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수)

 


<colbgcolor=#8147B3><colcolor=#FFFFFF> '''바다
BADA
'''
'''본명'''
최성희 (崔成希, Choi Sung Hee)
'''출생'''
1980년 2월 28일 (44세)
전라남도 완도군 완도읍[1][2]
''' 국적'''

'''신체'''
164cm, 47kg, AB형
'''가족'''
아버지 최세월, 어머니 조복순[3],
1남 2녀 중 막내
'''배우자'''
남편(2017년 결혼 ~ 현재)[4][5]
'''자녀'''
(2020년 9월 7일생)
'''학력'''
시흥 도창초등학교 (졸업)
소래중학교 (졸업)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 / 졸업)
단국대학교 (연극영화학 / 학사)
'''종교'''
천주교 (세례명: 비비안나)
'''소속사'''

'''소속 그룹'''
S.E.S.
'''포지션'''
'''리더, 메인보컬'''
'''데뷔'''
1997년 S.E.S. 정규 1집 I'm Your Girl
'''취미'''
글쓰기, 시쓰기
'''특기'''
남도민요
'''링크'''

1. 개요
2. 어린 시절
2.1. 출생 (1980)
2.2. 도창초등학교 (1986~1991)
2.3. 소래중학교 (1992~1994)
2.5. 가수 준비 (1997)
4. 뮤지컬
6. 수상 경력
6.1. 시상식
6.2. 불후의 명곡[6]
6.3. 기타 방송 프로그램
6.4. 드라마
7. 기타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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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네가 우리나라 첫 번째 걸그룹의 첫 번째 리드보컬이다."'''

이수만

대한민국가수뮤지컬 배우. 3인조 걸그룹 S.E.S.의 멤버이며, '''리더, 메인보컬'''을 맡았었다.

2. 어린 시절



2.1. 출생 (1980)


1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남. 소리꾼이었던 바다의 아버지는 낮에는 창을 하고 남는 시간에는 생계를 위해 경기도 부천시 근교에서 오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려운 형편 때문에 바다를 낳을지 말지 고민이 많았지만 태몽을 꾸고 바다를 낳을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꿈속에서 열린 세계 구렁이 잡기 대회에서 바다 부모님이 한국 대표로 출전해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제치고 제일 큰 구렁이를 잡았는데, 상으로 받은 검은 종마에 부상으로 받은 황금안장을 얹자 말이 백마로 변하더니 어깨에서 하얀 날개가 돋아나와 하늘로 날아가버렸다고 한다. 태몽을 꾼 바다 어머니는 뱃 속에 있는 아이가 정치를 하거나 나랏일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던 바다의 어머니는 갑자기 산통을 느껴 오리를 키우던 근처 비닐하우스에서 바다를 낳게 된다. 주변에 마땅히 도움을 청할 곳이 없던 데다 병원에 갈 시간도 없어서, 동네 할머니가 달려와 산파를 해줬다고 한다. 바다의 아버지는 갓 태어난 딸을 따뜻한 곳에 눕혀야겠다고 생각하고 비닐하우스 안에 있는 오리들의 목을 쥐어뜯어 이불처럼 덮어줬는데[7], 그래서인지 몰라도 바다의 양쪽 귀에는 조그마한 구멍[8][9]이 있다고 한다.

2.2. 도창초등학교 (1986~1991)


바다가 태어난 뒤, 바다 아버지는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부산에서 큰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게 된다. 창으로는 돈벌이가 안 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 사업에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때만 해도 기사가 딸린 차를 타고 다닐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지만, 클럽을 운영하면서 술과 담배 등으로 건강이 안 좋아졌고, 결국 사업 실패와 건강 악화로 가세가 기울면서, 바다가 초등학교 1학년 되던 해 경기도 시흥시 도두머리로 이사를 가게 된다. 바다의 기억에 따르면, 웃풍이 심하고 비가 새는 허름한 집에서 살게 됐지만 집 밖에 나가면 마음껏 뛰어놀 대자연이 펼쳐져 있어서 매일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풍요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한다. 바다의 풍부한 감수성과 넉넉한 마음가짐은 자연과 함께한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듯.
비가 엄청 오는 날에도 산을 넘어서 학교에 다녔는데, 동창들의 증언에 따르면 "바다는 산을 넘어서 학교를 다니는데 하나도 힘들어하지 않고 오히려 산 타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다"고 한다. 또, 겨울이 되면 산에 가서 직접 나무를 해와서 난로를 피웠는데, 다른 여자아이들은 힘들다며 나무를 조금밖에 못해왔지만 바다는 웬만한 남자아이들보다 더 많은 나무를 해왔다고 한다.
옆집에 5,000마리를 키우는 할아버지가 계셨는데, 매일 30마리씩 죽어서 12마리를 묻어준 적이 있다고 한다. 가수 신해철의 노래 <날아라 병아리>를 틀어놓고 꿩들을 묻으며 꿩들이 날아가는 꿈을 그렸다고. 특히 예수님12사도를 생각하며 '꼭 가수가 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며 꿩들을 묻어줬다고 한다.
초등학교 2학년, "성희처럼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보라"는 담임 선생님의 말에 처음으로 자신이 노래에 소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MBC무한도전》 에서 알 수 있듯이 바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넘치는 끼를 주체를 못할 만큼 흥이 넘치는 아이였는데,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지루해 할 때마다 교실 앞으로 나가 마이클 잭슨문워크부터 시작해서 옷걸이 춤, 개그맨 흉내 등 원맨쇼를 했다고 한다. 당시 최고 인기였던 〈회장님 회장님〉의 딸랑딸랑과 〈네로 25시〉의 최양락 흉내를 비롯해 순악질 여사 흉내도 똑같이 냈는데, 늘 까만 테이프를 가지고 다니면서 일자눈썹을 붙이고 남자애들을 바꿔가며 앉혀놓고 "음매 기 죽어~, 음매 기 살어~"를 연발했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바다가 가요계의 요정으로 데뷔하자 동창들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
당시 전교에 반이 2개밖에 없어서[10] 체육대회를 하면 경쟁이 치열했는데, 이긴 반이 진 반 애들한테 약을 올려서 큰 사건으로 번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중 바다가 사건의 발단이 된 일이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말싸움으로 놀리다가 바다가 욱한 마음에 먹고 있던 을 옆반 애한테 던지면서 순식간에 헬게이트가 열렸고, 과자랑 음료수, 실내화, 가방, 빗자루 등등 던질 수 있는 온갖 것들이 날라다녔다고 한다. 또, 한 번은 놀이터에서 뺑뺑이 경쟁[11]이 붙은 적이 있는데, 바다는 "절대 지면 안 된다"면서 뺑뺑이를 돌려댄 바람에 상대편 여자애 1명이 기절해서 나가 떨어진 뒤에야 게임이 끝났다고 한다.
바다가 9살 때부터 바다 아버지의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아예 일을 못할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결국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의사의 말에, 가족끼리 묏자리까지 보러다니게 된다. 죽음을 앞둔 바다 아버지는 물려줄 재산도 없고, 그저 "자식들이 알아서 살아갈 수 있도록 뭐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자식들 중에 재능을 가장 많이 물려받은 막내딸에게 뱃심을 길러주기 위해 매일 아침 바다의 배를 밟고(…) 서있었다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잠도 안 깬 바다의 배 위에 올라가 벽을 짚고 서 있었는데 바다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편찮으시니까 화를 낼 수도 없고 그저 있는 힘껏 배에 힘을 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2~3년이 지나고 배에 힘이 생기면서 나중에는 아버지가 벽을 안 짚고 서 있어도 견딜 만해졌는데, 초등학교 때는 견디는 것만 했고 중학교 때는 그 상태에서 소리내는 연습을, 고등학교 때부터는 그 상태로 창을 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다행히 아버지의 병세는 양약을 끊고 청정한 산과 들에서 나는 풀뿌리와 나물 위주로 식단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낫게 됐다. 그야말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는 상황. 치료비 때문에 집도 없어지고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오히려 아버지가 죽음을 눈앞에 둘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가족간의 사랑이 더 깊어졌고, 바다 어머니가 아픈 아버지를 대신해 식당에 다니면서 돈을 벌었지만 누구도 힘든 티를 내지 않고 식구들끼리 더 아끼고 챙겨주게 됐다고 한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바다네 가족은 성당에 딸려있는 조립식 건물에서 살았다. 치료비를 대느라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집을 얻을 상황이 아니었던 바다네 가족에게, 아버지의 병이 나을 때까지 공소 앞 정원을 관리하며 지내라고 마을에서 건물을 내어준 것이다. 죽음을 앞두고 모든 것을 포기했던 바다 아버지는 병이 조금씩 호전되면서 성당 관리 일을 맡게 됐고, 바다네 가족은 문을 열면 바로 성당을 바라보는 공간에 살면서 새벽에 미사 참례하러 오는 사람들을 위해 성당 문을 열어주고, 성모 마리아상을 닦고, 성당 청소를 하면서 지내게 된다. 이같은 성당에서의 삶은 훗날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에스메랄다 역을 연기할 때 큰 영감을 주게 된다.
바다는 성당에서 사는 7년 동안 매일 3시간씩 한겨울에도 속옷을 짜면 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춤을 추고 노래 연습을 했다. 창, 가스펠, 가요 등 아는 장르는 전부 불렀는데, 특히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와 신승훈의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부르며 비브라토 연습을 했고, 춤은 거울이 없으니까 근처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 성당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면서 췄다. 당시 성당 안에 약수터가 있어서 항상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어떤 여자애가 매일 춤추고 노래를 하니까 "이상한 사람 이 산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고.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잘 안 된다면 하느님이 없다고 오해할 수 있으니까 "제발 믿음을 저버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신만의 무대를 가졌다고 한다.
집에 불쌍한 유기견들이 많았는데, 아버지가 워낙 정이 많아서 버려지고 병든 강아지를 거둬 길러줬다고 한다. 나중에는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성당에 개를 버리고 갈 정도였는데, 고등학교 때는 개를 팔아 학비를 마련했다는 슬픈 사연이 있다.

2.3. 소래중학교 (1992~1994)


중학교 시절, 경기도 48개시의 학교 학생들이 출전한 웅변대회에 나가 1등을 했다. 당시만 해도 웅변은 돈 있는 사람들만 자식에게 시킬 수 있는 전유물로 여겨졌는데, 바다는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매일 같이 연습을 해서 1등을 차지했다. 바다 아버지에 따르면, 각 시에서 리무진을 타고 온 아이들을 제치고 우승 깃발을 받은 건 지금 생각해도 기적같은 일이라고.
중학교 시절 바다의 꿈은 '레크레이션을 지도하는 수녀'였다. 바다 아버지가 가톨릭 신앙에 귀의하면서 온 가족이 신앙 생활을 하게 됐고, 특히 바다 아버지는 바다를 '복덩이'라고 부르면서 수녀원에 보내고 싶어했다. 실제로 바다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3년 동안 수녀회 성소자(聖召者) 모임[12]에 다녔다. 여름방학마다 꽃동네, 천사의 집, 평화의 집을 찾아다니며 아기들을 돌보고, 환자들의 임종을 지켜보고, 할머니 할아버지 똥오줌도 다 받아냈다고. 하지만 안양예술고등학교에서 연극과 뮤지컬을 통해 재능을 발견하게 되면서, 수도자 말고 자신의 길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중학교 시절 한마음문화예술단 정식회원이 됐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를 따라 1달에 1번씩 정기공연을 가졌는데, S.E.S. 5집 활동 당시에는 아버지를 따라 탑골공원에 가서 노래한 적도 있다.
중학교 3학년, 안양예술고등학교 연극영화과에 지원한다. 당시 안양예고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어 경쟁률이 무척 높았는데, 바다가 지원한 해의 경쟁률은 무려 19:1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만 해도 돈이 없으면 예술고등학교를 다니기가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고, 촌동네에서 예고에 진학한다는 것은 연예인 기획사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어렵게 여겨졌기 때문에, 바다가 안양예고를 지원했을 때 다들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이었음에도 뜻을 굽히고 싶지 않아 밤낮으로 연습해 결국 입학시험을 보게 된다.
입학시험에서 바다는 트로트, 가요,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On My Own〉, 창 각각 1곡씩을 불렀고, 연극 《백세개의 모놀로그》에 나오는 대사에 맞춰 자유 연기를 했다. 당시 바다를 면접했던 안양예고 임경완 교감은 바다에게 "아버지는 뭐하는 분이시냐"고 물어봤다. 보통 집안에 대해 묻는 이유는 실력이 아주 없거나 아주 뛰어나거나 둘 중 하나로, 실력이 없으면 돈으로 여기까지 온 건지, 왜 하려고 하는지를 묻는 거고, 실력이 뛰어나면 집안에 내력이 있는지 궁금해하는 것. 이에 바다는 "아버지가 지금은 편찮으시지만 예전에 창을 좀 하셨다"고 답했고, 이에 교감은 "들어오면 잘 할 거지? 열심히 다녀!"라며 그 자리에서 미리 합격에 대한 확신을 줬다고 한다.

2.4. 안양예술고등학교 (1995~1997)


합격생 68명 중 실기 1등으로 안양예고에 입학하게 된다. 동네에 플랜카드가 걸리고 이장님이 돼지까지 잡아줄 정도로 경사스런 분위기였지만, 유독 바다 아버지만 반대했다고 한다. 바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낭랑하고 노래를 잘 불렀던 바다를 유독 예뻐했고, 바다가 예능 쪽으로 재능이 타고난 걸 알고 있었지만 가수가 되는 걸 100% 찬성한 건 아니었다. 재능을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 가수가 되는 게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재능만으로는 안 될 뿐더러 죽도록 노력도 해야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 더욱이 바다를 뒷받침할 수 있는 여건도 안 됐기 때문에, 바다도 바다의 언니처럼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길 바랬다고 한다. 바다한테 대놓고 "먹고 살기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할 정도였는데, 나중에 밝히길 바다는 "예고 등록금이 그렇게 비싼지 몰랐다"고 한다.
바다가 예술고등학교에 가겠다고 한 그 다음날부터, 바다 아버지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삿갓을 쓰고 밤무대를 다니며 민요를 불렀다. 당시 바다 아버지는 위와 폐에 구멍이 뚫린 상태였지만 3남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야간 업소와 지방 행사장을 다닐 수밖에 없었고, 무대 위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진 적도 있다. 당시 바다 어머니는 약 달이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편 몸도 성치 않은 상황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른 사람의 약을 달여야만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바다는 부모님의 걱정을 덜기 위해 학교 생활에 더욱 충실했다고 한다. 바다가 가수로 데뷔하고 난 뒤, 바다 아버지는 혹시나 가족사가 드러나게 되어 마음 고생을 하면 어쩌나 걱정을 했다. 하지만 오히려 바다는 "환경이 힘들었을 뿐이지 마음은 가난한 적이 없었는데, 가난이 뭐가 창피하냐"고 당차게 되묻기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저녁을 못 먹어서 집에 딱 하나 남아있던 라면을 끓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라면을 끓이는 걸로 착각하는 바람에 아버지께 라면을 양보했다고 한다. 라면을 못먹은 마음에 괜히 울쩍해서 집밖에 잠깐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는데 마침 일터에 나가는 아버지가 '오늘은 진짜 나가기 싫다'고 혼잣말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폭우가 쏟아지는 저녁에 일하러 나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아버지도 한 남자고,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폭풍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본인 때문에 밤업소를 다니는 아버지를 생각하니 상업고등학교로 옮겨 돈벌이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 돈으론 가정형편이 나아질 리 없었고, 성인이 되면 아버지에게 힘이 될 수 있으니 그때까지 마음이 약해져선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그렇게 힘들게 돈을 번다는 사실이 자신을 일찍 철들게 한 것 같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늘 학비를 늦게 냈는데 지역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학비를 마련한 적도 있고, 어떤 독지가로부터 후원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학비를 끝까지 못 냈으면 세상을 보는 시각이 어두워졌을지도 모르지만, 성당에 다니는 어떤 분이 무기명으로 두 학기 등록금을 내주면서 그때 세상이 참 따뜻하다고 느꼈다고 한다. 바다는 학창 시절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항상 사회에 보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두산 연강재단을 통해 결손가정 아이들을 돕는 등 후원활동과 봉사활동에 꾸준히 참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양예술고등학교 시절, 공부는 1등을 못했지만 실기는 항상 1등이었다고 한다. 몸으로 연기하고 노래하는 것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재능으로 할 수 있는 건 모두 A+를 받았다고. 안양예고 학내 연극에 많이 출연했는데 주로 서사극이 많았다고 한다. 한 학기에 한 번씩 작품을 올렸는데, 세익스피어 4대 비극부터 한국 고전은 물론이고 《산불》 같은 근대의 작품까지 올렸다고 한다.[13] 매 작품마다 캐릭터 분석을 전투적으로 많이 했는데, 본인만의 방식으로 명작을 분석해보면 이야기가 선명하면서도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나중에는 단편 희곡까지 썼다고 한다. 또한, 연출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바다가 연출한 작품으로는 악극 《울고 넘는 박달재》가 있다고 한다. 바다에 따르면, 연출은 단조로운 이야기 속의 무대 언어를 끄집어내는 과정에서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 같다고 한다. 뮤지컬을 하면서 무대 연기 부분에 있서 나름대로 자신감을 갖는 이유는, 많은 것을 흡수하던 고교 시절 연극에 집중했던 시기를 거쳤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 발로 중심을 잘 못잡는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 깊은 바다에 들어갔다가 모래가 들어가 한 쪽 귀가 안 좋은데, 그때 평형 감각에 문제가 생긴 듯.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려면 평형감각이 필요한데 조금만 열정적으로 하다보면 몸이 자꾸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중심을 잡기 위해 뱃심을 키웠다고 한다.

2.5. 가수 준비 (1997)



고등학교 시절에는 연극배우가 꿈이었다. 많은 스승들이 바다의 재능을 인정해줬고, 연기에 소질이 있다고 말해줬기 때문. 그래서 연극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배우로 데뷔하면 학비를 바로 마련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조언에 따라 가수로 먼저 데뷔하게 된다.
고등학교 1학년 시절, 김건모, 신승훈 등을 배출한 덕윤산업에서 오디션을 봤다. 당시 심사위원 중에는 연습생 신분이었던 가수 홍경민이 있었는데, 바다의 앳띠고 예쁘장한 얼굴만 보고 '또 연예인 되고 싶어 안달난 애가 온 줄 알았다'고 한다. 바다가 준비한 노래는 당시 유행하던 박미경의 하이톤 노래. '노래도 못하는 것들이 높은 노래만 부르면 잘 부르는 줄 안다'고 속으로 혀를 찼는데, 바다의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바다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순간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고 한다. 흔히 전문가들이 말하길 "아무리 천재라도 나이에서 오는 연륜은 넘을 수 없다"고 하지만 바다는 최소한 그 나이 또래에서는 최고 수준이었고, 발성, 음정, 박자에 음색과 테크닉까지 완벽할 뿐 아니라 노래와 끼, 긴장하지 않고 얘기하기 않는 말솜씨까지 충분한 자극제가 됐다고.
1996년 안양예고 연암제에 게스트로 출연하여 머라이어 캐리의 〈Hero〉를 부르다가 SM 캐스팅 디렉터 눈에 띄어 캐스팅된다. 학교 측에서 바다가 무대에 선다는 것을 SM 엔터테인먼트에 사전에 귀뜸해준 결과. 당시 SM에서 걸그룹 리드 보컬을 찾으면서 예고 쪽으로 알아봤는데, 안양예고 학생들이 끼가 많다는 얘길 듣고 "노래 잘하는 친구를 추천해달라"고 했던 모양. 원래는 SM이 아닌 다른 기획사에서 솔로 제의가 들어왔지만, 담임 선생님 뿐만 아니라 교감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 모두 "너는 뭐가 되어도 될 수 있다"며 발벗고 나서 다른 여러 기획사를 소개시켜줬다고 한다. 그러다가 SM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이수만이 "대학교 전액 장학금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다 도와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면서 SM과 계약을 맺게 된다.
SM 오디션에서 장혜진의 〈내게로〉를 불러 합격했다.[14] 당시 바다는 박자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자기도 모르고 발로 박자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가 끝나자 이수만이 말하길 "발라드를 부르면서 박자를 친 소녀는 바다가 처음"이라고 했다고. 바다는 "S.E.S. 활동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수만 선생님이야말로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준 훌륭한 아티스트인 거 같다"고 한다. S.E.S. 시절, 이수만에게 샤데이 앨범을 들고 가서 "이런 노래 부르고 싶다"고 했더니 바다를 보고 함박웃음을 짓더니 2집 앨범부터는 수록곡을 직접 고를 수 있게 해줬다고 한다. 아이돌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가수로서 또 다른 교육을 해준 셈. 뉴욕에서 《Love》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당시, 해가 질 무렵 석양을 받으면서 촬영하고 있는 S.E.S.를 보며 '내가 다시 S.E.S. 같은 그룹은 못 만들 것 같다'는 말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데뷔 15주년 팬미팅에서 바다가 말하길, "당시에는 그냥 한 얘기로 받아들였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시대적 배경이 주는 이미지와 신비로움 등 모든 것이 S.E.S.와 잘 어울린 것 같다"면서 "이후 수많은 여성그룹이 나왔지만 정말 S.E.S. 같은 그룹은 없었던 거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수만은 바다 콘서트 때마다 화환을 보내는 등 애정이 남다른 편.
SM에서 1년 정도 트레이닝 기간을 가졌다. 6개월 정도 지났을 무렵 이수만이 '잠정적으로 너를 리드보컬로 정했으니, 함께 할 서브보컬을 찾아보자'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바다는 연습생 중 마음에 드는 연습생들도 있었고, 당시 한창 미국 3인조 여성그룹 TLC에 심취해있을 때라 3인조를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래서 8개월이 되었을 무렵, 데뷔 짝짓기를 앞두고 "4인조로 가자"는 사장의 주장에 맞서 "3인조를 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고 한다.[15] 사장은 이수만이 미리 바다에게 얘기한 사실을 모르고 "자꾸 이딴 식으로 굴 거면 빠지라"고 말했고, 이에 바다는 "S.E.S.에서 빠지겠다"고 선언한 뒤 연락을 다 끊고 잠수를 탔다고 한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이수만이 노발대발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나중에는 사장이 바다를 거의 모시고 가는 격이 됐다고.

2.6. 단국대학교 (1998)


평소 뮤지컬 쪽으로 장점이 많다고 생각한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지원한다. S.E.S. 데뷔 준비와 함께 입시 준비를 했기 때문에, 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연습을 하다가 숙소로 돌아와서 수능 공부를 했다. 책상 앞에만 앉으면 늘 졸기 일쑤였지만, 유진과 슈가 엄마처럼 챙겨주던 게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한다. 자기들도 피곤할텐데 곧바로 쉬지 않고 수험생 엄마들이 늦은 밤까지 간식을 챙겨주는 것처럼 돌아가면서 과일도 깎아주고 응원을 해주던 게 정말 고마웠다고.
대학교 실기 시험에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Think of me〉를 불렀다. 2009년 MBC 《공감토크쇼 놀러와》에서 밝히길, 당시 필기 성적이 안 좋아서 실기 시험이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영어에 대한 지식이 없고 마음만 급하던 상황에서 유진이 곡의 발음과 해석을 직접 적어주는 등 도움을 줘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도 실기점수 1등으로 입학하게 된다. 이로써 바다는 데뷔와 동시에 S.E.S.에 들어가기 전 간절히 바라던 꿈 3가지[16]를 모두 이루게 된다.
S.E.S.로 데뷔하고 나서도 한동안 찬물로 샤워를 했다고 한다. 숙소에는 따뜻한 물이 나왔지만 집에 계신 부모님이 찬물로 샤워하는 상황에서 자기만 혼자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없었기 때문. 부모님한테 따뜻한 집을 마련해드리기 전까지는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찬물로 샤워하기로 마음먹었고, 결국 S.E.S. 활동을 하고 나서 1년 뒤 부모님께 집을 마련해드린 다음부터 따뜻한 물로 샤워할 수 있었다고 한다.

3. 음반 목록


해체 후 솔로 앨범을 내면서 활동하였고 뮤지컬에도 참여하는 등 S.E.S.의 멤버 중에서 음악적으로는 가장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편. 이런 행보는 라이벌 그룹 핑클옥주현과 비슷한 느낌이기도 하다. 사실상 요즘은 뮤지컬이 주이고 가수는 보조 내지 취미 정도라 봐야 할 듯. 음반 활동을 장기간 쉬고 있는 옥주현에 비해 꾸준히 신곡을 발표해 가수로서의 이미지가 좀 더 남아있는 편. 고정팬도 나머지 S.E.S. 멤버들보다는 훨씬 뿌리가 깊다.

바다 솔로곡 뮤직비디오 목록

4.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 금발이 너무해 등에 출연했고 뮤지컬 배우로 신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의 주인공 강한나/제니로 캐스팅되며 엄청난 흥행을 몰고 왔으며 2009년 더뮤지컬어워드에서 이 작품으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한다. 그녀가 부른 뮤지컬 타이틀곡 'Maria' 는 시원시원한 가창력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덕분에 2011년 2기 공연시에 여주인공으로 다시 캐스팅되는 행운을 안게 된다.
그녀가 여주인공으로 초연하여 우수한 흥행을 거뒀던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의 2011년에 시작된 2기 공연에서 주인공인 '강한별/제니' 역에 배우로 다시 캐스팅되었다. 박규리, 뮤지컬 배우 전혜선과 함께 트리플 캐스팅.
이외에 노트르담 드 파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7], 브로드웨이 42번가, 페퍼민트, 텔미 온어 선데이, 카르멘 등에 출연하였다.
다만 최근에는 뮤지컬 활동이 뜸해진 편이다. 2018년에 출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가장 최근 출연작.

5. 예능 활동




6. 수상 경력



6.1. 시상식


  • 2004년 제9회 바다의 날 - 대통령 표창 수상
  • 2004년 제21회 Korea Best Dresser 시상식 - 가수 부문 베스트 드레서상
  • 2005년 KKC 월드 도그쇼 2005 리브져 킹 우수상
  • 2006년 고뉴스 네티즌 연예대상 여자가수상
  • 2006년 제13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 여자 댄스 부문 가수상
  • 2006년 제4회 Korea Fashion World Awards - 가수 부문 여자 가수상
  • 2007년 한국 모델상 시상식 - 인기 가수상
  • 2007년 중국정부 희망프로젝트 - 10대 공익 스타 시상식 한국대표 공익 스타상
  • 2007년 제5회 LOREAL COLOUR TROPHY - 로레알 디바상
  • 2008년 제2회 더 뮤지컬 어워즈 - 여자 인기상 (노트르담 드 파리)
  • 2008년 제14회 한국 뮤지컬 대상 - 여우 신인상 (노트르담 드 파리)
  • 2008년 제14회 한국 뮤지컬 대상 - 인기 스타상 (노트르담 드 파리)
  • 2009년 제3회 더 뮤지컬 어워즈 - 여우 주연상 (미녀는 괴로워)
  • 2009년 제15회 한국 뮤지컬 대상 - 인기 스타상 (미녀는 괴로워)
  • 2011년 제6회 맨즈헬스 쿨가이 선발대회 - 최고의 가수상
  • 2014년 11월 17일 제6회 Seoul Success Awards - 뮤지컬 대상

6.2. 불후의 명곡[18]


  • 2013년 06월 01일 - 1번째 우승 (소녀시대)
  • 2013년 06월 16일 - 2번째 우승 (나의 옛날 이야기)
  • 2013년 07월 27일 - 3번째 우승 (카츄사의 노래)
  • 2013년 08월 31일 - 4번째 우승 (불티)
  • 2014년 08월 23일 - 5번째 우승 (커피 한 잔)
  • 2015년 09월 19일 - 6번째 우승 (배반의 장미)

6.3. 기타 방송 프로그램


  • 2004년 11월 21일 SBS 도전 1000곡 - MVP 수상
  • 2006년 06월 18일 SBS 도전 1000곡 - MVP 수상
  • 2006년 12월 02일 MBC 창사 45주년 특집쇼 '가요 45주년, 라이벌 쇼! - MVP 수상

6.4. 드라마


2021년 SBS 펜트하우스 2 - 박영란 역


7. 기타 근황


예명이 예명이니만큼 바다와 연을 종종 맺는 가수. 2008년 즈음에는 국토해양부 홍보대사로 활동하기도 했고, 도박관련 사건인 바다이야기와 아무런 관계 없지만 이름이 같아 사람들 입에 오르자 "나도 도박의 억울한 희생자" 라며 횟집 사람들과 더불어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19]
SM의 '열정라인' 하면 대부분 유노윤호, 민호, 수호만 언급되지만, 사실 SM 열정라인의 원조는 바다다. 그만큼 평소에도 흥과 에너지 가 넘친다.
김환성과 생전 절친했는데, 김환성이 사망하기 전까지 중환자실에서 그의 곁을 지킨 유일한 연예인이다.[20] 김환성이 사망하고 몇 개월 후 PC통신에 편지를 남겼는데 '곧 따라가겠다' 라고 말하는 등 괴로운 심정을 드러내기도.
또한 배우 이은주의 절친이기도 했다. 단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였던 둘은 평소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로서 바쁜 와중에도 이틀에 한 번 꼴로 전화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 2005년 2월 이은주가 생을 달리 하였을 때 충격으로 잠깐 쓰러지기도 했었고 제일 먼저 빈소를 찾아 오열하며 자리를 지켰다. 고인이 세상을 등지기 전 날까지 전화통화를 했었던 것으로 드러나 많은 안타까움을 사기도 했다. 발인 때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울면서 불렀다. 또한 생전에 고인과 찍었던 사진과 주고받은 편지들을 모아 고인의 어머니께 전달하기도 하였다. 고인의 사망 1개월 후 연예가중계에서 직접 찾아가서 심경을 물어보자 눈물을 감추질 못했는데 그만큼 고인의 죽음이 큰 충격이었던 듯. 이후에도 이은주의 추모 공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sns에 고인을 언급하는 등 안타깝게 생을 저버린 그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계속 보여주고 있다.
2011년 선배 가수 출신 김태욱이 대표로 있는 SNS 기업 '굿바이셀리' 의 마케팅 기획 팀에 창립 멤버로 입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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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자 KBS 열린음악회 방송분에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음에도 출연해 <You raise me up>을 열창했다.[21] 검색이 잦아 네이버 자동완성으로도 뜬다. 바다 어머니의 빈소를 찾던 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돌아가셔서 주위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솔로 데뷔 당시 10억짜리 목소리 보험에 가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다달이 내야 하는 보험료가 너무 비싸 지금은 환급 받았다고 한다
# 2013년 6월 11일, 케이블채널 QTV ‘20세기 미소년’에서 S.E.S. 활동 시절에 이상형이 젝스키스의 멤버 은지원이라고 밝혔다.
S.E.S. 멤버들 중에서는 최연장자임에도 제일 늦게 결혼했다.
2015년 말에는 광동판 나는 가수다(麥王爭霸)에서 한국 여가수로 참가해 준우승했다.
2016년 5월 28일, 6월 5일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에서 나의 사랑 나의 신부라는 가명으로 참여했으며 1라운드에서 깜찍한 토끼소녀 바니바니와 함께 듀엣할 때부터 이미 정체를 알아챈 시청자들이 많았다. 이번 경연에서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우승도 노려 볼만한 실력이었지만 상대가 너무 강적이라서… 참고로 이 날 그녀는 1라운드에서 걸그룹 후배를 상대했고, 2라운드에선 전 소속사 후배노래를 불렀다.[22]
2016년 9월 24일 오전 8시경, 네이버 뉴스에서 9살 연하남과 열애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 여태까지 있던 열애설과 달리 상대는 일반인이며 사업가이고, 지인이 소개시켜주었다.
2017년 1월 12일 9살 연하의 남자친구와 2017년 3월 23일에 결혼한다고 발표하였다. 프로포즈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면서 받았다고 한다.# 이로써 SES 멤버들 전원이 품절녀가 된 셈이다.
2017년 3월 23일. 마침내 결혼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약현성당에서 천주교식으로 결혼식을 했다. S.E.S. 동료들이었던 유진과 슈의 가족들[23]이수만, 안성기 등 유명 연예인들이 하객으로 참가했다.
2018년 3월 28일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남편의 나이가 9살 연하로 알려졌는데, 실제론 10살 연하라고 밝혔다.
2018년 8월 12일 히든 싱어 5 9회에서 원조 가수로 출연하여 최종 3위로 탈탈 털리면서도 모창능력자들의 노고를 인정하여 감동을 주었다.
2020년 8월 31일, 첫 아이를 임신 중이고 9월중 출산이라고 인스타그램에서 밝혔다.
2020년 9월 7일 오전 서울 모처의 한 병원에서 딸을 출산했다. #
2021년 2월 20일 SBS 펜트하우스 2에 특별출연했다.

[1] #[2] 본인이 직접 언급. 가수 거미와 동향이다.[3] 2011년에 폐암으로 선종.[4] 언론에는 9살 연하 사업가로 소개됐는데, 2018년 3월 28일 MBC 라디오 스타에서 실제론 10살 연하라고 밝혔다. 해투 출연 당시 전현무 왈, 강민혁 닮았다고[5] 키가 무려 189cm라고 한다.[6] 불후의 명곡에서 최종 우승을 한 우승자에게는 별도의 불후의 명곡 트로피가 수여된다.[7] 오리의 몸에서 가장 깨끗한 부위가 턱 바로 아래 털이기 때문[8] 바다 아버지는 이 구멍을 가리켜 오리 콧구멍이라고 부른다고 한다.[9] 그런데 사실 이건 태아 때 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피부가 덜 아물어서 남는 구멍이다. 인종적으로 발생 빈도 차이가 있으며, 작은 건 지장이 없지만 크면 고름이 차거나 할 수 있어 간단한 수술로 밖으로 열린 부분을 없애야 한다.[10] 80년대 말은 서울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에서 한 학교에 10여개의 학급이 기본이요 교실당 60명이 넘는 학생이 우글거려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하는 등, 콩나물시루 과밀학급이 문제가 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에 반이 둘 뿐이었을 정도의 시골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이 때는 시흥시가 아니라 시흥군이었다.[11] 뺑뺑이를 돌려서 안에 타고 있는 상대방 애들을 떨어뜨리는 놀이[12] 수도자가 되고 싶은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위해, 수도회에서 운영하는 모임. 대개 1달에 1번 모임이 있고, 이 모임에 꾸준히 참석해 보면서 수도회 입회 여부를 결정한다. 이전 버전에는 '예비 수녀 수련'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실제 가톨릭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수련'은 입회 후에 시작된다. 자세한 이야기는 수도회, 수도자 참조.[13] 3학년 마지막 작품은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14] 이후 솔로 3집에서 이 곡을 리메이크하여 수록하게 된다. 본인으로서는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도 같은 곡이라 특별하게 생각하는듯 하다.[15] "TLC도 3인조이고, 3인조여야 팀워크가 좋은 데다가, 삼각구도가 좋기 때문에 피라미드도 삼각형으로 지어진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쳤다고.[16]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는 것, 가수로 데뷔해 학비를 버는 것, 가수로 성공해서 그 대학의 축제 무대에 서는 것[17] 여기서 같이 출연한 후배가 소녀시대서현인데, 이때의 친분을 계기로 임신 중이라 무한도전 특집 토토가에 참여하지 못한 유진을 대신해 서현이 함께 무대에 섰다.[18] 불후의 명곡에서 최종 우승을 한 우승자에게는 별도의 불후의 명곡 트로피가 수여된다.[19] "바다이야기가 검색어에 오르내려서 내 얘기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도박 얘기였다"는 해프닝을 라디오에서 한 적이 있다.[20] NRG 멤버들은 제외한다.[21] 모친이 2월 19일 선종하셨으니, 일반적인 3일장을 치를 경우 발인 직후 22일 녹화에 참여했다는 소리. 그리고 그 방송에서 노래가 끝난 직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고.............[22] 특별생방송까지 넓히면 달아 달아 목소리가 달아가 진짜 여성 아이돌 최초 준우승자며 우승자인 낭만자객과 동일인물이다.[23] 다만 라둥이들은 유치원에 가는 바람에 참석을 못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