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하인츠 루메니게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의 역임 직책'''
'''FC 바이에른 뮌헨 역대 주장'''
파울 브라이트너
(1980~1983)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1983~1984)
'''

클라우스 아우겐탈러
(1984~1991)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1980 · 1981
1980 · 1981
1979-80 · 1980-81 · 1983-84
'''FIFA 월드컵 브론즈볼 1982'''
'''FIFA 월드컵 실버슈 1982'''


'''베스트팀'''
1982 · 1983· 1984· 1985


<color=#373a3c> '''1979 Ballond'or'''
수상
케빈 키건
2위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3위
뤼트 크롤

'''1980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베르티 포크츠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FC 바이에른 뮌헨)
'''

파울 브라이트너
(FC 바이에른 뮌헨)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 멤버'''
'''1980'''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의 기타 정보'''


'''Fußball-Club Bayern München e.V.'''
''' 이름 '''
'''카를하인츠 루메니게'''
'''Karl-Heinz Rummenigge'''
''' 본명 '''
카를하인츠 "칼레" 루메니게
Karl-Heinz "Kalle" Rummenigge[1][2]
''' 출생 '''
1955년 9월 25일 (69세) /
서독 리프슈타트
''' 국적 '''
독일
''' 신체 '''
182cm | 체중 74kg
''' 직업 '''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행정가
''' 소속 '''
'''FC 바이에른 뮌헨 (1974~1984)'''
인테르나치오날레 (1984~1987)
세르베트 FC (1987~1989)
''' 국가대표 '''
95경기 45골 (서독 / 1976~1986)
''' 프런트 '''
FC 바이에른 뮌헨 (1991~2001 / 부회장)
'''FC 바이에른 뮌헨 (2002~ / 의장)'''
'''정보 더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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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별명 '''
킹 칼레 (King Kalle), Mr. Europe[19]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국가대표 경력
3. 은퇴 후
4. 플레이 스타일
5. 평가
6. 기록
6.1. 리그 기록
6.2. 대회 기록
6.3. 개인 수상
7.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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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독일축구 선수 출신 축구 행정가. 현재 FC 바이에른 뮌헨의 의장을 맡고 있다. 선수 시절 포지션은 우측 윙포워드 및 스트라이커.
1980년대 서독의 전설적인 공격수로 1980, 1981년 발롱도르를 연속 수상하는 등 당시 유럽의 대표격 선수라는 의미의 'Mr. Europe'라고 불렸다. 차범근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도 맞대결한 적이 있으며 국내 올드팬들에게도 친숙한 이름이다.[3]
커리어의 대부분을 바이에른 뮌헨에서 보내면서 분데스리가 2연패 및 유러피언컵 2연패 등 수많은 트로피를 들어올렸고 구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4] 또한 서독 대표팀에서도 유로 1980 우승 및 1982년 스페인 월드컵,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연속 준우승에 크게 기여하며 우베 젤러 - 게르트 뮐러의 계보를 이었다.[5]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루메니게는 1974년 FC 바이에른 뮌헨에서 데뷔했는데, 당시 뮌헨은 프란츠 베켄바워 - 게르트 뮐러 - 제프 마이어를 앞세워 유럽을 제패하던 클럽이었고 루메니게 역시 두번째 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차지하며 팀의 유러피언컵 3연패에 공헌한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뮌헨은 적자에 허덕였고 주축이었던 프란츠 베켄바워와 게르트 뮐러가 이적, 제프 마이어와 울리 회네스가 교통사고와 부상으로 은퇴하면서 리그에서 10위 밖으로 추락하는 굴욕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1978-79 시즌 레알 마드리드 CF에서의 외유를 마치고 분데스리가에 돌아와 있던 파울 브라이트너가 다시 뮌헨에 합류하면서 '브라이트니게' 듀오가 결성된다.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너는 수많은 골을 합작해냈고, 1979-80 시즌에 루메니게는 리그에서 26골을 넣으면서 득점왕을 차지한다. 이듬해에도 29골을 넣으면서 다시 한 번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뮌헨의 분데스리가 2연패를 이끌었다. 유러피언컵에서도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아스톤 빌라 FC에게 패해 준우승에 그쳤다. 하지만 루메니게는 유러피언컵 득점왕을 차지했다.
1984-85 시즌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로 이적한 루메니게는 30대 초입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리에 A에서 두 시즌 연속으로 18골을 득점하면서 팀의 주요한 득점 자원으로 자리잡게 된다.[7]
다만 1986-87 시즌에는 노쇠화가 급격히 진행되며 폼이 많이 떨어졌고, 시즌이 끝나자마자 바로 이적을 감행했다. 이후 스위스 리그세르베트 FC에서 두 시즌을 뛰고 한차례 득점왕을 차지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1976년에 국가대표로 데뷔한 루메니게는 19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에 출전했으나 팀은 2차 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루메니게는 유로 1980에 출전해 서독의 우승을 이끌었다.
루메니게는 1982년 스페인 월드컵에도 출전했는데 경미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러나 조별 리그 첫 경기부터 루메니게는 득점에 성공했지만 알제리에게 1:2로 패하면서 팀 전체가 부진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루메니게는 칠레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작렬하며 승리로 이끌었고, 히혼의 수치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와의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며 2차 리그에 진출한다.
2차 리그에서 스페인을 격파하고 잉글랜드와는 비기며 1승 1무로 준결승전에 진출했고, 준결승전에서 미셸 플라티니 - 알랭 지레스 - 장 티가나 - 루이스 페르난데스의 매직 스퀘어가 버티는 프랑스를 상대로 고전하며 벼랑 끝까지 몰렸으나 연장전에서 루메니게와 피셔의 골로 3:3 동점까지 따라붙어 승부차기까지 갔고 루메니게는 4번째 키커로 나와 슛을 성공시키며 서독은 결승전에 진출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파올로 로시이탈리아에게 3:1로 패한다. 하지만 루메니게는 브론즈볼과 실버슈를 수상한다.
유로 1984에도 출전했지만 팀은 조별 리그 3위에 그쳐 탈락하는 수모를 당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서독은 기복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준결승전에서 프랑스와 다시 만나 2:0으로 승리한 후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에게 호세 루이스 브라운과 호르헤 발다노에게 골을 먹히며 2:0으로 끌려갔으나, 루메니게의 추격골과 교체 투입된 루디 푈러의 동점골로 2:2로 따라잡았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의외로 큰 활약을 하지못하던 마라도나가 각성하며 환상적인 패스로 호르헤 부루차가에게 공을 연결했고, 부루차가는 그대로 결승골을 넣으며 결국 서독은 준우승에 그친다. 이후 루메니게는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 은퇴 후


은퇴 후 1990년에서 1994년까지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의 TV 해설을 맡았고 동시에 1991년부터는 프란츠 베켄바워의 러브콜을 받고 FC 바이에른 뮌헨의 부사장 직을 2001년까지 역임했다. 그 후 2002년부터 현재까지 바이에른 뮌헨 구단의 이사장과 유럽 클럽 협회(European Club Association)의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4. 플레이 스타일



당시 독일의 축구 언론 키커지에서 평가한 루메니게의 시즌 별 공격수 평점 순위[8]로, 루메니게가 어느 정도 수준의 선수인지 보여주는 단적인 자료다.
74-75 : 3.24 - 44위 / 26경기 8골 (데뷔시즌)
75-76 : 2.78 - 16위 / 48경기 13골
76-77 : 2.81 - 22위 / 42경기 15골
77-78 : 2.62 - 3위 / 38경기 14골 (분데스리가 베스트11 첫 진입)
78-79 : 2.62 - 5위 / 36경기 14골 (분데스리가 베스트11)
79-80 : 2.32 - '''1위''' (2위 키건은 2.42) / 47경기 36골 (분데스리가 베스트11)
80-81 : 2.24 - '''1위''' (2위 푼켈은 2.74) / 45경기 39골 (분데스리가 베스트11)
81-82 : 2.34 - '''1위''' (2위 벤젤은 2.53) / 48경기 27골 (분데스리가 베스트11)
82-83 : 2.32 - 2위 (1위 푈러는 2.32) / 42경기 21골 (분데스리가 베스트11)
83-84 : 2.31 - '''1위''' (2위 푈러는 2.55) / 42경기 32골 (분데스리가 베스트11)
정리하자면 넉넉잡아 7시즌 정도 분데스리가를 지배했던 본좌. 당시 분데스리가의 위상은 뮌헨의 유러피언컵 3연패 이후 전 유럽 최고의 리그로 급부상하고 있던 시기였고 루메니게는 그러한 분데스리가에서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다만 득점 기록에 관해 의외의 맹점이 하나 있다. 1970년대~1980년대 초의 분데스리가는 평균적인 득점률이 다소 높은 리그였고 그걸 감안하면 대단한 득점 기록은 아닌 편이다. 특히나 77-78 시즌은 득점 기록이 당대 기준으로도 상당히 낮은 편이었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렇게 평점이 높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루메니게는 전형적인 스코어러 포지션이 아니었었고 저 당시 뮌헨에서 '''스코어링을 전담한 건 게르트 뮐러'''였기 때문이다.
페널티 박스 안에 짱박혀서 주워먹기에만 주력하는 타깃형 스트라이커 스타일이 아니라[9], 그보다는 조금 내려간 세컨드 톱 위치에서 2선과 좌우 측면 침투 등을 적극적으로 시도하면서 운동장을 폭넓게 사용하는, 단순한 득점 이외에 찬스메이킹에도 상당히 일가견이 있었던 전천후 만능형 선수였다.[10]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조한 득점력에도 불구하고 팀 내에서 차지하는 역량이 높았기 때문에 저런 평점을 찍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득점력이 떨어지냐하면 그런 것도 아니라서 이후 뮐러가 노쇠하기 시작한 78-79 시즌부터 루메니게-브라이트너 조합이 팀을 캐리하다시피 했고, 한때 10위권 밖에서 절절매던 바이에른 뮌헨은 루메니게와 브라이트너가 팀의 주역이 된 후 79-80 시즌 다시 분데스리가 정상에 복귀하여 2연패를 달성했다. 저 조합은 지금도 독일 내에서 많이 회자되는 콤비이기도 하다.
어쨌든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공격수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준수한 스피드와 피지컬 능력을 가졌던 그는 화려하면서도 침착하고 민첩한 드리블 능력을 가졌다. 때문에 수비 한두명은 가볍게 벗겨내며 직접 슛팅을 가져가거나 빼어난 센스를 발휘해 빈공간으로 패스를 찔러넣기도 했다. 창의적인 패스 역시 탑급이였는데 이 역시도 수비가 곤욕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2:1패스같이 팀원을 이용한 연계 역시 잘했다. 또 결정력 역시 뛰어나 침투해서 볼을 받고 넣는 모습도 자주 보여줬다. 볼 컨트롤 능력은 당대 탑이었고 상대 머리를 넘기는 퍼스트터치 등과 리프팅으로도 수비수를 농락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줬다. 몸이 되게 유연해서 발리슛, 시저스킥같은 멋있는 슈팅도 많이 보여줬으니 팬들은 환호할 수 밖에 없는 입장. 제공권 경쟁같은 부분에서 우위를 점하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기회가 온다면 강력한 파워헤더를 내리꽂기도 했다. 중앙에서 플레이메이킹하는 것이 그의 주 임무이기도 했지만 라이트윙으로 뛰면서도 그런 비슷한 플레이를 펼쳤다.

5.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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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 Europe'''이라는 별명으로 대표되는 1980년대 서독과 유럽 최고의 공격수로 동시대 지쿠, 미셸 플라티니, 케빈 키건과 더불어 시대를 호령하던 전설적인 포워드이다. 유로 1980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발롱도르 2연패가 이 위상을 방증한다.
비슷한 레벨의 선수로는 필연적으로 당대에 같이 경쟁하던 플라티니, 지쿠, 키건, 그리고 후대의 선수중엔 앙리와 자주 비교된다. 특히 케빈 키건과는 발롱도르 2회 수상 등 유사점이 많아 당대 분데스리가에서도 라이벌로 자주 조명됐다. 보통은 플라티니와 지쿠보단 올타임 선수 평가에서 살짝 밀리며[11] 케빈 키건이나 앙리보다는 조금 더 나은 평가를 받는다. 단, 2선 공격형 미드필더로 분류되는 플라니티나 지쿠, 그리고 GOAT인 마라도나를 제외한다면 '''당대 유럽 최고의 공격수'''라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독일 선수로서 비슷한 위상을 갖춘 선수는 포지션은 다르지만 로타어 마테우스 정도다. 보통 독일 역대 선수중엔 부동의 1위 프란츠 베켄바워 다음에 게르트 뮐러가 위치하며 그 다음 루메니게와 마테우스가 자리하는 모양새다. 별명인 'Mr. Europe'에서 보듯이 당대 유럽의 대표격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보편적으로 이 중에선 플라티니와 지쿠를 제외하면 루메니게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 경향이 있다.[12]
다만 무리뉴가 말했듯이, 시대가 다른 선수를 비슷한 잣대로 평가를 하는 것은 늘 피해야 하는 사안이기는 하다. 요한 크루이프 & 프란츠 베켄바워, 펠레 & 디에고 마라도나 급이 아니라도 어느 정도 그 시대를 풍미한 선수들에 대해서는 리스펙트가 필요하다.


6. 기록



6.1. 리그 기록


시즌
클럽
소속리그
리그
FA컵
대륙대회
경기
득점
경기
득점
경기
득점
1974/75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21
5
3
1
4
0
1975/76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32
8
7
2
9
3
1976/77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31
12
5
2
6
1
1977/78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29
8
3
0
6
6
1978/79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34
14
2
0
-
-
1979/80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34
26
3
5
10
5
1980/81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34
29
3
4
8
6
1981/82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32
14
7
7
9
6
1982/83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34
20
2
0
6
1
1983/84
FC 바이에른 뮌헨
분데스리가
29
26
7
4
6
2
1984/85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세리에 A
26
8
9
5
9
5
1985/86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세리에 A
24
13
6
2
9
3
1986/87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세리에 A
14
3
5
2
5
1
1987/88
세르베트 FC
스위스 슈퍼 리그
28
10
0
0
-
-
1988/89
세르베트 FC
스위스 슈퍼 리그
32
24
0
0
4
0

6.2. 대회 기록



6.3. 개인 수상


  • 발롱도르: 1980, 1981
  • FIFA 월드컵 브론즈볼: 1982
  • FIFA 월드컵 실버슈: 1982
  • FIFA 월드컵 올스타팀: 1982
  • UEFA 유로 토너먼트의 팀: 1980
  • 유러피언컵 득점왕: 1980-81
  • 분데스리가 득점왕: 1979-80, 1980-81, 1983-84
  • 키커 분데스리가 올해의 팀: 1977-78, 1978-79, 1979-80, 1980-81, 1981-82, 1982-83, 1983-84, 1991-92
  • 스위스 슈퍼 리그 득점왕: 1988-89
  • 스위스 슈퍼 리그 올해의 외국인 선수: 1988-89
  • DFB-포칼 득점왕: 1981-82
  • 독일 올해의 축구 선수: 1980
  • 독일 올해의 골: 1980, 1981
  • 옹즈도르[13]: 1980, 1981
  • 옹즈 드 옹즈: 1980, 1981, 1983, 1984, 1985
  • 월드 사커 올해의 팀: 1982, 1983, 1984, 1985
  • 구에린 스포르티보 올해의 선수: 1980
  • 브라보 오토: 1980, 1981, 1982, 1983, 1984
  • FIFA 100: 2004
  • 바이에른 뮌헨 역대 베스트 XI: 2005
  • 바이에른 뮌헨 명예의 전당
  • 골든풋: 2009

7. 여담


1982 FIFA 월드컵 스페인 4강전 프랑스 vs 서독전에서 부상 때문에 선발 출장하지 못하고 연장전이 되어 교체 출장했다. 연장전에서 프랑스가 먼저 2골을 넣어 3-1이 되었고, 서독이 거의 졌다고 생각할만한 상황에서 루메니게가 3-2로 따라붙는 멋진 추격골을 작렬. 이게 계기가 되어 결국 3-3으로 따라잡는 데에 성공했고 승부차기로 넘어가게 된다. 승부차기에서는 서독이 먼저 실축했지만[14] 결국 서독이 승리했다.
이 당시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국대를 상대로 무쌍난무를 펼치며 클래스를 입증했던 대표적인 경기다.
초인축구만화의 원조격인 캡틴 츠바사의 최종보스격 인물인 칼 하인츠 슈나이더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15] 다만 별명인 데 카이저는 프란츠 베켄바워에서 따왔다.
[image]
오락실계를 평정했었던 세이부 컵 축구 독일팀 모델이다. 당시 선호되던 팀이기도 하고 골 세레머니도 인상적이어서 당시 아르헨티나 모델이었던 마라도나보다도 더 주목받기도 했다.
PES 2020에도 수록되어 있다. 스탠다드 레전드 버전도 밸런스가 아주 잘 잡힌 탑급 공격수로 호평받았으나[16], 아이코닉 버전이 출시된 이후 보날두와 보바페, 토레스, 반바스텐조차 아래로 깔아버리는 게임 역사상 최강의 공격수로 군림하고 있으며 그 위상은 가히 펠레급 이상이다. 모든것이 완벽한 6각형 공격수. 언급한 스트라이커들이 한두가지씩 결점을 가지고 있으나[17] 루메니게는 모든 스탯이 못해도 스트라이커에게 이정도면 충분하다 싶을 정도로 적절하게 분배된데다가 플레이 스타일도 공격수 중 최고로 평가받는 라인 브레이커에 양발잡이고, 공격수에게 가장 중요한 슈팅 스킬과 게임 내 최고의 개인기로 꼽히는 더블 터치를 보유한 선수라 손가락만 좀 되면 어떤 조합에서도 미친 파괴력을 자랑한다. 유일하게 패스 스탯이 세컨드 스트라이커 치곤 좀 낮은데, 어차피 득점력과 돌파가 너무 좋아서 무시해도 좋은 단점.[18] 코나미가 아이코닉 출시 기념으로 딱 한번만 풀었다가 20.06.18에 2차로 한번 더 아이코닉 뽑기가 나왔다. 덕분에 루메니게는 자신의 현역시절을 본 적도 없는 잼민이들에게 개사기라고 푸짐하게 욕을 먹거나 찬양받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 게임에서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루메니게 라는 소리가 들릴정도다. 스트라이커 뿐만 아니라 윙어, 공미로도 굴릴 수 있을 정도로 범용성도 좋아서 그 위상은 가히 피온의 굴리트와 맞먹는 수준. 소개
2020년 12월 10일자로 새로운 버전이 나왔는데, 킥력이 괴랄하게 올라가서 개떡같이 차도 찰떡같이 빨려들어가는 기적의 슈팅을 보여주며 주가가 더욱 올랐다. 위에 루메니게에 대해 써있는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공격수라는 평가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소개
[1] ˌkaɐ̯lˈhaɪnts ˈkalə ˈʁʊmənɪɡə, '카얼하인츠 칼러 후머니거'라고 발음한다.[2] 표준 독일어에서는 한 형태소 안에서 철자상으로 중복되어 쓰는 자음이라 하더라도 따로 구별해서 발음하지 않는다.[3] '우리시대 최고의 공격수는 루메니게였다'라고 차범근이 직접 술회하기도 했다.[4] 'Der Visionär(공상가)'라는 별칭으로 등록되어있다.[5] 이 계보는 위르겐 클린스만 - 미로슬라프 클로제로 이어진다.[6] 세리에 A 외에 컵 대회 및 유럽 단위 클럽 대항전[7] 당시 세리에 A는 우승팀의 시즌 총 득점이 40골 정도로 경기당 득점률이 2.1 내외였던 시기였다. 실제로 1984-85 시즌과 1985-86 시즌 인테르의 시즌 총 득점[6]은 각각 74골, 72골이었다. 전형적인 스코어러도 아닌 30대 초입의 선수가 팀 득점의 25% 정도를 혼자 만들어 냈다는 점은 루메니게의 클래스를 잘 보여준다.[8] 이 시절의 키커지는 공격수에게 평점을 짜게 주는걸로 유명했다. 심지어 게르트 뮐러는 공격수로 한정해도 14시즌 평균 17.7위에 그쳤을 정도.[9] 게르트 뮐러를 이런 형태의 공격수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은데 뮐러는 전형적인 타겟형 스트라이커라기에는 연계도 뛰어났던 완성형 스트라이커에 가깝다[10] 원래 오른쪽 윙이 주포지션이다. 가끔 왼쪽으로도 나왔지만.[11] 루메니게도 발롱도르를 2연패했지만 플라티니는 유로 1984에서 그야말로 대활약하며 우승캐리, 3연속 발롱도르를 수상하며 올타임 10위권이며, 지쿠는 '하얀 펠레'라는 애칭으로 워낙 유명세가 있던 선수여서 올타임 15~20위권으로 평가 받는다. 그러나 플라티니에 비해 그 차이는 크지 않다. 루메니게는 30~50위권 정도로 평가가 다양한 편이다.[12] 유로 2016 개막 전 현역 선수들을 대상으로 유로 역대 베스트 XI를 설문할 때 앙리의 이름이 훨씬 많이 나왔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그것은 앙리의 플레이를 목격한 후대의 현역 선수들만의 의견으로 대표성을 가지긴 힘들다. 오히려 발롱도르 2회 수상 등을 근거로 앙리보다는 위상이 조금 더 높은 편이다.[13] 프랑스의 축구 잡지 《옹즈몽디알(Onze Mondial)》이 주관하는 축구상.[14] 참고로 실축자는 울리 슈틸리케[15] 이 때문에 슈나이더는 축구에서 흔히 에이스 넘버로 통하는 10번과,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에이스 넘버로 통하는 13번이 아니라 11번을 달고 있다. 루메니게는 대표팀에서는 11번을 달고 뛰었기 때문.[16] 게다가 기본 기술도 9개인지라 기술추가로 슈퍼조커를 달아주면 아이코닉 못지않게 매우 좋다.[17] 호날두의 무플스 및 아군 블로킹(...), 음바페의 약한 피지컬, 토레스의 긴 터치, 반바스텐의 느린 속도와 낮은 균형 조절.[18] 단, 연계플레이를 하거나 실력이 낮은 플레이어라면 루메니게보다 토레스가 더 나을수도 있다. 연계와 침투는 토레스가 더 좋기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