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반트 601

 

1. 개요
2. 상세
2.1. 안습한 사양
2.2. 통일 이후
2.3. 추억의 차
2.4. 파생 모델
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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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둘러보기

Trabant 601

1. 개요




601의 런칭 광고
독일민주공화국의 국영 자동차 기업 IFA/트라반트에서 제작, 판매된 경차. 1963년부터 1991년까지 생산되었다. 애칭은 트라비. 동독공산주의의 상징격 자동차.

2.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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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트라반트는 구 동독 남부의 작센 주에 위치한 소도시인 츠비카우에서 과거 아우디가 사용하던 공장을 매입하여 차량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선구 모델로 P50(트라반트 500)과 P60(트라반트 600)을 생산한 트라반트는 1960년대 들어 인민들의 수요 증진을 위하여 신모델을 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차량이다.
그런데 수요가 생산량을 추월했음에도 생산량을 많이 늘리지 않아 기껏 돈을 모아서 신청해도 출고까지 9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더해 자본주의 돼지들이 만드는 오토바이 따위보다도 후달리는 성능[1]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능 향상을 위한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아서 초기형이나 후기형이나 성능 상의 큰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중고차가 '''신차보다 더 비싼'''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특성 때문에 역으로 성인식 선물로 인기가 높았다고 하는 얘기도 있다. 여유가 좀 있는 집안이라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정도의 나이가 되면 저축한 돈을 가지고 회사에 신청해서 9년 후 성인이 되면 받을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덕분에 서독이나 프랑스같이 자체적으로 고품질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나라에서 진작에 동독 체제의 경직성을 상징하는 자동차로 유머거리가 되었고, 웬만한 후진국들의 자동차에도 품질상으로 밀리는 1980년대에 와서는 세계 각지에서 "가격이 싸지 않으면서 출고 기간은 더럽게 길지만 품질이 후달리는 자동차"로 화려하게 명성(?)을 떨쳤다.
아래에 나오는 안습한 사양과 품질을 자랑하지만 그래도 이 물건이 당시 동독동구권 국가 중에서는(더 나아가, 소위 제1세계라 불리는 서유럽, 미주, 일본 등의 부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 중에서는) 그나마 경제적, 산업적으로 여유있는 처지였다는 증거이긴 하다. 느리고, 시끄럽고, 힘도 약하고, 위험하고, 매연까지 풍풍 쏟아내는 물건이라고는 하지만 어찌됐건 사람 타고 짐 싣고 엑셀 밟아서 나가기만 하면 자동차란 상당히 편리한 물건이고, 70년대 당시 중류층 월급 생활자가 자가용 차를 가질 수 있는 국가가 결코 많지는 않았다.
문제는 나온 당시에도 딱히 좋은 성능의 차량이 아니었는데[2] 안습한 자원 사정상 수십 년간 거의 바꾸지 않고 90년대 초까지도 계속 생산했다는 것. 동독이 601 모델을 1963년에 생산하기 시작했을 때 서독은 훨씬 우수한 폭스바겐 비틀로 이미 세계적인 대박을 치고 있었다. 하다못해 완전 자체개발 모델은 아니지만 대한민국이 구형 포니를 만든게 1975년인데 이 시기에도 역시 601은 마이너 체인지 수준에 그치고 있어서 성능은 비교조차 어려운 수준.

2.1. 안습한 사양



600cc 23마력 2기통 엔진으로 움직인다.
숫자상으로는 같은 시기 피아트 500이나 NSU 프린츠를 비롯한 마이크로카경차들, 즉 당시 동급차종들과 비슷한 수준인데, 외관이나 편의 설비 같은 것은 수십년 간 거의 변하지 않았다.[3]
엔진 성능의 한계 때문에 60km/h, 기껏 밟아봐야 100km/h를 넘기 힘들었다고 하며[4], 공랭식 엔진이라 토요타 퍼블리카같이 중간에 적절하게 쉬어 주지 않으면 엔진이 퍼진다고 한다. 또 2행정 엔진의 고질적인 문제로 별도의 윤활유 공급 장치가 없어서 휘발유에 윤활유를 섞어 연소시키기 때문에, 매연이 엄청난 편이었다. 트라반트의 매연이 나오는 사진을 보면 매연이 흰색이나 회색이 아니라 '''푸른빛'''을 띠고 있다. 매연 중 이산화탄소 함유량이 일반적인 매연에 비해 많기 때문에 매연이 푸른빛을 띠는 것. 물론 이게 좋을 리가 없다.
엔진 힘이 딸리니 차체는 기본적인 뼈대만 강철로 만들고, 나머지는 목화섬유로 만든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그래서인지 차량의 무게는 600kg 정도였다고 한다. 참고로 이 차체에 쓰인 강화 플라스틱은 당연히 사고가 나면 복구하기 힘들었고, 결정적으로 일반 플라스틱보다 환경오염이 심했으며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이게 와전되어 종이로 만든 차라는 소문도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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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기본 모델이나 마이너 체인지 모델이나 공통적으로 연료 탱크가 앞의 엔진룸에 같이 자리잡았고, 충돌사고 등으로 화재라도 날 경우 그야말로 불에 기름을 붓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연료 탱크 위치나 차체 껍데기가 플라스틱이라는 점 때문에 화재에 매우 취약해서 안전성이 떨어졌다. 안전 장치? 당연히 그런 거 없다. 게다가 충돌 안정성도 그때 당시 기준이나 지금 기준이나 완벽하게 꽝이라서 '''정면으로 들이받을 경우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나마 최후기형인 1.1부터 연료 탱크가 엔진룸에서 후면부로 가긴 하였다.]

당시 광고 영상을 보면, '''4인 가족과 짐을 실을 수 있다'''라고 홍보하고 있다. 근데 그나마 동독인들이 쉽게 구입할 수 있었던 차가 트라반트 정도밖에 없었다(...).

1965년에 동독 국영 영화제작소(DEFA)에서 제작한 트라반트 601의 제작 공정 홍보 영화. 시대를 감안하더라도 심각한 안쓰러움이 밀려온다(...).

2.2. 통일 이후


601은 1980년대까지 성능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독일이 통일되면서 서독 자동차 회사의 기술을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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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직후에는 2차 F/L 모델이자 최후기형인 트라반트 1.1이 출시되었다. 다만 이 당시 베를린 장벽 붕괴를 통한 독일 통일로 인해 서독 지역 차량들이 유입되던 시기라서 3년이라는 기간밖에 생산되지 못했다.
601과는 많은 점이 바뀌었는데, 일단 그릴과 범퍼가 바뀌었고, 주유구가 트렁크 안에서 후면 주유구로 바뀌었다. 특히 폭스바겐제 1.1L 엔진을 사와서 장착하는 등 성능 향상이 이루어지는 변화가 있었다. 사진 속의 모델과 폭스바겐제 엔진. 잘 보면 그릴과 범퍼 등의 부품이 개량되었다. 하지만 당시 동독인들 사이에서는 벤츠폭스바겐, BMW, 아우디, 오펠 등 품질과 승차감이 좋은 서독제 자동차를 구입하는 게 대세가 되었고, 반대로 이미 트라반트보다 승차감이 좋은 차들이 넘쳐 나는 서독에서 트라반트는 이미 퇴물 취급을 받았다. 게다가 서독의 환경 규제에 맞춰서 구 연방주 지역에서는 트라비의 신규 차량 등록을 불허하는 바람에 대부분의 트라반트가 폐차장에서 운명을 달리했다.
이원복 교양만화 <현대문명진단> 2권에 따르면, 이 시기에 독일 교통사고 건수가 크게 증가했는데, 성능이 좋은 서독차를 새로 산 동독인들이 아무리 꽉꽉 밟아도 시속 100km를 겨우 넘을락 말락 했던 트라반트를 운전하듯이 새로 산 차를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내는 경우가 잦았다. 그래서 한동안 동독인들이 김여사 취급 받았다나 뭐라나...
그나마 수출이라도 잘 되었으면 모를까, 하필이면 소련이 붕괴되던 때라 일반인들의 구매력이 떨어지던 참이었고, 애초 트라반트 따위가 소련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 리가 없었다, 게다가 동시기에 체제 전환 과정을 거친 폴란드불가리아, 유고슬라비아 등의 사정도 영 좋지 못한데다가 그 동안 쌓아 놓은 이미지가 있는 탓에 수출도 부진했고, 결국 채산성 악화로 1991년 4월 31일 최종 단종되었다.
4월 31일, 생산라인을 마지막으로 통과한 자동차는 생산번호 3096099번의 분홍색 유니베르잘 왜건[5]으로, 박물관에 소장되었다. 트라반트를 생산하던 츠비카우의 생산공장은 폭스바겐에 매각되었으며, 구 트라반트에서 일하던 직원 중 약 100여 명 정도를 제외한 전원이 해고되었다고 한다.

2.3. 추억의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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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트라반트 투어 이벤트를 위해 모인 트라반트 차량들 #
차만 보면 확실히 고물차이지만, 통일이 되고 난 지금은 한 시대를 장식했던 귀염둥이차로 인기를 얻고 있으며 5만여 대 정도가 독일 국내에 아직 남아 있다. 현재는 구 동독 지역을 대표하는 일종의 특산품이자 추억의 자동차로 취급되어서 일부 독일인들은 트라반트를 수집용 아이템으로 취급한다. 당연히 트라반트를 수집하거나 보관하는 사람들은 다른 새 차를 가지고 있으면서 트라반트를 세컨드로 보관한다.
아예 대놓고 트라반트를 보관한 차주들을 대상으로 여러 행사가 벌어지기도 하는 등 막연하게 고물차로 평가받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는 한 시대를 간직한 아이콘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 구 동베를린 지역에 가 보면 트라반트를 세워놓고 그 차를 찍는 대가로 돈을 받는 식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유튜브를 뒤져 보면 트라반트 레이싱 대회 동영상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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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섀시를 제외한 차체가 플라스틱이란 특징과 특유의 컬트적 인기 덕분에 여러가지 의미로 마개조에 가까운 튜닝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차들은 트라반트 관련 이벤트에도 자주 등장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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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트라반트 추억 보정 덕분인지 왜건 모델을 베이스로 한 전기 트라반트 컨셉카도 나왔다고 한다. 아쉽게도 시판까지 하진 못했다는데, 과거 트라반트가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게 만든 차량인데다 매연도 없는 전기차이기까지 해서 정말로 시판되었으면 테슬라보다 먼저 상용화된 전기차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추억보정도 받아 적잖게 팔려나갔을 것이다.

2.4. 파생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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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건 모델인 트라반트 우니베르잘(Universal)'''. 기본형인 2도어 세단을 기본으로 하며, P50 시절부터 존재하였다. 참고로 이 모델의 경우는 동구권 유럽이 배경인 하프라이프 2하프라이프 알릭스에서 17번지구 시민들의 차량으로 작중에선 주차상태 또는 콤바인의 공격으로 반파된 상태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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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용 모델인 트라반트 퀴벨(Kübel)'''. 당시 동독 군인들이 쓴 실제 군용 모델이며, 위 사진처럼 민수용으로도 팔려서[6] 트람프(Trabant + Jeep)라 불리기도 하였다. 공교롭게도 나치 독일의 지프라 불리는 퀴벨바겐도 소형차인 폭스바겐 비틀의 설계를 전용한 자동차다. 개념 면에서 같은 나라에서 나온 정신적 후속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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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용 모델인 트라반트 800 RS'''. 당연히 경주용이다 보니 기존의 600cc급 엔진을 800cc급 엔진으로 업그레이드하고, 5단 수동 미션이 들어갔다. 아래에 후술할 바르트부르크와 같이 랠리를 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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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기형인 1.1부터 추가된 트라반트 픽업'''. 다만 1.1의 경우는 다른 서독 차들에게 밀려서 일찍 단종된 탓에 픽업 버전 트라반트는 보기가 힘든 편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반자동 변속기가 달린 히코마트(Hycomat)'''란 모델이 존재하는데, 601 모델의 생산시기인 1965년부터 추가되어 단종 시기인 1990년대까지 생산되어 주로 한쪽 다리를 잃은 장애인들을 위한 모델로 팔렸지만, 반자동 변속기라는 특성 및 동독의 기술 사정상 변속기의 내구도가 그리 좋지는 않은 탓에 남은 개체 수가 일반적인 수동 변속기 모델보다 적은 것으로 추측된다.

3. 기타


동독과 서독 통일 이후에 동독 지역에 살던 가족이 트라반트를 타고 유럽 여행을 떠나며 생기는 일들을 그린 영화로 "트라비에게 갈채를(Go Trabi Go)"라는 영화가 있다. 국내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도 검색하면 아주 조금 나오긴 한다.
한국에는 3대가 들어와 있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2대는 전시용으로 그중 하나는 삼성교통박물관에 1988년식 트라비가 전시 목적으로 보존 중이며, 하나는 강원도 고성군 DMZ 박물관의 독일 통일관에 1973년식 1대가 전시되어있는데, 실내인지라 상태는 양호한 편. 나머지 한 대는 개인 소유라고 하는데, 96~03년 사이에 발급 되었던 번호판을 달고 있다고 한다.[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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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트라반트보다 훨씬 품질 좋은 외제차로 소련라다 쥐굴리[10]가 대표적인 외제차로 수입되었고 다른 동구권 국가였던 루마니아다치아, 체코슬로비키아산 스코다, 폴란드산 FSO제 자동차들도 수입되었다. 다만 가격은 트라반트보다 비싼데다가 구입기간은 트라반트보다 더 길었고, 심지어 동독 정권이 붕괴되기 직전인 80년대 초중반에는 일본에서도 미쓰비시나 마쯔다같은 일제 차량들을 조금씩이나마 들여오긴 했다.[11][12] 이 외에 프랑스산 시트로엥 차량과 스웨덴산 볼보 차량도 대거 들여오기도 했다.
참고로 티코 시리즈의 원조가 바로 트라비다. 하지만 성능은 당연히 58년에 기본 형태가 만들어진 만큼 1987년에 원형이 만들어진 티코보다 딸릴 수 밖에 없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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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601 생산 시기에 내놓으려 했던거로 보이던 해치백 프로토타입 모델과 1.1에 달던 VW 폴로 엔진을 장착한 P1100이라는 새로운 디자인의 차기 프로토타입 모델도 있었으나, 결국 생산되지도 못했다.
의외로 이 차를 중심으로 하는 로드트립 인디 게임이 있다. 자세한 건 Jalopy 문서 참고.
독일에서 개발된 버스 시뮬레이터인 옴니버스 시뮬레이터에서도 가끔 등장한다. 옆 차선에 있을 뿐인데 덜덜거리는 큰 소음이 들리는 게 포인트.[13]
의외로 007 시리즈에 카메오로나마 출연한 적이 있는데, 리빙 데이라이트에서 애스턴 마틴 V8 밴티지가 활약하는 장면에 다른 구 공산권 차들과 함께 터널 앞에 서있는 거로 등장하였다.[14]
맨 프롬 엉클(영화)에서도 등장.2기통 차량 답지 않게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추격씬을 찍었다.
Workers & Resources: Soviet Republic에선 초반부터 사용 가능한 자가용으로 등장한다. 값이 싸며, 필요 자원과 인원이 적기 때문에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관희 챠이카의 여주인공인 챠이카 트라반트의 이름의 트라반트가 이차 이름에서 따왔다.
19년 11월10일 금산에서 확인된 결과 아직 잘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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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같이보기



5. 둘러보기





[1] 같은 시대 서유럽권의 마이크로카 및 경차 정도의 성능이다. 참고로 같은 시기 등장한 서독제 동급 차인 NSU 프린츠가 공랭식 2기통 583cc 20~30마력 엔진을 사용했다.[2] 당시 판매중인 NSU 프린츠, 피아트 500과 600같은 동급 차종들과 비슷한 수준.[3] 단, 당시 막 대중화가 시작된 앞 엔진 전륜구동 설계를 채용했다.[4] 그러나 대시보드의 속도계에는 120km까지 적혀있다. 참고로 티코는 140km까지..[5] 후술할 트라반트의 스테이션 왜건형 모델이다.[6] 퀴벨 모델 자체는 1966년도에 등장하였지만, 그의 민수용인 트람프 모델은 1978년도에 등장했다. 그마저도 동독이 아니라 그리스같은 국가에 수출되었다고.[7] 개인 소유주는 독일 유학생 출신으로 한국에 들어올 때 가져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독일 여행을 다녀오는데 그때마다 자동차 부품을 사오곤 한다고 한다.[8] 90-00년대 까지는 차량 규제가 지금에 비해 비교적 널널한 편이라 당시 많은 병행 수입 차량이 들어왔다. 현재는 많이 까다로워져서 최신 북미/유럽형 차량과 이삿짐 차량만 사실상 가능하다. 다른 방법도 있으나 비용이 차값의 배는 든다 생각해야한다.[9] 번호판은 합성이다. 이후 연보라색 도색을 하고 번호판을 흰색 번호판으로 교체한 사진을 끝으로 현재 이 차는 근황을 알 수 없다.[10] 공교롭게도 쥐굴리의 3세대 모델은 분단 시기의 동독 지역 외에도 서독 지역에서도 팔렸었는데, 서독에서는 노바란 이름으로 팔리고, 동독에는 칼린카라는 이름으로 팔렸었다. 이 외 국가마다 각각 다른 이름으로 팔렸으며, 자세한 설명은 해당 항목을 참조하자.[11] 이게 가능한 이유가 구 동독은 서방국가 가운데 일본하고 긴밀했기 때문이다.[12] 이 영향으로 인해 주파수 변환기도 가장 빨리 상용화가 되었다.[13] 위에서 서술했듯, 2행정 공랭식 엔진이라는 보통 오토바이 외에는 잘 안쓰이는 방식을 채택해서 실제로도 엔진음이 상당히 큰 편이다. 이는 비슷한 엔진을 채택한 바르트부르크와 바르카스 밴도 마찬가지.[14] 해당 영상, 3분 36초부터 참고.