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 타이거스/시즌

 


1. 개요
2. 2005년
3. 2008년
4. 2009년
5. 2010년
6. 2011년
7. 2012년
8. 2013년
16. 2021년


1. 개요


한신 타이거즈의 시즌별 기록이다. 2005년 이후에 2008년부터 기록되고 있다.

2. 2005년


정규시즌에서 강력한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일본시리즈에서 '''아주 큰 흑역사'''를 남기고 말았다. 자세한 사항은 33-4 문서를 참고.

3. 2008년


[image]
전설적인 설레발로 남은 《Vやねん!タイガース 08激闘セ・リーグ優勝目前号》 (우승이라카이! 타이거스 08격전 센트럴리그 우승 눈앞에).[1]

7월 9일 기준 2위(주니치, 요미우리)와 13게임차인 1위(당시 51승 23패 1무 - 승률 '''.689''', 승패마진 '''+28''')를 신나게 달렸고, '''7월 22일에 매직넘버(46)가 켜지는 등''' 우승 분위기를 한껏 높였다가, 기록 적인 DTD를 보이면서 9월달 12연승을 달려버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역전 우승을 허용하는 캐안습 굴욕을 보였다(...)[2][3]. 참고로 이 기록은 센트럴리그 역대 최다승차 역전 우승이다. 참고로 퍼시픽리그에서는 1963년 니시테츠 라이온즈난카이 호크스와의 14.5경기차를 극복하고 역전 우승을 따낸 적이 있다. 절치부심하고 나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도 3위 주니치에 밀려 가을야구와 작별.
그리고 이 역사에 남을 만한 대역전극의 희생양이 된 덕분에 어느정도 괜찮은 성적을 내던 오카다 아키노부는 감독직을 내놓아야 했다.

4. 2009년


팀의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인 마유미 아키노부가 새 감독으로 취임. 프랜차이즈 선수 출신이 감독을 맡으면 하나같이 망한다는 기분 나쁜 징크스를 그대로 반영하듯 2009 시즌에서는 시즌 초반 5위로 추락하며 망했어요가 되려다가,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연패에 힘입어 시즌 중반 3위까지 치고 올라갔으나 시즌 막판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와의 2연전에서 내리 패하며 결국 최종성적 67승73패4무로 4위에 그쳤다.

5. 2010년


2010년 시즌은 전 해의 불안감을 날리듯 아카호시 노리히로의 은퇴 후 영입한 외국인선수 맷 머튼과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죠지마 켄지가 대 활약하였다. 맷 머튼은 스즈키 이치로의 210안타 기록을 갱신하는 등 214안타를 때려냈고, 죠지마는 28홈런을 쳤으며 유틸리티맨 히라노 케이이치가 3할 5푼을 치는 등 전년도에 비해 타선이 매우 좋아져 줄곧 선두권을 유지하였으며 한때는 1위까지 올라갔으나, 시즌 막판 계투진 붕괴로 '''3위 팀에게 매직넘버가 켜지는 진기록을 세웠다가''' 결국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우승을 넘겨주고 말았다.
그리고 2010년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1회전에선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2패로 광속탈락. 1차전에선 요미우리의 선발투수 토노에게 꽁꽁 묶였고 2차전은 경기 초반부터 점수를 차근차근 쌓아나갔으나 후지카와 큐지가 불을 지르며 결국 시망.-_- 2003년 일본시리즈 6차전 이후로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1승 12패를 기록했다.
반면 한신 2군은 프랜차이즈 스타인 히라타 카츠오[4] 2군 감독의 지휘 하에 4년만의 웨스턴리그 우승을 했으나, 한신 팬들의 연임요청에도 불구하고 프런트에 의해 해임당했다.

6. 2011년


한마디로 표현하면 타어강의 일본판 선행버전.
2010년의 반등세에 자신을 얻었는지 구단 차원에서 1985 AGAIN을 외치면서 돈지랄에 나서서 '''연봉총액이 그동안 매년 돈지랄이라고 까던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능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 결과 2011년 '''시즌 시작 전에 전문가들은 만장일치로 한신의 우승을 예상했다'''.
그런데 막상 시즌이 시작되자 '''시즌 중반이 지나도록 우승은 커녕 플옵 커트라인인 3~4위를 왔다갔다 했고''', 기어이 2011년 6월 한신 전기철도 주주총회에서 마유미 감독을 성토하는 말까지 나왔다. 급기야 시즌 막판에 포스트시즌 커트라인과 점점 멀어져가면서 관중석에서 응원 메가폰이 날아 들어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고시엔 구장의 유료 입장관중이 2만명 대로 추락하여 자리가 남는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마유미 감독은 10월 16일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사임하게 된다.

7. 2012년


마유미 아키노부 감독이 짤리고 타격코치였던 와다 유타카 코치가 내부승격을 통해 감독으로 선임되었고, 구단 프랜차이즈 출신이 감독이 되면 망한다는 징크스 때문에 한신팬들은 우려했으나,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전해 부상때문에 38게임 출장에 그쳤던 조지마 겐지는 재활 끝에 복귀는 했으나, 포수가 아닌 일시적으로 1루수로 출장하게 되었고, 맷 머튼도 부상 때문에 초반 결장하는 등 어째 영 좋지 못한 기운이 감돌았는데...
한마디로 '''망했어요.'''
카네모토 토모아키는 초반 주전으로 출장하다 대타로 밀려났고 아라이 타카히로 역시 부상에 시달렸으며 조지마 겐지는 24게임만 뛰고 또다시 부상을 당했다. 중심타자 맷 머튼은 에이스 노우미 아츠시와 트러블을 일으키는 등 팀은 개박살이 났다. 게다가 조지마 겐지는 복귀를 시도하다 2군 경기 도중 또 부상을 당해 그대로 은퇴를 선언했고, 같은 달 카네모토 토모아키 역시 은퇴를 선언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5승 14무 75패로 히로시마에도 뒤진 5위를 마크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자진 퇴단한 니시오카 츠요시와 일본 복귀를 선언한 후쿠도메 고스케에게 접촉, 영입에 성공하는 등 '''폭풍 돈질'''을 시전했다. 포수 공백 역시 오릭스에서 히다카 타케시를 데려와 메웠다.
하지만 아예 소득이 없던 것도 아니어서, 유망주 수준이었던 아라이 타카히로의 동생 아라이 료타가 시즌 초반 이후 4번 타순에 들어서며 커리어 처음으로 두자릿수 홈런을 때리는 등 분전했다.

8. 2013년


후쿠도메 고스케는 타율이 1할대에 머물다 부상으로 라인업에서 빠졌고 크레이그 브라젤의 공백을 메워줄 것으로 생각된 외국인 브룩스 콘래드는 그 흑역사가 많은 한신 외국인 타자 중에서도 유일하게 '''0홈런 0타점'''(57타수 10안타)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보이다 방출되었으나, 니시오카가 1번에서 활약해주고 루키 후지나미 신타로와 이번 시즌에 첫 선발투수로 나서는 에노키다 다이키가 선발진에 안착하며 시즌 초반까지는 순항하고 있다. 요미우리의 독주속에 한신이 추격하는 게 세리그 초반의 판도. 특히 요미우리를 상대로 성적이 좋은데, 첫 3연전에서는 역사상 처음으로 요미우리에게 3경기 연속 무득점의 수모를 안겼으며[5] 5월 8일에는 '''도쿄돔에서 요미우리를 상대로''' 6년만에 스윕에 성공했다. 잠깐 요미우리를 제치고 1위가 된 적도 있었지만, 후반기들어 주춤하며 8월 시점에서 7게임차로 벌어져 1위는 사실상 멀어졌다. 그래도 3위권과 10게임차를 벌리며 순항하다 9월 이후에 주춤해서 3위와 4게임차로 좁혀졌지만 어쨌든 3년만에 2위로 A클래스 복귀.
그러나 홈에서 벌어진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승률 5할도 안되는''' 3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처절하게 발리며 2연패로 광탈. 2013년에도 또(!) 플레이오프 광탈 징크스를 끊지 못했다. 심지어 돈 별로 없는 시민구단에게![6] 한신 팬들이 할 수 있었던 거라고는 히야마 신지로가 현역 마지막 타석에서 친 대타홈런으로 정신승리하는 것 뿐이었다.. 이로써 오카다 감독 이래로 포스트시즌 성적은 통산 1승 12패. 클라이맥스 시리즈 탈락만 네번. 포스트시즌만 하면 유불리를 막론하고 실패를 거듭하는 퍼시픽리그의 이 팀과 어깨를 견줄 정도.
오프시즌에는 주니치의 선발 나카타 켄이치, 니혼햄의 포수 츠루오카 신야등 여러 FA를 노렸으나, 결국 빈손으로 돌아왔다. 오승환을 데려오며 마무리 자리를 채웠지만, 외국인 선수 엔트리 제한 때문에 준수한 선발 스탠드리지를 떠나보내야 했다.[7] 베테랑 선발 구보 야스토모도 FA권을 행사해 요코하마 DeNA로 떠나며, 고정 선발은 3명(노미, 메신저, 후지나미) 밖에 남지 않아 선발진을 채우는 게 큰 과제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구보의 보상 선수를 '요코하마의 전력 약화'를 노린다며 베테랑 포수 츠루오카 카즈나리를 데려오면서 선발진 공백은 유지된 채 주전 포수 경쟁만 더욱 큰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8]
여담으로 블라디미르 발렌틴의 홈런 기록을 위한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일본 기록 타이인 55호, 일본 기록을 경신하는 56호, 사상 최다인 60호포 모두 한신전에서 뽑아냈다.

9. 2014년


오승환을 영입한 첫 시즌. 오승환이 제 역할을 하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4연승을 거두고 일본시리즈를 갔지만... 해당 항목 참조.

10. 2015년


한때 1등도 승률 5할이 안되던 세리그에서 나름 버텨냈지만 막판에 무너지며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턱걸이하였고 와다 유타카 감독이 시즌 후 경질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

11. 2016년


가네모토 도모아키 체제 첫 시즌이었으나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했다. 해당 항목 참조.

12. 2017년


2년만에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돌아왔지만 첫 스테이지를 못 넘어갔다. 해당 항목 참조.

13. 2018년


2001년 이후 17년만의 최하위. 결국 카네모토 감독은 경질되었고 야노 아키히로가 감독이 되었다. 해당 항목 참조.

14. 2019년


해당 항목 참조.

15. 2020년


해당 항목 참조.

16. 2021년


지난 시즌 kt wiz에서 뛰며 KBO리그 MVP였던 스위치 히터 외야수 멜 로하스 주니어를 2년 계약으로 데려왔다.
두산 베어스에서 투수 골든글러브최동원 상을 수상한 라울 알칸타라와도 2년 계약을 마쳤다.
이로써 한신은 2020년 KBO 최고의 외국인 투수와 타자를 보유하게 되었으며, 기존 제리 샌즈까지 KBO 출신 외국인 선수가 3명이나 모이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치바 롯데와의 계약이 틀어졌던 천웨인을 영입하는가 하면 MLB 진출설이 나오던 수아레즈를 잔류시켰고 숙적 요미우리의 스가노 토모유키가 포스팅으로 MLB 진출을 시도하면서 리그를 떠날거란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그 어느때보다도 우승에 대한 열망이 뜨거운 오프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유출이 예상되었던 스가노가 요미우리 잔류를 택했고 일부 외인 선수들의 입국이 불발되면서 잠시나마 이런 분위기가 식는 듯 보였다. 그러자 이번엔 드래프트 1라운드로 지명된 슈퍼루키 사토 테루아키가 스프링캠프동안 무시무시한 타격을 보여주며 다시금 한신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며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가는 중이다.


[1] 이 잡지는 9월 3일, 요미우리와 5게임차 벌어진 1위를 기록하고 있을 때 나왔다. [2] DTD라고는 하지만 사실 8~9월에 한신은 5할승부는 했다. 정확히는 8월 초에 5연패+1승+3연패로 한 번 고꾸라지기는 했는데 8월 말에 다시 회복한다. 8월 25일 기준 승패마진 +10에서 9월 21일 기준(이 날 요미우리는 세리그 공동 1위를 기록한다.) 승패마진 '''+23'''까지 만든 교진이 대단했을 뿐.[3] 그렇기 때문에 DTD보다는 '''SK 와이번스2019년 행보'''에 더 가깝다[4] 1985년 한신 일본시리즈 우승멤버로, 한신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던 코치였다. 차기 감독 후보이기도 했고.[5] 중간에 0-0 무승부가 있어 3연속 완봉승에는 실패했다[6] 전북 현대 모터스대전 시티즌에게 털린다고 상상해보라. 그런 충격이다. 물론 히로시마는 과거에는 몰라도 2013년 현 시점에서는 엄밀한 의미의 시민구단은 아니지만. [7] 참고로 나카타, 츠루오카 신야, 스탠드리지 세명 모두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 이적했다.[8] 다만 2015년 시점에서 보면, 이와타 미노루, 이와자키 스구루, 고졸 또는 대졸 신인들이 나머지 선발 두 세자리를 메우는 식으로 운용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