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술

 

1. 개요
2. 역사
3. 분류
4. 음주문화
4.1. 음주예절
5. 8대 명주?
6.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에서 생산되는 의 총칭.
백주, 황주 등 전통적인 주류에서부터 근대화 이후 발전한 맥주, 포도주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국술이라고 할 때는 백주와 황주를 일컽는다.[1] 물론 이 두가지 안에서만 오래된 술만 수십종, 2014년 현재까지 만들어진 술만 수백종을 우습게 넘긴다.[2]

2. 역사


중국 고서에는 술의 기원이라 하는 몇 가지 전설이 있다.
첫 번째는 의적(儀狄)이라는 사람의 일이다. 하나라#s-1 우 임금 시절에 의적이 처음으로 술을 빚자 우 임금에게 바쳤다. 우는 술을 정말 맛있게 마셨지만 술을 끊고 "후세에 반드시 술 때문에 나라를 망칠 자가 있으리라." 하고 우려하며 의적을 멀리하였다고 한다. 의적 이전에도 술 만드는 기술이 있었으되 의적이 이를 정리했다고도 한다.
두 번째는 두강(杜康)이라는 사람의 일이다. 두강이 어느날 밥을 먹다 남기자 주먹밥처럼 뭉쳐 뽕나무에 난 구멍에 넣어두었다. 두강이 이 일을 깜빡 잊었는데 나중에 뽕나무 근처에 가보니 처음 보는 냄새가 나서 찾아보니, 자기가 넣었던 밥이 발효되어 향기로운 술이 되었다 한다.
그 외에도 황제(黃帝)가 만들었다는 둥 원숭이가 만들었다는 둥 서로 다른 전설이 전한다.
그러나 역사학적으로 말하면, 1983년 섬서성 미현 양가촌에서 신석기 시대 앙소문화의 유물로 알려진 술 전용도기가 출토된 것으로 보아 지금부터 대략 6천 년 전부터 이미 술을 빚었다고 추정된다. 시대를 거치며 술 용기, 종류들이 다양해지고 지금으로부터 3천~4천년 전 상나라 무렵에 이미 중국에서는 곡물을 이용한 술을 빚었다.
중국이 인류문명 발상지 중 하나이면서 초기농경사회를 시작한 곳이니만큼, 중국 술의 역사도 매우 깊다. 원시시대에 이미 과일 등이 고인 물에 의해 자연발효된 술을 마셨다고 추정한다. 발굴된 유물에서도 음식 먹는 데 쓰는 식기 말고도 무속 등에 사용됨직한 제사도구들도 같이 출토되는 것으로 추정하면, 이미 술 혹은 이와 비슷한 음료를 마셨으리라 추정한다. 사서에 나오는 바로는 최소 4천 년 전부터 시작되며, 중국의 나라 별로 대략적인 술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
  • 역사 이후로 기원전 2천년경 중국 하나라 시대[3]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내용들이 역사책에 나오며 상나라때는 이미 주지육림을 만들어 놀 정도로[4] 주조기술과 음주문화가 발전했다. 단, 이 때 까지는 일반 백성들까지 널리 마시는 그런 술이 아니라 제례용 혹은 왕후장상들이 주로 마시는 음료 정도의 개념이 강하다.
  • 주나라에 와서는 아예 주례(酒禮)와 주덕(酒德)이라는 책에서 술을 제사 지내는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하는 책이 나오기도 하며 본격적으로 제례문화가 정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로 넘어가는 애매한 시기[5]인지라 아직 농경사회가 본격적으로 발달하지 못하다보니 기본적으로 식량으로 쓸 곡물도 간당간당한 판에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기에는 힘들었다고 추정된다. 월나라 구천이 오나라 레이드뛰러갈 때 군사들과 나눠마셨다는 황주는 쌀과 좁쌀을 원료로 만들며, 이때 본격적으로 발전한 술로 여겨진다. 월나라의 본진이 바로 황주로 유명한 그 사오싱(绍兴, 소흥)이다.
  •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서면서 본격 철기시대로 넘어오게되어 농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성이 향상되었으며, 당연하게도 술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했다. 논어, 시경, 예기 등에서 술과 술에 대한 문헌들이 다양하게 나오며, 예전에 사치품으로 재례용으로 사용하거나 귀족들이나 제대로 즐겼던 술을 조금 더 다양한 계층에서 즐길 수 있게 된 걸로 보인다.
  • 진나라에와서는 양식의 소비를 막기 위해 국가에서 금주 정책을 정할 정도로 술을 마시는 문화가 성행했으며 한나라#s-1대에 이르러서는 일상적으로 술을 마시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한나라의 명의 장중경(张仲景)이 술병 고치기로 유명했다고 하니 말 다했다. 기본적으로 제례용으로 사용하였으며 본격적으로 음주문화가 발전하게 되었다. 진한시기에는 제례용으로 엄격한 문화를 가졌으나 동한 이후부터는 제례용에서 즐기는 용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 삼국시대에 이르러 주조기술, 주조량, 술의 종류 등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르러서는 술을 금한 진한시대와는 달리 술을 합법적으로 허용하여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술을 빚었다. 이에 따라 양조장이 발전하고 주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국가의 주요한 재원으로 쓰였다. 술이 본격적으로 민간에 스며든 시기이기도 하다.
  • 수나라, 당나라대에 이르러서는 시문학 등은 술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으며 각종 예술분야에도 방대하게 퍼져 식사할 때 반주로 드는 양식이이 이 때 민간에 완전히 정착되었다.
  • 송나라에서 금나라에 이르기까지 각지에 주점이 생길 정도로 양조업과 술 판매가 성행했다. 송나라때 이르러 술의 명산지, 명주의 품명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금나라때는 도수가 높은 술을 많이 마시는 풍습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 때 백주와 유사한 형태의 증류주가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 명나라 때는 도처에서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이 덕택(?)에 백성들이 중국 여기저기 골고루 흩어지는 현상이 발생하여 중국 도처에서 다양한 술이 만들어지게 된다. 이러한 인프라 형성(?)에 의해 청나라 때는 이미 술이 일상생활과 뗄래야 뗄 수 없는 문화로 정착되었다. 설에는 자오바이주(椒柏酒, 초백주), 보름에는 톈창주(填仓酒, 전창주), 단오에는 창푸주(菖蒲酒, 창포주), 추석에는 구이화주(桂花酒 계화주), 중양절에는 주화주(菊花酒 국화주)등 명절이나 주요 절기에는 각각의 명절에 맞는 술을 마시는 것이 당연시 되었다. 귀족들은 주로 황주를 마셨고, 일반 백성들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도수가 높은 사오주(烧酒, 백주의 다른 이름)를 즐겨마셨다고 한다.
  • 청말 제국주의 열강들이 한창 침략하던 시절에 독일에서부터 맥주를 만드는 기술이 들어와 그때부터 세계구급 필스너인 칭다오 맥주를 생산하게 되었고 유럽의 전유물처럼 느껴지는 포도주 역시 이 시기부터 슬슬 만들기 시작했다. 현대에 와서는 최소 800년 이상 연속생산된 마오타이에서부터 대략 이천, 얼추 삼천년 전통의 사오싱(绍兴, 소흥) 황주등 전통주에서부터 이를 현대적으로 개량한 각종 술들이 생산되고 있다.

3. 분류


중국 술은 기본적으로 그 색상을 기준으로 두 가지로 분류하는 구분방법을 사용한다. 중국 술을 대표하는 두 가지 술인 쓰촨성(四川省, 사천성), 산시성(山西省, 섬서성) 일대에서 수수(高粱, 고량)를 주원료로 한 증류주인 백주(白酒, 바이주)[6]와 하남, 특히 저장성(浙江省) 일대에서 쌀 혹은 조를 주원료로한 발효숙성주인 황주(黄酒)[7] 두 가지로 나뉜다.
물론 이 외에도 예전부터 내려오든 과실주나 근대에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한 포도주[8]와 맥주(啤酒, 피주), 원료에 따른 구분인 고량주(高粱酒), 미주(米酒), 약주(药酒) 등 매우 다양한 술과 그 술의 구분방법이 존재한다.

3.1. 백주(白酒)


백주(白酒, 바이주)는 소주(烧酒, 사오주), 노백간(老白干, 라오바이간) 등으로 불리우는 중국 전통 증류주의 일종으로 전분 혹은 당분을 갖는 곡물로 밑술을 빚거나 발효하여 이를 증류하여 얻은 술의 총칭이다. 곡물은 수수(高粱) 단독 혹은 이에 다른 곡물을 섞어서 만들며,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고량주로 흔히 알려져있다.[9]
색상은 증류주인 관계로 무색투명하며, 장기보관을 한다고 하더라도 주로 도자기 재질의 단지에 보관을 하여 오크 등 나무통에 보관하는 위스키브랜디같은 착색이나 착향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백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향은 술을 담그는 양조장에서 사용한 누룩, 밑술을 빚는 방식, 증류하는 방식 등에 따라 술에 남아있는 에스테르 등의 화학물질 종류와 함량이 달라지며, 이에 의해 백주 특유의 장향(酱香)에서부터 농향(浓香)의 독특한 향이 나는 계열에서부터 청향(清香), 미향(米香) 등 향이 부드럽거나 보드카에 가까울 정도로 향이 없는 계열들도 있다.
알코올도수는 기본이 증류주인 관계로 32도에서 시작하며 일반적으로 40도 내외, 최고 70도까지도 올라가며, 따라서 목넘김도 매우 부드럽고 순한계열부터 혓바닥에서 위장까지 훝으면 타들어가는 것 까지 매우 다양하다. 증류주의 특징인 높은 알코올 도수로 인해 마신 양에 비해 취하는 속도가 느리지만 어느순간 훅 가며, 역시 높은 알코올 도수와 적은 불순물 함량으로 인해 숙취가 거의 없이 깔끔한 뒷느낌을 갖는다.
상세한 사항은 백주 문서로.

3.2. 황주(黃酒)


백주와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양조주. 기본적으로는 청주사케와 유사한 양조주의 주조방식을 사용하나 사용된 원료와 발효된 술을 압착으로 밑술을 뽑을 때 불순물의 함량에 의해서 청주나 사케같은 맑은 미황색이 아니라 다소 탁한 적황색에서 맑긴 하지만 황색이 강하게 나타나는 술이다. 해서 황주(黄酒, 황주)라고 부른다.
농경사회를 시작하고부터 이나 좁쌀 등으로 빚어온 걸로 추정되며 발효로 밑술을 만들고 띄워서 증류까지 해야되는 백주와는 달리 현대에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을 정도로 양조공정 자체가 크게 복잡하지 않으므로 대략 짧게는 3,000년, 길게는 4,000년 정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중국을 대표하는 술이다.[10]
쌀 농사를 주로 하는 중국 하남지방에서 발달한 술로 쌀이나 좁쌀을 원료로 하여 발효한 후 압착해서 밑술을 뽑고, 이 밑술을 장기숙성시켜 만든다. 알코올 함량은 14~20% 수준으로 일반적인 양조주와 같으며 막걸리와 비스므리하게 탁한 상태로 불그스르누르므르끼리한 색을 띄는 것에서부터 거의 투명할 정도로 맑은 황색을 띄는 것 까지 다양한 종류가 존재한다. 긴 역사와 다양한 종류에 걸맞게 막걸리 스타일의 걸쭉하고 과일향이 진한 것에서부터 청주와 비슷한 수준으로 맑은 향과 옅은 감리를 갖는것 까지 각양각색의 특성을 갖고 있다. 곡물을 발효시켜 거칠게 내린 양조주인 관계로 필수아미노산 등 영양성분을 풍부하게 갖고 있는 술이기도 하다.
역시 다양한 종류가 있는 관계로 각 종류에 알맞는 음주방법으로 마시나 일반적으로는 중탕상태로 가열하여 50~60도 정도로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기본이다. 이 때 생강이나 다른 약재를 소량 첨가하여 향이나 효능을 올리기도 한다.
상세한 사항은 황주(술) 문서로.

4. 음주문화


기본적으로 제례용으로 사용하던 것에서부터 발전한 관계로 음주방법이나 문화 등이 까다로웠으나 명대 이후 민간으로 널리 보급되면서부터 청나라 말기까지 식사를 하면서 같이 먹는 반주로써의 음주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따라서 술을 마실 때는 별도로 술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식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마신다. 그리고 어차피 중국식 식탁에서는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자기 분량의 밥, 국, 반찬을 따로 주는 것이 아니라 넓은 식탁이나 회전식 식탁에 여러가지 찬을 올려놓고 자기 접시나 그릇에 덜어서 먹는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반찬이 바로 안주이기도 하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반주문화이며 주연을 하더라도 식사를 겸한 주연을 하게 된다.[11] 점심식사를 할 때 부터 마시는 경우도 흔하며 외식을 할 경우에 저녁식사에는 당연히 술을 곁들인다. 회식 등 주연을 할 경우 5~6시 경 시작되며, 길어도 8시 이전에 마치기 때문에 술자리가 길어진다고 하더라도 의외로 일찍 집으로 돌아가서 쉴수 있기 때문에 다음날 일을 할 때도 큰 지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물론 뭘 어떻게 마시는가가 중요하긴 하다.
저녁식사 이후에는 따로 술을 찾는 경우는 드물지만, 저녁, 특히 여름철에는 양꼬치#s-3.1와 함께 맥주를 마시는 경우가 꽤 된다. 이 때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갈증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가볍게 한두병 정도를 마신다.

4.1. 음주예절


기본적으로 반주이기 때문에 식사예절을 따른다. 주연을 시작할 때 건배(乾杯, 간체:干杯 깐뻬이)를 하며, 이 때 주인이 손님들에게 간단히 주연 혹은 모임의 이유를 말하거나 우리나라와 같이 "XXX를 위하여" 등과 같은 표현을 하기도 한다. 생일과 같은 특별한 주연에서는 손님이 주인의 무병장수 등을 기원하며 건배를 제안하기도 한다. 보다 상세한 사항은 아래와 같다.
  • 건배
연회를 시작할 때 전체 건배를 한다. 건배는 말 그대로 잔을 비워야 되며, 우리나라처럼 술을 잘 못해서 입만 대고 뗀다든가 하는 것은 결례에 속한다. 술을 잘 못 마신다면 잔을 가득 채우지 않아도 상관없고, 이 경우 미리 주인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이야기를 해 두면 처음 술을 따뤄 줄 때 부터 적게 따른다. 처음부터 술을 아예 못마신다거나 운전을 해야하는 경우,[12]종교적인 이유, 여성의 경우 출산, 수유 등의 이유가 있거나 지병 등의 이유로 술을 못할 경우 역시 주인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두면 술 대신 차나 음료수로 대신할 수 있다.
첫 건배 이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각자 알아서 마시며, 잔은 자작도 상관없다. 자연스럽게 술과 음식을 즐기는 와중에 옆 사람과 건배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분위기를 타고 술을 돌리며[13] 건배를 권하기도 한다. 이 때 역시 잔을 비워야 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설명한 대로 이유가 있을 경우 음료수로 대체한다든가 하는 것이 가능하다. 상당히 합리적으로 술을 마신다.
주연에 지각을 했다든지, 하여튼 뭔가 구실이 생기면 벌주삼배가 날아오기도 한다. 말 그대로 벌로써 건배를 석잔 하는 것인데, 그 주연의 메인이 되는 술이 백주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나 건배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자주 하지도 않을 뿐더러 강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강권하는 것이 오히려 예의에 어긋나는 짓이다.
건배할 때 우리나라와 같이 술잔을 부딪치면서 하는 것이 기본이나 큰 식탁의 경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식탁을 손가락 혹은 술잔으로 가볍게 두번 톡톡 두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건배를 할 때에는 건배 제안자나 손님이 따로 일어서지 않으며 앉은 채로 건배를 한다. 가끔 주인이 일어서서 건배제안을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 첨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자신과 상대방의 잔을 항상 채워두는 것이 예의다. 술을 마실 때도 대부분 건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음식과 함께 즐기기 때문에 우리나라식으로 술 반잔 비우고 끝까지 버틴다 이런게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잔에서 술이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상하좌우 가리지 않고 너도나도 첨잔을 해 준다. 특히 술이 약하거나 다른 이유로 음료수 등을 타서 마시는 경우 상대방이 이 내용을 모르고 계속 첨잔을 해버리면 점점 원액에 가까운 술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시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건배제의라도 날아온다면 그냥 훅간다.
첨잔 더 받지 않을 때는 술잔을 손으로 살짝 가린다. 술을 권하는 상대방에게 오늘 많이 취했다, 천천히 마시겠다 한마디 해 주는게 예의.
  • 자작
첨잔을 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술을 따라 주는 것이 기본이지만, 자신의 술을 직접 따라마시는 것도 전혀 상관 없다. 대책없이 여기저기서 수시로 날아오는 첨잔을 막는 기본 스킬에 해당하기도 한다.
  • 술을 사양할 때
상기한 대로 미리 사양하는 이유를 밝혀주면 된다. 억지로 술을 권하지도 않을 뿐더러 강권하는 것은 오히려 예의가 아니기도 하다. 술을 마시는 도중에 사양하는 방법 역시 간단히 많이 마셨다 정도로 설명해주면 된다. 상대방이 건배를 제안해도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은 선에서 오늘 마신게 꽤 되니깐 나 반잔만 마실께 등으로 협상(?)을 하는게 가능하며 아주그냥 먹고죽자고 덤비지 않는 이상 대체로 받아들인다.
  • 참고사항
    • 음식을 남기는 풍습은 많이 없어진 편이지만,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해야 주인이 손님에게 술을 충분히 대접한 것이라는 풍습은 여전해서 손님을 반드시라고 할만큼 크게 취하게 잔이 계속 날아온다. 그런데 술먹고 개되는 놈은 그냥 대놓고 개로 본다(…) 술을 마실때 혹은 마시고 나서 절제할 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듯. 중국에서 술자리를 자주 갖게 된다면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도록 적당히 사양할 줄 아는 테크닉은 필수다.
    • 남녀의 구분 예전에는 꽤 엄격할 정도로 있었지만, 공산화가 진행되고 나서 그딴거 없다.[14] 따라서 술자리에서 남녀가 동등한 자격으로 술을 마시며 특별한 관계가 아닌 남녀간에도 자연스럽게 술을 서로 따른다. 물론 시커먼 남자가 따르는 술 보다는 젊은 여자가 따라 주는 것을 좋아하긴 한다. 물론 여자 입장에서도 젊은 남자가 따르는 술이 더 달긴 하다.
    • 중국에서 술을 마실 기회가 있을 때 기본적으로는 이런 중국식 예절을 따르지만, 우리나라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상해 지역이나 요동, 청도 쪽에서는 한국식 식당이나 주점 특히 노래방들은 흔한 편이며 우리나라식으로 마시는 곳들도 꽤 있다. 이런 관계로 그 지역은 중국인들이라 할지라도 우리나라의 음주풍습에 대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이해를 하고 있는 이들이 많이 있다.
  • 예절은 아니지만 빽이 있는 게 아니라면 심하게 술주정 부리지 말자. 요즘은 덜해졌다고 하나 중화인민공화국 공안부의 위용은 우는아이도 그치게 했던 순사 수준이기 때문. 혹여나 공안에 신고당하면 굉장히 골치 아파지는 상황이 벌어진다.
식탁예절은 중국 요리#s-6 문서로.

5. 8대 명주?


가끔 마오타이가 8대명주니, 어느 술은 8대 명주에 들어가니 마니 하는 식의 수식어가 붙어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이 8대 명주라는 이야기는 '전국평주회의'라고 해서 전국 술 콘테스트에서 수상했던 8개 브랜드를 뽑았던 것이다. 즉, 특정 주종이 아니라, 특정 브랜드, 특정 주도가의 술이다. 마오타이라면 수상한 것은 '비천표' 마오타이가 뽑힌 것이다. 더구나, 이 대회는 첫번째 대회였고, 그 년도는 무려 1952년. 이후 수차례의 전국평주회의가 있었고, 많을 때는 한번에 '''26개'''가 선출된 적도 있기 때문에 '8대'라는 평도 어울리지 않다. 각 대회에서 선출된 술들을 다룬 블로그 글을 링크.
그런데 해당 블로그의 관련 2번째 글에서도 언급되지만, 모든 술을 다루었던 것은 1984년이 마지막이고, 전국대회는 '''백주만''' 다루었던 1989년이 마지막이다. 즉, 이 이후 시기에 빛을 본 술들은 전부 언급이 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언급되는 이야기지만, 저기 이름을 올리는 것이 가지는 선전효과 등을 고려하면 그에 따른 암투와 로비 등의 문제도 있다. 1회 대회 때부터 이미 공산정권이 들어선 이후에 선출되었기 때문에 정치적 문제를 배제할 수 없는 일이고, 자본주의 성향이 강해진 뒤로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전국 대회 자체가 열리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인 것.
때문에 '00대 명주'라는 수식어는 '어느정도는 보장되지만' 그렇다고 최고라고 확언은 할 수 없는, 정도가 적당한 평가일 것이다.

6. 관련 문서


  • 증류주
  • 중국술
    • 맥주
      • 빙천 맥주 (氷川啤酒, BIngchuan Beer)
      • 설화 맥주(雪花啤酒, Snow)
      • 칭다오 맥주(青岛啤酒, Tsingtao)
      • 하얼빈 맥주(哈尔滨啤酒, Harbin)
    • 백주(白酒, 바이주) / 고량주(高粱酒, 가오량주)
      • 둥베이바이주(东北白酒, 동북백주)
      • 루저우라오자오(泸州老窖, 노주로교)
      • 마오타이(茅台酒 모태주)
      • 산둥바이주(山东白酒, 산동백주)
      • 이과두주(二锅头酒 ,얼궈터우주)
      • 우량예(五粮液)
      • 죽엽청(竹叶青酒, 주예칭주)
      • 젠난춘(剑南春, 검남춘)
      • 펀주(汾酒, 분주)
    • 황주(술)(黄酒)
      • 광저우전주훙주(广州珍珠红酒, 광주진주홍주)
      • 란링메이주(兰陵美酒, 난릉미주)
      • 다롄황주(大连黄酒, 대련황주)
      • 베이쭝황주(北宗黄酒, 북종황주)
      • 사오싱황주(绍兴黄酒, 소흥황주)
      • 사오싱자판주(绍兴加饭酒, 소흥가반주)
      • 산둥지모라오주(山东即墨老酒, 산동즉묵노주)
      • 상하이라오주(上海老酒, 상해노주)
      • 우시후이취안주(无锡惠泉酒, 무석혜천주)
      • 장시주장펑강주(江西九江封缸酒, 강서구강봉항주)
      • 장쑤단양펑강주(江苏丹阳封缸酒, 강소단양봉항주)
      • 친양헤이미주(秦洋黑迷酒, 진양흑미주)
      • 푸젠라오주(福建老酒, 복건노주)

[1] 맥주의 경우 칭따오와 하얼빈은 중국 술이라 불러도 될 만큼 나름 역사와 특색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2] 참고로 우리나라도 주세령이전과 한국정부에서 강제로 한지역당 한술만 만들어 팔라고 정해주기전에는 수백가지가 넘는 종류의 전통주가 있었다.[3] 사마천 사기 세본(世本)두강조주(杜康造酒)에 따르면 杜康作酒。少康作秫酒(두강이 술을 만들었다. 소강이 수수술을 만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소강(少康)은 하나라 5대 왕으로 두강(杜康)의 또다른 이름이다.[4] 물론 이후 주왕달기의 운명에 대해서는 각 문서들로 갈 것.[5] 이러한 추정을 하는 이유는 이 때 부터 간장, 막야 등이 만든 간장막야와 같은 전설적인 칼이 등장하기 시작하기 때문. 청동기시대 문서에서 보다시피 철기라고 해도 나온 초기인지라 재강기술도 형편없었고 철재 칼이 그냥 플라즈마 커터처럼 청동기 칼을 싹뚝싹뚝 잘라낸 건 아니였다.(물론 플라즈마 커터도 청동을 그렇게 자를 순 없다. 애초에 플라즈마를 칼처럼 뽑아쓴다고 하더라도 내려치는 칼을 막을 강도 따윈 없는지라(…)) 본격적으로 강철이 제련되기 전까지는 접쇠나 표면경화법 등으로 강도를 올리는 수 말고 없었으며, 일본도#s-5.5 문서에서 보다시피 불과 이삼백년 전까지만해도 녹는 점이 높은 철을 원광에서 쉽게 추출하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함유된 불순물과의 분리가 어려운 점, 침탄의 한계 등 제강기술이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철로 만든 무기의 품질은 현대적인 강철에 비해 형편없었다. 철기시대가 열리기 전까지 발전해온 청동기에 비해 초기 철기의 장점으로는 원료수급이 조금 더 쉬워서 물량으로 발라버린 것으로 추정된다.[6] 수수(高粱) 단독 혹은 다는 곡물과 섞은 술밥으로 밑술을 빚고 증류하여 만든 관계로 술의 색상이 맑고 무색혹은 미황색으로 투명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7] 사용한 원료와 약재, 누룩 등의 영향으로 붉은기가 도는 탁한 황색에서부터 맑은 황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상을 지니고 있다. 일반적으로 누르끼리한 색을 띄고 있으며, 이 때문에 황주로 불리운다. 탁한 정도는 탁주와 동동주 정도라 보면 된다. 유명한 놈으로 사오싱(绍兴) 황주가 있다. 이동네에서 나오는 놈이 그 유명한 여아홍(女儿红).[8] 푸타오주(葡萄酒 포도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백주, 황주와 같은 색상으로 분류하는 방식인 훙주(红酒, 홍주)로 흔히 부른다.[9] 고량주는 거의 수수 단독으로 만든 술을 칭할 때만 주로 사용한다.[10] 최대 6,000년 정도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놈의 술이 진짜 황주였는지, 아니면 그냥 뭐 대충 아무거나 줏어넣고 주무르다보니 나온건지는 알 방도가 없다.[11] 2차, 3차로 자리를 옮겨가면서 마신다든지, 노래방을 찾는 문화는 2000년대 이후 중국이 경제면에서 개방정책을 진행하면서 외국계 자본 및 기업이 유입되며 만들어진 문화로 한국 등 외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보면 된다. 보통 어디 이동하지 않고 그자리에서 뻗을 때까지 마시는 게 기본이다.[12] 중국의 음주문화는 상당히 관대하기 때문에 술을 마신 다음 운전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고 이에 의한 대형사고도 상당히 많이 일어난다. 따라서 음주운전은 매우 강력하게 처벌한다. 음주운전은 혈중알코올농도가 20~80mg/ml인 음주운전(饮酒驾车, 음주가차)와 혈중농도 80mg/ml 이상인 주취운전(醉酒驾车, 취주가차) 딸랑 두 개로 구분하며 얄짤없다. 혈중 알코올농도가 80mg/ml 이하인 음주운전에서는 1,000~2,000위앤의 벌금(2014년 상해 인근 도시 노동자의 소득이 4,000~8,000위앤 선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고액이다)형과 6개월 면허정지. 또다시 걸릴 경우 바로 10일 이하의 구류와 함께 면허가 취소되며, 5년 이내에 면허를 발급받을 수 없다. 영업용 차량 운전자는 5,000위안의 벌금과 15일 이하의 구류, 역시 면허취소와 함께 5년 이내 먼혀 재취득 불가. 교통공무원 등의 경우 사안에 따라 형사책임을 물리고 면허취소 및 10년간 먼허 재취득이 불가능하다. 음주운전으로 중대한 교통사고(혈중알코올농도 200mg/ml 혹은 중상/사망사고)가 발생하였을 때는 사고 상황에 따라 무기징역에서 사형까지 판결되는 중죄다. 면허는 당연히 취소되고 재취득이 불가능하다.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얄짤없다. 정말 잘되봐야 추방이고 어지간하면 중국 법률에 따라 처리된다. 국내 도입이 시급하다.[13] 잔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쓰던 잔을 다른사람에게 권한다든가 그 반대의 경우 역시 예의가 아닌 것으로 본다. 한 명이 술을 들고 다니면서 전체 서빙을 하거나 건배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 직접 술을 들고가서 술을 따른다.[14] 실제로는 어느정도 남녀차별이 남아있긴 하지만 최소한 형식적으로는 남아있지 않으며 기본적으로 노동조건이 동일하다. 그리고 근무환경의 경우 오히려 여자가 훨씬 더 유리하다. 출산 이후 3~4개월동안 유급휴가, 만 24세 이상의 늦은 나이(!)에 출산을 하게되면 보통 1개월 더 쉴 수 있게 해준다. 수유기를 감안하여 1년동안 1시간 늦게 출근하거나 일찍 퇴근하는 것이 노동법상에 보장되어있다. 남자는 부인이 출산하였을 대 보통 10일 정도의 휴가가 보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