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모/음반 목록
1. 개요
2. 정규 앨범
2.1. 1집 - To Heaven (1998)
2.2. 2집 - For Your Soul (1999)
2.3. 2.5집 - Classic (2000)
2.4. 3집 - Let Me Love (2000)
2.5. 4집 - No More Love (2001)
2.6. 5집 - 가인(歌人) (2003)
2.7. 6집 - My First (2005)
2.8. 6.5집 CLASSIC 1 + 1 GRAND FEATURING (2005)
2.9. 7집 - Second Half (2009)
3. Mini Album
3.1. 영원한 하나 (2009년)
3.2. 성모 Meet Brave (2010년)
3.3. Thank You (2010년)
3.4. Everyday Christmas (2010년)
3.5. Wind of Change (2014년)
3.6. 조성모 스페셜 싱글 (2014년)
4. CCM Album
5. OST
6. 참여앨범
1. 개요
대한민국의 발라드 가수 조성모의 디스코그래피를 다루는 문서다.
2. 정규 앨범
2.1. 1집 - To Heaven (1998)
1998년 9월에 발매된 조성모의 데뷔 앨범이다. 앨범을 발매하고는 공식 데뷔무대를 갖지 않고 초호화 캐스팅에 드라마타이즈 형식으로 찍은 최초의 뮤직비디오 '''To Heaven'''을 광고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미성의 갸날픈 목소리와 애절한 발라드가 잘 어우러져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나 방송에 출연하질 않아 목소리에 비해 얼굴이 못생긴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하지만 한 달 뒤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출연하면서 외모까지 받쳐준다는 것이 알려졌고, 풋풋한 얼굴과 목소리를 무기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그 해 최고의 신인가수로 발돋움했다. 후속곡인 불멸의 사랑과 댄스곡 후회 역시 엄청나게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불멸의 사랑 같은 경우 노래가 끝나는 부분에 3옥타브 솔까지 올라가는 초고음역대로 주목을 받았다.
총 판매량은 '''1,354,319장'''으로, '''1998년에 발매 된 음반 중 판매량 1위'''를 달성 했으며 이로써 5번째로 데뷔 앨범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가수가 되었다.
참고로 To Heaven의 모델은 어느 연인이 아닌 본인의 큰형으로 뺑소니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큰형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부른 노래였다고 불후의 명곡에 출연했을 때 밝혔다. 관련 기사
2.2. 2집 - For Your Soul (1999)
[image]
조성모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앨범으로 1999년 9월 9일 발매된 정규 2집 앨범. 타이틀곡은 '''슬픈 영혼식'''으로 전형적인 이경섭 스타일의 마이너 발라드였다. 총 판매량 '''2,047,152장'''으로, 그 해 KBS, MBC, 서울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2]
나오자마자 음반차트는 물론 방송 순위 1위를 싹쓸이하다시피 했으며, 최전성기의 시작이자 조성모 시대를 알린 앨범으로 폭발적인 음반판매량과 함께 앨범의 전곡이 대중들에게 알려지면서 국민가수로서의 위상을 단단히 다지게 되었다.
참고로 그 유명한 초록매실 광고에 삽입된 노래가 바로 2집의 You&I라는 곡이다. 조매실로 희화화되긴 했지만, 곡이 세련되고 애절해서 2집 중에서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3번 트랙의 slow 버전은 조성모 특유의 발라드이고, 9번 트랙의 fast 버전은 slow 버전을 빠르게 편곡하여 가벼운 댄스곡 분위기가 난다.
2.3. 2.5집 - Classic (2000)
[image]
최전성기를 구가한 조성모의 앨범으로 2000년 1월 27일 발매된 2.5집. 총 '''1,599,111'''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면서 2000년 전체 음반 판매량 '''2위'''를 차지했다. 2집 활동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매되어 조성모가 가장 혹사당하던 시기였다고 평가되며, 당시만 해도 정규 앨범에 한두곡 넣을까 말까하던 '리메이크'라는 개념을 앨범 전반으로 넓혀 이후 6~7년간 리메이크 앨범 붐을 일으켰던 시초격의 앨범이다. 타이틀곡 '''가시나무'''는 종교적 색채가 짙은 곡을 상업적으로 이용했다며 원곡자가 매우 불쾌해했던 불미스런 논란이 있었지만, 그 논란을 덮을 만큼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며 조성모의 대표곡 중 하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2.4. 3집 - Let Me Love (2000)
[image]
2000년 9월 1일 발매된 정규 3집 앨범. 2집, 2.5집에 이어 조성모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앨범이다. 타이틀곡 '''아시나요'''는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음악방송 3사 1위를 싹쓸이했고, 조성모표 발라드의 특징을 총망라한 곡으로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었다. 앨범이 발매된 당일 40만장이 팔렸다는 기사로도 크게 화제가 되었고 4일만에 100만 장, 최종 '''207만 장'''의 판매고[5] 를 올리며 2000년 전체 음반 판매량 '''1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조성모 역대 앨범 중 가장 많이 팔린 앨범'''으로 기록에 남았고,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2년 연속 더블 밀리언셀러 기록'''을 남긴 유일한 가수가 되었다.
그의 인기 최절정에 올랐던 시기여서 2000년 하반기 '''별들의 전쟁 최종 승리자'''로 당당히 이름을 굳혔으며, 당시 경쟁상대는 5년만에 국내로 컴백해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온 서태지, 1세대 아이돌계의 레전드 H.O.T., 성인식으로 파격 섹시를 보여준 박지윤, 청순에서 섹시로 파격 변신에 성공한 핑클, 육아일기 예능을 통해 국민가수로 발돋움한 god 그 외 임창정, 스티브 유, 홍경민, 이정현, 김현정 등등 당대 톱스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활동했다.
특히 이들 중 엄청난 규모의 팬덤을 보유한 서태지, H.O.T.와의 경쟁이 큰 화제를 몰고 왔는데, 결국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많은 음반을 판매한 그가 최종 승리자가 되어 결국 그 해 MBC, SBS, 서울가요대상,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6]
아시나요, 다짐, 다음 사람에게는, 마지막 사랑이 지상파 방송을 탔다. 대중성 위주의 누구나 좋아할 곡들도 13곡, 재판은 14곡 (다짐 리믹스) 수록.
다만 호사다마라고,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만큼 그의 대중적 이미지가 가장 안 좋았던 시기였다. 아시나요의 뮤직비디오 배경은 베트남 전쟁이었는데, 월남전에서의 명예를 훼손했다면서 당시 참전자들이 소속된 단체에서 고소를 하는 해프닝이 벌어진 것을 시작으로, 얼굴없는 가수 컨셉을 벗자마자 출발! 드림팀을 필두로 여러 예능에 가리지 않고 출연한데다 초록매실로 대표되는 오글거리는 광고에 여럿 출연하며 이미지 소모가 매우 극심했기 때문이다.
TV만 틀면 나오던 그의 모습에 사람들이 가장 환호하면서, 서서히 질린다는 반응을 보이던 때가 이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원래 후속곡 '''다음 사람에게는'''을 놔두고 강렬한 컨셉의 '''다짐'''으로 활동해서 여성스럽고 곱상한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한 반전을 노린 결과 오히려 컬트적인 인기를 누렸다.
또한 각종 콘서트, 행사 등등 공연을 돌며 목상태가 악화되어, 3집에 이르러서는 조성모 특유의 가녀린 음색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원래 라이브가 특출난 가수는 아니었지만 데뷔 때만 해도 좋은 목 컨디션으로 줄곧 음원과 큰 차이 없이 비교적 깔끔하게 라이브를 소화했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 그의 라이브가 불안정한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고, 이 시기에 부른 To Heaven이나 불멸의 사랑을 들어보면 1집 당시와 의외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쉬지도 못한 채 무리하게 혹사를 당한 탓에 이후 그의 음악 커리어에서 긍정적으로나[7] 부정적으로나[8]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끼친 앨범이다. 이때부터 팬들 일부가 조금씩 이탈하는 분위기.
2.5. 4집 - No More Love (2001)
[image]
GM에서의 마지막 앨범으로 2001년 9월 9일 발매된 정규 4집 앨범. 총 '''961,539'''장의 판매고를 올리면서 2001년 전체 음반판매량 '''4위'''를 기록했다.[9] 이전 1~3집에서 워낙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특히 2,3집 연속으로 200만 장을 돌파하는 대한민국 가요계 역사상 유일무이한 대기록을 세운 만큼 사람들의 기대심리는 매우 높았지만, 결과는 최초의 하락세이자 공식적으로 밀리언셀러 실패라는 막심한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실제 판매량은 100만 장을 훌쩍 뛰어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GM 기획과의 계약만료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발매된 앨범이었고 게다가 GM과의 재계약이 사실상 불발되면서 '''음반판매량 집계가 실제로 한 달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2001년 한국음반산업협회의 기록을 보면 9월 한 달 음반판매량은 집계가 되어있지만 10월 이후에는 집계가 되어있지 않았다. 1~3집 때처럼 앨범 발매 후 많은 활동을 하지는 않았지만 최소 10월까지는 TV에서 조성모의 얼굴을 볼 수 있었으니 [10] 당시 음반시장을 고려했을 때 상식적으로 '''9월 한 달동안 96만 장이 팔린 앨범이 10월 한 달 동안 겨우 4만 장이 팔리지 않아 100만 장을 못 넘겼을 리는 없다.'''[11]
4집 활동 때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였는데 일단 1~3집 때 노예처럼 활동한 전례[12] 도 있어서 본인이 소속사를 빨리 벗어나고 싶어했고, 소속사와의 마찰이 극심해서 대놓고 소속사에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프로모션을 했다. 4집은 계약 조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냈다는 분위기가 강했던 앨범으로, 이전 1~3집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던 기사, 광고 등의 홍보는 이 앨범에선 거의 찾아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앨범이 나온지 이틀 뒤에 9.11 테러가 터지는 바람에 가요계가 거의 마비되다시피 해서 음악방송이 한 달 동안 완전히 정지되었다. 이로 인해 앨범이 나온지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고, 이러한 여러 가지 내부, 외부 사정이 겹치면서 방송 활동도 손에 꼽을 만큼 적게 했다. 결국 준수한 앨범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타이틀곡 '''잘가요 내 사랑'''은 이전 히트곡에 비해서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못하고 묻혔다.[13]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요프로그램에서 여러번 1위를 수상했고 그 해 연말 시상식에 불참했지만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전 국민이 뽑은 10대 가수상을 수상했다.
2.6. 5집 - 가인(歌人) (2003)
[image]
2003년 3월 11일 발매된 정규 5집 앨범. 프로듀서가 우선 기존의 이경섭에서 김형석으로 바뀌었다. 물론 김형석은 이번 앨범만 담당했다. 또한 조성모와 친분이 있던 Yoshiki의 곡도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앨범부터 조성모의 창법이 바뀌기 시작했다.
원래 발매하려던 시기는 2002년 10월경이었으나, 4집을 끝으로 타 기획사로 이적한 조성모에 대한 전 소속사 GM의 보복으로 앨범까지 다 찍어놓고 컴백을 앞두던 시점에서 전 소속사 멋대로 1~4집의 히트곡과 콘서트 당시의 음원을 총망라한 베스트앨범을 발매했다. 결국 이 사태로 인해 정규 앨범 발매는 다음해로 미뤄지게 되었다.
음원으로 시대가 바뀐 지금은 이해가 안 될수도 있겠지만, 소속사를 옮기고 나서 전 소속사의 보복행위로 이런 사례가 꽤 빈번했었다. 어차피 정규앨범과 베스트앨범 차이고 들어있는 노래가 다르지 않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음반매장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두 최신 앨범이 걸려있는 꼴을 누가 보고 싶어할까. 당연히 정규 앨범을 사러 왔다가 이전 히트곡이 잔뜩 들어있는데다 트랙수 빵빵하고 가격 차이도 얼마 안나는 베스트앨범으로 눈길을 돌리는 대중들이 있게 마련이다.
팬들이야 칼같이 구분해서 정규 앨범을 사준다해도 결국 눈이 돌아가는 팬들 역시 있게 마련이고, 원 가수는 전 소속사의 보복행위 때문에 자신이 피땀흘려 만든 정규앨범의 판매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언급할 때는 "'''욕심이 과해 다시 만들었다"'''고 돌려 말했다.
이런 사례가 이전에도 종종 있어왔던 가요계의 나쁜 관행이었지만, 그의 경우는 가요계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이 굉장히 높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종종 회자될 만큼 이런 사례의 대표격으로 알려졌다. 결국 2003년 3월에 발매하고 타이틀곡을 '내 것이라면'에서 '''피아노'''로 바꾸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전과 상당히 달라진 창법에 많은 팬들과 대중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1위를 여러번 수상했고 4집에서 주춤했던 인기를 되찾는 데는 성공했으나, 앨범 판매량은 총 '''398,541'''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수치상으로는 급감했다. 그러나 2003년 전체 음반판매량 '''3위'''를 기록했으니 순위상으론 절대 하락세라고 볼 수 없는 수치이다. 음반시장의 쇠퇴가 워낙 극심했기 때문에 판매량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해도 50만장은 그냥 넘길 것이다라고 예상했기에 음반시장의 약화를 상징하는 앨범처럼 남기도 했다. 40만장도 안 되는 판매량이었지만 그 해 이 앨범으로 골든디스크 '''대상'''을 3년만에 수상했다.
1위 김건모는 8집 <Hestory> 로 52만장의 판매고를 올렸으나 2003년 9월 방송에서 은퇴하면서 수상식에 불참했고, 2위 이수영의 경우 골든디스크 음반 판매 집계 기간이 2002년 12월~ 2003년 11월까지였는데 12월이 되어 조성모의 음반판매량을 추월, 결국 11월까지 2위였던 조성모가 운이 좋게 수상했다.
5집 때에는 이전의 곱고 갸날픈 미성에서 힘을 주고 지르는 샤우팅 창법으로 노래 부르는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이전의 미성을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바뀐 창법이 더 좋다는 사람들로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이 당시 팬들은 이전의 창법을 조성모 본인이 싫어해서 음악적인 변화를 꾀하고 더 나은 발전을 이루기 위해 일부러 바꾸었다고들 생각했고 그렇게 주장했다. 이것이 결코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이 달라진 창법 때문에 서서히 원래 음색을 잃어가던 조성모 본인에게는 직격타를 날렸다.
남자다움을 추구하던 그가 이전의 창법을 선호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발성이 제대로 되어있지도 않았던 상태에서 너무 급격하게 목에 무리를 심하게 주는 창법으로 억지로 바꾼 것은 큰 패착이었다. 발성 연습을 다시 하여 그동안 상한 성대를 어느 정도 회복시키고 혹사를 줄이는 방향으로 갔더라면 오랫동안 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장점을 버리면서까지 무리하게 목을 사용하는 창법으로 바꾸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간 상한 목이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지면서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장점을 완전히 잃게 되었다.
실제로, 대표곡인 피아노가 아주 좋은 예시라고 보일 수 있다. 이 곡은 기본적인 음 자체도 높은 편인데, 이 와중에 진성으로 부르면서 심지어 질러버리는 창법, 즉 생목을 활용한 창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노래방에서 이 곡을 부르기만 해도 성대에 타격에 가는데, 이 곡을 남발해서 부르게 되면 성대가 남아날리가 없다.
이 때 목에 너무 많은 무리가 갔는지 다음해 파리의 연인 OST '너의 곁으로'와 6집에서는 또 다시 창법을 바꾸었고, 이후 공익으로 입대할 시점까지만 해도 어찌저찌 변화를 주면서 버티다가 소집해제 이후 이전의 히트곡조차 제대로 소화를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앨범 수록곡 수준으로나 창법의 변화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지만, 결과적으로 그의 음악 커리어에 결코 좋지 못한 타격을 준 비운의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2.7. 6집 - My First (2005)
[image]
2003년 5집 '피아노'와 2004년 파리의 연인 OST '너의 곁으로'를 연속 히트시키면서 슬럼프를 이겨내고 최전성기의 위상을 다시 회복하고 있던 시점에서 정규 6집이 발매되었다. 이 앨범 역시도 원래 2004년에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조성모 본인이 음악적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앨범 작업이 몇 번 엎어지게 되고, 그 와중에 원래 6집 타이틀곡으로 쓰려던 '너의 곁으로'가 OST에 수록되어 타이틀곡 선정을 다시 하면서 앨범 발매가 훨씬 뒤로 미뤄지게 되었다.
가수 당사자를 비롯한 프로듀서 사이에서는 타이틀곡 선정을 두고 많은 논쟁과 고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2005년 2월 2일 발매된 정규 6집 앨범의 원래 타이틀곡은 '눈물이 나요'였으나, 대중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일주일 만에 '''Mr.Flower'''로 급하게 타이틀을 바꾸었다. 대체적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실려있던 5집에 비하여 6집에서는 발라드 비중이 훨씬 높아졌는데, 매 앨범마다 두세곡씩은 들어가던 댄스곡이 이 앨범에서는 실종될 정도였다.
따라서 앨범 퀄리티에 있어서 호불호가 크게 갈렸었으며, 활동곡의 반응에 있어서도 호불호가 많이 갈렸던 앨범이다. 대체로 조성모표 발라드를 좋아하던 사람들에게는 명반이라는 반응이 많았으나, 임팩트가 없고 너무 심심하고 무난하게 흘러간다는 혹평도 적지 않게 들었다.
타이틀 곡의 경우 Mr.Flower가 무난한 인기를 얻기는 했지만 역시 밋밋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고, 결과적으로 피아노와 너의 곁으로에서 회복한 인기를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도 음원차트, 음악방송에서 모두 1위를 접수했고, 그 해 골든디스크 시상식에서 본상을 수상했다. 총 앨범 판매량에서도 '''155,523'''장의 판매고를 올린 결과 2005년 전체 음반판매량 '''7위'''를 기록하면서 꽤나 선전했지만 조성모가 이전에 기록했던 위상에 비하면 기대를 채워줄 만한 성적은 아니었다.
결국 이 앨범을 기점으로 돌이킬 수 없는 하락세를 맞이했다.
2.8. 6.5집 CLASSIC 1 + 1 GRAND FEATURING (2005)
[image]
- 그대 내 맘에 들어 오면은 (원곡: 조덕배)
6집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얻지는 못하자 조성모 역시도 다시 한 번 리메이크 앨범을 작업하여 이전의 위상을 되찾고자 했으며 기존 가수들과는 확실한 차별점을 두었다. 바로 원곡 가수들과의 듀엣으로 앨범을 채웠다는 점이다.
처음 리메이크 앨범을 냈을 당시 타이틀곡 '가시나무'를 원작자인 시인과 촌장의 허락 없이 발매하는 바람에 원작자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고 논란을 일으켰다는 전력이 있었는데, 이를 무마하면서 원작자과의 교감을 통해 기존 리메이크 앨범의 고정관념을 깬 색다른 시도를 보여준 앨범이었다.
총 '''48,813'''장의 판매고를 올려 상업적인 성과가 크지는 않았지만, 원작자와의 듀엣이 화제가 되고 음악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뮤지션으로서의 위상을 높인 앨범이 되었다. 타이틀곡은 그대 내 마음에 들어 오면은으로서, 이 노래 역시 원작자인 조덕배과 듀엣곡으로 발표해 호평과 화제를 동시에 이끌었다.
2.9. 7집 - Second Half (2009)
[image]
- 행복했었다(타이틀 곡)
- 그녀를 잘 부탁합니다(더블 타이틀 곡)
3. Mini Album
3.1. 영원한 하나 (2009년)
3.2. 성모 Meet Brave (2010년)
3.3. Thank You (2010년)
3.4. Everyday Christmas (2010년)
3.5. Wind of Change (2014년)
3.6. 조성모 스페셜 싱글 (2014년)
4. CCM Album
- 2019년 Thanks - 조성모 데뷔 21주년 기념
5. OST
6. 참여앨범
6.1. 2001년
6.2. 2002년
6.3. 2014년
6.4. 2016년
[1] 재판(파란 재킷) 앨범에 추가로 수록됨.[2] SBS에서는 핑클이 수상했고, 서울가요대상은 핑클과 공동으로 수상했다.[3] 비비의 '최후의 선택'을 리메이크했다.[4] 정재욱의 동명 곡을 리메이크했다.[5] 2000년 결산에서 1,968,967장을 판매했고, 2001년 상반기까지 합산하면 207만장을 판매했다.[6] 조성모는 작년에 수상하지 못했던 SBS에서 수상을 하면서 트리플 크라운 기록을 세우지만 이 해에도 작년과 비슷하게 KBS에서는 god가 대상을 수상하면서 방송 3사 가요대상 그랜드슬램 달성에 실패하게 된다. 결국 조성모는 방송 3사 가요대상 트리플 크라운 달성 가수들 중에서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에 실패한 가수라는 기록도 남기게 된다.[7] 조성모 음악 색깔의 완전한 정립.[8] 특유의 음색 실종, 회복 불능의 목상태, 아이돌스러운 행보로 인한 뮤지션으로서의 이미지 구축 실패.[9] 한국 음악통계 연감 기준 134만 장 [10] 심지어 해태제과 에이스크래커 CF도 찍었다 [11] 당시 음반시장이 어땠는지 살펴보면 2000년 9월에 발매된 3집 앨범은 활동을 접은지 한참 지난 2001년 상반기까지 10만 장을 더 팔았다 그러므로 발매한지 한 달 정도 된 앨범이 10월 한 달에 몇 만장도 안팔렸다는건 납득이 안되는 부분이다.[12] 2009년 7집 활동 당시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을 때 언급한 적 있는데 하루에 많게는 14개의 스케줄을 소화해냈고 비행기를 4번 탄 적도 있으며 4년간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고 했었다.[13] 4집 때엔 뮤직뱅크에서의 활동이 전무했다. 그 당시 뮤직뱅크에선 순위제를 중단했다.[14] 원래 곡명은 이탈리아어로 "감사합니다" 라는 뜻에 Grazie인데 앨범표지를 인쇄하는 과정에서 오타가 발생하여 Gracie로 발매되었다 그런데 후에 발매된 재판 앨범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여 Gracie로 인쇄되어 발매되었다. [15] 원곡은 가수 이승환의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