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왕실
1. 개요
노르웨이 왕가의 정식명칭은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Schleswig-Holstein-Sonderburg-Glücksburg)'''이다. 덴마크 왕국의 크리스티안 10세의 차남 카를이 1905년 호콘 7세로 즉위했기 때문에 실제로 덴마크 글뤽스부르크 왕조의 분가다.
독일과 북유럽 왕가들은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수많은 제후국들간의 정략결혼으로 이렇게 성이 엄청나게 길어지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자면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만 해도 정식 왕조명은 홀슈타인고토르프[1] 로마노프(Гольштейн-Готторп-Романовской)이다.
2. 하랄 5세
노르웨이의 현 국왕은 1991년 즉위한 하랄 5세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3. 가족
3.1. 아들 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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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부부.
이러한 대인의 기질은 호콘 왕세자의 결혼 때에도 어김없이 드러났는데, 왕세자가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던 동갑내기인 '메테마리트 셰셈 호이뷔'라는 여성은 어려서 부모가 이혼해 홀어머니 밑에서 정부보조금을 받으며 자랐으며 공부에 흥미없는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고등학교를 1년 늦게 졸업했다. 졸업 후 야간대학에 다니다 마약에 빠지게되고, 교환학생으로 떠난 오스트레일리아의 딸기농장에서 일했으나 암페타민과 코카인 소지혐의로 추방당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하지 못하고 당시 유행하던 집단섹스하는 마약파티에 빠져들었고 '지하 세계의 보스'라 불리던 마약밀매조직 보스와 동거하며 1997년에 아들 '마리우스 보르 호이뷔'를 낳았다. 링크[* 사실 메테마리트는 마리우스를 낳기 전에도 15살 연상의 남자랑 동거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그 남자의 친구였던 '지하 세계의 보스'라 불리던 마약밀매조직 보스와 바람 펴서 마리우스를 낳은 것...] 마리우스의 친부는 10대 청소년들을 상대로 난교파티를 계획하다(…) 감옥에 갔고 메테마리트는 미혼모로 오슬로에서 식당 종업원에서 일하면서 아들을 키웠다.
워낙 잘 놀기로 유명했던 메테마리트는 마약파티에서 친해진 방송국 직원을 통해 케이블 방송 <데이트 프로그램>에 일반인 참가자로 출연하며 화려한 20대를 보냈다. 링크 그러다가 한 음악축제에서 호콘 왕세자와 만나게 되었고 사랑에 빠졌다.[2]
호콘 왕세자는 궁전을 나와 메테마리트와 그녀의 아들 마리우스와 함께 오슬로의 아파트에서 동거했고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발표하지만 당연히 그녀의 난잡한 과거는 엄청난 논란이 되었고[3][4] 90%대를 자랑하던 왕실 지지도는 50%로 떨어지더니 아예 왕실폐지 시위까지 일어났다. 다른 나라 같았으면 왕이 앞장서서 반대할 만한 사안이지만, 정작 하랄 5세는 전국민이 반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왕세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반대하지 않았다. 본인도 선왕 올라프 5세의 반대를 극복하고 평민 출신인 소냐 왕후와 9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던 적이 있어서 그런 듯.[5] 오히려 9년은 너무 길었다고 할 정도.
물론 왕의 허락과는 달리 국회 승인은 당연히 안나고 노르웨이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에 충격을 안겨주다시피해서, 결혼하기 며칠전에 궁여지책으로 기자회견을 기획했으며 메테마리트는 조신하게 차려입고 왕세자랑 같이 나와서 언론 앞에서 다소 두리뭉실하게 자기가 과거에 좀 험하게 살았다는 걸 인정하면서 자기가 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 뿐이라며 눈물 쏟아내며 감성에 호소했는데, 그 방법이 제대로 먹혀 국민들 마음이 돌아섰고 드디어 국회 승인을 받아 결혼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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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메테마리트 왕세자비가 결혼 전에 낳았던 아들 마리우스는 '''당연히''' 왕위 계승권은 없지만 왕세자 가족과 함께 생활하며 공식 행사에도 같이 참석한다.[7] 마리우스는 자신의 의붓아버지인 호콘 왕세자를 그냥 '호콘'이라 부르며 친아버지한테 '아버지'라 부르며 자주 만난다. 하지만 마리우스가 처음으로 학교 가는 날에도 호콘 왕세자가 직접 데려다 주고 친아빠도 만나서 웃고 얘기할 정도로 잘해주며 실제로 두 사람의 사이는 좋다. 마리우스의 친아버지는 출소 후 전직 모델과 결혼했는데, 그 남자의 결혼식이 왕실을 주로 다루는 잡지에 마치 스타처럼 생중계 되기도.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혼 후 3개월간 왕세자비 수업을 받으며 거칠었던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우아한 왕세자비로 변신했다. [8] 남편 호콘 왕세자와의 사이에 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와 아들 스베레 망누스 왕자를 낳았으며 각종 공무행사에 참가하고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국제무대에서 노르웨이를 홍보하는 한편, 유엔 에이즈 예방 홍보대사로 선정돼 아프리카 주민을 위한 자선활동에 앞장서고 있으며 소외 계층을 돕는 등 큰 잡음없이 왕실생활에 적응하는 듯 했다. 이 부분은 2014년 12월 14일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코너인 Surprise Secret에서 다루었다. '''하지만'''...
개인비행기에서 자신의 비서를 손찌검하고 욕설한 것이 밝혀졌다. 링크 1 링크 2 노르웨이 왕실은 왕세자비가 고소공포증 때문에 예민해져서 그런것이라며 사과성명을 냈으나 피해자인 비서 힐데 하랄드스타트는 메테마리트의 사과를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에도 메테마리트 왕세자비의 전 남친이 과거에 찍은 섹스 테이프를 유출하겠다고 하거나 그녀의 가족들이 결혼전 사생활을 언론에 폭로하며 구설에 올랐다. 참고로 그녀의 아버지는 '''35살 연하'''의 스트리퍼와 재혼했으나 '''결혼한지 3개월만에''' 초고속으로 이혼했다.링크 그리고 2012년 궁전 직원이자 친구인 동성애자 부부가 인도인 대리모를 통해 쌍둥이를 출산하자 비자가 만료된 그들을 대신해 메테마리트 왕태자비가 직접 인도에 가서 비밀리에 그들의 아이를 노르웨이로 데리고 왔다. 문제는 노르웨이에서는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얻는게 불법이기에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또한 2010년 이후로 호콘 왕세자 부부는 이혼설에 휩싸이고 있는데, 부부관계는 사실상 끝났지만 어쩔 수 없이 체면[9] 상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10] 비슷하게 골드 디거에게 낚였지만(…) 동생 요아심 왕자가 한번 이혼한 전력이 있어서 불행한 결혼생활에도 이혼할 수 없는 처지라 대놓고 표정관리도 안하는 덴마크 왕세자 프레데리크에 비하면 호콘은 그래도 나름 표정관리는 하지만 완전히 감춰지지는 않는 듯.
2018년 10월 메테 마리트 왕세자비가 성명을 통해 희귀한 형태의 만성 폐질환 섬유증 진단을 받았다고 밝혔다.#
3.2. 딸 마르타 루이즈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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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루이즈 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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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편 아리 벤(오른쪽 남자)과 함께.
이렇듯 메테마리트 왕태자비가 행동이 자주 문제가 되다보니 차라리 호콘 왕세자의 누나인 마르타 루이즈 공주가 왕위를 계승해야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자기는 죽은 자가 보이고 동물 및 혼령과 대화가 가능하며 천사를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서 이를 많은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며 2007년에 '천사 학교'까지 세웠다. 링크 6개월 비용은 12,000 노르웨이 크로네(한화로 약 230만원)이며 총 3년을 수강해야 한다고. 이에 노르웨이의 각종 언론들은 그녀로부터 공주 지위를 박탈시키고 정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게 어떠냐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허가없이 왕실의 사진을 도용한 서적을 판매하면서 크게 물의를 일으켜 이로 인해 역사상 처음으로 왕족이 법원까지 출두하는 진풍경까지 연출했다. 전 남편인 아리 벤 역시 왕실의 일원으로 국내의 정치나 정당에 대해 그 어떤 발언도 해서는 안되는 위치임에도 2006년에 자신은 노동당을 지지한다는 발언으로 크게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래서 마르타 루이즈 공주 부부에 대한 평판은 상당히 낮았으며, 호콘 왕세자 부부 못지않게 기괴한 행동을 하다보니 그냥 예정대로 호콘 왕세자가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마르타 루이즈 공주는 유럽 공주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자연미인이지만, 이런 저런 기행들 때문에 거의 부각되지 않는다...
마르타 루이즈 공주와 아리 벤도 평탄치 않은 과정을 걸쳐서 결혼했다. 공주는 물리 치료와 관련된 공부를 하다가 자기를 가르치던 교수의 소개로 그 교수의 아들인 아리 벤과 만나 사귀게 되었다. 하지만 공주의 부군감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리 벤이 예전에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마약 복용을 찬성 혹은 찬양하는 발언 같은 걸 했다고 하는 게 문제가 되었기 때문. 그리고 왕실의 휴가 사진을 몇십 장을 찍어서 SNS에 올리는 바람에 발칵 뒤집혔다. 왕실 경호 문제도 있고 사생활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바람에 난리가 났었으며 평소에도 그렇게 SNS를 애용한다고. 그래서 반대가 좀 있었지만 그래봤자 '''아리 벤은 메테마리트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뿐'''이라서 결국 결혼했고 결혼식 당시 공주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그러나 2016년, 결혼한지 14년 만에 별거를 발표했으며 2017년에 정식으로 이혼함으로서 근대 노르웨이 왕실 최초의 이혼한 왕족이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아리 벤의 외도설이 꾸준히 있었던지라 노르웨이인들은 공주 부부의 이혼발표가 그다지 놀랍지 않았다고. 슬하의 세 딸들은 전처럼 계속 공동으로 양육하기로 결정하는 등 원만하게 이혼했다.
여담이지만 아리 벤도 케빈 스페이시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들 중 한 명이다. 2007년 노벨 평화상 뒤풀이 파티에서 둘이 얘기를 나누다가(케빈 스페이시가 아리 벤의 옆자리에 앉았었다.) 갑자기 케빈 스페이시가 담배 피러 나가자며 테이블 아래로 손을 뻗어 아리 벤의 고환을 만졌다고. 아리 벤은 너무 당황해서 나중에 라고 대답했으며 다행히 그 이상은 없었던 모양. 케빈 스페이시가 20대 초반 내지는 그 이하 연령대의 선이 가는 미모의 남자들을 밝히는 걸로 워낙 유명한데, 결혼식 사진이나 신혼 초 시절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수염을 기르고 머리가 하얗기 변하기 전의 아리 벤은 미소년 얼굴이었다.[11] 아리 벤 본인도 10년전인 2007년때만 해도 머리색도 지금과는 달리 어두운 색이었고 나이도 그보다 10살 정도 어려서인 것 같다며 농담조로 말할 정도. 그런데 아리 벤이 201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자살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2019년부터 미국인 샤먼(shaman) Durek Verrett과 연애중이다. 아이티, 노르웨이, 인도 혈통이며 원래 배우 겸 모델이었다. 할리우드 연예인들 중에서도 그의 고객이 제법 있으며 귀네스 팰트로하고도 친분이 있다. 여담으로 마르타 루이즈 공주가 3살 연상이다.
4. 현황
여하튼 호콘 왕세자나 마르타 루이즈 공주나 여러모로 문제가 되었던 사람들을 배우자로 맞아들이면서 노르웨이가 대외적으로 이미지가 많이 망가졌다. 그 불똥은 남매의 부모인 하랄 5세과 소냐 왕비에게까지 튀었으며, 특히 평민 출신 왕비 때문에 자식들이 이 모양이라는 말까지 나왔었다.[12] 물론 세월이 약이라고 지금은 많이 잠잠해진 상태.
그래서 현재 유럽의 내로라하는 왕실의 왕세자빈/왕후들이 과거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개차반 이력을 가지고도 한 나라의 왕세자비/왕후가 될 수 있었던 데에는, 메테마리트의 공이 지대하다 못해 그녀에게 빚을 지고 있다 해도 모자랄 정도다. 유명해서 늘 뒷담화 대상이 되는 캐서린 미들턴, 메건 마클이나 메리 도날드슨은 범죄를 행한 적이 없고, 막시마 소레기에타는 문제 많은 집안 출신이지만 본인은 문제가 없고, 네덜란드의 요한 프리소 왕자와 결혼한 마벨은 90년대 유럽에서 악명을 떨쳤던 마약왕 클라스 브뢰인스마와 사귀기까지 했지만 어쨌든 아이까지는 안 낳았다.[13] '''괜히 메테마리트가 넘사벽 취급받는게 아니다.''' 근데 옆동네 스웨덴의 칼 필립 왕자와 결혼한 전 누드 모델 출신인 소피아 왕자비도 메테마리트급으로 난잡한 과거때문에 논란이 많지만 이쪽도 어쨌든 아이는 안낳았다.
사실 왕족이란 게 조상과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것이고 현대에 와서는 정치에 파워가 있다기보다는 외국 귀빈 대접, 해외순방, 봉사활동 이외에는 별 할 일도 없는, 국민들의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위한 상징적인 존재다 보니 전세계 어딜 가나 아직도 왕실을 유지하고 있는 30여개 국가에서는 영웅담이나 선행보다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재 왕위 계승 서열 2위, 즉 왕세손의 자리는 호콘 왕세자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 사이에서 태어난 큰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이다. 호콘 왕세자가 태어날 때까지만 하더라도 노르웨이는 남성 중심의 왕위 계승 서열 제도를 가지고 있었으며 마르타 루이세 공주는 1990년 이전에는 왕위 계승권조차 없었지만, 1990년에 법이 개정되면서 첫째의 성별과는 무관하게 계승권이 주어지는 것이 법적으로 확립되었다. 단 마르타 루이세 공주는 법이 개정되기 전에 태어난 1971년생이라서 왕위 계승권은 가지되 순위는 호콘 다음인 2위가 되었다. 조카들이 태어나고 나서는 4위로 밀려나갔으며, 그녀의 세 딸들도 계승권이 있다. 2004년생인 잉리드 알렉산드라 공주는 법이 개정된 1990년 이후에 태어났기 때문에 첫째인 만큼 우선권을 가진다. [14]
오슬로에 있는 왕궁에 가까이 가보면 벽에 무슨 초등학교 건물도 아닌데 별 장식도 없이 노란색 무광 파스텔 톤으로 페인트 칠이 되어있다. 비교적 깨끗하긴 하지만 왕궁 뒤 연못에는 커다란 건축용 PVC 파이프 자재가 물에 나뒹굴질 않나 그다지 신경을 쓰고 있지 않고 있다. 예로부터 노르웨이 왕실은 영국 왕실과 친분이 있어서 오슬로 시청에 가면 그런 두 왕실간의 교류의 역사를 표현한 그림이나 휘장도 구경할 수 있지만, 노르웨이의 왕궁은 으리으리한 영국 왕궁의 모습과는 얼핏 외관상으로 봐도 차이가 있다. 왕궁도 검소함의 끝이다. 이는 본래 노르웨이가 왕국이 아닌 공화국으로 독립하려고 했던 흔적이 남은 것이다. 독립 당시에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던 노르웨이의 국부인 프리드쇼프 난센[15] 이 공화정으로의 독립을 적극 지지했으나, 막상 신생 공화정권의 초대 대통령으로 난센 본인이 추대되자 그런 큰 지위를 맡을 수는 없다며 거부한 탓에, 덴마크 왕실의 제안으로 입헌군주제가 도입되었다. 이때 군주제를 거부하던 공화주의자들을 달래기 위해, 군주에게 형식적으로든 실질적으로든 아무 권한도 주지않는 체제로 가기로 한 것이다[16] .
[1] 러시아의 차르 표트르 3세의 아버지가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카를 프리드리히(1700년 4월 30일 ~ 1739년 6월 11일)이기 때문.[2] 한 인터뷰에서 메테마리트의 어느 점에 반했냐는 질문에 호콘은 그녀의 '''카리스마'''에 반했다고 대답했다(…)[3] 다만 노르웨이가 왕세자라도 확률적으로는 미혼모를 충분히 만날 수 있는 환경일 정도로 '미혼모의 나라'라서 메테마리트가 미혼모라는 점 보다는, 마약 복용 및 난잡한 과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었다. 근데 아무리 그렇게 개방적이고 동거가 결혼보다 많은 노르웨이라지만 왕세자까지 왕궁을 뛰쳐 나가면서까지 미혼모랑 동거한다는 사실은 꽤 충격적인 일이었다고.[4] 노르웨이는 메테마리트가 결혼할 당시인 2001년에도 50% 이상의 아이들이 미혼모한테서 태어날 정도. 다만 여기서 미혼모라고 함은 결혼만 안 했다 뿐 사실상 혼인과도 같은 동거 관계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소리이다. 여러 남자와 관계해 아이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지조차 못하거나, 10대 때 무책임하게 가진 아이이거나, 메테마리트의 케이스처럼 질 낮은 남자와 대책없이 아이를 낳은 미혼모의 경우는 북유럽에서도 그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게 현실.[5] 몇십년 전만 하더라도 유럽 왕실에서 평민과의 결혼은 환영받지 못하는 일이었다. 요즘이야 평민과의 결혼이 왕실의 이미지를 더더욱 좋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어서 옆다른 왕실도 거의 평민과 결혼하는 추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메테마리트를 시작으로''' 현재 대부분의 평민 왕세자비/왕후들이 과거 이력이 개차반인 건 기본이요, 대다수가 왕자와의 결혼을 통해 인생 역전을 노리는 경우여서 결혼 후에는 명품에 돈을 탕진하거나 성품에 문제가 드러나면서 평민 왕세자비/왕후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도 꽤 생겼다. 이러한 논란에서 그나마 자유로운 건 스웨덴의 빅토리아 왕세녀의 남편인 다니엘 공 정도. 다니엘 공은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다는 이유로 '''결혼 전까지''' 평이 별로였지만(…) 부부사이가 좋고 미래의 여왕의 부군으로서의 역할도 잘해내고 있어서 '''부군계의 끝판왕 앨버트 공'''을 잇는 인물이 될 것 같다는 평도 있을 정도.[6]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메테마리트는 어두운 과거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청산한 후 새 삶을 사는 본보기인양 미화된 면이 많은데, 사실은 그 인터뷰를 하게 된 계기에 대해 뒷 얘기가 있다. 둘의 약혼이 발표되고 난 후, 메테마리트의 전 남친이 그녀가 '''마약을 복용하고 섹스하는 장면을 찍은 섹스 테이프'''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하자 왕실에서는 그 섹스 테이프를 사려고 그녀의 전 남친과 협상을 시도했지만 합의를 못 봤다. 그 전 남친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날, 즉 왕후가 되는 날에 공개하겠다고...[7] 마리우스는 어릴 적에는 백금발에 신비롭고 인형같은 귀여운 용모로 주목받았으나 마의 16세를 거치며 역변(…)하는 것 같더니, 다행히 이후에는 그럭저럭 미남이 되면서 정변했다는 평. 북유럽계 아니랄까봐 키도 크다. 마리우스는 2017년부터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유학중.[8] 메테마리트 왕세자비는 주로 샤랄라한 소녀스러운 패션을 즐기는데, 문제는 본인이 워낙 키와 체격이 북유럽 여인답게 크고(키가 무려 '''182cm'''다!) 외모도 다소 강하게 생긴지라 이게 영 안 어울린다...[9] 메테마리트와 연애하던 시절의 호콘은 스스로가 '''가난한 미혼모인 메테마리트를 구해주는 정의의 기사''' 노릇에 심취했던 게 아니냐는 얘기가 있었고 실제로 이런 이미지가 있던 건 사실이다. 그도 그럴게 겉으로 봤을 땐 모든 걸 갖춰서 남부러울 게 없는 한 나라의 왕세자 + 가난하고 별볼일 없는 미혼모 조합이다보니 당연히 이런 이미지가 생길 수밖에... 이러니 이제와서 이혼한다고 하면 그의 이런 이미지가 와르르 무너지게 되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10] 최근 왕세자 부부가 사적인 시간을 보내는 파파라치 사진들을 보면 적극적으로 애정표현을 하며 사이좋은 부부의 모습을 연출하려고 애쓰는(…) 메테마리트와는 달리 호콘은 전혀 애정표현을 하지 않는 걸 볼 수 있다. 물론 호콘도 애정표현을 하는 사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묘하게 어색한 것이...[11] 마르타 루이즈 공주의 취향이 미소년 얼굴인 게 정설이다. 남동생 호콘 왕세자의 18세 생일에 참석한 덴마크의 프레데리크 왕세자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짤이 있다.# 이 짤 하나로 프레데리크의 결혼 상대로 잠깐 거론된 바 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프레데리크 왕세자와 마르타 루이세 공주 세대의 왕족들은 자국인 또는 외국인 평민 내지는 귀족과의 연애 및 결혼을 선호하는 추세이며, 왕족간의 결혼이 더이상 성사될 수가 없는 이유는 아무리 연애 결혼이어도 국민들 눈엔 정략결혼이라며 부정적으로 비춰지기 때문이다.[12] 같은 평민 출신이어도 소냐 왕비와 메테마리트 왕세자비를 비교하는 건 소냐 왕비에겐 굉장한 모욕이다. 소냐 왕비는 메테마리트 왕세자비와는 달리 교육도 잘 받았고 사생활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13] 게다가 요한 프리소 왕자는 결혼하면서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다.[14] 사실 오빠가 하나 있긴 한데 어머니가 미혼모로 낳아서 데려온 아들이라 왕위 계승권은 없다.[15] 북극 탐험에 있어서 혁혁한 공을 세워서, 뒷날 인류 역사상 최초로 남극점 도달에 성공한 로알 아문센에게 큰 영향을 준 그 탐험가 난센이다.[16] 그래서 노르웨이는 총리 임명장도 국왕이 아닌 국회의장 명의로 나오고, 왕은 허울 뿐인 귀족 작위만 내리는 권한만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