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덴뷔르템베르크

 


'''바덴뷔르템베르크
Land Baden-Württembe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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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州旗)'''
'''주장(州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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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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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image]
'''시간대'''
(UTC+1/+2)
'''주도(州都)'''
슈투트가르트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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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 '''면적'''
35,751.46km²
'''인구'''
11,100,394명(2019년)
'''인구밀도'''
310명/km²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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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프리트 크레치만[7]
'''주의회'''
'''여당'''

'''47석 / 143석'''

'''43석 / 14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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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석 / 143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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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석 / 96석'''

'''16석 / 96석'''

'''13석 / 96석'''

'''12석 / 96석'''

'''11석 / 96석'''

'''6석 / 96석'''
'''연방상원'''
6석

1. 개요
2. 역사
3. 지리
4. 정치
4.1. 통합 이전
4.2. 통합 이후
5. 사회
5.1. 경제
5.2. 인구
5.3. 종교
5.4. 교육
6. 하위 행정구역
6.1. 주요 도시
7.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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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Land Baden-Württemberg,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독일 서남부에 위치한 주(州).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바덴과 뷔르템베르크의 합주로 탄생한 주로, 슈바르츠발트가 두 지역을 나누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인식은 확고하게 나뉘어 있는 편이다. 최대 도시이자 주도는 뷔르템베르크의 슈투트가르트.

2. 역사


오래전 이 곳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알레만니 부족들이 살던 곳으로, 지금도 이 주의 서남쪽 프랑스와의 국경지대는 알레만 지방이라 부른다. 프랑스어로 독일을 뜻하는 Allemagne은 여기서 유래한 것.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496년 클로비스에 패하여 프랑크 왕국에 복속되었고 이후 슈바벤 공작령으로 이어진다. 슈바벤은 동프랑크, 독일의 5대 공작령(작센, 프랑켄, 바이에른, 로트링겐) 중 하나로 유래가 매우 깊은 곳이다. 이후 843년 베르됭 조약에 의해 동프랑크 왕국에 속하게 되었으며, 독일 왕국을 거쳐 962년 성립된 신성로마제국의 5대 제후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슈바벤은 프랑켄 공국, 로트링겐 공국과 마찬가지로 분할 상속 등으로 여러 가문으로 쪼개지면서 점차 명맥이 끊겨 갔다.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호엔슈타우펜 가문이 한때 신성로마 제국 황제들을 세습하기도 했지만 영토가 작아서 제국을 장악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지금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문장도 이 가문의 문장을 그대로 따온 것. 1268년 호엔슈타우펜 가문 단절과 함께 슈바벤 공작위의 명맥이 끊기게 되지만 1273년 슈타우펜 가문으로 단절된 황제위에 오르게 된 합스부르크 가문루돌프 1세는 한미한 자신의 가문의 정당성을 세우기 위해 가문이 보유한 슈바벤 영지를 바탕으로 슈바벤 공작령을 다시 되살려고 공작령 영토 전체를 황제의 직할령으로 두었다. 하지만 합스부르크 가문 역시 슈바벤 내에서 영토 지분이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오래 가지 못하고 결국 뷔르템베르크 백작령, 바덴 변경백, 스위스 연맹, 브루군트 공작령, 촐레른 백작령, 퓌르스텐베르크 백작령으로 조각난다. 특히 저 브루군트 공작령 때문에 훗날 프랑스와 피터지는 영토 분쟁이 생기게 된다.
뷔르템베르크 백작령과 바덴 변경백은 슈바벤 공작령의 제후령으로서 각각 1083년과 1112년에 설치되었다. 뷔르템베르크 백작령은 슈바벤 공작령이 사라진 후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영토를 확장해 나가며 1495년 공작위로 승격된다. 뷔르템베르크 가문 공작들의 후손들은 계속해서 영지를 넓혀갔고 30년 전쟁, 나폴레옹 전쟁을 거치면서 1803년 나폴레옹의 입맛에 의해 선제후가 되고 1806년엔 뷔르템베르크 왕국이 성립된다. 이 왕국은 1871년에 독일 제국에 합류하나, 역시 1차 대전의 패전 이후 몰락하게 되며 뷔르템베르크에는 자유 주가 성립된다.
바덴 변경백은 체링엔 가문으로 상속되며 프랑스 알자스 지방와의 국경지대로, 바덴바덴카를스루에를 중심으로 성장해 나갔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호헨슈타우펜 가문에 충성하던 영주다. 이 지역도 오스트리아나 바이에른 령 영토와 함께 군소 영주령들이 난립했던 곳이고 바덴 지역이 하나로 통일되는 것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1803년 바덴이 선제후가 되고 1806년 대공국으로 승격된 이후이다. 그 후 약 100여년의 시간 동안 독일 제국 안의 자치국으로 그 명맥을 유지하던 바덴 대공국은 1차 대전 패전 이후 붕괴되었지만, 그 명맥은 이어져 이후 바이마르 공화국나치 독일 시기 내내 바덴은 연방주(Land)의 하나가 된다.
촐레른 백작령은 호헨촐레른 가문의 발상지로, 뷔르템베르크 공작령 남쪽에서 스위스 국경 일대이며, 결과적으로 뷔르템베르크 공작령의 영토가 되었고, 바덴 공작령 남쪽 스위스 국경의 퓌르스텐베르크 백작령도 바덴 변경백령에 흡수되었다.
2차 대전 패배 이후 이 지역은 미국과 프랑스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되는데 하나의 주를 각각 한 나라가 점령한 것이 아니라, 뷔르템베르크와 바덴의 북부 지방은 미국이 점령하였으며 남부 지방은 프랑스가 점령하면서 북부 뷔르템베르크, 남부 뷔르템베르크, 북부 바덴, 남부 바덴 4개의 점령구가 생기게 된다. 이 점령구들이 세 개의 주를 구성했다. 북부 뷔르템베르크와 북부 바덴은 뷔르템베르크-바덴 주, 남부 뷔르템베르크는 호헨촐레른 지방을 합쳐 뷔르템베르크-호헨촐레른 주, 남부 바덴은 바덴 주. 이것이 1952년 하나로 합쳐져 오늘날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중앙정부나 점령군이 무작정 밀어붙인 게 아니라 주민투표를 거쳐서 통합을 결정했다. 나머지 지역구는 모두 통합을 찬성했지만, (남부)바덴만큼은 이 통합에 거세게 반발하여 이 통합이 위헌이라고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위키백과 독일어판의 바덴-뷔르템베르크 항목에 나온 이 당시의 지도를 보면 (남부)바덴 주가 옛 바덴 대공국과 바덴 연방주의 영토를 북부 일부 지역만 제외하고 그대로 계승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뷔르템베르크는 남북으로 분할된 데다가 각기 북부 바덴과 호엔촐레른을 포함한 상태였다. 만약 뷔르템르크 지역만이 통합되고 바덴이 존속했다면, 남독일 지역은 독일 연방 당시의 바덴, 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이 영토가 조금씩 바뀐 채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형태가 되었을 것이다. 물론 이 헌법소원은 기각되었다. 이와 함께 오스트리아 땅이었던 곳 일부, 프랑켄 지역이었던 것 일부, 팔츠 영토였던 곳들도 일부씩 조금씩 조금씩 함께 합병했다. 어차피 안 그랬다면 월경지가 너무 많아졌을 것이고..

3. 지리


수계에 따라 지역권이 나뉜다. 수계는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 검은 숲, 흑림)와 슈바벤 산맥[1]
  • 라인강 인근[2]은 과거 바덴 대공국에 해당하는 바덴 지역으로, 만하임, 하이델베르크[3], 카를스루에, 바덴 바덴, 프라이부르크 등의 도시가 유명하다. 이 인근은 독일 내에서도 최남부에 해당하는 지역이지만 바이에른 쪽에 비해 고도와 격해도가 높지 않은 덕분에 독일 내에서는 기후가 상당히 온화하다고 평가받는 지역이다.
  • 네카어강은 라인강의 주요 지류이며, 라인강에 합류하는 지점 인근은 바덴이지만 상류쪽으로 올라오면서 뷔르템베르크의 영역이 된다. 네카어강의 지류를 포함한 지역이 뷔르템베르크 지역이다. 본류 구간은 뷔르템베르크 지역 중에서도 가장 주요한 지역이며, 슈투트가르트, 튀빙겐 등의 도시가 유명하다.
  • 다뉴브강은 세 지역을 모두 관통한다. 최상류 지역은 바덴 지역이지만, 하류로 내려오면서 지크마링겐을 중심으로 호엔촐레른 지역이 걸치게 된다. 또한 바이에른과의 경계까지 내려오면서 뷔르템베르크 지역이 된다. 슈바벤 지역으로는 이어지지만 주 경계는 울름을 끝으로 바이에른의 영역이 된다.
주도이자 최대 도시는 슈투트가르트이며, 그 외의 주요 도시들은 인구 수 기준으로는 만하임, 카를스루에, 프라이부르크, 하이델베르크 순으로 이어진다. 유명한 모터 스포츠 서킷호켄하임링도 이 주에 있다. 교육 쪽에선 세공, 운송기기 디자인으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대학인 포르츠하임 대학교는 주 내의 포르츠하임 소속 대학교.
서북쪽엔 라인란트-팔츠 주, 서쪽엔 프랑스, 남쪽엔 스위스(프리드리히스하펜과 스위스가 만남), 동쪽엔 바이에른 주, 북쪽엔 헤센 주에 접해 있다. 남동쪽에 콘스탄츠 호수(독일어: Bodensee 보덴제)를 통해 오스트리아와도 간접적으로 접해 있다.
스위스 바젤 시내의 바젤 바디셔 역의 승강장과 대합실 일부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치외법권 지대다. 1852년에 바덴 대공국과 스위스 연방이 맺은 조약에 따라 역의 일부를 바덴 대공국의 영역으로 하여 바덴 대공국 철도회사가 운영하게 되었고,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독일 영토와 도이치반 운영으로 바뀐 것.

4. 정치



독일의 다른 연방주가 1인 2투표제를 실시하는 것에 비해 바덴-뷔르템베르크는 1인 1투표제를 실시한다.[4] 다시 말해 지역구 후보에게 주는 표를 합산하여 정당 의석 배분의 기준으로 삼는다. 한국에서는 15대와 16대 국회의원 총선거 때 이 방식을 썼다.
오랫동안 기독교민주연합의 텃밭과도 같은 곳으로, 2016년까지 기독교민주연합이 원내 제1당을 유지하고 있었다. 통합 이전에 기독교민주연합이 제1당이 되지 못 한 것은 1950년 뷔르템베르크-바덴 주 선거 뿐이었고, 통합 이후에는 줄곧 기독교민주연합이 제1당이었다. 2011년 선거에서 기민당이 녹색당-사민당에 패배하면서 최초의 녹색당 주총리가 들어서더니, 2016년 선거에서 녹색당 30%, 기민련 27%, 대안당 15% 득표하면서 녹색당에게 1당 자리를 내주었다. 녹색당은 1979년 바덴-뷔르템부르크의 슈투트가르트에서 발기식을 가졌으니, 여기가 안방이나 마찬가지다.
2018년 현재 주의회 의장이 터키 난민 출신의 여성인 무테렘 아라스이다. 어릴 때 부모와 함께 종교적인 이유로 터키를 탈출한 케이스로 독일 교육을 받고 시민권을 얻었으며 정치인이자 세무사이다. 터키 이민자, 난민, 여성이라는 복합적인 소수자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성공을 이룬 케이스로 독일 사회 통합의 상징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한다.

4.1. 통합 이전


뷔르템베르크-바덴 주에서는 미군정 시기이던 1945년에 중도보수인 자유민주당 소속 라인홀트 마이어(Reinhold Maier)를 총리로, 기독교민주연합, 사회민주당, 공산당이 모두 참여하는 거국내각을 구성했고, 1946년 선거 후에도 자유민주당 소속 총리와 거국내각은 유지하였다. 제1당은 기독교민주연합이 됨. 1950년 선거에서 제1당은 사회민주당이었지만, 자유민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면서 총리는 라인홀트 마이어가 계속 맡았다.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주는 프랑스 군정 시기이던 1946년에 사회민주당 소속 인물을 총리로 기독교민주연합, 자유민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했고, 1947년 선거에서 기독교민주연합이 단독 과반수를 차지했음에도 총리가 기독교민주연합 소속 인물로 바뀌었을 뿐 기독교민주연합-사회민주당-자유민주당의 연립내각은 유지했다. 공산당은 연립내각에서 계속 배제되었다.
(남부)바덴 주는 프랑스 군정 시기이던 1946년에 기독교민주연합 소속 인물을 총리로 기독교민주연합,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 공산당이 모두 참여하는 거국내각을 구성했다. 1947년 선거에서 기독교민주연합이 단독 과반수가 되었으나, 초창기에는 사회민주당과 연정을 구성했다가 후기에 기독교민주연합 단독 내각으로 전환했다.

4.2. 통합 이후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성립한 1952년 선거에서 제1당은 기독교민주연합이었지만, 제2당인 사회민주당이 뷔르템베르크-바덴 주의 총리이던 라인홀트 마이어를 총리로 자유민주당 -사회민주당-전후이주자연합의 연립내각을 구성했다. 전후이주자연합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영토가 된 지역에서 넘어온 사람들이 조직한 정당이다.
1956년부터 2010년까지는 줄곧 기독교민주연합이 주도하여 내각을 구성하면서 이따금 기독교민주연합이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 할 때마다 자유민주당이나 사회민주당이 참여하는 형태를 유지하였다.
2011년 지방선거에서는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와 맞물려 대중의 지지를 크게 받은 녹색당이 전체 의석 138개 중 36석을 획득, 35석을 얻은 사민당과 연립내각을 구성하고 녹색당 최초로 주 총리를 배출한다. 이 해에 실시한 모든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은 의석을 늘리거나 의회에 새로 진출하면서 16개 연방주 전체에서 의석을 확보하게 되었다. 제1당은 여전히 기독교민주연합(138석 중 60석)이었지만, 자유민주당 의석이 7석에 불과하여 정권을 잡지 못했다.
2016년 주 선거에서는 아예 녹색당이 1당으로 승리했다. 다만 사민당 의석수가 모자라 기민당과 연정을 하게 되었다.

5. 사회



5.1. 경제


지하자원은 전무하다시피한 편이지만 독일 내에서도 바이에른과 더불어 가장 부유한 지역으로 유명한데, 포르쉐, 자이스, 메르세데스-벤츠, 보쉬, WMF, ZF, SAP, 베이어다이나믹, 후고 보스(Hugo Boss) 등의 유명한 기업이 이 곳을 연고지로 두고 있다. 또한 유통 분야에서는 드러그스토어DM과 슈바츠 그루페(Schwarz-Gruppe)[5]의 본사가 위치한다. 그리고 IBM, 로슈 등 거대 다국적 기업의 독일 본사도 위치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보쉬 같은 대기업도 지역 경제의 큰 축이면서, 이 대기업들에게 장비나 부품, 소재 등을 납품하는 중소기업들도 이 지역의 경제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대도시와 중소기업이 위치한 소도시 들은 엄청난 공업화가 이루어진데 반하여 검은숲과 보덴제 등의 수려한 자연환경과 농촌 지역은 그 나름대로의 특색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라 관광업으로도 꽤나 짭짤하게 소득을 올리고 있는 편이다.
바덴뷔르템베르크는 또한 금융업의 발달로도 유명한 곳이다. 프랑크푸르트처럼 대기업 위주의 금융업보다는 지역, 협회 위주의 금융업이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으며, 이 지역 경제를 튼튼히 지탱하는 다리와 같은 존재다. 독일의 다른 지역에 살다가 바덴뷔르템베르크 지역에만 가면 독일의 다른 곳에선 못 보던 난생처음 보는 은행들이 곳곳에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모두 지역 은행들이다. 보험, 연금 등에 있어서도 독보적이다. 독일에서 바덴뷔르템베르크 사람들은 구두쇠라는 편견이 있다. 안 그래도 다른 지역보다 저축율도 매우 높은 곳이다. 괜히 지역 은행들이 잘 굴러가는 게 아니다. 이게 되려 금융 분야에 있어서 메리트가 되어서 아예 독일 내 다른 지역에 광고를 할 때 바덴뷔르템부르크 출신임을 강조하는 곳도 있을 정도.

5.2. 인구


2014년 기준으로 인구수는 약 1천 50만 명 가량이며 여자가 남성보다 약 20만 명 가량 많은 여초 주이다. 출산률과 사망률이 거의 똑같으며[6] 현재 노인층의 인구 비율이 거의 20%에 육박하는 초고령 인구구조여서, 외부에서의 유입이 없다면 조만간 인구가 매섭게 줄어들 듯 하다. 그래서인지 적극적으로 이민을 유치하고 있는 듯 싶다. 인구수의 10%인 100만 가량이 외국인이며 나머지 90%의 독일인 중 30% 가량도 외부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5.3. 종교


전통적으로 주 내의 북부지방은 루터교회 계열의 개신교가, 남부지방은 가톨릭이 우세하며 독일 내에서는 루터교세의 남방한계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따지자면 가톨릭이 살짝 더 많다. 가톨릭이 35.8%, 개신교가 31.9%. 또한 이민자가 많은 주 특성 상 무슬림도 5.6% 가량 된다.
슈투트가르트가 포함된 뷔르템베르크 지역교회는 교회협의회(EKD)에 속한 독일 주류 루터교회들 중에서 유일하게 동성결혼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데, 동성혼 허용 논의를 놓고 계속 부결되었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반대로 카를스루에가 포함된 바덴 지역교회는 동성결혼을 일찍이 인정했다.

5.4. 교육


제조업이 발달한 주의 산업구조 특성 상 기계, 금속 등의 공학 교육의 수요가 많고 공급도 많은 편이다. 그 밖에 학교 특성에 따라 건축이나 물리학의 특정 분야가 유명하기도 하다. 하이델베르크튀빙엔의 의대도 독일 내에서 알아주는 편이다. 한편 2016년에 독일에서 최초로 비 EU 국가 출신 학생들에게 대학 등록금을 징수하기로 결정하였다. 2017년 겨울학기 신입생부터 해당되며 등록금은 학기 당 1500유로이다. 그리고 출신 국가에 상관없이 학위 소지자가 복수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추가 학기와 학위 과정을 수행할 경우에도 등록금을 징수할 예정이다.
2019년 독일 연방정부가 선정한 엘리트 대학에 가장 많은 수의 대학이 이름을 올린 주이기도 하다. 단일 주에서 네개의 대학이 선정되었는데, 칼스루에의 KIT, 하이델베르크 대학, 콘스탄츠 대학, 튀빙엔 대학 이다. 바이에른이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가 각각 두개 씩 선정된 것에 비하면 상당한 성과이다.
독일에서 손에 꼽히게 잘 사는 연방주 중 하나로 이에 힘입어 대학교육에 투자가 괜찮은 편이고, 이미 주에서 유명한 자동차, 기계, 금속 산업 등에 힘입어 산학 협력과 졸업 후 직업 전망이 좋은 편이다. 따라서 끈임없이 자본과 인재가 몰리고, 평준화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의 질이 좋은 선순환이 잘 이뤄지는 지역 중 하나이다.

6. 하위 행정구역




6.1. 주요 도시



7. 기타


  • 이 동네의 농담으로 Wir können alles - außer Hochdeutsch 가 있다. 직역하면 "우리는 모든걸 할 줄 안다. 표준 독일어 빼고." 다. 이 주의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한 뷔르템베르크 지역은 슈베비시라는 사투리를 쓰는데 표준 독일어와 비교했을 때 억양, 발음의 괴랄함이나 어휘의 차이가 바이에른어 못지 않게 이질적이다. 그래서 자조적인 농담으로 이런 말을 한다.
  • 슈투트가르트를 중심으로 보덴제에 이르는 뷔르템베르크와 지금의 바이에른 서쪽 지역까지를 크게 Schwaben 지역으로 부르는데 이 지역 사람들은 구두쇠에다 일을 열심히 한다는 이미지가 있다. 대개 이 지역 사람들의 전형적인 이미지는 잘 지은 단독주택 앞에 벤츠 한 대를 세워두고 열심히 세차를 하며 차를 애지중지 한다는 것. 아무래도 지역 대기업이 생산하는 차라 그런지 BMW보다 벤츠가 더 많이 눈에 띈다. 지역 사투리에서 흔히 쓰는 일하러 가기를 독려하는 말 중에 Schaffe, schaffe, Häusle baue 라는 관용구가 있는데 "집 지을 돈 벌려면 일 하자 일!" 정도로 의역할 수 있다.
  • 주 전체적으로 22시 이후에는 슈퍼마켓이나 음료 전문 매장에서 알콜이 들어간 음료를 팔지 않았었지만 2017년 12월부터 법안을 철회하면서 다시 팔기 시작했다.

[1] 여느 알프스 인근의 산맥처럼 별칭으로 알프스/쥐라 등이 붙은 슈바비시 알프(Schwäbisch Alb)나 스와비안 쥐라(Swabian Jura) 등이 사용된다.[2] 다만 산맥에 가까운 콘스탄츠호 인근은 뷔르템베르크 지역이다.[3] 네카어강에 자리하나 라인강과 가깝고, 현재는 사실상 만하임권역으로 취급된다.[4] 여담으로 이 동네는 옆 동네와 달리 좌파정당 지지도가 높은 편이다.[5] 리들과 카우프란트 등의 거대 슈퍼마켓 체인을 거느린 유럽에서 제일 큰 유통 대기업이다.[6] 통계에 따르면 1000명당 8.61명 출생에 8.60명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