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열함

 


1. 개요
2. 이름의 유래
3. 실제 활용과 구분
4. 전열함의 몰락
5. 매체에서의 전열함
6. 전열함 목록
7. 전열함시대의 주요 무장
8. 관련 문서

'''17세기에 등장한 초기형 전열함, HMS 소버린 오브 더 씨'''[1]
'''후기형에 속하는 미국의 전열함, USS 오하이오'''[2]
'''1850 증기선 라 나폴레옹(La Napoleon)'''

1. 개요


한자: 戰列艦
영어: Ship-of-the-line
목조 범선시대 군함의 최종 테크트리. 일반적으로 유럽식의 범선 전함이라면 바로 떠올리는 형태이다.
범선시대에서 전열함이 가지는 위상은 전함과 같다.
고대 역사에 남을 만한 대해전은 주로 지중해가 무대로, 노를 젓는 갤리선이 주력함이었고 접현시켜 백병전을 벌이거나 충각 전술로 배끼리 충돌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이후 화약과 대포가 개량을 거듭하고 대항해시대가 도래하며 해전의 주역은 서서히 범선으로 이동했다. 활과 노(弩)에서 대포로 화력 방사 방법도 발전했다.
그런데 당시 대포는 현재와 달리 화약을 폭발시켜 탄환을 날리는 방식이었다. 탄환의 운동에너지로 목표물에 충돌해 피해를 주는 형식으로 한 방에 배를 격침시킬 수는 없었다. 통짜 쇠구슬을 서로 쏴댔다는 뜻이다. 고폭탄을 만들 지식은 없었던 대신, 많은 대포를 장착해 부족한 관통력과 살상력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전투력을 올렸다.[3] 따라서 복층 갑판구조를 가진 함선이 개발되고 반대로 다수의 포화를 견딜 수 있는 장갑과 구조가 요구됐다. 전열함으로 넘어오던 과도기에는 3층 갑판 갤리온이 나왔고, 이를 더 개량한 것이 전열함이다.[4]
그렇지만 당시 전열함의 대포는 파괴력이 작든 크든 적함 격침에 비효율적인 건 사실이었다. 당시 3급 전열함의 상부 포갑판에 탑재된 18파운드 포는 30m 이내에서 무려 75센티 두께의 참나무를 관통했다. 탄속이 너무 빨라 반대편 갑판을 뚫고 나가버렸던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이를 보완해 탄속이 느리고 포환이 큰 카로네이드 포가 나왔다. 하지만 부족한 화력은 마찬가지였다. 라운드샷 수십 발을 퍼맞고도 양쪽함 모두 떠있었고, 혹 흘수선 근처에 맞아 침수가 돼도 긴급보수를 하면 침몰하는 일도 적었다.
마스트가 전부 부러져서 항행능력을 상실하거나 간부 내지 수병의 피해가 너무 커서 사기가 저하로 끝나는 게 당시 해전의 양상이었다. 화약고 유폭만은 달랐는데, 핫샷 등 뜨겁게 열받은 포탄이 화약고를 때리면서 전열함들이 터져나갔다. 이를 참고해 포탄 자체를 고폭탄으로 업그레이드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1830년경에 프랑스에서 작열탄을 사용하는 대포를 개발했고, 같은 시기 프랑스에서 증기 추진 전열함이 개발되었다. 증기추진으로 인해 더 나은 기동성이 확보되고 작열탄을 통해 당시 인화성 소재로 가득찬 범선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게되자 이후 데미지를 줄여보고자 범선의 선체를 철갑으로 강화하거나 아예 철제 선체를 가진 철갑함이 나왔고. 그 철갑을 관통하기 위해서 범장을 포기하고 강력한 증기추진과 함께 확실한 한방을 보장하기 위해 선체 중앙에 대구경, 고관통 주포탑을 설치하기 시작한 게 전드레드노트급 함선이며, 주포의 화력이 강해지자 가능해진 장거리 교전에서 쓸모 없는 현측포를 들어내고 주포만 남겨둔 게 드레드노트급이다. 이윽고 전열함의 시대가 저문다.
하지만 전열함 시대에도 포격을 할 시 대부분이 흘수선 위쪽을 맞으므로 격침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굳이 격침을 하려면 파도를 이용해서 적선의 흘수선 아래 부분이 드러날 때 타이밍 맞춰 쏘는 방법이 있는데, 당시 포격 방식으로는 그런 흘수선 하단 "조준사격"이 타이밍 맞추기도 어려울뿐더러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힘들었다. 그냥 흘수선 위쪽을 마구마구 때려서 걸레짝을 만들어놓고 백병전에 돌입하거나 적 승조원의 숫자를 줄여버리는 등으로 상대함이 항복하면 승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목재라는 특성상 잘 가라앉지도 않아서, 대개 승리한 쪽은 항복한 함정을 나포, 자함 승조원 일부를 차출해 본국에 먼저 보내거나 자함과 동행시켜 끌고 가곤 했다. 게다가, 당시엔 나포한 적국 함선이나 상선 및 화물을 정부가 종류와 상태 등을 보고 가격을 매겨 매입하여 나포해 온 함장을 포함한 모든 승조원들에게 상금, 즉 ''''''을 줬으므로[5], 오히려 간신히 이겼더니 적함이 가라앉아 버리면 승리한 쪽 승조원들이 망했다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나포한 배가 전투의 영향으로 불이 나면 포로 신세인 나포된 배의 승조원들은 물론 나포한 쪽의 승조원들까지 합세해 필사적으로 진화를 했다. 마찬가지로 침수가 발생하면 양측 승조원들이 협력해 필사적으로 펌프질을 하기도 했다. 육지와 달리 배를 잃는 순간 생존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지는 바다의 특성과, 뱃사람들 특유의 국적을 넘는 유대감, 근대 서구권의 전투 문화 등으로 교전이 끝나면 대개 상호간의 적개심이 쉽게 가라앉았던 점과 '''가장 중요한''' 나포 상금 등이 작용했다. 그리고 당시 일반 선원의 대부분은 강제 징집당한 사람들이어서 충성심도 희박했으므로 제3국 항구에서 해산되거나 심하면 그냥 간부들만 변하고 그대로 운용되는 경우도 있기도 했다.

2. 이름의 유래


전열함은 앞서 설명한 것처럼 더 많은 대포를 장착가능하도록 복층 갑판구조로 만들어진 함선들이다. 즉 이러한 구조의 함선은 진행방향에서 90도 각도 좌우측 방향에 가장 강력하며 선수와 선미 쪽은 선회포 몇정 뿐이라 매우 취약하다.
따라서 선수와 선미를 적에게 공격받는 일이 없도록 여러 척의 함선이 일렬로 서로서로 붙어서 약점을 보완해주며 동시에 화력이 집중된 측면은 모두 함께 적을 향해서 전체 함대의 화력을 증강시키게 되는데 이것을 전열(戰列) 전술이라고 한다. 전열함(戰列艦)이라는 이름은 이러한 전술 개념에서 따온 것이며, 영어로도 ship-of-the-line이라고 불렸다.

3. 실제 활용과 구분


당시 바다의 황제라고 불렸던 영국 함대의 경우 배의 등급을 1~6등급으로 구분했으며 이중 약 60문 이상의 대포로 무장한 3~4등급 함선 이상의 전투함을 전열함이라고 불렀다. 또한 전열함도 2층에서 최대 3층갑판을 채택하는 게 대부분이고, 전열함 중에서 제일 많은 수가 취역한 것은 보통 74문의 3급 전열함이었다.
실제로 1815년까지 영국 해군 내에서 취역한 전열함 대수는 최대 104문에 3층 포갑판 1급이 8척가량, 최대 98문 3층 포갑판 2급이 7척, 최대 80문에 2층 내지 3층 포갑판 3급 전열함 94척이었다, 실제로 2급 이상부터는 하부 포갑판 운용 제한과 안정성의 문제로 후에 선체를 늘려 2층 포갑판 설계의 전열함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트라팔가 해전 당시 스페인, 프랑스 연합 내의 주 전력은 2층 포갑판을 채용한 전열함들이 주력이었다.
그런데 2층 포갑판을 주로 채용한 프랑스의 전열함들은 영국에 비해 함선 운용능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지만 선체 설계는 더 뛰어났다. 압도적인 해군력을 바탕으로 공세에 나서야 하는 영국 해군과 달리 방어적인 입장인 프랑스 해군에게는 전투 이후 전력보존이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동일한 74문의 전열함이라도 프랑스 전열함의 함체가 더 대형이고 조함하기가 쉬웠다고 한다. 그래서 동일한 80문의 전열함이라도 해전 당시의 파도, 바람과 특유의 안정성 문제에서 3층 포갑판을 채용한 영국 전열함은 최하층 포문을 파도가 넘나드는 문제로 종종 포문을 열지 못하고 전투에 임하던 것에 비해 자유로웠다. 참고로 프랑스 해군의 2단층 80문급 전열함은 영국 해군의 98문급 전열함과 크기와 무게가 거의 비슷했다.
또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전열함은 영국의 전열함에 비해 설계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스페인의 경우 설계에서 동맹국이었던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107척이나 건조된 프랑스의 테메레르급 74문형 전열함의 경우, 영국 해군이 굉장히 높게 평가해서 동급함의 나포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으로 설계를 카피해서 폼페이급, 아메리카급 전열함을 건조했다. 테메레르급은 주력함 중에서는 역사상 가장 많이 건조된 함급이다.
그러나 동일한 74문급의 전열함이라 할지라도 영국의 전열함은 크기가 작은 편이었고, 이로 인해 공간이 좁아서 승조원이 활동하기가 불편하다던가 복원성이 좋지 않아서 항해능력이나 포격 등에 있어서 곤란한 점들이 많았다. 그 예로 1740년 4월 스페인의 70문 전열함 프린세사(princessa)와 영국 70문 전열함 3척이 교전를 벌인 일이 있었는데, 3대1의 상황임에도 최종적으로 항복할 때까지 무려 6시간 동안 교전을 벌인 일이 있었다. 이것은 프린세사가 당시 영국의 90문 전열함과 맞먹을 정도의 크기를 가졌기에 안정성이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영국의 함장들이 프랑스나 스페인의 함선들을 보면 적극적으로 나포하려는 이유가 상대적으로 뛰어난 설계방식도 원인중 한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차이가 나는 데에는 어느 정도는 단함의 우월성보다는 수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영국 해군 독트린의 영향도 있었다. 해외 무역 의존도가 높은 영국의 특성상 필요한 군함의 수요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은 2차대전 때까지 이어져서, 영국의 순양함이나 구축함은 타국의 함에 비해 단함으로는 화력 등에서 밀리는 대신, 항해 능력 등 전체적인 균형과 수적 우위를 염두에 두고 건조되었다. 프랑스나 스페인의 경우에는 예산부족도 있지만 그 대신에 숫적열세를 개별적 군함의 성능으로 우위를 확보하여 어느 정도 보강하려는 이유로 전열함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더 컸다.
실제로도 프랑스나 스페인의 전열함들은 설계방식은 뛰어났지만 결과적으로 바다 경험을 갖춘 승조원을 확보하기 힘든 대륙국가의 특성과 그에 따른 승조원의 질의 차이로 인해 영국 해군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프랑스의 경우는 수적열세 때문에 적함대 격파보다 주로 자국함대 보존에 치중했으며 육군국가라 육군을 소홀히 할 수 없어서 해군에만 투자하지 못해 영국 해군을 완전히 앞지르지는 못했다.
함선의 유지보수면에서는 굉장히 효율적이었다고 한다. 프랑스에 포로 신분으로 머물던 한 영국 해군 장교는 쉐르부르 항에서 프랑스 해군 전열함의 바닥 이물질 제거작업을 하루만에 마치고 도크에서 나가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기록이 있다. 선저에 수중생물이 달라붙어 함의 저항을 일으키기 때문에 함포 등을 제거하고 함을 가볍게 만든 다음 함선을 한쪽으로 기울게 하여 반대편 선저를 보이게 하여 이물질을 제거하고 다시 반대편으로 기울여 반대편 바닥작업을 진행하였다. 프랑스에서는 기중기를 사용하여 효율적으로 작업을 진행했던 반면 영국의 항구에서 비슷한 작업은 당시 1주일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그래도 미국 독립전쟁 당시에는 프랑스도 해군에 대한 투자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서 영국 해군에게 여러차례 패배를 안겨주기도 했다. 이는 장 바티스트 콜베르중상정책에 의한 결과이기도 하다. 중상정책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대규모의 상선단을 필요로 하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해군력 강화는 필수적이었다. 그리고 해군전술과 교리 연구에 선두를 달린 것은 의외로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였다. 그래서 고급 해군전술과 교리에 관한 책은 프랑스어로 된 책이 많았고 그를 영어로 번역해서 출판하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드 그라스 백작이나 드 기생 백작 등은 영국 해군에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드 기생 백작은 프랑스 해군 최고의 방어 전문가로 평가받았다고 하며 로드니 제독을 상대로 싸운 해전에서 로드니 제독의 전열돌파전술을 견고한 전열유지로 막아내 방어에 성공하여 영국 함대를 후퇴하게 만드는 등 이게 여태까지의 프랑스 해군이 맞냐고 할 정도로 강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쉬프랑 제독은 인도로 프랑스 전열함대를 이끌고 가서 동인도회사의 항구를 공격하고 점령하여 프랑스의 세력을 확장했고 영국 해군과의 수차례 교전에서 승리하였다. 그로 인해 영국이 미국 독립전쟁에 증원할 병력을 인도로 돌리는 결정을 내리게 했다. 그러던 것이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을 맞으며 프랑스는 다시 육군 국가로 전환되었다.
한편 영국스페인프랑스의 전열함들에 비해 협소한 공간이라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대포에 당시 머스킷 총에 사용되던 수석식 격발장치를 장착했다. 당시 일반적인 포격 방식은 대포 하나당 사관과 포수, 장전수, 대포를 지지하는 밧줄을 당기는 사람 등등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포수가 심지가 달린 긴 장대를 대포 화약구멍에 접촉시켜 격발하는 시스템이었다. 이로 인해 장전하는 사람, 조준하는 사람, 포수가 각각 따로 있어 조준에서 포격까지 타이밍 맞추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파도로 인해 흔들리는 갑판 위에서, 그리고 포격시 대포의 후퇴 반동을 피해서 멀찌감치 떨어진 거리에서 발화용 장대 끝을 대포 화약구멍에 갖다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은 조준하는 사람, 포격하는 사람이 따로 있던 기존 시스템과는 달리 조준하는 사람이 직접 줄을 당겨 격발장치를 작동시키는 시스템이라 대포 하나 하나를 담당하는 인원수가 크게 감축이 되어 보다 효율적인 선체 내부 공간이 확보되었고, 그냥 줄만 당기면 되었으므로 파도치는 바다 위에서도 간편하게 사격을 할 수 있었으며, 기존의 재래식 방법보다 격발 후 포탄이 발사되는 반응속도도 빨라서 보다 정확한 조준 포격을 할 수 있어 트라팔가 해전 등에서 큰 효과를 보았다. 반면 스페인이나 프랑스는 기존의 재래식 포격 방식을 사용하여 포격의 정확도나 타이밍면에서는 영국보다 많이 밀렸다.[6]
참고로 부싯돌 격발장치를 쓰던 영국해군도 불발을 대비해 화승식 막대를 항상 준비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전열함 중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함선들이 있었는데 바로 4층 포갑판 전열함이다. 이들은 실제로 제대로 활약을 해보지도 못하고 최후를 맞이한게 대부분이었다. 당장 트라팔가 해전 당시 스페인의 1등급 전열함인 산티시마 트리니다드가 그 예다. 134문의 포를 갖춘 4층 포갑판 전열함이지만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나포당해 영국 해군의 전력이 될 '''뻔''' 했지만 결국 폭풍우에 좌초되어 최후를 맞이했다. 4층 전열함이 인기를 끌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조함의 어려움이 큰 이유 중 하나였다. 미국의 1등급 전열함 펜실베니아도 상당히 안습한 운명을 자랑하는데,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남북전쟁기에 자침했다. 프랑스의 오세앙급은 산티시마 트리니다드를 능가하는 크기를 가진 세계최대의 전열함이었다. 산티시마 트리니다드와 다르게 거함인데도 항해성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동급함으로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에 나일해전에서 전투중 화재로 폭침한 오세앙급 전열함 120문함 오리앙호가 있다.
이런 이유로 전열함은 SSBN이나 드레드노트전함들 처럼 실제 해전에서의 활용은 매우 적은 편이었고, 일종의 결전병기의 개념으로서 실제 해전에서는 오히려 20문에서 50문 정도의 대포를 갖춘 4등급 이하의 프리깃과 더불어 포문 20문 미만의 6등급 이외의 등외 전함이다. 예를 들어서 콜벳, 슬루프, 커터, 브릭 같은 중소형 전함들이 더 많은 활약을 펼쳤다. 전열함들은 항구에서 훗날 있을 결전을 대비에 전력을 보존하거나, 항구 봉쇄의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활용된 전투함이라고 하기는 힘들었다.
또한 이런 대형 전열함은 매우 느리고 둔했는데 순풍을 잘 타도 '''8노트'''를 넘기기 힘들 정도로 둔하였고, 키를 한번 돌리는데도 인원이 10명 이상 요구될 정도로 조종하기도 힘들다는 단점이 있기에 활용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기에 정작 근대 범선전투라면 쉽게 떠올리는 전열함이 서로서로 열을 이루면서 포격을 주고 받는 그런 장관이 펼쳐진 해전은 역사적으로 찾아봐도 굉장히 드물었으며, 오히려 기동력 좋고 경쾌한 프리깃함이 해군의 주력으로서 활용되었다.
미국의 경우 전열함보다는 일반 프리깃보다 강력하고, 상황에 따라서는 전열함과도 전투가 가능한 대형 프리깃을 개발/배치하는 쪽을 택했다. 다만 이것은 당시 미 해군이 전열함을 아예 포기하고 실용적인 노선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유럽 국가들처럼 대대적으로 전열함에 투자할 상황이 안 되었던 것이다.(대표적인 예로 최초의 6척(Original Six)중 하나인 USS 컨스티튜션이 있다.)
그렇다고 전열함이 쓸데없는 돈지랄 함선이라고 보는 것은 '''정말''' 위험한 생각이다. 어찌되었던 적 전열함이 함대를 이루고 있으면 이를 상대할 방법은 똑같이 전열함을 잔뜩 끌고와서 한판 붙는 수 밖에 없었다. 전열함이 기함에 애용된 것도, 특유에 위엄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상대 함을 아예 다가올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효율적이라고 판단되는 100문 이상 1급 전열함, 그 1급마저 초월해버리는 스펙의 오세앙급이나 산티시마 트리니다드가 건조되었던 이유도, 전열함이라는 카테고리가 그만큼 강력한 함종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국가든 1급 전열함은 견제의 대상이였으며, 사실상 1급 전열함이 제대로 활약을 못 한 이유에 극심한 견제도 한몫한다. 일단 해전에 1급 전열함이 뜨면, 2~3급 전열함과 각종 프리깃, 심지어 같은 1급 전열함이 돌격해 최대한 격침 및 나포하려고 했기 때문. 그리고 사실상 2급 정도만 되도 충분히 견제의 대상이 되는데, 너무 크고 무거워 그 위엄만큼 해전에서 큰 역할을 하지 못했던 1급 전열함과 달리, 2~3급 전열함, 특히 '''강력한 2급 전열함'''은 사실상 유럽 함대의 주축이던 갤리온이나 프리깃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런 강력한 상위 2급 전열함 3척 정도가 모이면 1급 전열함도 안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런 2급 전열함은 프리깃에 역할도 수행했는데, 너무 느린 1급 전열함(기함)이 해전에 나오기까지 적 함대를 께부수면서 시간을 벌고, 기함급 함선을 지켜낸 것도 2급 전열함들이다. 심지어 4~3급 전열함들도 무시하지 못할 강력한 활약을 했으니 결전병기로서 전열함에 위엄은 엄청나다. 애초에 대부분의 함대 구성원이었던 갤리온이나 프리깃이 '''절대''' 이기지 못할 함선인 점에서부터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물론 3층 갑판 해비겔리온이라면 모르겠지만, 그 정도부터는 사실상 준 전열함이라고 봐야 하며, 함포나 배수량 등 여러 면에서 하위 전열함을 초월한 배라 논외로 쳐야 한다. 따라서 전열함을 이기고 싶다면, '''전열함이나 전열함에 준하는 대체병기를 대려와야 한다는 것'''. 강대국 아니면 한두척 보유하기도 힘든 전열함이므로, 이 전열함 보유 척도에 따라 해양 강국이냐 아니냐가 갈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상대방이 전열함 함대를 가져올 때, 똑같은 전열함 함대를 가져오거나, 그럴 수 있더라도 승리할 자신이 없다면 그저 군항에 짱박혀서 해안포대의 엄호나 받으면서 벌벌 떨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전열함들은 위력이나 활용도 면에서 비교가 안 되지만 현대전에서 핵무기가 가지고 있는 위상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핵무기 또한 매우 위력적이며 전략 수립에 있어 필수요소로 취급되지만 실제 전과는 밖에 없다.
결국 봉쇄당한 측의 국가는 함대는 있는데 제대로 쓸 수 없는 꼴이 되어버리기에 해군이 봉쇄당한 국가의 무역선은 심심하면 프리깃과 슬로프 등 소형함선에게 나포당하기 일쑤이지만, 봉쇄를 하고 있는 국가의 무역선은 위장 사략선이 아닌한 공격당할 일 자체가 거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해외 무역은 막대한 부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었기에 이를 봉쇄한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을 가져다 준다. 다시 말해 전열함은 전술적인 화려함은 없었지만 전략적으로는 막강한 존재감을 나타냈고 이는 근대의 전함이나 현대의 핵무기와 비슷한 역할이다. 영국이건 프랑스건 유럽 국가들이 멍청이라서 전열함을 찍어낸게 아니다. 소설 혼블로워를 보면 전열함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 수 있다.

4. 전열함의 몰락


[image]
-
윌리엄 터너의 역작,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7]
목조범선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전열함 시대도 철갑선이 등장함과 함께 그 끝이 보였다. 전열함에 증기기관을 결합한 기범선형 전열함이 등장하고 작열탄이 보급되자 전열함이나 프리깃에 철갑을 씌우는 철갑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여전히 범장은 석탄과 급수문제로 필수적인 요소였지만, 제국주의 시대가 무르익던 19세기에 세계의 주요 기항지에 석탄 저탄창과 급수 시설 네트워크가 구축되자 돛은 그저 손이 많이 가고 자리만 차지하는 짐이 되고 말았다. 아울러 보다 확실한 방어력을 위해 선체 전체를 금속화하는 후기형 철갑선이 등장하자 범장이 도태되었고, 단순한 목재 범장 전열함은 점점 쓸모없는 물건이 되었다. 철갑선 초기엔 철갑선으로 개조되는 사례라도 있었지만, 전금속 선체를 새로 뽑는 패러다임이 도입되자 전열함은 재활용도 안되는 물건이 된 것. 애초에 주력이었던 시절에도 실전은 시궁창이었는데, 하물며 구식이 되고나서는...
1862년 남북전쟁에서 세계최초로 철갑 증기함끼리 전투가 있었다. 이 싸움의 주인공은 연방 해군의 USS 모니터와 연합 해군의 CSS 메리맥. 당시 화포로는 서로 장갑을 뚫을 수가 없어 충각 전술까지 써봤지만 승부가 나지 않아 결국 양쪽 모두 후퇴했다. 문제는 철갑선과 기존 범선간에 전투가 벌어지면 철갑선은 범선의 포탄을 튕겨버리지만,[8] 범선에는 철갑선의 포탄이 퍽퍽 들어가므로 철갑선이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점이다.
또한 회전포탑의 개발과 화약과 대포의 발전으로 더 먼 사거리를 가졌으면서도 압도적인 파괴력이 있는 대포와 포탄이 속속 개발되었고, 1866년에는 원시적인 어뢰도 등장하는 등 해상 무기의 발전이 진행됨에 따라 구시대의 전열함은 완전 무용지물이 되었고, 현대적인 드레드노트급 전함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다만 세로로 좁고 길게 만들 수밖에 없는 배의 구조상 여전히 군함에 설치되는 발사 무기의 화력은 배의 측면에 가장 집중되었으며, 따라서 전열 전술 자체는 1차대전까지 계속 이어졌다. 회전포탑을 채용하였지만 여전히 현측포를 유지한 전 드레드노트급 전함끼리 전형적인 전열 전술로 근접해서 싸웠던 쓰시마 해전 또한 좋은 예다.
세월이 흘러 포술의 발달에 힘입은 드레드노트급 전함과 협차 사격술의 등장으로 기존의 측면포대를 이용한 전열 전술은 사실상 종말을 고했지만, 주포의 사거리가 늘어나고 사격술이 바뀌었을 뿐이지 여전히 함선들끼리의 포격전에서 가장 유효한 대형은 함대의 화력을 모두 집중시킬수 있는 전열 대형이었다. 그래서 전열 전술을 완전히 끝장낸 것은 비행기항공모함, 그리고 무엇보다 대함 미사일의 등장이었다.

훈련함으로 사용되는 HMS 우스터 함. 우스터 함의 원래 함명은 HMS 로열 소버린으로, 1833년에 전통적인 범선형 1급 전열함으로 설계되어 제작에 들어갔다. 그러나 19세기의 급격한 해군 발전 속도로 인해 수 번의 건조 중단과 설계 변경, 함명 개칭을 거쳐 건조 시작 27년만인 1860년에야 HMS 프레데릭 윌리엄이란 이름의 기범선형 전열함으로 완성되어 1864년에 취역한다. 무장은 30문의 8인치 포와 54문의 32파운더 포, 2문의 68파운더 포로, 나폴레옹 전쟁기였으면 대적할 이가 없을 정도의 중포들을 86문이나 장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작 12년의 현역 생활을 하고 1876년 퇴역, HMS 우스터란 이름으로 다시 개칭되어 템스강 해양훈련대학에 연습함으로 보내져 1948년까지 수십만 명의 해군사관생도 및 예비 상선사관들을 교육하는 장으로 활용되었다. 1948년에 침수되어 강 바닥에 착저했고, 5년 뒤인 1953년에 건져져 해체되었다. 위 영상은 British Pathé의 기록보관소의 한 구석에서 2019년에 발견되었다. 필름에는 아무런 정보도 적혀 있지 않아 위 영상이 촬영된 정확한 시기는 불명이다.

1914년 5월 11일, 불타는 HMS 웰즐리. 아래에 언급된 블랙프린스급 전열함 웰즐리 함과는 다른 함선이다. 개칭 전 함명은 HMS 보스카웬이었다. 1844년에 74문급 3급 전열함으로 건조되었고, 특별한 이력 없이 1873년 퇴역하여 웰즐리 해양학교의 연습함으로 사용되었다. 1914년에 계류 도중 발생한 화재로 소실되었다.

1932년, 예인선에 이끌려 영국 해군을 사열하며 HMS 빅토리의 곁을 지나가는 테메레르급 전열함 HMS 임플라커블. 트라팔가 해전에서 적으로 만났던 두 함선이 124년만에 재회하는 순간이다.

1급 전열함 HMS 빅토리와 고속전함 HMS 퀸 엘리자베스, 영국 해군의 근세와 현대를 상징하는 주력함 두 척이 나란히 담긴 영상. 1930년 포츠머스 항에서 촬영되었다.
더불어 대부분의 전열함들은 상부구조물을 들어내고 그위에 창고식의 지붕을 얻어 창고선으로 사용하거나 수병들의 숙소 또는 훈련함으로 사용했고 이들 대부분은 함령이 1백년 이상이 대부분이라 배 안에서 각종 퀴퀴한 냄새가 났다고 한다. HMS 빅토리도 이런 식으로 활용되다가 20세기 초반에 영국내 시민단체들의 항의로 복원한 경우이다. 이 창고선들은 대부분 1950년대에 해저 방파제로 침몰당했으며 이는 영국군의 폭약실험에 많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몇몇 함선들은 '''건조된지 150년이 다 되어가는 제 2차 세계대전에서도 활동했다.''' 뱅거급 전열함 웰즐리와 테메레르급 전열함인 임플라커블 호가 대표적으로, 웰즐리는 결국 루프트바페의 공습으로 침몰했고, 임플라커블은 석탄 창고로 활동하다가 전후인 1949년에 해체되었다. HMS 웰즐리는 역사상 가장 마지막으로 격침된 전열함이자, 유일무이한 항공 폭격으로 침몰한 전열함이다.
현재는 가장 유명한 1급함이며 호레이시오 넬슨 제독이 탑승한 배로도 유명한 HMS 빅토리(HMS Victory)가 유일한 전열함으로 남아있으며 현재 영국 해군의 함선 명부에도 올라와 있다. 가장 오랫동안 현역으로 남아 있는 군함이다. 물론 실제 전투 업무는 수행하지 않고 의장 임무만 맡고 있다. 현재 지상 건선거에 고정되어서 항해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실제 항해가 가능한 가장 오래된 현역함은 미국의 중프리깃인 USS 컨스티튜션이다.

5. 매체에서의 전열함


근세를 다루고 있는 매체에서 바다와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면 거의 무조건 등장한다.
[image]
[9]
해상전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어쌔신 크리드 3, 어쌔신 크리드 4: 블랙 플래그, 어쌔신 크리드: 로그에서도 꾸준히 등장. 어쌔신 크리드 4에서는 잭도우 호로 약탈을 반복하면 영국, 스페인 소속의 전열함이 적으로 등장하여 남쪽의 샬롯 인근의 위험 해역에서 떼지어 나타난다. 절대 정면 싸움을 할 수 없는 압도적인 측면 화력과 높은 내구도를 자랑하지만, 속도와 방향 조절이 자유로운 높은 기동성을 살려 회피룰 반복하며 피해를 누적시키면 나포하여 든든한 아군으로 쓸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어쌔신 크리드 4/항해 문서 참고.
레 미제라블에서는 장 발장을 비롯한 죄수들이 프랑스군 전열함 오리온호를 보수하는 사역에 투입되는 장면이 등장하며, 장 발장이 이 때 수병을 구하며 탈옥한다. 영화에서도 폭풍우 속에서 만신창이가 된 1등 전함을 뭍으로 올리는 장면이 오프닝부터 나온다. 단, 영화에서는 극적 표현을 위해 고증과 다른 부분을 사용한 게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 참조.

6. 전열함 목록



7. 전열함시대의 주요 무장



8. 관련 문서


[1] 기존의 군용 갤리온과 비교하면 지브가 없어서 일반적인 사각돛을 사용하였지만 선미루(함교)가 낮아진 전열함의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2] 여담으로 이건 1812년에 취역한 작은 범선인 1대 오하이오 다음으로 해당 이름이 붙은 2대 오하이오다. 3대 오하이오는 메인급 전함 BB-12 오하이오이며 4대 오하이오는 몬태나급 전함 2번함 BB-68 오하이오, 5대 오하이오는 오하이오급 전략원잠 1번함 SSGN-726 오하이오.[3] 쉽게 이야기하면 예전 대포는 상대 군함을 단숨에 격침시키기는 어려워서 2차 대전 당시의 전함처럼 3연장 포탑 3~4개 정도의 포만 운용했다가는 도저히 격침 자체가 불가능해 현측에다 대포로 도배를 했다고 보면 된다.[4] 당시 함선 간 포격전이 벌어졌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가 제대로 묘사한 영화로는 마스터 앤드 커맨더: 위대한 정복자가 있다.[5] 지금도 그렇지만 군함을 건조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과 긴 시간이 소모되므로 금방 수리해서 투입할 수 있는 나포함의 가치는 상당히 컸다. 군함 건조로 인해 영국에서는 목재가 될 나무가 씨가 말라서 북미의 삼림지대에 의존하는 판이었고 당연히 비용도 그만큼 올라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요즘 군함은 나포해도 무기체계나 운용 방식이 낯설어 바로 투입할 수 없으나 이 시대는 그러한 점들이 거의 똑같았으므로 가능했던 것이다.[6] 영국은 함포 사격에 플린트락 방식을 도입했고 프랑스는 여전히 직접 화승을 갖다 대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양자의 장단점은 명확한데 플린트락 방식은 빠르고 간편하게 격발할 수 있었으나 불발이나 지발이 발생할 위험성이 있었다. 반면 프랑스 방식은 불발이나 지발 위험성은 작았으나 직접 불붙은 화승을 들고 있어서 사고 위험성도 있었고 포수들 간에 연계가 정확하지 않으면 정확한 타이밍에 사격하기 어려웠다. 지발이란 격발을 시켰음에도 발사되지 않고 뜸들이다가 뜻하지 않게 갑자기 발사되는 경우를 뜻한다.[7]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스[8] 훗날에 나올 성능 좋은 포탄들도 동급의 함선끼리 붙으면 튕겨내거나 막아버리는데 하물며 구형 포탄으로는 어림도 없었다.[9] 사진은 미션 중 잡게 되는 쥘리앵 뒤 카스의 배 엘 알카 델 마에스트로(마에스트로의 방주). 기본적인 맨오워와 모델링은 같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