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계
1. 닭싸움
1.1. 개요
鬪鷄, Cockfight
[image]
사진 출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으로 인도네시아에서 찍은 사진.
흥분한 닭들끼리 싸움을 붙여놓고 인간이 보고 즐기는 행위. 싸움닭은 모두 '''수탉'''이며 암탉은 싸움닭으로 쓰는 일이 없다.
1.2. 역사
투계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으며, 그 범위도 매우 광대하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즐겼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는 기성자(紀渻子)라는 인물이 거론된 기록이 있는데 이 사람은 싸움닭 키우는 데 누구도 따르지 못하여 왕이나 부유한 귀족, 부자들에게 단골이었다고 한다. 그는 보통 닭을 두어달 정도 정도만 훈련시켜 싸움닭 고수로 만들었다고. 기성자가 조련한 싸움닭이 무적이라는 게 아니라 제대로 버릇을 들였다고 한다.
이에 관한 일화가 있는데 주 선왕(周 宣王)이 기성자에게 닭을 맡겼는데 열흘이 지나서 성과를 질문하자 기성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닭은 교만하여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다시 열흘이 지나 성과를 질문하니 기성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닭은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도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라고 답했다. 또다시 열흘이 지나 성과를 질문하니 기성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닭은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렇게 40일이 지나자 기성자는 무척 기분 좋은 듯이 '다른 무리의 사소한 싸움은 피하며 눈빛만으로 다른 닭을 제압하고 함부로 싸움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싸운다면 분위기를 타고 상대의 약점을 파악하며 적어도 기초적으로 이 몸이 다할 것은 다했습니다'라고 스스로 보고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바로 목계지덕(木鷄之德).
서양에서도 오래전부터 즐겼다. 스페인은 투우로 유명하지만 투계 역시 상당히 즐겨왔는데, 지금은 불법이지만 안달루시아 및 카나리아 제도에서는 문화 보존 명목으로 허용되고 있다. # 또한 미국도 지금은 불법이지만 과거에는 매우 열광하던 놀이 중 하나였으며, 지금도 멕시코와 가까운 소도시를 위주로 불법 투계장이 성행하고 있다. #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연방정부의 투계 금지령에 반발하여 투계를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
이런 기록에서 보듯 사람이 있고 닭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투계가 벌어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남극을 제외한 모든 대륙에서 즐긴 놀이인 것이다.
하지만 도박이 관여하기 마련이고 또 '''자산'''을 낭비하는 행위인지라 많은 나라에서 점차 사양길을 걸었다. 거기다 동물 보호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많은 나라에서 불법이 되었다. 한국에서도 동물보호법 발효에 따라 투견과 마찬가지로 불법이다. 다만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투견에 비해 낮은데다 개와 닭의 취급 차이로 상대적으로 까이는 일이 적다. 동물보호법 발효 전에는 진주시에서 투계 대회를 개최했는데, # 동물보호법 때문에 더 이상 못하게 되자 진주투계협회가 소싸움의 예시를 들어 투계도 합법화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기각되었다. #
반면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합법화되어 전문적으로 발달했다. 투계가 제일 발달한 곳은 필리핀으로 여기서는 투계를 사봉(Sabong)이라고 부른다. 필리핀인들은 투계를 매우 좋아해 대도시부터 시골까지 곳곳에 투계장이 있으며, 월드 슬래셔 컵(WORLD SLASHER CUP)이라는 전문 토너먼트 대회까지 있는데 TV 중계도 한다. 물론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식객 중에서 성찬이 토종닭을 구하는 에피소드의 취재일기에는 "(토종닭의) 수탉은 동네에서 일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닭싸움 시킨다고 훔쳐가서 볼 수 없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그 외에도 동물 보호의 개념이 거의 없는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에서 여전히 성행하고 있다.
1.3. 방법
흔히 닭싸움이라고 하면 "도끼질", 즉 서로 볏을 노리고 쪼는 것을 생각하는데, 이것은 싸움이 막장에 달해 고급 기술을 쓸 체력이 남지 않았을 때나 하는 것이다. 투계의 기본 전술은 뛰어올라 발(며느리발톱이 있는 뒤쪽)로 차는 것으로, 진짜 투계에게 차이면 어설픈 닭은 단방에 심장이 멎어 죽을 수도 있다. 인간의 닭싸움과는 확실히 많이 다르다.
투계를 할 때는 닭발에 '''칼이나 유리조각을 달고 싸움을 붙인다.''' 국내에서는 면도날을 붙인다고 한다. 닭장 등에서 수탉이 여러 마리면 수탉들이 서로 싸우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닭들이 싸우는데 쓰는 며느리발톱으로는 투계처럼 심하게 다치는 일은 생길 수 없다. 기껏해야 깃털 좀 뽑히고, 피가 나도 조금 나고 만다. 피가 잔뜩 튀어야 훨씬 재밌으니까 일부러 이렇게 하는 것. 하지만 이 경우엔 한쪽이 참수까지 당하는 참혹한 광경이 벌어지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싸움닭의 공격을 받아 경찰이 사망한 사례도 있다.
수탉은 워낙에 투쟁본능이 충만한 동물이라 살이 베이고 눈알이 빠져도 달려들어 싸우기 때문에, 승패가 날 때쯤에는 워낙에 서로 많이 다친다. 하지만 수탉도 전투력이 개체차이가 심해서 '''일방적으로 줘패는 경우'''도 발생한다. 보통 어느 한쪽이 죽거나 불능이 될 때까지 싸우며, 승부가 별로 어렵지 않게 끝났을 경우 승리한 닭은 조류 전문 수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1개월 동안 투계를 쉰다. 패자는 무조건 치킨 신세이며, 승자의 경우 다시 싸울 수 있는지의 여부를 가려서 다시 싸울 수 있으면 치료 후 휴식기에 들어가고, 재기불능 상태면 역시 패자와 마찬가지로 치킨이 된다. 그 이유는 싸움용 닭이 필리핀 물가 기준으로 전문직 종사자 월급에 해당되는 비싼 가격인데, 한번만 이겨도 그 몇 배의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굳이 가망이 없는 닭을 또 출전시켜서 돈을 날리느니 새 닭을 사서 이기는 게 닭 두 마리 값을 만회하고도 남는 이득이기 때문.
웃긴 건 투계장 한쪽에는 수의사와 요리사가 나란히 책상을 놓고 앉아있는데 수의사의 책상에는 구급상자가, 요리사의 책상에는 가스레인지가 각각 놓여져 있다. 그리고 투계 경기가 끝나면 승리한 닭은 수의사에게, 패배한 닭은 요리사에게 각각 간다. 승리해서 수의사에게 진찰을 받는 닭이라 하더라도 다시 싸울 수 없는 몸이라는 진단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요리사에게 인계된다. 그러니까 닭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퍼펙트로 이기지 못하면 죽는다.'''
투계용으로 전문 사육된 수탉은 사육과정도 과정이고 품종(샤모 등)도 품종인지라 '''이게 닭인가 싶을 정도로''' 아름답고 고고한 모습을 보인다. 윤기가 흐르는 검은 털과 길고 높게 솟은 꽁지깃, 긴 목은 도도할 정도. 게다가 이런 투계용 닭의 닭고기는 일반닭에 비해 지방의 비율이 낮고 근육의 비율이 높아서 맛있는 편에 속한다. 다만 투계 도박사들은 투계로 만든 치킨은 절대 입에 대지 않는데 '''패한 녀석을 먹으면 나도 재수없어진다'''는 징크스 때문이다.
닭에게 먹이는 모이도 좀 특별한데 각종 비타민제부터 시작해서 곤충, 동물들의 눈알과 내장, 장기와 고기(!)를 먹이는 경우도 있고 닭주인 자신들만의 비법과 노하우가 담긴 알약을 먹이기도 하는데 이건 절대 남에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이기기 위해서는 진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 아무리 비싸더라도 승리에 도움이 되는 모이라면 무조건 먹인다. 일부 몰지각한 닭주인은 히로뽕[1] 을 먹이기도 한다.
고추장을 닭에게 먹이면 파워업을 해서 이길 확률이 올라간다는 카더라 통신이 있다. 동백꽃에 나오는 전설의 츤데레 캐릭터 점순이가 주인공을 갈굴 때도 사용되었으며 주인공 역시 닭에게 고추장을 먹인다. 근데 진다(...). 싸움닭은 육식을 하는데, 특히 뱀이나 미꾸라지 같이 긴 동물[2] 을 목 위에서 빙글빙글 돌리면서 줬다고 한다. 그래야 목이 길어지고 잘 싸운다고.
1.4. 문제점
서양에서는 투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투계가 성행하는 동남아를 비난하고 있지만, 동남아에선 이런 비난을 무시하며 되려 닭을 많이 먹는 주제에 비난 집어치우라는 투로 대한다. <우리가 먹고 사랑하는 동물들>에서 지은이 할 헤르조그는 "동남아 투계를 비난하면서 KFC나 맥도날드 너겟용으로 도살되는 닭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미국인이 나은 건가."라고 중립적으로 이야기하면서도 좀 꼬집은 바 있다.
하지만 투계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건 동물 학대이기도 하지만 '''도박이 얽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투계는 십중팔구 도박을 수반하기 마련인데 인기를 얻고 판이 커지면 이권도 같이 커진다. 이권이 사행성을 부추기고 갱스터나 조직폭력배 등 불법적인 세력이 이를 노리고 찾아들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당연한 얘기지만 동남아의 투계 산업도 이런 쪽의 문제가 장난이 아니게 심각한 경우가 많다. 투계에 빠져 파산하는 사람들은 물론, 경기 결과를 두고 살해 협박도 모자라 아예 살인까지 하는 등의 문제가 넘친다.
뭐 깊이 따지자면 투계만 이런 게 아니라 무에타이나 축구 같은 스포츠도 도박 문제가 심각하기에 위에 서술한 책자에서 지은이도 "그러한 도박 문제는 돈이 된다면야 어느 스포츠도 피할 수 없다. 미국조차도 전혀 없다고 자신할 수 없지 않은가? 물론 약물을 쓴다든지 동물 학대이긴 하지만."이라는 생각을 쓴 바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 약물을 투여하거나 먹고 야구하는 이들도 이야기하며 세상사 인간사나 동물 학대사나 비슷한 게 있다고 깐다.
1.5. 여담
발리 섬에서의 투계 문화에 대한 인류학자 기어츠의 연구는 발리의 남성과 닭 사이의 관계, 그리고 투계를 통해 공동체가 결속하는 과정을 훌륭하게 묘사한 고전으로 여겨진다. 덤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기어츠가 투계를 관찰하러 갔을 때 정부의 단속반이 들이닥쳤고 이때 기어츠는 마을 사람들과 같이 도망쳐서 같이 구경하던 동네 사람의 집에 숨었다고 한다. 그는 지위상 연구자 자격을 대면서 도망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그때 저도 모르게 도망쳤다고 한다. 사실 그렇게 했다가는 그 이후로 연구하기가 까다로웠을 테니 주민들에게 친화적으로 나올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이후 친절하긴 했어도 이때까지 거리를 두었던 마을 사람들이 기어츠 박사를 같은 마을의 주민으로 대접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투계의 한 품종인 '샤모(軍鷄)'[3] 가 알려져 있다. 근육이 잘 붙어서 일반 닭과는 다른 독특한 맛이 있다고 유명하며 맛의 달인에서도 다룬 바 있다. 다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사육하고 먹는 데 일정한 제약이 있다고.
1.6. 관련 문서
2. 소설
월북 작가 안회남(1909~? )이 쓴 단편 소설로 솜공장에서 일했지만 솜을 훔쳐 팔며 술을 먹던 주정뱅이 심씨가 주인공이다. 결국 걸려서 공장에서 내쫓기고 집에서 빈둥거리지만 술을 못 먹으니 미칠 거 같은 상황. 그러다가 이웃 주막에서 키우는 닭에게 어린 아들이 당해 울며 돌아오자 따지려고 갔지만 술냄새에 기겁하고 그냥 힘없이 돌아온다. 그러던 도중에 집을 나가 일하러 갔다는 아들이 돌아와 돈을 줘서 좋아라 술을 사 마시려고 하는데 아내가 술을 차겁게 식혀야 제 맛이라고 식히느냐 기다리던 끝에 술을 좋아라 한잔 입에 부으려고 할 때 갑자기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으로 돌아와있다. 아시발꿈이었던 것. 심씨는 아내를 욕하며 "더운 술이라도 얼른 마실걸"이라고 후회하며 집안 뭐라도 전당포에 맡겨 술을 마시고자 하지만 도무지 돈 될 게 없어서 욕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술이 없으면 여자에게 대꾸도 못하는 심씨를 두고 당시 생활상을 풍자한다는 분석도 있다.
윤승운 화백이라든지 오세영 화백이 만화로도 그린 바 있는데 오세영 화백은 술을 신나게 입으로 마시려고 하는 순간을 크게 확대하듯이 상세히 그려 선배인 박재동 화백으로부터 예술 같은 묘사라고 호평을 받기도 했었다.
3. 미술 작품
이중섭이 1955년 캔버스에 유채로 그린 미술 작품.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감상하려면 여기로.
[1] 이 약물은 집중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고 근육에서 낼 수 있는 힘을 최대한 쥐어짜지만 강한 중독성과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다.[2] 익히 알면서도 쉽게 간과하는 사실인데, 닭은 초식동물이 아니라 잡식동물이며 오히려 개구리, 파충류, 물고기, 곤충 등을 즐겨먹는다. 적어도 닭이 벌레를 먹기 좋아한다는 사실 정도는 다들 알 것이다.[3] '군계'를 훈독으로 '샤모'라고 읽는다. 태국에서 들어와 개량된 품종이라 태국의 옛 이름인 '샴'이 변형된 명칭이라고. 유명 격투만화인 군계 역시 여기서 따온 제목이라 '샤모'로 읽는다. 포켓몬스터의 아차모 시리즈의 모티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