 장을 써서 만들며 여기서 초과되면 제작사 부담이 된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연출가와 애니메이터들에게 3000장을 기준으로 맞추라고 하는 편이다. 이걸 토에이 3000매 제한(東映3000枚縛り) 이라고 통칭한다. 3000장 이상 쓰려면 상부의 허가를 받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게 되거나 크게 혼난다고. 그래서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연출법은 컷을 줄이는 쪽으로 발달되었다. 2010년대 부터는 다른 회사 애니메이션과 심해보이는 격차를 줄이기 위해 회당 3500장으로 올려줬다는데 현장 애니메이터들은 500장 가지고 어쩌라는 거냐고 반응했다.

3.3. 개인 개성 강조


흔히 작화 붕괴나 일으키는 회사 정도로 알려져있지만 큰 오해다. 이는 토에이가 각 애니메이터들과 개성을 살리는 제작방식으로 신인들에게도 기회를 주고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방영하고 있는 갯수만 봐도 스케줄이 겹치게 되는 문제가 자주 일어나다보니 그런것이다. 절대 돈을 안써서가 아니다. 토에이는 제작을 맡아 진행하는 감독 역시 전체 시리즈의 감독이라기보다는 각 화(단편)의 감독으로 분류한다.
토에이는 원래 실사 영화를 만들어왔고, 한 편의 영화를 총괄해서 연출한 사람에게는 감독이라는 명칭을 붙였지만, TVA처럼 애들이나 보는 30분 짜리 TV 연속극 같은 유치한 것에 감독이라고 부르는 것을 사치라고 생각해서, TVA 에피소드 1화를 연출한 사람은 그냥 연출로 표기했다. 이는 요즘도 실사 드라마 연출자는 감독이라고 부르지 않고 연출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또한 실사와 같이 극장에서 상영되는 극장판을 장편, TV 시리즈를 단편이라 부른다.
덕분에 '감독'이라는 표기 대신 시리즈 디렉터라는 표기[19]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때문에 작품은 아는데, 감독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20] 그 예로 디지몬 시리즈의 팬들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개봉한 뒤에야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때문에 토에이 작품은 에피소드마다 연출이 크게 달라진다.
기본적으로 음향 감독을 두지 않으며 각 에피소드의 연출을 담당한 연출가가 음향 감독을 겸임하는 것이 통례이다. 애니메이션의 초창기에는 음향을 관리하는 것도 연출 업무의 범주에 속했기 때문. 물론 닥터 슬럼프와 아라레짱, 바벨 2세와 같은 예외도 있다.
작화감독의 경우도 매 에피소드마다 다른 사람을 투입한다. 이 때문에 작화감독이 바뀔 때마다 그림체가 바뀐다. 제작 스탭의 개성을 살려주는 것이다. 이는 다른 제작사도 마찬가지였으나 다른 제작사는 총작화감독 및 그림체가 비슷한 애니메이터를 다수 투입하는 것으로 그림체를 맞추는 방식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주류가 되어서 2010년대에는 기본이 되어있는데 토에이는 여전히 작화감독의 개성을 살리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에피소드마다 그림체가 달라진다.''' 이를 작붕으로 인지하는 시청자들이 항의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는 '''작화붕괴가 아니다.''' (작화붕괴 항목 참고) 토에이의 작화감독들은 업계에서도 손에 꼽는 실력자들이고, 원피스 같은 연재 만화는 연재 일정과 따라가다가 일정이 망가져서 작화가 실제로 붕괴하는 경우도 많지만 프리큐어 시리즈 같은 자체 제작 작품은 그림체만 바뀔뿐 작화의 상태는 균일하게 유지되고 있다. 배경과 미술 담당을 각 에피소드마다 다르게 두는 방식도 채용하고 있다.
하지만 결국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청자들에게 백기를 들고 허긋토! 프리큐어 같은 작품에선 총작화감독제를 고용해서 그림체를 맞추기 시작했다. 시대를 따라가려는 움직임이지만 이 분야에서 계속해서 방침을 유지하며 신인 애니메이터를 키워왔던 토에이마저 백기를 들자 더 이상 개성적인 그림체의 애니메이터들을 보기 힘들어질 거라는 전망도 있다. 다만 프리큐어 시리즈는 그 다음 작품인 스타☆ 트윙클 프리큐어부터 총작감 제를 포기했지만, 2020년부터 디지몬 어드벤처:드래곤 퀘스트: 다이의 대모험에서 다시 총작감 제를 시행하기 시작했고 그림체의 통일화도 진행되고 있다.
토에이는 작품 하나를 통으로 묶어서 감독이나 각본가 한 사람의 색으로 물들이는 전체 관리를 하는 게 아니라 에피소드 하나 하나를 다 개별의 작품으로 보고 에피소드 별로 집중하는 방식으로 제작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토에이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팬 사이에선 작품 전체를 다 보기보다는 평이 좋은 에피소드만 골라서 보는 감상법이 널리 퍼져있다.
그렇다보니 토에이 제작 애니메이션은 스태프롤 표기 방식도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에 비해서 독특한 편인데 콘티 담당자의 명단이 잘 뜨지 않는다. '''콘티 작성을 연출의 하위 과정으로 본다는 뜻.''' 따라서 콘티 작성자가 따로 있는 경우에만 명단이 뜨고 그 외 명단이 뜨지 않을 때는 연출자가 콘티까지 작성했다고 해석하면 된다.

3.4. 3D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 중에서 상당히 오랜기간 3D 애니메이션에 투자를 해온 업체이기도 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청자 사이에서 일본 3D 애니메이션은 굉장히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풀 3D로 된 애니메이션은 방영하지 않았고 중간 중간 CG 삽입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3D 애니메이션의 개발은 본사가 영화사이기 때문에 영화 CG와 함께 진행하였다. 특히 '표정'이라는 부분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카툰 렌더링과 같이 질감을 표현하는 렌더링이 아니라 아예 표정을 실제 인간의 표정을 따고 그 표정을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맞추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3D 애니메이션은 디즈니나 드림웍스같은 서양 회사에서 주도하였는데 미국 애니메이션식 캐릭터와 서양 애니메이션의 과장된 표정은 실제 인간과는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런 기술은 주로 영화에서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 표정이 지금까지 나와온 3D 애니메이션과 토에이의 3D 애니메이션은 겉보기에도 감각이 다르다.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트라이 앤 에러로 토에이만의 3D 애니메이션을 만드려는 것 같다.[21]
캡틴하록3D를 개봉했을 때, 역시 일본 3D애니메이션은 자국내에서 인기가 없어서인지 성적이 나빴다. 한국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3D가 인기가 없고 기존 3D 애니메이션과 괴리감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프랑스이탈리아에서 평가가 좋아서 어떻게든 큰 적자는 보지 않았다.
3D 애니 중에서 꽤나 성공한 작품으로는 낙원추방이 있다. 마징가 Z 인피니티도 있으나 이건 기본은 2D 애니메이션이고 전투신은 오렌지 하청이다.
드래곤볼 Z 신들의 전쟁이나 드래곤볼 Z: 부활의 F에서도 간간이 전투씬에서 3D CG를 사용했으나 혹평이 많았다. 그래서 차기작인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에서는 3D위에 덧 그려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3.5. 저작권


스튜디오 피에로, 선라이즈, 매드하우스와 더불어서 인터넷 불펌에 대해 매우 관대한 애니 제작사다. 다른 애니 제작사들은 자기 애니 올라오는 것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올리는 쪽도 변조를 하거나 시도때도 없이 장면을 잘라대지만 토에이는 단순 불펌충이건 이를 전문적으로 올리는 사람의 영상이건 그냥 토에이 채널로 가는 링크 하나만을 올리고 전혀 건드리지 않는 관대함을 보여준다. 구작이건 신작이건 전혀 가리지 않으며 아예 애니 한 화나 아니면 6시간 짜리 드래곤볼 슈퍼 우주 서바이벌편 모음집이 통째로 올라와도 링크만 달고 넘어갈 정도.[22]
아무래도 작품들의 인지도가 높기도 하고 홍보 효과를 누리기 위해서 이런 관대한 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끽해야 BD 팔면서 근근히 버티는 타 제작사들과는 달리 드래곤볼이나 원피스는 애니 자체보다 애니 관련 상품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홍보가 많이 되면 곧 돈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결과 드래곤볼 슈퍼와 원피스는 1년도 안된 영상들이 백만 단위 조회수를 찍은 영상들로 수두룩하고. 천만 단위도 심심찮게 보인다. 홍보 목적으로는 그야말로 확실한 셈.
반대로 특촬물을 만드는 토에이 본사 쪽은 이런 거에 가차없다. 애니메이션 부와 방침이 다른 모양.
아무거나 다 봐주는 것은 아니고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 진짜 명작으로 유명한 에피소드는 못 올리게 한다. 꼬마마법사 레미 Vivace 40화, 두 사람은 프리큐어 42화, 디지몬 어드벤처 21화, 타이의 대모험 9화, 13화 같은 경우 칼 단속으로 유명하며 마지막 화도 대부분 단속 대상이다.

4. 평가



4.1. 비판




4.2. 호평


비판이 많긴 하지만 토에이가 작정하고 만든 애니메이션은 역동적이고 강렬한 연출과 절륜한 작화를 자랑한다. 일단 투자할 수 있는 돈의 규모가 다른 제작사와는 넘사벽이니.
단기 투자에는 퀄리티를 높게 낼 수 있는 제작사라고 평가받으며, 실제 극장판 애니메이션 퀄리티를 보면 일본에서는 그렇게까지 지뢰 제작사 취급은 받지 않는 듯 하다.[23]
  • 2007년에 방영한 모노노케는 애니메이션이 지향하는 스타일에 호불호가 갈릴지언정, 대중성보다 예술성과 실험성을 중시한 아름다운 미술과 연출, 그러한 엄청난 수준의 영상미를 노이타미나 1쿨이란 걸 감안해도 끝까지 유지하고 살려낸 빼어난 작화 수준 등, 저예산의 질 떨어지는 애니메이션으로 욕 먹곤 하는 토에이 산 작품으로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영상이 아름다운 일본 애니메이션하면 결코 빠질 수 없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Go! 프린세스 프리큐어에서도 절륜한 작화력을 보여주며 오히려 다른 작품 예산 아낀다고 다른 작품 팬들 사이에서 불평불만이 나올 정도. 또한 디지몬 유니버스 어플리 몬스터즈는 그 동안 저예산 작품이었던 디지몬 시리즈 답지 않게 예산이 빵빵하게 들어갔는지 상당한 퀼리티의 작화와 CG를 선보였다.
  • 드래곤볼 슈퍼 39화에서의 히트전, 57화의 오공블랙&자마스 전, 66화의 합체 자마스 VS 블루 베지트 전은 최고의 전투씬을 보여 주었고 130화 무의식의 극의 오공 vs 지렌 전은 드래곤볼 애니 사상 최고의 전투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원피스에서도 루피의 기어 4의 작화가 여태까지의 퀄리티와 비교가 안되게 절륜하게 나왔으며, 이후 원피스에서 절정을 찍은 역대급 포스와 작화를 보여준 사황 카이도의 등장씬이 나오면서 토에이 진심모드라는 별명이 나왔다. 샬롯 링링 등장과 다과회에서도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듯한 고퀄리티 작화와 연출을 보여줬다.
  • 그리고 18~19년에 개봉된 드래곤볼 슈퍼 극장판 브로리가 토에이 사상 최고의 스코어를 경신하며 월드 와이드 흥행 수익 1억달러 돌파를 하였다. 흥행 요인은 브로리의 정사 편입과 뛰어난 작화와 액션씬이라는듯. 토에이 몇십년 역사에서 1억 달러를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제대로 이를 갈고 작업을 한다면 언제든지 시간 문제라는 증거인 셈이다.
때문에 토에이가 마야를 사용한 1쿨 예정 신작 카도: The Right Answer를 발표하자, 팬들은 너무나도 비교되는 퀄리티에 왜 드래곤볼이나 디지몬 시리즈는 이런 퀄리티로 안 만드냐고 불평을 했다. 프리큐어 시리즈카도: The Right Answer는 작화 희망편이고 드래곤볼 超는 절망편이라는 농담도 나왔다.
어째서인지 작품의 퀄리티가 높던 낮던 음식의 퀄리티는 이상하게 좋다. 좀 진지먹고 이야기하자면 저런 음식 같은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사진자료를 참고하는 데다가 크게 움직이지 않아 적은 매수의 그림을 돌려쓰기 때문에 원화 한 매당 퀄리티가 높은 것.
위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토에이 애니 까들이 토에이를 까는 가장 큰 이유는 중간중간 퀄이 급격히 다르고 무너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1~2쿨 도 아니고 4쿨 이상 애니는 중간에 쉬어가는 편이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다. 그걸 본즈나 유포터블 같은 수준으로 계속 만들어 달라는 것 자체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발상이다.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일정한 고급 퀄리티를 계속 즐기는 게 아니고 장편만 가능한 스킵없는 세세한 전개를 계속 즐기다가 가끔 힘을 빡 줘서 작화가 엄청나게 좋은 편이 나오면 오 이번엔 잘 그렸네 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비단 토에이 애니 뿐이 아니고 명탐정 코난 같은 장편 애니들은 다 이런 식으로 굴러간다.

5. 작품 일람


※ 이 표에 들어있지 않은 작품들은 이 곳을 참조.
[image]
'''1950년대'''
1958년
백사전
'''1960년대'''
1963년
장난꾸러기 왕자의 오로치 퇴치
1966년
요술공주 샐리
1968년
게게게의 키타로 1기
사이보그 009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1969년
비밀의 아코짱
타이거 마스크
맹렬 아타로
장화신은 고양이
'''1970년대'''
1971년
게게게의 키타로 2기
동물 보물섬
원시소년 류
1972년
데빌맨
마징가 Z
장화신은 삼총사
1973년
바벨 2세
Dororon 엔마군 메라메라
마징가 Z 대 데빌맨
미라클 소녀 리미트
큐티하니
미크로이드 S
1974년
겟타로보
마징가 Z 대 암흑대장군
그레이트 마징가
1975년
겟타로보G
강철 지그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
그레이트 마징가 대 겟타로보
그레이트 마징가 대 겟타로보G 공중대격돌
UFO로보 그렌다이저
1976년
UFO로보 그렌다이저 대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 결전 대해수
대공마룡 가이킹
마그네로보 가킨
초전자로보 콤바트라 V
장화신은 고양이 80일 간의 세계일주
캔디캔디
1977년
초전자머신 볼테스 V
제트소년 마르스
혹성로보 단가드A
애로우 엠블렘 그랑프리의 매
1978년
SF 서유기 스타징가
은하철도 999
캡틴 퓨쳐
우주해적 캡틴 하록
투장 다이모스
1979년
미래로보 달타니어스
'''1980년대'''
1980년
우주대제 갓시그마
1981년
백수왕 고라이온
타이거 마스크 II세
닥터 슬럼프와 아라레짱
1982년
파타리로
더 카보챠 와인
기갑함대 다이라가XV
1983년
근육맨
스톱!! 히바리군!
광속전신 알베가스
1984년
비디오전사 레자리온
북두의 권
몽전사 윙맨
고깔 모자의 메모루
1985년
게게게의 키타로 3기
트랜스포머[24]
Jem and the Holograms[25]
1986년
드래곤볼
쇼난폭주족
메이플 타운 이야기
강Q초아 잇키맨
세인트 세이야[26]
1987년
빅쿠리맨
트랜스포머 더 헤드마스터즈
신 메이플 타운 이야기 팜 타운 편
1988년
트랜스포머 초신 마스터포스
투장 라면맨
1989년
드래곤볼 Z
신 빅쿠리맨
트랜스포머 빅토리
'''1990년대'''
1991년
겟타로보 고
드래곤 퀘스트 타이의 대모험
금붕어 주의보
1992년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슈퍼 빅쿠리맨
1993년
슬램덩크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R
GS 미카미
먼 바다에서 온 COO
1994년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
마멀레이드 보이
1995년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uperS
학교유령
1996년
드래곤볼 GT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세일러 스타즈
꽃보다 남자
지옥선생 누베
게게게의 키타로 4기
1997년
소년탐정 김전일
꿈의 크레용 왕국
큐티하니 F
닥터 슬럼프
1998년
유희왕
지켜줘 수호월천!
1999년
꼬마마법사 레미
디지몬 어드벤처 극장판
디지몬 어드벤처
원피스
유희왕 극장판
신풍괴도 쟌느
'''2000년대'''
2000년
꼬마마법사 레미 ♯
우리들의 워 게임!
디지몬 어드벤처 02
황금의 캡슐 진화
2001년
꼬마마법사 레미 ƒ
디아블로몬의 역습
디지몬 테이머즈
모험자들의 싸움
2002년
Kanon
폭주 디지몬 특급
근육맨 2세
꼬마마법사 레미 Vivace
디지몬 프론티어
고대 디지몬 부활
2003년
금색의 갓슈
무적코털 보보보
에어마스터
내일의 나쟈
2004년
두 사람은 프리큐어
모험왕 비트
링에 걸어라 1
2005년
디지몬 제볼루션
가이킹 LEGEND OF DAIKU-MARYU
극장판 에어
2006년
두 사람은 프리큐어 Splash Star
링에 걸어라 1: 일미결전 편
파워퍼프걸Z
디지몬 세이버즈
2007년
Yes! 프리큐어 5
게게게의 키타로 5기
모노노케
극장판 클라나드
태극천자문
2008년
묘지의 키타로
못말리는 3공주
2009년
프레시 프리큐어!
스트롱 월드
드래곤볼 Z 改
'''2010년대'''
2010년
하트 캐치 프리큐어!
링에 걸어라 1: 그림자 편
디지몬 크로스워즈
2011년
스위트 프리큐어♪
토리코
링에 걸어라 1: 세계대회 편
쿄소기가
2012년
스마일 프리큐어!
탐험 드리랜드
세인트 세이야 Ω
원피스 필름 Z
반딧불 언덕에서
2013년
두근두근! 프리큐어
드래곤볼 Z: 신들의 전쟁
아수라
2014년
드래곤볼 Z 改: THE FINAL CHAPTERS
해피니스 차지 프리큐어!
마진 본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Crystal
소년탐정 김전일 R 1기
월드 트리거 1
낙원추방
2015년
Go! 프린세스 프리큐어
드래곤볼 Z : 부활의 F
드래곤볼 超
디지몬 어드벤처 tri. 제1장 「재회」
미라큘러스 레이디버그
2016년
마법사 프리큐어!
디지몬 어드벤처 tri. 제2장 「결의」
소년탐정 김전일 R 2기
원피스 필름 골드
디지몬 어드벤처 tri. 제3장 「고백」
디지몬 유니버스 어플리 몬스터즈
타이거 마스크 W
포핀Q
2017년
디지몬 어드벤처 tri. 제4장 「상실」
카도: The Right Answer
키라키라☆ 프리큐어 아라모드
디지몬 어드벤처 tri. 제5장 「공생」
2018년
허긋토! 프리큐어
게게게의 키타로 6기
디지몬 어드벤처 tri. 제6장 「우리들의 미래」
마징가 Z: 인피니티
폭조 바헌터[27]
드래곤볼 슈퍼: 브로리
엉덩이 탐정
2019년
세인트 세이야: Knights of the Zodiac
스타☆ 트윙클 프리큐어
극장판 엉덩이 탐정: 화려한 사건 수첩
극장판 원피스 스탬피드
'''2020년대'''
2020년
디지몬 어드벤처 라스트 에볼루션: 인연
힐링굿♡ 프리큐어
디지몬 어드벤처:
견습마녀를 찾아서
드래곤 퀘스트 타이의 대모험
2021년
극장판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Eternal
월드 트리거 2
트로피컬 루즈! 프리큐어

6. 관련 인물



6.1. 시리즈 디렉터


감독에게 그렇게 권한을 많이 주지 않는 편이기도 해서[28] 대부분 어느 정도 성공하면 회사를 나가며 아래의 인원들도 대부분 토에이 소속이 아니다. 그러나 나가더라도 의절하는 것은 아니라 나중에도 토에이 작품에 참여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오래 재직하는 인원들은 후에 작품의 기획, 프로듀싱이나 경영 쪽으로 분야를 바꾸거나 승진하기도 한다. 모리시타 코조, 니시자와 노부타카, 니시오 다이스케가 대표적.

6.2. 애니메이터



7. 관련 문서



8. 출신자가 세운 관련 업체


  • 신에이 동화[29]
  • 스튜디오 지브리[30]

[1] 국내 방송사들의 정식명칭은 '''도에이 에니메이션'''이다.[A] A B 일본 동화 주식회사[2] 도에이 동화 주식회사[3] 토에이 애니메이션의 로고로 사용 중이며, 모리 야스지가 디자인했다.[4] 방송국의 대주주인 것도 비슷하다. 도에이는 TV 아사히의 대주주이며 디즈니는 아예 ABC의 모회사이자 이외에 별도의 방송 채널들을 두고 있다. 토에이도 방송 채널을 두고는 있다. 그렇지만 애니보단 영화 위주인지라... 3D 위주로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는 점에도 공통적이다.[5] 원문: 自分たちは日動というアニメの会社を24、5人でやっているんだが、どうも難しい。協力してもらえないか[6] 위원장은 사장인 오카와 히로시가 맡았고, 설립 준비 실무 담당 위원은 아카가 코이치, 이마다 치아키 등이 맡았다.[7] 토에이 동화에 소속된 일부 직원들이 CM 애니메이션 제작에 임하기도 했었고, 무시 프로덕션 설립 극초기엔 일부 애니메이터들이 무시 프로덕션으로 이동하거나 동시 작업을 했을 정도로, 무시 프로덕션은 한때 토에이 동화 스튜디오 일부가 이전한 듯 같은 양상을 띌 정도로 대부분의 인재를 토에이 동화에 의존한 적도 있었다.[8] 당시 장편 영화의 제작비용이 상승해나가면서 제작할수록 적자를 내던 상황이었고, 1968년 개봉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이 흥행 참패를 기록해 토에이 동화가 망할 뻔했을 정도로 크게 흔들려 있었다. 모기업 역시 영화시장 사양화로 어려움을 겪었다.[9]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10] 이 때문에 노조 활동에 진두적으로 임했던 노조 간부였던 타카하타 이사오, 코타베 요이치, 미야자키 하야오는 희망사직/권고사직으로 당시 선배인 오오츠카 야스오가 있던 도쿄무비의 산화 A 프로덕션으로 이직해 활동하게 된다.[11] 이로 인해 1970년대 초부터 대원미디어(구. 대원동화), 세영동화 등 한국 애니메이션 업체가 토에이 동화의 하청을 의뢰받아 제작해나가게 된다.[12] 1985년에 일본 IBM과 연계해서 처음으로 시도하기 시작했지만, 초기 비용과 유지 비용도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하여 실현될 순 없었다. 1991년에 후지쯔와 연계하여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그램인 CATAS (Computer Aided TOEI Animation System)를 개발해냈지만, 비슷한 문제로 역시 실패했다.[13] 3년 전인 1995년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토에이 애니메이션 연구소를 개설해 디렉터 애니메이터 미술 디자이너 CG 크리에이터의 연구생을 모집하기도 했었다(현재는 폐쇄됨).[14]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사옥에 출입하면 관계자들한테, 입장 시엔 수위한테 신청을 수속해야 한다.[15] 원피스는 제작하고 몇년 뒤에 판권을 대량 사들였다. 토에이 에니메이션의 매상을 년도별로 보면 원피스의 매상 비중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시기가 있다. 혹자는 원피스 붐의 편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원피스는 원래 인기가 많았고 그 시기에 판권을 사서 장부에서 늘어난 것이다. 이게 순이익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는 판권을 구매한 비용이 있으니 원피스 완결날 때쯤 알 수있을 것이다.[16] 보통 일본 내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는 다르게 한 방송사에만 애니메이션 제작을 붙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17]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잡지사는 거의 다 기레기들이라 애니메이션 기사를 실을 때 쓰는 그림에 관한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았다. 잡지에 나오는건 광고를 낼 여력이 없고 심야에 방영하는 소형 회사들이야 반길만한 이야기고 5대 방송사중 한개의 2대주주에 전국에 영화관을 30개 이상 가지고 있고 굳이 토에이가 광고를 안 내도 판권 가지고 있는 스폰서들이 광고를 하는 상황이니 그림은 내가 그리고 돈은 잡지사가 버는 상황을 반길리가 없다. 무엇보다 토에이는 어린이 시청자를 주대상으로 하는 회사인데 어린이는 이런 잡지 안 본다.[18] 꼬마마법사 레미 시리즈나 프리큐어 시리즈 같이 예외인 작품도 있다. 원피스는 초기에는 일본 콜롬비아가 발매하다가 중간에 에이벡스로 교체되었다. 한때 아사히 신문사의 자회사인 아사히 소노라마 등에서도 발매되었으나, 아사히 소노라마는 연이은 적자로 결국 망했다(...)[19] 시리즈 디렉터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였고 이 전에는 아예 표기를 안 하거나 (1970년대 중반 이전) '치프 디렉터'라는 명칭으로 표기했다. (1970년대 중반~후반, 1980년대 초반)[20] 디즈니는 픽사와의 합작으로 이 부분은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토에이는 여전하다.[21] 도에이 애니메이션들 중 액션이 들어간 애니메이션에서는 작중 간간히 다른 작화와는 다른 역동적인 작화가 그려지는데 토에이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크게 젤을 바르고 마치 액체같이 보이면서도 명암이 뚜렷한 그림체와 명암이 진하지는 않지만 차이가 눈에 띄게 보이며 연기나 효과 등이 매우 역동적으로 보이는 그림체가 있다.[22] 단 일부장면이나 최신극장판, 특별편에 대해서는 바로 차단, 또는 '''저작권 경고'''를 내린다. [23] 단적인 예시로, 원펀맨 2기의 제작사가 J.C STAFF로 배정된 사실이 밝혀졌을 때 대체희망 제작사로 토에이가 거론되기도 했다.[24] 일본 현지 더빙 및 작화(수정)담당[25] 서구권에서만 방영된 애니메이션. 음반회사 여사장이 컴퓨터의 힘을 빌려 락스타로 변신하는 SF 마법소녀물(?)이다. 해즈브로마블 엔터테인먼트가 발주해 토에이가 제작하였으며 엄청난 인기를 끌며 3년간 방영되었다. 일본 국내에서는 들어본 적도 없다는 이들이 대부분.[26] 단, 세인트 세이야 THE LOST CANVAS 명왕신화는 TMS(도쿄무비신사) 제작.[27] 갤럽과 합작[28] 지금까지도 '''시리즈 디렉터'''라는 명칭을 고집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는 대목이다.[29] A 프로덕션의 주요 파벌들 중 토에이 파벌의 일부 애니메이터들이 창립하였다.[30] 주요 창립자들이 토에이 동화에서 일하던 애니메이터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