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수(축구)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Korea Football Association'''
''' 이름 '''
'''이용수'''
'''李容秀 / Lee Yong-Soo'''
''' 출생 '''
1959년 12월 27일 (64세)
서울특별시
''' 국적 '''
[image] 대한민국
''' 신체 '''
: 178cm
''' 직업 '''
축구선수 (공격수 / 은퇴)
축구행정가
''' 소속 '''
''' 선수 '''
서울대학교 (1978 ~ 1982)
해군 축구단 (1981~1982)
상업은행 축구단 (1983)
럭키금성 황소 (1984)
할렐루야 축구단 (1985)
''' 행정가 '''
대한축구협회 (2021~/부회장)
''' 병역 '''
대한민국 해병대
1. 개요
2. 히딩크호 체제에서의 기술위원장
3. 해설위원으로의 복귀
4. 슈틸리케호 체제에서의 기술위원장


1. 개요


축구 선수, 전 KBS 축구 해설위원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세종대학교 체육학과 교수.
몇 안 되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출신 전직 K리그 선수이며[1] 짧은 선수 생활을 마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수료, 미국 오리건 주립 대학교로 유학을 가서 스포츠 생리학을 전공했다. 축구 해설위원은 1996년 KBS에서 시작했으며 2000~2002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 시절을 제외하면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KBS 한 곳에서만 해설위원으로 오랫동안 활동하였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 때 메인해설 자리가 이영표로 넘어갔고 2선발 마저 한준희로 넘어간 상태에서 3선발로 밀렸고, 브라질월드컵 이후 KBS 축구 해설위원에서 물러났다.

2. 히딩크호 체제에서의 기술위원장


2000년부터 2002년까지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이용수 교수가 정몽준 회장의 축구협회 운영을 독선적이라고 자주 비판했기 때문에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8강 진출 실패 이후에 정몽준 회장이 직접 찾아가서 영입했다고.[2]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을 대비한 단기처방으로 외국인 감독 선임을 추진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거스 히딩크.[3] 감독 선임 이후에도 축구협회와 히딩크 간에 소통 창구 역할을 했으며, 그 덕분인지 히딩크와는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가까운 사이라고 한다. '''사실상 이용수가 유일하게 빛을 발했던 순간'''
대표팀 구성과 운영에 감독의 권한을 절대적으로 보장해주고 조용히 뒤에서 뒷받침하는 역할을 하였다. 역대 기술위원장중에 제대로 일한 거의 유일한 인물로 꼽힌다. 현재 김판곤 기술위원장이 선임되기 전, 선수선발, 훈련일정, 평가전 상대 등등 온갖 문제를 가지고 벌어지던 국대감독과 기술위(협회)의 대립이 이용수 기술위원장 시절에만 없었다.[4] 이런 성향 때문인지 2011년 이회택 부회장 겸 기술위원장과 조광래 감독 간의 공개 충돌때도 이용수 교수는 기술위의 현장간섭이 문제라고 협회를 비판했다.[5]

3. 해설위원으로의 복귀


2002년 월드컵 직후 월드컵 포상금 배분 관련과 축구협회 인사들과의 갈등으로 기술위원장에서 사퇴하고 KBS 축구 해설위원으로 다시 복귀했다. 히딩크, 정몽준 그리고 축구협회 이후에 정몽준-조중연 라인이 축구협회를 사유화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축구협회 회장 선거때마다 현대가 관련된 친축협 인사보다는 주로 비주류인 야권 후보들을 지지하고 있다. 신문선 전 해설위원, 김호 전 감독과 함께 한국 축구계 비주류의 대표적인 인사로 꼽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조중연 회장이 물러난 이후에 다시 범 현대가 출신이자 정씨 일가인 정몽규 회장 체제가 들어선 이상 축구협회에서 일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 듯한 게 지배적이지만 정몽규 회장이 축구계의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뽑겠다고 선언한 만큼 대표적인 야권 인사중 한 명인 그를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속 자문기관'''인 미래전략기획단 '''단장'''으로 취임했다.
해설위원으로선 특출나게 튀지는 않지만, 차분한 스타일의 해설로 알려져 있다. 특히 서기철 아나운서와의 조합은 오랜 기간 함께 중계를 맞춰온 만큼 KBS 축구중계의 황금조합이라 할 만 하다. 자주하는 대사는 '''"보세요, 좌우측 측면에서...", "들어갔~써요오오오오오!"'''. 근데 요즘 해외축구 중계를 즐겨보는 젊은 시청자라면 다소 심심한 느낌 때문에 조금 거북해할 수도 있다. 나이가 많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호평을 받는듯 하나, 젊은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톤 자체가 상당히 쳐지는 해설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는 편. 심지어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경기에서 결정골이 터졌을때도 평소와 다름없는 다소 심심한 톤으로 해설을 한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푸린''', '''잠용수''', '''공무원 해설'''. 그러나 전 연령층을 놓고 보면 가장 무난한 해설자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절대 오해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말투만''' 조용하다는 것이다. 차범근 해설처럼 싫은 소리를 잘 하지 않는 해설스타일이 아니라 '''조곤조곤하게 할 말은 또 다 한다.''' 이는 레바논 쇼크 때 중계를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2010년대 들어서는 지적받긴 하지만 그전까진 결코 능력이 떨어지는 해설이 아니었다. 오히려 한준희, 박문성 해설위원도 이용수 해설위원의 중계가 전문성 면에서는 국내 최고라고 뽑을 정도로 경기를 읽는 흐름과 전술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자랑하는 해설이었다.
사실 어쩔 수 없는 게 젋은 층에서는 소리 지르는 중계를 원할지 모르지만 엄연히 국가대표 경기의 절반 이상을 시청하는 중장년층은 '''이러한 소리 지르는 젋은 해설'''들을 방정맞다며 싫어한다. 결국 주 시청자층이 변하지 않는 이상 이런 스타일의 해설은 계속 된다는 이야기. 거기에 방송사가 공영방송인 KBS이다 보니까 대체로 스포츠 중계에서도 점잖고 보수적인 해설자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런 경향은 중계를 진행하는 캐스터에서도 드러난다. KBS를 대표하는 유수호 아나운서는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하면서 해설자와 교감하는 교과서적인 진행을 하는 반면에, MBC를 대표하는 임주완 아나운서는 때론 코믹한 멘트도 치고 개드립도 하면서 흥을 돋우는 다소 튀는 진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2012년 들어서 해설 퀄리티가 부쩍 떨어져 K리그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쉽게 말해 공부 안한다는 것. 일례로 최강희호 9월 우즈베키스탄 원정 경기에서 국내파 선수들이 스플릿 시스템의 여파로 체력이 고갈된 징후를 여실없이 노출했는데도, 이런 분석은 전혀 없이 90분 내내 '왜 안뛰냐'는 식으로 애먼 선수들을 닥달했다.
2013년 7월 11일 한국프로축구연맹이 보호관찰 기간에 봉사활동을 50% 이상 성실히 수행하고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 선수들의 '''보호관찰 기간을 절반 이상 경감'''한다는 결정을 내렸는데, 이에 승부조작 선수들의 복귀에 대해 긍정적인 발언을 하여 팬들을 충공깽에 빠뜨렸다. 결국 대한축구협회에서 8월 19일 징계 경감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메인 해설 자리가 이영표로 넘어갔고 2선발 마저 한준희로 넘어간 상태에서 3선발로 밀렸고 2014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후 KBS 축구 해설위원에서 물러났다. 다만, 이용수는 축구팬들이 "해설 퀄리티가 떨어졌다"라는 지적을 받은 것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4. 슈틸리케호 체제에서의 기술위원장


2014년 7월 24일 황보관의 후임으로 다시 축구협회의 기술위원장에 선임되었다. 선임 이후 브라질 월드컵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국가대표팀 감독직에서 사퇴한 홍명보의 후임 감독직 인선 작업을 시작했다.
이 때, 악화된 여론으로 인해 국내 감독은 아예 명단에서 제외시킨채 차기 감독은 외국인 감독으로 갈 것임을 밝혔으며, 외국인 감독 선임 조건을 만들어서 후보군을 선출한 결과 베르트 판 마르베이크를 1순위로 선정하여 선임을 추진했으나 연봉이나 계약 기간, 기타 사항[6] 등에 이견을 보여 협상 결렬을 선언했고 2014년 9월 5일 울리 슈틸리케로 선회해 대표팀 감독 부임을 성사시켰다.
이후 슈틸리케 감독의 선임 배경을 밝혔는데 성실한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비록 경력은 일천하지만 과거 독일의 유소년 대표 감독으로 브라질 월드컵 우승 주역들을 다수 키워낸 경험과 한국 대표팀 감독직에 관련된 그의 열정과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감독으로 선임하기로 했다. 2015 AFC 아시안컵 준우승과 2015 EAFF 동아시안컵 우승 및 대표팀 운영의 정상화, 선수들에게의 동기부여 능력 등 슈틸리케의 선임에 대한 칭찬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유럽원정에서부터 시작된 슈틸리케의 유체이탈 화법[7]으로 시작된 감독의 돌출행동[8]과 망언[9]등으로 감독의 본색이 드러나면서 슈틸리케 선임은 사기를 당한 것이라며 선임이 실수가 아니었냐는 여론이 생겨났다.
2017년 들어 중국 원정 패배와 시리아전 졸전으로 인해 슈틸리케 경질 여론이 거셈에도 유임을 결정하였다. 국가대표팀이 위기에 처했음에도 뼈를 깎는 쇄신 대신 본인의 자리보전에 급급한 선택을 한다는 거센 비판에 직면하였다. ''' [전문가 긴급진단] 8명중 6명 “슈틸리케 답 없다…당장 경질해야”''', '''“감독 능력 의문”…日 전문가가 본 슈틸리케''' 상식적으로 선수선발은 감독의 권한임에도 이번 사태에 감독의 원칙없는 선수선발 문제 또한 인정하기 때문에 기술위가 직접 선수선발에 관여하겠다는 이해하기 힘든 입장을 밝혔다. 사실 슈틸리케를 선임한 이용수 위원장으로서는 슈틸리케와 공동 운명이고 그를 경질한다면 그 책임에서 본인도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슈틸리케만큼은 차마 경질하지 못하고 슈틸리케 체제만 유지하면서 모든 것을 그게 기형적이든 아니든 바꾸려고 하고 있다.
사실 2017년 4월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하려고 했다'''. 당시 이용수 기술위원장은 중국전 졸전에 시리아전 진땀승 이후, __슈틸리케 경질을 결정한 뒤 정몽규 축구협회장에게 보고했지만 '''정 회장은 이를 거부'''했다.
결국 6월 14일에 카타르 도하에서 열리는 카타르와의 원정 경기도 울리 슈틸리케 지휘 하에 치러지게 되었고 이 경기에서 울리 슈틸리케를 경질하지 않은 대가를 뼈저리게 치르게 되었다. 카타르와의 경기에서도 무색무취의 졸전 끝에 2 : 3으로 패하며 사상 최초로 카타르 원정에서 패배하는 흑역사를 작성하였다. 이 경기 패배로 인해 여론은 폭발했고 6월 15일, 기술위원회를 개최하여 울리 슈틸리케를 경질하고 이용수 본인 또한 기술위원장에서 사퇴하였다. 후임으로는 한국 축구 레전드 수비수인 이임생이 선임되었다.


[1] 젊은 축구팬들 중에는 이용수가 비선수 출신 해설위원이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용수도 K리거였다. 통산 35경기에 출전해 8골 2도움을 기록했다. 이용수 외에는 강신우 해설위원 겸 서울대 축구부 감독, 황보관 전 서울 감독 정도가 서울대 사범대 출신 선수다.[2] 그로인해 2002년 월드컵 KBS 해설위원은 허정무이상철이었는데, 결과적으로 방송 3사간 시청률 경쟁에서 KBS는 완벽하게 참패했다... 물론 당시 MBC차범근을 영입했고 SBS신문선-송재익 콤비로 한창 날리던 때였기 때문에 이용수가 나왔어도 방송 3사중 시청률 최하위를 면치 못했을 가능성이 높긴 했으나, 격차는 어느 정도 줄어들었을 것이다.[3] 후에 밝힌 바로는 히딩크 감독은 2순위였다고 한다. 1순위는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당시 개최국 프랑스를 우승으로 이끈 에메 자케 감독. 월드컵이 끝나고 "아직도 내 마음속의 1순위는 에메 자케"라는 말을 했을 정도..[4] 다만 자의반 타의반 성향이 짙다. 이른바 '오대영' 감독 시절 무지막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정몽준과 이용수로서는 믿고 맡기는 방법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전혀 없었다. 즉 히딩크와 일종의 공동운명체였던 셈.[5] 이건 이용수가 조광래와 인맥적으로 가까웠기 때문인 이유도 있다. 이용수와 조광래는 둘다 허승표(축구계 주류에 대항해서 축구협회 회장선거에 출마했던 인물)를 지지하고 축구협회를 비판해 왔던 인사들.[6] '''재택 근무'''라는 다소 충공깽스런 조건.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는 조건 역시 재택 근무였는데, 우려가 많던 것과는 다르게 현재 '''아사아 최종예선 B조 1위'''로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참가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7] 스페인에 1:6 대패를 당하고서 모든 것을 한국축구 전반의 문제와 유소년 축구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는 말을 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경기분석과 개선방안등의 언급없는 유체이탈 화법으로 책임 회피가 이때 기점으로 시작되었다.[8] 최종예선 카타르전 직후 경기력을 비판하는 기자의 질문에 이러면 이란으로 갈 수가 없다는 식의 협박을 하였다.[9] 이란전 패배직후 소리아같은 외국 귀화 출신 선수가 없어서 졌다는 식의 한국축구 비하발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