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차 이제르론 공방전
1. 개요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 2장
- 은하영웅전설 OVA 102화
- 시기 : 우주력 801년, 신제국력 3년 표준력 2월 12일 4시 35분 ~ 21시 40분
第11次イゼルローン攻防戦
은하영웅전설의 전투.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성립된 이래 은하제국군과 벌인 최초의 교전이자 이제르론 요새를 두고 일어난 마지막 공방전이다.
2. 배경
우주력 800년, 노이에란트 전역에서 이제르론 공화정부가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의 협력 제의를 거부하고 은하제국에 협조하면서 형성된 해빙 무드 덕분에 양 세력은 잠시나마 평화공존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주력 801년, 신 제국력 3년에 접어들어 이 관계는 완전히 붕괴하고 말았다. 이른바 하이네센 동란이라고 불리우는 사건으로 구 동맹령이 혼란에 빠졌으며, 페잔의 항로국 데이터가 삭제되기도 했다. 이 사건의 배후에는 구 페잔 자치령의 란데스헤르 아드리안 루빈스키가 있었는데, 제국군에서는 프리츠 요제프 비텐펠트 상급대장을 중심으로 이제르론 공화정부를 토벌하여 노이에란트의 안정을 꾀해야 된다는 강경론이 대두되었다.
한편 이제르론 공화정부 측에서는 그동안 하이네센을 비롯한 구 동맹령에서 타진하는 구원 요청을 못 들은 척 방관하고 있었으나, 상황이 점점 급변하고 동맹령에서도 이제르론 공화정부에 대해 "언제까지 그 따위로 살 텐가?"란 식의 빈정거리는 반응이 흘러나오자 슬슬 대외활동을 할 시기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다만 제국군과 일전을 벌여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가에 대한 문제로 주저하고 있었는데, 이제르론 공화정부군 사령관 율리안 민츠가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율리안 민츠는 제국군과 전면대결은 불가능하지만 구 동맹령에서 폭동을 진압하고 치안유지활동을 하고 있던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을 유인하여 격파하는 계획을 제시하였고, 작전 준비에 착수하면서 양 세력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3. 경과
가뜩이나 구 동맹령의 혼란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이제르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이자 제국정부에서도 즉각 반응을 보였다. 카이저 라인하르트는 노이에란트 전역 이래 하이네센 주둔 제국군 책임자를 맡고 있던 아우구스트 자무엘 바렌 상급대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페잔 회랑 샤텐부르크 주변 공역에 대군을 집결하고 제국 공부성에 노이에란트의 물자 유통 문제를 해결할 대책을 내놓으라고 명령했다.
한편 바렌은 하이네센과 이제르론 요새를 잇는 회랑의 중간 공점에 함대를 배치하여 노이에란트의 폭동을 견제하고 이제르론에 대한 감시와 대응능력을 강화했다. 이 때 바렌 상급대장이 가진 전력은 함정 15,600척으로, 이제르론 혁명군 전군을 능가하는 병력이었다.
하지만 2월 7일 율리안 민츠가 이끄는 6,600척의 이제르론 혁명군은 구 동맹령이 아닌 제국 본토 쪽으로 진격을 시작하여 바렌과 참모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별다른 전략적 가치가 없는 진격이었기 때문에 바렌은 양동작전으로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이제르론 공화정부군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기에 함대를 이제르론 회랑까지 진출하여 배후에 위협을 가하기로 결정하고 2월 8일 함대를 출격시켰다.
4. 전투 개시
한편, 이제르론 회랑의 제국령 출구 방면을 지키는 부대는 바겐자일 대장이 지휘하는 8,500척의 함대였다. 2월 7일 이제르론 혁명군의 접근 사실을 보고받은 바겐자일 대장은 부하들에게 큰소리를 치면서 함대를 출격시켰다.
2월 12일 4시 20분, 혁명군과 제국군은 2.9광초(87만 km)를 사이에 두고 정지했다. 그로부터 15분 뒤, 양측 지휘관의 발포명령을 시작으로 양군은 전투를 시작했다. 1시간 넘게 포격을 주고받던 혁명군은 5시 40분 제국군이 밀고들어오는 만큼 후퇴하여, 얼마 뒤에는 함포사격 외에는 반격을 하지 않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혁명군의 후퇴에 제국군은 스스로 함렬을 무너뜨리고 무질서하게 혁명군을 추격하면서 이제르론 회랑으로 진입했다. 이것이 6시 30분이었다. 함대의 후퇴에 따라 혁명군의 공전대도 모함으로 귀환했는데, 스파르타니안 240기중 16기를 상실하는 동안 제국군 발퀴레 104기를 작살내는 우월한 교환비를 기록하면서 그 실력을 과시하였으며, 이 전투에서 포플랭은 250번째 격추기록을 세워, 제국-동맹 전쟁을 통틀어 격추 스코어 10위 내로 진입하였다."이제르론의 들개들이 컹컹 짖어대다 자기들이 늑대라고 착각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개를 훈련할 때는 채찍이 필요하다. 두 번 다시 놈들이 실력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혹독하게 조련해 줘라."
다나카 요시키, 은하영웅전설 10권 <낙일편>, 김완, 이타카(2011), p.67
그 시각 제국군은 무질서하게 혁명군을 추격하고 있었으나, 사령관 바겐자일 대장은 그리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했다. 제5차 이제르론 공방전에서 동맹군 우주함대 사령장관 시드니 시톨레 대장은 병행추격으로 난전을 유도하여 토르 하머를 봉인하고 이제르론 요새를 일부 파손시킨 바 있는데, 바겐자일은 이 병행추격 전략을 도입하여 토르 하머를 봉인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전법은 이미 율리안 민츠가 예견한 범위 안에 있었다. 율리안은 회랑으로 진입한 바렌 함대가 이제르론 요새 주변 공역에 도착할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여 바겐자일 대장에게 병행추격의 가능성을 보여면서 이틀에 걸쳐 함대를 후퇴시켰다. 결국 이틀에 걸친 추격전 끝에 제국군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토르 하머의 사정권 내에 진입하였고, 병행추격 전략이 실패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바겐자일은 즉시 전 함대에 후퇴를 명했다.[1]
바겐자일 함대가 허겁지겁 후퇴하는 도중 바렌 함대가 이제르론 요새 근처에 모습을 드러냈다. 혁명군은 즉각 뱃머리를 돌려 바렌 함대와 교전했지만, 바렌 함대의 맹공을 버티지 못하고 후퇴했다. 바렌은 퇴각하는 바겐자일 함대를 지원하기 위해 적의 노림수를 알면서도 일부러 토르 하머의 사정권에 들어갔다. 여기에는 토르 하머의 에너지가 충전되기 전에 요새에 육박하면 된다는 계산도 있었다.
제국군 바렌 함대가 '질풍 볼프' 볼프강 미터마이어 원수도 경탄할 정도로 급속전진해 토르 하머의 사각으로 파고들려는 순간, 메르카츠 제독이 지휘하는 별동대가 제국군의 좌측면을 기습공격했다. 원래 이 별동대는 바렌 함대의 정찰 시스템으로부터 사각이 되는 공점에 숨어 있었다가 때가 되자 뛰쳐나온 것이다. 바겐자일 함대는 이 별동대를 발견했지만 공황에 빠져 퇴각하느라 경고를 보내지 않았다.
별동대로부터 불의의 기습을 받은 바렌 제독은 침착한 지휘로 무너지는 함렬을 재편하고 혁명군의 공세로부터 함대의 와해를 막았으나 더 이상 공세를 퍼부을 수 없었다. 토르 하머의 에너지 충전이 끝난 것을 인식한 바렌 제독은 전 함대에 최대 속도로 후퇴할 것을 명령했으나 20시 15분, 토르 하머가 발사되었고 200초 뒤 2차 포격이 있었다. 두 차례의 포격으로 수십만 명의 병사를 잃은 제국군은 20시 45분, 사령관 바렌 제독의 명령으로 전투를 중단하고 후퇴했다.
21시 40분 제국군이 완전히 전장에서 철수한 것을 확인한 율리안 민츠는 이제르론 요새로 철수하였다.
5. 이후 이야기
이제르론 공화정부에서는 "'''황제의 정강이를 걷어차 줬다'''"며 이 전투의 승리를 평가하고 자축하였다. 어쨌든 양 웬리 사후 처음으로 민주공화주의 세력이 제국군을 이긴 전투였다. 여기에 바그다슈와 보리스 코네프 등이 이 승전보를 프로파간다 삼아 반제국 세력의 사기를 끌어올리려 하였다.[2]
바렌의 패배를 보고받은 황제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이 친정을 선언하였으나 공교롭게도 발열이 일어나는 바람에 잠시 연기하게 되었다. 대신 하이네센에서 사전 정지작업을 목적으로 파울 폰 오베르슈타인을 대리인으로 파견하였는데 배배꼬인슈타인이 오베르슈타인의 풀베기를 단행하고 라그풀 교도소 폭동사건이 터지면서 오히려 혼란이 가중됐다.
발터 폰 쇤코프 중장은 다른 장소에서 아텐보로, 포플랭과 함께 하이네센 탈환작전이 시작될 거라고 예측했지만 결국 그 작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시바 성역 회전에서 제국군과 화평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양 웬리 사후 의문 부호가 따라붙던 율리안 민츠의 실력이 드러난 전투이다. 작전 자체는 양 웬리에게 어깨너머로 배운 것들을 짜 맞춰 수립한 것으로 바렌의 도착 시점을 미리 계산하여 그에 맞춰 바겐자일 함대를 도발하였고, 바렌 함대의 위치를 시시각각 보고를 받으면서 제국군을 이제르론 요새로 유인하였다. [3] 그 결과 바렌은 토르 해머 사정권에서 위기에 봉착한 바겐자일 함대를 내버려둘 수 없었고, 바렌이 이동할 것으로 예측된 사각지대에 메르카츠가 매복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덕분에 결국 바렌 본인이 토르 해머 사정권으로 끌려내게 되었고 주포에 정통으로 얻어맞는 상황을 연출했다. 다만 메크링거, 비텐펠트, 미터마이어 등은 율리안보다는 메르카츠의 보좌의 결과물로 보았다. 하지만 일단 비텐펠트가 과정의 모습을 보고는 이 정도 용병술을 보니 혁명군 지휘관이란 자도 만만치 않다고 평가했으니 어쨌든 전술적으로는 합격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