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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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 제10회 화랑미술제(서울아트페어)
1997 청담미술제
1998 갤러리상 전시회
2001 진화랑 전시회
2001 ‘한국미술의 눈’
2003 ‘Best Star & Best Artist’
2003 ‘한국현대미술제(KCAF,Korean Contemporary Art Festival)’
2004 ‘상하이 아트페어’
2004 '벤쿠버 작품전'
2004 '한국 캐나다 미술전'
2009 ‘신(新) 오감도’
세월호의 실소유주,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자인 유병언의 장남이다. 세월호 사건의 핵심 관련자/책임자로 추정되어 A급 지명수배가 되었었다. 원래는 3000만원이었는데, 유대균(兪大均)은 아버지 유병언과 횡령·배임·조세포탈을 공모한 혐의로 현상금이 1억으로 뛰고, 지명수배까지 떨어졌다. 동생이자 막내인 유혁기(兪赫基)처럼, 계열사의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 대주주다.
유병언의 장남이며 1971년생이다. 누나 둘에 남동생 하나를 뒀다. 사업 지분을 꽤 보유했지, 횡령 및 배임혐의로 걸려있는 돈은 56억원으로 아버지 유병언의 1/10 정도이며 유병언 일가중에서도 가장 적다고 한다.[1] 그는 경북대 조소과를 졸업한 조각가였으며, 유병언의 사업/종교상 후계자 위치는 물론 아니었다.
구원파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성격 때문에 무시를 당하기도 했으며 구원파 측에서는 그를 후계자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하니 세월호 사건이 나기 오래 전에 금수원에 아버지를 만나러 들어가려 했다가 구원파 사람들이 가로막으며 문전박대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구원파 측에서 아버지인 유병언을 이어 자주 설교를 한 사람은 차남 유혁기로 이 사람이 구원파 측에서 진짜 후계자로 인지되고 있었다. 즉, 구원파 및 세모그룹의 실질적인 후계자는 차남 유혁기로 유병언의 사업/종교상 후계자다.[2]
유대균은 대구 계성중학교에 다닐 때 유도를 배웠다. 대학은 경북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하였으며, 조각가로도 활동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았고 고가에 팔려나갔다. 그리고 그는 청담동에 최고급 초콜릿가게를[3] 운영하여 개인 사업을 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초콜릿 가게 외에도 역삼동 내 테헤란로에 위치한 레스토랑 '몽테크리스토'의 공동 대표이기도 했다.
유대균은 어렸을 때부터 섬세하고 소심한 성격이었으며 이때문인지 조소와 조각을 전공하였고 그의 작품은 제법 예술성을 인정 받았다.[4] 이 때문인지 아버지 유병언처럼 유대균도 캐나다의 한 마을을 사들여 마을 전체를 조각 작품화 하려 했다고 한다. 직접 포크레인을 움직여 땅을 이용해 이른바 '대지 조각'했다는 것이다.
유대균은 회사일에는 관심이 없고 명품 시계[5] 와 고급 자동차[6] 를 모으는 게 취미였으며[7] 조각이나 예술 관련으로 일을 하는 데에만 열중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사흘후 4월 21일에 프랑스로 출국을 하려했지만 출국금지가 된 것을 알자 공항에는 나타나지 않았다.[8]
검찰은 10월 8일 유대균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
인천지방법원은 11월 5일 횡령 및 배임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5월 22일 항소심 재판부는 횡령 및 배임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 2014년 7월에 구속되었고 수감 기간이 구속 기간을 포함하여, 현재 출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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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5일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광교신도시 소재의 한 오피스텔에서 검거되었다. 유대균은 도피 조력자, 박수경과 함께 4월 22일 경기도 수지 광교신도시에 위치한 약 20㎡(6평) 크기의 오피스텔로 이동했었으며. 이후 석달 넘게 그곳에서 은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오피스텔에 들어간뒤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9]
체포 당시 유대균은 아버지 유병언의 죽음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압송되어 취재진들과 첫대면을 할때 첫 질문이 아버지 유병언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는데 영상을 자세히보면 잠시나마 움찔하는 모습을 볼수있으며 압송되는동안 차안에서 눈물을 흘린것인지 코옆 팔자주름이 생기는 자리에 눈물자국도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현재의 심경이 어떻냐고 묻자 '자식된 입장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기분이 어떻겠느냐'며 반문을 하는 등 아버지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는 듯 하는 모습은 보인다. 그 외에도 유대균은 약 3개월간의 은신생활로 인해 자신이 20kg가량이 빠졌다고 검찰조사때 밝혔다.
유대균이 검거된날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 오전에는 시신이 유병언이 맞다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이 직접 브리핑하였으며 검찰에서는 장남인 유대균이 아버지 유병언의 장례를 치뤄야 하니 자수하면 어느정도 참작하겠다고 밝힌 날이다.
경찰은 검거 당시 유대균이 안에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수도/전기 요금도 1인분 정도였다고 한다. 본래는 '도피 조력자', 박수경을 붙잡아 유대균의 행적을 추궁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유대균이 함께 있어서 검거하는 개가를 올렸다. 유대균이 안에 있는 줄 몰랐기 때문에, '불과' 8명의 경찰관만 현장에 투입해서 검거했다고 한다.
인천지방검찰청 압송 장면
도피 조력자이며 세간에선 '''호위무사'''로 알려진 여성, 박수경(34·여)[10] 도 함께 검거되었다. 박수경의 친어머니, 이른바 '신엄마'로 통칭되는 신명희는, 기독교복음침례회와 관련된 인물로 유병언 전 회장의 최측근이다. 키 174cm인 그녀는 검거 당시 전혀 꾸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인형 얼굴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페이스북에 팬클럽이 결성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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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은 검거된 이후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압송 내내 꼿꼿한 자세로 일관했다. 체포되어 인천지방경찰청으로 압송되면서, 수백명의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때 조금도 표정이 흔들리지 않아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취재진의 질문에 한마디 대답도 없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유대균과는 전혀 다른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유대균은 검찰조사에 순순히 응하는 반면 박수경은 검찰조사에 묵비권을 행사하고있다. 하지만 박수경을 오래 전부터 알던 태권도 협회 사람들은 이러한 장면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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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은 직업이 태권도 국제 심판이다. 자녀가 두명있으며 남편과는 이혼소송중으로 알려졌다. 박수경은 태권도 6단에, 도장을 운영했으며 유대균의 사범이며, 캐나다 유학을 다녀와 영어 능통자라고 알려졌다. 그녀는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 출신으로 태권도 국제심판 자격을 가졌고 태권도협회 여성 상임심판 중에 최연소였으며, 모대학에서 외래 강사로 출강한 적도 있는, 장래가 보장된 소위 태권도계의 '엘리트'였다. 2013년 멕시코에서 열린 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심판으로 참여해, 태권도계에서는 사건 이전부터 어느정도 알려졌던 인물이다.
현재 유대균과 박수경이 내연관계라는 가설이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써 이혼 소송은 박수경측에서 낸 것이며, 만약 실제로 내연관계일 경우 박수경은 '가족(배우자)를 숨겨줬다'는 주장이 가능하게되며 처벌을 받지않거나 어느 정도 참작이 가능하다고.[11] 그리고 꽤나 통속적인 이유도 있는데, ''''''남녀가 몇달동안 같은 방에서 단 둘이 밖으로 나오지도 않으면서 설마 아무 일도 없었겠느냐''''''라는 이유. 물론 확실한 물증이 나오기전에는 단언하기 힘들다.
'''검거 당시 박수경이 보여준 당당한 태도도, 자신과 모친이 유병언 일가로부터 수십년간 받았던 '은혜'를 유병언 일가가 어려운 시기에 갚았을 뿐이며, '부적절한 관계' 등으로 세상으로부터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자신감에서 비롯된 태도일 수도 있다.'''
박수경이 유대균의 도피 생활을 호위한 게 아니라. 유대균이 자수하는 걸 막기 위해 감시역으로 붙어 있었던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유대균을 '''조백님'''[12] 이라는 생소한 존칭으로 부르며 존대했고
그 외에도 박수경의 모친 '신엄마' 신명희는 2014년 6월 16일에 유병언의 도피를 돕고 차명재산을 관리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검찰은 10월 8일 박수경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2015년 4월 박수경은 항소심에서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관련기사
오피스텔 주인은 유대균 수행원의 여동생인 하모씨로 알려졌으며, 그가 오피스텔을 드나들며 생필품 등을 제공해 왔다. 올초에 1달동안 살다가 말았는데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세나 수도세등의 공과금이 나오는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잠복수사에 들어갔고 체포에 성공하였다.
조력자 하모씨가 유병언의 죽음 사실을 알렸지만 유대균은 이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은 하모씨가 어떻게 유병언의 죽음을 알았냐는 것인데 TV도 없고 PC도 전혀 사용안한 유대균으로서는 조력자 하모씨가 유일한 정보통이다. 그런데 사체가 유병언이라고 처음 공표된 것이 21일, 유대균의 체포일은 25일이다. 그리고 현장 CCTV의 영상 보존기간은 최대 10일인데 그간의 기록중에는 조력자 하모씨가 온 흔적은 물론 오피스텔의 문조차 열리지 않았다. 이는 조력자 하모씨가 7월 15일 이전에 유병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는 것이 된다.
은신처인 오피스텔에는 텔레비전대신 책들이 꽤 있었으며 컴퓨터도 있었지만 손도대지 않아서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고 한다. 책중에는 클라리넷 교본도 있었다. 냉장고에는 세모그룹과 금수원 등에서 나온 식품들이 꽉 채워져 있었으며 세모스쿠알렌도 있었다. 김치나 소시지 등의 조리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먹을 수 있는 식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13] 이 와중에 종편방송사들은 유대균이 은신처에서 순살치킨을 시켜먹었는지를 가지고 진실공방을 벌이는 병림픽을 시전했다. 관련기사
얻어걸렸다고 해야 하나. 유대균을 검거하는 김에 오피스텔 성매매 일당과 매수남들도 잡혔다고 한다. 경찰들이 오피스텔을 지켜보는데 살지도 않는 남자들이 들락날락해서 털어보니 걸렸다고.
2017년 2월 유대균은 정부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해 정부에 7500만여 원을 배상하고, 청해진해운에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유대균은 항소를 포기했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수색 등에 들어가는 5500여억원 중1900억원을 부담하라는 소송에 집중할 생각인 듯 하다. 참고로 아직까지 낸 돈은 한 푼도 없다고...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213754[14]
이후 세월호 보상에 대한 정부의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세월호 사고 수습 비용과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지급했거나 지급 예정인 손해배상금 총 430억9400여만원에 대한 배상의무가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2&sid2=257&oid=003&aid=0008257648
2018년 8월 17일 항소심에서 승소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2&sid2=257&oid=009&aid=0004202909
프랑스 파리에서 출소 후 김어준과 첫 인터뷰를 가졌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1. 개요
2. 대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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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작품 활동
1995 제10회 화랑미술제(서울아트페어)
1997 청담미술제
1998 갤러리상 전시회
2001 진화랑 전시회
2001 ‘한국미술의 눈’
2003 ‘Best Star & Best Artist’
2003 ‘한국현대미술제(KCAF,Korean Contemporary Art Festival)’
2004 ‘상하이 아트페어’
2004 '벤쿠버 작품전'
2004 '한국 캐나다 미술전'
2009 ‘신(新) 오감도’
4. 세월호
세월호의 실소유주, 세월호 참사의 최종 책임자인 유병언의 장남이다. 세월호 사건의 핵심 관련자/책임자로 추정되어 A급 지명수배가 되었었다. 원래는 3000만원이었는데, 유대균(兪大均)은 아버지 유병언과 횡령·배임·조세포탈을 공모한 혐의로 현상금이 1억으로 뛰고, 지명수배까지 떨어졌다. 동생이자 막내인 유혁기(兪赫基)처럼, 계열사의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 대주주다.
4.1. 상세
유병언의 장남이며 1971년생이다. 누나 둘에 남동생 하나를 뒀다. 사업 지분을 꽤 보유했지, 횡령 및 배임혐의로 걸려있는 돈은 56억원으로 아버지 유병언의 1/10 정도이며 유병언 일가중에서도 가장 적다고 한다.[1] 그는 경북대 조소과를 졸업한 조각가였으며, 유병언의 사업/종교상 후계자 위치는 물론 아니었다.
구원파들 사이에서도 자신의 성격 때문에 무시를 당하기도 했으며 구원파 측에서는 그를 후계자로 보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 정도냐하니 세월호 사건이 나기 오래 전에 금수원에 아버지를 만나러 들어가려 했다가 구원파 사람들이 가로막으며 문전박대 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구원파 측에서 아버지인 유병언을 이어 자주 설교를 한 사람은 차남 유혁기로 이 사람이 구원파 측에서 진짜 후계자로 인지되고 있었다. 즉, 구원파 및 세모그룹의 실질적인 후계자는 차남 유혁기로 유병언의 사업/종교상 후계자다.[2]
유대균은 대구 계성중학교에 다닐 때 유도를 배웠다. 대학은 경북대학교 조소과에 입학하였으며, 조각가로도 활동하였는데, 그의 작품은 예술계에서 인정을 받았고 고가에 팔려나갔다. 그리고 그는 청담동에 최고급 초콜릿가게를[3] 운영하여 개인 사업을 하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초콜릿 가게 외에도 역삼동 내 테헤란로에 위치한 레스토랑 '몽테크리스토'의 공동 대표이기도 했다.
유대균은 어렸을 때부터 섬세하고 소심한 성격이었으며 이때문인지 조소와 조각을 전공하였고 그의 작품은 제법 예술성을 인정 받았다.[4] 이 때문인지 아버지 유병언처럼 유대균도 캐나다의 한 마을을 사들여 마을 전체를 조각 작품화 하려 했다고 한다. 직접 포크레인을 움직여 땅을 이용해 이른바 '대지 조각'했다는 것이다.
유대균은 회사일에는 관심이 없고 명품 시계[5] 와 고급 자동차[6] 를 모으는 게 취미였으며[7] 조각이나 예술 관련으로 일을 하는 데에만 열중했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고 사흘후 4월 21일에 프랑스로 출국을 하려했지만 출국금지가 된 것을 알자 공항에는 나타나지 않았다.[8]
검찰은 10월 8일 유대균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
인천지방법원은 11월 5일 횡령 및 배임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5월 22일 항소심 재판부는 횡령 및 배임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했다. # 2014년 7월에 구속되었고 수감 기간이 구속 기간을 포함하여, 현재 출소했다.
4.2. 검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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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25일 용인시 수지구 상현동 광교신도시 소재의 한 오피스텔에서 검거되었다. 유대균은 도피 조력자, 박수경과 함께 4월 22일 경기도 수지 광교신도시에 위치한 약 20㎡(6평) 크기의 오피스텔로 이동했었으며. 이후 석달 넘게 그곳에서 은신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오피스텔에 들어간뒤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9]
체포 당시 유대균은 아버지 유병언의 죽음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로 압송되어 취재진들과 첫대면을 할때 첫 질문이 아버지 유병언의 죽음에 대한 것이었는데 영상을 자세히보면 잠시나마 움찔하는 모습을 볼수있으며 압송되는동안 차안에서 눈물을 흘린것인지 코옆 팔자주름이 생기는 자리에 눈물자국도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현재의 심경이 어떻냐고 묻자 '자식된 입장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기분이 어떻겠느냐'며 반문을 하는 등 아버지의 죽음을 매우 슬퍼하는 듯 하는 모습은 보인다. 그 외에도 유대균은 약 3개월간의 은신생활로 인해 자신이 20kg가량이 빠졌다고 검찰조사때 밝혔다.
유대균이 검거된날 일어난 일들을 살펴보면 오전에는 시신이 유병언이 맞다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원장이 직접 브리핑하였으며 검찰에서는 장남인 유대균이 아버지 유병언의 장례를 치뤄야 하니 자수하면 어느정도 참작하겠다고 밝힌 날이다.
경찰은 검거 당시 유대균이 안에 있는 줄 몰랐다고 한다. 수도/전기 요금도 1인분 정도였다고 한다. 본래는 '도피 조력자', 박수경을 붙잡아 유대균의 행적을 추궁하려는 것이었는데, 뜻밖에도 유대균이 함께 있어서 검거하는 개가를 올렸다. 유대균이 안에 있는 줄 몰랐기 때문에, '불과' 8명의 경찰관만 현장에 투입해서 검거했다고 한다.
인천지방검찰청 압송 장면
4.3. 도피 매니저, '호위무사' 박수경
도피 조력자이며 세간에선 '''호위무사'''로 알려진 여성, 박수경(34·여)[10] 도 함께 검거되었다. 박수경의 친어머니, 이른바 '신엄마'로 통칭되는 신명희는, 기독교복음침례회와 관련된 인물로 유병언 전 회장의 최측근이다. 키 174cm인 그녀는 검거 당시 전혀 꾸미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인형 얼굴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페이스북에 팬클럽이 결성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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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은 검거된 이후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고 압송 내내 꼿꼿한 자세로 일관했다. 체포되어 인천지방경찰청으로 압송되면서, 수백명의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때 조금도 표정이 흔들리지 않아 강한 인상을 남겼으며 취재진의 질문에 한마디 대답도 없이 입술을 꽉 다물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던 유대균과는 전혀 다른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유대균은 검찰조사에 순순히 응하는 반면 박수경은 검찰조사에 묵비권을 행사하고있다. 하지만 박수경을 오래 전부터 알던 태권도 협회 사람들은 이러한 장면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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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경은 직업이 태권도 국제 심판이다. 자녀가 두명있으며 남편과는 이혼소송중으로 알려졌다. 박수경은 태권도 6단에, 도장을 운영했으며 유대균의 사범이며, 캐나다 유학을 다녀와 영어 능통자라고 알려졌다. 그녀는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 출신으로 태권도 국제심판 자격을 가졌고 태권도협회 여성 상임심판 중에 최연소였으며, 모대학에서 외래 강사로 출강한 적도 있는, 장래가 보장된 소위 태권도계의 '엘리트'였다. 2013년 멕시코에서 열린 태권도 세계선수권대회에도 심판으로 참여해, 태권도계에서는 사건 이전부터 어느정도 알려졌던 인물이다.
현재 유대균과 박수경이 내연관계라는 가설이 있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써 이혼 소송은 박수경측에서 낸 것이며, 만약 실제로 내연관계일 경우 박수경은 '가족(배우자)를 숨겨줬다'는 주장이 가능하게되며 처벌을 받지않거나 어느 정도 참작이 가능하다고.[11] 그리고 꽤나 통속적인 이유도 있는데, ''''''남녀가 몇달동안 같은 방에서 단 둘이 밖으로 나오지도 않으면서 설마 아무 일도 없었겠느냐''''''라는 이유. 물론 확실한 물증이 나오기전에는 단언하기 힘들다.
'''검거 당시 박수경이 보여준 당당한 태도도, 자신과 모친이 유병언 일가로부터 수십년간 받았던 '은혜'를 유병언 일가가 어려운 시기에 갚았을 뿐이며, '부적절한 관계' 등으로 세상으로부터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만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자신감에서 비롯된 태도일 수도 있다.'''
박수경이 유대균의 도피 생활을 호위한 게 아니라. 유대균이 자수하는 걸 막기 위해 감시역으로 붙어 있었던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유대균을 '''조백님'''[12] 이라는 생소한 존칭으로 부르며 존대했고
그 외에도 박수경의 모친 '신엄마' 신명희는 2014년 6월 16일에 유병언의 도피를 돕고 차명재산을 관리한 혐의로 구속 수감되었다.
검찰은 10월 8일 박수경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구형했다.
2015년 4월 박수경은 항소심에서도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관련기사
4.4. 은신과 관련하여
오피스텔 주인은 유대균 수행원의 여동생인 하모씨로 알려졌으며, 그가 오피스텔을 드나들며 생필품 등을 제공해 왔다. 올초에 1달동안 살다가 말았는데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기세나 수도세등의 공과금이 나오는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잠복수사에 들어갔고 체포에 성공하였다.
조력자 하모씨가 유병언의 죽음 사실을 알렸지만 유대균은 이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은 하모씨가 어떻게 유병언의 죽음을 알았냐는 것인데 TV도 없고 PC도 전혀 사용안한 유대균으로서는 조력자 하모씨가 유일한 정보통이다. 그런데 사체가 유병언이라고 처음 공표된 것이 21일, 유대균의 체포일은 25일이다. 그리고 현장 CCTV의 영상 보존기간은 최대 10일인데 그간의 기록중에는 조력자 하모씨가 온 흔적은 물론 오피스텔의 문조차 열리지 않았다. 이는 조력자 하모씨가 7월 15일 이전에 유병언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다는 것이 된다.
은신처인 오피스텔에는 텔레비전대신 책들이 꽤 있었으며 컴퓨터도 있었지만 손도대지 않아서 먼지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고 한다. 책중에는 클라리넷 교본도 있었다. 냉장고에는 세모그룹과 금수원 등에서 나온 식품들이 꽉 채워져 있었으며 세모스쿠알렌도 있었다. 김치나 소시지 등의 조리가 별로 필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먹을 수 있는 식품들로 가득 차 있었다.[13] 이 와중에 종편방송사들은 유대균이 은신처에서 순살치킨을 시켜먹었는지를 가지고 진실공방을 벌이는 병림픽을 시전했다. 관련기사
얻어걸렸다고 해야 하나. 유대균을 검거하는 김에 오피스텔 성매매 일당과 매수남들도 잡혔다고 한다. 경찰들이 오피스텔을 지켜보는데 살지도 않는 남자들이 들락날락해서 털어보니 걸렸다고.
4.5. 출소 후
2017년 2월 유대균은 정부와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패소해 정부에 7500만여 원을 배상하고, 청해진해운에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유대균은 항소를 포기했다. 세월호 선체 인양과 수색 등에 들어가는 5500여억원 중1900억원을 부담하라는 소송에 집중할 생각인 듯 하다. 참고로 아직까지 낸 돈은 한 푼도 없다고...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7&no=213754[14]
이후 세월호 보상에 대한 정부의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세월호 사고 수습 비용과 세월호특별법에 따라 지급했거나 지급 예정인 손해배상금 총 430억9400여만원에 대한 배상의무가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sid1=102&sid2=257&oid=003&aid=0008257648
2018년 8월 17일 항소심에서 승소하였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hm&sid1=102&sid2=257&oid=009&aid=0004202909
4.6.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인터뷰
프랑스 파리에서 출소 후 김어준과 첫 인터뷰를 가졌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 한국을 왜 떠났나?: 유병언 일가를 향한 의도적인 공세와 구설수에 매이기 싫어서.
- 여러 루머들에 대한 해명: 순살치킨 배달, 만두만 먹었다 등등 루머는 모두 거짓.[15]
- 경찰 체포에 저항하지 않은 이유: 공권력을 피해서 은신했던게 아니라서.
- 세월호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 보도가 본인 체포에 묻힌것에 대해: 국정원 지적사항 문건을 덮기 위해 써먹은건 명백한 사실이다.
- 아버지 유병언의 사망 당시 의혹에 대해: 평소 잘 입지 않는 어두운 옷을 입었고, 술을 안하는 아버지 유해 근처에 소주와 막걸리 등 술병이 있었으며, 위생관념이 일반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아버지가 혹시라도 그 병에 물을 담아 마셨을리 없다. 또한, 언론 보도 등 전체 정황으로 보면 도피 도중 저체온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이나, 후에 밝혀진 정부의 여론조작 내지 국정농단 등으로 미루어 봤을 때 아버지가 자연사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시 아버지는 건강도 좋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부터 표적이 아버지라고 느꼈다. 또한 유병언 본인은 금수원을 나가면 죽을거라고 직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금수원을 나가기를 기다리는 세력이 있었다. 또한 금수원에서 내건 현수막[16] 은 김기춘 비서실장이 개입되어서 세월호 사건이 조작되고 있다는 것을 국민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폭로한게 아닐까 추측한다.[17]
- 세월호를 처음본 것이 언제인가?: 아버지와 나 둘다 언론보도를 통해 처음봤다. 나와 아버지도 10여 년간 청해진해운에 방문한 적이 없다. 아버지는 "저 배가 청해진의 배인가?" 라고 말했을 정도였으며, 청해진 해운의 실소유주는 나도 궁금하다.
- 검찰에서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수사 받은적이 있나? : 횡령 및 배임에 대한 수사만을 받았으며, 세월호 관련 수사는 전혀 받지 못했다.[18]
- 가족 중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형이 확정된 사람이 있나?: 전혀 없다. 세월호와 아무 상관 없는 재판들이었다. 즉, 유씨 일가는 청해진에 대한 경영 개입은 전혀 없었다. 아버지 유병언 회장 또한 전혀 경영을 한적이 없다.[19]
- 유씨 일가가 청해진해운의 모회사 청해진의 최대 주주인건 맞나?: 아버지는 사회활동 자체를 못했을 것이다.
- 법적 지분 구조상 유씨 일가가 천해지의 최대 주주인 건 맞는데, 회계사의 분석 결과 청해진해운의 지분구조 상 실제 주인은 누구인지 의심스럽다.[20] : 청해진 해운의 나머지 53.5%를 누가 소유한지 모르며, 아버지에게 들은바도 없다.
- 세월호 참사의 모든 책임을 아버지에게 돌리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나?: 있었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 한 명이 찾아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죄를 몰고 당신은 면죄부를 받는게 어떠냐" 라는 제안을 한적 있다. 그 변호사는 스스로 전·현직 청해진해운 대표를 만나 본인이 섭외하고 있다는 이야기 또한 했다. 이후 그 변호사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 국정원과 세월호가 관련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세월호 참사 전, 아버지의 사진 전시실에 손님으로 가장해 왔었던 국정원 직원들이 있었다고 누군가에게 들었다. 이후 그 사람들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하자 신분이 노출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겁을 먹고 부탁을 했었다.
- 세월호 참사에 대해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세월호 참사는 두번다시 일어나서는 안될 참사이며, 이를 위해 원인과 이유들이 밝혀져야한다.
- 해외에는 언제까지 있을건가?: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어떤 의도에서 왜 죽었는지 밝혀져야한다. 그 때 까지는 한국에 가도 거짓말의 재료로 쓰일 뿐이다.
5. 참고 문서
- 빅카인즈 기사
- 코리아데일리 뉴스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289006
- 티스토리 https://wpalss.tistory.com/1073
- 세월호
- 유병언
- 유병언 도피기록
- 구원파
- 구원파/기독교복음침례회
- 김한식
[1] 어디까지나 사업상이나 지분비율로 따졌을 때다.[2] 유혁기 역시 현재 검/경이 인터폴과 연계하여 검거하려고 추적하고 있다. 하지만 정황상 빠른 검거가 쉽지는 않았으나 결국 2020년 7월에 검거되었다고 한다.[3] 그 초콜릿 가게는 프랑스 전통의 드보브에갈레. 참고로 그 초콜릿 가게는 가게 내부가 아름다운 유럽풍에 매우 비싼 고급 초콜릿으로 유명하다.[4] YTN 뉴스 IN에 게스트로 초빙된 미술평론가 홍경한의 말에 따르면 과거 조각미술계에서 촉망 받는 신예였다고 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활동하다가 갑자기 활동을 중단했다는데 예술가들 사이에서 그런 일은 비일비재해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한다.[5] 종로를 중심으로 한 좁아터진 한국 시계판에서 흘러나오는 얘기들에 따르면 돈은 썩어나도록 많은지라 어디서 구하기도 힘든 희귀하고 상태좋은 그것도 리피터를 비롯한 컴플리케이션 빈티지 시계 위주로 시계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비대한 몸집이 아니었다면 손목에 올라가지도 않을법한 회중시계를 손목시계로 개조하는등 예술품 망가뜨리는 행위에 업자들도 뒤에서 혀를 찼던 모양. 그런데, 자신이 모은 엄청난 수백억 가치의 시계들을 "모두 모아 용광로에 넣고 싶다"는 엽기발언으로 더욱 충격을 주었다. [6] 압수된 차량은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G500) 2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쉐보레 익스프레스 밴 등 모두 4대로 구입가 기준 한 대당 1~2억원 안팎, 도합 10억원대가 넘는 고급 외제 차량들이다. 그 외에 도주차량으로 이용했던 5억4천만원짜리 벤틀리 아나지까지 포함할 경우 차량가격은 15억원이 넘는다. 특히나 벤틀리 아나지는 항공기로 직수입했다는 희귀종 한정판(...)이라고 한다. G500도 직수입으로 보인다. 국내에는 G350(디젤), G63 AMG(가솔린)만 들어온다. 그 소식을 뉴스에서 본 차덕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이건희같은 엄청난 재벌이나, 유럽과 미국의 귀족이나 갑부들이나 중동 산유국들의 이슬람 부호들이 소유한 고급 차종 대수에 비하면 적은 대수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기업가들이나 일반인 입장에서 볼 때 저 정도 차량 소유라면 매우 대단한 레어템들을 상당 수 득템한 격이다.[7] 자신의 소장품도 아는 지인에게 선물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8] 이 출국은 참사가 터지기전에 계획했던것이라고 대한민국 검찰청 조사에서 털어놓았다.[9] 물론 진짜 몇번 왔다갔다 했는지는 조사해봐야 나올 듯. 몇몇 주민들의 진술의 경우 왔다갔다 한 것을 봤다는 사람도 있고 못봤다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봐서 이 부분의 진위여부는 차후에 알 수 있을 듯.[10] 모 결혼정보회사의 CEO로 재직하고 있는 여성과는 동명이인이다. 참고로, 기업인 박수경은 1955년생이니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한다.[11] 여기서 가족(배우자)에는 내연관계도 사실혼으로 법적으로 인정이 가능하다고 하며 판례도 있다고 한다.[12] 조백은 화가를 화백이라고 부르는데서 착안하여 유대균이 조각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이기에 조각가와 화백의 줄임말로 유대균의 선배가 지어준 호칭이다. [13] 진술 상 알려진 바로는 만두로 연명했었다고 한다.[14] 기사가 삭제되었다.[15] 본인과 박수경은 전화수단이 없었다고 증언했다.[16] 우리가 남이가! 김기춘 실장, 갈데까지 가보자!! 라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17] 이는 김기춘이 최순실 청문회 당시 감사원의 세월호 감사보고를 미리 받아봤다는 의혹과 연결된다.[18] 실제로 유대균이 2년형을 받은 것은 횡령 및 배임에 대한 판결이다. 다른 수사 또한 배상의무에 대한 수사이며, 세월호 침몰에 대한 수사는 받지 않았다.[19] 과거 김한식 청해진해운 전 대표 또한 유병언이 청해진해운의 경영에 참여하지 않았고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증언했다가 이후 한 달여 만에 유병언이 천해진해운의 실 경영자라고 진술을 번복한바 있다.[20] 천해지가 38.4%, 유병언 일가의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가 7.1%를 가지고 있으며, 소액주주가 53.5%를 가지고 있다. 또한 천해지 지분을 아이원아이홀딩스가 42.8% 가지고 있으며, 또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지분을 유혁기/유대균 형제가 각각 19.44% 가지고있다. 즉,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주식회사의 형태에 맞지 않는 지분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소액주주가 53.5%로 과반을 넘어서 청해진 해운에 제기되는 제3의 실소유주에 대한 의심이 생긴다고 회계사가 증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