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노 도모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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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現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우완 선발투수.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였던 다르빗슈 유,마에다 겐타가 MLB로 떠난 현 시점 '''NPB의 최정상급 투수'''이다.
2. 프로 입단 전
초등학교 입학전 외삼촌인 하라 다쓰노리의 은퇴 시합을 보고 야구선수가 되기를 결심. 연식 야구부에 들어가 처음부터 투수로 활동했다. 중학교 때는 현대회 우승, 관동 지역 대회 8강까지 진출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2학년 가을 대회부터 주전으로 활동, 148km/h의 직구를 던지며 프로 스카우터들로부터 주목을 받았다. 3학년 여름대회에서 현대회 결승까지 진출하지만 아쉽게도 패배하며 단 한번도 고시엔 전국대회에 출전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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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카이 대학으로 진학 후, 경식 야구부에 입부하여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활동했다. 이후 2학년 여름부터 4시즌 연속으로 수도권 대학 리그 우수 투수상을 받았다. 3학년 여름에는 전일본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고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예선 리그 쿠바전에 등판, 자신의 최고 기록인 157km/h 직구를 던졌다. '''수도권 대학 리그 통산 성적은 37승 4패 방어율 0.57 347탈삼진'''
2011년 NPB 드래프트 회의에서 노무라 유스케(메이지대), 후지오카 다카히로(도요대) 와 함께 "대학 빅3"로 불리며 주목을 끌었다. 외삼촌인 하라 타츠노리가 감독인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1차로 단독 지명 할 것이란 소문이 자자했으나, 당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도 1차 지명을 했고 추첨 결과 닛폰햄이 교섭권을 따내게 된다.
그러나 이후 닛폰햄 구단과의 지명 인사회에 참가하여 "바로 눈 앞의 일이 아닌 앞으로의 야구 인생을 생각하여 판단하고 싶다"라고 인터뷰한 뒤, "닛폰햄이 지명을 해준 것은 영광이지만 그 이상으로 제 어릴때부터 가졌던 꿈(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선수가 되는 것)이 더 컸다" 라고 밝히며 닛폰햄 구단 입단을 거부하고 도카이 대학의 졸업 연기제도를 이용하여 대학 리그에 잔류, 드래프트 재수생이 된다.
그 다음해 2012년 드래프트 회의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차 단독지명을 받으면서 숙원이었던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을 이루게 된다. 등번호는 역시 재수생 출신[1] 인 우에하라 고지의 19번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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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본프로야구 경력
3.1. 요미우리 자이언츠
3.1.1. 2013 시즌
3월 30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전에서 프로 첫 선발등판, 7이닝 5피안타 9탈삼진 1실점의 호투를 했으나 팀은 12회까지 1대1 무승부로 끝나면서 첫 선발전 승리는 이루지 못했다. 4월 6일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8이닝 6피안타 4실점으로 프로 첫승리를 거뒀다. 감독추천으로 같은 해 올스타전에도 참가. 같은 해 프로에 입단한 오가와 야스히로, 후지나미 신타로와 신인왕을 경쟁을 벌여 시즌 최종 성적 27경기 등판 13승 6패 155탈삼진 방어율 3.12로 NPB 센트럴리그 신인왕은 오가와 야스히로가 수상했지만 신인특별상을 받았다.
포스트시즌인 클라이막스 시리즈 히로시마와의 2차전에 등판해 9이닝 3피안타 11탈삼진으로 일본 센트럴 리그에선 사상 최초인 포스트시즌 완봉승을 달성했다.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선 2차전과 6차전에 등판, 두 번 다 2013년 '''24승 무패의 괴물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와 선발 대결을 펼쳤다. 2차전에서는 5이닝 2실점 패전투수가 되어 라쿠텐 구단 최초의 일본 시리즈 승리를 헌납했지만, 6차전에선 7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되며 '''2013년 유일하게 다나카 마사히로와 벌인 선발 대결에서 승리한 투수가 되었다.''' 팀은 7차전에서 패배하며 준우승.
3.1.2. 2014 시즌
3월 28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프로 2년차에 개막전 투수로 등판했다. 7이닝 4실점(자책점0)하면서도 타선의 도움으로[2] 시즌 첫 경기에서 첫 승을 거뒀다. 4월 29일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전에서 완투승을 거두며 4월달 안에 세리그 전구단 상대 승리를 달성했다. 최종성적 158이닝 12승 5패 122탈삼진 방어율 2.33으로 팀의 리그 우승에 공헌, 센트럴리그 MVP를 수상했다. 하지만 본인의 손가락 부상으로 포스트 시즌에 출장하지 못했고 팀은 4연패로 포스트 시즌에서 광탈.
3.1.3. 2015 시즌
3월 28일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전에서 전년과 같이 개막전 투수로 등판 7이닝 5탈삼진 1실점으로 시즌 첫승을 거두었다. 5월 19일 한신 타이거스전에서 페넌트레이스 커리어 첫 완봉승을 따냈다. 7월 16일 프리미어 12 일본 대표 1차후보로 뽑혔다.
3.1.4. 2016 시즌
6월 중순 현재 ERA가 '''0점대'''로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팀의 핵폐기물급 빠따 때문에 5승을 하긴 했지만 2패나 기록했다(...)
6월 24일 DeNA에게 '''2.1이닝 9실점'''을 기록하며 ERA가 0.88에서 1.74로 두 배 가까이 뛰었다. 6월 24일 현재까지 시즌 총 자책점이 19점인데, 이 중 무려 12점이 DeNA 상대로 허용한 자책점이다.
8월 29일 현재 평균자책점 '''1.86''', 152탈삼진으로 각 부분 1위를 기록하고 있으나 7승 6패(...)
9월 22일 현재 평균자책점 '''1.90''' 을 기록하고 있지만 팀 빠따 때문에 '''9승''' 6패를 기록하고 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6선발 183.1이닝(리그 2위) 평균자책점 2.01(1위) 189삼진(1위) 22QS 9승 6패. 끝내 10승에 실패했다.
그러나 가벼운 부상을 입은 관계로 센트럴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에 출전하지 못했다. 1선발 에이스를 잃은 요미우리는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 시리즈 스코어 2 : 1로 탈락하며 가을 야구를 마쳤다. 스가노의 부상이 요미우리 탈락의 간접적인 원흉이 된 셈이다.
3.1.5. 2017 시즌
정규시즌 개막전인 3월, 일본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참가했는데, 다르빗슈 유, 마에다 겐타, 오타니 쇼헤이, 다나카 마사히로 등 거물급 투수들이 모두 불참함에 따라 대표팀의 1선발 역활을 수행하게 됐다. 비록 팀은 두 대회 연속 4강에 머물렀지만 스가노 본인은 준결승 1경기에서 현역 메이저리거로만 이루어진 미국을 상대로 6이닝 비자책 호투를 펼치며 위용을 과시했고, 본격적으로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끌게 된다.
5월 2일 홈에서 열린 DeNA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하며 '''3연속 완봉승'''이란 진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사이토 마사키 현 요미우리 2군 감독 이후 28년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아쉽게도 다음 등판이었던 5월 9일 한신과의 경기에서 1회 1사 1,3루 상황때 이토이 요시오에게 적시타를 맞으며 27이닝 연속 무실점 및 4연속 완봉승 도전이 깨졌으며 기록도 8이닝 9피안타 4실점으로 약간 좋지 못한 성적을 기록해 패전투수가 되며 완투에도 실패했다.
5월 30일 인터리그 라쿠텐 이글스와의 대결에서는 '''5이닝 10피안타 8실점'''이라는 대굴욕을 남겼고 이날 자신에게 점수를 뽑아낸 라쿠텐 하위타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하여 라쿠텐, 요미우리 팬들에게 욕을 엄청나게 얻어먹었다.
그러나 7월에는 4경기 선발 4승, 평균자책점 0.31+28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여 2017년 7월 일본프로야구 월간 MVP를 수상하였다.
이후 9월까지 꾸준한 활약을 펼치며 최종성적 25선발 187.1이닝(2위) 17승(1위) 5패 평균자책점 1.59(1위)로 마무리했다.
10월 30일, 커리어 첫 사와무라상을 수상하였다.
3.1.6. 2018 시즌
시즌 최종 28경기(27선발)에서 202.0이닝(1위)을 던져 10완투(1위) 8완봉(1위) 15승(1위) 8패 200탈삼진(1위) 방어율 2.14(1위)을 기록했다. 투수 트리플 크라운[3] 40년만의 8완봉을 기록했 뿐만 아니라 200이닝-200탈삼진을 달성하는 등 리그 최고의 선발투수 위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퍼스트 스테이지 2차전에서 야쿠르트를 상대로 '''CS 최초 노히트 노런'''을 달성했다.[4] (9이닝 0안타 0실점 1볼넷 7탈삼진)
10월 29일, '''2년 연속 사와무라상'''의 주인공이 되었다. 위원회 만장일치로 결정됐으며, 수상 기준 7개 항목을 모두 충족한 역대 9번째 수상자이자, 2년 연속 사와무라상을 받은 역대 5번째 선수가 되었다.
11월 8일, 골든 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자가 되면서 통산 3번째 수상(3년 연속 수상)이라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3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은 요미우리 투수로는 3번째다. 팀 선배들인 호리우치 츠네오와 니시모토 다카시도 3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으며 이 두 명 모두 7년 연속 수상에 성공했다. 번트 수비와 견제가 훌륭하고, 병살 코스의 땅볼은 유격수와 2루수 키스톤 콤비에 맡기는 판단 등 안정된 수비력을 보였다.
시즌 후 배번을 19번에서 스기우치가 은퇴하며 비게 된 18번으로 변경했다. 호리우치 츠네오-구와타 마스미-스기우치 토시야에 이어서 교진 에이스 대관식을 치른 셈. 덧붙여 스가노가 입단 이후 쭉 달고 다녔던 19번은 원래 주인이었던 우에하라가 다시 달게 된다.
12월 17일, 구단 역사상 일본인 최고액이자 일본인 선수 기준 역대 최고액 타이인 6억 5천만엔에 다음시즌 연봉계약을 맺었다.[5]
3.1.7. 2019 시즌
히로시마와의 개막전에 선발로 등판. 7이닝 1실점을 기록했지만 팀이 한 점도 못 내면서 패전투수행.
4월 5일 요코하마 전에서 137구 2실점 완투승을 기록. 12일 야쿠르트전에서도 7이닝 1실점으로 승리. 19일 한신전에서도 6 2/3이닝 3실점으로 3연승. 이 때까지만 해도 작년의 성적을 그대로 이어갈 줄 알았다.
그러나 이 때부터 무언가 맛이 간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25일 야쿠르트전에서 3 2/3이닝 7실점을 기록하며 폭발했지만, 이후 5월 1일 주니치전에서 9이닝 1실점 10탈삼진 완투승을 거두며 레이와 1호 승리, 개인 통산 1000탈삼진을 기록. 근데 8일 디엔에이전에서는 6이닝 5실점(4자책)을 기록하며 다시 망하고, 15일 한신전에서는 5 2/3이닝동안 10실점(7자책)을 기록하며 터지고 만다. 그리고 허리 부상을 이유로 1군 말소.
6월 9일 치바롯데전에 복귀, 6이닝 2실점을 기록한다. 16일 닛폰햄전에서도 7이닝 3실점을 기록, 적당히 살아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23일의 교류전 마지막 시합이자 팀의 5년만의 교류전 우승이 걸린 경기에서 불과 1이닝 4실점(2자책)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이 때문에 교류전 우승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게 허무하게 내줬다. 이날 스가노는 본인의 최대 장점인 제구가 전혀 안 되는 모습이었고, 비록 자책점은 2점이지만 평소에는 타석에 전혀 들어서지 않는 파리그 투수(와다 츠요시)[6] 를 상대로 볼넷을 내주는 등 심각한 상태를 노출하였고, 결국 와다에게 볼넷을 내준 이후 바로 강판당했다. 이 날 경기내용에 대해 하라 감독이 굉장히 화가 났다고 한다.
다시 리그전으로 돌아오고, 7월 2일 주니치전에서 무사사구 완봉승을 거둔다. 올 시즌 주니치에게만 완투 두 번. 어째 드래곤 슬레이어의 모습이 보인다.[7]
7월 8일 한신전에서는 6이닝 3실점, 19일 히로시마전에서는 6 2/3이닝 4실점을 기록. 26일 한신전에서는 6이닝 2실점.
8월 2일 요코하마전에서는 5회까지는 츠츠고에게 허용한 홈런 빼고는 괜찮게 던졌지만 6회에 무너지며 3실점을 한다. 6이닝 4실점을 기록하고, 시즌 방어율도 도로 4점대가 된다.
그러나 8월 8일 주니치전에서 7이닝 1실점, 14일 히로시마전에서 8이닝 1실점, 21일 주니치전에서 7이닝 1실점을 기록.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줌과 동시에 시즌 방어율도 3.58까지 내렸다. 28일 히로시마전에서도 7이닝 2실점을 기록.
하지만 9월 4일 다시 주니치를 만나서 2이닝만에 4실점을 하며 강판되었다. 시즌 내내 극강세를 보인 주니치를 상대로 부진한 것은 둘째치고 여러가지 좋지 않은 현상이 발견되어 우려를 낳고 있다. 일단 이날 경기 패스트볼의 평균구속은 140km/h를 간신히 넘겼고 최고구속이 불과 142km/h에 그쳤을만큼 구속저하가 현저하게 나타났다. 거기다 베이스커버가 늦고 하체에 불편한 내색을 경기 내내 보였다.
그리고 5일 요통을 이유로 1군 말소. 올초의 허리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5일 한선전에서 복귀하긴 했는데, 4이닝 4실점으로 무너지고 다시 1군에서 말소되었다. 원인은 또 허리. 그리고 그대로 시즌 아웃.
이후 CS 복귀를 목표로 2군에서 조정중이었는데, CS에 못 나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결국 CS에서는 등판하지 못했다. 팀은 한신을 꺾고 일본시리즈에 진출.
그래도 조정을 거친 끝에 2019년 일본시리즈 출장명단에 등록, 4차전 선발등판이 결정되었다. 상대 소프트뱅크의 선발은 일전에 맞붙은 적이 있는 와다 츠요시. 본인은 팀의 불안한 내야 수비에도 6.1이닝 4실점 3자책을 기록하며 선전했지만 팀 타선의 침체로 패전투수가 됐다. 이때문에 팀 역시 시리즈 스윕 패배를 겪고 말았다.
시즌 종료후 2019 WBSC 프리미어 12의 대표팀에 차출 되었으나 본인이 몸상태를 이유로 거절했다.
3.1.8. 2020 시즌
계약 갱신은 지난해와 같은 6억 5천만엔으로 일본인 역대최대연봉이자 현 2020일본프로야구 최고액으로 갱신해 올해도 연봉킹. 다만 성적은 크게 하락한지라 과하게 준 감은 있지만, 1년내내 요통에 시달리고도 끝까지 뛴 부분이 반영되었다고 한다.
본인이 이번시즌이 끝나고 FA로 풀리면 메이저리그 진출을 타진할것이라고 밝힌만큼 지난시즌 부진을 떨쳐내고 전성기 폼을 되찾는게 매우 중요해 보인다.
20시즌을 준비하면서 와인드업 시의 투구폼을 바꾸었는데, 상체를 먼저 돌리고 무릎을 드는 독특한 투구폼이 되었다.
6월 19일 개막전을 7이닝 2실점 107구 6피안타 8탈삼진의 기록으로 마쳤다.팀이 2:1로 지는 상황에 내려갔지만 7회말 요시카와 나오키의 역전 투런홈런으로 인해 승리투수 조건을 달성하게 되었으며 그후 팀이 3:2 승리로 경기를 끝내면서 개막전 승리투수가 됨과 함꼐 구단 통산 6000승이라는 대기록도 함께 달성했다.
그리고 두번째 등판은 홈런 포함 5이닝 5실점으로 무너졌고 세번째 등판은 올시즌 첫 완봉을 기록하면서 2승째를 챙겼다. 아직 시즌 초반이긴 하지만 지난해랑 비슷하게 다소 롤코를 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 이후로 파죽지세, 주니치를 상대로 한 완봉 2번을 포함하여 30이닝 동안 단 1실점을 기록하며 5승 무패 방어율 1.69를 마크, 다시 센트럴리그의 에이스가 되었다. 다만 던질 때마다 120구를 넘기는 건 문제.
7월 21일 나고야돔에서 진행된 주니치 드래곤스와의 경기에서 135구 11탈삼진 3피안타 2사사구를 기록하며 완봉승을 챙기는데 성공했다.
8월 12일 도쿄돔에서 진행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117구 5탈삼진 6피안타 1사사구로 호투하며 개막후 무패 7연승을 기록하며 자신의 최고기록을 경신하였다.
8월 18일 도쿄돔에서 진행된 한신 타이거스와의 경기에서 3피안타 1볼넷 만을 허용하고 7탈삼진을 챙기며 125구를 던져 시즌 3번째 완봉승을 챙기는데 성공했다. 개막 후 무패 연승 기록 역시 8로 늘어나게 되었다.
8월 25일 메이지진구 구장에서 진행된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스전에서 역시 승리를 따내며 개막 후 9연승을 기록하게 되었다.관련기사 이 기록은 팀 내에서도 1966년 호리우치 츠네오 이후 54년만에 나온 기록이라고한다.
9월 1일 요코하마전에서는 7.2이닝 2실점(1자책) 10탈삼진을 기록했지만 ND. 또 134구나 던졌다.
9월 8일 주니치전에서 7이닝 무실점 6탈삼진을 기록하며 10승을 달성한다. 개막 후 10연승, 무패에 평균자책점은 1.44.
9월 15일 한신전에서 역시 7이닝 3실점 5탈삼진 2피홈런을 기록하며 선발승을 거두어 개막후 11연승을 기록하였다.
9월 22일 도쿄돔에서 진행된 히로시마전 에서는 8이닝 6피안타 3실점 7탈삼진으로 호투하였지만 후에 불펜진의 방화로 인해 노 디시젼으로 물러나게 되었다.
9월 29일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에서 진행된 히로시마전에서는 6이닝 1실점 9탈삼진으로 호투하였고 팀이 4점 리드한 상황에서 내려갔고 그 후 팀이 승리하며 개막투수(開幕投手. 말 그대로 시즌을 개막한 투수로, 개막전 출전 선발을 뜻한다.) 12연승을 기록하였다. 이는 일본프로야구에서 2004년 긴테츠의 이와쿠마 히사시 이후 16년만에 나온 대기록이다.
10월 6일 도쿄돔에서 진행된 요코하마 전에서는 7이닝 120구 3실점 4피안타 3볼넷을 기록하였으며 팀이 3점차로 리드하고 있어 '''개막전 출전 선발 13연승'''이라는 일본신기록[8] 을 세웠고 통산 100승도 달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10월 13일 히로시마전에서는 6이닝동안 7피안타 4실점(3자책) 2볼넷 5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 첫 패를 기록하였다. 1점대 평균자책점도 무너지고(2.02) 다음날 주니치의 오노 유다이가 시즌 5번째 완봉승을 거두면서 평균자책점 1위 자리도 내준다.
10월 24일 홈 한신전 역시 7이닝 6피안타 2실점 3볼넷 8탈삼진을 기록하며 시즌 2패째를 기록하였다.
10월 31일 홈 야쿠르트 전에서는 5이닝 5피안타 1실점 4볼넷 5탈삼진을 기록하였고 시즌 14승을 챙겼다.
2020시즌이 끝난후 요미우리가 지난해 야마구치 슌에 이어 이례적으로 포스팅 시스템 허용을 하며 FA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31세라는 나이와 코로나 시국이라는 점이 좀 걸리긴 하지만 두번의 사와무라 상과 두번의 MVP, 이전의 다르빗슈, 마에다, 다나카에 밀리지 않는 누적 성적과 비율스탯을 찍은 선수로 적지 않은 팀들이 포스팅에 참전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가장 강하게 링크 나는 팀들은 부족한 선발진 보강을 원하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뉴욕 메츠와 선발진이 박살난 보스턴 레드삭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그리고 오프시즌 광폭화 행보로 주목받고 있는 샌디에고 파드리스가 있다.
1월 1일 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했고, 협상 마감 기한은 현지시각 1월 7일까지이다.
또한 존 모로시 발 트윗에 의하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토론토 블루제이스, 뉴욕 메츠가 최종 경쟁팀이 될 것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선발 보강이 시급한 자이언츠가 가장 언급이 많이 되고 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협상 및 자신이 원하는 팀으로부터 오퍼가 없었는지 결국 잔류를 선택했으며 요미우리측은 스가노의 의향에 따라 매년 옵트아웃 조항을 넣은채 계약했다. 연봉은 4년 41.5억엔(달러 환산 4000만달러, 추정)으로, 일본 역대 최고금액. 일본이 물가가 오르지 않고 야구 인기도 한동안 정체되어 있어서 거의 20년 가까이 페타지니의 1년 7억 2천만엔이 최고 금액이었는데, 드디어 일본야구 연봉 1천만달러의 벽이 깨진 나름 상징적인 사건이다.#
루머에서는 스가노와 최종적으로 협상한 팀들은 토론토와 샌디에이고인데 코로나 문제도 있고 저 두 팀은 일본인 투수들이 있다 보니 그들과 선발 경쟁을 하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있었다.
1월 14일 연봉 8억엔에 합의했는데 다년계약에 옵트아웃 조항이 있었다는 것과는 달리 단년계약으로 합의했다. 그리고 협상자리에서 다년계약설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스가노 "4년 4000만달러? 모두 근거 없는 헛소문이었다" 다만 이에 대해 '주간문춘'은 요미우리가 스가노에게 4년 41.5억엔(달러 환산 4000만달러) 계약을 제시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는 구단 사장 클래스나 대리인으로부터 나온 상당히 정확한 정보이며, 스가노의 연봉 8억엔은 기본 연봉으로 옵션을 포함하면 10억엔에 가깝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선수들과의 계약이 늦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2022년에 메이저리그 재도전을 할 것으로 보인다.
4. 플레이 스타일
스리쿼터 폼으로 던지는 평균 구속 148km/h[9] , 최고구속 157km/h[10] 의 포심과 각이 큰 커터등을 주무기로 하며, 종횡 두 종류의 슬라이더에 구속이 다른 두 종류의 커브, 포크 등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 대학시절 감독도 "손끝의 감각이 다른 투수들보다 뛰어나다"라고 평한 바 있으며 스가노 본인도 "익힐려고 해서 익히지 못했던 구종은 없었다"라고 할 정도로 감각이 뛰어나다고 한다.
또한 프로 입단 당시부터 '''제구력'''을 높게 평가받았는데 실제 지표를 봐도 요미우리에서 뛴 8시즌 동안 '''통산 BB/9가 1.75개, K/BB이 4.58개'''로 탑클래스 수준이다. 본인 스스로도 "제구에 애를 먹었던 적은 거의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궁극적으로는 MLB의 그렉 매덕스와 같은 피칭이 이상적이라 생각한다고. 뛰어난 구위와 제구력에 비해 탈삼진률이 낮은 편이었으나 2016 시즌부터 2018 시즌까지 탈삼진 순위에서 1위-2위-1위를 차지하며 완전체 투수가 되었다.
날렵한 픽오프 플레이와 수비도 높은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지론은 "투수는 던지는 게 다가 아니다"
8시즌 동안 37회의 완투를 기록했을 정도로 체력도 뛰어나다. 다만 빡빡한 일정으로 악명 높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런 체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 일본에서는 밥먹듯이 완투를 했던 마쓰자카 다이스케가 메이저리그에선 8년 동안 완투를 딱 1번밖에 못했던 걸 감안하면...
5. 연도별 주요 성적
볼드는 '''리그 1위'''
6. 이모저모
-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현재 감독인 하라 다쓰노리의 외조카이다. 이에 대해 본인은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많았다" 라고 말한 적이 있고 누군가의 가족이란 이유로 알려지기 보다는 스스로의 이름으로 인정받고 싶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본인이 NPB를 대표하는 투수 중 하나로 성장했으니 이 부분에 있어서는 목표를 이룬 셈이다.
- 원래는 2011년 드래프트에서 홋카이도가 교섭권을 따냈지만 삼촌이 요미우리 감독이고 중증 요미우리 덕후이기 때문에 대학 졸업연기 신청하고 다음시즌 드래프트로 도망갔다. 저 땡깡때문에 요미우리 골수팬을 제외한 홋카이도 포함 타팀팬들한테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결국 이 일이 부메랑으로 돌아와서 본인급이거나 그보다 아래급 선수들이 포스팅으로 많은 돈을 받고 메이저를 가고 있지만 극보수집단인 요미우리에서 포스팅신청도 못하고 전성기가 다 지나버릴지도 모르는 30대가 넘은 후에나 오는 FA를 기다리는 중이다... NPB 최고대우를 받고 있긴 하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선수들에 비하면.. 자업자득이다. 게다가 코로나19로 2020년 MLB 인력시장이 초토화되자 결국 일본으로 돌아와야 했다.
- 이 실패 이후 닛폰햄 파이터즈의 야마다 마사오 GM은 오타니 쇼헤이를 영입하기 위해 "스가노처럼 1픽 실패하면 내가 책임지겠다"라며 보고서, 협상 등의 총력전을 기울여 결국 영입에 성공했으며, 요미우리는 스가노가 2013년에 입단한 이후로 일본시리즈에서 우승한 적이 없다.
- 16년 각성해 일본 탑클래스 투수로 발돋움한 후 메이저리그 진출 의사를 공공연히 어필하고 있다. 현지에서도 구속이나 공의 회전수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메이저리그 프론트라인 선발이 가능한 수준으로 이미 좋은 평가를 하고 있지만, 애초에 요미우리는 포스팅 시스템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FA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게다가 최근 3년동안 간신히 5할대 왔다갔다하는 팀 성적때문에 요미우리도 놔줄래야 놔줄수가 없는 입장. 그러면 대졸인데다가 교진에 가기 위해 드래프트를 1년 재수까지 했기 때문에, FA자격을 획득하는 시점에는 32세로 이미 전성기가 거의 지나가버리게 되는 입장이라 본인도 고민이 많을 듯. 선배 우에하라 고지나 마쓰이 히데키처럼 나이 들어서 가던가 교진에 뼈를 묻던가 해야 할 판이라고 생각했지만 타카하시가 사퇴하면서 외삼촌 하라가 컴백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메이저 진출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포스팅에 적극적인 닛폰햄[11] 의 지명을 얌전히 받아들였으면 지금쯤 메이저리거였을 테지만, 본인이 지명을 거절하고 재수까지 해가며 교진에 입단한지라 자승자박이 되어버린 상황. 게다가 그의 전 동료 마일스 마이콜라스가 미국으로 돌아가 올스타급 투수가 된 것을 보면 좀 씁쓸할 듯.[12]
- 물론 비교적 늦은 나이에 메이저리그에 도전해 성공한 사례가 적지는 않지만[13] , 본인과 비슷한 수준의 전성기를 보낸 다나카, 마쓰자카, 다르빗슈처럼 초거액 계약으로 대접받고 입단하는 것은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다만 같은 팀의 야마구치 슌이 포스팅에 의한 메이저리그 이적을 용인 받은 덕에 갑자기 스가노도 주목받고 있는 데 결론적으로 보면 아직 가능성은 희박하다. 야마구치의 경우는 FA 이적으로 요미우리에 합류했는데, FA 계약 조건에 포스팅을 용인한다는 조항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 따라서 요미우리 측에서 야마구치는 계약 이행을 위한 예외로 보고 드래프트로 입단한 스가노에게도 이러한 예외를 적용해 줄지는 모른다. 결국 몇 년간의 팀과의 줄다리기 끝에 2020년 시즌 이후 포스팅이 되었는데, 포스팅 된 시점에서 나이가 31세로 해외 FA권을 취득하는 나이와 1년밖에 차이가 안 나는데다 폼도 16~17년의 최전성기에 비하면 떨어져 있어서 결국 가치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로 포스팅에 나오게 되었다.
[1] 이쪽은 대입 재수지만.[2] 5회말에만 10득점으로 상대 선발 노우미 아츠시를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렸다.[3] 승수는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오세라 다이치와 공동 1위.[4] 물론 역사가 11년밖에 안되긴 했다.[5] 기존 구단 최고액은 마쓰이 히데키의 6억 1천만엔이고 일본인 선수 역대 최고액은 사사키 가즈히로의 6억 5천만엔.[6] 다만 와다는 2014년에 NL 시카고 컵스에서 뛴 적이 있어서 타석에 들어선 경험은 꽤 있다.[7] 7월 2일까지 주니치전 성적이 2경기 18이닝 방어율 0.50[8] 2013년 24승 무패를 기록한 바 있는 다나카 마사히로의 경우 개막전에 출전하지 않았다. 그 해 라쿠텐의 개막전 선발은 노리모토 다카히로.[9] 2017년 들어서 평균구속이 부쩍 상승했다.[10] 프로 입문 이후 최고구속은 155km/h.[11] 다르빗슈 유를 포스팅 최고액을 받고 보낸 전적이 있고, MLB 진출 이외엔 다른 길을 생각치도 않던 역대급 유망주 오타니 쇼헤이에게 5년 후 포스팅을 약속하며 만고의 설득 끝에 팀에 입단시키는 쾌거를 거두기도 했다.[12] 돈 차이도 엄청 크다. 스가노의 연봉은 일본 역대 최고액임에도 미국 돈 600만 달러 이하로, 류현진이 포스팅 입단 후 받았던 연봉보다 적다. 마이콜라스는 미국 컴백하며 그보다 좀 더 많은 연봉을 받았고, 2019시즌 전 연장 계약(4년 6800만 달러)으로 이젠 스가노의 약 3배를 받게 되었다.[13] 구로다 히로키, 우에하라 고지, 다구치 소, 이와쿠마 히사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