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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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농구 선수. 2011년 농구대잔치에서 '시래대잔치'라는 말을 들으며 명지대의 돌풍을 이끌었던 포인트 가드로, 울산 모비스와 창원 LG 세이커스를 거쳐 현재는 서울 삼성 썬더스 소속의 선수이다. 2010년대 들어 주목받는 포인트 가드로 등장한 선수.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명지고등학교 시절부터 촉망받는 포인트 가드로 이름을 알렸지만, 신장이 작아서 한계도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제로 중학교 때는 작은 키 때문에 농구를 그만둘 뻔하기도 했다. 그러나 명지대에 진학한 후, 뛰어난 패스 실력과 경기 조율을 인정 받아 일찍부터 대학농구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이름을 알렸다.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박상관[3] 감독은 향후 KBL 프로농구에 스타라며 칭찬을 보냈고 신뢰를 통해 경기에 자주 기용했다.
2010년 한국대학농구리그 단국대와의 경기에서 10득점 10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대학농구리그 사상 첫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다.
김시래가 자신의 존재감을 급격하게 드러낸 것은 2011년 농구대잔치에서였다. 명지대는 김시래의 손 끝에서 파생되는 공격을 앞세워 돌풍을 일으켰고, 급기야 돌풍이 태풍이 되면서 기존의 강호 대학팀들을 모두 누르고 결승에 오르는 대활약을 펼쳤다. 결승에서는 상무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지만,[4] 명지대 농구부는 창단 이래 최고의 성과를 냈고, 김시래는 그 해 농구대잔치를 시래대잔치로 만들 정도로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MVP는 우승팀인 상무의 함지훈에게 돌아갔지만 김시래는 득점, 어시스트, 수비 부분에서 수상을 하며 농구대잔치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선수가 되었다.
드래프트 직전 대회에서 미친 활약을 보이면서 김시래는 자연히 유력한 로터리 픽 후보가 되었다.
2.2. 울산 모비스 피버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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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드래프트를 앞두고 건국대학교의 최부경과 함께 최대어로 손꼽혔다. 하지만 김시래가 키가 작기 때문에 대학 4년간 인사이드에서 맹활약한 최부경의 1순위가 유력해 보였지만, 1순위가 모비스로 낙점이 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다. 함지훈이 있는 모비스로서는 굳이 최부경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고, 그보다는 양동근의 후계자가 더 급했다. 그랬기 때문에 모비스의 선택은 당연히 김시래였고, 그렇게 김시래는 전체 1순위로 모비스에 입단하게 되었다.
모비스에서 상당한 기대를 걸었지만, 2012-13 시즌 정규리그에서는 썩 인상적인 활약은 선보이지 못했다. 시즌 초반에는 주전으로도 나갔지만, 피지컬에서 한계도 보였고, 대학 시절의 센스 있는 패스도 나오지 못했다. 이 때 붙여진 별명이 시래기, 김시래기로 이전에 모비스에 상위픽으로 지명되었으나, 별 활약없이 SK로 트레이드당한 김학섭[5] 의 전철을 밟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의 시선을 받았다. 이후 점차 적응을 하면서 나아지기는 했지만, 정규시즌에서는 모습은 주전보다는 식스맨에 더 가까운 정도. 다행히 모비스의 전력이 강해서 김시래의 약점이 잘 드러나지 않기는 했지만, 결국 신인상은 최부경에게 내주고 말았다.
그런데 플레이오프에 들어서는 높은 기량을 보였다. 양동근의 뒤를 받치는 가드로서 역할을 충실히 한 것. 특히 챔피언 결정전에서 4경기 모두 나와 30분 넘게 뛰면서 평균 10득점 5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신인답지 않은 준수한 모습을 보이면서 팀의 우승에 한 몫 거들었다. 그러면서 유망주로서의 위상도 다시 회복했고, 이대로면 모비스에서 양동근의 후계자로 육성되겠구나 싶었지만...[6]
2.3. 창원 LG 세이커스
2.3.1. 2013-14 시즌 ~ 2014-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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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3 시즌 모비스는 선수층, 특히 골밑을 보완하기 위해 KBL에서 완벽하게 검증된 골밑 자원인 로드 벤슨을 LG로부터 트레이드 영입했다. 이 때 모비스가 추후에 무언가를 내주기로 한 걸로 발표가 되었는데, 애당초 알려진 것은 3년간(2014년 ~ 2016년) 모비스의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중 1장이었다. 관련기사 그런데 이 때 실제로 합의된 것은 3년 동안 모비스의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중 1장 '''또는 김시래'''였고, 챔프전에서 김시래의 활약이 예상 밖으로 좋은데다가 모비스의 전력 구성상 세 시즌 내에 로터리픽이 걸릴 확률이 적다고 판단한 LG는 김시래의 이적을 선택하게 되었다.[7] 이렇게 김시래는 LG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고, 반대로 모비스는 우승을 위해 1순위 선수를 포기하는 결단을 내린 셈이 되었다.
사실 이 트레이드는 가드를 보는 눈이 정확한 김진 감독의 승부수였고 실제로 김승현을 동양 오리온스 감독 시절 드래프트로 선발한 재미를 보았는데 그 기운으로 영입을 했다.
2012-2013 시즌 챔프전에서 보여준 재능이 과연 이어질지가 관심사였는데, 일단 2013-14 시즌 초반 김시래는 상당한 역량을 보여줬다. 두 자리 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등, LG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완전히 정착한 모양새. 오히려 모비스 시절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정해진 패턴 위주의 유재학식 농구보다는 자유롭게 풀어줬을때 활약하는 김승현, 전태풍 스타일인듯 하다. 4쿼터만 되면 해결사로서 4쿼터의 최강자라는 긍정적인 평을 얻게 된다. 실제로 본인이 밝힌 우상 또한 KBL에서는 김승현이고 NBA에선 크리스 폴이었다. 스타일은 NBA의 슬래셔인 돌파로 패스를 주는 토니 파커와 돌파로 득점을 넣는 데미안 릴라드와 유사하다.
2년간 주장 김영환과 하프 코리안 출신 최고 슈터 문태종 그리고 국가대표 센터로 막내 김종규와 두 외국인들로 테크니션인 데이본 제퍼슨과 포스트 파수꾼인 크리스 매시의 공격지원을 돕는 돌파와 패스로 공격의 물꼬를 터주었고 4쿼터만 되만 최강자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2013-2014 시즌 LG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을 이끈 주역이기도 했다.
2.3.2. 군 입대 ~ 2016-17 시즌 후반기
2014-15 시즌 이후 상무에 입대하여 2년 동안 볼 수 없게 되었다.
LG에서 없어선 안 될 주전 포인트 가드였기 때문에 LG는 성적이 추락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고, 결국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그나마 있던 대체자 유병훈은 불미스런 사건에 휘말려 버렸고, 문태종 같은 주포도 없는 LG는 결국 가장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당연히 2015-16 시즌 세이커스 팬들이 제일 그리워하고 있는 선수가 바로 김시래다.
그러나 2016-2017 시즌 복귀 후에는 상무에서 군복무로 출전하는 바람에 프로적응에 애를 먹으면서 팬들의 기대치에 한참 못 미치는 실력으로 돌아와 팬들의 까임지분을 누적시키고 있다.
충격적인 건 당시 주장 김영환 선수의 충격적인 트레이드와 트레이드 되었던 kt의 주장으로 친정에 버저비터 충격을 주더니 본인도 상무에서 전역하며 자신도 부상속에 적응문제로 인해 자신을 트레이드로 데리고 온 김진 감독의 비극적인 퇴임으로 이어지게 된다.
2.3.3. 2017-18 시즌
팀의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4년을 활약한 현주엽 감독이 2008-2009 시즌 무릎부상 은퇴 이후 8년만에 지휘봉을 잡고 친정으로 돌아왔다. 물론 팀은 04-05 시즌 이후 13년만에 구단 역대 최저성적인 17승 37패로 정규리그 9위라는 충격적인 성적부진으로 인해 빛이 바랬다.
하지만, 이 시즌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냈다.
2017-18시즌부터는 본인이 왜 김종규보다 높은 페이를 받는지를 실력으로 증명해내고 있다. 상무 제대 이후 들쭉날쭉했던 외곽슛이 커리어 하이를 노릴 정도로 핵폭발을 하고 있으며[8] , 정규시즌 우승을 견인했던 2013-14시즌의 퍼포먼스를 달성할 것이 유력해지고 있다. 특히 10월 21일 안양 KGC와의 홈 경기에서는 3점슛 5개 포함 '''28득점'''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며 조나단 블락과 함께 역전승에 크게 기여했다.이 날 경기 30득점 하이라이트
국가대표 차출 전까지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국가대표 차출 후유증 덕분인지 차출 후 5경기에서 부진했다. 하지만 2017년 12월 20일 KCC전에서 20점을 기록하면서 살아났고 2018년 1월 7일 KT전에서는 10득점 5리바운드 13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개인 최다 어시스트, 더블더블을 기록했다. 2018년 1월 25일 KGC전에서 21점 7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LG의 5연패 탈출에 큰 역할을 했다. 2018년 2월 3일 오리온전에서는 11득점 1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자신 최다 어시스트를 기록했지만 팀은 패배했다. 2018년 2월 7일 SK전에서는 16점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4연패 탈출에 큰 역할을 했다. 2018년 3월 1일 DB전에서 21점 10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팀 승리에 큰 역할을 했다.
최종성적은 평균 12.2점 6.5 어시스트로 마무리했으며 경쟁자 헤인즈를 제치고 경력 최초 어시스트왕에 올랐다.
2.3.4. 2018-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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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선수만 농구하는 LG의 현주소에서 김종규와 함께 그나마 팬들의 눈에 띄는 활약을 하고 있다.
3월 10일 오리온과의 경기에서 23m 초장거리 버저비터를 성공시켰다.
3월 24일 창원에서 열린 6강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4쿼터 종료 3초전 극적인 골밑슛을 성공시켜 연장으로 이끌고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현주엽 감독이 새롭게 합류한 용병 그레이에게 많은 기회를 주면서 출장 시간이 짧아지나 했었지만, 그레이의 야투 난조와 독단적인 공격 패턴 때문에 출장 시간이 길어 졌고, 4라운드부터 자신의 기량을 뽐내기 시작한다.
올스타 브레이크 직전 6위로 플레이오프 턱걸이였던 LG를 6연승의 상승세로 이끌며 플레이오프에 진출시킨다. 부산 kt와의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 kt의 허훈을 압도하며 승리를 따냈지만, 햄스트링 부상으로 3, 4차전을 모두 결장한다.
LG는 kt와의 3, 4차전을 모두 패했다. 김시래가 창원 LG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다시 출장한 5차전에서 김종규와 환상적인 호흡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LG는 주전 선수들의 체력난조로 전자랜드에게 스윕패를 당하고 시즌을 마감하게 된다.
2.3.5. 2019-20 시즌
FA로 나온 상황에서 5년 총액 6억(연봉 4억 8천/인센티브 1억 2천)으로 창원 LG 세이커스와 재계약을 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김종규는 원주 DB로 이적하게 되었다.
원래부터 이적은 생각하지 않았지만 구단에서 김종규를 놓친 뒤 급하게 계약을 했던 후문이 있었는데 계약 이후 인터뷰에서 LG를 떠날 마음이 없음으로 김종규를 잃은 팬들에게 그나마 시원한 인터뷰를 했다. 자신을 만들어 준 LG에서 마무리를 약속했다.
하지만, 김종규를 잃은 공백은 컸고 FA 이후 누적된 부상으로 인해 고전하게 된다.
계속되는 햄스트링 부상으로 인해 결장경기가 많아졌다. 야투율은 떨어졌지만, 평균득점 두 자리와 어시스트 2위로 그나마 자존심을 지켰으나, LG는 2년만에 9위를 기록하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추가로 야투율은 KBL 데뷔 이후 가장 좋지 못했다. 필드골은 35.61%였고 3점 필드골은 25.74%로 가장 좋지 못했다. 그 여부와는 다르게 프리드로는 최정상급이었다.
이와는 별개로 2019-2020 시즌 KBL 올스타 게임에서 자신의 이름을 본딴 김시래팀을 구성하면서 부상 중임에도 불구하고 일일 심판으로 나와 팬들을 즐겁게 했다.
이후 두번의 9위로 인해 현주엽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사임한 이후, 자신의 모교인 명지대 스승인 조성원이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새로운 비상을 예고했다. 조성원 감독과 김시래 선수는 무려 18년차이라는 명지대 농구부의 스타 출신으로 알려졌다.
2.3.6. 2020-21 시즌
2020년 KBL 컵 대회에서 1승 1패의 호성적을 거두어 소속팀이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어진 20-21 시즌 개막전에서는 승리했으나, 개막 이후 4연패의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백코트 파트너로 주로 이원대와 뛰는 편인데 이원대에게 볼 운반을 맡기고 자신은 개인 기량으로 득점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모교의 대 스승이신 조성원 감독은 그 동안 김시래의 모습이 볼을 오래 소유하는 모습이었는데 체력문제를 우려하면서, 이것은 김시래 자신의 노련미로 변화를 모색하여 극복할 것을 당부했다.
자신을 만들어주었던 KBL 명장으로 기억된 김진 감독의 경우 과거 자신의 우상이었던 김승현처럼 볼을 오래 소유하면서 자유롭게 했지만 조성원 감독은 다르게 가는 형태다.
즉, 조성원 감독의 현역시절 모습처럼 '붙으면 파고 떨어지면 쏘는' 일명 캥거루와 같은 간단한 움직임을 강조했다.
사실 김종규를 잃은 팀의 사정상 그 이후의 KBL 스탯을 보면 필드골 퍼센트가 점점 좋지 못한면을 볼 때 스크린을 받지 못하는 약점을 감안했는지 조성원 감독은 박경상 선수와 루키 윤원상 선수까지 생각해서 투 드리블 이상은 자제를 당부했다.
어떻게 보면 리더 김시래를 보기위한 하나의 고비인데 팀은 여전히 하위권임을 감안하면 변화는 불가피하다.
2021년 2월 3일, 기사를 통해 테리코 화이트와 함께 창원 LG를 떠나 서울 삼성으로 트레이드 된다고 한다. 트레이드 상대는 이관희와 케네디 믹스. 2021년 2월 4일 오후 2시, 트레이드가 공식적으로 확정되어 서울 삼성으로 이적했다. 김시래의 이적으로 창원 LG는 13-14 시즌 정규리그 우승 멤버들이 모두 팀을 떠나게 됐다.
2.4. 서울 삼성 썬더스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삼성이 LG에게 내걸었던 선수가 이관희였지만, 시즌이 끝나고 5월에 후속 트레이드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 후속 트레이드는 LG의 약점을 메워줄 선수를 삼성이 주고 반대로 삼성은 LG에서 받는 선수가 팀내 활용도가 떨어지는 선수라고 한다.
2013년 LG로 이적할때 25살 이여서 새로운 마음가짐을 갖기 위해 등번호는 25번으로 정했다.
2.4.1. 2020-21 시즌
삼성의 올시즌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주전 포인트가드 자리의 부재[9] 가 김시래가 들어오면서 해결되었다. 주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삼성에서 뛰는 첫경기가 바로 2월 6일 창원 LG 원정경기 이다.
2월 6일 LG와의 원정경기에 앞서 창원실내체육관을 찾은 많은 LG팬들 앞에서 LG구단측과 조성원 감독이 김시래를 위한 고별인사를 할수있게 해줬다.
이후 경기에서는 초반 손발이 안맞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안정적인 리딩을 보여주었다. 다만 야투성공은 부진했던 편이었다. 기록은 4득점 5리바운드 8어시스트. 팀은 역전승을 거두었다.
2월 8일 KCC와의 홈경기에 출장하면서 이적후 처음으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삼성소속으로 경기를 치뤘다. 이날 초반부터 좋은 움직임을 보이면서 팀의 리드를 이끌었으나 4쿼터에 급격하게 무너지는 삼성의 특성을 제대로 막지 못하면서 결국 첫 패배를 당하고 말았다. 그나마 11어시스트를 기록하면서 이번시즌 삼성에서 처음으로 두자릿수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2월 10일 전자랜드 전에서는 4득점 2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개인도 부진하고 팀도 2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2.5.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2016 FIBA 아시아 챌린지에서 성인 국대 첫 발탁이 되었다. 다만 양동근의 부상으로 대체선수로 들어갔고 이 대회에서 팀은 결승까지 올랐으나 본인은 출전기록이 없다.
사실 창원 LG 세이커스 소속에 김종규가 건재한 바람에 신협 상무 농구단 소속으로 대표팀에 승선을 했는데 2019년에는 창원 LG 세이커스 소속으로 대표팀에 승선했다.
2019 FIBA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라운드 뉴질랜드전, 중국전에서 출전명단에 올랐고 뉴질랜드전에서 잠시 한번 교체되어 3분 출전하였다.
2019 FIBA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마지막 2경기인 2라운드 중동원정에서는 각각 시리아전 21분 출전 5득점 2리바 2어시 2스틸, 뉴질랜드전 15분을 출전하면서 7 득점 3 리바운드 2어시스트를 기록하였다. 수비에서는 역시나 우려됐던 국제무대에서의 신장의 절대열세로 인한 좋은 모습을 보였다고는 하기 어렵지만 공격에서는 김종규와의 투맨게임, 뉴질랜드전 야투/자유투 100% 등 괜찮은 모습을 보였다는 평.
포인트 가드에 이미 박찬희, 두경민, 허훈이 건재한 점과 신장 문제 및 수비력으로 인해 2018 아시안 게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이 약점은 이재도도 같은 부분.
3. 시즌별 기록
4. 플레이 스타일
김태술 이후 씨가 말랐던 퓨어 가드로서 데뷔 시즌부터 각광받은 선수. 주특기는 빅맨과의 픽 앤 롤 플레이다. 신장이 작고 웨이트가 그리 좋지 않아 직접 마무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특유의 뛰어난 패스 능력으로 빅맨을 살려주는 솜씨가 탁월하다. 간간이 보여주는 골밑 마무리도 괜찮은 편이다. 포스트에서 1대1 공격을 펼치는 빅맨보다는 스크린 이후의 움직임이 좋은 빅맨과 어울리는 스타일이다. 슈팅 능력도 꽤 괜찮은 편. 시즌마다 기복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균 35% 정도의 3점슛 야투를 보여준다.[10] 수비수 입장에서는 막기가 애매한 선수라 할 수 있다. 다만 앞서 서술했듯이 빈약한 웨이트와 작은 신장 때문에 수비에서 항상 약점을 노출한다. 그나마 국내 가드진이 씨가 마른 KBL에서는 수비 구멍이 덜 드러나는 편이지만 국대 경기에서는 수비 때문에라도 쓰기가 참 애매하다. 그러나 가드로서의 기본 능력치(패스, 슛, 볼 핸들링)가 모두 KBL 탑클래스라 할 수 있으며 김시래를 준다고 하면 마다할 감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 레전드급 시즌이 없다 뿐이지 은근히 꾸준하게 팀을 이끄는 정상급 가드이다.
상술한 플레이스타일과 약한 수비력 등이 은근 NBA에서 뛰고 있는 토니 파커를 연상시키면서 플레이 스타일은 데미안 릴라드와 유사하다. 물론 리그의 갭 차이는 고려해야 한다.
5. 기타
- 디시 농구 갤러리 한정 별명은 앞에 언급된 바와 같이 시래기(...). 정줄놓은 플레이를 할 때마다 가차없이 불려지며, 본인도 이 별명을 알고 있다. 2013-14 시즌에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의 경기에서 가비지 타임에 공을 소유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다가 경기 종료 직전에 버저비터 3점을 작렬시켜서(...)[11] 갤러리 지분을 독차지하며 까이기도 했다.
- 프로 1년차인 울산 모비스 시절, 올스타전에서 여장을 했던 슬픈 과거[12] 가 있다. 게다가 오렌지캬라멜의 '립스틱'에 맞춰 춤까지 췄다! 이름하여, '오렌지 시래멜'. 김시래 여장이라고 연관 자동검색어로 뜨는 바람에 모를래도 모를 수가 없다. 이건 일명 슈퍼스타 김시래였다.
- 2014년 5월 25일에 결혼하였으며, 2017년 8월 8일에 득녀하였다.
- 자신을 스카웃했던 스승인 강을준 감독에게 기억나는 어록이 없냐는 당돌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 1999년 이상민이 현역 시절 KBL 앨범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 뮤직비디오에 나온 이상민의 아역이 바로 김시래이다. 이 둘은 22년뒤에 같은팀에서 감독과 선수로 만나게 되었다.
6. 관련 문서
[1] 2017년 8월 8일생[2] 2019년 12월 10일생[3] 여자농구 최고 센터이자 스타인 박지수 선수의 부친으로 알려졌다.[4] 애초에 상무는 아마추어인 대학농구계와는 달리 프로선수들이 군복무하는 곳이므로, 참가하는 리그는 같아도 대학농구와는 별도의 집단이다.[5] 모비스를 떠나 이적한 후에도 별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며 젊은 나이인 30세에 은퇴해 2012년부터 모교인 전주 남중학교의 코치를 맡아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다.[6] 챔피언 결정전 MVP는 비록 4차전에서 맹폭을 퍼부은 양동근이 가져갔지만, 그 때 양동근의 활약만 아니였으면 김시래가 MVP를 받아도 무방한 상황이었다.[7] 결국 모비스가 이 때 소모되지 않은 픽으로 지명한 선수가 바로 전준범...어찌보면 유재학이 전준범을 양아들 수준으로 공을 들이는 데엔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도 ?[8] 아직 4경기만 치뤘지만 3점 성공률이 무려 58.3%.....[9] 김시래 이적 이전 이 자리에서 뛰던 포인트가드진(김광철, 김현수, 이동엽, 이호현 등)의 평균 어시스트 기록을 다 합쳐도 김시래 한 명의 평균 어시스트 개수를 밑도는 최악의 상황이었다.[10] 다만 이 슈팅 널뛰기가 조금 심해지고 있다.18-19땐 39%에 가까운 3점 야투율을 찍은 선수가 19-20땐 3점 야투 35%는 커녕 야투율 31%,3점 야투율 25%를 찍으며 슛감이 멸망했다.이번 20-21시즌에조 여전이 30%대 야투율을 유지하는 중이다.한 시즌을 제외하면 항상 야투율 40+%,3점 야투율 35+%를 기록한 커리어 초반부에 비해 관록미가 더해진 중반부~전성기에 오히려 슈팅 능력이 기복을 보이고 퇴화하는 부분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11] 보통 승패가 결정된 상태에서 경기 종료 직전에는 이기는 팀이 공격을 하지 않는게 불문율.[12] 당연히 본인은 흑역사로 생각. 인생의 오점이라며 다시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라디오에서 언급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