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참

 

'''이름'''
허참(許參)
'''본명'''
이상룡(李相龍)
'''생년월일'''
1949년 11월 30일 (71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부산광역시[1]
'''신체'''
신장 173cm, 체중 71kg, 발 250mm[2]
'''학력'''
영남상업고등학교
동아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중앙대학교 국제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직업'''
방송인, 가수, 배우
'''활동 시기'''
1970년 ~ 현재
1. 소개
2. 가족오락관
3. 가족오락관 종영 이후
4. 기타
5. 주요 출연작
5.1. 방송
5.2. 광고


1. 소개


대한민국MC이다.
어렸을 때부터 라디오 드라마에 심취하여 성우 흉내로 사람들을 웃기는 데 능했고,[3] 학창시절 다니던 웅변학원[4]에서 발음법과 발성법, 화술을 배우면서 우렁차고 또렷한 목소리와 재치있는 말솜씨를 갖게 되었다. 영남상고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한 허참은 이등병 때부터 부대 웅변대회에서 1등을 따는 등 두각을 나타내며 문화선전대 진행요원 으로 뽑혔고 군 생활 내내 위문공연 MC로 활동했다.
1973년 전역 후 방송인이 되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온 허참은[5] 처음엔 군대나 고향 친구 집을 떠돌면서 동가식 서가숙 하다 정동 MBC 근처에서 구멍가게를 하던 친구 집에 더부살이로 정착하여 채소나 생선 배달 등 잡일로 생계를 꾸리며 방송국 부근에서 계속 꿈을 키워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군대 친구와 종로에 놀러간 허참은 당시 이종환이 운영하던 통기타 라이브 클럽 '''쉘부르'''에 들렀다가[6] 통기타 그룹 '''쉐그린''' 공연 후 행운권 추첨에 당첨되어 무대로 올라가게 되었는데, 문선대 MC 3년 경력을 살려 전혀 떨지 않고 오히려 뻔뻔하게 보일 정도로 입담을 과시하여 무대의 가수들과 관객들을 배꼽잡게 만들었다. 허참의 말솜씨에 감탄한 쉐그린 멤버가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라고 묻자 허참은 "아... 기억이 안납니다" 라며 능청을 떨었고, "'''허 참''', 자기 이름도 기억 못하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라는 면박에 재치있게 "아 그래요, 제 이름이 바로 '''허참'''입니다" 라고 받아치면서 클럽 안의 사람들을 전부 빵 터뜨렸다. 이것이 부산 청년 '''이상룡'''이 '''허참'''이란 예명을 쓰게 된 계기였다.[7]
허참의 재능을 알아본 이종환은 그를 쉘부르의 MC 겸 DJ로 채용하여 그의 명성은 높아졌고 나중엔 '''허참 쇼''' 라는 자신만의 쇼를 열어 매번 쉘부르 입장권이 동날 정도로 유명해졌다.[8] 결국 1974년, 쉘부르의 손님으로 그를 지켜보던 당시 MBC의 PD 겸 DJ '''박원웅'''[9]이 허참을 새 라디오 프로그램 '''청춘은 즐거워''' MC로 영입하면서 본격적으로 방송계에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MBC 라디오의 MC와 DJ로 활약하던 허참은 1976년 경 MBC 내 모든 프로그램의 사회자를 아나운서로 교체한다는 방침으로 일자리를 잃고 신발 장사를 하는 등 잠시 방송을 떠났다가 TBC의 스카웃 제의를 받고 이적하여 '''7대 가수쇼''' MC로 TV 무대에 진출했고, 그 이듬해인 1977년 부터 TBC의 간판 쇼 프로 '''쇼쇼쇼'''의 MC를 맡으며 명실상부 당대 최고의 MC로 떠오르게 된다.[10] 그 외에 DBS의 '''허참과 이 밤을''' 등의 MC로도 활동했다.
허참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프로그램은 바로 '''가족오락관'''이다. 또 반대로 가족오락관하면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떠올리는 MC는 허참이다. 그만큼 그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가족오락관을 빼놓을 수가 없다.

2. 가족오락관


언론통폐합 후에도 TBC때부터 MC를 맡아오던 쇼쇼쇼등 다양한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동하다가 1984년부터 KBS 가족오락관의 MC를 맡게 되었으며 국민적 사랑을 받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진행자인 허참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교통사고로 인해서 한 번 펑크를 낸 적이 있었지만 여성 MC가 스무 명이 넘게(21명) 바뀔 동안 허참만은 자리를 굳건히 지키면서 프로그램의 마스코트격인 존재가 되었다. 한때 시청률이 35%를 넘는 경우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 뒤 가족오락관2009년 4월 부로 25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질 때, 30대에 진행을 맡아서 60대에 마무리하게 된 그는 "마지막 녹화를 끝내고 나서, 한 주부 방청객이 '아저씨 잘 가요'라고 인사하는데 마치 '''은퇴하는 기분'''이었다"며 아쉬워했다.
'''어쨌든 그의 가족오락관 26년 진행은 국내 단일프로 최장수 연속진행 MC 기록으로 남아 있다'''. 이 기록의 최고 경쟁상대인 일요일의 국민MC 전국 노래자랑송해는 1988년 5월부터 1994년까지 진행했지만 1994년 몇 달간 하차했다가 복귀했기 때문에 1994년부터 지금까지이므로 연속진행 기록으로는 허참에게 밀리고 있다. 다만 전국노래자랑은 2024-03-27 19:45:42 현재도 매주 방영하고 있으므로 2021년까지 송해가 하차 없이 계속 진행한다면 허참의 기록을 뛰어넘게 된다.[11][12] 타 방송사 프로그램 중에서는 1998년 5월 21일 첫방송 이래 2024-03-27 19:45:42 현재까지 임성훈박소현이 MC 자리를 놓지 않고 있는 SBS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가 허참과 송해에 견줄 만하다.
가족오락관 외의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스쳐지나간 여성 MC가 무려 140명에 달해 강심장에서 "MC계의 의자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image]

3. 가족오락관 종영 이후


2011년에는 잠시동안 아이넷TV 성인가요콘서트 MC를 맡기도 했으며 2012년 말부터 2015년 초까지 지역 민방 전국 TOP 10 가요 쇼의 MC를 맡는 등 음악 프로그램 MC로의 활동은 지속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서 부업으로 고깃집[13]을 경영하고 있다. 개업한지는 오래 된 듯. 위치는 담터사거리에서 별내(불암산) 방면으로 가면 있다. 그리고, 2016년, 같은 지역(남양주)에 유기농 채소 식당 '참스팜스'를 개업하였다
2015년 8월, 대부업(사채)체인 미즈사랑 CF에 출연하면서 사채 CF에 출연한 연예인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대전MBC의 토크앤조이에 출연하고 있는데 유독 서수진 아나운서에게 시집가라는 소리를 자주한다. 정작 유지은 아나운서에게는 별로 그러지는 않는다.
2014년, 남양주시 화도읍에 위치한 자신의 집 인근에 있는 공유수면을 불법 사용하다가 적발된 바도 있다
2017년 2월 5일 복면가왕에서 방귀대장 스컹크라는 가명으로 참가했으며 사슴이 꽃보다 아름다워와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을 같이 부른 뒤 어니언스의 '편지'를 부르면서 정체를 밝혔다. 이 때 심현섭이라고 생각했던 김구라는 “내가 선생님께 무슨 짓을 한 거야!”라면서 데꿀멍.....[14]
2019년 11월부터 2020년 5월까지는 아침 드라마 맛 좀 보실래요에 출연해 연기자로도 활동했다.

4. 기타


상당히 동안이다. 예전에는 나이 들어보였지만, 이 분도 꽃미남이 아닐 뿐이지 무서울 수준으로 나이를 안 먹는다. 한국 나이 기준 2018년에 '''고희'''를 맞았다.
체격도 상당하다. 163cm라는 정소녀와 비교해봤을 때 머리 반절 이상 큰 것을 보면 173cm[15]은 될 체격이다. 나이를 먹으면 전성기 키보다 다소 줄어든다.[16] 잊으면 안 되는 사실은 이 분은 2018년에 '''칠순을 맞았다'''. 따라서 소싯적에 체격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1976년2003년에 음반을 발표하면서 가수로 활동한 적도 있는데, 본인 말로는 가수 활동이 목적이 아니라 사회를 보면서 양념으로 곁들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1980년 11월 30일 밤 TBC TV의 마지막 방송인 TBC 가족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를 진행하고 다음날인 12월 1일 오후 KBS 2TV의 첫 시작을 알리는 KBS 새가족이라는 특집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17] 즉, 한국 방송계의 중요한 순간을 증거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2000년대 중반 주말 점심 버라이어티 프로에서 송해와 자주 엮이면서 코믹한 요리 대결을 하더니, 송해가 건강상의 문제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추석맞이 전국 노래자랑 특별 MC로 대신 출연했다. 물론 이름이 두 글자에 유명한 MC라는거지. '''연세는 송해 선생이 무려 22세나 많다.'''
전국노래자랑은 1980년에 첫 방송을 시작했으나 송해 선생이 MC를 보기 시작한 것은 방송된 지 8년 후에 시작했고, 중간에 1994년에 6개월 간 끊긴게 있어서 최장수라고 볼 수는 없다. '''그래도 송해 선생만 정정하면 조만간 기록 경신이 눈 앞이다'''. '''그래서 송해 선생이 전국노래자랑 마이크를 내려놓을 경우 현 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후임 MC로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허참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허참도 방송 커리어 내내 MC만 하고 게스트로 출연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2008년 , 문화방송황금어장 - 무릎팍도사에도 출연하고, 이후에는 까메오지붕뚫고 하이킥에 출연하기도 했다. KMTV의 허참의 골든 힛트쏭을 쥬얼리S와 함께 진행했다. 한때 토지를 불법사용 했다가 적발되어서 원상복귀했던 적이 있다. 관련기사.
상단에 기술된 대로 TBC에서 MC로 유명해졌기 때문에, JTBC 개국 당시 특집프로(TBC 추억여행)에서 메인 MC로 돌아왔다. 개국 첫날 방송에다가 보조MC가 강지영(아나운서), 장성규라 이리저리 버벅대는 프로그램의 중심축을 관록으로 커버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이 의외로 잘 모르지만 경상도 사투리 원어민이다. 표준어는 방송 때문에 익힌 것. 무릎팍도사(2008.3.12)에 출연했을 때 부산 출신으로 방송생활 초기엔 사투리 때문에 굉장히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방송가에서는 대략 2000년대부터 이경규, 강호동, 김제동 처럼 MC가 사투리로 방송 진행이 가능해졌다. 이게 자신의 젊은 시절엔 1970년대엔 상상도 못했던 환경이고 스스로 표준어 때문에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토로. 지금도 촬영 중이 아닐 때는 부산 말씨로 이야기한다.
성격이 굉장히 짖궂다. 2007년 가족오락관 1169회에서는 볼과 볼 사이에서 가발이 등장했을때 자신의 머리에 거꾸로 쓰고 앞에 나온 출연자들을 당황하게 하거나 승마운동기구를 타면서 돈을 세는 스피드게임을 할 당시에는 장난으로 버튼을 눌러 승마운동기구의 작동 속도를 늘리는 등 가족오락관에서 짖궂은 모습을 많이 보였다..

5. 주요 출연작



5.1. 방송



5.2. 광고


  • 진로 양주 CF: 흑백 TV 광고다. 그 외에도 이 시기에 출연한 광고가 많으며, 오히려 컬러광고가 적은 편.
  • 미즈사랑
  • 진주내동공원묘원: 버스 광고에 대문짝만하게 방송인 허참이 추천하는 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 동아제약


[1] 출생 당시 부산은 경상남도 부산시였다.[2] 1998년에 가족오락관에서 그게 문제랍시고 나간 적이 있다. 이로 인해 당시 방청석과 출연자들 모두가 초토화되었다.[3] 특히 TBC '''광복 20년'''의 조병옥 역할과 MBC '''전설따라 삼천리''' 해설로 유명한 성우 류기현의 흉내를 잘 냈다고 한다.[4] 사실 허참의 부모님은 그를 정치인으로 키우고 싶어서 웅변학원에 보낸 것이었다.[5] 이 때 성공하면 갚겠다면서 여동생이 결혼 자금으로 모아둔 3만원을 빌려 서울에 왔다고 한다.[6] 마침 그날 쉘부르에선 오란씨 무료시음 행사를 하고 있어서 허참은 목이나 축이자는 생각에 들어간 것이었다.[7] 일설에는 누군가가 허참의 진행 능력을 보고 "허 참 정말 진행 잘하는구만."이라고 말한 걸 전해듣고 예명으로 삼았다는 말도 있다.[8] 그러나 이종환은 허참에게 정해진 급여 같은것은 주지 않고 숙식 제공으로 때웠다고 한다. [9] 1940~2017.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의 디스크 쇼 DJ로 이름이 높았다.[10] 1980년 11월 언론통폐합 으로 TBC가 사라지고 KBS로 채널을 옮겨 1983년 종영할 때 까지 쇼쇼쇼의 MC를 맡았다. 참고로 이전 MC는 초대 곽규석(코미디언, 예명 후라이보이)-2대 이한필(가수, 예명 위키 리, 전국노래자랑 MC 경력도 있다), 정윤희였고, 허참이 3대이자 마지막 MC였다. 허참의 대표적인 파트너는 정소녀였다.[11] 단, 같은 프로의 진행 기록은 2019년 11월까지... 라디오 스타에서 허참이 직접 발언한 내용이다.[12] 단, 코로나19로 인해 전국노래자랑이 2020년 3월부터 6월, 9월부터 12월까지 두 차례 결방한 데다 송해의 건강 악화로 진행을 못 하거나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으로 인한 추가 결방 등의 변수가 있어 기록 경신은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13] 상호는 '허참갈비' 이며, 간판에 그의 사진이 떡하니 걸려있다.[14] 정작 심현섭이 먼 훗날 복면 가수로 나왔을 때는 알아보지 못했다.[15] 이선영 아나운서와 거의 비슷하다.[16] 70세에는 20세에 비해 4cm 정도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예외적으로 그렇지 않는 경우도 볼 수 있다.[17] 이전 버전에는 KBS 새가족의 MC를 맡았다고 서술됐지만 실제 방송 영상을 보면 허참은 곽규석, 임성훈 등과 함께 쇼 프로그램 안내 코너의 소개자 역할만 했다. 실제로 KBS 새가족의 MC를 맡았던 사람은 김동건 아나운서와 전날 밤 TBC 석간 고별편을 진행하고 KBS로 넘어온 이영혜 아나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