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르카손

 




''''''Carcassonne'''
카르카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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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
'''국가'''
프랑스
'''레지옹'''
옥시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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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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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한국어
카르카손 역사 요새 도시
영어
Historic Fortified City of Carcassonne
프랑스어
Ville fortifiée historique de Carcassonne
국가·위치
프랑스 옥시타니 카르카손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1997년
등재기준
(ii)[1], (iv)[2]
지정번호
345
1. 소개
2. 역사
3. 교통
4. 관광
5. 유명인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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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프랑스 남부 옥시타니 레지옹에 소재한 요새도시로 오드(Aude) 주의 주도이다.
위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크고 아름다운 요새가 도시의 전경을 이루며 이 요새를 활용해 관광도시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는 도시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수학여행 장소이다. [3] 지방에 위치해있으며 중세의 도성을 보존하고있는 대표적인 수학여행지라는 점에서 진주시진주성과 비슷하다
또한, 카르카손 시가 관광이나 문화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인근 툴루즈 시는 대학도시이며 항공산업이 중심적인것을 생각하면 툴루즈시와의 관계는 한국의 진주시사천시와 비슷하다.
이 요새도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으며, 유명 보드게임인 카르카손 또한 바로 이 요새를 둘러싼 카르카손의 역사성을 소재로 한 것...이지만 어째 우리나라에서는 보드게임의 인지도가 도시의 인지도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비슷한 상황으로는 르아브르케일러스를 들 수 있다. 역사성이 있는 프랑스의 도시이자 유명 보드게임의 소재가 되었다는 데에서 셋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4]

2. 역사


무려 기원전 3500년 경부터 오드 강을 낀 언덕을 따라 정착지가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100년 경 로마인들이 최초로 이곳에 요새를 건설하기 시작했고, 서기 453년부터는 서고트 왕국이 이곳을 통치한다. 이때 카르카손의 요새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어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요새의 태반의 완성되었고, 난공불락의 요새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하지만 507년의 부비에 전투에서 프랑크 군이 고트족을 격파하여 프랑크의 지배를 받았으나 724년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온 이슬람 세력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카르카손의 우주방어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뭐니뭐니해도 바르셀로나에서 건너온 사라센 (아랍 무슬림)이 이곳을 다스리고 있을 759년에 피핀 3세가 이끄는 프랑크 왕국의 공격을 이겨낸 사건. 투르 푸아티에 전투 이후 아키텐은 프랑크 왕국에게 복속되었고, 카를 마르텔의 아들 피핀은 셉키마니아 등 이슬람 세력이 지배하던 영토를 침공하였다. 다만 전쟁을 수없이 겪은 그였지만 카르카손의 요새를 돌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피핀은 작전을 공성에서 포위로 바꿔 아랍인들의 식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실제로 이 작전이 주효하여 성을 지키던 사라센인들은 극심한 기아에 시달린다.
하지만 이때 성 내부 아랍 측의 카르카스 왕비가 기지를 발휘해 돼지에게 콩을 잔뜩 먹여 성 밖으로 던졌고, 돼지의 배가 터지며 소화되지 않은 콩이 잔뜩 쏟아져나오자 프랑크 왕국군은 아직 성 안의 식량이 충분히 있다고 판단하여 철수한다. 이후 카르카손 지방의 이름이 카르카스 왕비의 이름을 따 지금처럼 굳어졌다는 설이 있다. 다만 이곳의 이름은 로마 제국 시대에도 카르카숨이었고 그보다 이전에도 비슷한 이름으로 불렸다.
8세기 후반에 결국 그리스도교 세력인 프랑스에 점령된 이후로도 카르카손 요새는 스페인 방면으로부터의 진출을 방어하는 데에 요충지 역할을 했다. 다만 툴루즈 백작령에 속해있던 13세기 초에는 남부 프랑스에 만연하던 카타리파 가독교가 이단으로 분류되었고 탄압을 받자 그들은 카르카손에서 농성하였다. 하지만 알비주아 십자군 시에 도시는 결국 국왕군에게 함락되었고 카타리 파의 신자들은 대부분 화형당하였다. (1209년) 그렇게 툴루즈와 카르카손 일대는 프랑스 왕령이 되어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게 되었다. 포로로 잡혀 옷이 압수된 카티리파 신도들
이후, 13세기 말에 오늘날과 같은 요새화가 끝났고, 백년 전쟁 중에 흑태자 에드워드잉글랜드 군에게 포위되었으나 역시 이겨내었다. 1575년과 1585년에 위그노 전쟁의 일환으로 신교도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으나 격퇴되었다.1659년, 30년 전쟁베스트팔렌 조약 이후로도 싸우던 에스파냐와 프랑스는 피레네 조약을 맺어 평화를 회복하였는데, 이 조약으로 프랑스의 국경은 남쪽으로 더 내려가게 되어 스페인을 견제하던 카르카손 요새의 군사적 중요도가 줄어들게 된다.
하지만 카르카손 요새는 오랜 세월 동안 거의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세월에 따른 증축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 매우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는데, 시대에 따라서 공성전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잘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이기 때문.그리고 19세기 초에 요새 기능이 없어지며 채석장..으로 쓰이던 카르카손은 역사에 관심이 많던 장 피에르 크로 마이르비유가 요새 파괴 금지법을 1850년에 통과시켜 보호되었다. 이후 이어진 복원 사업은 1910년에 끝나 현재의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
이 지역의 주된 언어는 프랑스어가 아닌 오크어이다. 이는 카르카손이 속한 랑그도크 지역이 가진 역사적 특성이기도 하다.

3. 교통


지역 공항으로는 카르카손 살바자 공항이 있으며, 카르카손 역에 정차하는 TGV를 통해 툴루즈몽펠리에, 마르세유 등으로 오고갈수 있다.

4.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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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와 언덕 위에 있는 요새로 나뉘는데, 시내에도 카르카손 대성당이 있지만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발길은 요새로 향한다. 오드 강에 놓인 다리에서부터 이미 카르카손 요새의 위엄을 확인할 수 있고, 강을 낀 요새의 파노라마를 보는 것이 카르카손 관광의 핵심. 요새 내부는 은근히 복잡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넉넉잡아 2~3시간 정도면 한 바퀴를 쭉 둘러볼 수 있다. 식당들이 많이 있고 중세 시대 및 사라센 왕비의 일화를 소재로 한 관광품을 판매하는 상점이 많은 편. 그리고 요새 내부에 위치한 성 나자리우스와 셀수스 교회 (Basilica of Saints Nazarius and Celsus)도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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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카손 보드게임 케이스 그림은 실제로 존재하는 부분이다. 실사와 보드게임 케이스 디자인 간에 놀라운 수준의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카르카손 요새의 후문에 해당하는 오드 문 (Porte d'Aude)이다. 오드 문은 오드 강을 향하고 있어서 오드 문이라고 하고 정문에 해당하는 나르본 문(Porte Narbonnaise)은 나르본 지방을 향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한 미디 운하가 카르카손 역 앞을 지나 도시를 관통하고 있어 운하 크루즈를 즐길 수도 있다.
파리에서 직행으로 가는 TGV도 있고, 리옹에서 가는 것이 간편한 편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올라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경로. 카르카손은 요새만 보면 본전을 뽑았다고 해도 충분하기에 프랑스 남부의 다른 도시들과 묶어서 다니는 것도 괜찮다. 카르카손 공항에서는 포르투, 본머스, 더블린, 프랑크푸르트, 런던, 리버풀, 글래스고 등의 도시와 직항으로 연결되는 노선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5. 유명인


카르카손 출신 유명인 중에서 가장 내세울 만한 인물은 금속 분말을 촉매로 유기 화합물을 환원하는 방법[5]을 발견한 공로로 191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폴 사바티에(Paul Sabatier, 1854~1941)가 있다.
프랑스의 유명 작곡가인 폴 라콩브(Paul Lacombe, 1837~1927)의 고향이기도 하다. 카르카손에는 라콩브의 묘지를 찾아볼 수 있다.

6. 기타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건 보드게임인 카르카손. 카르카손 게임에 강 타일을 추가하여 진행하다 보면 오드 강을 낀 카르카손 요새와 상당히 흡사한 모습의 도시를 만들어볼 수도 있다.
한국의 대체역사소설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의 작가의 필명이 카르카손이다.
워해머 판타지에서 나오는 중세 영국과 프랑스를 모티브로 한 나라인 브레토니아의 한 지방으로 등장한다. 브레토니아에서 숭배하는 호수의 여신의 대리인인 페이 인챈트리스가 활동하는 곳이기도 하다.

[1]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2]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 실제로 방문해보면 수학여행 온 프랑스 중고딩 무리들과 높은 확률로 마주칠 수 있다[4] 다만 웅장한 요새가 자리잡은 카르카손과는 달리 세계대전 때 크게 폭격을 맞은 르아브르와 작은 마을에 불과한 케일러스는 관광도시로서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5] 마가린을 이 원리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