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키츠 네비스

 

[image] '''세인트키츠 네비스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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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키츠 네비스'''
'''Federation of Saint Kitts and Nev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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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image]
국장
'''면적(㎢)'''
262㎢ [1]
'''인구'''
54,190명 (2013년) [2]
'''수도'''
바스테르 (Basseterre)
'''시차'''
UTC-4
'''화폐 단위'''
동카리브 달러 (XCD)
'''정치 체제'''
영연방 왕국, 입헌군주제, 내각책임제
'''군주'''
엘리자베스 2세
'''총독'''
커스버트 세바스천
'''총리'''
덴질 더글라스
'''공용어'''
영어


'''위치'''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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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국호
3. 역사
4. 정치
5. 문화
5.1. 언어
5.2. 스포츠
6. 범죄
7. 외교
7.1. 대한민국과의 관계
7.2. 북한과의 관계
7.3. 대만과의 관계
7.4. 영국과의 관계
7.5. 미국과의 관계
8. 군대
9.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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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앙아메리카 동(東) 카리브해 상에 있는 작은 섬나라. 줄여서 SKN. 수도는 바스테르이며 공용어는 영어이고 화폐단위는 동카리브달러(EC$)를 사용한다. 인구는 2005년 7월 추산으로 51,300명으로 충청남도 서천군보다 약간 적다. 면적은 261 km2으로 경기도 고양시와 비슷한 수준.

2. 국호


대한민국에서는 관행적으로 외국 국명이나 지명에 들어간 and 같은 단어는 한글로 옮길 때 삭제하는 게 일반적이어서 이 나라의 한국어 표기가 '세인트키츠 네비스'이다. 그런데 '''네'''비스는 그냥 편의상 옮긴 관행 표기일 뿐이고, 사실 영어 발음대로라면 '''니'''비스에 가깝다.
이 나라는 이름대로 세인트키츠 섬과 네비스 섬으로 구성된 연방 국가이다.
세인트키츠의 원래 이름은 세인트크리스토퍼(St Christopher)인데 기독교 성자인 크리스토포로스(영어로 크리스토퍼)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세인트크리스토퍼(스페인어로는 San Cristóbal)라는 이름을 붙여 줬다고 알려져'''는''' 있으나, 실제로 그건 네덜란드사바에 붙인 이름이었고 세인트키츠에는 Sant Yago(영어로는 St James)라고 붙였었다는 주장도 제기돼 있다고 한다. 조악하게 작성된 지도유럽인들이 잘못 해석해 세인트크리스토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사실인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이 섬은 세인트크리스토퍼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후 17세기에 크리스토퍼의 애칭이 킷(Kit 또는 Kitt)이었는데, 성 크리스토퍼의 섬(St. '''Christopher's''' Island)이 줄어든 세인트키츠가 이 섬의 애칭으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영국에서 독립할 때는 세인트크리스토퍼 네비스 연방이었지만 이후 세인트크리스토퍼 대신 세인트키츠를 정식 국호에 집어 넣었다.
콜럼버스 이전에 카리브 원주민이 자신들의 언어로 세인트키츠 섬에 붙였던 이름은 리아무이가(Liamuiga)로, '비옥한 땅(fertile land)'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 섬에 위치한 리아무이가산(Mount Liamuiga)이라는 명칭에 이 이름이 보존돼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영국령이던 시절에 불렸던 이름은 미저리산(Mount Misery)이었는데 연방이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이름을 리아무이가산으로 바꿨다.
네비스는 누에스트라 세뇨라 데 라스 니에베스(Nuestra Señora de las Nieves, 눈(雪)의 성모(聖母)라는 뜻)라는 스페인어 지명에서 Nieves가 비틀어진 것이다.
세인트키츠 네비스 관련 영상


3. 역사


1782년 영국프랑스가 식민통치를 두고 경쟁한 끝에 영국이 획득하여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가 1983년 '세인트 크리스토퍼 네비스 연방'으로 독립하였고 1988년에 현재의 이름으로 변경하였다.
국명은 세인트키츠 섬과 네비스 섬에서 따왔으며 지리적으로도 카리브 해를 사이에 두고 세인트키츠 섬과 네비스 섬으로 나뉘어 있고 수도인 바스테르는 세인트 섬에 위치해있다. 하지만 네비스 섬은 세인트키츠 섬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원하고 있어 현재까지 네비스 섬에선 그들만의 자치권이 행사되고 있다.
1977년 8월 18일에는 네비스 개혁당이 조직한 비공식적인 네비스 섬 분리독립 투표가 있었다. 투표율은 57.99%, 그중 찬성이 99.66%였으나, 중앙정부에서는 이 투표에 대한 무효선언을 하였다. 네비스 섬 주민의 66.7%가 독립에 찬성할 경우 독립할 수 있는 권리는 1983년에서야 헌법에 추가되었다.
1998년 8월 10일에도 네비스 섬 분리독립 투표가 열린 적이 있으나 찬성표 미달로 분리독립을 하지 못하여[3] 지금도 세인트키츠 섬과 연합되어 있다.

4. 정치


영연방 왕국으로서 영국의 국왕/여왕이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국왕/여왕(국가원수)을 겸임하며 세인트키츠 네비스 정부에서 추천한 인사를 현지 대리인인 총독으로 임명해 국왕/여왕의 의전적 역할을 대행한다. 실권 정부수반은 흔한 의원내각제 국가답게 총리가 맡는다.
세인트키츠와 네비스라는 두 개의 구성 요소로 이뤄진 연방 국가인데 앞 단락에서 설명했듯이 헌법에 네비스가 독립하고자 할 경우 거쳐야 할 요건을 규정해 놓고 있다. 실제로 네비스 독립 운동이 일어나고는 있으나 유권자의 3분의 2가 동의해야 하기에 실현되기 어려운 편이다.
세인트키츠 네비스의 의회는 국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 11명의 국회의원이 맡는다. 전 국토는 11개의 선거구로 나누어져 있으며, 세인트키츠 섬에는 8개의 선거구가, 네비스 섬에는 3개의 선거구가 있다. 선거권은 만 18세 이상의 세인트키츠 네비스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4]에게 주어지며, 선거에 출마하려면 만 21세 이상의 세인트키츠 네비스 시민권을 가지고, 당선되어 임명되는 날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어야 한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은 출마하는 선거구 내에서 적어도 두 명 이상의 유권자가 추천해야 하며, 55 미국 달러를 예치해야 한다.[5]
가장 최근에 치러진 선거는 2015년 2월 16일 에 치러진 선거로, 전체 유권자 중 72.19%가 투표했으며, 세인트키츠 네비스 노동당, 인민 행동 운동, 관심을 가진 시민들의 운동, 네비스 개혁당, 인민 노동당의 5개 정당이 원내로 진출했다. 이중 전체 득표수의 27.9%를 득표한 인민 행동 운동이 4석을 얻어 제1당이 되었고, 세인트키츠 네비스 노동당은 가장 많은 득표율인 39.27%를 득표했지만 3석만을 얻어 제2당이 되었다. 관심을 가진 시민들의 운동은 13.04%를 득표하여 2석을 얻고 제3당, 네비스 개혁당과 인민 노동당은 각각 10.81%, 8.99%를 득표하여 1석씩을 얻어 제4당에 그쳤다.

5. 문화


영국의 식민지 영향 때문에 스포츠상 크리켓을 즐기고 있으나, 독립된 국가 대표팀을 만들지 못하고 서인도(West Indies)라는 이름의 카리브해 연합 팀에 소속돼 있다. 다만 이 팀 안에서도 세인트키츠 네비스 연방이라는 한 단위가 아니라 세인트키츠와 네비스가 개별적으로 서인도 팀에 가맹되어 있다.

5.1. 언어


공용어는 영어이다. 영어가 공용어로 지정되어 있고 널리 쓰이고 있다. 다만, 일반 주민들은 영어 크레올어를 일상에서 자주 쓰고 있다.

5.2. 스포츠


크리켓은 전통적으로 서인도제도의 주요 스포츠로서, 영연방 국가이자, 서인도 제도에 속하는 세인트키츠 네비스에서 역시 크리켓이 인기있다. 2007년 크리켓 월드컵은 영국령인 서인도 제도에서 개최되기도 하였다.
남자 육상 단거리에서 두각을 나타냈는데 킴 콜린스가 2003년 파리 세계 육상 선수권대회 100m에서 금메달, 2001년 에드먼턴 대회 200m에서 동메달, 2005년 헬싱키 대회 100m 동메달, 2011년 대구 대회 100m, 400m 계주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축구승마도 인기있는 스포츠로 알려져 있다지만 축구 쪽은... 세인트키츠 네비스 축구 국가대표팀 참조.

6. 범죄


인구 5만여 명 남짓의 작은 나라로 나라 전체의 살인건수는 2011년도 기준 1년에 34건이다. 인구 10만 명 당 살인비율은 이 나라의 경우 의미가 없다. 관광지답게 낮에는 비교적 안전한 편이지만 일몰 이후에 도보로 돌아다니는 것은 삼가는 게 좋다. 현지인과의 충돌은 가급적 피하자.
현재 범죄가 많이 일어나서인지는 모르지만 형법태형을 두고 있다. 또한 이 나라는 미국을 제외하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마지막인 2008년까지 사형을 실시했던 나라이기도 하다. (현재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중임.)

7. 외교



7.1. 대한민국과의 관계


대한민국과는 1983년에 수교하였고 10년 후인 1993 대전 엑스포를 통해 공식 참가하여 카리브 공동관 참가국으로도 활동했다.
세인트키츠네비스에는 대한민국 대사관이 없으며, 주 도미니카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7.2. 북한과의 관계


북한과는 1991년에 수교하였다.

7.3. 대만과의 관계



대만의 몇 안되는 수교국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7.4. 영국과의 관계


19세기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영국의 영향으로 영어가 공용어이고 영연방에도 가입되어 있다.

7.5. 미국과의 관계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과의 관계도 매우 우호적이다.

7.6.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과의 관계




8. 군대


앤티가 바부다군처럼 소형 군대인 세인트키츠 네비스군을 두고 있다.

9. 여담


다른 카리브해 혹은 중남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나라에서 자체적으로 국적 장사를 한다. 이민을 장려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적 장사를 한다고 말하는 이유는 의무체류는 물론이고 입국할 필요조차 없이 그냥 3억원 정도의 돈만 내면 국적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130여개국의 국가와 비자협정을 맺은 터라 돈만 있으면 이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살아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40만불 이상의 부동산을 보유하거나 25만불 이상을 이 나라의 사탕수수 산업에 기부해야 한다. 그나마 설탕 산업이 유일하게 기대는 이 나라의 희망인지라 이걸 키우기 위해서 제도적으로 이렇게 만들었다. 다만 처음부터 유용하게 쓰였던 것은 아니고 1984년에 처음 만들어졌기는 했지만 귀화해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별로 실효성이 없는 제도로 여겨졌다. 그러다가 2005년에 사탕수수 농장이 재배 농장이 잇달아 폐업하자,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있고 범죄율은 늘어나는 등 상황이 영 좋지 않았는데 이에 궁여지책격으로 시민권 취득 조건을 완화하고 해외 부자들에게 세인트키츠 네비스 국적취득에 대해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상황이 반전되었고, 세인트키츠 네비스 정부 입장에서 매년 수천만 달러 이상의 세수를 안정적으로 거둘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해서 2008년 금융위기도 거뜬히 넘겨나가며 나라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현재는 1인당 GDP가 18,000달러 선으로 카리브 해 중에서는 경제가 매우 좋다.
딱히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비전이랄 것도 보이지 않는 작은 섬나라의 국적을 도대체 외국인들이 왜 구매하는가 하면 그 목적은 다름아닌 '''탈세'''다. 세인트키츠 네비스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조세 피난처로 전세계에서 부유층들이 국적을 구매하기 위해 줄을 서는 나라들 중 한 곳이다. 때문에 부패를 척결하고 탈세를 적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상적인 국가들과 사이가 좋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자기들이 먹고 살겠다고 다른 나라의 범죄와 부패를 부추기는 셈이니.
그 외에는 텔레그램의 개발자 파벨 두로프의 경우처럼 정치적 망명을 위해 국적을 구입하는 경우가 있다. 두로프의 경우 푸틴 정권과의 마찰 끝에 러시아를 떠난 뒤 이곳 국적을 구입한 것. #
우병우의 처제 이민경씨는 몇 년 전 남미 온두라스 위조 여권으로 자녀를 국내 외국인 학교에 넣었다가 징역 8개월 형에 집행유예 2년을 받은 바 있다. 이번엔 이 세인트키츠 네비스 국적을 얻어 자식을 다시 다른 외국인 학교에 입학시켰다. 이에 관해 조선일보 선우정 논설위원[6]은 2016년 7월 22일 거의 약빨고 쓴 듯한 촌철살인논평 하나를 올렸는데, 정권의 핵심 실세에 대해 조선일보가 이 정도로 극딜하는 논평을 올린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그 논평은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새 조국' 세인트키츠 네비스가 어디쯤 붙어 있는지 알기나 할까. 우 수석 처제 덕분에 세상 별별 나라 공부를 다 해본다."'''
88 올림픽에 캐나다 대표로 참가한 디자이 윌리엄스가 이 나라 출신이다.
잉글랜드 축구의 신성 마커스 래시포드가 여기 혈통이다.
[1] 이 쪽은 경기도 고양시의 면적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2] 이 쪽은 충청남도 서천군의 인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3] 투표율 57.99%. 투표한 사람의 61.83%가 독립에 찬성했으나, 독립이 승인되려면 유권자의 2/3(=66.7%)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지라...[4] 독립 이전에 세인트키츠 네비스에서 태어난 영연방 시민에게도 선거권이 주어진다.[5] 이 예치금은 출마하는 선거구에서 12.5% 이상 득표할 경우 돌려받을 수 있다.[6] 왕년의 조선일보 대표 논객 선우휘의 아들로, 한때 일본 특파원을 지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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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서 삭제식 이동((세인트키츠네비스 → 더미:세인트키츠네비스) → 세인트키츠 네비스)

[7] 세인트키츠네비스 → 더미:세인트키츠네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