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철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장'''
'''문재인 정부'''
30대
박삼득

'''31대
황기철'''

''현직''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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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1대 국가보훈처장
황기철
黃基鐵 | Hwang Ki-Chul
'''
'''출생'''
1956년 9월 2일 (67세)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 원포리
(現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원포동#)
'''학력'''
진해고등학교 (25회 / 졸업)
해군사관학교 (32기 / 학사)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 / 학사)
프랑스 파리 제1대학교 (역사학 / 석사)
'''병역'''
대한민국 해군 대장 예편
'''가족'''
배우자 호수경, 자녀 1남 1녀
'''종교'''
불교
'''소속 정당'''
[1]
'''현직'''
국가보훈처장
'''경력'''
대통령비서실 국방담당관
광개토대왕함
진해기지사령관
제2함대사령관
해군작전사령관
해군참모차장
해군사관학교장
제30대 해군참모총장
더불어민주당 창원시 진해구 지역위원장
더불어민주당 국방안보특별위원회 위원장
세종대학교 석좌교수
중국 시안배화 대학 객좌교수
'''링크'''

1. 개요
2. 생애
2.1. 해군 소위에서 제독까지
2.2. 세월호와 비리 누명
2.2.1. 통영함 출동 지시 관련 논란
2.3. 정치 입문
3. 여담
4. 기타
4.1. 라이벌
4.2. 저서
5. 같이보기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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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군인, 정치인. 국가보훈처장. 해군 대장으로 예편한 제독이다. 제30대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2. 생애


1956년 9월 2일(음력 7월 28일) 경상남도 창원군 웅천면 원포마을(現. 창원시 진해구)에서 태어났다. 웅산 줄기 대발령을 벗 삼아 이순신 제독이 활약했던 바다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진해 명동초등학교, 진해 충무중학교, 진해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4년해군사관학교 32기[2]로 입학해 1978년에 졸업한 진해 토박이 출신이다.

2.1. 해군 소위에서 제독까지


1978년 해군 소위로 임관하여 이후, 고려대학교에서 다시 불어불문학 학사를 취득했고 영관급 장교 시절인 1990년부터 1992년 사이에 프랑스의 파리 제1대학교에서 역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프랑스 유학 중, 왜곡된 한국 역사 강의를 바로잡기 위해 최초로 불어로 된 이순신 제독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였고, 이 논문이 각 대학, 군, 역사학회 등의 전문가들에게 널리 알려져 해군에도 보고되어 참모총장 표창까지 받았다.기고문
광개토대왕함함장을 지냈고, 진해기지사령관, 제2함대사령관, 해군작전사령관, 해군참모차장, 해군사관학교장을 거쳤다. 천안함 피격사건 직후인 2010년 6월 해군작전사령관에 임명되어 해군의 전비 태세 재정비에 전력을 기울였고, 이듬해 1월에는 아덴만 여명 작전을 지휘했었다. 참모차장 재직 시절인 2012년 3월에는 19대 총선을 앞두고 제주 민군복합항 건설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자, 건설 필요성을 강력히 역설하여 반대 여론을 극복, 돌파하는 데 공헌했다. [3]
2013년 10월 최윤희 제독(해사 31기)이 합동참모의장으로 임명되면서, 후임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2.2. 세월호와 비리 누명


[image]
'''노란리본의 제독'''[4]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구조지휘본부장을 맡아, 해군참모총장으로서 통영함에 두 차례나 출동지시를 내렸으나 출동은 불명확한 이유로 취소되었고,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김광진 의원이 정홍원 총리에게 그 이유를 묻자 총리는 '장비보안'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이에 김 의원은 해군 측은 통영함이 출동 가능한 상태라고 판단하여 준비를 했었고, 장비문제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통영급 관련 비리 사건으로 감사원에서 인사 처리를 요구했으나, 정부는 인사를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2014년 12월에 본인이 정부 측에 사의를 밝혔으나 새로 대장 인사를 내기에 애매한 때라며 반려되었고, 2015년 4월 장성급 인사 때 바꿀 예정이었으나 결국 2015년 2월에 물러났다. 후임자는 해군참모차장을 지낸 정호섭 제독이다.
2015년 3월 17일에 출국금지 조처되었다. 그리고 합수단에 소환되었다. 3월 22일에 구속수감되었다.
그러나 2015년 10월 5일, 1심 재판부는 관련 혐의들에 대하여 무죄 판결을 내린 덕분에 석방되었다.# 2016년 2월 24일, 2심 재판부도 1심 재판부와 마찬가지로 무죄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2016년 9월 23일, 대법원에서도 원심 판결과 동일하게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무죄가 확정되었다.'''
무죄 확정 이후 보국훈장을 수훈받았다.# 그러나 합수단과 국회 그리고 언론 등은 재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죄 추정의 원칙은 엿바꿔 먹고, 마치 방산 비리의 원흉인양 황 제독의 명예를 바닥으로 몰아붙인 태도와 함께, 구치소에서는 '''일반 수감자( = 잡범)와 한데 수용하여 얼굴에 멍자국이 있는 등 구타(!!)를 당한 정황까지 있었다.''' 당시의 충격으로 조국에 대한 실망이 컸는지, 본인만 중국에 체류하였다.
4성 제독이라는 대어를 낚아 성과내기에 안달난 합수단, 대통령을 비호하기 위해 자신들이 임명한 제독의 옷을 벗기려는 국회의 보수당, 그리고 방산비리 이슈가 터질 때 언론인으로서 교차 검증이란 기본마저 지키지 않고 자극적 보도를 쏟아낸 보수언론까지. 이들은 조국을 위해 명예롭게 37년간 헌신했던 군인을 만고의 역적[5]으로 낙인 찍어 버렸다. 국가에 40년 가까이 충성하고, 국민을 위해 힘을 아끼지 않던 군인 한 명을 조국은 이렇게 저버렸던 것이다.
그나마 박근혜 정부가 무너진 뒤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방장관 하마평에 오르는 등 서서히 명예 회복의 길이 열리는 듯하다. 2020년 12월 30일 문재인 정부는 황기철을 국가보훈처장으로 내정하였다.[6]

2.2.1. 통영함 출동 지시 관련 논란


사실 황기철은 해군에서 신분을 가리지 않고 두루 평판이 좋았기에, 예비역들 사이에서는 무고라는 평가가 중론이었다. 황기철의 운전병으로 복무했던 사람의 글[7] 다만, 정옥근이라는 희대의 흑역사가 생겨난 지 얼마 안 되었던 때라 해군이 '비리 온상'으로 대중들에게 찍혀 있던 상황이었다. 언론과 한나라당은 껀수 잡았다는 생각에 황 총장을 집중 난타하며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여기에 더해 세월호를 정부가 고의로 침몰시켰거나 사고 후 방기했다는 설을 내세우는 음모론자들 다수가 정부 고위층이 구조를 고의로 방해하기 위해 황기철을 압박했거나, 사실 황기철이 비리의 주축이라 통영함이 비리 장비인 게 뽀록날까봐 출동시키는 척만 했다는 근거 없는 헛소리들만 유포하기 시작했다. 당시 직썰에서 웬 육군 장교들을 그려놓고 해군이라고 우기는 만화를 그려[8] 이를 부채질하기도 했다.
# 2015년 09월 26일, 검찰 합수단이 이른바 4성 제독이라는 '''"전리품"'''을 얻기 위한 실적내기로 방산비리와 황기철을 억지로 엮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내용의 기사가 떴다. # 그리고 3심에 걸친 재판에서 모두 '''무죄'''가 선고되며 검찰의 무리한 수사 및 기소 행태가 구설수에 올랐다.
이후 청문회에서 하태경의 질문에 대한 김장수 전 안보기획실장의 답에 따르면 '''대통령에게 아예 보고되지도 않았다'''는 것이 밝혀졌다. 김 전 실장은 당시 자신이 통영함 출동을 막지 않았다고 밝혔으며, 이 말이 사실이라면 윗선에서도 통영함 출동을 막지는 않았다는 소리이다. 3 그러나 이후 국정농단 사건이나 세월호 진신조사 위원회 활동으로 과연 청와대 인사의 증언을 신뢰할 수 있는지는 미지수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 당시, 통영함의 음탐기와 탐사기 성능이 해군에서 요구하는 성능에 미달하여 '''해군이 아직 인수하지 않은 상태였다.''' 즉, '''소유주가 민간인'''인 배일 뿐 해군에 인계된 정식 함정이 아니었다. 따라서 해군참모총장의 명령 한마디로 곧장 출동시킬 수 없었다. 그럼에도 통영함을 출동 대기시킨 이유는, 신형 감압 챔버가 대량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구형 감압 챔버를 보유한 함정들이 대규모로 투입 된 만큼 만약 챔버들이 고장 났을 경우를 대비, 출동 대기시킨 것일 뿐으로 확인 되었다.[9] 때문에 해군측에선 행여나 전시 등 정말 통영함의 출동이 필요한 상황이 올 때를 대비하여 대우조선해양과 '인수전 통영함 사용에 관한 합의각서'를 체결하였다고 한다. #
비록 두 차례에 걸쳐 출동시킬 방법을 찾아보라고 지시는 했으나, 소유권이 이관되지 않은 데 따른 법리적인 문제나 장비의 하자 문제, 다른 구난함들이 이미 나가 있는 상태에서 추가로 구난함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점 등 여러 이유로 참모진들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고 취소했을 가능성도 있다. 애시당초 참모라는 직책이 지휘관이 불합리하거나 불법한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지 않게 조언하고 설득하는 임무이기에 이는 타당한 의견이다. 일부 몰지각한 예비역들이 이를 두고 항명행위 아니냐는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무죄확정 뒤 정작 사태 초래의 일등공신인 언론은 그 어디에도 황기철 제독에게 사과하거나, 자성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 뻔뻔함을 보였다.
언론과 정치권, 음모론자 뿐 아니라 각 포털 댓글이나 나무위키만 봐도 그렇다. 처음 언론에 흘렸을 때 댓글란은 정치권과 언론이 흘리는대로 파블로프의 개처럼 "똥별"만 주야장천 외쳐댔다. 정확한 상황도 모른 채 군에 비리가 많고. 특히 해군에 최근 비리가 집중됐니까 저 사람이 방산비리의 몸통 아니냐?는 생각으로 스스로 판사님이 되어 황제독을 똥별로 단정짓고, 갖은 모욕을 퍼부었다. 나무위키도 예외는 아닌데 여러 장성들의 문서를 보면 똥별에 해당하는 장군이 아닌데 똥별 태그를 달았거나, 무조건적으로 똥별로 단정지으려는 시도가 적나라하게 보여지는 문서가 한두개가 아니다.
언론으로부터 방신비리로 누명을 쓴 지 거의 1년 만인 2017년 4월, 황 제독은 중앙일보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 황 제독은 인터뷰에서 '''"난 국가에 버려진 장수"'''라고 자칭하며 씁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황 제독의 증언에 따르면, 검사는 황 제독에게 '''"외로우실까봐 잡범들이 있는 단체실에 넣어드렸다."'''는 망언으로 첫 대면을 시작했다. 애초부터 잡범으로 취급하며 모욕주기로 작정한 부당한 수사였던 것.
인터뷰에서 황 제독은 누명을 씌운 몸통으로 우병우를 의심했다. 여론은 들끓는데 이미 해경은 해체시켜버렸고, 적절한 희생양이 없으니 꿩 대신 닭이라고 해군의 총수인 해군참모총장을 지목한 것 아닌가 강한 의심을 내비쳤다. 이미 황 제독이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던 상황에서, 합수단이 거물을 낚으려고 무리한 수사를 강행한 것 아니냐는 보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즉, 누가 주도했든지 간에 무고한 해군참모총장을 제물로 삼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참으로 쪼잔한 것이, 해군참모총장이 진심으로 뭘 해먹으려 들었다면 크게 한탕 해먹었어야 자연스러운데 합수단은 꼴랑 '''간식비''' 따위 정도를 황 제독이 횡령했다고 엮었으니...
황 제독은 요직으로 이동하기 위해 상관에게 잘 보이고, 이 과정에서 유착이 형성됐다는 합수단의 수사에 대해 "상관에게 잘 보이고, 라인을 잘 타서 좋은 보직 받는 건 검찰의 전통적인 풍경 아닌가"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본인은 사실관계를 짚은 증언을 남겼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통영함은 해군 소유의 선박이 아니라 아직 인도되지 않은 민간 소유 선박이다. 황 제독 역시 이 점을 지적하며, 출동명령은 내렸지만 마음대로 배를 출항시킬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황 제독은 인터뷰에서 '''"통영함을 출동하라고 지시한 것은 맞지만, 통영함으로 나를 의인(義人)화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어쨌거나 이런 일화와 황 제독의 운전병으로 복무한 사람의 하마평은 큰 파장을 낳았고, 지금까지도 황 제독과 관련이 있는 예비역 병장들의 긍정적인 하마평이 이어지고 있다. 상관에 아부하려고 현직 장성들이 하는 하마평에 비하면 예비역 병장들의 하마평은 신빙성이 매우 높다. 주요 공직에 들어갈 수 있다는 썰도 이러한 예비역 병장들의 하마평이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2.3. 정치 입문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세종대 석좌교수로 임명되어 국방시스템학과 및 항공시스템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을 하였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시 당대표의 권유로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였다. 2017년 5월 4일, 19대 대통령 선거를 5일 앞두고 문재인 캠프 합류를 선언했다.# 보통 군 장성 출신 인사들은 보수적인 안보관 탓인지 새누리당 등 보수 계열 정당에 들어가는 게 정치 입문의 일반적인 모습인데, 아무래도 전임 정권에 데인 게 많다 보니 반대 진영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10][11] 전반적으로 진보 계열 정당에 들어간 퇴역 장성에게 향하는 보수세력의 불평도 황 제독에 대해서는 대개 "저 양반은 당한 거 많으니 그럴 만하다." 정도로 별 말 않는 편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국방장관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해군참모총장 선배인 송영무 제독이 정부의 초대 국방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일단 송영무 제독이 2008년에 전역해서 10년 정도 사회에 있었지만 황기철 제독은 2015년에 전역했으니 아무래도 문민 장성 임명에는 송영무 제독이 더 잘 어울릴 거 같다는 문재인 정부의 입장도 있을 것이다. 또한 황기철 제독이 정통 해군 출신인 것과 달리 송영무 제독은 합참 근무 경력이 굵어 3군을 지휘해야하는 국방부 장관에 보다 더 적합하다는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10월 19일 황 전 총장에게 국가는 무리한 옥살이 등으로 인한 형사보상금 약 5,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기사
2020년 4월 15일에 실시되는 21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창원시 진해구 지역위원장이 되었다. 당시 해당 지역구의 현역 의원은 한국당 소속 의원이자 전임 해군참모총장으로 진해고, 해사 선배이기도 한 김성찬 의원이었다.
차기 총선에 둘 다 나가게 된다면 전직 해참 대 해참, 해사, 진해고 선후배 간의 경합이라는 매우 재미있고 전례가 드문 대결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라 세간의 관심을 받았는데 김성찬 의원이 2019년 11월 15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해당 대결은 무산되었다. 직속 선배인 김성찬이 불출마를 선언한 가장 큰 이유가 해사 선후배끼리 대결하는 게 껄끄러웠다는 것이다. 거기다 둘 다 아덴만 영웅이기도 하다.
2019년 12월 1일, 자서전인 바다에서 새벽을 보다를 출간했다.
2020년 1월 6일, 총선 예비후보 출마를 선언하였다. 진해 출신인데다가 해군이라 지역 관련도가 높은 편이지만 진해에서는 한 번도 보수가 패배한 적이 없어서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3월 26일, 제21대 총선 진해 국회의원 후보에 정식 등록했다.
2020년 4월 8일, 이국종이 황기철에 대한 지지선언을 했다. #[12]
15일 선거에서 50,595표를 받아 48.9%의 득표율로 선전했으나 52,000표를 받은 미래통합당 이달곤 후보에게 불과 1,405표 차이로 밀리며 석패했다. 진해가 보수 성향이 상당히 강한 지역이고 이달곤이 나름 경상남도지사 선거에도 출마했었을 만큼 네임드였음에도 고향+해군[13] 버프에 힘입어 진해에서 민주당 후보 역대 최고의 성과를 냈지만 한 끗 차이로 낙선했으니 못내 아쉬울 듯.
총선 낙선 이후에는 국방부장관이나 해양수산부장관으로 입각할 수 있다는 하마평이 도는 중이다. 그러나 2020년 9월 국방부 장관 자리는 서욱 당시 육군참모총장이 임명되어 일단은 물건너갔다.
2020년 12월 30일 국가보훈처장으로 임명돼 31일부터 임기를 시작한다.[14]

3. 여담


  • 영화 명량을 보고 눈시울을 붉혔다고 기사가 났다.
  • 작전사령관 시절인 2011년 1월의 아덴만 여명작전 당시, 일 주일 간 잠을 자지 않고, 작전 지휘소에서 생활하며 총괄했다. 작전이 있던 주에 참모 하나가 추어탕을 먹자고 하자 "UDT 애들 배 타다가 미끄러진다"고 안 먹었다고 한다. 즉 작전이 미끄러질지도 모르니 삼간다는 의미인데, 미신에 민감한 뱃사람들 많은 해군의 문화적 특성을 감안하면 이해가 갈만한 행동이다.
  • 참모총장 취임 직후, 해군의 정수 제한으로 부족한 인력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솔선수범한다는 의미로 당번병을 두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 문재인캠프에 합류하게 된 이후 해군 대장명왕의 동료가 되었다는 드립(!)이 루리웹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 외모도 그 해군 대장과 놀라우리만치 흡사하다.
  • 육군 출신 전임자들인 피우진[15]-박삼득[16]과는 달리 해군 출신 국가보훈처장이 임명된다.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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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 아덴만 여명작전 3주기 기념식,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전 선장, 황기철 해군참모총장, 이국종 아주대 교수, 아덴만 작전에 황기철 제독은 해군작전사령관으로 작전을 총지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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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1950년대생으로선 상당히 큰 편이다. 2013년 9월의 사진으로 대한민국 국군높으신 분들을 볼 수 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군인과 관료 가운데 좌측부터 당시 해병대사령관 이영주 장군, 당시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박선우 장군, 당시 육군참모총장 권오성 장군, 당시 합동참모의장 정승조 장군, 당시 대통령 박근혜, 당시 국방부장관 김관진, 황기철 제독, 당시 제1야전군사령관 신현돈 장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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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사관학교 시절에 이명박 당시 대통령(172㎝)에게 삼정도 수치를 받는 황 제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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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해군 제1해군경 조지 잠벨라스 제독과 만났을 때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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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에서 당시 미 해군참모총장 조너선 그리너트 제독(왼쪽)과 황 제독의 모습으로, 키가 큰 편인 앵글로 색슨계 남성들에 절대 꿀리지 않는 신장을 자랑한다.

4.1. 라이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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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호 제독'''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해군참모총장에 오르기 직전까지 황기철 제독의 평생의 라이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원태호 제독이다. 같은 해군사관학교 32기였으며 두 사람 모두 해군사관학교에서 최상위권 엘리트였다.
소위로 임관할 때 대통령상은 원태호 생도가 차지했다. 또한 원태호 제독 역시 황기철 제독 못지 않게 해군장교로서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했다. 황기철 제독이 원태호 제독과 대장 진급을 놓고 경쟁하게 되었을 때의 원태호 제독의 보직은 합동참모차장이었다. 하지만 대장 진급은 황기철 제독이 차지했으며, 따라서 원태호 제독을 제치고 해군참모총장이 되었다.

4.2. 저서


  • 바다에서 새벽을 보다 ( 2019년 12월 1일 출간 )
[image]

5. 같이보기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창원 진해)

50,595 (48.86%)
낙선 (2위)


7. 둘러보기




[1] 국가보훈처장 임명에 따라 더불어민주당에서 자동 탈당처리됐다.[2] 같은 날 육군참모총장에 취임한 권오성 장군의 육사 34기와 동기이다. 해사 임관 동기로 손정목 해군참모차장과 원태호 합동참모차장이 있다.[3] 게다가 19대 총선 당시, 문재인 현 대통령을 비롯한 당시 민주통합당은 제주 민군복합항 건설의 '재검토'를 19대 총선 공약으로 포함시킨 바 있었다. 그로부터 5년 후, 문재인과 민주당은 황 제독을 '아덴만 영웅'으로 부르며 영입했으니, 이래저래 세상 일은 돌고 도는 모양.[4] 이 한 장의 사진이 황제독이 겪은 수모의 원인을 잘 말해주고 있다. 관련 영상.[5] 실질적으로 쿠데타 및 적과의 내통이 있지 않은 한, 평시에선 방산 비리야 말로 만고의 역적이라고 부를만 하다.[6] 참조.[7] 별 4개 관용차는 부사관이 운전하지 않느냐는 말이 있었는데, 이 사람이 복무할 당시 황기철의 계급은 중장이었다(보직은 해군작전사령관).[8] 복장 고증뿐 아니라, 허위로 밝혀진 '가라앉지 않는 잠수함' 설, 사람 찾는데 웬 레이더에 안 잡힌다는 둥 헛소리가 들어간 말풍선 등 깔 거리가 한 둘이 아니다. 게다가 저 만화에 나온 비리들 대다수는 기레기들의 농락질이라고 밝혀진 것들이다.[9] 즉 소나 문제하곤 하등 상관 없는 이유이다. 황 전총장이 통영함 건조 당시 함정개발부장이었기 때문에 비리사실에 관련된 부하들을 잘 통제하지 못한 점 등 해서 통영함 관련사건에 죄가 없다고 이야기는 안 하겠다. 다만 세월호 당시에 써먹으려고 했던 장비는 감압 챔버만이 필요했을 뿐이지 소나나 기타 장비들이 문제가 아니다. 당시에 세월호의 위치가 이미 확실히 나와있는 데다 사고해역이 유속이 빠른 관계로 다른 장비들로 시야를 밝힌다든지에 대해 어려움이 있던 건 확실하기에 황 전 총장이 통영함을 쓰려고 했던 자체는 일각에서 이야기 하는 비리를 감추려고 무리하게 하였다든지에 대한 루머들에 대한 반박이라 볼 수 있다.[10] 그 외에도 안보관은 보수라 할지라도 장병 복지나 근무 조건 개선을 희망한다는 이유로 민주당계로 가는 경우도 많다. 민주당 소속 용인시 시장이 된 백군기 전 육군 대장이 그 예이다. 참고로 월남전 유공자 참전수당도 현 시세에 맞게 지원 받게 도와준 참군인이기도 하다.[11] 게다가 군 출신 중에 보수 성향이 많다는 건 어찌보면 편견일 수도 있다. 당장 박정희,전두환 시절에는 하나회 출신 인사들이 주로 군의 요직에 등용되면서 육군의 비하나회 출신, 그리고 해군공군 장교 출신 인물들은 보수 진영에 여태 딱히 우호적이지 않았다.[12] 이국종이 미래통합당 소속 최윤희에게도 지지선언을 한 것을 보면 해군 명예 중령인 입장에서 해군 출신 정치인을 지지한 것이지 당적을 두고 지지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13] 문재인 정부가 해/공군을 팍팍 밀어주기 때문이기도 하다.[14] 국가보훈처장은 청문회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임명 후 바로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15] 예비역 중령[16] 예비역 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