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드라마)

 


'''KBS 2TV 특별기획 드라마''' '''
명성황후
''' (2001)
''明成皇后 / The Last Em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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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등급'''
'''15세 이상 시청 가능'''
'''방송 시간'''
수요일, 목요일 밤 10시 5분
'''방송 기간'''
2001년 5월 9일 ~ 2002년 7월 18일
'''방송 횟수'''
124부작
'''방송사'''

'''장르'''
대하사극
'''제작'''
삼화네트웍스
'''연출'''
윤창범, 신창석
'''극본'''
정하연
'''출연'''
이미연, 최명길, 유동근, 이진우
'''해설자'''
설영범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
2. 비판
3. 출연진
4. 여담
5. 고증
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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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타이틀 오프닝 영상
명성황후의 일생을 담은 KBS 2TV에서 방영했던 124부작 특별기획 드라마. 2001년 5월 9일부터 2002년 7월 18일까지 매주 수목 저녁 10시 5분[1]에 방영되었다.
주인공 명성황후 아역 시절을 문근영(1~9회)이 맡았으며, 이미연(10~77회)이 성인역을 맡았다. 원래 100부작으로 기획되었으나, 생각보다 드라마가 인기를 끌자[2] 24부작 연장을 했는데, 이미연이 80화까지만 나오는 것으로 계약했던 바람에[3] 갑신정변(80회)부터는 최명길이 이어 맡았다. 유동근이 분한 흥선대원군이 고집이 강한 성격으로 나오며[4], 이진우가 분한 고종황제역은 아버지와 아내 사이에서 줏대없는 역할로 나온다. 이 외에 임혁미우라 고로 공사 역을 맡았는데, 배우 이미지 때문인지 분명 작중에서는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카리스마 있고 강직한 면이 강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미우라 고로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없는 위험한 군인, 외교관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마지막 회에서 이토 히로부미와 술을 마시며 "조선은 이제 우리의 것이 된다"며 담소를 나누는 장면에서는 사악한 포스가 제대로 드러난다.
이미연이 맡았던 명성황후가 비운의 여주인공에 천사급 이미지로 나오는 바람에 그녀의 연기를 보기 위해 몰려든 탓인지 3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높은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주연 배우가 최명길로 교체된 이후부터는 시청률이 한자리까지 급락했으며, 특히 SBS 드라마 스페셜 명랑소녀 성공기가 방영됐을 때에는 처참한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래서 이미연과 최명길을 두고 누가 연기를 잘 했는가 평가가 엇갈리는데, 이미연은 청순가련했으나 정치력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각성하는 캐릭터, 최명길은 지적이면서 정치적으로 노련한 여장부를 연기했다고 보면 된다.

2. 비판


실제의 명성황후는 고종과 함께 각종 이권을 서구 열강에게 헐값으로 팔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근대화를 했다기보다는 단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운영했다고 비판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명성황후가 받은 뇌물이 애국과 개화를 위한 자금, 일제의 눈을 가리기 위한 위장으로 표현하여 명성황후를 왜곡 치켜세웠다. 하지만 실제로 민씨가 받은 뇌물들은 천연자원 등 조선의 이권을 외세에 헐값에 팔아넘기며 받은 돈이며, 애국, 개화를 위한 자금인가에 대해선 논란이 많고 대부분은 고종과 민씨의 권력 강화에만 쓰였다는 비판을 받는 것들이다.
그리고 명성황후 뿐만 아니라 흥선대원군과 고종 황제에 대한 왜곡과 미화 역시 상당한 편. 예를 들어 대원군은 며느리 명성황후와 말년에 화해했으며 그에 따라 고종의 조카가 되는 이준용을 고종 대신 옹립하려는 사건에도 반대했고 을미사변에도 참여하지 않으려 했는데 일본인들이 자루에 씌워 데려갔다는 식이다.[5] 그 외에도 결과적으로는 명성황후 반대파에 해당되는 김옥균도 명성황후를 존경하면서 그녀의 협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혁명가로 그려냈다. 방송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서였는지 명성황후 뿐만 아니라 조선 인물 대부분이 가치관은 다를지라도 다들 나름대로 나라를 위해 일한 인물들이었다고 묘사된다(...).[6]
하지만 당시만 해도 뮤지컬 명성황후로부터 촉발된 명성황후에 대한 미화가 팽배했던데다, 주연 배우들의 연기 또한 대단한 호평을 받았기 때문에,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은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3. 출연진




4. 여담


  • 이 드라마와 조수미의 《나 가거든》을 둘러싼 오해가 있는데, 《나 가거든》의 뮤직비디오는 이 드라마 내용을 옮긴 것이 아니라 야설록의 소설 《불꽃처럼 나비처럼》을 영상화한 뮤직비디오다. 그런데 고종(이진우), 명성황후(이미연)의 배우가 그대로 출연해서 이런 오해가 빚어진 모양. 이미연'내가 조선의 국모다' 대사가 센세이션을 일으켜 아직까지도 회자된다. 단, 이미연의 이 대사가 드라마에서는 최명길이 등장할 때였다. 그리고 이 대사 자체도 이 드라마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원래는 1994년 이수광이 지은 소설의 제목이 오리지널이다.
  • 개화기를 다루는 만큼, 일제강점기 전까지를 다룬 한국 사극에서 서양인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극이기도 하다. 독일인 외교관 묄렌도르프(이참 분), 미국인 선교사 겸 의사 알렌, 한국 최초의 여학교인 이화학당을 설립한 미국인 선교사 메리 스크랜튼, 러시아 공사 웨베르, 손탁호텔의 주인 손탁[7], 이사벨라 루시 버드[8] 등은 심지어 한국어도 구사한다. 비중이 크지 않지만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때 각각 프랑스군과 미군 역을 한 서양인들도 등장한다.
  • KBS2 채널이긴 하나 KBS 사극 답게 KBS1에서 방영하던 대하사극 시리즈에 나오는 인물들이 여럿 출연한다. 주역들을 제외하면 거의 절반 이상의 인물이 이듬해에 나온 사극 무인시대에 출연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5. 고증


  • 대부분 사극에서 쓰이는 하오체 대신 하소서체가 쓰인 것이 특이한 점. 가령 '~하옵니다' 대신 '~하옵나이다' 가 나오는데, 생각해 보면 하소서체가 하오체에 비해 격이 높은 만큼 왕족에게는 하소서체를 쓰는 것이 보다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배우들도 하소서체가 생소했는지, 가끔씩 하옵니다도 튀어나온다. 사실 정하연씨는 사극에서 하소서체를 주로 쓴다.
  • 흥인군 부인은 주인공의 아역 파트에서만 나와야 했다. 흥인군은 생전에 3번 결혼했는데, 첫 부인과 둘째 부인은 고종 즉위 전에 죽었고, 셋째 부인은 1868년, 극중에서 성인 역이 처음 등장한 시기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극중에서는 중년으로 나왔지만, 사망 당시 35세였기에 젊은 모습으로 나와야 했다.#
  • 18화 33분 즈음에서는 척화비를 소개했는데, '非戰則和(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친하는 것)' 를 '비전즉화' 가 아니라 '비전칙화' 로 읽는 어이없는 실수를 내기도 했다. 자막은 물론 내레이션도 칙으로 읽었는데,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한문 문법을 모른다는 소리다.
  • 이미연이 등장한 시기(1868 ~ 1882)에 작중 등장인물들이 '영조대왕', '정조대왕'이란 호칭을 쓴다. 영조는 1890년에, 정조는 대한제국 수립 후인 1899년에 고종이 격상시킨 묘호이기 때문에 '영종대왕', '정종대왕'이라 불러야 맞다. 시청자들에게 낯설어 저랬다고 할 수도 있으나, 자막으로 설명하면 전혀 문제될 게 없다.
  • 44화에서 영보당 이씨가 퇴장할 때 내레이션으로 "영보당 이씨는 순종 7년에 사망했으며, 순종이 아들 완왕(완화군) 묘역에 장사지냈다"고 언급했다. 실제 영보당 이씨는 순종이 죽고 2년 뒤인 1928년 12월 17일에 사망했다.# 그리고 순종 7년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순종 재위 햇수로 4년 째인(융희 4년) 1910년에 나라가 망했기 때문이다.[9]
  •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는 무렵에는 조선 통신사를 가리켜 '오랑캐 나라에 문화를 전달해 준다는 우월감의 표시였을 뿐 본격적인 외교 관계라고 할 수는 없었다' 라고 하는데, 이는 통신사를 심하게 과소평가한 것이다. 통신사는 조선 후기에 일본 내지에까지 파견한 유일한 공식 외교 사절단으로서 문화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기본적인 목적이었으며, 1711년의 신묘약조를 비롯해 일본 측과 빚고 있는 외교적인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약조도 몇 차례 체결된 바 있다.
  • 흥선대원군고종명성황후에게 존칭을 쓰지만, 가끔 안쓰는 경우가 있다.# 흥선대원군은 생물학적으로 고종의 아버지일 뿐, 법적으로는 아니기 때문에 엄연히 고종의 신하이며,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언제나 예외없이 극존칭으로써 예를 다해야 한다. 아무리 친부라 해서 가끔이라해도 존칭을 쓰지 않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민응식민영익에게 하대한다. 역시 말도 안되는 일이다. 민영익이 민응식의 아저씨뻘 항렬이기 때문이다. 비록 민응식이 민영익보다 16살이 많긴 하지만, 자신보다 윗 항렬인 사람에게 하대하는 것은 저 시대에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 95화에서 명성황후가 들은 음악[10]과 110화에서 이완용베베르 러시아 제국 공사가 커피 마시며 이야기 나눌 때 흘러나온 음악[11]은 러시아 노래 《За окошком свету мало(창문 밖은 어두운데)》이다. 가수 류드밀라 즈이키나(Зыкина, Людмила Георгиевна)가 부른 버전으로 나왔는데, 이 가수는 1929년 생이다. 《명성황후》 방영 당시에도 살아있었으며 2009년에 사망했다.#

  • 갑오개혁 때 고종이 동아시아 전통적 조공 체제에서 벗어나 국가와 왕실의 격을 높이면서 '국왕 전하'를 '대군주 폐하'로, '왕비 전하'를 '왕후 폐하'로, '왕세자 저하'를 '왕태자 전하'로, '왕대비 전하'를 '왕태후 폐하'로 격상시켰다. 그런데 극중에서는 '대군주', '왕후' 호칭만 고증했고 나머지는 전부 이전에 쓰던 식으로 썼다. 예를 들면, "대군주 전하와 왕후 전하께옵서 왕대비 마마를 뵈옵나이다." 이런 식으로.
  • 한국인 작가가 대본을 써서 그런지, 일본어 대본이 한 마디로 엉망이다. 일단 작중에 등장하는 일본인들의 이름 뒤에 으레 'さん' 이 붙었다. 그런데 문제는 상대가 자신보다 얼마나 높고 낮은지에 따라 이름만 부르거나 'さん' 대신 'さま' 를 쓰거나 해야 하는데, 이런 차이 없이 일괄적으로 'さん' 이라 하니 어색했다.[12] 또 임오군란을 다룬 장면에서는 '뭘 꾸물대고 있나! 발사!' 에서 '발사!' 부분을 '發射!' 라 했지만 이보다 'うって(撃って)!' 가 훨씬 자연스러우며, 을미사변 때에는 일본인 낭인들과 이 내관이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명성왕후를 '왕비(王妃; おうひ)' 라고 부르는데 낭인들은 그렇다 쳐도 극중에서 지극히 충성스러운 것으로 묘사되는 이 내관이 '왕후' 라고 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다.

6. 관련 문서



[1] 원래는 사극이기에 1TV에서 방송을 해야하지만 태조 왕건으로 인하여 수목드라마로 바뀐것이다.[2] 이 탓에, 이 드라마를 본 당시의 어린이들 중 상당수는 명성황후를 "나라를 위해 일본에 맞서다 죽은 인물"로 잘못 인식하게 되었다.[3] 이미연이 연장 출연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처음부터 드라마 제작사와의 계약이 최초 기획되었던 100회까지가 아니라 80화까지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KBS와 드라마 제작사는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4] 오죽하면 대원군 평생의 진정한 친구로 묘사되는 김병학이 죽어가면서까지 그의 고집 센 성격을 걱정하는 것으로 묘사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동근의 연기력 자체는 호평을 받은 편이며, 그 외에 주연급 배우 전반이 극중의 캐릭터를 잘 표현한 편이다. 유동근은 이 배역으로 생애 두번째 KBS 연기대상을 수상했다.[5] 이준용 옹립 사건의 경우 실제로는 근왕파 관료들의 반발과 일본 공사관의 반대로 실패했으며 대원군과 황후의 사이가 더욱 멀어지는 계기가 되었는데, 실제로는 이준용을 끝까지 지지했던 대원군이 극에서는 '그렇게 일본이 좋으면 일본 놈들이 좋아하는 할복을 하라는 게야...!' 라고 호통을 치기까지 한다. 을미사변의 경우 강제로 끌려간 적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일본이 아닌 청나라였고, 그 때도 국왕의 생부를 자루에 담아 끌고 가는 수준은 아니었다.[6] 훗날 만고의 역적이 되는 이완용 역시 본 드라마가 다루는 시기상 친러파로 나오는데, 나름 조선의 자주와 독립을 위해 러시아의 힘을 이용해 보려는 모습으로 나오며 내레이션 해설도 그렇다. 이런 부분은 이 드라마의 극본을 맡았던 정하연의 특징 중 하나이기도 한데, 그가 집필한 사극 대부분은 주로 역사의 패자로 남은 인물들이나 비판점이 많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성향이 강하며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작중 인물들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해야 했고 이것이 미화와 왜곡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는 이 작품 뿐 아니라 전작이었던 왕과 비에서 제기된 비판이기도 하다.[7] 다만 배우는 한국인 김진아(2014년 사망)였다. 한국인인데 서양인을 연기한 특이한 케이스.[8] '비숍'으로도 잘 알려진, 기행문 '조선과 이웃나라들'의 저자. 첫회에서 명성황후와의 티타임 상대로 등장한다. 암살을 방지하기 위해 상궁들이 기미(氣味)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해하자 명성황후가 "야만적으로 보이냐"고 묻는데, 그에 대해 '영국 왕실에도 암살당한 임금들이 많습니다'라고 말한다.[9] 저기서 말하는 순종 7년은 아마 1914년인 듯 하다. 이왕 시절 순종의 행적을 적은 《조선왕조실록 - 순종실록부록》을 보면 1914년을 순종 7년으로 표기했다.#[10] 55분 19초 ~ 55분 39초, 55분 59초 ~ 56분 14초.[11] 27분 40초 ~ 29분 00초.[12] 예를 들어 임진왜란기를 배경으로 한 사극인데 선조든 유성룡이든 전라좌수영 군관이든 이순신을 부를 때 일괄적으로 '이순신 씨' 라 한다고 생각해 보자. 극중에서도 명성황후와 친교를 맺은 미치코라는 일본인 여성이 등장하는데, 황후를 모시는 홍 상궁이 황후에게 미치코를 가리킬 때 '미치코 さん' 이라고 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황후가 미치코를 딱히 높이거나 하지는 않고 아랫사람으로 대했기 때문에, 그냥 미치코라 하면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