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증인/교리
1. 개관
일단 본 문서는 기본적으로 객관적으로 작성 혹은 수정하고자 했으나, 개방된 위키라는 특성상 곳곳에 여호와의 증인 신도로 보이는 옹호자의 반박 혹은 증인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알고있는 안티의 잘못된 주장이 혼재될 수 있다. 그래서 의견들을 어느 정도는 필터링하며 읽을 것을 권장한다. 다만 집총도 거부하며 차라리 극단적으로 감옥을 가버리는 종교 특성상, 내부 분위기는 굉장히 권위적이고 보수적일 것이라고 유추해 보는 것이 비교적 타당하다. 따라서 해당 문서도 우호론적으로 보기 보다는 비판적인 입장에서의 열람을 권장하며, 만약 서술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와 반례가 있을 경우 첨부하고 수정해주길 바란다.
여호와의 증인 교리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리를 수정하고 보완한다는 점이다. 교리실패와 수정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은 '조직논리'를 앞세워 제명 처분을 가하는 등 교단 내에서는 이를 암묵적, 제도적으로 박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75년 종말론 당시에도 반대하거나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철퇴를 가했다. 그렇다고 특정연대 예상실패 후 그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복권시켜준 것도 아니다. 증인들은 '조직논리'를 지나치게 중요시한다. 어느 종교나 집단-조직논리는 큰 의미를 가지기 마련이지만, 증인조직은 이런 부분이 유독 심하다. 위에서 내려온 교리들이 비성경적인 황당한 것일지라도 거기에 불만을 표출할 수 없으며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1919년에 임명된 '충성되고 지혜있는 종'인 중앙장로회(구 통치체)로부터 나오는 말들은 곧 하늘의 왕인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인도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조직의 지침은 성경내용과 사실상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종교 특성상 구조적으로 개방적일 수가 없다. 몇몇 확고한 교리들도 존재하긴 하지만, 반면 세상의 끝과 아마겟돈에 관련된 교리들은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의로운 자들의 길은 밝은 빛과도 같으니, 점점 밝아져 마침내 날이 굳게 선다."는 잠언 4:18의 말씀에 따라 진리는 '점점 밝아지는 것'이기에 계속 수정이 가해져도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여호와의 증인의 전반적인 교리 내용에 대한 기사. # 다만 해당 내용은 여호와의 증인에서 배포하는 자료를 근거로 하여 일방적이지만, 그들이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 간략히 알아볼 수 있게 정리되어 있으므로 참조할 만하다.[1]
워치타워 성서책자 협회의 지도층인 '중앙장로회(구 통치체)'가 1919년 이후로 '진리의 유일한 통로'로 임명받아 성령에 의해 인도받고 있다고 믿으며, 오직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조직 내에 있어야만 마지막 날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2]
성경의 해석에 있어서는 문맥에 따라 사실적 내용과 비유적/상징적 내용을 구분하여 적용하고 있으며, 그 근간은 유대교와 거의 동일하다. 단, 그 해석을 하는 워치타워 중앙장로회의 결정에 대해서는 전세계 모든 신도가 동일한 믿음을 따른다. 해당 내용이 성경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반박은 곧 배교적 행위가 되며 그 주장을 철회하지 않는 경우 제명당한다. 애초에 위에서도 밝혔듯이 당장 교리 해석에 반대하다가 교단에서 제명된 사례가 실제로 차고 넘친다. '이는 이단자, 혹은 제명된 사람들이 본인들의 명예와 분풀이를 위해 하는 거짓된 주장'이라는 실드가 있지만, 실례가 있는 데다가 상식적으로 집총 거부를 해서 차라리 감옥을 갈 만큼 경직된 교리와 이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교인들이 그럴 것이라고는 납득하기 힘들다.
2. 상세
2.1. 예수 그리스도가 인자인 동시에 성자 하느님이심을 부정함: 반삼위일체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성자 하느님이신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며, 성 삼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증인이 이단시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런데 흔히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그리스도가 같은 위격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가 하느님임을 부정하기에 기성 기독교계에 큰 논란을 일으키게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가 마태오 복음서나 데살로니가 전서 등 예수가 천사들을 이끌고 재림하실 거라는 것을, 억지로 다니엘서랑 일치시켜 예수는 하느님의 첫 피조물인 천사장 미카엘이라고 주장한다.[3] 기독교의 주류 종파에선 예수가 인간의 육을 갖춘 하느님의 일면 내지는 자체이며, 미카엘은 그냥 천사장이고 대천사일 뿐이다.[4]
즉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가 이단적인데, 여호와의 증인이 성자 하느님 개념을 부정하는 것은 성자 로마 제국 시절 열린 니케아 공의회에서 황제와 알렉산더파와 아타니시우스파 주교들 사이의 합의로 만들어진 인위적 개념이라고 간주하고 있어서라고 주장을 한다. 실제로 니케아 공의회 직후에는 삼위일체파가 헤게모니를 잡았으나 이후 콘스탄티우스 2세 시대에는 다시 아리우스파가 세력을 잡는 등, 니케아 공의회 이후 수십 년간 기독교 헤게모니를 둘러싸고 황제권력과 얽힌 파괴적인 혼란(정적숙청 및 폭력 등)이 지속되었기에,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이 점이 얼핏 여호와의 증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무튼 결국 아타나시우스파(삼위일체 파)의 승리로 귀결되었기에, 비삼위일체 주장은 오늘날에는 이단으로 취급받는다.
2.2. 십자가가 아니라 형주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리스도 대속의 의미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예수가 처형된 도구가 2개의 나무로 이루어진 십자가가 아닌, 오직 1개의 나무로 이루어진 단순한 기둥이라는 것. 즉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십자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 중 하나인 스타우로스는 고전 그리스어에서 주로 곧은 기둥 즉 장대를 의미하며, 또 다른 단어 크실론은 단순히 "목재나 나무 기둥"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5] "3, 4세기에 나온 십자가 무덤이나 유물들은 뭐라고 반박할 거냐"고 묻는다면 증인 측에서는 '인류 문명 초기의 고대 이집트의 신들을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 상형 문자, 콥트 교회, 또는 힌두교나 불교인에게서도 감마 형태의 십자가(크룩스 감마타) 등의 십자가를 볼 수 있지 않냐, 이러한 이교의 형상적인 관습이나 형태가 그리스도교에 스며들어가서 십자가를 숭배하게 된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6]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십자가도 땅에 세우는 일종의 말뚝인 데다가, 당시 유대를 지배하던 로마 제국의 법률상 반역자[7] 에게 시행될 극형이라면 십자가형이었음이 역사적으로 확인되므로 그 시점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8]
2.3. 종말론(아마겟돈)
이들은 초대회장 러셀의 '1914년 세상의 제도종말' 주장에서 보이듯이 종말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시점이 틀렸다고 판명되면 자체적으로 변경해왔다. 즉 바꿔 말하면 특정 시점에 세상제도의 끝이 온다고 주장한 뒤에, 그 시점에 종말이 오지 않으면 태도를 바꿔 '종말이 언젠가는 오지만 당장은 아니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여타 종말론적 종교들의 특성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현재는 (기독교가 세계 종말의 시점을 아무도 모르는 것으로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언제 종말이 올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며, 확실한 여러 징후가 있은 후에 종말이 올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들의 교리에 따르면 '하늘왕국'에서 예수와 함께 땅을 통치할 전망을 가진 사람은 '적은무리'로 불리며 그 수는 정확히 14만 4,000명. 이는 이스라엘 12지파에서 비롯된 숫자이다. 민족이 유대인이냐 아니냐는 전혀 관련이 없다. 이 14만 4,000명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공동 왕노릇하며 지상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며, 나머지 '큰 무리'는 낙원으로 회복된 지상에서 산다고 여긴다. 물론 14만 4,000명에는 러셀 이후의 증인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이후, 즉 1세기 이후에 존재해 왔던, '인간적 철학에 의한 배교'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한 믿음을 유지한 충실한 그리스도인 역시 포함된다고 한다. 천년왕국[9] 시기가 도래해 죽은 충실한 사람들이 부활되고 점차 땅을 낙원으로 만들어 나간다고 한다. 천년이 다 차게되면 무저갱에 갇혀있던 마귀가 일시적으로 풀려나서 마지막 시험을 가하고 이 최종시험을 이긴 사람들은 아담과 같은 완전성으로 돌아가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다.
1914년 당시의 사건 이후에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1975년[10] 종말론에 확신을 가졌었는데, 증인 지도부의 주장과는 달리, 일부 신자가 아닌 전세계의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렇게 믿었고, 그들만의 교리인 천년왕국에 대한 급박한 기대감으로 인해 자신들의 삶의 양식까지 변경해 가며 행동했다는 것이다.
1975년에 대한 기대가 허무하게 지나간 후[11] 에는 1988 서울 올림픽, 소련-동유럽 공산주의 진영의 붕괴 등을 거치며 바야흐로 '평안하다 안전하다'[12] 라고 여길 법한 전 세계적 평화무드로 접어드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있었고, 이에 따라 1990년을 전후한 시점에는 '아마겟돈이 지평선에 보이기 시작한다', '지금은 마라톤 주자가 마지막 100미터 결승선에 다다른 상황' 등등의 기대섞인 표현들이 널리 퍼져나가며 또다시 종말이 올 것이라며 기대감을 가졌으나[13] 이 역시 보기 좋게 빗나가고 이후 시간이 흐른 현재는 특정문구나 (직접이든 간접이든) 특정시점을 강조하지는 않지만 다니엘서의 '북방왕과 남방왕'에 관한 구절들을 인용하여 러시아-중국 동맹 vs 미국의 구도[14] 하에서 곧 끝이 닥쳐올 것이라 믿고있다.
참고로 종말론에 대해서 첨언하자면 1975년과 관련한 예측실패 이후로 여호와의 증인의 종말론은 '직접적 시기'를 정하지 않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때에 대한 징조인 '기근과 범죄, 전쟁, 지진'등을 닥쳐올 종말의 징후로 보고 열심히 전도하고 있다.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세상의 끝'이란 물질적인 지구 자체의 종말이 아니라 지상에 있는 악한 자들이 멸절된다는 의미의 아마겟돈이라고 한다.
2.4. 지옥 부정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을 인용하여 현재 기독교계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교리, 소위 '''예수천국 불신지옥'''이 이교에서 비롯된 잘못된 교리라고 주장한다. '''사랑의 하느님이 자신의 피조물들에게 영원한 고통을 줄 리가 없다'''는 것. 그래서 죽은 사람은 딱히 지옥 같은 곳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무(無)로 돌아가며[15] , 아마겟돈 때 그리스도에게 심판을 받고 염소로 분류될 악한 자들 역시 지옥이 아닌 무로 돌아간다고 한다.[16] 이러한 교리에 대해 비판하는 쪽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누가복음에서 부자와 나사로의 죽음을 묘사한 내용을 들어 지옥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2.5. 국기경배 거부와 집총 거부
이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왕국의 백성이기에 '너희들은 세상의 일부가 아니'라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지키려고 한다. 흔히 증인들이 국가, 세상단체 등을 '마귀의 창조물'이라고 여겨 '국가 자체를 거부'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증인에 관해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의 일방적 견해로,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세상적 집단 자체들이 사탄이 빚은 창조물이란 것이 아니라, 그러한 조직들 배후에서 '사탄의 악한 영'이 영향을 미쳐 이들이 자신의 의도대로 세상을 악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한다는 것.
기본적으로 성경의 가르침대로 '위에있는 권세'(국가권력, 최고통치자)에 복종한다. 단, 국기에 대한 경례, 군대복무 등 국가 혹은 국가의 상징물에 숭배적 헌신으로 여겨질 수 있는 행위 혹은 살인하지 말라는 성경적 대전제에 어긋나는 일체의 행동은 거부한다. 즉, 기본적으로는 국가의 지시에 복종하되, 성경적 원칙이라고 생각되는 부분과 국가의 강제력 혹은 의무가 부딪힐 때는 '사람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더 따라야 한다는 이유로 이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문구가 "신의 것은 신에게,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이다.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여호와의 증인들이 국가 자체를 사탄으로 여겨 복종을 일체거부한다는 잘못된 정보가 사실처럼 돌아다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진짜 그러했다면 아마 전세계적으로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사야 2장 4절의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농기구)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치 아니하리라" 란 성경 구절, 혹은 "같은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끼리 어찌 서로 죽일 수 있나"란 논리를 내세워 국가 간의 전쟁을 경멸한다. 사실 집총거부의 경우 많은 선진국들의 역사에서 보듯이 재세례파 등 종교적 소수자들을 배려[17] 하기 위해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거나, 아예 모병제로 전환했다. 국제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지만[18] 한국에서는 보수주의자들, 예비역 남성들을 중심으로 여호와의 증인을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는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때문에 여호와의 증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 시절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 치하에서 전쟁에 협력하기를 거부'''하였다. 그 결과 상당수의 신자들이 수용소나 교도소에 끌려가 고문, 집단 학살당했고, 2차대전 종전 후 서구, 특히 독일에서 병역 거부가 정당화되는 데 기여했다. 또한 의도치 않게 한국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긋기도 했다(등대사 사건[19] ). 마찬가지로 아프리카 독재 국가나 중국 등의 후진국에서도 탄압받는다. 집총 거부와 같은 맥락으로 집단학살, 인종차별, 인권유린 등의 폭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점은 진보주의자들 사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최소한 세속 국가에서 살면서 비폭력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구약 성서 시대의 전쟁의 경우(예를 들어 예리코의 전투)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20]
여호와의 증인은 정치적으로 어느 특정 집단 편에도 서지 않고, 무엇보다 정부 당국자들 입장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정부에게 실질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 나라가 신정 국가가 아닌 이상 반국가적인 면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있다. 물론 한국 정부의 경우 병역거부 난민 발생과 유엔의 거듭된 시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최근까지 병역거부자들을 처벌해왔으므로, 한국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교도소 수감과 출소 이후의 사회적 불이익을 고스란히 안고 살아가야 한다.
심지어 전쟁을 다루는 파괴적인 것들도 보면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 스타크래프트나 메탈슬러그 같은 폭력성 짙은 게임들을 가까이 하지 않기를 권장하며, 폭력성 짙은 영화나 기타 영상물들을 보는 것도 주의하도록 계속 권고한다. 즐기는 와중에 부지불식간에 생각속에 저러한 요소들이 긍정적 혹은 아무것도 아닌 것 마냥 자리잡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
2.6. 수혈 거부
Q. 성서가 금하는 것에는 인간의 피도 포함되는가?
그렇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이해하였다. 사도행전 15:29에서는 "피[를] ... 계속 멀리"하라고 교훈한다. 그것은 동물의 피만 멀리하라는 뜻이 아니다. (비교 레위 17:10. 그 구절에서는 "어떤 피든지" 먹는 것을 금하였다.) 테르툴리아누스(초기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변호하는 글을 쓴 사람)는 이와 같이 말하였다. "'피'에 대한 금지령을 인간의 피에 대해 더욱 적용되는 (금지령)이라고 우리는 이해한다."—「니케아 이전의 교부들」 4권, 86면.
Q. 수혈은 과연 피를 먹는 것과 동일한가?
병원에서는, 환자가 음식을 입으로 먹을 수 없을 때, 그에게 정맥 주사로 양분을 공급한다. 그러면 입 안으로는 피를 전혀 넣지 않지만 수혈로 피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과연 “피[를] ... 계속 멀리"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는 것인가? (행 15:29) 비유를 든다면, 의사로부터 알코올을 삼가야 한다는 말을 들은 사람을 생각해 보자. 만일 그가 알코올을 마시지는 않지만 정맥으로 직접 주입한다면 그 지시를 따르는 것인가?
반론1
'의사'의 알코올 자제 지시와 성경에서 '피를 멀리하라'는 구절이 동일선상에서 비교될 수 있는지 문제된다.
의사의 알코올 자제 지시는 명백한 '의료적 목적성'을 띄고 있기 때문에, 입으로 하는 알코올 섭취와 정맥으로의 알코올 주입이 신체에 동일한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알코올 자제 지시가 정맥으로의 투여 금지를 포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성경에서의 '피를 멀리하라'라는 레위기의 내용은 종교적 정결성을 그 목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용도의 수혈 역시 동일하게 정결성을 해한다고 볼 만한 명백한 논리적 구성이 없는 한 피를 멀리하라는 율법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수혈이라는 치료 행위의 금지를 포괄한다고 볼 수 없다.
반론2. 치료 목적과 율법상의 목적은 다르지 않은가?
성경에서 술도 멀리하라고 말하고 있지만, 알콜솜으로 사람을 소독하는 것이나 알콜이 들어간 구강소독제로 구강을 청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기독교 종파는 없다. 성경에 포도주를 멀리하라는 구절(민수기 6:3, 신명기 32:33 등)이 등장하지만, 동시에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이야기에서 '포도주로 상처를 소독하는 내용'(누가복음 10)도 등장한다.
누가복음 6장에서 예수님도 율법상 안식일에 누군가를 치료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손 마른 자를 치료했다. 이에 율법주의자들의 비난을 하자 '안식일에 사람을 살리는 것과 멸하는 것 중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반론3. 다른 정결 규정
성경의 레위기에는 피를 멀리하라는 구절 말고도 여러 가지 정결 예식과 규정이 등장한다. 예컨대 전염병에 걸린 자와 접촉하게 될 경우 마을에서 7일간 벗어날 것, 생리하는 여성과 접촉할 시 정결 예식 및 마을로부터 떨어질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호와의 증인'은 오로지 수혈의 금지에만 집중하여 목숨을 잃어가면서도, 다른 율법의 정결 예식과 규정에 대해서는 이토록 집중하고 있지는 않다.
이들은 창세기에 9장에 나와있는 '피를 먹지말라'는 명령을 '피를 아예 받아들이지 말라' 로 해석하여 수혈을 금지하고, 녹용이나 순대 등 동물의 피가 들어간 음식을 먹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21] 그로 인해 무수혈 수술, 수혈 금지 등의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반론3에 대한 반론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여호와의 증인이 피를 멀리하는 성경적 근거로 제시하는 것이 레위기라고 알고 있고 항상 레위기만 언급한다. 하지만 정확히 보자면 잘못된 것이다. 애초에 피를 먹는 것에 대한 금기는 창세기 9장 4절에 나와 있다. 이는 모세율법보다 훨씬 오래된 명령이이며, 특정 민족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명령이다. 증인들은 (신약시대 이후의 율법폐지로 인해 그 이행에 대해 이견이 갈릴 수 있는) 레위기의 내용보다는, 명백한 창세기의 내용을 근거로 삼는다. 따라서 반론3에 있는 '다른 율법에 관한 집중'문제는 논점을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증인들 역시 모세율법은 신약시대에 들어서며 폐지된 것이라 믿는다.
일부 신자들이 무수혈 치료가 수혈 치료보다 부작용이 적은 점을 들어 수혈 치료가 안 좋다는 식으로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주장이다. 무수혈 치료가 이루어지는 수술은 주로 심장 질환 계통의 수술로, 많은 준비와 철저한 계획 후 이루어진다. 하지만 많은 수혈 치료가 교통사고 등의 응급 상황에서 이루어지며, 1분 1초를 다투는 상황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부작용 운운하는 일부 발언이 얼마나 위험하고 억지스러운 주장인지 알 수 있다. 수혈 치료보다 무수혈 치료가 효율적이라면 이미 현장에서 의사들이 먼저 주 치료법으로 채택했을 것이란 걸 잊지 말자.
본인의 수혈만 거부하면 혼자 죽고 말 일이라 볼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수혈 거부 의사를 인정한 의사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대법 2009도14407 판결도 있다.
2.7. 동교 결혼
쉽게 말해서 여호와의 증인은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정식 신자와만 결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남편에게 매여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어 잠들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자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만 해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7:39
그리스도인 회중에서는, 자동적으로 결혼의 띠가 끊어지게 되는 죽음을 제외하고, 결혼의 띠가 끊어지게 되는 유일한 근거는 '음행'이다. 죄를 범한 사람은 음행을 통해 불륜의 상대와 한 몸이 된 것이다. 따라서 무죄한 쪽에서는 원한다면 이것을 근거로 결혼 관계를 끊을 수 있으며, 그런 다음 재혼할 수 있다. (마 5:32; 로 7:2, 3)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음행'(그리스어, 포르네이아)의 경우에 이처럼 이혼을 허용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배우자가 신자이든 신자가 아니든 별거도 하지 말라고 교훈하며, 만일 별거하게 된다면 다른 누구와도 성관계를 갖지 말라고 명령한다.—고첫 7:10, 11; 마 19:9.
2.8. 생일기념 거부
성경적 근거가 없는 교리 중 하나이다. 물론 증인들은 몇몇 성경적 사례(?)를 근거로 제시한다.
1, 2번에 대해서 보자면, 어디까지나 생일잔칫날 처형을 명했던 당사자를 비난할 수는 있어도 생일 그 자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만약 파라오나 헤롯의 결혼기념일날 처형이 일어났다 해도, 결혼기념일을 지키는 것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생일기념 때 케이크에 초를 꽂아놓고 소원을 비는 등의 행위는 기독교적이 아닌 이교적 혹은 미신적 모습이라 할 수 있으므로 배격할 수 있겠으나, 생일기념 그 자체를 터부시하는 것은 명백한 과잉해석이고 비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1. (창세기에서) 요셉과 함께 감옥에 갇혀있던 '빵 굽는' 신하는 이후 요셉의 꿈 해몽대로 처형되었는데, 이 날은 파라오의 생일이었다.
2. (마태복음, 마가복음에서) 침례자(혹은 세례자) 요한은 헤로디아의 청을 들은 헤롯 안티파스 왕의 명령으로 처형되었는데, 이 날은 헤롯의 생일이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최후의 만찬을 베풀며 자신의 죽음을 계속 기념하라고 명령했지만,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라고 한 적은 없다.
3번의 경우 역시 지나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지 말라고 한 적 또한 없다. 물론 성탄절이 사실 그리스도의 생일날이 아니며, 그 근원 역시 태양신과 관련된 숭배기일에 있기에 성탄절은 거부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지만, 일반 개인의 생일기념까지 금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성경에 명확히 나와있지 않은 부분들에 대한 행동을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지 않고 일률적으로 금기시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의적이고 지나친 교리라고 볼 수 있다.
참고로 '개역개정판'의 욥기 1장 4절에는 욥의 자녀들이 각자 '자기 생일'에 잔치를 베풀고 즐겼다고 되어 있는데, 이 중 '자기 생일'이란 부분은 개역개정판을 편찬한 측에서 임의로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현대어성경 등의 해당 부분에는 생일이란 표현이 등장하지 않는다. 욥의 아들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잔치를 베풀고 놀았다는 내용으로 보아, 이는 생일잔치가 아니라 다른 순회적 잔치(돌아가며 거하게 베푸는)였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내용이 생일기념을 터부시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함은 분명하다.
2.9. '두 가지 부류의 구원'교리
구원받는 여호와의 증인에는 두 부류가 있으며, 각각 서로 다른 구원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교리이다.
한 부류는 '적은무리'이며, 이들은 죽은 후 하늘로 올라가 아마겟돈 이후에 왕인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왕국을 상속받고 왕 겸 제사장으로서 이 땅을 다스릴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한 부류는 '큰무리'인데, 이들은 하늘이 아니라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적은무리의 숫자는 요한계시록에서 나오는 바를 문자적으로 해석해 정확히 14만 4천명이라고 한다. 그 외 나머지는 모두 큰무리에 속한다. 증인역사 초기 수십년 간에는 이런 두 가지 무리의 구분이 없었으나, 1935년 이후 이러한 교리가 정립되었다.
이 '적은무리'들은 성경의 최후의 만찬 부분에서 나와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인한 '새 계약'의 당사자들이며, 따라서 하늘왕국을 상속받아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할 희망이 있다. 그렇기에 증인들의 연례행사인 '주의 만찬'날에 표상물(무교병과 포도주)를 직접 섭취한다. 하지만 하늘희망이 없는 절대다수의 큰무리들은 이를 먹지는 못하고 단지 서로 돌려가며 눈으로 보기만 한다. 이 교리가 등장한 1935년 이후에는 기존의 적은무리를 모으는 일이 거의 끝났으며 이제 전 세계로부터 본격적으로 큰 무리가 모아지기 시작했고 적은무리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어 왔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이후 오랜시간 동안 표상물을 섭취하는 '적은무리'의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왔고, 이는 이 교리의 정확성을 증명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적은무리가 지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고대하는 아마겟돈이 올 것으로 생각했으므로 이들의 지속적 감소는 '큰무리'들의 끝에 대한 희망을 증폭시키기에 충분했다.이교철학 및 배교적 영향에 오염되지 않고 비교적 깨끗하게 충실한 믿음을 유지했던 서기 1세기 그리스도인들 + 점차 급속도로 오염되어 간 기독교 속에서 그나마 초기의 신앙을 지키며 남아있던 2세기 이후의 극소수의 참그리스도인들 + 1870년대 이후의 여호와의 증인들 중 특정 수 = 적은무리 14만 4천명.
그런데 이들의 수가 8천명 대까지 떨어진 2005년 경부터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 나타난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표상물 섭취자 즉, 적은무리로 간주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폭증하기 시작한 것이다.[22] 급기야 2019년에는 2만 명을 돌파해 버린다. 이는 증인교리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이다. 오랫동안 증인들은 표상물 섭취자를 적은무리와 동일시해왔고[23] , 이를 '이 세대'와 관련된 교리와 연관지어서 세상의 끝이 얼마나 가까이 다가왔는가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바로미터로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이 이제 폭증했으니 혼란이 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당혹스런 현상에 대해 증인조직은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24]
애초에 적은무리의 수를 14만 4천으로 못박은 것 자체가 무리수라고 할 수 있다. 1세기 기독교인 전체 + 2세기의 일부 잔존 '참기독교인' + 러셀시대 이후부터 1935년경까지의 증인들을 모두 합치면 이미 14만 4천명을 훨씬 넘어서고도 남을 것이다. 또한 하늘의 희망과 땅의 희망을 구분하는 기준이 '선착순'이 되어버리는 것이기에, 공정함과 형평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1935년 이전에 태어난 덕택에 하늘희망을 받고, 그 이후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땅의희망에 머물러야 한다는 교리가 과연 어느 정도의 설득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라 할 수 있다.
증인들은 적은무리와 큰무리의 구분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음의 성경구절을 이용한다.
이 구절에서 기존에 '이 우리'에 속해있던 양들은 '적은무리',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이 바로 '큰무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나오는 '우리'의 뜻은 기존의 '모세율법'을 뜻한다는 보는 것이 정설이다. 즉 해당 성구는 '모세율법에 속하지 않은 비유대인들(다른 양들, 대표적인 예로 고넬료)도 인도해서 기존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하나의 무리로 조화를 이루게 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정확하다. 신약시대의 새 계약 하에서는 유대인과 비유대인 모두 그 계약의 대상이 되어 하나의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나에게는 이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도 있습니다. 나는 그들도 인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한 목자 아래 한 무리가 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16, 신세계역)
3. 상습적 교리번복에 대한 합리화 시도와 그에 대한 비판
여호와의 증인은 그들의 가장 큰 교리적 기둥인 1914년 교리만은 끝까지 고수[25] 하기 위해 이를 뒷받침하는 교리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필요하다면 반복적으로 수정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일찍히 1874년 임재설을 시작으로 이후 1914년 아마겟돈설 주장, 1925년 아마겟돈설 및 구약의 충실한 자들 부활주장, 1920년대의 '지금 살아있는 수 백만명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주장, 1975년 세상의 종말설 주장 등 화려한 실패전적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인 현재에도 '겹세대론' 등 여러가지 비성경적인 주장을 '조직논리'를 앞세워 성경 가르침과 사실상 동격으로 두고 굳게 신봉하고 있다.
140년이 넘는 시간동안 상기한 여러 교리들의 성립과 소멸 사이사이마다 수많은 수정이 가해졌고, 이는 앞으로도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점점 흐르고 있고, 그들은 '중앙장로회 1919년 임명'교리를 앞으로도 절대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의 경과 때문에 기존 교리가 실패로 돌아간다면 다시 수정할 것이라는 것.
아킬레스건처럼 되어버린 상습적 교리번복에 대한 비판에 대응해 증인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1. '''잠언 4장 18절을 이용한 괴변'''
증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성구. 사실 저 성구는 어떤 교리적 가르침의 오류가 시간이 흐를수록 바로잡혀 결국 실체적 진리에 수렴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는 구절이다. 또한 '아침의 빛'을 처음 보았다고 간주되는 러셀시대 이후, 결정적 교리 면에서 그들이 점점 밝아지기는 했는가를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대표적 예로 비성경적 교리의 대표주자인 '겹세대론'을 들 수 있으며, 또한 2005년 이후 갑작스레 대폭증해버린 표상물 섭취자 수의 증가로 인해 이제는 꼬여버려 궁색한 처지에 놓인 '적은무리-큰무리 교리' 역시 이에 해당한다. 정말 점점 밝아지는 진리가 그들 가운데 있다면, 저러한 잘못된 교리들은 그리스도의 인도 하에 서둘러 폐기되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중앙장로회는 예전에도 그랬듯 결코 그럴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 권위의 근간인 '1919년 임명' 교리를 끝까지 고수하기 위해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의로운 자의 길은 아침의 밝은 빛과도 같으니, 한낮에 이르기까지 점점 밝아진다. (잠언 4:18, 신세계역)
2. '''과학적 견해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교리변경도 마찬가지이며 따라서 아무 문제없다.'''
완전히 잘못된 비유다. 증인조직의 교리변경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가를 안다면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과학적 견해의 변경은 새로운 가설제시에서 출발해 이를 입증하기 위한 상세한 근거제시 및 전세계적 토론과정 그리고 검증과정들을 반드시 거친다. 그 과정에서 조금의 오류가 발생한다면 결코 인정받지 못한다. 반면 증인의 교리는 결코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중앙장로회가 성립되기 이전시대(러더퍼드 시대- 노어시대 초기)에는 러셀-러더퍼드의 생각이 즉 교리 그 자체가 되었다. 특히 러더퍼드 시대에 들어 강력한 중앙 집권적 권위가 형성되면서 이에 대해 '감히' 이의를 제기하는 건 점점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1935년 이후 '큰무리'와 구분된 적은무리들 역시[26] , 교리형성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오직 협회장과 그 곁의 극소수의 인물들의 견해가 교리화되었다. 과학이론 정립과는 거리가 먼 이러한 방식 때문에, 그렇게 많은 아마겟돈 예언실패와 기타 교리적 오류들로 점철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노어시대로 깊숙히 들어섰지만 이러한 경향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도리어 노어시대에는 '프레데릭 프렌즈'[27] 라는, 증인조직의 독보적 이론가가 대두되어 핵심교리 형성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1975년 세상의 끝' 주장이 바로 프렌즈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대실패로 끝난 이 개인적 망상은 당시엔 정말로 확고한 주장이 되어 전 세계 수많은 증인들의 삶의 양식을 좌지우지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1914년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되면서 '이 세대' 교리가 흔들리게 되자 급해진 조직은 '세대'의 끝 시점을 연장하고 또 연장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소수 상층부를 제외한 신도들의 이의제기는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 이 무리한 교리변경에 대해 중앙장로회(당시 통치체) 내부에서조차 의견일치가 안 되어 여러 타협안 제시가 오갔을 정도로 상황은 촌극 그 자체였다.
2020년 현재 오늘날에도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파수대 '연구'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연구'의 사전적 뜻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단순 주입만이 이루어지고 있다. 관심자들에게 이루어지는 개인연구 또한 동일하다. 러셀시대 극초기 소규모 모임시절에는 그나마 구성원 전체의 토의를 통한 결과도출이란 기본적 과정을 거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교리에 대한 모든 최종권한이 극소수의 중앙장로회로 넘어갔으며 이들의 생각이 곧 성경말씀과 사실상 동등한 권위를 부여받게 되었다. 그래서 '겹세대론'과 같은 희대의 엉터리 교리가 2010년에 등장했음에도 신자들은 아무런 이의제기를 못 하고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게 돼버린 것이다.
과학적 이론정립의 철저한 과정을 이들 증인조직에 그대로 적용한다면 조직이 남아나지 않고 완전히 붕괴될 것이다. 과학적 견해가 변할 수 있듯이, 증인교리가 합리적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인정했다면 '레이먼드 프렌즈'[28] 와 같은 사례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3. '''진리를 찾고자 하는 열정이 너무 깊어서 그랬을 뿐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실제로 과거의 빗나간 연대예언 결과를 받아들자 보였던 변명이다. 이런 변명이 용납되려면 증인 외에 전 세계에 있는 수많은 연대예언 실패사례가 다 정당화되어야 한다. 한국에도 그 유명했던 1992년 다미선교회의 사례가 있다. 증인들은 당연히 이들의 '거짓예언'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이유로 이들을 거짓 그리스도교로 여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다미선교회도 구원받고자 하는 열망, 열정이 너무나 커서 그런 일을 벌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증인 외의 다른 전 세계의 재림교파들 역시 특정 연도를 유별나게 중요시하며 터무니없는 확신을 가졌던 적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이들 또한 세상의 끝을 보고 구원을 얻고자 하는 그 열정이 너무 깊어서 과도한 추측과 근거없는 예언을 남발했던 것인데, 증인들은 이들 역시 거짓종교로 치부한다. 하지만 결국 '열정'이라는 면에서 증인들이 이들과 크게 다른 부분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타 종교들에게 들이댄 잣대를 가지고 증인 스스로를 판단한다면 그들 역시 거짓종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과거 사건들을 단순히 '열정에 의한 헤프닝' 정도로 의미축소를 하려고 한다. 그저 '기대할 수 있을 정도'라고만 제시했을 뿐이었는데 일부 신자들이 오버해서 필요 이상으로 연대를 맹신하고 막나가는 행태를 보였다는 태도를 아직도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당시에 항상 '확신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하느님의 시간표' 등등 매우 확정적이고 최종적인 의미의 수많은 표현으로 그 연대들을 정당화하고 거듭 강조해 왔다. 따라서 해당 연대들에 끝이 오는 것은 의심할 필요가 없는 당연한 사실인 것마냥 전파되었었다. 그렇기에 예언이 빗나가게 되자 수많은 신자들이 등을 돌리게 된 것인데, 통치체 등의 지도부는 2020년 지금까지 그 어떠한 과거사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고 있고, 모든 것이 '잘못 이해하고 성급했던' 일부 신자들 때문에 벌어졌던 일시적 해프닝 정도로 여기고 있다. 당시 재산을 처분하고 직장을 그만두고, 병원치료를 아마겟돈 이후로 미루고, 고등교육(대학 이상)을 포기하는 등, 협회의 확신적 설레발에 넘어갔다가 이루 말 할 수 없는 심리적 물질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협회가 보인 인간적인 배려는 지금껏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진, 믿음이 부족했던 배교자'로 취급하고 있을 뿐.
현재 증인조직이 주장하는 겹세대, 북방왕-남방왕 예언들이 또 빗나가게 되면 그들은 또다시 '열정이 커서 그랬을 뿐'이라 변명을 시도할 것임은 자명하다. 하지만 단지 '열정'이었다는 이유로 이 모든 것들을 합리화할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4. '''기상청 예보도 오류가 많이 발생한다. 증인조직의 오류가 뭐가 잘못된 것인가.'''
위의 2번과 대동소이하다. 기상청의 오류가 빈번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은 최소 최신의 기상학 이론과 고성능의 슈퍼컴퓨터 등을 동원해 최대한 그 시점에서 가능한 믿을 만한 결과물을 도출하려고 노력한다. 반면 증인조직의 교리들은 어떠한가. 교리를 정립한 당대에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합리적 성경근거와 많은 기독교 관련자들의 견해를 취합해서 최대한 오류의 여지를 제거하고 믿을 만한 결과를 도출하려고 노력했는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그 동안 일어난 많은 예언실패가 증명해 준다. 기상예보는 많은 실패 속에서도 실패의 원인을 분석하여 점점 적중확률을 높여가지만, 증인조직의 교리는 계속 실패로 드러나고 있다. 2번에서 언급했듯이, 교리결정이 매우 폐쇄적이고 독단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결코 기상예보의 과정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러셀은 1914년 세상의 끝에 대한 예언이 빗나가자 패닉 상태에 빠졌으며 결국엔 자신의 오류를 철저히 인정하기보단 정당화하는 쪽을 택했다. 그는 이러한 실패를 두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계획을 파기하고 끝을 오지않게 한 것은, 앞으로 더욱 더 전파에 매진하고 더욱 충성을 다해 믿음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축복'으로 받아들였다. 일종의 '정신승리'를 택한 그는 동료 신도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훗날 말년의 러더퍼드 또한 여러 예언실패 등에 대해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인정하는 모습을 잠깐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 역시 신도들에게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이후 1975년 예언이 불발되었음에도 조직은 결코 사과하지 않았다. 2009년의 서울 국제대회에서 중앙장로회의 '게리트 뢰시'가 사과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그는 어디까지나 마지못해 당시의 예언행위를 '인정'했을 뿐[29] 이며 그의 멘트 어디에도 그 잘못된 교리로 인해 인생이 꼬여버린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가 담겨있지 않다. 이러한 태도들을 보면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조직의 거듭된 실패는 정당화될 수 없으며, 그들은 '조직논리'를 앞세워 화석화된 독단적 결정을 남발하는, 그저그런 재림파 개신교 계열의 한 일파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