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홍/활동
1. 선수 경력
1990년 드래프트에서 LG 트윈스에 지명되었다. 이 해의 드래프트는 서울출신의 국가대표 출신인 거물급 대졸 3루수 두명이 화제가 되었다. 한명은 건국대 출신의 송구홍, 또 한명은 한양대 출신의 황일권. 그러나 대체적인 평가는 송구홍이 황일권보다는 한 수 위. 그래서 모두들 예상하기를 주사위에서 승리한 쪽이 송구홍을, 패한 쪽이 차선책으로 황일권을 가져가리라 예상했다. 그리고 운명의 연고지 우선지명의 날. 당시 합의대로 두 팀의 대표는 주사위를 굴렸고 주사위의 결과는 역시나 LG 트윈스의 승리.[1] 결국 LG 트윈스는 예상대로 송구홍을 지명했고, OB 베어스는 황일권을 지명했다.[2]
전년도 우승팀 프리미엄에 금상첨화의 기대를 받고 입단했건만 첫 해에는 프로 적응에 한계를 드러내며 타율 .236, 2홈런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었다.[3] 그러나 입단 2년만인 1992년 타율 3할과 더불어, LG 트윈스 역사상 최초로 20-20 을 달성했고 3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4] 이 시기에 얻은 별명이 로보캅. 특히 당시에는 LG가 2년 연속으로 페넌트레이스 하위권을 맴돌던 때여서 송구홍의 활약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다음해인 93년에는 이종열이 성장하면서 유격수로 자리를 옮겼고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에서 고생하면서도 역시 3할대 타율을 기록하며[5] LG의 페넌트레이스 4위와 3년만의 가을야구 진출의 1등공신이 됐다.[6] 문제는 1993년 시즌을 마치고 현역으로 입대했는데 발가락 피로골절로 귀가조치, 치료 후 재검을 받기 위해 1년을 쉬었다. 그 사이 원래 포지션인 3루는 이적한 한대화와 백업으로 성장한 이종열, 유격수는 유지현이 차지해버렸다. 결국 94년 우승은 밖에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7]
그리고 야심차게 복귀한 95년, 그는 인생 최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리그에서 2위를 차지한 LG는 롯데 자이언츠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었고, 각각 한경기씩 주고받으며 1:1, 그리고 운명의 3차전, LG는 7회까지 6:3으로 앞서고 있었다. 7회말 1사 만루 상황만 넘기면 거의 승리가 보이는 상황. LG의 투수 김용수는 4번타자 마해영을 3루수 땅볼로 유도했고, 송구홍이 3루 베이스를 밟고 느린 마해영을 1루에서 잡았다면 이닝이 끝났을 상황이었지만...
송구홍은 확실히 무실점으로 막을 의도였는지 공을 곧장 홈으로 송구했고, 그 공은 3루주자 김민재의 등을 맞추고 말았다. 그 사이에 2루에 있던 전준호마저 홈인. 1점도 안 주려다가 2점을 줘 버렸다. 결국 LG는 롯데에게 패하여 한국시리즈 진출이 좌절되었다.
방위 복무가 끝난 96년에 2루수로 정착하지만 떨어진 타격능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이상훈의 해외진출로 인한 투수진 보강의 일환으로 1997년 말 이병석과 함께 해태 타이거즈로 해태의 신인 투수 2명과 2:2 트레이드 되었다.[8] 당시 해태 타이거즈는 이종범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선택으로 본래 아마야구 시절 유격수 포지션을 맡았던 김종국을 유격수로 보내게 되어 내야진에 공백이 생기게 되었고 이를 보강하기 위해 당시 검증된 내야수 중 한 명인 송구홍을 영입했던 것. 해태 이적 후 80경기 동안 .288의 타율과 .336의 출루율을 기록하면서 당시 1번이었던 장성호의 뒤를 받혀주는 전통적인 2번 타자의 역할을 쏠쏠히 해냈으나 허리부상으로 인해 도중에 시즌을 마감해야 했다.[9] 99년에는 임창용의 이적으로 인한 계투진을 보강하고자 박재용과 함께 오봉옥,박계원과 맞트레이드 되어 쌍방울 레이더스로 이적하게 되었고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했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난 2000년 LG 트윈스로 다시 돌아와 32세에 은퇴, 이때 00번을 달고 마지막 선수 생활을 보냈다.
야구를 즐기고 항상 전력을 다해 플레이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아쉽게도 센스하고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3루수로 골든글러브를 탄 1992년에도 20개가 넘는 실책을 기록했을 정도. 김주찬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전형적인 타고난 신체능력에 의존한 몸야구 스타일. 게다가 유연성이 떨어지는 편이었음에도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로 인해 부상을 자주 겪고 유리몸화 되면서 신체능력이 급감하자 더 이상 반등하지 못했다. 군대문제로 인해 1년을 통으로 날리고 부상이 겹친 데다 야구센스로 커버하는 타입도 아니다보니...
결과적으로, 송구홍은 가장 절정의 기량을 지녔던 시기에 LG가 우승하던 순간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1995년의 처참한 실수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당시의 LG팬들은 그가 보여줬던 허슬 플레이를 잊지 못한다. 루상에선 언제나 전력질주와 몸을 날리는 슬라이딩을 시도했으며[10] 아슬아슬한 타구엔 항상 몸을 사리지 않고 다이빙캐치를 시도하는 등 유니폼에 흙이 지워질 날이 없었을 정도.[11] 몸에 맞는 공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항상 싱글벙글 웃는 표정을 보이곤 했는데 이는 그가 야구를 진심으로 즐겼기 때문이고 이런 모습 덕분에 짧은 전성기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기억에 강하게 자리 잡았다. 90년대 LG 선수들 중에서 추억보정이 가장 깊게 박힌 선수.
2. 지도자 경력
2.1. 지도자 1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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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연수를 받고 이광환 체제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서, 꾸준히 1군과 2군을 오가며 다양한 보직의 코치를 했지만 실적은 없다. 2007년 시즌 도중 굉장히 안습한 일화가 있는데, 당시 보직은 수비코치였지만 8월 15일 롯데와의 사직 원정경기에서 3루코치 노찬엽이 부친상으로 결장하자 노찬엽을 대신하여 3루코치로 출장하였고, 벤치의 사인을 선수에게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경기 도중 김재박 감독에게 불려가 질책을 당하는 장면이 중계 카메라에 잡힌 적이 있었다.
박종훈의 뒤를 이어 김기태가 LG 트윈스 감독이 되면서 2011년 10월 14일 LG 트윈스의 작전/주루 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다만 코칭 능력에 대해서는 그리 평가가 좋지 않은 편이었다.
3. 프런트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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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영팀장 시절
2012 시즌 종료 이후 그룹 차원의 대대적인 감사로 프런트 팀장급이 전면 교체되면서 운영팀장으로 발령받았다. 본래 백순길 단장이 운영팀장을 겸임하고 있었으나 과중한 업무량으로 인해 현장 실무책임을 맡을 인물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도 영향을 끼쳤다. 선수 출신 운영팀장으로는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에 이어서 두 번째.
3.1.1. 2013 시즌
운영팀장이 된 후부터는 호평 일색. 이전에도 친화력 좋기로 유명했는데 이러한 장점이 프런트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 특히 2013년 시즌 종료 후 발빠르게 FA, 2차 드래프트에 돌입하여 이병규, 권용관을 잔류시키고, 임재철 영입, 이대형의 보상선수로 신승현을 받아오면서 전력보강까지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선수 출신답게 현장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여 영입을 시도한다는 점이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는 중이었다...
3.1.2. 2014 시즌
그러나 2014시즌 용병선발의 진통이 유난히 길게 이어져오고 있는 상황이라 송구홍 팀장의 업무능력에 의문점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2014 시즌 용병선발이 쪽박을 찰 경우 송구홍 팀장은 LG의 3대 금지어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는데 용병 선발 과정부터 뭔가 석연치 않은 상황이 이어지더니 조쉬 벨이라는 의문부호가 많이 남는 용병을 시간까지 늦어서 이적료까지 지불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용병투수도 기대감이 떨어지는 선수가 온다는 소문이 돌면서 결국 송구홍 팀장은 3대 금지어로 등극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 비슷한 예로 코치로서 마이너스의 손이었던 이상군이 스카우트로서도 최악의 실적을 남겨서 클래스 어디 안 간다는 걸 입증한 사례가 있었는데 송구홍 역시 코치로서 무능한 인물이었고 현장에서 무능한 인물은 프런트에서도 기용하면 안 된다는 걸 이상군에 이어서 두 번째로 입증하게 되었다.
송구홍이 뽑은 조쉬 벨은 4월 기준 예상외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으나, 결국 방출되고 대신 스나이더를 데려왔으나... 역시나 스나이더도 큰 활약을 하지 못했으며 리오단만이 에이스로 각성했으며 티포드는 선방하다가 훅 갔다. 더군다나 용병선발을 시간 끌면서 조쉬 벨을 이적료까지 주고 데려오는 병크도 터뜨렸다. 그리고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코리 리오단과 독립리그 출신 용병들 여럿을 블라인드 테스트로 고르게 했다는 사실까지 드러났으며 리오단의 몸값은 10만 달러였음이 드러났다는거다.
어이없는 용병 선임으로 김기태 전임 감독에게 차라리 용병 없이 시즌을 치루겠다는 등의 말을 듣고, 이로 인해 감독이 없다시피한 스프링 캠프를 진행하게 했다는 점에 있어서 송구홍 팀장의 잘못은 결코 묻혀서는 안될 것이다. LG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면서 묻힐 확률이 커지긴 했으나 분명히 해둘 것은, 이건 양상문감독이 정말 팀을 잘 추스르고 코리 리오단을 어떻게든 쓸만하게 고쳐서 쓴 덕분이지 송구홍 이하 스카우트진이 잘해서가 결코 아니라는 거다.
LG팬들 사이에서는 선수시절 근성 있고 순수했던 송구홍이 프런트 자리에 올라서고 세월이 흐르자 속물이 되어버렸다며 씁쓸해하는 모습도 보여졌다. 기업이나 구단 입장에서는 예산을 최대한 아껴 쓰는 효과를 올렸으니 그들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사람으로 평가하겠지만 벤자민 주키치 교체 무산에 2014년의 말도 안 되는 용병선발과정 등등 모두 송구홍 팀장이 맡았던 것들이라 양상문 감독 체제하에서도 이런 식으로 용병 스카우트를 한다면 이문한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결국 선수 시절 아무리 성실하고 열심이었더라도 프런트로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으며 초심을 잃고 구단측의 편에 서서 전력보강보다 예산 아끼기만 하는 전형적인 속물이 될 수 있다는 반면교사가 될 듯하다.
3.1.3. 2015 시즌
2015 시즌에서도 용병 구하는데 양상문 감독이 직접 알아보는 지경이고 오죽하면 사사구에서 조차 프런트가 해야 할일인데 양상문감독이 직접 알아보는 현실을 까기도 했다. 일단 루카스 하렐과 헨리 소사를 영입해서 용병 투수 쪽은 한숨 돌렸지만 여기에서도 양상문 감독의 노력이 컸고 스카우트진이 한 역할은 별로 없었다. 더불어 또다시 용병 타자 영입이 늦어지고 있는데 송구홍 팀장은 또 언플질을 하면서 용병타자 등급이 낮아질 거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지난해처럼 언플질을 해서 또 빈축을 샀다.[12] 이쯤 되면 김진철 전 LG 운영팀장[13] 이나 이문한 전 롯데 운영팀장[14] 과 하나도 다를게 없는 프런트로 이동한 선수 출신의 안좋은 롤모델 인증. 이만수 전 SK 감독이 루크 스캇, 로스 울프에게 '''"참 돈 쉽게 버네"''' 하며 깠던 일화를 보면 이건 딱 송구홍 팀장에게 해당되는 얘기...
여기에 양상문 감독이 도미니카까지 날라가서 용병을 알아보며 앤디 마르테를 눈여겨봤는데 스카우트진에서 제대로 대처를 못해 KT에 눈뜨고 뺏겼다는 사실까지 드러나서 LG팬들의 뒷목을 잡게 했다. 그런데 마르테 건은 시즌이 한창인 8월 즈음에 이미 KT와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 있기 때문에 조금은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시즌에 들어가면서 작년에 잘했던 헨리 소사를 제외하고 잭 한나한은 1월 달부터 개점휴업에 들어가면서 5월 중순에나 복귀예정이며 심지어 건강상태가 온전하지가 않고, 루카스 하렐은 기대와는 달리 볼넷으로 무참히 자멸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190만달러를 허공에 날렸다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무참히 까임받고 있다. 잭 한나한을 웨이버 공시를 하고 루이스 히메네스를 영입했다.
3.1.4. 2016 시즌
소사와 히메네스와 재계약을 함에 따라 외국인 투수 '''1명만''' 영입하면 되는데도 불구하고, 시즌 개막하고 나서 1주일이 다되어가는데도 아아아아아무런 소식이 없다. 참고 참던 양상문도 '''이미 우리가 원하는 유형의 투수를 영입하기에는 늦었으며 15일까지 투수가 안오면 방법이 없다'''고 언론에 한탄을 할 정도로 정말로 답이 없는 상황. 이쯤되면 스카우트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적성에 안 맞는 거'''라고 봐야 한다. 근데 김세희 아나운서에 의하면 15일까지에서 '''25일'''까지로 변경됐다고 한다.
실패한 외국인 투수를 데려오는 것보다도 '''아예 데려오지 못해 팀에 해악을 끼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이며 LG 구단이 심사숙고해야할 문제점이라 할 수 있다. 무능한 프런트가 LG 트윈스를 어떻게 망치고 있는 지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사건.
'''2015년의 대실패 요인 중 하나가 투수 로테이션이 꼬여 시즌 초반 불펜에 과부하가 걸려서였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현재 송구홍이 하고 있는 짓은 팀을 작년의 무한9호선에 다시 승차시키려는 극악무도한 만행이다.'''
'''내년에도 살아 남을까봐 걱정이다'''
그리고 시즌 시작을 넘겨가면서 데려온 는 1군 데뷔무대인 4월 22일 넥센전에서 4회만에 볼질+안타세례+폭투+홈런으로 7실점을 하면서 기대 이하를 넘어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고르고 골라서 이적료까지 주고 데려왔다는 선수가 이 정도 수준이라는건 '''실망을 넘어 경악을 금치 못할 수밖에 없는 스카우트 실력이다.'''
그리고 6월 2일 기사에서 충격적이 사실이 밝혀졌는데, 부진한 LG 코프랜드, 지난해 무릎 수술 받았다. 즉, '''무릎수술을 받고 정상 컨디션이 아닌 선수를 거금을 주고 데려왔을 뿐더러 메디컬 테스트까지 하지 않았다는 것.''' 이 뉴스를 본 엘지팬들은 뒷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며 이쯤되면 더 이상 말이 안나온다.
3.2. 단장 시절
3.2.1.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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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일에 백순길의 후임으로 단장자리에 앉게 되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FA자격을 획득한 우규민을 40~50억에 반드시 잡겠다 언플하다가 우규민은 65억에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또 욕먹고 있다. 하지만 우규민의 보상선수로 최재원을 지명하고, 역시 FA였던 차우찬을 영입하며 LG팬들의 강력한 우려와는 달리 일단 2016년 12월 기준으로 단장으로서의 행보는 나쁘지 않다는 평이다. 단, 이번엔 외국인 선수를 전부 재계약했는데 내년 시즌에 외국인 선수를 어떻게 뽑나 검증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최재원과 차우찬 영입으로 호평을 받았나 싶었지만 새로운 팀 앰블럼 디자인과 관련하여 다시 욕을 먹고 있는 중.
6월, 히메네스가 6주라는 큰 부상을 당하고, 다른 팀의 거포 외국인 선수들이 LG를 상대로 마구 장타를 뽑아내면서 거포 외국인 선수로 교체해야한다는 팬들의 요구가 뜨거운데도 히메네스의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는 언플이나 하면서 욕을 먹고 있다. 스카우트 시절에도 일처리가 어마어마하게 느린 걸로 유명한 송구홍이었는데, 단장이 되어서도 전혀 나아진 점이 없다.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올스타전이 끝난 후 히메네스를 교체하긴 했다. 대체 선수는 제임스 로니. 꾸준히 외국인 타자 교체를 추진했지만 2번이나 파토나고 세 번째에야 영입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임스 로니는 부진했고 급기야는 8월 27일 2군 통보에 불만을 품은 '''제임스 로니가 미국으로 도망쳐버렸다.''' 구단의 역대급 흑역사를 새로 쓴 셈.
2018년 신인드래프트 2차 7라운드에서 LG는 송찬의를 지명했는데 송찬의가 송구홍의 조카인지라 말이 좀 나오고 있다.
여담으로 엠엘비파크 에서는 본인 스스로가 지도자 복귀를 구단 윗선에 강력히 요청했다고 한다. 이쯤되면 스스로 중책 맡을 그릇이 아님을 인정하고 빤쓰런 시전한 꼴.
4. 다시 현장으로
4.1. 지도자 2기 시절
2017 시즌이 종료된 후 류중일 감독이 새로 선임 되면서 양상문 감독은 단장으로 자리를 옮기고 송구홍은 2군 감독으로 '''좌천'''이 확정 되었다. 송구홍이 현장에, 감독직에 욕심이 상당히 많다는 카더라가 많이 돌았는데, 아무리 현장에 욕심이 있기로니 단장에서 1군 감독도 아닌, 2군 감독이면 확실한 좌천인데[15][16] , 본인이 그것을 받아 들였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물론 뭐 해고 보다는 좌천이 그래도 월급은 받으니 나은 일이겠지만..... 김동수 2군 감독이 히어로즈 시절의 성과도 없고, 현장에서의 모습을 보면 김성근과 별 다를바가 없다는 평이 나온다고는 하지만, 송구홍도 사실 1군 코치시절의 평가를 생각해보면 도찐개찐 수준.
그래도 공필성이 롯데에서 15년 일하면서 꼴무원이라고 밥먹듯이 까이다가 두산 2군 감독으로 와서 이미지 세탁에 성공한 것을 보면 똑같은 케이스인 송구홍은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4.1.1. 2018년
2군 감독으로서의 첫해. 시작 전 팬들의 냉소적인 기대(?)가 많다는 언급만 있었다.
4.1.2. 2019년
2016년 단장 시절에 우승을 하겠다고 큰소리 쳤던 그해다. 그러나 2018 시즌 성적을 보면, 그와는 거리가 먼 것을 2군에서 지켜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2018년 11월 27일 팀을 떠나는것이 확정되면서 드디어 야인이 되었다. LG 팬들은 '''구홍독립만세'''를 외치는중(...) KBO 감독 코치진들이 세대교체되는 와중이라 68년생인데다 타 구단 감독 코치진들과 딱히 연줄도 없는 송구홍이 타 팀에서 코치를 하기도 힘들고 결국 대학팀이나 고교팀을 알아보거나 해설자를 노리는 것 그것도 아니면 야구 외의 직업을 택하는 거 외엔 방법이 없게 된 건 줄 알았는데...
그러는 와중 2019년 1월 2일 한화 이글스 육성군 야수 총괄코치로 선임되었다.
이에 대해 구단측은 "전문성을 발휘해 미래 야수 자원 발굴 및 선수 지도에 힘을 더하고, 구단 내 저연차 코치들에게도 선수 육성 노하우를 전달하는 데 적임자"라고 판단, 영입을 결정했다.
한화, 코칭스태프 영입...육성군 송구홍-1군 타격 타나베 전 세이부 감독
이에 대해 엠엘비파크와 디시인사이드에서 사이가 좋지 않음에도 이례적으로 LG팬들이 한화팬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중(...). 특히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 LG 트윈스 갤러리 갤러들이 와서 어지간히 갑갑할 거라고 할 정도. 더불어 한화에 별다른 연줄 하나 없는데[17] 취업해서 사회생활 하나는 기가 막히다고 평가중. 물론 이게 칭찬의 의미가 아니라 문제지만...
한화 팬들의 걱정에 답하자면 육성군 총괄 보직은 한창 상군매직에 제대로 피본 한화가 이상군을 전보시켰던 자리로 영향력이 별로 없고 선수를 직접적으로 만지는 자리도 아니다. 프런트와 육성군 사이에 중계자 역할로 본인의 코칭능력보다 양쪽의 가교 역할을 해내는게 더 중요하다. 누군가는 책임자로 프런트와 육성군 사이에 있긴 있어야 하는데 정현석, 추승우, 백승룡, 이희근까지 기존 육성군 코치들이 죄다 경력 일천한 쌩초보들이고, 프런트와 현장 중계 역할이라 양쪽 경험이 모두 있는 사람이고, 친화력 좋기로 소문난 송구홍은 그리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아무렴 이 사람이 이정훈 스카우트팀장 제끼고 선수 선발에 관여하기라도 할 것 같은가?
다만 박종훈 단장의 사례를 들어 송구홍은 뭔가 다를 거라고 애써 믿고있는 한화팬들도 있는데 박종훈 단장은 1군 감독 빼고는 다 잘했던 사람이다. 자기 자리가 아님을 입증한 1군 감독도 LG, 현대, SK, 두산 4개 구단 거치며 코칭스태프 실적을 인정받아 선임되었던거고 별 연고도 없는 한화 구단 단장자리도 NC에서 프런트로 자질을 입중해서 영전한 자리이다. 선수시절 연줄로 LG 붙박이였고 '''맡는 보직 전부 못했던''' 송구홍과는 많이 다르다. 겉으로 드러나는 보직도 아니고 그냥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보직이라 탈쥐건 뭐건 어그로 끌릴 일도 없다. (팬들이 뭘 하고 있는 지 알 수가 없으니까)
5. 프런트 2기
5.1. 2020년
1월 7일 한화 이글스 에서 송구홍을 코치에서 프런트로 이동시켰다. 보직은 육성팀 총괄. 어째 은퇴뒤 가장 많은 보직 이동을 하는 느낌.
최원호 감독대행의 인터뷰에 따르면 흔히 이야기하는 '팜 디렉터'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6. 또 다시 현장으로
6.1. 2021년
2020년 12월 29일 발표한 코칭스태프 구성에서 퓨처스 수비코치를 맡으며 일선 지도자로 복귀했다.
[1] 당시 주사위를 굴렸던 LG 트윈스의 정영수 과장은 주사위 승부에서 연전연승, 91년 임선동, 92년에 이상훈, 94년에 심재학 등을 따내는 등의 맹활약으로 OB 베어스 프런트와 팬들에게 피눈물을 나게 했다. 어찌 보면 90년대 LG 트윈스의 전성기의 숨은 공로자. 참고로 93년의 유지현은 두 팀의 지명선수가 갈려서 (LG 유지현, OB 류택현) 주사위를 굴리지 않았다. [2] 한편 황일권은 입단 잡음때문에 실업야구에서 2년을 보내다 와서 기량 하락이 왔고, 이미 대학 시절에도 거품 논란이 많았다. 게다가 코치들이 조금만 질책을 해도 못견뎌했을 정도로 팀에 융화되지 못해 별다른 활약을 못하고 프로 생활을 끝냈다.[3] 하지만 OB에서 차선책이라며 지명한 황일권은 실업팀 한국화장품에서 2년을 보내고 뒤늦게 프로로 들어왔지만... 두 선수의 그 후의 행보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4] 한대화의 7년 연속 수상을 저지했다! 그리고 1년 뒤 한대화가 LG로 오게 되었고, LG 소속으로 골글을 받았다.[5] 그 해 4월 11일 광주 해태전에서 노히트 노런에 도전하던 조계현을 상대로 9회초 2사에서 LG의 첫 안타를 때려내기도 했다. 이 둘은 송구홍이 1997년 말 해태로 트레이드되기 직전 조계현이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선수로는 같은 팀에서 만나지 못했다가 2012년 LG에서 조계현은 수석코치로, 송구홍은 주루코치로 만나게 되었다.[6] 그러나 수비부담이 너무 커서 20홈런을 쳤던 첫해와 비교해 겨우 4개의 홈런으로 장타력이 급감했다. 안그래도 3루에서 조차 걸어다니는 화약고인 선수한테[7] 같은 시기 김동수는 방위병 판정이 나오며 경기를 뛸 수 있었던 반면 송구홍은 1년을 쉬어야 했는데, 어떻게 보면 저 1년의 공백이 기량 저하를 부른 원인이었을지도 모른다.[8] 공교롭게도 자신에 의해 노히트 노런을 저지당한 조계현이 삼성으로 현금 트레이드된 직후였다. 그리고 송구홍의 트레이드 맞상대였던 투수 박철웅은 1998년 초 불의의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아 선수생활을 접었다.[9] 같이 키스톤을 맡아 줄 것이라 여겨졌던 김종국 역시 시즌 초 부상으로 이탈. 이로 인해 내야진에 구멍이 뚫린 해태 역시 시즌 막판 5위로 떨어지면서 가을야구에 실패하게 된다.[10] 1993년 당시 치열하게 1위 자리를 추격하던 해태전에서 홈 슬라이딩을 하면서 헤드퍼스트로 몸을 훌쩍 날렸는데 너무 일찍 슬라이딩을 해버려서 50cm쯤 되는 거리를 허우적대면서 기어들어와 홈인한 일도 있다. 홈인 후 특유의 미소는 덤.[11] 문제는 이런 이유로 실책도 많았다.[12] 12월에 100만+@ 달러에 영입한 잭 한나한은 수비 우선이라는 양상문 감독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다.[13] 삼미 원년 멤버였다. 현대 해체 이후 LG의 스카우트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으며, 염경엽과 같이 현재 LG의 풍부한 유망주 팜을 만든 장본인. 능력은 괜찮은 편이나, 2010~2011년에 염경엽과 엮여서 파벌설이 생겼다.[14] 삼성 프런트 시절의 능력은 상당히 좋은 인물이었다. 롯데에서도 능력자체는 괜찮은 편이었지만 사장인 최하진이 저지른 병크 덕분에...[15] 구단주가 넘버 1, 사장이 넘버 2, 단장과 1군 감독이 넘버 3 라고 하면 2군 감독은 넘버 4 쯤 된다 할 수 있다.[16] 심지어 메이저리그에서는 단장이 감독보다 높다고 보기도 하고, 현재 KBO에서도 그렇게 가고 있다.[17] 박종훈 단장이 있기에 아예 없다고는 할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