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외교
1. 개요
이 문서에서는 대만(중화민국)의 외교 관계를 서술한다.
2. 상세
중화민국은 왕년에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으로 유엔의 상임이사국 자리까지 꿰찼던 나라였지만, 지금은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국제 사회에서 고립되다시피 하고 있다. 현재 중화민국의 정식 수교국[2] 은 15개밖에 없다. 그마저도 계속되는 중국의 경제적 지원 및 개발 조건으로 언제 줄어들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이제는 타이완 섬에 있는 중화민국을 하나의 국가로서 인정하는 나라는 정말 몇 나라 없게 됐다. 아시아에선 한국을 끝으로 수교국이 전멸했고, 유럽에서는 바티칸 하나뿐이다. 그 밖의 나머지 나라들 역시 대부분이 약소국이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처음 들으면 '이런 나라도 있었어?'라고 할 나라들 투성이다. 영토가 큰 나라가 파라과이(40만 평방km), 인구로는 과테말라(약 1,800만)이며, 그나마도 이 두 나라와 바티칸을 제외하면 국토와 인구 규모가 너무 작아서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 따위는 전혀 없는 나라이거나,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제 몸 간수하기도 바쁜 나라들 밖에 남지 않는다. 심지어 저 두 나라도 딱히 내부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머지 소국, 빈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낫다는 것일 뿐, 애초에 중화민국의 수교국 중에 중화민국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하거나 국제적으로 영향력이 강한 나라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3] 게다가 대부분의 수교국들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현재 중화민국과 수교한 나라들 중 가장 가까운 나라는 약 2,400km 떨어져 있는 팔라우이며, 동시에 유일하게 직항 노선이 개설되어 있는 수교국이기도 하다.
대만은 정식 수교국에 파견하는 대사는 '''무조건 장관급''', 대표부에 파견하는 '''대표는 차관급부터 2급 공무원'''까지 파견할 수 있다. 때문에 주미 대만 대표, 주일 대만 대표, 주영 대만 대표 역시 죄다 차관급으로 대우받아 왔다. 한국-대만 단교 직전에는 한국에도 장관급 대사를 파견했으나, 한국-대만 단교 이후에는 1급 공무원을 대표로 파견해 왔다. 그러다가 2017년 스딩 주한 대만대표부 대표를 차이잉원이 차관급으로 격상한 이후, 2018년 한국에 파견한 탕뎬원 현 대표 역시 차관급 대표이다.
대만의 자유무역협정은 수교국, 미수교국 상관없이 중국(ECFA), 파나마, 과테말라,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니카라과, 뉴질랜드, 싱가포르와 맺고 있다. 유럽연합과는 자유무역협정을 진행했으나 '''EU에서 대만의 민간인 총살형 집행[4] 을 이유로 FTA 협상을 결렬시켰다'''. 대만은 TPP 가입을 통해 ASEAN, 한국, 일본,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등과 원샷 FTA를 시행하려고 추진 중이었으나, 다자무역을 추구하기를 꺼리는 현 트럼프 정부 임기 미국이 TPP를 파토내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5]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과 방역외교의 성과로 무려 서방 열강 중 하나인 '''영국'''이 2025년 이내에 대만의 주권을 인정하고 대만과 재수교하는 일을 검토하고 있는데 만일 영국과 재수교가 된다면 대만 외교부 입장에서는 월척을 넘어 대어를 낚게 되는 것이다.[6]
미국이 주미대만대표부와 미 국무부의 교류를 허가했다. 이로서 주미대만대표부의 관료들이 다시 미 국무부에 출입이 가능해지게 되면서 더욱 더 대미외교에 탄력을 받을 전망이며 게다가 미국이 중국의 휴스턴 주재 총영사관을 페쇄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러한 과정이 대만과의 재수교를 위한 과정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하여 지금 기준으로 대만이 국제적으로 주권국으로 인정받은 것은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유엔에 가입하려면 신청서가 안보리 이사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누가 앉아 있는가?[7] 또한 코로나19로 인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이 세계적으로 원성을 사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일 때문에 중화민국과 수교한 나라는 '''아직까지 단 하나도 없다.'''
현재 중국의 외교현실은 서방 사회, 다른 여러 국가들과의 갈등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신들이 사실상 목숨줄을 잡고 있는 북한마저도 제대로 컨트롤을 못하는 상황이다.[8] 그렇지만 여전히 13억~14억이라는 인구[9] 와 '세계의 공장'이라는 지위가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여러 방면으로나 당연히 인구 2,380만 정도인 대만보다 월등한 메리트가 있을수밖에 없다. 당장 미국의 기업, 투자가들도 중국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으며 수익도 많이 벌어들이고 있다. 과거 국제연합(유엔)과 미국 등이 대만을 내치고 중국을 끌어들인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경제적인 이유였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국제 사회는 돈만 된다면 정치적, 이념적 갈등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대만의 앞날이 마냥 암울한 것도 아니다. 비록 대부분의 국가들이 대만을 정식 국가로서 인정하지는 않고 있지만 대표부 형태로 사실상 외교관계를 계속 이어가고 있으며 비자면제국 숫자도 중국 대륙보다 대만이 훨씬 많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삽질이 계속되면서 대만의 인지도는 점차 높아지고 있다. 게다가 2018년부터는 대만 본토에 미군[10] 일부가 주둔하면서 과거에도 중국 당국이 대만섬을 직접 타격할 가능성은 낮았지만 현재는 그 일말의 가능성 마저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11]
이와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만 당국도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실정이며 중국은 이에 험한 말을 쏟아내는것 말고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12][13] 여러가지를 고려했을때 현 상황은 대만 입장에서는 나름의 호재인셈이다.
현재 대만의 외교현실은 여전히 암울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대만의 외교가 위기에 빠진 이유가 중국의 경제 성장으로 인한 중국의 파워 그리고 그동안 한국과 일본에 대해서만 신경 쓰던 미국의 무관심이 원인이었지만, 최근 중국 역시 신장 위구르 자치구나 홍콩, 티베트의 독립 문제 등 신경이 쓸 일이 많은데다가 경제 역시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고 미국 역시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 중국을 견제하기 시작하며 대만에게 점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오세아니아 국가들 중에서 대만과 수교한 국가들이 유엔에 대만을 국가로 인정해달라는 청원서를 보냈다. 그러나 유엔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하고 있는 상태이므로 유엔 측은 거절했다.#
그러나 20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가 낙선해서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매우 우호적인 분위기를 기대하기 힘들어지게 되었다. 실제 대만 내부에서는 트럼프의 재선을 매우 희망했던것으로 알려져있다. 당연하지만 다행히도 대중국 압박은 미국의 아시아-태평양전략과 관련되어 있어 초당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인지라 과거처럼 대만이 버려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바이든 당선인의 경우 트럼프 행정부처럼 돌출행동을 할 가능성도 낮기 때문에 한때 풍문으로 돌던 대만-미국간 공식수교설은 일단 근시일 내에 단순 소문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 내 싱크탱크 중 하나인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도 나타난다. #, 설문조사 문장 중, '다음 네 국가(한국, 일본, 대만, 호주)를 지키기 위하여 미국이 어느 정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14] 에서 미국 대중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일본-대만-호주[CSIS-P] 순이었으나 오피니언리더(opinion leaders; 주요 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일본-호주-한국-대만[CSIS-O] 순이었다. 특히 대만은 점수가 4개국 중 유일하게 8점 미만으로 드러났다. 미국 내 주요 인사들이 선택한 점수 값을 더 살펴보면, 7점 이상을 선택한 비율은 한국 88%, 일본 90%, 호주 85%, 대만 '''75%'''였으며, 6점 이하를 선택한 비율은 한국 및 일본10%, 호주 12%, 대만 '''20%'''였다. 이는 미국 내 주요 인사들이 생각하는 4개국의 중요도에서 대만이 상대적으로 후순위라는 뜻이 된다.
물론 이보다 점수가 낮은 국가들도 허다한 상황이고 주요 4개국에 비해서 최하위 점수를 받았지만 그래도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낮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은 대만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한국이나 일본[15] 에 비해서 필사적으로 돕는다고 확증을 하기에는 약간 모호한 입장이다. 이는 중국이 북한을 다루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순망치한.[16]
미국이 대만의 안보와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당연히 수교를 하는게 제일 깔끔하고 확실한 수단이지만 외교라는 것이 결국에는 정치적인 풍파를 가장 많이 받는 영역이다. 즉 미국이 대만과 재수교하였다가 미-중 관계가 좋아지게 된다면 다시 단교를 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현재 미국이 만들어 놓은 대만관련 법들은 여러 상황 변화와 관련없이 미국으로부터 일정한 수준 이상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된다.[17] 무엇보다 미국이 특정 국가를 위해 법을 제정 및 이행하는 일은 흔치 않기에 미국 입장에서는 대만에게 나름의 특례를 주고 있는 셈이다.
2020년 12월 대만 보증법이 통과되었다.# 법안에는 대만에 대한 무기수출 상시화 비대칭 전력 지원 그리고 대만의 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지지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뉴욕 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미국정부가 대중 강경책의 일환으로 대만과의 재수교를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2월 3일 로이터통신의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은 변함 없다'''고 천명해, 단기간에는 대만과의 재수교는 불투명하다.#
2021년에는 가이아나가 대만 대표부를 설치하려 했지만, 중국의 압박으로 없던 일이 되었다.
3. 수교국 목록
대만의 수교국은 모두 경제적으로 곤궁하거나, 국토가 작은 나라들 뿐이다. 아무 표시도 없으면 중국과 수교한 적이 아예 없는 나라, *표시는 처음에 중국과 수교했다가 나중에 대만으로 갈아탄 나라, **는 처음에 대만과 수교했다가 중국과 수교한 후, 도로 대만으로 수교국을 바꾼 나라들,
- 유럽 - 바티칸 (1곳)
- 오세아니아 - 나우루**, 투발루, 마셜 제도*, 팔라우 (4곳)
- 중앙아메리카 - 벨리즈*, 온두라스, 과테말라, 니카라과** (4곳)
- 카리브 제도 - 아이티, 세인트루시아**, 세인트키츠 네비스,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4곳)
- 남아메리카 - 파라과이 (1곳)
- 아프리카 - 에스와티니 (1곳)
왼쪽 지도는 대만의 공관이 설치된 나라, 오른쪽 지도는 대만에 자국 공관을 설치한 나라들을 표시한 것이다. 남색은 대사관, 연푸른색은 대표부이며 회색은 이도저도 없는 나라들. 지도를 자세히 보면 대만은 상대국에 대표부를 설치했지만 상대국은 타이베이에 대표부가 없거나 반대로 상대국이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두었는데 대만은 상대국에 대표부를 두지 않은 경우들이 있다. 대표부에 대해서는 타이베이 대표부 참고.
한국은 타이베이에 대표부를 외교부 직속으로 두고 있다. 미국의 대사관격인 미국재대협회(American Institute of Taiwan)나 일본의 공익재단법인 일본대만교류협회(日本台湾交流協会)는 각각 국무부와 외무성을 대리해서 영사업무를 보는 비정부기구(정확하게는 반관반민 성격)인 걸 생각하면 흥미로운 부분. 즉 표면적으로나마 비정부기구의 탈을 쓴 미국과 일본과 달리 대한민국은 대놓고 정부 기관으로서 대표부를 세워 놓은 셈이다.
물론 정부의 공식 입장과는 별개로, 대만을 실질적인 나라로 인정하는 나라는 꽤 많은 편이다. 당장 대만을 미승인국 취급하는 미국도 대만과의 관계에서 중국을 거치지 않고 자체적인 접촉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국 역시 대만과 어느 정도의 밀월트랙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이라 해도 이런 상황까지 대놓고 부정하며 막으려다가는 타국의 돈벌이까지 막아서 세계에 큰 반감을 사고 경제전쟁으로까지 비화될 수 있기 때문에, 정식 승인이 아니면 보통은 모른 척 한다.
중국과 대만 두 나라는 현재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나 양안 간 교류 확대는 되고 있기 때문에 서로의 영토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완전한 형태의 대표부는 아니고, 대만은 대만 해협양안관광여유협회(台灣海峽兩岸觀光旅遊協會)라는 이름의 기관을 베이징에 두고[18] , 중국은 해협양안여유교류협회(海峡两岸旅游交流协会)라는 기관을 타이베이에 설치했는데,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 대표부는 상대 나라에 대한 교류 및 관광 진흥을 위해 존재한다. 따라서 아직 본격적 외교 관계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물론 철천지 원수였던 두 정권 간의 관계가 이 정도로까지 발전한 게 어디냐만은...
한편 대만은 중국의 일국양제가 적용되는 홍콩과 마카오에 '타이베이경제문화판사처(台北經濟文化辦事處)'라는 이름의 사무처를 두고 있는데 일반적인 외교 관계에서의 영사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두 지역은 일단 중국의 영토이므로 대만 입장에서는 자국 영토이고 따라서 이들 기관은 중화민국 외교부가 아닌 중화민국 행정원 대륙위원회 산하 기관이지만, 홍콩과 마카오가 각각 영국과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시절에 설립되었기 때문에 교류 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다.[19] 홍콩과 마카오 역시 대만에 비슷한 기능을 하는 기관을 두고 있다.
대만의 수교국 15개국의 대사관은 바티칸을 제외한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대사관특구(使館特區, 영어로는 Diplomatic Quarter)라는 건물에 단체 입주해 있다.[20] 교황 대사관은 커지다러우역 인근에 위치해 있다.
15개 수교국 대부분 수도에 중화민국 대사관이 있는데 바티칸 주재 중화민국 대사관은 미수교국인 이탈리아 영토인 로마에 있다. 이는 바티칸의 영토가 매우 좁다보니 외국 공관을 설치할 만한 땅이 없기 때문이며, 이런 이유로 중화민국 외에 다른 나라들도 교황청 주재 공관을 이탈리아 로마에 두고 있다. 그래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로마 시내에는 중화민국 대사관(바티칸 수교)과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이탈리아 수교)이 함께 있다.
소말릴란드의 경우 사실상 수교국에 준하고 있는 상태인데, 대표협상을 양국의 외교부 장관들이 맺었을뿐만 아니라 명칭을 대표가 아닌 대사[21] 로 하기로 했으며 비엔나 협약에 따라 외교적 면책 특권을 주기로 했지만 아직 정식 수교 단계는 아니다. 중화민국 외교부 웹페이지에서도 타이베이 주재 외국 공관 목록을 대사관과 그 밖(대표부 등)으로 분리해서 작성하고 있는데, 그 목록에서 소말릴란드의 공관은 엄연히 대사관이 아닌 그 밖에 속해 있다.
2020년부터 미국이 대만의 수교국들을 지원하기 위해 타이완 동맹 보호법을 시행했다. 법안의 내용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현재 대만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맺고있는 14개국, 그리고 앞으로 대만과 수교하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미국 정부가 이들 국가에 대한 경제 원조와 안보를 책임진다는 내용. 대만 정부 역시 남은 수교국들을 지키기 위해 경제 원조를 확대하기 시작하며 대만의 수교국들은 앞으로 미국의 보호를 받으면서 대만 미국 양쪽으로 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중화민국 재외공관 사이트 링크
3.1. 중화민국이 단교를 당한 연도[22]
중국어긴 하지만 이 도표에 잘 정리되어 있다. 국부천대 이전 신해혁명 이후 시기부터의 수교·단교 현황이 다 나타나 있다. 여기도 같이 보면 좋다.
- 볼드체는 주요국. 대신 대표부를 설치한 나라는 ♤표시.
3.1.1. 장제스 정부
3.1.1.1. UN 탈퇴 이전
- 1949년 10월 이후: 소련[23] ,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 폴란드 인민 공화국 ♤, 미얀마 ♤, 인도 자치령♤
- 1950년: 파키스탄 자치령, 영국♤[24] , 실론 자치령, 아프가니스탄 왕국,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 네덜란드♤, 인도네시아♤[25][26]
- 1956년: 이집트
- 1958년: 이라크, 모로코, 캄보디아
- 1959년: 기니, 수단
- 1960년: 쿠바, 말리
- 1962년: 라오스 왕국, 우간다
- 1964년: 프랑스♤, 콩고 공화국
- 1970년: 캐나다♤, 적도기니, 이탈리아♤
- 1971년 10월 25일까지: 칠레♤, 쿠웨이트♤, 카메룬, 오스트리아♤, 터키♤, 이란 제국, 시에라리온
3.1.1.2. UN 탈퇴 이후
- 1971년 10월 25일 이후: 벨기에♤, 페루♤, 레바논, 멕시코♤, 에콰도르 ♤
- 1972년: 키프로스, 몰타, 아르헨티나♤, 세네갈(2차)[27] , 몰디브, 르완다, 그리스 왕국 ♤, 일본♤, 토고, 자메이카, 룩셈부르크♤, 마다가스카르, 호주♤, 뉴질랜드♤
- 1973년: 다호메이 공화국(현 베냉),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스페인국♤
- 1974년: 가봉, 보츠와나, 말레이시아♤, 베네수엘라, 브라질♤
- 1975년: 포르투갈♤, 베트남 공화국[28] , 필리핀 제4공화국♤, 태국♤, 사모아
3.1.2. 장징궈 정부
3.1.3. 리덩후이 정부
- 1988년: 우루과이
- 1990년: 사우디아라비아♤
- 1992년: 대한민국♤[30]
- 1994년: 레소토, 라트비아♤[31]
- 1995년: 모나코
- 1996년: 니제르
- 1997년: 바하마
- 1998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중앙아프리카공화국, 기니비사우, 통가
- 1999년: 파푸아뉴기니♤
3.1.4. 천수이볜 정부
- 2001년: 마케도니아
- 2003년: 라이베리아
- 2004년: 도미니카 연방, 바누아투[32]
- 2005년: 그레나다, 세네갈(3차)
- 2006년: 차드
- 2007년: 코스타리카
- 2008년: 말라위[33]
3.1.5. 마잉주 정부
3.1.6. 차이잉원 정부
4. UN에서의 축출
중화민국은 UN의 창립 국가로서,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중 하나였다.[36] 그러나 1971년 10월 25일 알바니아가 제출한 중화민국의 유엔 축출이 명시된 UN 총회 결의안 제 2758호가 찬성 76, 반대 35, 기권 17로 가결되었다. "장개석의 대표단"으로 지칭된 대만은 4일 후 UN총회에서 탈퇴를 선택했다. 형식상 자진 탈퇴였지만 실질적으로 UN에서 강제로 쫓겨난 거나 다를 바가 없었고, 이 자진 탈퇴는 대만의 외교에 실로 대단한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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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UN 총회 도중[37] 에 자진 탈퇴를 선언하면서 내려오는 저우수카이(周書楷, 주서해) 당시 중화민국 외교부장의 모습. 이 시기에는 수교국의 반 이상이 단교를 선언하여 외교부가 단교부라는 굴욕적인 별명도 얻었다.
당시 많은 서방 국가들도 알바니아의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져 미국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이미 중국과 수교한 상황이었으니 이는 어느 정도 예견되었던 결과. 거기에다가 상임이사국인 '''영국도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은 중화민국 정부가 중국을 대표하는 권리는 포기하되 대만(Taiwan) 지역의 주권국가로서 중화대만공화국(Chinese Republic of Taiwan)이라는 새로운 국호로 회원국 지위를 유지하는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으나, 알바니아의 결의안을 지지하는 나라들이 대부분 반대하고 중화민국 스스로도 거부했다. 물론 알바니아 안을 지지하는 국가들은 명칭이 '중화민국'이건 '대만'이건 용납하지 않았으니 이 거부가 호의를 걷어찬 것은 아니었다.
중국은 언제나 자신들과 외교 관계를 맺으려는 나라들에게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지지와, 이 원칙에 따라서 대만은 자국 영토의 일부분이라는 해석을 인정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는 대만측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현재 중국과 대만 양쪽과 모두 대사급 외교관계를 가지는 나라는 없다. 무조건 둘 중의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대만 측에서는 쌍중수교를 허용하는 쪽으로 선회했다고는 하나, 중국 측에서는 여전히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는 대만을 중국의 정통 정부로 인정하고 국교를 맺어온 한국에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특히 한국전쟁의 일방 당사자 가운데 하나였던 중국이 UN에 가입하고, 그것도 상임이사국이 됨으로써 휴전 협정이 무효화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한국 사회에 밀어닥치기도 했다. 이것이 유신헌법 제정의 빌미가 된 면도 있다.
5. 역대 정부별 정책 비교
장제스 총통 시절까지만 해도 2차 대전 승전국 겸 UN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바탕으로, 자신들이 중국의 정통 정부임을 강조하는 '정통-반공 외교'를 펼쳐나갔다. 또한 아프리카 등 제3세계 신흥 독립국들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경제 지원을 제공하는 '선봉 계획'을 추진하기도. 하지만 1971년 유엔 축출을 시작으로 주요 우방 국가들이 하나둘씩 단교하면서, 이는 빛을 잃어 나갔다.
1970년대 ~ 1980년대 장징궈 총통 시대에는 정부, 민간을 망라한 국력 전체를 외교에 동원하는 '총력외교', 중국의 정통성에 집착하지 않고 유연하게 주요 국가들과의 관계 유지 및 발전을 추구하는 '탄성외교'를 지향했다. 이에 따라 최대 우방국인 미국, 일본과의 단교에도 불구하고, 대표부 형식의 비공식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특히 미국의 경우 <타이완 관계법>의 제정으로 비공식적이나마 방위공약을 확보했다. 아울러 기존의 중화민국 대신, '차이니즈 타이페이'란 명칭으로 아시아 개발은행(ADB),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의 유력 국제기구에 가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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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리덩후이 총통 시대에는 보다 적극적인 '무실외교'를 표방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신흥 경제성장국으로서 대만의 경제력을 적극 활용하여 해외 지지를 확대하고, 고위 당국자들의 대외 활동도 확대하여 그동안 위축되었던 대외 활동에 활기를 되찾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리덩후이 총통이 개인 자격으로나마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리콴유 총리와 회견하고, 1995년에는 대만 총통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하여(모교인 코넬대학의 초청을 명목으로 했다.) 연설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나마 수교국이 증가세로 돌아서기도 했지만,[38] 이를 경계한 중국의 외교적 고립 획책은 더욱 강화되었다. 특히 1992년에 아시아의 마지막 수교국이었던 한국이 중국과의 수교를 위해 단교한 것이 대만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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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민진당 출신으로 처음 당선된 천수이볜 총통은 '다원외교'를 내세웠다. 무역, 민간, 인권 등의 여러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가치 지향적 외교를 통해, 대만의 독자성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이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성공하였고, '중화민국' 대신 '대만' 명의로 유엔 재가입 신청도 추진했다. 그러나 천수이볜의 분리독립 추구를 경계한 중국의 방해로 수교국은 도리어 9개국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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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취임한 중국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은 '활로외교'를 주창했다. ECFA 성립 등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적극화하는 가운데, 국제적인 생존 공간 확보를 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의 양해 아래 그동안 무산되어 온 일부 국제 기구(예: 세계보건회의[WHA],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대한 옵서버 참가 자격을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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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최초의 양안 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잉주 총통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대만의 UN 재가입을 비롯한 국제기구 참여 확대 협조를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본 회담에서 시진핑은 자신들이 주도하는 '일대일로', AIIB(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에 대한 참여 허용에 대해서만 언급하여 대만 측을 적지 않게 실망시켰다.[39] 어차피 중국은 아쉬울 게 없고, 당시 대만 총통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게 주 목적이었으니까 말이다.
2015년 기준 대만은 자유무역협정인 TPP에 가입을 추진 중이다. TPP 가입에 대해서는 중국 국민당 외에 친민당, 민주진보당, 대만단결연맹 등 범람연맹 - 범록연맹 구분없이 일종의 활로가 되기 때문에 위 아 더 월드로 찬성하고 있어 2016년 제14대 중화민국 정부총통 선거에서 누가 되든 핵심 과제가 된다.
차이잉원 정부가 출범하면서 UN 재가입 논의가 다시 탄력을 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의 계속되는 외교적 압박으로 감비아, 상투메 프린시페가 중화민국과 단교하고 중국과 복교했다.
2017년 1월 13일에는 타이베이 대표부들 중 유일하게 '중화민국(대만)'이란 이름을 달고 있었던 나이지리아 아부자 주재 대표부에 대해 나이지리아 정부가 중화민국(대만)도 빼고 라고스로 규모를 줄여서 이전할 것을 요구했다. 비교하자면 워싱턴 DC 주재 대사관을 뉴욕 총영사관으로 완전 통합하는 셈. 본교가 분교로 합쳐지는 것이니 위상 추락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만 측에서도 상호주의에 따라 대만 주재 나이지리아 대표부를 타이베이 밖으로 이전할 것을 요구, 현재 교외지역인 신베이로 이전한 상태이다.
2017년 6월 13일에는 신해혁명 이래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줄곧 중화민국과의 외교관계를 유지해 온 파나마마저 대만과의 단교 및 중국과의 수교를 단행했다. 2018년 5월 1일에는 도미니카 공화국이 전격 단교를 선언하였다. 대만 측은 단교를 막기 위해 어마어마한 군사적 지원을 하였음에도 단교를 당해 분노와 절망에 빠졌다. 5월 24일에는 부르키나파소가 일방적 단교를 선언했다. 이어 8월에는 1933년 이래로 국교를 맺어 온 엘살바도르가 단교를 선언했다. 이는 총통의 방미 중에 일어난 사건이라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교황청조차 주교 서품과 관련하여 중국 정부와 합의에 도달하면서, 대만 외교는 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2019년 9월 16일에는 솔로몬 제도가, 9월 20일에는 키리바시가 단교선언을 하면서 당시 대만 외교부에서 추가적으로 1~2개국과 단교당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등 외교적으로 고립이 더욱 심화되었다.
2020년에는 다행스럽게도(?) 중국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홍콩보안법으로 미국을 위시한 제1세계 국가들과 더욱 심하게 대립하게 되면서 대만 정부는 수교국과 대표부 관계를 가진 국가들에 의료물자를 지원하는 방역외교를 시행하였다. 또한, 미국은 중국의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공격적인 세력확장에 대응하는 견제 정책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타이완 동맹 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대만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대만 수교국들을 지원하는 법을 마련했다. 타이완 동맹 보호법 등의 법안 제정 덕분에 대만의 수교국들은 단교의사를 더이상 표명하지 않고 오히려 대만과의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먼저 나서고 있으며 소말릴란드의 경우에는 수교를 목표로 대표부 설립을 먼저 제의하여 비공식관계를 수립하는 등 대만의 외교는 위기에서 희망으로 분위기가 바뀌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2021년 가이아나가 대표부를 설립하려 하자 '''중국의 압박으로''' 없던 일이 되는 등 다시 위기의 징조가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6. 스포츠
1962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는 대만이 반(反) 수카르노 세력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측이 참가승인을 거부하는 바람에 아시안게임 참가가 좌절되기도 했다. 동시에 이스라엘의 경우 이슬람교 국가인 인도네시아의 정치성향 때문에 참가를 금지시켰다.
IOC는 이에 대해 아시안게임 개최를 승인하지 않겠다고 경고했하만 사실 IOC에서 이걸 가지고 올림픽 참가를 왈가왈부하다간 인도네시아와 뜻이 맞은 아랍 나라들의 반발로 인하여 막대한 손해를 보기 때문에... 그러나 당시 아시안게임연맹(AGF) 위원장의 국가이던 인도와 일본 등을 중심으로 인도네시아를 비난하면서 인도에서는 '''대놓고''' 1962년 아시안 게임을 '''횟수에서 빼버리고 비공인 대회로 하자!!'''까지 했었다. 결국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그대로 대회를 강행했으며 결국 대만과 이스라엘이 불참 처리된 가운데 열렸다. 하지만 국제육상경기연맹과 국제역도연맹은 이 대회의 해당 종목을 인정하지 않고, 이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의 올림픽 참가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당시 육상과 역도는 불참하였다. 일부 나라는 올림픽에 나갈 만한 실력이 안 되는 선수들을 참가시키기도 했다. 결국 인도네시아는 '''IOC에서 제명'''당했다. 입경고가 아니었다. 이후 인도네시아는 수하르토 정권이 수립된 후 IOC에 복귀했다.
19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린 하계 올림픽 때는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자유당의 피에르 트뤼도 정부의 성향 때문에 '중화민국' 국호를 내세운 올림픽 참가를 금지당하는 불운도 겪었으며, 결국 중국의 압력으로 1984년 동계 올림픽[40] 부터는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 라는 어쩡쩡한 국명으로 참가하고 국기 역시 공식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 를 사용하지 못하고 대만 올림픽위원회의 깃발을 대신 사용해야 하며, 시상식 때도 청천백일기와 삼민주의 대신 중화 타이베이 올림픽위원회 깃발(매화기)과 중화민국 국기가를 개사한 중화올림픽위원회 회가[41] 가 대신 연주되고 있다. 이 때문에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받고도 자국의 국기를 볼 수도, 국가를 들을 수 없던 대만 선수가 시상식에서 눈물을 보인 일이 여러 번 있었다.[42]
6.1. 스포츠 대회 유치 시도
추락하는 외교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서인지, 국제 스포츠 대회 유치에 힘을 쏟고 있는 듯 하다.
2009 가오슝 월드 게임[43] 을 개최하였고, 2017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를 유치하였으며, 2018년 아시안 게임과 2024년 하계올림픽 유치를 노리기도 했었다. 2011년과 2013년에 프로야구 아시아 시리즈를 대만에서 개최하였으며, 그 중 2011년 대회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프로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아시안 게임,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주관하는 아시아올림픽평의회, 국제올림픽위원회나 FIFA 등도 결국 중국 본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중화민국으로써는 가능성이 없다. 그나마 2030 엑스포를 노릴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자국내에서 개최했던 월드 게임이나, 유니버시아드에서도 국기와 국가를 정식으로 올리지 못하고 '꼼수'를 써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일단 경기 출전 자체는 여타 국제대회와 마찬가지로 중화 타이베이 명의로 하고, 대신 시설물에 걸어놓는 개최국 표식만 비로소 '''중화민국 국기인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썼다. 덕분에 중국 야구팀을 상대할 때도 국기를 걸어놓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중국은 예전부터 축구, 농구의 세계적인 보급성, 파급력을 위력을 알고 이를 강력히 경계하였기에 대만대표팀을 아시아 축구연맹, 농구연맹에서 축출시키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축구는 축출시켰으며 지금까지도 대만에서 축구, 농구, 야구의 활성화를 막고 중화민국의 국기를 사용하지 못 하도록 꾸준히 압력을 넣고 있다. 비록 중공이 대만보다 실력이 약한 몇 안 되는 종목 중 하나지만 가만 놔두지 않는다. 위의 대륙간컵 대회는 굉장히 예외적인 상황이고 야구 월드컵이니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니 중화민국 국기는 절대 쓰이지 않는다. 대만이 개최국이면 남의 나라 국기만 쓰게 해줄 뿐이다.
7. 이것만은 유리?
7.1. 종교
현재 중국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될 처지가 아니라서 종교인들의 국제대회만큼은 대만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만은 세계 주요 종교들이 강세를 보이는 나라는 아니여서 한계가 있다. 왜냐면 세계의 4대 종교 중 대만에서 종교 인구 숫자가 3% 이상 되는 종교가 단 하나도 없다. 물론 대륙보다는 종교적으로 훨씬 자유롭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장점이다.
일본의 신불융합처럼 대만에는 대만식의 불교와 혼합된 도교가 존재하는데, 대만의 미아오에 가 보면 월하노인과 부처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정식 도교라고 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정식 불교라고 보기에도 힘들다. (무엇보다 대만에도 정식 불교가 있다.) 아무튼 저러한 대만식의 도교+불교가 혼합된 종교가 대만에서 가장 대중적인 종교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대만에서 ~~미아오(묘,廟)라고 되어있는 곳은 전부 저 대만식 종교의 사원이다.)
4대 종교 중 기독교는 가톨릭과 개신교가 각각 2% 정도의 점유율을 보이고 있으며, 정교회는 이보다 교세가 더 적다. 그나마 개신교는 한국 국적의 선교사들이 꽤 많이 들어와 있는 편이지만, 가톨릭은 사제의 숫자가 성당의 숫자보다 적어서 1명의 사제가 2~3개 성당, 심하면 공소를 포함하여 10개 이상을 맡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대만의 타이중 교구는 1990년 이후 단 한 명의 사제도 배출하지 못하였다. 또한 가톨릭도 20세기 중후반까지는 대만에서 선교를 하면서 중국어가 능통한 사제들을 키우다가 중국으로 넘어가서 선교할 방침을 세웠었으나, 이마저도 홍콩 반환 이후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선교사를 양성하거나 중국 지하 교회를 활성화 시키는 방향으로 선교 정책을 대선회해 대만 가톨릭 교회는 사제가 더욱 부족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국 교회'라는 어정쩡한 형태로 돌아가거나 지하 교회의 형태로 활동해야 하는 대륙의 교회와는 달리, 교황청과 온전한 일치를 누리는 장점은 매우 강력하다. 당장 바티칸과의 관계만 보더라도, 대륙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인 수준. 정교회는 2001년 세계 총대주교 휘하 홍콩-남아시아 대교구의 지원을 받아 겨우 다시 설립되었으며, 사제는 외국인 단 한 명이고, 신자들도 아직까지는 서양인 신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슬람은 1% 미만의 점유를 보인다. 일단 무슬림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하여 타이베이에 있는 지하철 역들 중 큰 규모의 역에 기도실이 설치되어 있기는 하다.
7.2.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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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색: 무사증 입국시 국민번호 필요
녹색: 무사증 입국시 국민번호 불필요
청색: 도착사증
하늘색: 전자사증
노란색: 중국 본토
회색: 비자 필요
중화민국의 여권은 중국 여권보다 위상이 매우 높다. 무비자로 입국 가능한 국가 숫자만 비교해도 중국이 고작 50개국에 불과한 반면 중화민국 여권은 164개국이나 된다. 물론 조지아[44] , 세르비아[45] , '''노르웨이'''[46][47] 를 비롯한 몇몇 국가들이 중화민국 국적자의 입국을 거부하거나 혹은 까다롭게 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서방 국가 대부분이 대만에 대해서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해준다. 중국이 삶의 질 자체는 여전히 선진국 수준과 한참 멀기 때문에 선진국으로 이주하려거나 불법 체류하려는 중국인이 많은 반면, 대만은 중국 대륙에 비하면 삶의 질이 상대적으로 좋기 때문에 중국보다는 불법 체류율이 낮기 때문이다. 또한 무비자는 상호주의에 따르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은 아직까지 외국인들에게 널리 무비자 입국을 허용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국력 대비 무비자 가능 국가가 너무 적다.
중국에서는 비자를 요구하지만 대만에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외국 국적도 많다. 애초에 중국은 자국 체제에 조금이라도 해를 끼칠 것 같다고 판단될 경우 배척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대만은 이미 체제가 잘 정착된 국가이므로 최소한 서방 국가에 대해서는 거리낄 게 없어서 그렇다. 심지어 외교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018년말 기준으로 6개국(미국, 일본, 한국, 독일, 영국, 호주)에서 대만 여권으로 자동출입국심사를 받을 수 있다.
단 중화민국 국민의 무사증 입국은 두 가지로 나뉘는데 여권에 국민번호가 있냐 없냐의 여부로 나누어진다. 위의 자료에서 초록색으로 표시된 한국 등은 중화민국 여권에 국민번호가 없어도 OK인데, 연두색으로 표시된 미국/유럽국가/일본 등은 중화민국 여권에 국민번호가 있어야 무사증 입국이 된다.[48]
중화민국 국민은 대만에 호적이 없으면 여권에 국민번호가 없다. 자세한 내용은 화교/대한민국#s-2.6 문서를 참고.
‘재한 화교-재일 동포’의 동병상련
7.3. 국제민주연합
중국 본토에는 국제민주연합에 들어갈 만한 성향의 정당이 없기 때문에 우파 정당들의 모임인 국제민주연합에 가입시킬 정당이 없다. 덕분에 중국 국민당은 중화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해당 모임에서 활동할 수 있다.
8. 미수복 영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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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이 주장하는 미수복영토, 분쟁 지역.[49] 현재 대만이 주장하는 영토를 실효지배하는 다른 나라는 14개국에 이르고 있다.[50]
9. 자유무역협정
이게 끝이다. 대만은 정식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자유무역협정이 매우 부족하다.
2020년 11월 15일, RCEP가 최종 타결되었다. 중국 언론들은 대만이 RCEP에서 소외된 것을 두고 "고립된 대만은 미국의 볼모"라든가, "아시아의 외딴 섬" 등으로 대만을 공격하였다. 대만 정부는 TPP 가입에 희망을 걸고 있다. 기사
10. 각 국가별 관계
10.1. 아시아
10.1.1. 중국과의 관계
10.1.1.1. 홍콩과의 관계
10.1.1.2. 위구르와의 관계
10.1.2. 만주와의 관계
10.1.3. 티베트와의 관계
10.1.4. 대한민국과의 관계
중화민국/국민정부 시절부터 유구한 관계를 이어왔고, 대만 역시 한국처럼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으며, 대륙에 있던 중화민국 정부는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고 수장인 장제스는 대한민국의 건국훈장을 수여받는 등 최고 우방의 하나였다. 정치사적으로 2.28 사건 이후 40년 가까이 계엄령 아래 공포 정치가 이루어진 점은 한국의 1960~80년대 정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등 공통점이 있으며, 1992년 대륙 중국과 수교하면서 중국측이 내세운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중화민국과 단교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중국', '자유중국'이자 한국과 같은 처지인 반공 전선의 첨단으로서 '중공'에 대항하는 간접적인 동맹 같은 관계였다. 92년 이후로는 형식상의 대표부를 두고 예전처럼 매우 우방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적대적이지 않고 일부분에 있어서 서로 우호적인 관계에 있다.
민간 부문에서는 반한과 친한 감정이 공존하며, 한류의 소비도 많은 애증의 관계. 특히 야구 분야에 반한 감정이 심한데 한국과 야구를 하면 항상 대만이 진다는 이유로 반한 감정이 좀 있다. 대만에서 양국 간 야구 경기라도 개최되면 관중석에는 한국에 대한 드립이 난무한다.[51]
한국 드라마와 노래는 TV에서 끊이지 않고 방영되며, 꽃보다 할배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한류에 대한 관심이 많은 나라다. 한국 가수의 곡을 모티브로 작곡하는 가수들도 생길 정도.
한 번은 어떤 대만인이 한국 제품을 모두 버리자며 한국 기업의 LCD 모니터를 집어던지는 모습이 보도됐는데 모니터가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해 오히려 그 대만인이 나서서 한국 제품의 우수성을 증명해 버린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52]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당시 편파 판정 논란 직후 "소녀시대, 원더걸스가 와서 사과해도 용서 못 한다!"는 말도 나왔는데, 역설적으로 대만 내의 한류 위상이 어떤지 알려주는 말이 되었다.
대만 내 정치인들이 한국 드립 조성에 일조하기도 한다. 한중 FTA가 타결되고 나서 중국 국민당에서 찍은 광고한국어 번역만 봐도 그렇다. 한중 FTA를 막는 게 아니라 민진당을 선거에서 참패시켜 동력을 상실케 해 ECFA 확대를 빠르게 하자는 것[53] 이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국민당이 민진당한테 관광당했으니 제로 ECFA 서비스 / 투자 협정은 국민당의 지방 선거 참패 이후 비준 동의안이 멈췄다. 그 이외에도 일부 중화민국 사람들이나 황색 언론이 뭔가 이상한 드립을 치면서 한국과 얽어넣기를 시전한다. 반대로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기 위해서 한국 정치인들의 이미지를 끌어오기도 하는데 대표적으로 마잉주와 셰창팅이 서로 자신이야말로 '''대만의 이명박'''이라고 홍보하기도 했으며, 마잉주는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을 벤치마킹하기도 했다. 그래도 대만은 한국의 주요 교역국들 중의 하나이고, 한국 드립과는 별개로 중화민국 정치인들도 TPP 가입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반대로 위에 이런 한국 드립 때문에 일부 한국인의 반대만 감정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특히 대만이 일본에 워낙 친화적인지라, 이런 대만의 친일적인 성향과 엮여 "아, 쟤네들은 친일파니까 혐한하는구나." 하고 단정짓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대만의 대(對)한국 감정, 더 나아가 아예 대만에 관심이 없었지만 요즘 대만으로 여행을 가는 한국인들이 많아져서 옛날보다는 관심이 증가했다.
한국에서 대만(타이완)과 태국(타이)을 헷갈리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1990년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의 교류가 끊기고, 경제적으로도 성장해 굳이 더 이상 중화민국이 롤 모델이 될 이유가 사라져 인지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발음의 태국과 헷갈리기도 딱 좋았고, 단교되면서 홍콩이나 싱가포르만큼 교통요지로 인지도가 높거나 관광이 발달한 것도 아니었으니 존재감 없이 중국의 일부로 묻혀 갔다. 그러나 이념 대립이 심했던 시기를 거친 세대는 대부분 대만을 잘 알고 있다. 이 시기 이른바 '자유 중국'[54] 은 일본과 함께 한국이 롤모델로 삼았던 국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대만을 더 이상 모델로 할 필요가 없어지자 경제 분야에서 대만의 존재감이 희석되었다. 또 대만의 스포츠 실력이 돋보이지 않는 수준인 것도 한몫한다. 인구 2천만 명에 그런 대로 부유한 나라임에도 전반적으로 스포츠계에서 존재감이 없다.[55]
어쨌거나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단교 직후에 비하면 꽤 관심이 생긴 상태. 조립PC 스스로 만들어 본 사람치고 대만제 부품을 안 써본 사람은 많지 않다. 1986년 이후 출생 세대들의 경우에는 대만과 국가 대항 야구 등에서 많이 엮이고, ASUS 등 대만제 부품들을 조립 PC에서 많이 접하게 되어 다시금 인지도가 올라갔다. 특히 전자 부품 면에서는 세계구 급인데, 3대 메인 보드 제조사인 ASUS, MSI, GIGABYTE는 물론 ACER, ASRock, Foxconn 등 유명한 전자 부품 회사들은 모두 대만 회사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반도체 회사인 TSMC 또한 대만 회사이다. 이 분야에서는 상당히 강세를 보인다.
2003년 한국 - 대만 간 여객기 운항이 재개된 이후에는 여행도 많이 간다. 서울(인천, 김포), 부산, 대구, 청주 등에 취항한다. 중화항공, 에바항공,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저가 항공사인 진에어, 에어부산, 제주항공 등과 소규모 항공사까지 모두 운항한다.
또한 모바일 기기 쪽에서는 HTC가 잘 알려져 있다. H가 Hongkong인 줄 알고 홍콩 회사라고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말이다.
일본처럼 한국 화장품에 대한 관심과 인기가 높은 나라 중 하나로 타이베이 시 번화가에는 한국 브랜드의 화장품 가게들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대만 국산 브랜드의 관계자가 "현재 대만에서는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너무 높아 국산 화장품은 만들어도 팔리지 않는다'고 하였을 정도이다, 드럭 스토어에도 상당히 많은 한국 화장품들을 파는 걸 목격할 수 있다.
게임 속 중국인에게 타이완 넘버원을 외쳐 중국인을 도발하는 영상을 번역해 올린영상이 화제가 된 사례도 있다. 자세한건 타이완 넘버원을 참조하자.
에어소프트건 유저에게도 친숙한 나라다. 과거 일본제 에어소프트건의 모방 및 부품 조달에 그쳤지만, 현재는 우수한 리얼리티나 순정 상태에서도 준수한 성능을 뽐내면서 가격은 일본제보다 저렴한 가성비로 통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수 많은 에어소프트건 유저들이 가성비로 인해 대만 기업의 GBB와 전동건을 구매하여 사용 중이다.
10.1.5. 북한과의 관계
좋지 않은 관계이다. 냉전 시절에는 대만이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고 북한 역시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수교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은 국공내전 때도 중국 공산당을 지원했다. 하지만 한국과 대만이 단교한 현재는 과거 만큼 적대적이지는 않은 관계이다.
10.1.6. 일본과의 관계
10.1.7. 몽골과의 관계
10.1.8. 필리핀과의 관계
필리핀은 중화민국을 중국의 유일 합법 정부로 승인했고, 반공 국가로서 서로 수교했으나 1975년 필리핀이 중국과 수교하며 단교했다. 그래도 지금도 서로에게 대표부를 두어 비공식 외교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
거리가 가깝기 때문에[56]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한 편이며, 대만 내에는 13만명 정도의 필리핀인이 체류하고 있는데, 대만 내 외국인 중에는3번째로 많은 국적이다. 대만인들 역시 관광이나 영어 공부 등으로 필리핀을 많이 찾고 있으나, 필리핀에 장기 체류 하고 있는 대만인은 약 4-5천명 정도로, 인접 국가임에도 의외로 장기 체류하는 경우는 드물다.
남중국해 분쟁에서 서로 충돌하기도 하지만 대만은 현재 실효지배 중인 영토를 제외하고는 명목상의 영유권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형편이 안 되고, 필리핀 역시 대만이 실효지배 하고 있는 섬들에 대해서는 대놓고 공격적으로 나오지는 않기 때문에, 영토 문제에서 파생되는 영해 침범에서는 갈등이 있을지언정, 영토 문제로 직접 두 나라가 다투는 일은 드물다.
10.1.9. 인도와의 관계
인도는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어서 대만과는 비공식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인도는 중국과 사이가 나쁜 것과는 반대로 대만과 사이가 매우 좋은 편이다. 양국간에 무역도 있는 편이고 대만 내에 소수의 인도인들도 거주하고 있다. 또한, 양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
2020년에 우자오셰(吳釗燮) 대만 외교장관이 연이어 인도의 언론과 인터뷰하자 중국이 발끈했다.#
인도 집권당인 인도인민당 대변인이 대만국경절인 10월 10일을 축하한다는 포스터를 뉴델리 시내에 걸었고, 13일에는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이 트위터에 '나마스떼' 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타지마할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을 올리며 인도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
10.1.10. 방글라데시와의 관계
1975년 10월까지는 방글라데시와의 수교가 유지되었으나 이후 중국이 방글라데시와 외교를 맺으면서 정치적으로서의 외교는 단절되었다. 다만 여전히 몇몇 노동자 파견 등 사회적 교류는 이어지고 있다. 2004년에 문화 교류를 목적으로 방글라데시에 대만 문화센터가 세워졌지만 2009년에 폐지되었으나 지금도 어느 정도의 문화적 교류는 유지되고 있다. 대만인들은 인도의 뉴델리, 태국의 방콕을 통해 방글라데시와 교류 및 관광, 방문을 한다.
10.1.11. 베트남과의 관계
10.1.12. 태국과의 관계
현재, 약 14만명 정도의 대만인이 태국에 거주하고 있으며, 이것은 재국 대만인 중 4번째로 많은 수치이다. 태국도 대만처럼 친일 성향이 강한 국가이기 때문에, 정치·경제·민간 부문에서 일본-대만-태국 사이의 삼각 교류와 진출이 많다. 이 흐름에 따라 대만의 기업들도 공장을 세우는 등, 동남아 교두보 내지는 생산 기지로서 태국에 다수 진출하고 있다.
태국이 국제 정세의 흐름에 따라서 친중 성향도 보이기 때문에 대만에서는 이것을 경계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그러나 사실 태국은 친중 국가는 아니고, 굳이 말하면 중립에 가까우며, 단지 미국(혹은 일본)vs중국의 패권 구도에서 직접적인 선택을 강요당하는 입장에 있지도 않고(한 쪽을 선택한다고 해서 다른 쪽에 크게 손해를 끼치거나 밉보이는 것이 아니고), 다른 동남아 국가와는 다르게 남중국해 분쟁으로 중국과 직접 충돌하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가까운 경쟁자인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을 선택 내지는 이용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당연히 중국을 끌어들인다고 해서, 태국이 대만을 멀리하거나 압박을 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10.1.13. 인도네시아와의 관계
양국은 인도네시아의 독립 직후 수교했지만, 1950년 단교당하였다. 1967년 인도네시아가 중국과 단교했을 때 재수교는 하지 못했지만 비공식 관계를 수립했으며, 중국-인도네시아 관계의 정상화 이후에도 양국은 우호적이다. 대만은 인도네시아와 경제적인 교류를 포함한 여러 교류가 활발하다. 인도네시아에 거주하는 중국계 인도네시아인들은 대만에 대해 우호적이다. 대만에도 인도네시아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어서 인도네시아인들을 중심으로 모스크가 있다.
대만내에도 수많은 인도네시아인들이 노동자로 와서 일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어의 경우, 대만에서 주요 외국어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중국의 위협을 받으면서 대만은 인도네시아와 협력하기 시작했다.
10.2. 중동
10.2.1.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10.2.2. 이란과의 관계
사우디아라비아와는 대조적으로 좋지 않다. 팔레비 2세 국왕 시절인 1971년, 대만이 국제연합에서 축출되자 단교했다. 이후 호메이니가 집권하며 반서방, 친중화되며 상호 대표부조차 설치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만이 이란에서도 원유를 수입하는 등 민간 부분에서 일정 정도 교류는 하는 편이다.
10.3. 유럽
10.3.1. 바티칸과의 관계
10.3.2. 독일과의 관계
10.3.3. 알바니아와의 관계
알바니아는 대만과 수교한 적도 없으며, 알바니아가 중국과 친밀하여 관계가 그렇게 아주 좋은 편은 아니다. 1971년 알바니아가 이끄는[57] 17개국이 유엔 사무국에 중국의 대표권을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옮긴다는 결의안을 제출하기도 했다.[58] 이 결의안은 결국 통과되었고, 대만은 이것 때문에 상임이사국 자리도 잃고 유엔에서 쫓겨나듯이 탈퇴했다. 다만 지금은 대만이 코소보를 승인했으며 지금의 알바니아는 중국과의 관계는 소원해졌으며 둘다 친미국가라는 점 때문인지 관계는 괜찮아진 편이다.
10.3.4. 북마케도니아와의 관계
유고슬라비아 전쟁 와중에 북마케도니아가 독립하고 나서 1999년 1월 27일 대만과 수교하였다. 구 공산권 국가 중 대만과 직접 수교한 유일한 국가. 하지만 2년 후인 2001년 6월 18일, 천수이볜 총통 취임에 대한 반발을 이유로 중화인민공화국에 북마케도니아를 돈으로 꼬셔서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시켰다. 그래도 구 유고슬라비아 구성국 중에서는 그나마 대만과 관계가 괜찮은 편이다.
10.3.5. 세르비아와의 관계
대만과 세르비아 간 관계는 정말 심각할 정도로 안 좋다. 세르비아는 친러-친중 국가로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59] 대만 여권만 보이면 무조건 입국 금지로 일관해 왔다. 그나마 세르비아가 EU 가입을 위해 2012년 대만 국적자한테 무조건적인 입국 금지는 안 하고 30일 간 체류 가능한 단수 관광비자는 발급해 주는데 '''주 상하이 세르비아 총영사관'''에서만 발급해준다. 대만인들이 타국 비자를 얻기 위해 대부분 방문하는 홍콩이 아니라, 본토인 상하이 주재 영사관이라는 점에서 세르비아는 사실상 여전히 대만인의 입국을 금지한 것과 같은 효과[60] 를 보고 있다.
10.3.6. 러시아와의 관계
10.3.7. 프랑스와의 관계
프랑스와는 외교관계가 없지만, 교류가 많은 편이다. 프랑스는 독일 다음으로 대만과 우호적인 관계이다. 그리고 대만은 은근히 프랑스제 무기를 좀 가지고 있다. 대만이 프랑스제 무기를 구입할려고 하자 중국은 중불관계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반발했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 관할하는 사무처(영사관) 설치에 나섰다.#
10.3.8. 영국과의 관계
영국과는 매우 사이가 좋은 편이다. 영국도 대만과의 경제교류가 많은 편이다. 또한, 영국으로 대만인들이 오는 경우도 많이 있다.
영국령 홍콩 시절 친중파가 일으킨 67폭동 당시 국민당 홍콩-마카오 지부와 친중화민국 세력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국 편을 들어준 바 있다.
2020년 6월 1일, 영국 보리스 존슨 정부에서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에 대한 반발로, 2025년 이내에 대만을 영국이 국가로 인정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기사 영국은 국공내전에서 중국 국민당이 패전하고 국부천대를 한 직후인 1950년, 대만에 대한 국가승인을 취소하고 중화인민공화국만을 인정한 바 있다. 영국령 홍콩 코앞인 선전시까지 중화인민공화국에 떨어지자 영국은 재빨리 대만을 손절한 것이다. 1950년 대만에 대한 국가승인을 취소했던 것은 클레멘트 애틀리(노동당) 총리였는데, 보수당 소속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애틀리 총리의 정책을 75년 이내에 정면으로 뒤집겠다는 전략이다.
10.3.9. 체코와의 관계
체코는 대만과 관계가 없지만, 양국간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체코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대만과의 교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2020년 8월에 체코의 상원의장을 비롯한 정치인 등 대규모 방문단이 유시쿤 입법원장의 초청으로 대만을 방문했다.#
체코 상임의장의 대만 방문에 대해 왕이 외무부장은 무거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9월 1일에 대만을 방문중인 체코 상원의장이 자신은 대만인이라고 밝히며 대만의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밝혔다.# 9월 3일 체코 상원의장은 차이잉원 총통과 회담을 했다.# # 비르트르칠 상원의장은 귀국 후 '대만을 독립국이라고 말하지는 않았다'며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0.3.10. 라트비아와의 관계
상당히 좋은 편이다. 1923년 중화민국과 상호 수교를 했으나, 1940년 라트비아가 소련에 편입되면서 국교가 단절됐다(물론 중화민국과 소련은 당시 수교국이니 모스크바를 통한 간접 교류도 가능했다. 마찬가지로 당시 중화민국은 일본을 통해 조선과 대만(!)도 간접 교류도 했다). 그러다가 1991년 소련으로부터의 독립 직후 대만과 국교를 수립했다. 1994년 라트비아가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면서 단교하였으나, 직후 상호 대표부를 설치하였다. 3년만에 단교한 게 미안했는지 라트비아는 대만이 같은 발트3국에 속하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상호 대표부 관계를 수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현재까지도 라트비아와 대만은 비공식적으로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2019년 라트비아 정부는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대만의 WHO 가입을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10.3.11. 우크라이나와의 관계
10.3.12. 아제르바이잔과의 관계
1998년 아제르바이잔 총리가 대만을 방문했다. 두 나라 간의 교류는 활발하지만 아제르바이잔은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대만과 거리를 두려 하는 편이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통해 문화 교류가 이어지고 있다.
10.3.13. 아르메니아와의 관계
10.3.14. 벨라루스과의 관계
10.4. 아메리카
10.4.1. 미국과의 관계
우선 태평양 전쟁 때만 해도 일본 제국이란 공동의 적을 둔 연합국의 일원으로 중화민국과 미국 간 관계는 동맹으로서 원활했다. 그 후 중국 국민당이 대만으로 쫓겨난 이후에도 대만은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공산 세력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방어선 역할을 수행, 미국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한다. 이 땐 주한미군처럼 타이중 일대에 미군이 주둔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별탈없이 유지되던 동맹 관계는 닉슨 대통령 시절 핑퐁 외교로 미국 - 중화인민공화국 간 관계가 급진전된 이후 큰 격변을 맞이하는데 마침 중화민국이 UN에서 사실상 쫓겨난 뒤 양국 간 동맹 관계는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던 때다. 그 후 중국과 서방 국가들이 서서히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하고 미국 또한 정식으로 중화 인민 공화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시작하는데 중국은 수교 조건으로 대만과의 관계를 끊을 것을 요구한다. 중국의 거대한 시장 잠재성과, 그의 관계 개선으로 소련을 제어하는 외교력을 노리던 미국은 할 수 없이 1979년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한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맺어온 동맹 관계를 감안해 그때까지 대사관 부지를 매각할 수 있게 시간을 벌어주었다. 그리고 미국은 빡친 중국 측으로부터 본국 내 미국 자산을 동결당하는 보복을 당했다.
미국이 '중화민국'과의 국교를 단절한 이후 양국은 서로의 나라에 대표부를 둬 비공식적인 외교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고 타이완 관계법을 통해 미국과의 안보 - 군사적 밀월을 다지고 있다. 그러나 현재 중국의 입김이 강해져(대만으로의 미국 무기 수출에 압력을 가한다든지) 미국의 개입도 예전만은 못해지다보니[61] 미국 내에서도 대만과의 밀월 관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론이 나돌기도 한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중국이 노골적으로 팽창주의를 보이자 미국이 위협을 느끼고 이를 견제하려고 다시금 대만을 견제 세력으로 이용하고 있으며 무기 수출도 제한적으로나마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만은 한국, 일본과 더불어 앞으로도 중국에 대한 견제망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할 것이다.
일단 미국은 양안관계에 현상 유지를 원하고 있다. 대만이 중국에 편입되는 상황도 물론 원하지 않지만 양안 대립이 격화되어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 역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만 독립을 주장해 타이완 해협의 긴장이 최고조였던 천수이볜 총통 시절에도 미국과의 관계는 별로 좋지 않았다.
2016년 11월 7일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가 차이잉원 총통과 직접 통화하고 사절단을 파견하는 등 중국 봉쇄 정책을 본격화할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에 중국만 아니라 버락 후세인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으나, 선거에서 완승(연방 의회 & 주지사 등)한 차기 정권이 저물어가는 정권의 말을 들을 리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해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한이라는 패를 쥐고 동아시아에서의 미국과 한국에 대응하며 외교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도널드 트럼프 역시 대만을 '''하나의 중국'''이라 외치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카드로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중국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양안 관계의 특수성에 대해 암묵적으로 인정해 주는 상황이었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이와는 달리 '하나의 중국'이라는 특수성을 '''미국이 인정해주는 것에 대한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이 아무것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다시 말해 북한 문제에 대해 중국이 국제 사회가 원하는 수준으로 제재하지 않는다면 중국이 원하는 '하나의 중국' 특수성을 국제 사회가 인정해줄 까닭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물론 북한 문제 뿐 아니라 동아시아 및 국제 외교, 위안화 절상 등 미국이 원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하나의 중국이라는 대만 카드를 미국의 이전 정권과는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트럼프가 사용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매우 중대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던 중, 2018년 1월 9일에 미국과 대만 정부 관리의 상호 방문을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대만여행법(Taiwan Travel Act)’, 대만이 세계보건기구(WHO) 옵서버 자격을 회복할 수 있도록 미 국무부가 지원하는 법안이 통과시켰다. 대만여행법은 ▲미국의 군 장성, 행정 기관 관리를 포함한 모든 계급의 관료에 대한 대만 방문, 대만 관리들과의 회동을 허가하고 ▲대만 관리들이 존중을 받는 상황에서 미국을 방문하게 하고, 미국 측 관계자를 만날 수 있게 하며 ▲ 미국 주재 대만 경제문화대표부를 포함한 미국 주재 대만 기구들이 미국 측과의 협력을 돕는 등 주요 내용이 포함되었으며 미중관계에 많은 영향이 있을 전망이다.
참고로 그 전까지는 1979년 제정된 ‘대만관계법’에 따라 그동안 대만 정부 관리에 대해 계급을 불문하고 미국 방문 및 접촉을 제한해 왔다. 대신 타이완성이 미국내의 모든 주와 자매결연 비슷한 것을 맺어 미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참고로 대만 성장은 대만 정부의 장관도 겸하고 있기 때문에 대만 성장의 자격으로 미국과의 비공식적 외교 접촉은 있었다. 이 때문에 대만 국내에선 전혀 의미가 없었던 타이완성''''장을 계속 임명했었다.[62]
하지만 비공식적 방식이기 때문에 여러 제약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현재는 타이완성장을 사실상 임명하지 않는데다가 미국과 직접 교류가 가능해져 저런 식의 간접외교는 옛날얘기가 되었다.[63]
군사적으로도 2018년부터 15년 동안 중단됐던 방위산업 콘퍼런스를 해마다 개최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미국측은 39년만에 대만에 다시 미군을 주둔시켰다.# 대단한 건 아니고 미국 외교공관을 지키는 해병대가 일부 들어온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중국에 큰 압박이 되고있다.
만약 중국이 대만병합을 위해 침공을 하게되면 현실적으로 타이베이에 있는 미 공관만 깔끔히 빼놓고(...)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결론적으로 미군을 공격하는 꼴이 되는 상황이다. 미국의 공관역할을 하는곳이 타이베이 다안역 인근에 있다. 당연히 타이베이시내 한복판인데다가 타이베이 자체가 면적이 협소하기 때문에 만약 중국이 타이베이에 포격을 한다면 당연히 미 공관도 피해를 입게 된다. 통상 공관이 공격을 받으면 자국 영토에 대한 침략으로 간주하는데 거기에 공관을 지키는 미군에 조금이나마 상처를 입힌다면 그때부터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피할길이 없어진다.
게다가 중국입장에서는 대만을 정복하는데 타이베이를 빼놓고 갈수도 없는 노릇이라 당시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었다. 물론 대만과 미국 양국은 중국의 반응에 대해 거의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실제 미 공관에 병력이 주둔하면서 중국도 항모등으로 해상봉쇄는 언급할지언정 대만영토를 직접타격한다는 언급은 거의 하지 않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중국이 대만을 제압하려면 대규모의 상륙전을 해야되는데 현재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도 하기 힘든일을 중국이 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중국이 분노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대만을 많이 인정하고 있으며, 이례적으로 엘살바도르의 대만 단교에 대해서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
또한 17개국과 수교하고 있는 대만과 단교하는 국가는 미국과의 관계, 지원을 재검토하는 법안을 발의할 것으로 보인다. #
2019년 베네수엘라에서 벌어진 2019년 베네수엘라 정치 위기 과정에서, 미국 백악관이 표시한 세계지도에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을 '''분리해서 표시'''하는 일도 발생했다. 기사 대만 네티즌들은 '''"백악관도 불매운동 해봐라"'''며 조롱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가 6월 1일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로 분류한 것이 확인되었다. (The U.S. Department of Defense has included Taiwan on a list of “countries”)기사 다른 경우와 달리, 국가 공식문서 특히 국방부 문서에서 명백히 '국가'로 표기한 것이므로 의미가 크다.
2020년 3월 11일 대만 타이페이 법안이 미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미국은 대만의 국제기구 가입을 최대한 돕고, 중국의 단교 압박을 견제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단,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의식하여 비독립국 지위에서 최대한 돕도록 했다.[64]
2020년 7월 3일에 대만은 2017년에 폐쇄했던 주 괌 타이베이 경제문화판사처[65] 를 다시 설치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대만이 괌과 수교했다면서 이 문서의 수교국 목록에 괌을 끼워넣으려고 하는데 수교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괌은 독자적인 외교권이 없으며, 한국도 괌에 외교공관을 두고 있지만 "괌과 수교했다'고 하지 않는다. 결정적으로 경제문화판사처는 서울에 설치한 타이베이대표부와 거의 동급의 기관이므로 괌이 독립국이라고 하더라도 수교했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괌에 있는 공관은 본토에있는 미국주재 외교기관의 산하 기관일 뿐이다.
미국측은 2020년부터 타이완 동맹 보호법, 대만 보증법을 통과시켰다.
10.4.2. 캐나다와의 관계
10.4.3. 과테말라와의 관계
10.4.4. 니카라과와의 관계
10.4.5. 온두라스와의 관계
10.4.6. 벨리즈와의 관계
10.4.7. 아이티와의 관계
10.4.8. 파라과이와의 관계
10.4.9. 세인트키츠 네비스와의 관계
10.4.10. 세인트루시아와의 관계
10.4.11.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과의 관계
10.5. 오세아니아
10.5.1. 팔라우와의 관계
10.5.2. 나우루와의 관계
10.5.3. 투발루와의 관계
투발루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인 1979년 대만과 수교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2019년 솔로몬 제도, 키리바시와 수교하며 투발루에도 인공섬 건설 지원을 조건으로 수교를 제안했으나 대만과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거절했다. 나우루도 그렇고 팔라우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고, 수출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관광업으로 큰 이득을 볼 것도 아닌 오세아니아의 작은 도서국가인 이상[66] 중국과 수교한다고 해서 단기적인 경제지원 이외에는 특별히 이익을 볼 게 없으니 대만의 원조를 받고 대만과 외교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게 현실적으로 이득이긴 하다.
10.5.4. 마셜 제도와의 관계
10.5.5. 파푸아뉴기니와의 관계
리덩후이 총통 시절 원래 중화인민공화국의 수교국이었던 파푸아뉴기니에 이른바 은탄외교로 손을 내밀어 1999년 7월 상호 국교를 수립했다. 그런데 파푸아뉴기니에서 대만과의 수교를 주도한 빌 스케이트 총리가 대만과의 국교수립 대가로 15억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이 터지며 전격 사임했고, 후임 총리가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다시 수교를 해버리면서 16일만에 단교당해버렸다. 이후 2006년 천수이볜 총통은 파푸아뉴기니와의 재수교를 할 수 있게 다리를 놓아주겠다는 브로커를 사칭한 사기꾼들에게 속아 한화로 약 300억원을 날리는 호구짓을 해버려 흑역사를 남겼다. 다만 상호 대표부가 설치되어 있는 등 민간 교류는 여전히 활발한 편이다.
10.5.6. 호주와의 관계
호주와도 우호적인 관계이다. 호주 정부는 1941년 중화민국과 수교해왔으나 1972년 이웃나라인 뉴질랜드와 함께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그러나 여전히 무역파트너로서 민간 차원으로 협력적 관계를 유지중이다. 호주에도 대만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호주에는 대만 경제사무소, 대만 타이베이 시에는 호주 경제사무소가 외교공관 역할을 하고 있다.
10.5.7. 뉴질랜드와의 관계
호주보다는 사이가 안 좋다. 1949년 대만을 승인하였으나 1972년 호주와 함께 중국을 국가로 인정하면서 대만과는 단교하였다. 뉴질랜드는 자국 경제 발전 및 유학생 유입을 위해 비교적 친중적인 행보를 띄고 있고 이 때문에 대만과의 국제적 관계는 호주만큼 가깝지 않다. 무엇보다 뉴질랜드는 대만 외교관 여권 소지자의 입국을 거부하는 나라이다. 대만인들에게는 비자 발급도 까다롭게 굴고, 무비자 입국이 불가능한 중국 국적자들에게는 허용된 자동출입국심사(E-gate) 역시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대만인들에게는 적용시키지 않았다.
단 민간적인 차원에서의 교류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대만 역시 뉴질랜드의 경제파트너 중 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웰링턴과 오클랜드에 대만 경제무역사무소가 있고, 타이베이에 뉴질랜드 상공회의소가 위치해있다.
10.6. 아프리카
10.6.1. 에스와티니와의 관계
10.6.2. 소말릴란드와의 관계
10.6.3.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관계
1949년 상호 승인하고 국교를 수립했으나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국가적 인종차별 정책을 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여느 아시아 국가들이 그랬듯이 대만도 남아공을 소원하게 대했다. 그러다가 대만이 저우언라이를 필두로 한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력을 바탕으로 한 외교공세에 수교국을 점차 잃어가자 남아공에도 손을 내밀어 1969년 남아공에 영사관을 설치했고 1971년 대만이 UN에서 축출된 후로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인정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한 뒤 활발한 교류에 나섰다. 그 대가로 대만인은 남아공에서 백인급으로 대우받아 우대를 누렸으며 남아프리카 항공이 타이베이 중정 국제공항과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을 잇는 항공노선을 운항하기도 하였다. 이에 더불어 군사적인 부문에서는 이스라엘과 함께 3개국간에 핵무기 기술을 공유하기도 하였다.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이 1994년 붕괴하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양국관계는 이전의 우호적인 관계에서 대면대면한 관계가 되었다. 특히 차별의 피해자였던 흑인 계층에서 아파르트헤이트를 인정하고 그 대가로 백인급의 대우를 받은 대만인들에 대한 반발이 컸다. 이에 대만은 당시 남아공에 경제 원조 및 당시 남아공의 여당인 아프리카 민족회의에 여러차례 기부를 하며 외교관계 유지에 힘을 썼었다. 하지만 만델라는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게되었는데 당시 남아공의 핵심 외교, 교역창구중 하나였던 영국령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 대만과의 외교관계로 인하여 남아공이 홍콩에서 더이상 외교, 경제활동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홍콩에서의 외교, 경제활동을 포기할 수는 없었던 지라 1996년 12월 남아공은 대만과 1998년 1월 1일에 단교 및 중화인민공화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할 것임을 발표하였고 1998년 1월 1일부로 남아공이 중국과 수교하며 양국의 외교관계는 단절되었다. 하지만 만델라 대통령은 과거 대만과의 우호관계 및 경제교류를 고려하여 단교직후 대만과 대표부 설치에 합의했다. 타이베이에 주 타이베이 남아공 대표부가 설치되어 있으며 프리토리아와 케이프타운에 각각 주 남아공 대만 대표부가 설치되어 있고, 많은 경제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11. 지역별 관계
- 미국-대만 관계
- 한국-대만 관계
- 북한-대만 관계
- 양안관계
- 대만-홍콩 관계
- 대만-티베트 망명 정부 관계
- 중화권-위구르 관계
- 대만-일본 관계
- 대만-베트남 관계
- 사우디아라비아-대만 관계
- 대만-러시아 관계
- 대만-우크라이나 관계
- 대만-벨라루스 관계
- 몽골-대만 관계
- 독일-대만 관계
- 바티칸-대만 관계
- 대만-아이티 관계
- 파라과이-대만 관계
- 대만-과테말라 관계
- 대만-니카라과 관계
- 대만-온두라스 관계
- 대만-벨리즈 관계
- 호주-대만 관계
- 대만-팔라우 관계
- 대만-나우루 관계
- 대만-마셜 제도 관계
- 대만-투발루 관계
- 캐나다-대만 관계
- 대만-소말릴란드 관계
- 대만-에스와티니 관계
- 대만-세인트키츠 네비스 관계
- 대만-세인트루시아 관계
- 대만-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관계
12. 관련 문서
13. 외부 링크
[1] 단 이 자료는 일부 오류가 있다. 중화민국과 처음부터 수교하지 않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것이 여기에 올라와 있기도 하다.[2] 중국이 분단되기 전 중화민국과 수교한 이후, 그 수교를 계속 이어간 나라는 바티칸(1942), 온두라스(1941), 과테말라(1933), 니카라과(1930)(단 니카라과는 1985년부터 1990년까지 중국과 수교했었음)이다. 다른 나라는 어찌 되었든 정부를 타이베이로 이전한 후에 수교한 것이다.[3] 하지만 이 점 덕분에 그나마 15개국이라도 수교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대부분의 나라라면 이름도 모르고 신경도 쓰지 않을 소국이나 빈국들에 막대한 원조를 하며, 영향을 확대하고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물론 막대한 원조라는 게 어디까지나 그 나라들의 입장일 뿐, 대만 입장에서는 없어도 그만인 정도의 작은 금액이지만, 저들 나라는 대만의 일개 중견기업보다도 총생산이 낮은 경우도 많다보니, 그 정도의 지원만 있어도 전국민의 삶의 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들 입장에서도, 어차피 영향력 자체가 작아서 굳이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하지 않아도 딱히 보복이나 제재를 받을 건덕지도 없고 설령 받더라도 별로 달라지는 것도 없기 때문에, 중화민국과 수교하는 것이 서로 win-win하는 전략이 된다. 사실 리덩후이 정권 때 이것이 잘 먹혀서 여러 나라가 중공과 단교하고 중화민국과 수교했다. 이 덕에 수교국이 지금의 두 배인 30개국에 근접했으나, 그 뒤로 중공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당해서 15개로 준 것이다.[4] 대만은 군인, 민간인 관계 없이 사형판결을 하면 총살형로 집행한다. 군인일 경우 소총으로 총살형, 민간인일 경우 권총(리볼버)으로 총살시킨다. 유럽연합은 사형을 시행하는 국가하고는 무역협상에 제한을 둔다. 법률분야 협상이라면 아예 금지이다. 그래서 일본-유럽연합 간 EPA(경제협력협정. FTA 대비 개방률이 낮다.)를 맺을 때에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사형 집행을 줄이고 2030년까지 사형 실질적 폐지를 공약했다.[5] 설상가상으로 CPTPP에 미국이 가입할 가능성이 있긴 하지만 문제는 중국까지도 가입 의향을 표명했다는 것이다. 중국은 만약 가입 시 하나의 중국 원칙을 들어 대만의 가입을 반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6] 단, 만약에 이럴 경우 중화민국 역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있기에 영국은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필연적으로 끊어야한다. 사실, 이렇게 된다면 중화인민공화국쪽에서 먼저 영국과의 국교를 단절하게 될것이기에 대만과의 수교는 필연적으로 중국과의 단교를 의미한다. 그런데 영국이 1950년에 중국과 수교를 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그 당시 영국령이었던 홍콩 때문이었다.[7] 알다시피, 현재의 중국(즉 중화인민공화국)은 1971년 10월 25일 통과된 유엔 총회 결의 제2758호에 의거 이전의 대만(즉 중화민국)이 가지고 있던 모든 지위를 승계받았다.[8] 당연히 중국 입장에서는 속 터지는 상황이다. 중국입장에서는 단단히 북한에게 호구가 잡힌셈이다. 실제 중국의 외교관계자들 입에서 이제 북한은 자신들의 손을 떠났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하고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는 북한이 깡패 국가라는 점과 북한 본인들도 중국이 자신들을 쉽게 내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객기를 부리는 것에 가깝긴 하다. 참고로 한국도 미국에 대한 반감을 표하기는 하지만 그건 주로 민간 차원에서 나오는 것이며 기껏해야 일개 정치인들 수준까지만 발언이 나오지 정부, 국회 전체 차원에서는 2002년경 발생한 여중생 장갑차 압사사고와 같은 심각한 상황이 아닌이상 동맹국임을 감안해 가급적 말을 아끼고 있다. 반면 북한은 혈맹이라고 얘기하는 중국에 국가차원에서 반중감정을 표출하고 있다. 자신들이 거의 신성시 하는 '선대'의 유훈에 아예 중국이 철천치 원수라고 명시해 놓고 이를 대놓고 떠들고 다니기 때문이다.[9] 물론 이들 중 상당수가 빈민층이라 수입품을 살 여력조차 없지만, 이들 중에 단 1%에만 물건을 팔 수 있어도 매우 많은 수익을 거둬들일 수 있다. 실제 중국으로 간 한국 연예인들도 중국 TV에서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의 시청률이 2%~3% 만 나와도 한국의 어지간한 연예인들보다 출연료가 더 많다고 한다.[10] 미국 공관을 지키는 해병대일부. 미국은 전통적으로 자국의 외교공관 방위를 해병대에 맡기고 있다. 10명 가량의 소수병력이긴 하지만 어쨌든 미군이다.[11] 물론 1955년부터 1979년까지 있었던 주대만미군(3만 명 규모; 1980년 전원 철수)에 비하면 그 규모는 너무나도 초라하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이 파기되어 없는 상황이기에 미국 공관 등을 회피해서 타격할 수 있다면 미국의 눈치를 크게 보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타이베이의 면적이 너무 협소해 미 공관만 빼 놓고 공격하는게 거의 불가하다. 아무리 정밀타격을 한다해도 오차는 분명 존재한다. 실제 과거 타이베이 미 공관에 미군이 주둔한다는 소식을 듣고 중국이 굉장히 예민한 반응을 하기도 했을 정도로 현재 해병대 일부 병력은 중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이다.[12] 그나마 과거 국민당 시절에는 중국과의 교류가 어느정도 활성화 되면서 경제적으로라도 협박이 가능했지만, 차이잉원 총통의 재선 이후부터는 대만과 중국의 교류가 서서히 끊어지기 시작했고, 거기에 코로나 시국이 더해지면서 현재는 대만-중국간 교류가 아예 없다시피한 상황이다. 즉 2020년 시점 대만의 입장으로서는 중국과의 관계를 끊더라도 딱히 손해볼게 없는것.[13] 앞선 각주의 서술 내용에서 간과한 것은 대만 경제가 중국에 매우 종속적이라는 것이다.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 다음으로 중국경제에 의존도가 높으며, 대만 전체 무역교역량의 25%가 중국과의 교역에서 나온다. 물론 몇 년전까지만 해도 중국에서 사실상의 대만여행 제재조치를 취하면 경제가 휘청했었다. 하지만 차이잉원 정권하에서는 중국 관광객들이 없어도 이제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가 되었는데 이 정도도 대단한 거고, 이 상황에서 경제 성장률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경제구조를 바꾸는 건 단시간에 되는 일이 아니라 진짜로 대놓고 교류를 끊을수는 없다. 게다가 경제성장률 자체는 증가했긴 했는데, 문제는 대만의 경제구조 특성상 그 성장의 과실이 거의 죄다 하청기업 몫으로 돌아가고 노동자 및 국민들에겐 제대로 배분되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불황은 12월 차이잉원 총통 지지율의 7월 대비 폭락(-10%p)으로 돌아온 한 요인이 되었다(45%에서 35%로 감소).[14] 점수 스케일은 1~10, 1점=어떠한 위험도 감수할 가치가 없다, 10점=높은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CSIS-P] 순서대로 6.92 - 6.88 - 6.69 - 6.38[CSIS-O] 순서대로 8.86 - 8.71 - 8.60 - '''7.93'''[15] 애초에 한, 일은 미국의 핵심동맹인 5개의 눈 바로 아래등급으로 보는게 중론이며 아예 5개눈과 동등하게 보는 경우도 많다.[16] 미국 입장에서도 대만을 버린다는 것은 곧 중국의 확장을 용인하는 꼴이 되며 반대로 중국이 북한을 버린다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 확장을 용인하는 꼴이 된다.[17] 미국의 경우 의회의 힘이 대통령의 권한보다 더 세다.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친중성향의 미국대통령이 나타나 대만관련법들을 무시하려고 들면 미 의회와의 대립이 불가피하다. 거기에 미국의 여당은 대통령 의견에 마냥 따라가는것만도 아니기에 이에 반발해 여당이 등을 돌리게 되면 대통령은 고립무원의 상태가 되어버린다.[18] 나중에는 상하이에도 설치했다.[19] 이마저도 홍콩의 판사처의 경우 영국이 1950년에 중화민국의 승인을 취소해 버렸기 때문에 '중화여행사'라는 안습한 이름으로 1966년에 설립되었다가 2011년에 중국이 대만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격상시킨 것이다.[20] 세인트루시아 대사관은 타이베이 101 인근에 있는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에 있었는데, 언제인진 알 수 없지만 대사관특구로 이전했다. 타이베이 세계무역센터는 한국 대표부가 입주해 있는 건물이기도 하다.[21] 중화민국 대내적으로는 타국 주재 대표부에 파견한 사람도 그냥 대사라고 부른다.[22] 단 이 자료는 일부 오류가 있다. 중화민국과 처음부터 수교하지 않고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 것이 여기에 올라와 있기도 하다.[23] 소련의 후계 국가인 오늘날의 러시아 연방과 중화민국은 서로의 지역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24] 영국은 홍콩 문제 때문에 냉전 초기부터 친중 노선을 걸었고 가오슝에 있던 영국영사관은 1972년에 폐쇄되고 관광지로 이용중이다.[25] 한번 지워졌던 분야인데, 수카르노가 독립을 선포하자마자 바로 즉시 수교한 나라 중 하나가 중화민국이다. 1945년 독립선포 즉시 수교했다가 1950년 단교. 그리고 그 이전 네덜란드령 시절에 설치된 영사관이 있었다.[26] 위에 링크된 도표에는 인도네시아와 수교했다는 얘기가 없지만, 중국어 위키백과의 이 문서에는 인도네시아가 1950년에 중화민국과 단교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27] 1996년에 재수교(3차).[28] 베트남 전쟁으로 나라가 아예 멸망했다.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그대로 통일국가로 전환한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과는 훗날 비공식관계 수립.[29] 이 해에 미국은 대만에 미국-대만 상호방위조약(미중공동방어조약)에 대한 파기 통보를 했고, 1979년 말에 주대만미군 3만명을 전원 철수시킨 뒤 대사관도 폐쇄했다.[30] 아시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대만과의 외교관계를 단교한 국가이다.[31] 라트비아와 단교 직후 상호대표부를 설치하였고, 라트비아의 중개로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와도 상호 대표관계를 수립했다.[32] 11월 3일에 수교해서 11월 10일에 단교.[33] 2008년 1월 20일 단교. 마잉주 총통은 3월 15일 선거로 뽑혀 5월 20일에 취임하였으므로 천수이볜 시절이다.[34] 중화민국 수립전 청나라 시절인 1909년부터 외교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는데 중화민국 역사상 유일하게 100년 이상 외교관계를 이어오던 국가였다.[35] 그나마 대만의 수교국들 가운데 도시철도를 운영하던 마지막 국가였다. 대만의 나머지 수교국들이 도시철도조차 없는 저개발국임을 보여주는 단면.[36] 중화민국은 1949년 12월 이전까지는 명실상부한 중국 대륙의 정통 정부였으니 UN 창설시에는 이게 당연했다. UN 헌장의 창립 회원국 목록을 보면 REPUBLIC OF CHINA(중화민국)가 명시되어 있다.[37] UN총회는 7일에 걸쳐서 이뤄지는데, 중화민국의 상임이사국 박탈 투표는 '''첫날인 월요일'''에 했다. 저우수카이 외무장관이 대만의 UN 탈퇴를 선언한 것은 4일 후인 금요일이었다.[38]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라트비아, 한번 단교를 했던 니제르,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라이베리아 등과 수교를 맺었다.[39] AIIB의 경우, 이미 대만에서 참여 의사를 밝혔지만 가입명으로 제시한 '중화 타이베이'(Chinese Taipei)가 하나의 중국 원칙과 상충한다는 이유로 중국이 거부한 바 있었다.[40] 이미 1980년 올림픽부터 적용되었으나 이 해의 동계 올림픽에는 이에 대한 불만으로 불참하였으며, 하계 올림픽은 다른 나라의 집단불참에 동참하여 나타나지 않았던 것[41] 단 대만 관중들이나 선수들은 원래 가사대로 부른다.[42] 우리나라로 치면 일제강점기 시절, 1936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손기정과 동메달을 수상한 남승룡이 어두운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모습이다.[43] 애초에 올림픽에 채택되지 않은 종목으로만 구성된 비인기종목대회로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아예 해서 중계도 안 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다.[44] 압하스, 남오세티야 문제 때문에 대만 여권 소지자의 입국을 거부하고 있으며, 조지아 전자비자 사이트에도 국적 선택란에 대만이 등록되어 있지 않다.[45] 코소보 문제 탓에 중화민국 국적을 소유한 사람의 입국을 까다롭게 한다. 다만 이전까지 알려진 바와는 달리 모든 대만인을 입국을 거부하거나 까다롭게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세르비아가 친중 국가 중 하나다. 게다가 대만은 유럽에서 친구가 없다시피해서.. 밀로셰비치 시절에는 대만인은 세르비아에서 진짜로 입국 거부였다.[46] 노르웨이는 이미 1950년에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타이베이 대표부 조차도 소련이 붕괴하고 난 1992년에서야 노르웨이에 설치하는 데 성공했을 정도.[47] '''취업 비자(H비자)는 아예 발급이 안 된다'''. 유학비자(F비자)도 2013년에서야 허용됐다. 노르웨이도 솅겐 조약 가입국이기 때문에 다른 가입국을 통한 출입국은 비교적 자유롭지만, 대만인이 다른 EU나 EFTA 국가를 거치지 않고 노르웨이에 직항으로 입국할 경우 무비자 기한은 15일로 제한된다.[48] 사실 전세계적으로 볼 때, 중화민국 국민의 무사증 입국 시 국민번호를 요구하지 않는 국가들이 특이한 사례이다. 아시아에서는 대표적으로 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마카오 등이 국민번호를 요구하지 않는다. 유럽의 경우 아일랜드, 알바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안도라 이렇게 4개국만 국민번호를 요구하지 않는다. 중남미의 경우 대표적으로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벨리즈, 파나마, 아이티,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칠레 등이 국민번호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 이외 지역은 무사증 입국이 가능하더라도 국민번호를 요구한다.[49] 대만이 주장하고 북한이 실효지배하는 지역이 여기서는 누락됐다. 자세한 것은 백두산 참조. 또한 볼쇼이우수리스키 섬(헤이샤쯔 섬)의 동반부 지역, 베트남이 실효 지배하는 통킹만의 섬 또한 여기서 누락됐다.[50] 스프래틀리 군도(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와 백두산을 포함하고 중화민국이 2012년 국가로 인정한 몽골을 포함한 수치, 스프래틀리 군도를 빼도 지도에 나오지 않은 백두산(북한)과 백룡미도(베트남)를 합쳐 12개국이 된다.[51] 어느 나라든 국가 대항 경기가 열리면 각종 드립이 난무하지만, 그것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관심이 많은 나라일수록 드립도 많아진다. 실제로 대만의 한국에 대한 드립은 그 종류가 다양한 편이다.[52] 영상을 보면 알겠지만, 던져서 멀쩡하니까 '''3명이 망치를 들고 친다.''' 그럼에도 상처만 나고 '''안 부서졌다.'''[53] 자유무역협정 항목에 "경쟁적 자유화 효과" 문단 참고.[54] 당시에는 중화민국을 대만 대신 자유 중국이라고 불렀다.[55] 영토나 인구 면에서 비슷한 규모인 네덜란드가 축구와 빙상 등 각종 스포츠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과는 대조된다.[56] 타이베이에서 마닐라까지 약 2시간-2시간30분 정도 걸린다.[57] 사실은 영어 알파벳 순서대로 했을 때 처음이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이 더 앞서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여기 동참하지 않았으니 동참한 나라 중에는 맨 처음.[58] 참고로 이당시의 알바니아는 공산주의 사회였으며 지금의 북한 이상으로 쇄국정책을 펼치던 곳이였다. 자세한건 엔베르 호자 참조.[59] 일단 세르비아는 유고슬라비아 내전의 전쟁범죄 때문에 서방으로 부터 욕을 엄청 먹고있는 나라다. 그래서 자신을 옹호해주는 중국과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는 편이다. 다만 국민들의 입장은 대놓고 친러, 친중이라 보긴 어렵다.[60] 다만 마잉주 정권 때처럼 양안관계가 좋았을 때는 저렇게 해서 대만인들이 세르비아를 자유로이 여행할 수 있었다.[61] 미군이 확실히 개입을 한건 1996년 리덩후이 후보의 당선을 막기위해 중국이 미사일 발사 훈련으로 무력 시위를 하자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대만 관계 법으로 항모 전단을 파견했다. 이 당시만 해도 연안 해군 수준에 머물렀던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은 결국 이 항모 전단의 무력 시위에 깨갱해 한 발 물러섰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물건이 랴오닝급이다.[62] 물론 타이완성장의 역할만 한 건 아니었고 무임소장관을 겸하게 해서 평소에는 정부에서 일했다.[63] 다만 대만총통이 대만의 국가원수 자격으로 미국을 가는건 아직은 안 된다. 총통이 미국을 가려면 개인자격으로 방문해야 한다.[64] 미국 입장에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파기하는건 정말 최후에 쓸 수 있는 카드이다. 미국의 기업들도 중국에 많이 투자를 하고 있는데 이 원칙을 포기하여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단절된다면 중국정부는 이를 빌미로 중국내 투자되어있는 미국의 자본을 모두 몰수해 버릴수도 있다. 아직 중국은 엄연히 사회주의 국가라 이런짓을 해도 미국에서는 딱히 손 쓸 방법이 없게된다.[65] 영사관 같은 개념이다.[66] 많은 나라들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대만과 단교하는 이유는 세계 GDP 2위를 차지하고, 인구가 14억인 거대한 중국시장, 중국 관광객 때문인데 팔라우처럼 이런 나라들은 그럴만한 수출품도 없고 관광업이 주력 사업도 아니니 굳이 중국과 수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