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귀
相貴
(? ~ ?)
후백제의 장군이자 해군 제독. 관등은 '일길찬'.
기록에 전공을 남긴 몇 안되는 후백제의 장수들 가운데 하나이다. 932년 당시 후백제는 고창 전투의 패배로 육군끼리의 싸움에서는 기가 꺾인 상태였다. 후백제의 견훤은 공략 루트를 바꿔 상귀에게 수군을 이끌고 황해를 지나 예성강을 타고 북상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을 직접 기습 공격하게 했다.
이 때에 상귀는 고려 수군을 급습하여 3일 동안 염주, 백주, 정주에 정박해있던 전선 100여 척을 불사르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큰 타격을 받은 고려 수군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황해의 섬 저산도에 상륙하여 고려군이 기르던 군마 300여 필을 약탈해 후백제로 돌아갔다. 이후 고려 수군은 후백제가 나중에 내분으로 자멸할 때까지 뚜렷하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의 패배가 고려 수군에게는 아픈 기억이었는지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모두 상귀의 이름이 언급된다. 왕건이 장군으로 활약할 때에 우세한 해군력으로 나주를 공략하여 견훤을 괴롭혔던 전적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패배.[1]
그러나 상귀에 대해서는 이후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
이후에도 견훤은 해전으로 왕건을 괴롭히는데 맛을 들였는지 상애로 하여금 수군을 이끌고 다시 고려를 공격하였다. 상애 역시 상귀처럼 수군을 이끌고 고려의 장수 만세[2] 가 이끄는 함대를 무찌르고는 저산도에 또다시 상륙하여 노략질을 하다가 유금필이 의병을 일으켜 항거하자 돌아가버렸다. 상애는 상귀와 비슷한 수전에서 공을 세우는 행적에 성씨인지 돌림자인지 몰라도 글자가 겹쳐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인지[3] 게임 등 매체에서는 형제지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기록과 마찬가지로 후백제의 수군을 지휘하는 장수로 등장한다. 배우는 김명국.[4] 기록에 등장하는 후백제 장군들 중에서 큰 공을 구체적으로 세운 장수임에도 작가의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애술[5] 이나 신덕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장수로 묘사된다.[6] 엑스트라 장수 급으로 비중이 공기화된 상애보다는 취급이 낫다는 게 위안.
견신검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능환, 신덕과 더불어 견신검을 옹립하는데 앞장섰고 독약을 먹고 자결한 최승우의 목을 베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우락부락한 인상과 더불어 성격도 과격한지 한때 자신의 주군이었던 견훤을 '노망난 늙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견훤이 금산사로부터 도망쳐 나주에서 배를 타고 고려로 가려고 할 때 수군을 이끌고 막아섰으나 견훤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놈들아, 나를 알아보겠느냐?"라며 호령하자 부하들이 당황하여 명령을 전혀 듣지 않는다. 활을 쏘라고 목이 쉬도록 외쳐대는데도 말을 안 듣는 부하들 때문에 당황하는 모습이 압권. 결국 눈 앞에서 견훤을 놓치는 것은 물론 견훤을 호위하던 유금필이 돌격하자 배가 부서지면서 수군도 피해를 입는다.
일리천 전투에서 견훤이 선봉을 선 고려군에 맞섰지만 견훤이 항복을 권유하자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줄줄이 항복하는 바람에 이를 막느라 안습하게도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했고 병사들의 이탈을 막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가 뒤이어 달려 온 유금필의 칼에 맞아 허망한 최후를 맞는다.
(? ~ ?)
1. 개요
후백제의 장군이자 해군 제독. 관등은 '일길찬'.
기록에 전공을 남긴 몇 안되는 후백제의 장수들 가운데 하나이다. 932년 당시 후백제는 고창 전투의 패배로 육군끼리의 싸움에서는 기가 꺾인 상태였다. 후백제의 견훤은 공략 루트를 바꿔 상귀에게 수군을 이끌고 황해를 지나 예성강을 타고 북상하여 고려의 수도 개경을 직접 기습 공격하게 했다.
이 때에 상귀는 고려 수군을 급습하여 3일 동안 염주, 백주, 정주에 정박해있던 전선 100여 척을 불사르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리고 큰 타격을 받은 고려 수군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황해의 섬 저산도에 상륙하여 고려군이 기르던 군마 300여 필을 약탈해 후백제로 돌아갔다. 이후 고려 수군은 후백제가 나중에 내분으로 자멸할 때까지 뚜렷하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거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의 패배가 고려 수군에게는 아픈 기억이었는지 삼국사기나 고려사에 모두 상귀의 이름이 언급된다. 왕건이 장군으로 활약할 때에 우세한 해군력으로 나주를 공략하여 견훤을 괴롭혔던 전적이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패배.[1]
그러나 상귀에 대해서는 이후의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
이후에도 견훤은 해전으로 왕건을 괴롭히는데 맛을 들였는지 상애로 하여금 수군을 이끌고 다시 고려를 공격하였다. 상애 역시 상귀처럼 수군을 이끌고 고려의 장수 만세[2] 가 이끄는 함대를 무찌르고는 저산도에 또다시 상륙하여 노략질을 하다가 유금필이 의병을 일으켜 항거하자 돌아가버렸다. 상애는 상귀와 비슷한 수전에서 공을 세우는 행적에 성씨인지 돌림자인지 몰라도 글자가 겹쳐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인지[3] 게임 등 매체에서는 형제지간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2.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기록과 마찬가지로 후백제의 수군을 지휘하는 장수로 등장한다. 배우는 김명국.[4] 기록에 등장하는 후백제 장군들 중에서 큰 공을 구체적으로 세운 장수임에도 작가의 마음에 안 들었는지 애술[5] 이나 신덕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장수로 묘사된다.[6] 엑스트라 장수 급으로 비중이 공기화된 상애보다는 취급이 낫다는 게 위안.
견신검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능환, 신덕과 더불어 견신검을 옹립하는데 앞장섰고 독약을 먹고 자결한 최승우의 목을 베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우락부락한 인상과 더불어 성격도 과격한지 한때 자신의 주군이었던 견훤을 '노망난 늙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견훤이 금산사로부터 도망쳐 나주에서 배를 타고 고려로 가려고 할 때 수군을 이끌고 막아섰으나 견훤이 갑자기 나타나서 "이놈들아, 나를 알아보겠느냐?"라며 호령하자 부하들이 당황하여 명령을 전혀 듣지 않는다. 활을 쏘라고 목이 쉬도록 외쳐대는데도 말을 안 듣는 부하들 때문에 당황하는 모습이 압권. 결국 눈 앞에서 견훤을 놓치는 것은 물론 견훤을 호위하던 유금필이 돌격하자 배가 부서지면서 수군도 피해를 입는다.
일리천 전투에서 견훤이 선봉을 선 고려군에 맞섰지만 견훤이 항복을 권유하자 병사들이 무기를 버리고 줄줄이 항복하는 바람에 이를 막느라 안습하게도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했고 병사들의 이탈을 막는데 정신이 팔려 있다가 뒤이어 달려 온 유금필의 칼에 맞아 허망한 최후를 맞는다.
[1] 어쩌면 왕건이 "설마 후백제가 그런 약해빠진 수군으로 우리를 공격해오겠어?"라며 방심하던 것을 견훤이 노리고 공격을 감행한 것일지도 모른다.[2] 한자로 萬歲이다. 만세라고 외칠 때의 만세인데 벼슬은 대광(大匡)이었다.[3] 한자는 다르지만 고려 이전까지 고대 한국인 인명은 고유어 음차가 많아서 감안해야 한다.[4] 같은 드라마에서 이미 청주의 호족 '선장'이라는 인물로 출연하였다. 왕건이 즉위한 직후 임춘길과 연계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홍유에게 죽음을 당하는 역할이었으며 극 후반부에 와서 상귀로 부활한 셈. 드라마 무인시대의 채원도 김명국이 맡은 배역.[5] 애술은 견훤이 고려군에 있는 모습을 보자 포기하고 항복해온 것이 기록의 전부라 역사 기록상으로는 상귀보다 용맹하다고 볼 수도 없다.[6] 사실 상귀의 비중 조절은 까다로운 문제이기는 하다. 후삼국시대 내내 해상에서 고려가 후백제를 압도했던 점을 생각하면 송악 공략은 그야말로 후백제의 회심의 일격일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그 수군을 조련해야 할 상귀가 송악 공략 이전에 뭔가 눈에 띌만한 공적을 쌓을 기회는 많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 당시 수군들의 출신 성분을 고려해보면 능창처럼 해적 출신이었을 가능성도 높은데 그렇다면 더욱 지상전에서 뭔가를 보여줄 가능성은 적다. 사실 작중에서 후백제 최강의 무력을 자랑했던 능창 역시 견훤에게 귀부한 이후로는 왕건이 나주로 쳐들어오는 바람에 무력을 보여줄 기회가 생겼지 이전에는 지상전에 그다지 모습을 드러낼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