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동맹 전쟁

 

'''은하제국'''
銀河帝國, Galactic Empire

'''자유행성동맹'''
自由惑星同盟, Free Planets Alli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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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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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전개
2.1. 배경
2.2. 시작
2.3. 교착
2.4. 전황의 변화
2.5. 종결
3. 주요 전투
3.1. 외전
3.2. 정전


1. 개요


銀河帝国と自由惑星同盟の戦い/Alliance-Imperial War
  • 등장 작품
    • 은하영웅전설 1권 여명편 서장 <은하계사 개략> ~ 7권 노도편 7장[1]
  • 시기: 우주력 640년, 제국력 331년 표준력 2월 ~ 우주력 800년, 신제국력 2년 표준력 2월 2일
은하영웅전설 본편의 배경으로 다곤 성역 회전이 벌어진 우주력 640년 부터 우주력 800년 2월 2일에 공포된 겨울장미원의 칙령까지 무려 160년간 이루어진 은하제국자유행성동맹 간의 전쟁이다.
이 전쟁은 제1차 라그나뢰크 작전 직후 골덴바움 왕조가 멸망하고, 제2차 라그나뢰크 작전으로 자유행성동맹이 멸망함으로써 로엔그람 왕조의 은하제국이 승리한다.

2. 전개



2.1. 배경


우주력 001년 은하연방이 세워진 이후 인류는 끝없이 우주로 뻗어나갔으나, 200년 쯤이 지나자 인류 사회는 서서히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썩어빠진 사회에 지친 민중들은 혜성처럼 나타난 젊은 장교 루돌프 폰 골덴바움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고,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은 그는 여러 차례의 선거를 거쳐 국가원수직에 올랐다. 그러나 우주력 310년, 루돌프는 은하연방을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은하제국의 황제’라 칭하며 ‘골덴바움 왕조 은하제국’을 건국했다.
이후, 루돌프는 즉위 9년차에 발표한 열악 유전자 배제법을 시작으로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던 폭정을 펼쳐 나갔다. 특히, 아직 제국 의회에 남아있던 소수 공화파 의원들이 강하게 저항하자 이에 격하게 분노해 제국 의회를 해산시키며 황제 중심의 귀족정 체제를 세웠다. 그가 죽은 후 제국은 반란에 휩싸였으나, 루돌프가 이미 사회질서유지국 등의 부서를 통해 제국 전체를 효과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았던 터라 얼마 지나지 않아 진압되었다.
그러나 우주력 473년, 알레 하이네센을 필두로 한 40만 명의 공화주의자들이 제국령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반세기에 걸친 1만 광년의 대장정 끝에 생명이 살 수 있는 행성을 발견했고, 그곳을 중심으로 자유행성동맹이라는 민주공화주의 국가를 건립하였다. 이 사실을 은하제국은 알지 못했으나, 자유행성동맹은 언젠가 있을 은하제국과의 결전을 위해 국력 증강에 매진하였다.

2.2. 시작


우주력 640년, 은하제국과 자유행성동맹의 초계함대가 처음으로 접촉하였다. 은하제국 함대는 갑자기 나타난 외계 함대에 깜짝 놀랐고, 동맹 함대는 그동안 준비하고 예상했기에 즉시 그들을 공격해 섬멸하였다. 하지만 제국 초계 함대는 전멸 직전까지 은하제국으로 통신 보고를 시도했고, 이를 접한 제국은 먼 우주에서 갑자기 나타난 이들이 과거 탈출한 죄수들의 후예임을 파악한다.
제국은 2차례의 소규모 원정부대를 보내나 패배하였고, 마침 정치적 상황까지 겹쳐지면서 대규모 원정대를 편성, 자유행성동맹 토벌을 결정했다.
하지만 자유행성동맹은 그동안 제국이 마주친 반란군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강대한 세력이었고, 은하제국이 파견한 토벌군은 어두운 지리, 지휘관의 무능 등등이 겹쳐 다곤 성역 회전에서 무려 90%의 장병들을 잃는 최악의 패전을 당하고 말았다.[2]
이후 제국은 청안제 막시밀리안 요제프 2세의 20년간의 치세 동안 내부 개혁에 집중하여 동맹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선황을 뛰어넘고자 했던 원수양산제 코르넬리우스 1세의 야심 덕에 제국은 우주력 668년 코르넬리우스 1세의 친정에 나서 동맹을 거의 정복할 뻔 했지만, 제도 오딘에 쿠데타가 발생해 황급히 돌아와야만 했다.

2.3. 교착


전쟁의 양상은 은하제국의 공격과 자유행성동맹의 수비 구도로 전개되었다. 자유행성동맹은 제2차 티아마트 회전 등 여러 번 승전을 거두었지만 본질적인 전쟁의 양상을 바꾸진 못했고, 제국의 침공을 막기 위한 군비 지출은 그대로 막대한 경제적 부담이 되었다. 그 때문에 동맹은 페잔 자치령에 빚을 져야 했고, 이는 동맹 전체의 경제가 페잔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는다.
은하제국은 끊임없이 원정함대를 편성하여 자유행성동맹을 공격했으나 브루스 애쉬비가 지휘하는 동맹함대에 티아마트 성역에서 장성만 무려 60명이 죽는 대참패를 당하고, 거기에다 1만 광년이 넘는 거리 때문에 동맹을 정복할 수 없었다. 그러자 제국은 동맹의 공격을 막는 최강의 방패인 동시에 원정함대의 중간 거점 역할을 할 이제르론 요새를 건설하였다. 동맹은 이 이제르론 요새를 공격하기 위해 6차례나 함대를 보냈지만 매번 패배에 그쳤다.
두 국가간의 전투는 150년 간 크고 작은 전투를 합해 모두 329번 치러졌으며[3], 1년에 2번 꼴로 충돌했다. 하지만 양측 모두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능력은 없었고, 이 때문에 전장은 150년동안 이제르론 회랑과 인근 성계에서 한 뼘도 벗어나지 않았다. 양측 모두 전쟁에 필요한 군사력을 증강하기 위해 가용 자원을 최대한 군대에 쏟아부었고, 그에 따른 인적•물적 자원의 소모도 극심해 양국의 경제는 페잔 자치령에 종속되었으며 은하연방 시절 3000억에 달했던 인구는 400억까지 줄어들었다. 양국은 전쟁에만 열중한 나머지 변경행성의 개발이나 더 먼 성계의 개척 계획은 사실상 무산되었고 전쟁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지 않는 인문학계에 대한 지원은 갈수록 축소되었다.
이런 경향은 동맹이 더 심했는데, 제국보다 약한 국력을 가진 동맹은 어떻게든 제국을 막기 위해 군사력 증강에 올인한 결과 정부 예산은 만성적자를 기록했고, 사회, 경제의 침체현상도 극심해졌다. 그리고 끊임없는 전쟁과 제국에서 넘어온 망명자들 중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귀족과 왕족들 때문에 민주주의도 서서히 병들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양측 정치가들 중에서 화의를 주장한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은하제국의 망명제 만프레트 2세는 즉위 이후 자유행성동맹과의 강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측의 수많은 강화 시도는 "불경한 반도 토벌"과 "전제주의 척결"을 외치는 양국 강경파와 전쟁이 끝나는 걸 바라지 않는 페잔 자치령지구교의 공작으로 실패로 돌아갔다.
한편 프리드리히 4세 치세 말엽으로 갈수록 전투가 잦아졌는데 프리드리히 4세는 제국 역사상 유래가 없다시피 할 정도로[4] 오래 재위했지만 이렇다 할 업적이 없어 군사적인 치적이라도 달아주기 위해서 군사작전을 늘렸기 때문. 본편때 양 웬리가 전투에 100회 정도 참전했다고 할 정도. 당시 양 웬리는 정식으로 군인이 된 지 10년도 채 안 된 상태였다. 그 10년도 안되는 사이 100여번이나 전투가 벌어진 것

2.4. 전황의 변화


하지만 우주력 796년, '불패의 마술사'로 불리는 자유행성동맹군의 지장 양 웬리가 아군의 피해 없이 이제르론 요새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다. 그러자 동맹의 주전파들은 고무되어 제국 원정을 주장했고 동맹은 무려 전군의 60%에 달하는 함선 20만 척, 장병 3022만 7400명을 동원해 은하제국을 침공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동맹과 제국의 세력 균형을 중요시하는 페잔 자치령이 동맹의 원정계획을 제국에 알려주었고, 제국은 청야전술로 동맹군을 지치게 만든 후 반격하였다. 동맹군은 암릿처 성계에 결집하여 반격하려 했으나 오히려 제국군의 공세에 제8함대가 와해되었으며, 점령지를 모두 포기하고 이제르론 요새로 후퇴하였다. 이 작전에 투입된 동맹군의 70%가 사라졌고, 이미 작전 중 소요한 경비와 이후 수습에 필요한 경비로 인해 동맹 경제는 파탄 나 버렸다.
한편 제국은 침공작전 도중 황제 프리드리히 4세가 붕어했고, 곧 후계자를 세우기 위한 내전이 시작됐다. 수많은 군공을 세운 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 백작과 오랫동안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국무상서 클라우스 폰 리히텐라데 후작은 손을 잡고 에르빈 요제프 2세를 차기 황제로 옹립하였으며 이에 반발한 오토 폰 브라운슈바이크 공작과 빌헬름 폰 리텐하임 공작을 중심으로 한 문벌귀족립슈타트 귀족연합을 결성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문벌귀족의 무능과 삽질 탓에 반란은 5개월 만에 끝이 났고, 그들의 재산은 그대로 국고로 환수되어 제국의 재정을 윤택하게 하였다. 이후 라인하르트 백작은 리히텐라데 후작을 몰아내고 스스로 제국재상에 올라 제국의 사실상 1인자가 되어 국가를 개혁하였다.
비슷한 시기 동맹에서도 군부 인사 중 몇몇이 결성한 구국군사회의라는 조직이 쿠데타를 일으킨 탓에 내전이 일어나 그나마 남아 있던 정규함대 중 11함대가 사라졌고, 동맹의 군사력은 제국령 침공작전 이전의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로엔그람 공작은 동맹을 침공할 명분을 만들고자 페잔 자치령에르빈 요제프 2세를 납치하는 걸 방관하였고, 망명 귀족들이 유제를 망명시키고 동맹 내에서 은하제국 정통정부 설립을 공포하자 즉각 선전포고를 했다. 그리고 이제르론 요새로 진격하는 척 하며 페잔 방면으로도 함대를 보내 전격적으로 페잔 자치령을 병탄하였다.
동맹은 남은 함대를 끌어모아 란테마리오 성역에서 제국군과 맞섰지만 크게 패했다. 이후 양 웬리가 남은 함대를 이끌고 유격전으로 제국군 함대를 하나 하나 격퇴했으며, 끝내 라인하르트 함대와 대결해서 그를 죽기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나 미터마이어 함대와 로이엔탈 함대가 하이네센으로 진격해 동맹 정부에 항복을 요구했다. 국방위원장 월터 아일랜즈와 우주함대 사령장관 알렉산드르 뷰코크는 결사항전을 주장했지만 최고평의회 의장 욥 트뤼니히트는 지구교도의 도움을 받아 반대파를 연금하고 제국에 항복한다. 이후 양국은 바라트 화약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사실상 동맹을 제국의 속국으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바라트 화약을 맺은 직후 라인하르트는 제국으로 돌아가 황제로부터 양위를 받아 로엔그람 왕조를 개창한다.

2.5. 종결


같은 해, 제국은 헬무트 렌넨캄프를 고등판무관으로 삼아 하이네센에 파견했다. 그는 양 웬리에 패한 적이 있어 그를 싫어했는데, 제국의 눈치를 보던 동맹 정부는 렌넨캄프와 손을 잡고 양 웬리를 제거하려다 역으로 양 웬리 일당에게 최고평의회 의장 조안 레벨로와 고등판무관 헬무트 렌넨캄프가 사로잡혔고 렌넨캄프는 인질로 잡혀 있던 상태에서 자살했다. 이 사실이 제국에 보고되자 제국은 동맹 정부를 질책하며 다시 전쟁을 일으켰다.
제국의 침공에 동맹 정부는 사실상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비되었고, 우주함대 사령장관 뷰코크 원수는 남은 함대를 이끌고 마르 아데타 성역에서 제국군과 격돌했으나 패배했다. 이후 제국은 하이네센까지 진공하여 겨울장미원에서 겨울장미원의 칙령을 발표, 동맹을 공식적으로 멸망시켰다.
이로써 제국과 동맹의 전쟁은 끝났으나, 동맹이 멸망하기 직전 엘 파실 성계가 독립하여 엘 파실 독립정부를 창건하고, 양 웬리 함대가 독립정부에 합류하면서 충돌은 계속 이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노이에란트 총독 오스카 폰 로이엔탈이 반란을 일으켜 제국군끼리의 내전이 다시금 일어나고야 말았고, 사소할 수 있었던 군사적 충돌에서 촉발된 시바 성역 회전에 이르러 율리안 민츠가 라인하르트의 기함 브륀힐트로 직접 돌입해 황제를 대면하고 화평을 청함으로써 길고 길었던 전란은 제국-동맹 전쟁이 끝난 지 2년이 지난 후에야 완전히 종결되었다. 이 회담에서 라인하르트는 하이네센에 민주주의 자치령 건국을 승인하였으며, 제국과 자치령이 공존하면서 인류 우주는 평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3. 주요 전투



3.1. 외전



3.2. 정전



[1] 6권 비상편 서장 <지구쇠망의 기록> 제외.[2] 어처구니 없게도, 다곤 성역 회전은 사실 제국군이 이길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문제는 지휘관이 헤르베르트라는 멍청이였고, 그 멍청이가 기회를 족족 날려먹었다는 것. 동맹군이 제국군의 상황을 알아채기 전까지만 해도 동맹군 수뇌부는 침울 그 자체에 빠져, 독설로 유명한 유수프 토패롤마저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 답답한 꼴에 깊이 빡친 부관이 참다 못해 "귀관들은 예편원을 쓰시오! 본관은 유서를 품에 안고 있소!" 라고 일갈했을 때조차 '우린 글렀다.' 라는 생각에 빠져 침묵하고 있었다.[3] 제3차 티아마트 회전 기준[4] 유래는 있다. 건국제인 루돌프 대제는 무려 41년으로 프리드리히보다 약 10년 더 오래 재위했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