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셀러스트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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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될 당시의 메리 셀러스트 호를 묘사한 판화
1. 개요
2. 사건의 전조
3. 사건 발생
3.1. 배의 발견
3.2. 배의 상태와 의문점
3.3. 진상조사
4. 사건 이후
5. 가설
6. 미디어에서
6.1. 소설
6.2. 만화
6.3. 드라마
6.4. 영화
6.5. 방송
6.6. 게임


1. 개요


배 이름은 Mary Celeste[1]인데 80년대 일본서적을 번역한 서적에선 마리 세레스트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나왔다. 브리건틴 형식 범선. 지금도 메리 셀레스트, 메리 셀레스테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세계 역사상 가장 유명한 희대의 선박 유령선 미스테리 사건. 아직까지도 그 의문이 풀리지 않아 많은 창작물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2. 사건의 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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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셀러스트 호의 처음 이름은 '아마존 호'였으며, 군함이나 어선이 아니라 처음부터 무역선으로 건조된 범선이었다.
는 1861년에 캐나다노바스코샤 주의 스펜서 섬에서 조슈아 듀이스(Joshua Dewis)에 의해 건조되었다. 첫 번째 선장 로버트 맥렌런은 소유주 중 한 명의 아들이었는데, 임명된 지 9일 만에 폐렴에 걸리고 첫 항해에 나서자마자 죽었다.[2] 다음 선장인 존 너팅 파커는 어선을 들이받았고, 수리를 위해 항구로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수리 중 배 가운데에서 화재까지 일어났다. 캐나다에서 유럽으로 가는 첫 대서양 횡단 항해 역시 재앙 그 자체였는데, 영국의 도버 해협에서 다른 배와 충돌하고 결국 새 선장은 해임되었다.
시작은 좀 불길했지만 아마존 호는 노바스코샤의 소유주들 하에 6년간 이윤을 남기며 순탄한 항해를 했다. 이 동안 서인도 제도, 중앙 아메리카남아메리카를 왕래하며 다양한 종류의 화물을 운반했다. 1867년 폭풍으로 배가 좌초되었다가 구조받았다. 그 후 뉴욕의 리차드 하인즈가 1750달러에 사서 8825달러를 들여 수리하였다.
1868년 미국 선박으로서 등록되고, 그 다음 해 '메리 셀러스트'로 개명되었다. 소유권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은 J.H.윈체스터[3]였는데, 배에 관련된 저주를 의식해서인지 배의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배의 밑 부분 일부가 썩어있는 것을 보고 뱃바닥 부분에 구리판을 깔고 갑판의 선실을 길게 하는 등 배를 튼튼하게 개조했다. 이로 인해 배는 마스트 2개, 길이 103피트, 폭 25피트, 288톤급에 다다르는 대형 선박이 되었다.
이렇게 아마존 호는 메리 셀러스트 호란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후 경험이 아주 풍부한 벤자민 브리그즈 선장이 메리 셀러스트 호의 선장으로 임명되었다. 메리 셀러스트 호는 알코올 원액을 잔뜩 싣고 제노바까지 갈 계획이었다. 1872년 11월 7일 브리그즈 선장의 지휘 아래 메리 셀러스트 호는 뉴욕을 출항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메리 셀러스트 호는 제노바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에 사람들은 메리 셀러스트가 재난으로 침몰했거나 해적에 나포되었으리라고 생각했다.

3. 사건 발생



3.1. 배의 발견


메리 셀러스트 호가 출항하고 한 달이 지난 1872년 12월 4일[4] 대략 오후 1시경, 영국 상선 디 그라티아 호[5]조타수 존 존슨은 아조레스 제도와 포르투갈 사이의 북대서양에서 마스트 2개를 단 수상쩍은 범선 한 척을 발견했다. 디 그라티아 호의 위치는 대략 북위 38°20′, 서경 17°15′, 포르투갈에서 천 km 정도 떨어진 곳이었고, 그 배는 8 km 정도 디 그라티아 호로부터 떨어져 있었다. 배는 좌우로 약간씩 흔들리며 움직이고 있었는데, 뱃머리의 삼각돛대와 앞 돛대의 스테이 세일만 펼친 기이한 모습으로 달리고 있었다. 배에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이상한 모습이다. 아무리 신호를 보내도 그 배는 대답하지 않았는데, 그 배는 바로 메리 셀러스트 호였다. 참고로 디 그라티아 호의 데이비드 모어하우스 선장은 메리 셀러스트 호를 알고, 브리그즈 선장과 개인적으로 술도 마신 적이 있었다. 자기 배보다 앞서서 출발했기 때문에, 모어하우스 선장은 메리 셀러스트 호가 어째서 아직까지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했다.
선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들은 366 m 정도까지 접근하여 2시간 동안 배를 세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배는 항해 중이었지만 우현 방향으로 불안정하게 항해하고 있었고, 천천히 지브롤터 해협 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조타석이나 갑판에 아무도 없었고, 선원들은 배가 표류 중이라고 결론지었다.
디 그라티아 호의 일등항해사 올리버 데보(Oliver Deveau)는 선원 몇몇을 이끌고 메리 셀러스트 호에 올라탔다. 데보는 배에 아무도 없으며, 배 전체가 완전히 젖어 엉망인 상태라고 보고하였다. 갑판들 사이에는 물이 고여있었고 화물칸에는 물이 1.1 m 높이로 차 있었다. 작동 가능한 물 펌프가 하나 있었고 다른 2개는 분해되어 있었다. 구명정 1척이 사라져 있었으며, 선원들이 매우 급하게 배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어쨌거나 배는 가라앉고 있지 않았으며 항해가 가능한 상태였다.

3.2. 배의 상태와 의문점


메리 셀러스트 호는 상당한 양의 이 차 있었지만 여전히 항해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물 펌프 3개가 꺼내어져 있었는데, 2개는 분해된 상태었고 하나는 발견된 순간까지도 작동이 가능한 상태였다.
선장의 항해일지를 제외하면 모든 서류가 사라져 있었고, 항해일지는 11월 25일까지만 기록되어 있었다. 배의 시계는 고장나 있었고, 나침반은 부서져 있었으며 육분의와 경선의[6]가 사라져 있었다. 배의 유일한 구명정(yawl, 작은 돛단배)도 사라져 있었다. 배의 주 돛을 올리고 내리는 밧줄(peak halyard #)도 없었고, 밧줄 하나[7]가 배에 아주 단단하게 묶여 있었는데, 밧줄 반대쪽은 물에 드리내려져 배 뒤쪽을 따라오고 있었는데 그 끝이 매우 헤져 있었다.
화물인 알코올 통들은 그대로 있었지만, 그 중 9통은 비어 있었다. [8]
선원들의 개인용품들이 그대로 남았으므로 해적들이 노략질을 했을 가능성은 극히 적어 보였다. 싸움이나 폭력의 흔적 또한 발견되지 않았다.
어쨌든 메리 셀러스트 호는 11월 25일 이후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감쪽같이 사라진 채 열흘 넘게 유령처럼 표류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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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스푸너 브리그즈 선장
아내 사라
딸 소피아
메리 셀러스트 호에는 브리그즈 선장과 선원 7명 외에 선장의 아내 사라와 2살 된 딸 소피아 마틸다도 타고 있었다. 모어하우스는 그들이 배를 포기한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난감했다. 데보 일등항해사는 디 그라티아 호에 두 선원을 파견하여 메리 셀러스트 호를 지브롤터로 인도할 것을 제안했다. 모어하우스는 아무래도 기분이 불쾌해서 메리 셀레스트 호를 놔두고 가려고 했지만, 데보가 조난당했어도 멀쩡한 배를 예인해오면 최대 5천 파운드[9]라는 큰 돈을 보상금으로 받을 수도 있고, 이 배를 그냥 놔두고 가면 나중에는 큰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조언을 하자 모어하우스 선장은 내키지는 않았으나 그의 말에 동의하여 배를 예인했고 6일 후, 지브롤터에 입항했다. 영국의 관료는 메리 셀러스트 호를 즉시 억류했고 즉시 메리 셀러스트 호 수사에 들어갔다.

3.3. 진상조사


처음에는 선장과 선주가 배에 걸린 보험금을 노리고 한 자작극이라고 생각했다. 모어하우스 선장과 브리그즈 선장은 서로 친한 사이였고 출항 전날 뉴욕에서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자작극 혐의는 곧 풀렸다. 그렇게 자작극을 한다고 하더라도 배를 팔아서 오는 이득보다 더 돈을 못 벌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자작극이라도 그렇게 사람들이 귀신 같이 없어질 수는 없었다. 또한, 미국과 영국의 항구에 브리그즈 선장 일행에 대한 수배령이 내려졌지만 그들의 흔적은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었다.
당시 조사관 중 한 사람은 메리 셀러스트 호는 디 그라티아 호와 만나서 가볍게 술자리를 나누다가 싸움이 벌어져 살해당했으며, 디 그라티아 호 선원들이 시체들을 바다에 처넣고 우연히 만난 것으로 위장했다는 주장을 고집했다. 물론 디 그라티아 호 승무원들 측은 분노했고 증거를 제시하라고 반발했다. 그 어디에도 격렬하게 싸운 흔적도 없었고 모어하우스에 대한 수사에서도 돈이 그리 급하지도 않았으며 빚도 없는 게 드러났다. 결국 디 그라티아 호 승무원들이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결론났다. 하지만 디 그라티아 호를 범인으로 의심하던 조사관은 죽을 때까지 그 의심을 버리지 않았기에 디 그라티아 호 승무원들은 그 조사관을 죽도록 싫어했다고 한다.
그 다음은 다국적으로 이뤄진 선원들이 각자 국적에 따라 다툼이 벌어져 반란이 있던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선원 7명은 독일인 4명, 덴마크인 1명, 미국인 2명이었다. 가장 수가 많은 독일인들이 의심받았지만 조사 결과 선원들의 반란 가능성은 역시 없었다. 발견 당시 도끼 자국과 더럽혀진 칼, 약간의 혈흔이 발견되었지만 혈흔은 정말 약간이라 반란이 있었다고 보기는 힘든 수준이었고, 특히 내부가 매우 잘 정돈되어있어, 그 어떤 반란의 가능성도 생각할 수 없었다.
몇 달간 수사 끝에 결론이 나왔다. '''불명'''. 즉 '''"도저히 알 수 없음"'''이었다. 이렇게 '원인불명'의 미제사건이 선상사고로 일어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편 선주 측은 보험사를 통하여 구조비로 5천 파운드를 모어하우스 선장 일행에게 지불했다.

4. 사건 이후


그 이후 메리 셀러스트 호에 탔던 선장과 선원, 선장의 가족들은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J.H.윈체스터는 사건 이후 배를 처분할까 고민했는데, 메리 셀러스트 호가 미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아버지인 헨리 윈체스터 빈터즈가 미국 보스턴에서 익사 사고로 죽는 것을 보고 메리 셀러스트 호를 처분하기로 결심을 굳히고 배를 엄청난 헐값에 넘겼다. 그 뒤로 13년 동안 선주는 무려 17번이나 바뀌었고 그 때쯤 되어서는 배의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메리 셀러스트 호의 마지막 선장 길먼 C. 파커는 메리 셀러스트 호를 운항해서는 도저히 이득을 남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이 저주받은 배를 보험사기의 희생물로 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메리 셀레스트 호의 저주는 아직 계속되었으니... 파커 선장은 부츠나 고양이 사료 같은 잡동사니에 과도한 보험을 붙여 배에 가득 싣고 고의로 배를 암초에 부딪히게 만들었지만 결국 침몰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애매하게 부서져서 항해만 곤란하게 되어버린 메리 셀러스트 호에 이번에는 을 질러 보았지만 '''타고 남은 잔해마저도 꿋꿋하게 물에 떠 있었다'''.
결국 파커 선장은 있지도 않은 화물을 더 추가해서 터무니 없는 보험을 신청했는데 그만 덜미가 잡혔다. 파커는 500달러에 인양권을 팔았고, 다른 여타 물건들과 함께 술 125통, 청어 957통, 1천 달러 상당의 식기류가 적하되어 있었다고 주장하였다. 배와 적하는 보험회사 5곳에서 3만 4천 달러 상당의 보험에 들었다. 당시 외양에서 선박을 고의로 침몰시키면 교수형이었고, 증거가 명백한 상황이었지만 파커 선장의 재판은 제자리 걸음만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배심원단 12명 중 5명은 사람을 사형대에 올려 죽이기를 주저했기 때문이었다. 사형이라는 중형 때문에 당시 이런 범죄에 대해서는 배심원단이 유죄를 선언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파커 선장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결국 3개월 후에 사망했다.
이후 메리 셀러스트 호는 도저히 수리할 수 없는 상태라는 진단을 받았고, 1923년 바다에서 스스로 침몰할 수 있도록 해안에서 떠내려 보냈다.
이후 미국에서는 아이티 앞바다에 가라앉았다고 추정한다.

5. 가설


이 사건을 두고 상당히 많은 가설이 있으며, 이 위키에 적힌 가설들은 그 일부다.
  • 밧줄 하나가 단단하게 배에 묶여져 있었고 반대쪽 끝이 심하게 해진 상태로 물에 담긴 채 배에 끌려가고 있었으며, 배의 유일한 구명배가 사라졌기 때문에, 선원들이 어떠한 응급사태를 맞아 밧줄로 선체에 묶은 구명 보트로 옮겨 타 피신을 했다가 밧줄이 끊어진 것이라는 가설이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배가 최속력으로 항해한다면 그 힘에 의해 밧줄이 끊어질 수 있다. 이 가설은 2008년 한 TV 다큐멘터리의 조사에서 상세하게 다뤘다.
  • 빈 드럼통 9개와 관련지어 화물로 실은 알코올이 폭발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현재까지로는 가장 설득력이 높은 가설이다. 붉은 오크로 만든 드럼통은 흰 오크로 만든 드럼통보다 액체를 쉽게 머금고는 하는데, 메리 셀러스트에서는 알코올 원액을 머금어 버렸다는 것이다. 혹은 오크통에서 기화한 알코올이 점점 새어 나와 화물칸을 가득 채웠으리란 의견도 있다. 그리고 나서 드럼통을 유지하는 철제 밴드가 서로 부딪히면서 마찰로 인한 순간적인 스파크를 만들어내어 이 알코올을 점화시키면서 폭발했다는 논리. 실험에 의하면 에탄올은 워낙 낮은 온도에서도 불이 붙기 때문에 드럼통을 전혀 그슬리지 않고도 폭발할 수 있다고 한다(Wiese, 2005). 영문위키 참조 이 굉음을 듣고 브리그스 선장이 아, 배가 폭발하는구나!하고 사람들을 대피시켰으나, 메리 셀러스트는 멀쩡하게 손을 살랑살랑 흔들며 떠나갔다는 슬픈 이야기. 혹은 오크통에서 기화한 알코올이 점점 새어 나와 화물칸을 가득 채웠고, 화물칸을 열어본 선원들이 뿜어져 나오는 가스 연기와 스파크에 놀라 배가 곧 폭발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황급히 구명배로 옮겨 탔다는 것이다. 당연히 구명보트에 탄 탑승자들은 그대로 망망대해 위에서 죽었을테고...
  • 2007년 스미소니언 TV 다큐멘터리에서 설명한 시기상조 배 포기론도 있다. 심한 폭풍우를 만나 배에 물이 들어차기 시작하고 물 펌프 3개를 돌려 물을 빼기 시작했는데, 펌프 2개가 이물질[10]에 막혀 고장이 났다. 이렇게 하면 물 펌프 2개가 분해되어 있었던 점을 설명할 수 있다. 물 펌프가 하나만 동작하고 있었기에 육안으로는 선체에 물이 얼마나 들어차 있었는지 판단하기가 어려웠고, 결국 배를 포기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구명선에 옮겨타 산타 마리아 섬을 향해 나아갔지만, 결국 구명배가 가라앉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선장의 경선의가 늦게 가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실제 위치에서 보다 훨씬 동쪽에 배가 있다고 오판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서는 마지막 5일의 선장의 일지에 따른 배의 이동 경로를 제시하고 있다.
  • 사고설도 있다. 메리 셀러스트 호 선장의 딸은 돌고래 구경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메리 셀러스트 호에도 선장의 딸이 돌고래를 구경할 수 있는 또다른 갑판을 배의 외곽에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나온 가설로 배의 모든 사람들이 그 위에서 돌고래를 구경하다가 갑판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서지면서 전부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이 가설도 구멍이 있는 게 아무리 돌고래가 신기하다고 배의 모든 사람이 갑판에서 구경을 할 만큼 정신줄을 놓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대다수의 반론이다. 관광 크루즈도 아니고 대다수 선원들이 돌고래를 어디 한두번 봤겠는가? 웬만한 긴급 상황이 아닌 이상, 당직을 서느라 위치를 벗어나지 않는 상선사관들과 선원들은 꼭 있다.
  • 또 다른 가설로 자메이카에서 1916년 어느 선원이 목격한 일화인데, 자신이 메리 셀러스트 호의 선원이란 노인을 어느 술집에서 만났다는 것이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메리 셀러스트 호는 항해하던 11월 말에 표류하던 어느 배를 발견했는데, 그 배에 있던 사람들은 병으로 다 죽었고 배 안에는 금괴가 가득 있었다는 것이다. 어림잡아도 몇 톤이 넘을 듯한 엄청난 금괴라서 선장과 선원들은 나눠 가지면 엄청난 돈이 될 테니 다들 그 금괴를 나눠 갖고자[11] 메리 셀러스트 호에서 내렸고, 그 배를 타고 가고자 메리 셀러스트의 화물인 알콜을 뜯어 소독했다는 것이었다. 실제 메리 셀레스트 호의 화물인 알콜 중 9통은 뜯겨져서 내용물이 비어있었다. 하지만 금괴가 가득 실린 배에 소독만 하고 먹을 것이나 물은 죄다 놔두고 갔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노인은 배에 먹을 게 통조림밖에 없었고 물도 밀봉되어서 한동안 견딜 수 있었기에 차라리 메리 셀러스트를 포기하고 다 탔다고 한다. 그리고, 그냥 정체 모를 일로 사람이 사라지게 대충 꾸미자며 메리 셀러스트 호를 놔두고, 항해 도구들과 구명정을 챙겨서 빠져나간 뒤 각자 금괴를 나눠 가지고 흩어졌다고 하였다. 당연히 40년이 지나도 워낙에 유명한 이야기라서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은 자메이카에 있던 뱃사람들이 가득한 술집에서 모르는 이들이 없었으므로, 선원은 그 노인의 이 이야기를 듣고 웃으며 "그럼 40년 넘게 당신은 뭘 하고 지냈느냐?" 하고 물었다. 노인은 "알 것 없다." 하고 답하며 그냥 나갔고 다시는 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이 가설도 신빙성이 나름 있다. 금괴를 가지고 나르던 밀수선도 있었으며, 금괴 밀수선 승조원이 전염병으로 전멸해 배가 바다 위를 떠돌다가 프랑스 해군이 발견한 사례도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 확실한 결론은 아니다.
  • 그 밖에 1953년 북중미 어느 무인도에서 표류하던 프랑스 국적 선원들이 에서 해골을 발견했는데 해골의 헐거워진 옷에 꽂힌 이름표에 '벤자민 브리그즈'라는 이름이 쓰여서 또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진짜인지는 누구도 확증할 수 없었고, 진짜라고 해도 그 벤자민 브리그즈인지는 알 수 없다.
그 외에도 식량으로 실었던 에 핀 곰팡이가 승객들의 환각을 유발시켰다는 설, 해적들, 특히 바르바리 해적들이 그들을 습격했다는 설[12]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 UFO외계인에 의해서 납치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먹을 것이나 물을 죄다 두고 사라졌으니 외계인이 납치했다는 것이지만 말 그대로 SF 소설에 불과한 이야기다.
80, 90년대 일본 책자를 중역한 괴담집에서는 더 덧붙여져서 메리 셀러스트 호에는 조리하다가 주방담당이 뭔가 급한 일이 있는지 조리하던 도중에 갑자기 놔두고 사라진 것인지 조리하고 있던 음식이 그대로 주방에 남아있었다는 것. 그리고 면도하다가 급한 일이 있어 나간듯이 수염이 엉겨붙은 채로 남은 면도날도 욕실에 있었고 항해일지에는 브리그즈 선장이 급하게 갈겨 쓴 "아내 사라가....."라는 부분이 마지막이었다는 내용이 있기도 했다.

6. 미디어에서



6.1. 소설


심령술과 각종 미스테리 현상에 깊이 심취했던 코난 도일이 해당 사건을 모티브로 저서한 단편 소설. 여기서는 백인에게 학대받으며 자라 백인종 자체를 증오하게 되어 20여 년간 은밀히 백인들을 살해해온 혼혈인이 흑인 선원들과 짜고 배를 북아프리카 해안지대로 끌고 간 다음 백인 선원들을 살해하고 텅 빈 배만 흘려보낸다.
  • <장닭호 모험>
존 메이스필드의 소설. 블랙 곤트레드 호가 사고로 침몰하면서 구명보트로 옮겨탔던 승조원들이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는 장닭호를 발견하고 넘어가는데, 이 배의 상황이 메리 셀러스트 호와 거의 똑같다. 승조원들은 물이 다소 차긴 했지만 그 문제를 해결하면 항해가 충분히 가능했던 장닭호를 타고 본국으로 돌아왔고, 조사 과정에서 장닭호 선장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서 배를 버렸다는 결과가 나왔다는 조금 맥빠지는 엔딩. 쌓아올린 긴장감에 비해서 굉장히 허술한 엔딩이다.

6.2. 만화


소년탐정 김전일 소설판 2권의 사건. 메리 셀러스트호 사건을 배경에 깔고 이야기를 진행한다.
  • '별이 있는 레스토랑의 수수께끼'
명탐정 코난 애니메이션편 방영분에서 이 사건이 언급된다.

6.3. 드라마


영국의 유명 SF 드라마 닥터후에서 1965년 6월 5일 방영된 "Flight Through Eternity"에서는 닥터 일행을 쫓아온 달렉들을 본 선원들이 겁을 먹고 바다로 뛰어들었다고 나온다.

6.4.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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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에 만들어진 영국 괴수영화 워로즈 오브 아틀란티스에선 1890년대가 배경으로 나오는데, 메리 셀러스트 호 승무원들이 바다 밑에 있는 아틀란티스 제국에 납치되어 노예로 일하는 게 나온다. 한국에서는 '환상의 섬 아트란티스'란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왔다. 배우들 연기나 줄거리는 허접하지만 수공업으로 만든 괴수들이 상당하며, 무엇보다 여러 괴수가 많이 나오기에 괴수물 매니아들에게는 명작으로 호평받는다.

6.5. 방송


서프라이즈 2012년 12월 23일 방영분에도 관련 에피소드가 나왔는데, 여기선 보험사기와 위의 가설들을 싸그리 씹어먹고 억울하게 죽은 흑인 노예가 이 배에 저주를 걸어 사고를 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는 아서 코난 도일이 '콘힐'이라는 잡지에 '제이 하버쿡 젭슨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당시 메리 셀러스트호의 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이 이 소설을 사실로 믿어 백인을 증오하던 흑인이 배를 탈취한 것이라는 소문이 널리 퍼진 데서 따온 듯하다.
그런데 서프라이즈는 2002년 9월 15일 역시 관련 에피소드를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방영한 내용의 위의 내용과 완전히 다르다. 당시 방송에 따르면 메리 셀러스트 호에는 한 사람이 더 타고 있었다고 한다. 전체적인 내용은 위의 사고설을 차용했는데, 다른 점은 역시 딸을 위해 전용 갑판을 만들었고 선원 두 명이 수영 시합을 벌이는 것을 구경하다가 갑자기 상어떼가 나타났고, 당황한 사람들이 전용 갑판으로 모였다가 갑판이 부서져 떨어져서 상어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한 사람이 살아남아 죽기 전에 그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 이 설은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나온 세계상식백과라는 책에서 제기된 것이다. 그 책에서는 이 설이 아벨 포스디크라는 알려지지 않은 생존자의 증언이라고 한다. 이 설은 책에 따르면 1913년에 런던에서 제기되었다고 한다. 앞에 나온 또 다른 생존자의 증언이 나온 것과 비슷한 시기의 일이다. 다만 책에서는 증언에 오류가 있음을 들며 신빙성이 낮다고 본다.
즉 같은 방송이 같은 사안을 다루었는데도 전혀 다른 소리를 했다. 서프라이즈 문서를 참고하면 알겠지만 원래 이런 것으로 유명한 프로그램이니 과신은 하지 말자.

6.6. 게임


시간대와 배경이 메리 셀러스트 호 사건과 거의 흡사하다. 게임의 주인공이자 플레이어는 동인도 회사 런던 사무실의 손해 평가사로서 보험 업무를 위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러 오브라 딘 호에 파견된다.
본 유령선을 모티브로 한 '셀레스트(セレスト)'라는 암 속성 성정수가 등장한다. 낡은 기공정에 얼굴처럼 생긴 구멍이 뚫려 붉은 빛이 새어나오는 형태로, 선수에 여성 형태의 상이 붙어있다. 독기로 이루어진 안개를 내뿜고 다니며, '만난 상대의 죽음을 빼앗는 능력'이 있어 메인 스토리에서는 이 성정수에 의해 주민들이 모두 언데드가 된 마을이 등장한다. 이후 토라몬드 섬을 찾아온 주인공과 그랑사이퍼 일행에 의해 물러나며 해결되었다. 애니판에서는 시즌 2에 등장.

[1] 건조 당시에는 아마존 호라 불렸다.[2] 배에 올라탔다 죽은 선장이 총 3명이나 된다.[3] 오늘날에도 뉴욕에서 해운업을 하고 있는 회사의 창업주다.[4] 몇몇 기록에서는 5일, 해양시로 따지면 4일과 동일.[5] 데이 그라티아(Dei Gratia):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abandoned-ship-the-mary-celeste-174488104/[6] 經線儀, 크로노미터Chronometer. 항해용 정밀시계[7] 앞서 말한 peak halyard일 수도 있다.[8] 그 9통은 붉은 오크 나무제, 나머지는 흰 오크 나무제였는데, 붉은 오크로 만든 통들은 투과성이 강하기에 알코올이 휘발하여 가스가 밖으로 나오기 쉽다.[9] 2018년 5월 한국돈 값어치는 3460만 원 정도이지만 1872년 기준으로는 10억 원 이상이다. 물론 무조건 5천 파운드를 주는 건 아니고 배의 손상유무에 따라 보험회사에서 내주는 돈이 차이가 있는데, 메리 셀러스트는 배가 조금만 고치면 될 정도로 멀쩡한 수준이라 5천 파운드를 받았다고 한다.[10] 이전 화물에서 흘려져 나와있던 연탄 가루나 공사 후 남은 나무 조각 등. 바로 이전에 연탄을 싣고 있었고 최근에 배를 완전히 뜯어고친 적이 있었다.[11] '그냥 금괴만 가지고 오면 되지 않느냐?' 하겠지만 메리 셀러스트 호는 선주가 따로 있다. 항구에 오면 화물조사를 하니 당연히 이 금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12] 그러나 바르바리 해적 자체는 19세기 초 미국 등 서구 열강들의 대대적인 공세와 1830년 프랑스의 알제리 점령으로 거의 사라진 상태인 데다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선박 상태가 상당히 깨끗한 편이라 신빙성은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