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1996년

 



'''KBO 리그 역대 시즌 일람'''
1995년 시즌

'''1996년 시즌'''

1997년 시즌
'''기간'''
1996년 4월 13일 ~ 1996년 10월 23일
'''참가팀 '''
해태 타이거즈, OB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현대 유니콘스,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 LG 트윈스, 한화 이글스 이상 8개팀.
1. 개요
2. 정규시즌 최종순위
3. 신인드래프트
4. 포스트시즌
5. 다른 시즌 보기


1. 개요


1996년에 열린 프로야구 시즌.
팀당 126경기씩 504경기가 열렸다.
작년 챔피언이었던 OB 베어스가 선수들의 줄부상에 꼴찌로 추락했다.[1][2] 또한 전년 준우승팀과 3위를 기록한 롯데 자이언츠LG 트윈스 모두 각각 5위, 7위로 부진했다. 롯데는 최다득점팀이 되고도 18승을 기록한 에이스 주형광을 제외한 투수들의 집단 붕괴[3]로 5위로 떨어졌다. 특히 LG는 신바람 야구의 선봉장이었던 이광환 감독을 경질하고 천보성에게 감독 대행을 맡겼다.
반면 하위권으로 예상되었던 팀의 선전이 돋보였다. 선동열이 일본으로 떠나고 김성한이 은퇴한 해태 타이거즈는 시즌 전 전지훈련 항명파동까지 일어나 하위권으로 분류되었다. 하지만 시즌 초 꼴찌였던 해태는 군복무를 마친 이대진-이종범의 복귀로 급회복세를 보이다가 7월 말 선두에 오르더니 결국 1위로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 또, 하위권에서 허덕이던 쌍방울 레이더스김성근의 지도 아래 창단 최다연승을 8연승과 13연승으로 한 시즌 중 두 번이나 경신하며 2위를 기록했다. 10승 투수가 성영재 한명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변칙적인 운용으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한편, 태평양 돌핀스현대그룹에 인수되어 현대 유니콘스로 명칭이 바뀌었다. 인수와 함께 당시로선 파격적이었던 김재박을 감독으로 임명했다. 현대는 신인 박재홍이숭용이 타선에서 활약했고 투수왕국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정민태, 정명원, 위재영, 조웅천 등이 활약을해서 전반기를 1위로 마쳤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 힘이 빠졌는지 4위까지 떨어졌다. 근데 현대가 첫 해부터 뎁스가 좀 타팀보다 딸렸기에 이 모양이였다. [4] 다만, 해태와는 정반대였다. 해태가 최하위에서 치고 올라와서 정규리그 시즌 1위를 했다.
한화 이글스는 득점보다 실점이 더 많은 마이너스 득실을 기록했음에도 페넌트레이스 3위(최종 4위)로 마감했다. 구대성정민철, 송진우, 이상목 4명의 주축 투수와 송지만, 홍원기, 이영우, 임수민으로 이루어진 야수 신인 4인방이 특징이었다. 지난해 부활하는듯 했던 장종훈이 부진한 성적으로 2군에 가는 등 팀득점 5위, 팀실점 5위로 득점력도, 투수력도 돋보이지 않는 평범한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약점이 한쪽으로는 쏠리지는 않아서[5] 포스트시즌은 갈 수 있었다. 이길만한 경기에는 거의 등판하며 다승+구원+승률+방어율 투수 4관왕을 따낸 구대성의 활약이 결정적이었다.
위에 적힌 대로 박재홍이 데뷔 첫해부터 30-30 클럽을 '''한국 최초로''' 달성해서 시즌 MVP와 신인상을 모두 달성 할 뻔했으나 당시의 보수적인 분위기로 인해 신인상만 타고 MVP는 구대성에게 돌아갔다.[6][7]

2. 정규시즌 최종순위


'''순위'''
''''''
'''경기수'''
''''''
''''''
'''무승부'''
'''게임차'''
'''승률'''
1
해태 타이거즈
126
73
51
2
-
0.587
2
쌍방울 레이더스
126
70
54
2
3.0
0.563
3
한화 이글스
126
70
55
1
3.5
0.560
4
현대 유니콘스
126
67
54
5
4.5
0.552
5
롯데 자이언츠
126
57
63
6
14.0
0.476
6
삼성 라이온즈
126
54
67
5
17.5
0.448
7
LG 트윈스
126
50
71
5
21.5
0.417
8
OB 베어스
126
47
73
6
24.0
0.397
해태 타이거즈의 승률이 1위 치곤 그렇게 높지 않은데 초반의 부진이 컸기 때문이다.[8] 참고로 역대 페넌트레이스 1위 승률중 2004년 현대 다음으로 낮은 승률이다.[9]
4강권 팀과 그렇지 않은 팀간의 차이가 뚜렷했다. 1990년 시즌, 2013년 시즌 못지 않은 상위권 싸움이 치열했다. 1위 해태부터 4위 현대까지 4.5경기 차지만 4위 현대와 5위 롯데의 경기 차가 9.5경기나 된다.
한편 삼성 라이온즈는 2016 시즌에 9위를 찍기 이전까지 구단 역사상 가장 낮았던 성적인 6위[10]를 기록하며 8~90년대 초반까지의 강자의 모습을 잃은 상태. 2018년 이전까지 삼성 역사에서 10승 투수를 유일하게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던 시즌이다.[11] 하지만 절치부심하여 이듬해 4위로 포스트시즌 복귀에 성공한다.

3. 신인드래프트


한국프로야구/1997년/신인드래프트

4. 포스트시즌


한국프로야구/1996년 포스트시즌으로 이동.

5. 다른 시즌 보기




[1] 포수 콜랙션 팀이었던 만큼 '''일부러 꼴지를 차지해 지명권 우선순위를 얻으려고 그랬던게 크다.'''[2] 두산 베어스의 마지막 꼴찌 기록이기도 하다. 이 당시 팀명이 'OB 베어스'였으니, '두산 베어스'라는 팀명으로는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꼴찌로 시즌을 마친 적이 없다.[3] 염종석이 수술과 재활로 1경기도 나오지 못하고 윤학길은 노쇠화가 찾아왔다. 또한 억대신인 차명주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4] 투수력은 해태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막강했으나 3할을 기록한 타자는 없었고, 팀 득점력은 8개팀 중 7위로 태평양 시절 팀컬러였던 식물 타선은 여전했다.[5] 롯데와 LG, 삼성은 한화보다 득점이 많았지만 마운드 붕괴를 겪으며 포스트시즌에 나가지 못했다. OB는 실점이 한화보다 적었지만 최소득점으로 꼴찌했다.[6] 55경기 출장, 18승 3패 24세이브 ERA 1.88 139이닝 183탈삼진. 역시 충분히 MVP를 받을 만한 성적이었다. 박재홍이 신인때부터 기자들에게 건방지다라고 소문이 났고, 해태 지명을 거부하는 등 여러 잡음이 낀 탓도 크다.[7] 참고로 10년 후가 돼서야 신인상과 MVP를 동시에 석권한 선수가 등장하는데 바로 '''류현진'''.[8] 이 당시 투타의 핵심이었던 이종범, 이대진이 방위복무의 영향이 컸었다.[9] 다만 2004년 시즌은 현대와 삼성의 선두 경쟁이 워낙 치열한데다가 당시 순위를 다승제로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10] 물론 2016년 시즌의 승률(0.455)이 이 시즌보다 더 높긴 했지만 2016 시즌은 kt의 부진으로 인해 승률 인플레가 존재했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11] 시즌 초반에는 최창양과 최재호가 많은 승수를 올렸지만 후반기로 갈수록 부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