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동(축구)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출신 감독. 2019년부터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맡고 있다.
1972년 1월 12일생[4] 으로 2015년까지 포항 감독을 맡았던 황선홍과 세 살 차이며, 포항 입단 동기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은퇴했다.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소속 팀에서 주전 경쟁을 벌였고 뛰기만 해도, 골만 넣어도, 도움만 기록해도 역사가 되고 전설이 되었던 선수. 연습생 신화는 덤이다.
K리그 통산 총 501경기에 출장했고, 역대 필드플레이어 출전 2위에 올라있다.[5] 김기동 다음으로 K리그 최다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는 필드 플레이어는 2013년 기준 458경기의 김상식. 500경기 출전 기록을 가진 선수는 골키퍼인 김병지(706경기)와 최은성(532경기), 필드 플레이어에는 이동국(539경기)[6] 밖에 없으며[7] 400경기 출전으로 기준을 낮춰도 필드 플레이어는 김기동 말고 신태용이나 김상식, 김한윤, 김은중, 우성용 등으로 손에 꼽는다. 이 중 유일하게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는 최근까지 이동국이 유일했다.
현재까지 최고령 선수, 최고령 출전 선수 기록[8] 을 가지고 있다.
2007년 K리그 7라운드 FC 서울전에서 '''통산 400경기 출장'''을 기록했다. '''남들은 웬만하면 은퇴하는 이 때가 본인에게는 전성기''' 중 하나였고 그 해 주전 선수로서 첫 우승컵을 들어올림과 동시에[9] 연말에 윈저 어워즈 대상. K리그 미드필더 베스트 일레븐에도 이름을 올렸다.
2011년 12월 12일 K리그 통산 501경기 39득점 40도움으로 현역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지도자로 포항 스틸러스를 맡은 이후 2020 시즌 K리그1 감독상을 수상했다.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포항 스틸러스
대부분 이름난 선수는 청소년대표부터 시작해서 올림픽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치는 엘리트 코스를 밟지만, 김기동은 자신이 원하는 대학교에 가지 못하자 대학교에 갈 수 있는 티켓을 다른 동료에게 양보하고 죽마고우 황연환과 같이 연습생 신분으로 1991년 포항에 입단하면서 처음 프로 무대를 밟았으나 2년동안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2.1.2. 유공 코끼리(현 제주 유나이티드)
그리고 1993년 유공(훗날 부천 SK)으로 이적해 정식으로 프로 선수로 데뷔했고, 1995년 유공의 사령탑으로 발레리 니폼니시가 부임하면서 축구 인생에 극적 반전이 찾아온다.
당시 부천은 미드필더 윤정환을 제외하고는 이름값이 크게 떨어지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이 이들을 조련하면서 '''K리그 최고의 미드필더진'''으로 화려하게 탈바꿈한다. 그리고 김기동은 그 중심에 서서 활약했다. 본인 역시 자신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감독으로 발레리 니폼니시를 꼽는데, 그 때까지 맨투맨 수비에 동네축구처럼 공만 쫓아 우르르 몰려다니는 K리그에 처음으로 존 디펜스와 패스워크의 개념을 실어 줬다고 한다.
2.1.3. 포항 스틸러스 복귀
[image]
2003년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했다. 1군 데뷔는 유공에서 했지만, 커리어 시작 자체는 포항에서 했다. 당시 부천 감독이었던 트나즈 트르판은 구단에 '''다른 선수들은 내보내더라도 김기동과 이임생만은 잔류시켜야 한다고 했으나'''[10] 계약조건에 따른 선수와 구단의 이견으로 결국 이적했다. 김기동과 이임생을 떠나보낸 부천은 2003년 K리그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포항 이적 이후 주전으로 활약하면서 2007 K리그 우승, 2008 FA컵 우승, 2009 AFC 챔피언스리그, 2009 피스컵 코리아 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500경기를 몇 경기 남겨두지 않고 진행된 인터뷰에서 본인은 크게 욕심내지 않고 2011년 이후 은퇴를 마음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포항 감독이었던 황선홍은 유리한 경기에선 김기동을 후반 교체 카드로 많이 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11]
2011년 10월 22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리그 29라운드 홈 경기에서 선발출전하면서 '''500경기 출전'''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 경기에서 소속 팀 포항 스틸러스는 그를 기려 발 모양을 본딴 황금발을 수여하는 가 하면, 경기 후 카 퍼레이드, 레드카펫, 500경기 기념 티셔츠 관중들에게 배포하는 등 K리그 어느 선수보다 화려한 기념식을 열어주어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확실히 해 주었다.
은퇴 이후에는 포항 구단의 지원을 받아 영국으로 축구 유학을 떠났다. 틈틈히 스포츠 신문에 칼럼을 기고했으며,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한 후 2013년에는 U-22 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의 '최초의 13인' 중 한 명으로 올라갔다. 적어도 포항 내에서는 황선홍, 홍명보, 이회택 등 레전드들과 같은 대우를 받는 셈.
2.2. 국가대표 경력
니폼시시가 유공이 부임한 이후 팀의 중심에서 맹활약을 펼쳤고, 이에 힘입어 1997년 국가대표팀에 뽑혔다. 1997년 10월 4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예선 4차전 아랍에미레트와의 홈경기에서 후반 38분에 교체출전하면서 데뷔전을 치렀다. 경기는 대한민국이 3-0으로 승리하였다.
1997년 10월 11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예선 5차전 카자흐스탄 원정에서 후반 31분 교체출전했다. 경기는 1-1로 비겼다.
1997년 11월 9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예선 8차전 일본과의 홈경기에서 선발 출전하였으나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고 경기는 0-2로 패했다.
일본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국가대표팀에 뽑히지 않았다.
3. 지도자 경력
3.1. 청소년 대표팀
2013년 성남 일화 천마의 스카우터가 되었다가 2013년 12월 U-22 코칭스태프 명단에 등장하였으며, U-23 대표팀 코치로 故 이광종 감독을 보좌하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 2016 리우 올림픽 8강의 성과를 내었다.
3.2. 포항 스틸러스 코치
리우올림픽 이후 2016년 9월 최진철이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직에서 사퇴하자, 후임 감독인 최순호와 같이 수석코치로 5년 만에 친정에 복귀했다. 팬들의 반응은 기껏 최진철을 내보냈더니 후임으로 온 감독이 최순호인지라 모두 절망하는 상황이었지만, 수석코치로 김기동이 오는 것에는 크게 환영했다. 게다가 사실상 낙하산으로 꽂힌 최진철과 달리 김기동은 수년간 이광종과 신태용 밑에서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지도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경험적인 부분에서도 충분히 검증된 상황.
최순호 부임 초인 2017 시즌 포항은 강등권이라는 예상을 뒤집고 리그 선두를 다투는 강호로 부활하게 된다. 포항 팬들의 의견은 달라진 최순호의 리더쉽도 대단하지만 밑에서 확실히 역할 분담을 하며 선수들을 다독이는 김기동의 형님 리더쉽도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다는 평가. 만에 하나 최순호가 감독에서 물러나더라도 당분간 감독 걱정은 없겠다는 평이 있을 정도 팬들의 반응은 좋다.
2019 시즌 초반 포항의 부진이 이어지면서, 감독이자 당사자인 최순호 감독이 경기내내 지시는 안하고 기도만 할 때 수석코치 김기동 코치가 결국 선수들에게 지시했다고 한다.[12] 성적이 부진하고 원정 무득점 3연패 FA컵 32강 4년 연속 광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 속에 4월 20일 K리그 8라운드 대구 원정에서 0-3으로 완패한 후 최순호가 경질#되면서 감독 대행을 맡게 됐지만, 감독대행이 아닌 정식 감독이 될 가능성 역시 점쳐지고 있다.#
3.3. 포항 스틸러스 감독
3.3.1. 2019 시즌
2019년 4월 23일, 포항 스틸러스는 김기동을 정식 감독으로 선임했다. #
포항팬들의 우려 속에 4월 26일 K리그 9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홈경기에서 감독 데뷔전을 치렀고, 후반 38분 김승대의 결승골로 김기동 감독의 프로 감독 데뷔 첫 승과 동시에 포항의 연패를 끊어냈다.
이날 선발라인업에서 김기동 감독은 4-3-3이 아닌 4-2-3-1 김승대 제로톱으로, 더블볼란치에는 고졸신인 이수빈과 울산에서 영입한 정재용을 선발로 내세워 공격적인 전술을 구사하였다. 더불어 이날 경기를 통하여 포항은 2014년 이후 5년만에 홈에서 수원에게 승리했다. 더불어 2009년 파리아스 감독이 있던 현역시절, 백패스 금지가 있던 멤버라 이에 영향을 받았는지 이날 포항의 공격에서는 백패스가 거의 안보였다.
5월 4일 어린이날을 하루 앞두고 홈 스틸야드에서 펼쳐진 울산 현대와의 경기 동해안 더비에서 2-1로 승리하면서 2연승을 달렸으며, 이후 인천 유나이티드와 경남 FC도 연달아 물리치면서 4연승을 거두었으며, K리그에서 귀네슈 감독 이후 감독직 부임과 동시에 4연승을 거둔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서울전 무승부 이후, 수원, 울산, 대구에게 연달아 무득점 연패를 당했다. 그리고 6월 23일 강원전. 전반 2골, 후반 2골을 넣으며 그간의 무득점도 끊고 연패 탈출을 눈앞에 두었으나 이후 5골을 연달아 내주며 4:0으로 앞서가던 경기가 4:5로 바뀌며 패하고 말았다. 4점차를 뒤집히는 역전패는 k리그 출범 이래 최초로 김기동 본인과 포항에겐 최악의 흑역사가 됐다.
5월 25일 서울전 무승부를 시작으로 7월 31일 강원전 패배까지 총 11경기 동안 단 1승 4무 6패의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자 팬들의 비난은 물론 입지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다. 시즌 초반 팀이 부진하여 최순호가 사퇴한 데에 책임이 있는 코치를 감독 대행도 아닌 감독으로 바로 부임시킬 때부터 예견된 사태였다고 보는 팬들이 적지 않았다. 대대적 쇄신 대신 예산 초과를 막기 위해 제정적 지출의 최소화를 선택한 포항은 11경기 동안 단 1승, 8월 1일 기준으로 리그 9위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하위권에 머물러 있었다. 8월에도 수원을 이기긴 했으나 전북과 상주에게 잇달아 패하면서 상위스플릿은 물 건너 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8월 25일 인천 전을 시작으로 다시 급격히 상승세를 타서, 5승 1무를 기록하며 순위를 대폭 끌어올려 상위스플릿 남은 한 자리를 두고 상주와 경쟁, 심지어 승점이 2점이나 앞선 상태로 마지막 경기를 맞게 되었다. 마지막 게임 상대는 울산으로 동해안 더비를 치르게 됐다. 당시 울산은 전북과 함께 우승을 다투고 있던 팀이어서 까다로운 상대였다.
하지만 10월 6일, 울산 현대와의 동해안 더비에서 결국 2:1 역전승을 거두며 자력으로 파이널 A 진출을 확정지었다.
11월 23일, FC 서울과의 K리그1 파이널 A 라운드 경기에서 3:0 완승을 거두며 서울과 대구의 AFC 챔피언스리그 티켓 경쟁을 리그 최종 라운드까지 연장시켰다. 더 재미있는 점은 포항의 마지막 라운드 상대가 동해안 더비 라이벌인 울산인데, 울산이 아직 자력 우승을 확정짓지 못한 상황에서 마지막 포항과의 경기에서 무승부 이상을 거둬야 전북을 제치고 리그 우승이 확정된다는 것이었다. 포항이 극적으로 울산을 마지막 경기에서 1-0으로 꺾고 우승했던 2013년 마지막 상황을 연상케하는[13] 모습이 연출되어 우스갯소리로 포항이 2019년 K리그1 흥행의 마지막 키를 잡고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그리고 그것은 , 포항이 울산을 원정에서 4:1로 격파하며 2013년에 이어 2019년에도 울산에게 뼈아픈 준우승을 선사하면서 현실이 됐다.
이러한 후반기의 대반전 결과 2019 K리그 감독상 후보에 올랐고, ACL 진출에 실패하고 리그 4위로 마쳤음에도 실제로 감독상을 수상한 전북의 모라이스 감독과 불과 2.89점 밖에 차이가 안 날 정도로 박빙의 승부를 벌이다 아쉽게 고배를 마셨다.
3.3.2. 2020 시즌
최종적으로 3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3위로 시즌을 마감했는데도 불구하고 시즌 내내 보여준 선수단 관리능력과 탁월한 전술능력, 그리고 팀 최다득점과 부족한 전력에도 리그 3위에 팀을 올려놓은 공로를 인정받아 우승팀, 준우승팀 감독인 조제 모라이스,김도훈을 넘어서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전까지 리그 준우승팀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한 경우는 여럿 있었지만 '''3위 팀 감독으로서 리그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K리그 최초이다.'''
3.3.3. 2021 시즌
11월 23일 스포츠조선 기자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볼만찬기자들'''에 의하면 포항 스틸러스 단장이 직접 김기동 감독의 집을 방문하면서 협상을 했으나 김기동 감독이 만족하지 않았다며 1차 협상이 결렬되었음을 전했다. 이를 전한 포항 팬들은 겨울이적시장 모기업 포스코의 2021 시즌 구단 운영비 예산이 금년도 운영비에서 동결이 된 것에 주목하며 주전 선수들 몸값을 이적료만 잘 맞으면 팔 수 있다는 구단입장에 대해 비난을 퍼붓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올해만 그런것이 아니라 매년 반복되었던 패턴이라... 현재 이적시장 루머에 의하면 강상우는 전북이 여전히 관심을 가지고 있고, 김기동 감독이 코치시절 직접 스카우트한 송민규 선수가 유럽에서 많은 오퍼를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주전 스트라이커 일류첸코 역시 국내,외 여러 팀들에서 노리고 있어 포항 팬들은 내년시즌의 포항이 2019년 경남 FC가 보여준 공중해체(...) 수준이 될 지도 모른다며 걱정하고 있다.
2020년 11월 26일 포항 스틸러스 구단은 김기동 감독과 2년 재계약에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곧바로 올라온 김기동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구단에서는 일류첸코는 몸값이 너무 올라서 잡기 힘들다고 양해를 구한 대신에 강상우, 송민규 2명은 꼭 잡아달라고 요청을 강하게 한 것이 관철되어 다소 인색할 수 있다고 느끼는 조건이지만 재계약에 서명을 했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포항 스틸러스 주전 센터백이자 원클럽맨 김광석 선수가 현재 조성환 감독이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는 루머가 나돌고 있다. 김현회기자의 말로는 김광석선수는 1년 재계약+지도자 병행을 원했지만 포항 스틸러스구단은 이를 거절했다는 것.
포항팬들은 김광석에 대한 구단의 대우에 화가 난 상태. 오피셜이 나올시 올드팬들과 최근에 유입한 포항팬들 가리지 않고 응원을 하지 않겠다는 여론도 있다.
이에 대해서 서호정 기자에 말에 의하면 현재 김기동 감독은 결과를 지켜보고 아직 포항에게 협상순위가 있으니 기다려야하는 분위기지만 지금 분위기는 거의 김광석 선수의 이적이 99프로라는 소문이 돌고있다.
팀의 주전이자 원클럽맨에 가까운 노장 센터백 김광석 선수마저 없으면 내년에 수비라인을 지휘하는 센터백이 없게된다. 신인 선수들 중 유스출신 김민규가 있지만 경험이 부족하고 내년에 센터백 예고했던 권완규선수도 커멘드 센터백이 아닌 파이터 겸 몸싸움을 즐겨하는 센터백이라 내년에 수비개편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김 감독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2019 시즌 경남 FC의 모습을 볼수있다.
제주행 이적에 가까웠던 신진호는 남기일감독의 반대로 결국 제주이적이 무산되고 김기동감독이 전화찬스를 통해 포항하고 협상하면서 울산에서 받던 연봉을 삭감하고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로 돌아오면서 이번영입에 김기동감독의 인맥효과가 있었고 최순호전 감독이 인터뷰한 집떠난 포항선수들 데려오기 프로젝트에 어는정도 진행이 되고 무방할정도다 https://n.news.naver.com/sports/kfootball/article/436/0000041588
4. 감독 스타일
K리그 축구팬들에게 가장 호평받는 부분은 바로 '''재미있는 축구'''를 구사한다는 점이다. 스코어를 앞서는 상황에서도 라인을 뒤로 물리는 경우가 잘 없으며 울산 현대의 김도훈 감독이 허구한날 잠그는 축구로 재미도 결과도 모두 잃는 것과 대비가 되는 부분으로 본인의 전술 철학이기도 하다.계획을 세운다 -> 실행한다 -> 잘 됐다 -> 팀이 적응할 때까지 유지한다 -> 플랜A로 자리 잡으면 새 계획을 세운다 -> 실행한다 -> 안 됐다 -> 고집 안 부리고 포기한다 -> 잘 하던 걸로 돌아간다 -> 다른 계획을 세운다 -> 실행한다 -> 잘 됐다 -> 팀이 적응할 때까지 더 해 본다 -> 플랜B가 나왔다!
축구기자 서호정의 김기동 감독 평가
지도 스타일은 K리그의 대표적인 '''형님 스타일''' 감독이며 이로 인해 선수나 팀 분위기를 잡는데는 거의 수준급이다. 본인이 K리그 500경기 이상 출전의 레전드이기도 하고, 최용수나 황선홍과 달리 오로지 K리그 내에서만 선수 시절 온갖 경험을 다 한 덕에 상황에 따라 팀 분위기를 잡는데 일가견이 있다. 게다가 본인이 2011 시즌까지 선수생활을 한 덕분에 꼰대가 되기 쉬운 다른 선수 출신 감독과 달리 선수들과 골 세레모니를 주고 받는 등[14] 몸소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최우수 감독' 김기동 "나 땐 말이야? 제가 맞춰야죠"
선수를 보는 안목도 괜찮아서 송민규를 포항 유스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입단 테스트에서 눈여겨 보고 팀에 추천했고 2020 시즌 포텐이 터졌다. 전임 감독들과 달리 외국인 선수를 활용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며 19시즌에는 완델손, 20시즌에는 팔라시오스를 수준급 용병으로 탈바꿈 시켰고, 다른 외국인 선수들도 골을 넣으면 김기동에게 먼저 달려올 정도로 사이도 원만한 편이다.
이 형님 스타일이라는 것이 팀 성적이 좋지 않을 때나, 선수들과 너무 친해져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김기동의 경우 '''질책을 할 때나 선을 그을 때는 확실히 긋는다.''' 단적인 예로 유스 출신이면서 아시안 게임으로 군문제까지 해결한 이진현은 김기동 본인의 스타일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구로 보내버렸고, 언론의 주목을 받던 FC 바르셀로나 유스 출신인 장결희는 포항 복귀 후 1년 반만에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가차없이 팀에서 방출시켰다.[15] 팔라시오스 역시 구단이 2020 시즌에 야심차게 영입했음에도 영입 6개월만에 본인 스타일과 맞지 않고 1부리그에 적응하지 못하자 곧바로 임대로 보낼 것을 고민하다가 팔라시오스 본인이 단점으로 지적된 수비가담과 스타일의 변화를 약속하자 김기동도 활용방안을 찾아 리그에서 통하는 수준급 용병으로 탈바꿈 시켰다.[16]
평소에는 웃으며 선수들을 잘 챙기는 편이지만 팀의 지향점과 본인의 지도에 벗어난 경우는 가챠없이 바깥으로 쳐내버린다. 이러한 부분은 인정과 본인의 고집으로 실력이 안 되는 선수들을 끌고 가던 전임 감독 최순호와는 확실히 대비가 되는 점이며 덕분에 최순호 시절 쓸데없이 하부리그에서 데려와 자리만 차지하던 잉여자원들 대부분이 김기동 감독 부임 2년차에 모두 정리가 되었다. 자연스레 포항 주전자리로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 있다고 방심하던 포철고 출신 유스들에게 경종을 울린 것은 덤이고 스쿼드에 바로 못 들어올 유스 자원들은 모두 임대를 보내 하부리그에서 경험치부터 쌓게 하고 있다.
전술적으로는 포백 기반의 4-2-3-1을 주로 쓰며 공격수부터 전방 압박을 중시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따라가려 애쓰고 있다. 최순호에게 감독직을 이어받은 19 시즌 후반에는 몇몇 경기에서 수비적인 운영을 하긴 했으나 2020 시즌 동계훈련 부터 본인이 팀을 맡게 된 이후로는 파리아스 이후로 실종된 포항의 공격적인 팀 컬러를 다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덕분에 상대팀과의 경기에서 1:0, 2:0으로 앞서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수비 라인을 내리는 일이 없이 다득점을 노리는 지라 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눈이 호강하는 경기가 여럿 나오는 편이다.
하지만 단점도 없지는 않은 것이 본인이 현역 시절 500경기 이상을 소화한 강철 체력의 소유자라서 그런지 어지간해서는 로테이션을 돌리지 않는다. 물론 포항의 팀 특성이 로테이션을 돌릴 만큼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고, 현대 축구에서 주말-주중-다시 주말로 이어지는 경기를 모두 소화할 체력이 당연히 요구되는 상황에서[17] 김기동 감독의 지론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몇몇 경기에서는 체력을 못 따라간 선수들로 인해 망치는 경기가 나온다는 것이 숙제다.[18] 그리고 2010년대 이후 모기업 포스코의 투자가 줄어든 시점에서 김기동이 본인이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는 선수가 팀에 많지 않다는 것 또한 본인이 이겨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팀 선수들에 대한 평판도 좋아 프로부임 2년차인데 축구 커뮤니티 썰들을 종합 해보면 김기동 감독 밑에서 뛰어보고 싶다는 젊은 선수들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2019시즌 K리그 감독상 투표를 할때 선수들 사이에서의 투표 만큼은 감독상을 수상한 모라이스보다 더 높게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2020시즌에는 결국 감독상을 수상했다.
5. 수상
5.1. 선수 수상
- 포항 스틸러스 (1991 ~ 1993 / 2003 ~ 2011)
- K리그 1 : 1992 , 2007
- FA컵 : 2008
- 리그컵 : 2009
- AFC 챔피언스리그 : 2009
- 제주 유나이티드 (1993 ~ 2002)
- K리그 리그컵 : 1994 , 1996 , 2000
5.2. 감독 수상
6. 여담
김기동 선수의 성실한 자기관리 덕분에 2010년에 같은 포항에서 뛰었던 설기현이 상대적으로 비판을 받았다. 마흔줄 노장 선수가 기꺼이 젊은 선수들과 포지션 경쟁을 치르는데, 8억의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가 주전 경쟁이 부담스럽단 핑계를 대고 팀을 뛰쳐나갔으니 축구팬들 눈에 곱게 비출 리가 만무하다.
회춘의 대명사로 불리는 라이언 긱스보다 호적상으로는 1살[19] 이 많다. 이때도 김기동은 경기를 풀타임으로 몇 번 뛰었었다.
기자가 그 나이까지 몸관리 비법을 물었더니 '''"몸에 안 좋은 거 안 하면 됩니다. 그리고 잠이 보약"''' 라고 답했다. 구단 홈페이지 자기소개란의 체력관리법에도 잘 먹고 잘 쉰다. 라고 적혀있다. 연애 시절에도 밤 10시만 되면 무조건 여자친구(현재의 부인)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면서 체력을 보충했다고 한다.
골프 실력이 상당하다. 축구인들끼리 골프를 치면 항상 실력으로 두각을 드러내곤 한다.관련기사 핸디캡 없이 언더파를 칠 정도이다.
김동완 축구 해설 겸 에이전트가 말하길 현역 시절 탄산음료도 먹지 않았다고 한다.
인스타도 한다. MBTI 검사 결과를 올렸었는데 캡쳐하는 방법을 몰라서 다른 사람 휴대폰을 빌려서 검사 결과를 사진 찍은 후에 올리기도 했다.링크
강남에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건물주이다.
아들 김준호도 축구선수이고, 포항 스틸러스 유소년 클럽팀이 있는 포항제철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2020년에 입단해 아빠와 아들이 감독과 선수로 한 팀에서 뛰게 되는 진풍경이 나오게 됐다.
7. 같이 보기
[1] 실제는 1971년 5월 26일생 이라고 한다.[2] 공격형 미드필더,중앙 미드필더,수비형 미드필더[3] 시즌 도중 부임.[4] 실제로는 1971년생이라고 한다. 호적 등록을 1년 늦게 했다고 하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축구를 그만뒀다가 호적 나이가 한살 적은 관계로 3학년에 졸업하지 않고 1년 유급해서 축구를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에는 그 이전 세대들처럼 영아 사망 문제 때문에 출생신고를 늦게 하는 경우가 흔했다.[5] 1위는 이동국. 2018 K리그 36라운드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 선발 출전하면서 502경기 출전을 기록했다.[6] 2020 5월 29일 기준[7] 골키퍼와 달리 축구 포지션 중 체력 소모가 가장 심한 미드필더로 500경기 이상을 뛴 김기동의 기록은 독보적일 수 밖에 없다.[8] 최고령 도움 기록은 골키퍼 최은성이 갖고 있다. 39세 5개월 14일[9] 사실 1992년에도 포항 소속으로 우승했으나, 그때는 2군에 있어서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고 밝혔다.[10] 당시 두 선수 모두 32세로 그만큼 팀에 꼭 필요한 고참 선수였다.[11] 당시 김기동의 실력도 후배들에 비해 크게 밀리지 않았다. 황선홍 감독은 그를 수비쪽 뿐만 아니라 쉐도우 스트라이커로도 활용했었다.[12] 이 장면은 2018 시즌에도 쭉 이어져 왔다.[13] 경기 일자와 울산 원정경기인 점까지 그때와 동일하다.[14] 허리를 90도로 뒤로 꺾는 특유의 골 리액션으로 아예 '''눕기동'''이라는 별명이 붙어버렸다.[15] K리그의 정서상 이정도 커리어를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든 팀 스쿼드 한 자리를 주고 살려보려고 애를 쓰는 편이지만(게다가 포항 유스 출신이었다.) 김기동 본인이 몇 번 지도를 해보고 조언도 해봤으나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생각되자 바로 팀에서 내보내 버렸다.[16] 이 부분에서 김기동의 선수 보는 안목과 전술 활용 능력이 뛰어남을 증명했는데, 팔라시오스의 장점인 돌파력과 스피드, 그리고 기존 포항 윙어들의 고질적인 문제이던 크로스의 정확성을 최대한 살리면서, 팔라시오스가 부족한 세밀한 플레이는 과감하게 버리고 돌격대장 역할을 맡겼다. 덕분에 팔라시오스가 밀고 들어가서 헤집어 놓은 공간을 일류첸코, 송민규가 활용할 수 있게 되었고 자연스레 두 선수에게 수비가 집중 될 때는 그 빈공간을 팔라시오스가 활약하는 방법으로 기어이 팔라시오스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더욱이 이러한 김기동의 믿음으로 팔라시오스 역시 1부 리그의 경험치를 쌓으며 초반의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해나가고 있다는 점도 김기동 감독의 지도력을 엿볼 수 있다.[17] 실제로 한국보다 경기수가 월등히 많은 유럽에선 챔스, 리그, 리그컵, FA컵을 모두 소화하기 위해선 당연히 요구되는 능력이다[18] 최근에는 피지컬이 좋고 빠른 윙어인 팔라시오스를 최전방에 넣어서 2020시즌 리그 전경기에 출전했던 일류첸코를 쉬게 하거나 윙자원이 많다는 이점을 이용하여 거의 매경기에 출전해서 지쳤던 송민규를 선발에서 빼는 등 여러가지의 대책을 보여주곤 했다.[19] 실제로는 2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