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장기

 


'''일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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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명칭'''
'''일장기'''
日章旗 (にっしょうき)

'''속칭'''
'''히노마루'''
日の丸 (ひのまる)

'''채택일'''
1870(메이지 3)년 2월 27일
1999(헤이세이 11)년 8월 9일

1. 개요
2. 도안법
3. 색조
4. 역사
5. 한국에서의 일장기
5.1. 일제강점기
5.2. 현재
6. 번안
7. 기타
7.1. 일장기와 비슷한 국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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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国旗は、日章旗とする。'''

'''국기는 일장기로 한다.'''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 제1조(국기)

'''일장기'''(日章旗, 닛쇼-키)는 일본국기로, 흰 바탕에 태양을 상징하는 붉은 원인 '일장(日章)'을 그려 넣은 깃발이다. 본래 일본 조정의 상징인 니시키노미하타에서 유래하여 구 에도 막부에서 상선과 재외공관에 게양하기 위한 깃발로 채택, 일본 제국을 거쳐 현 일본국에 이르러 성문법적[1] 국기로 인정되기까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법적으로는 '일장기'가 공식 명칭이나, 전통적으로 이를 부르던 이름인 '''히노마루'''(日の丸)가 더 널리 쓰인다. 다만, 일장기는 '기(旗, 깃발)'를 의미하며 '히노마루'라고 칭할 때에는 일장기의 도안 자체를 이른다. 일본에서 히노마루 도안은 여러가지 제품의 디자인에 널리 쓰이고 있으며, 흰 바탕에 붉은 원 하나라는 워낙 간단한 구성을 하고 있어 세계의 국기들 중에서도 매우 그리기가 쉽다. 일본어 '히노마루'는 일본의 상징이라는 의미에서 파생되어 '일본', 또는 '일본 정부', 또는 '일본 유래의 독자적인 무언가'를 은유하는 뜻으로도 쓰인다.

2. 도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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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의 도안법.

3. 색조


일장기의 공식적인 색상 코드 값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일본 국기국가법 별기 제1의 2항 '채색(彩色)'에는 일장기의 바탕(地)을 백색(白色), 일장(日章)을 홍색(紅色)으로 칠하라고만 나와 있으며, 법률 원문은 흑백으로 되어 있어 자세한 색조를 알 수 없다. 통상적으로는 강렬한 색조의 일장기가 쓰인다 해도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니시키노미하타 같은 색감의 일장기가 쓰인다 해도 괴리감이 아주 심한 것만 아니면 용인된다. 실제로 일본 전자정부(e-gov) 법령 정보 사이트에서 별기 제1에 첨부된 일장기의 예시 이미지를 보면 원색에 가까운 붉은 색의 일장기가 쓰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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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에 등록된 일장기.
일본 전자정부 법령 정보의 일장기 예시.
현재 나무위키에서 쓰이는 버전은 영문판 위키피디아의 한 유저가 2009년 일본 방위성 홈페이지에서 찾아온 소스인데, 현재는 해당 출처로 연결되는 하이퍼링크가 폐쇄되어 있다. 다만 실제 일본에 가서 관공서 등에 게양되어 있는 일장기를 보면, 인터넷에서 흔히 쓰이는 크림슨 계열의 일장기보다 훨씬 더 새빨간 느낌의 일장기가 사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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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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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키노미하타(錦の御旗)
속일본기에 따르면 701년 몬무 덴노가 태양을 나타낸 깃발을 사용하였다고 기록되었다. 이것이 일본 역사상 최초로 태양 상징 깃발을 사용한 사례이지만, 흰색 바탕에 빨간 동그라미는 아니었다고 한다. 동그라미 하나라는 모양새는 고대에나 현대에나 같았는데, 당시에는 대부분 화려한 붉은색 비단에 노란색 또는 금색으로 원이나 국화 문장을 그려 니시키노미하타(錦の御旗)라는 일본 조정을 상징하는 깃발로 사용하였다. 비단도 단순히 붉은색으로만 물들이지 않고 이런저런 문양을 넣은 고급품을 사용하는 사례도 많았다.
흰 바탕에 붉은 원을 그린 도안의 유래는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일설에는 겐페이 전쟁에서 타이라 진영이 관군을 자칭하며 니시키노미하타를 사용하자 미나모토 진영에서는 이에 대비하여 흰 배경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린 깃발을 사용하였고, 미나모토 진영이 승리하여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선 이후 쇼군들이 겐지(미나모토)의 후예를 자칭하며 이들의 깃발을 사용하면서 천하통일의 상징으로 널리 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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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장기
하얀 배경에 붉은 동그라미 형태인,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일장기는 야마나시현에 있는 사찰 운포지(雲峰寺)에서 보관 중이다. 전승에 따르면 1056년 고레이제이 덴노미나모토노 요시미츠에게 하사한 이래 다케다 가문에서 가보로 대대로 전해왔다고 한다. 이 전승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늦어도 16세기 이전에는 이러한 일장기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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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3년 임진왜란 당시 구키 요시타카의 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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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2년~1644년 구로다 히데오(黒田日出男)의 '에도도병풍(江戸図屏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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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6년 에도 막부의 군함 '아사히마루(旭日丸)'
에도 시대부터 에도 막부의 함선에 붉은 원 문양 깃발을 매달면서 본격적으로 현재 형태의 일장기가 널리 퍼졌다. 근대에 들어서는 외국 교역선과 교역하면서 국가를 표기하기 위해 자국 교역선에 붉은 원 깃발을 달게 되었다. 1854년 미일화친조약을 맺고 나서 이 깃발을 일본의 선박을 외국과 구분하기 위해 일본의 함선에 이 깃발을 달도록 규정하였다. 이후 1859년 막부는 이 깃발에 '미쿠니소지루시(御国総標)'라는 이름을 붙여 사실상 일본의 국기로 자리매김하였다. 1862년 미쿠니소지루시는 막부육군의 군기로 채택되었고, 1868년 무진전쟁에서 사쓰마 번조슈 번은 관군으로서 조정으로부터 니시키노미하타를 받은 것과 반대로 구 막부 세력들은 미쿠니소지루시를 들고 싸웠다.
막부가 해체되고 메이지 유신대정봉환이 이루어진 다음 1870년 일본 제국은 막부의 미쿠니소지루시를 계승하여 일장기를 일본 상선의 깃발과 일본 해군[2] 군기로 채택하였고, 일본 육군의 군기로는 욱일기를 지정하였다. 이후 일장기가 일본 제국의 사실상 국기가 되었으나, 태정관 포고 상태만 되었지 법률로 제정되지는 않았다. 국회가 법률로 처리하려던 때마다 뭔가 일이 생겨서 총리보고안으로 백 년 이상 묵다 보니 안건으로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실제로 1931년에 '대일본제국 국기 법안'을 제출하여 중의원에서 통과되었으나, 회기가 종료되어 제국 의회가 폐회되자 폐기되었다. 그래서 국기를 써야 할 상황이 되면 법에는 없지만 일단은 일장기를 쓰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학교 등에서 일장기를 게양하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가 빈번히 오갔다. 위에 설명하였듯 실질적으로 국기로서 기능하고 있기는 했으나, 국기 지정을 위한 법률 처리가 유야무야되는 상황이었다. 패망 후 한동안은 같은 추축국이자 전범국인 '''나치 독일하켄크로이츠처럼 게양금지'''였지만, 1947년 5월 2일 GHQ 최고사령관 맥아더가 몸소 해금시켜주었다.# 이에 당시 총리대신 요시다 시게루가 당일 맥아더에게 공문을 보내어 감사를 표했다#[3].
1996년 문부성은 일장기 게양의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공식 지도요령을 발표하여 기미가요 제창과 일장기 게양을 의무화하였다. 그런데 1999년 히로시마에서 일장기 게양을 반대하는 일본교원조합[4]과 모 학교 교장 사이의 마찰로 해당 사건에 말려든 교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러한 사건까지 발생하자 그때가 되어서야 공식 지도요령 같은 편법이 아닌, 정식 국기 지정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이러한 여론에 힘입어 일본 국회는 쇠뿔도 단김에 빼듯 100년 묵은 문제를 법률안을 발의, 통과시키면서 해결하였다.[5]
1999년 8월 9일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国旗及び国歌に関する法律, 국기국가법)'이 가결되면서 일장기는 비로소 일본의 법적 국기가 되었다. 또한 정식 국기를 지정할 때 일부 도안을 수정하였다.[6] 이전 도안은 종횡비가 7:10이었고 빨간 원이 중심에서 정말 미미하게 왼쪽으로 치우쳤다.[7] 1999년 이후에는 종횡비를 2:3으로 하고 빨간 원을 국기 정중앙에 두었다. 다만 빨간 원의 지름은 1999년 전과 후 모두 세로 길이의 3/5으로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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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국가법 제정 이전 관습적으로 쓰이던 국기(왼쪽)와 법적으로 지정된 국기(오른쪽).
이미지의 색조가 미묘하게 다르지만, 별도로 색조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

5. 한국에서의 일장기



5.1.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외지로서 식민 지배를 받고 있던 한반도에서도 국기로서 사용되었다. 일장기는 조선에서 거행된 여러 국가적인 행사에서 게양되었으며, 일본에 대한 애국심의 상징으로서 보급・교육되었고, 일장기를 바라보며 기미가요를 불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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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학교 조선어독본 권2 1장-3장. 1936년. 국립국어원 소장.

제일 우리국기

하나, 빨간 것은 용기를 그려낸 빛. 흰 것은 정의를 가르친 빛. 두 가지 빛으로 나뉘어진 우리나라 국기가 장하구나.

둘, 빨간 것은 떠오르는 아침해의 빛, 흰 것은 거품지는 바다의 빛, 넓고 넓은 천하를 다 비치면서 나라 위엄 보이는 국기의 빛.

셋, 아아 우리 국기 가는 데마다 적병은 쓰러지네, 풀대와 같이. 아아 우리 국기 휘날리는 곳. 용사는 죽는구나, 빙긋 웃으며.

넷, 항상 진보하여 동요하지 않는, 빛나는 역사 가진 우리나라를 국기 그늘에서 생각할 때 뜨거운 피가 뛰는구나.

다섯, 거울처럼 맑게 개인 하늘에 높이 너풀거리는 우리 국기. 씩씩한 기운을 드날리면서 막 돋은 아침해같이 아름답구나.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 벌어졌다는 일장기 말소 사건에서 동아일보[8], 조선중앙일보가 마라토너 손기정 사진의 일장기 부분을 하얀색으로 덧칠하여 삭제했다고, 총독부가 동아일보를 무기정간 처분을 했다.
8.15 광복 때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려 했는데, 오랫동안 금지된 탓에 태극기를 대량생산할 수가 없었다. 그 때문에 할 수 없이 남아돌고 쓸모없게 돼버린(…) 일장기들을 모아 검은 4괘를 그리고 빨간 동그라미 아랫부분에 파란색을 덧칠하여 태극기로 바꾸기도 했다. 파란색 칠하고 4괘를 제대로 그리면 다행이고, 파란색이 없어서 먹물로 아래만 가리고 태극기라고 우기기도 했다.[9]

5.2. 현재


광복 이후 반일감정이 극심했을 때에는 상당시간 지금의 욱일기 이상으로 한국인들에게 극심히 혐오받았다.[10] 한일외교 정상화 이전인 1960년에는 일본 외무대신이 방한하여 호텔에 일장기가 걸리자 한 청년이 떼어내려고 한 사건이 있었고# 한국에서 국가대표 축구 경기가 개최될 때 정부에서 일장기를 걸고 기미가요를 연주하는 모습은 두고볼 수 없다고 거부하는 해프닝까지 일어났다.# 한일기본조약이 체결된 1965년에도 일본 대표단과 함께 일장기가 대놓고 들어오는 걸 보고 충격받은 국민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이처럼 일장기에 반감이 극심했지만, 80년대에 일본 나카소네 총리가 방한하고 전두환이 방일할 때쯤 되어서야 그나마 진정되었다.
시대가 흐르면서 젊은 세대 사이에선 일장기를 혐오하는 감정은 많이 사라졌지만, 딱히 긍정적으로 변한 것도 아니며 그럴 일은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인이 아닌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특별한 이유 없이 일장기가 부착된 의류 등을 입고 다니면 주위에서 불편한 시선으로 쳐다 볼 확률이 높다. 꼭 의류가 아니더라도 악세사리라도 마찬가지.[11] 그래도 공식적인 일장기 사용에 관해서는 일장기는 군기인 욱일기와는 달리 딱히 군국주의적인 의미도 없고 일본을 상징하는 엄연한 국기이기 때문에 욱일기보다는 훨씬 반감이 적다.
간혹 가다 욱일기를 일장기로 잘못 부르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둘은 같은 나라에서 쓰인다는 것을 제외하면 완전히 다른 깃발이므로 명칭에 혼란을 겪지 말도록하자.

6. 번안


현재 한국에서 일본 문화 대부분을 거의 받아들이긴 하지만,[12] 각종 일본 관련 매체에선 수정되기도 한다. 보통 번안할 때 백기나 일장기에 파란색을 덧칠하고 건곤감리 4괘를 더해서 태극기로 편집해 내보낸다.
육가네 6쌍둥이하타보(한국명 공백기)의 머리에 있는 일장기의 붉은 을 지워서 백기로 만들었다. 또한 학교 운동회 에피소드에선 일장기를 태극기로 수정해 내보냈다.
중2병이라도 사랑이 하고 싶어!의 애니맥스 더빙판에서는 입학식 때 달린 일장기를 아예 백기로 처리하였다.
캡틴 츠바사에서는 <날아라 캡틴>시절과 <캡틴 쯔바사> 시절 2가지로 나뉜다.
  • <날아라 캡틴>이라는 제목으로 나오던 시절에는 배경이 대한민국으로 로컬라이징되었고, 작중 주인공의 국가대표팀인 U16 일본 대표팀은 당연히 대한민국 대표팀으로 수정되어야 했으므로, 가슴의 일장기를 태극기로 수정하였다.
  • 월드유스 편부터는 아이큐점프에서 <캡틴 쯔바사>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는데, 이때는 주인공들이 전부 일본 원판 본명으로 나오며 주인공 팀인 일본 청소년 대표팀도 그대로 등장하지만, 작중에서는 절대 "일본 대표팀"이라 표현하지 않고[13] "대표 팀"[14]이라고 에둘러서 표현하며, 일장기는 텔스타 스타일의 축구공으로 덧칠하는 매우 참신한(...) 편집을 한다.

7. 기타


  • 백괴사전에는 일장기는 훌륭한 연료 겸 식량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일본판 백괴사전인 안사이쿠로페디아에도 일장기는 식용이라고 드립친다.(...)[15]
  • 단순한 디자인을 두고 일본 내에서도 말이 좀 있는 듯하다. 이어령은 저서 '축소지향의 일본인'에서 비평가 야마자키 마사카즈(山崎正和)의 다음과 같은 말을 옮기며 일본의 무(無)이념주의적 성향을 지적한다. "미국 국기에는 의미와 주장이 있어요. 이미 국기가 합중국이라는 나라의 본질을 말하고 있지요. 프랑스 국기에는 자유, 평등, 박애라고 씌어 있어요. 소련 국기에는 인민과 피라고 쓰여 있는데, 일본 국기에는 아무것도 안 쓰여 있어요. '해님'이란 것은 국가 형성 이전의 민족에게나 존경할 가치가 있는 것이지, 이런 것을 종이에 그려서 내거는 국가는 아무 주장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 미드웨이 해전 당시 항공모함 아카기, 소류, 히류는 비행갑판에 자랑스럽게 일장기의 붉은 동그라미를 그렸는데, 미국 폭격기들은 붉은 동그라미에 집중적으로 폭격을 퍼부었다고 한다.[16] 전후 인터뷰에 의하면 거대한 과녁(Bull's Eye)처럼 보였다고 한다. 망망대해에 새빨갛고 거대한 동그라미가 있으니 그럴 수밖에(...). 사실은 전투기 조종사들이 항공모함을 찾지 못해 바다에 불시착하는 일이 없도록 붉은 원을 그려놨다지만 그게 자기네들한테만 보일까(...). 항공자위대라운델도 일장기 모양인데 저시인성판의 위장효과가 굉장해서 눈에 잘 안띈다. 그래서인지 민간에 보일때는 원색으로 그려놓는 경우가 많다.
초딩 입맛하면 알려진 일본의 패밀리 레스토랑 어린이 세트(おこさまランチ)의 필수요소 중 하나가 볶음밥 위에 꽂은 일장기.

7.1. 일장기와 비슷한 국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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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와 비슷한 국기로 방글라데시 국기가 있는데 방글라데시의 국기는 일장기와는 상관없고[17] 빨간 원이 살짝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방글라데시의 청년과 벵골의 푸른 지방, 그리고 이슬람을 상징하는 것이자 피로 싸워서 독립을 쟁취하고 성과를 이룬 방글라데시 민족의 결의를 상징한 것으로 한때는 빨간 원안에 금색으로 방글라데시 지도가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이 지도를 나중에 없애자 바탕이 초록색인 점을 제외하면 일장기와 비슷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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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우의 국기도 일장기와 비슷하다. 일본과 달리 파란 바탕에 있는 노란 원은 해가 아니라 달이다. 위의 방글라데시 국기처럼 원이 약간 왼쪽에 치우쳐 있다. 이것도 일장기와는 상관관계가 없다. 하지만 팔라우의 근현대사에서 일본의 영향력이 컸고 지금도 친일 성향을 띄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 주목하는 일본 대단해 방송에서는 일장기 영향 취급한다.

[1] 1999년 국기 및 국가에 관한 법률 제정.[2] 일본 해군이 욱일기를 사용한 때는 1889년부터이다.[3] 이와 비슷하게 독일 나치시절 패망 후 나치정당의 상징이 였던 하겐크로이즈와 관련된 정치세력은 해체했지만, 일본군을 해체했던 일본과 다르게 독일국방군은 상징이던 십자가를 유지하며 동독 서독군으로 나뉘었을 뿐 해체되지 않았다.[4] 일교조, 한국 전교조를 생각하면 된다.[5] 맛의 달인의 작가 카리야 테츠가 저서 일본인과 천황에서 이 당시 정황과 관련자들의 발언을 설명하였다.[6] 1999년 전후로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사용되는 일장기의 변화는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7] 정확히는 국기 가로 길이의 1/100만큼. 아마 원체 디자인이 단순해서 어떻게든 좌우를 명확히 하려고 한 듯...[8] 동아일보 미술기자가 한 일이었다.[9] 진관사에 독립운동 관련 유물로 이러한 태극기가 있다. 수십 년 뒤 일본 만화 해적판을 로컬라이징할 때에도 이 수법을 사용하였다.[10]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광복 후 50년간 한국인들에게 욱일기의 존재감은 없다시피 했다. 일본 문화개방도 국민의 정부 때에야 실현되었으니 광복 이후 1996년에 해상자위대 함정이 부산항에 입항하기 전까지는 한국인들이 '공식적으로' 욱일기를 접할 기회가 전혀 없었기도 하다. 욱일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일제강점기에도 민간 조선인들이 욱일기를 접할 일은 적은 편이였다. 당연히 징용, 징병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제외하고. 실제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에 '욱일기'나 '욱일승천기'라는 단어가 들어간 광복 이후 90년대 이전 기사는 몇 개 없다.[11] 누군가가 길에서 일장기를 펄럭거린다고 상상해 보자. 나 , 러시아 국기, 몽골 국기, 청천백일만지홍기 등 다른 외국의 국기들을 펄럭거리면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받을 수 있겠지만 일장기를 사용하는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쉽다. 그러나 성조기의 경우 박사모 등 극우 집단이 벌이는 집회에서 쓰였다는 점으로 인해, 오성홍기의 경우 2010년대 들어 극심해지고 있는 반중 감정 때문에 일장기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꽤나 불편해하는 편.[12] 코드 기어스 반역의 를르슈의 경우, 아예 브리타니아 제국이 일본을 침략하고 일본이 독립군을 일으킨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일장기의 정의로운 등장(...)이 필수불가결했다. 물론 이 세계의 일본은 현실 일본과 달리 전쟁을 일으킨 적도 없고 오히려 브리타니아에게 근 100년간 털리던 피해자이기 때문에 일장기가 자랑스럽게 내걸려도 할 말은 없다.[13] 스코어보드 등에서는 일본으로 그대로 표기한다.[14] 반드시 띄어쓰기 포함하여 "대표 팀"으로 표현[15] 안사이쿠로페디아의 경우에는 일제 시절부터 대중적인 도시락이었던 히노마루 도시락에 빗대어 말한 듯 하다. 직사각형 도시락 그릇에 밥만 한 가득 푸고 정가운데에 우메보시#s-1.1를 하나 박아넣은 것이라 생긴 모습이 영락없는 일장기.[16] 이것은 사실 미군도 마찬가지라, 전쟁 말기 독일군도 미군의 흰 별 마크를 조준점으로 활용했다고. [17] 현 총리 셰이크 하시나가 '아버지(방글라데시의 주요 독립운동가임)가 일장기를 참고해 자국 국기를 만들었다.'는 말을 한 적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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