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바 롯데 마린즈/역대 선수
1. 개요
치바 롯데 마린즈의 역대 선수 기록들에 대해 서술한 문서이다.
2. 역대 선발투수 로테이션
3. 역대 마무리 투수
- 마무리 투수로 3세이브 이상을 기록한 선수만 기입해 주세요.
- 마무리 직책을 완전히 이임한 경우 취소선을 그어주세요. 또한 오래 전 기록의 경우는 집단 마무리인지 마무리 교체인지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 확인이 가능하다면 틀린 기록은 수정 바랍니다.
- 전문 마무리가 등장하기 이전[1] 기록에는 세이브가 많은 선수를 기록하고는 있지만 마구잡이 등판으로 세이브가 쌓였을 뿐 사실상 마무리가 아닌 경우도 많으니 감안 부탁드립니다.[2] 또한 1974년부터 세이브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에 1974년부터 기록했습니다.
4. 역대 외국인 선수
- USA : 미국
- DOM : 도미니카 공화국
- VEN : 베네수엘라
- KOR : 한국
- PRI : 푸에르토리코
- CUB : 쿠바
- TWN : 대만
- MEX : 멕시코
- BRA : 브라질
- PAN : 파나마
[1] 대충 1980년대 이전.[2] 당장 이 시기 시즌에는 세이브가 기록이 돼있다고 해도 1시즌 팀 전체 세이브가 10~15개인 해도 많다.[3] 선발 위주로 뛰고 마무리로는 종종 보직파괴로 등판했는데도(39경기 17선발 191.2이닝을 기록했다. 9승 12패 13세이브 ERA 2.21.) 이 해 최우수 평균자책과 세이브왕을 기록했다.[4] 나무위키에 항목이 만들어진 짱구 캐릭터 사토 마사오가 아니다.[5] 원래 대만인이었으나 후에 일본으로 귀화한 케이스로 롯데에서는 소 카츠오라는 일본식 독법으로 등록됐다. 5년 연속 10승 달성에 마무리로도 2년 정도 뛰었던 누적기록이 그렇게 대단하지는 않지만 대만 출신 선수로 일본에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던 당시 대만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이었다. 거기다가 이 선수는 대학까지 대만에서 나와서 용병 자격으로 뛰어야 했는데도.(당시 일본프로야구는 지금처럼 용병쿼터가 넓지 않았다. 1군에서 가용할 수 있는 용병이 팀당 2명 수준에 2군 무제한 영입 따위는 물론 없었다.)[6] 롯데 오리온즈 최후의 마무리투수.[7] 메인 마무리는 나리모토였지만 셋업이었던 카와모토도 종종 세이브 요건에 올라와서 10세이브를 거뒀다. 사실상 더블 스토퍼.[8] 메인 마무리는 나리모토였지만 셋업이었던 카와모토도 종종 세이브 요건에 올라와서 10세이브를 거뒀다. 사실상 더블 스토퍼. [9] 당초 마무리였으나 9세이브에 그치고 시즌 중 마무리를 넘겼다.[10] 1998년 대만프로야구에서 준수한 불펜용병으로 뛰다가 시즌 중에 롯데에 입단하여 1999년부터 마무리 용병으로 뛰었으나 2000년 시즌 중 부진해서 마무리를 코바야시에게 넘겼다. 시즌 후 퇴단하고 한화 이글스에서 마무리 용병으로 영입했으나 부진해서 중도퇴출당했다.[11] 원래 마무리 코바야시가 부진하여 중간에 임시 마무리를 맡았다가 다시 코바야시에게 넘겨주었다.[12] 원래 마무리 야부타가 부진하여 중간에 임시 마무리를 맡았다가 다시 야부타에게 넘겨주었다.[13] 니시노가 시즌 후반에 이탈하면서 후반에 한 달 정도 마무리를 맡았다.[14] 니시노 유지가 시즌 중반에 이탈하면서 후반기 마무리를 맡았다.[15] 시즌 중 부진으로 우치 타츠야애게 마무리를 넘겼다.[16] 시즌 중 부진으로 우치 타츠야가 잠깐 2군에 갔을 때 대체 마무리로 뛰었다가 우치가 복귀하자 다시 마무리를 넘겼다.[17] 리두쉬안 같이 국적은 외국이지만 드래프트로 입단하여 일본인 쿼터에 해당하는 선수는 제외.[18] SK 와이번스에 있던 그 호세 페르난데스 맞다.[19] 이름인 쇼트가 일본어로 유격수를 뜻하는 말이다 보니 이 선수가 롯데에서 뛸 때 올스타전 유격수 부문에서 엄청난 표를 받았다고 한다(...). 일본프로야구는 올스타전 투표를 할 때 모든 선수를 포지션 상관없이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단 투수를 타자로 투표하거나 타자를 투수로 투표하는 것은 금지.)[20] 요코하마에서 8년을 뛴 장수 외국인 용병. 2년의 공백기를 갖고 롯데에 복귀했으나 흑역사가 되었다.[21] 스프링캠프 도중 야구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면서 방출을 요구했다.[22] 롯데 시절에 이승엽은 후쿠우라 카즈야에게 밀려 좌익수를 자주 봤다.[23]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영입되어 한국에 입국까지 하였으나 부적격 선수임이 밝혀져서 퇴출되었다. 그 당시에는 직전 시즌과 2년 전 시즌에 메이저리그 확장 로스터에 등록이 되어 있는 선수는 용병으로 데려오면 안 되는데 세라피니는 2년 전에 메이저리그 확장 로스터에 들어 있었기 때문.[24] 롯데 시절에 이승엽은 후쿠우라 카즈야에게 밀려 좌익수를 자주 봤다.[25] 2002년 한화 이글스에 영입되어 한국에 입국까지 하였으나 부적격 선수임이 밝혀져서 퇴출되었다. 그 당시에는 직전 시즌과 2년 전 시즌에 메이저리그 확장 로스터에 등록이 되어 있는 선수는 용병으로 데려오면 안 되는데 세라피니는 2년 전에 메이저리그 확장 로스터에 들어 있었기 때문.[26] 일본을 떠난 후 두산에서 뛰게 된다. 근데 거기선 더 못해서 광속퇴출.[27] 2013년 35세의 젊은 나이로 사망.[28] 일본을 떠난 후 두산에서 뛰게 된다. 근데 거기선 더 못해서 광속퇴출.[29] 대만 복귀 반 시즌만에 승부조작으로 제명당해 흑역사화.[30] 대만 복귀 반 시즌만에 승부조작으로 제명당해 흑역사화.[31] 쿠바에서 귀화.[32] 입단 한 달만에 지배 등록이 되긴 했다.[33] 사실 투포수 빼고 다 가능한 만능 유틸이었다. 주 포지션이 저 두 개. [34] 쿠바에서 귀화.[35] 퇴단할 때까지 지배 등록되지 않았다.[36] 부상으로 인해 한 경기도 뛰지 못하고 5월에 방출당했다.[37] 사실 계약기간이 남아 있었는데 본인이 공인구 교체로 인한 부진과 도호쿠 대지진으로 인한 심리적 불안감으로 인해 팀에 방출을 요구했다.[38] 사실상 시즌 중 중도퇴단한 김태균의 대체 용병이다. 일본프로야구는 용병이 무제한이라 대체 영입이라는 표현은 없다.[39] 이후 2018년 12월 6일 베네수엘라 윈터리그를 마치고 차량으로 이동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같은 차에 타고 있던 LA 에인절스에서 뛰었던 루이스 발부에나도 사망. 해당 차를 운전했던 카를로스 리베로(2017년 야쿠르트에서 뛰었다.)는 중상을 입었지만 목숨은 건졌다.[40] 퇴단할 때까지 지배 등록되지 않았다.[41] 퇴단할 때까지 지배 등록되지 않았다.[42] 퇴단할 때까지 지배 등록되지 않았다.[43] 2014년 시즌이 끝나고 기대이하의 퍼포먼스로 자유계약으로 풀렸으나 2015 시즌 전에 다시 롯데와 협상을 하여 재입단했다. 시즌 중 입단도 아니기에 사실상 재계약이라고 봐야겠지만...[44] 한국 국적 시절 이름.[45] 한국에서 미국으로 귀화했다.[46] 일본프로야구 최후의 한국인 용병투수. 최후의 용병타자는 하재훈이며 외국인 취급을 받지 않는 김무영까지 총 3명의 한국인이 2016년 일본프로야구에서 뛰었다. 그 후로 일본프로야구에 입단한 한국인은 없다.[47] 본인이 계약해지를 요구하여 7월 초에 웨이버 공시. 시즌 내내 1군 콜업 없이 2군에서만 뛰어서 불만이 있었던 것 같다.[48] 이 선수는 2019년 멕시칸리그에서 타율 .380에 31홈런 OPS 1.078로 터졌다. 물론 멕시칸리그가 공인구 교체 이후 미친듯이 홈런이 급증해서 펠릭스 피에보다 OPS가 낮았지만(...) 그래도 일본에서 나름대로 성공했던 자펫 아마도르, 루이스 크루즈보다도 OPS가 높았으니 한번도 안 긁어본 것은 아쉬운 선수.[49] 다만 3월에 지배 등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